최계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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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계월은 일제강점기에 학도병으로 복무하고 해방 이후 사업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1919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나 일본 히로시마에서 성장했으며,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광복 후 육군에서 공군 창설을 위해 노력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실업 활동을 했으며, 5.16 군사정변 이후 귀국하여 인도네시아에서 해외 자원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1984년에는 인도네시아 마두라섬 인근 해역에서 원유를 발견했으며, 현재까지 천연가스를 생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교민회장과 통천 최씨 대종회장을 지냈으며, 은탑 산업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인도네시아 최고공로훈장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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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월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인물 정보 | |
이름 | 최계월 |
현지어 표기 | 崔桂月 |
출생지 |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상남도 합천군 |
사망지 | 일본 오사카 |
종교 | 불교 |
출생일 | 1919년 1월 5일 |
사망일 | 2015년 11월 27일 |
본관 | 통천(通川) |
군 복무 정보 | |
복무 | |
복무 기간 | 1942년 3월 3일 ~ 1947년 12월 27일 |
근무 | 대한민국 육군 국방경비대 |
최종 계급 (일본군) | 일본 육군 중위 |
최종 계급 (한국군) | 육군 소령 |
지휘 | 대한민국 육군 국방경비대 정훈장교 |
훈장 | |
서훈 내역 | 대한민국 은탑산업훈장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인도네시아 최고공로훈장 인도네시아 경제발전 특별공로상 |
기타 이력 | |
기타 이력 | 한국남방개발주식회사 총회장 |
별명 | 칼리만탄의 왕 |
2. 생애
최계월은 1919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나 6세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에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에서 복무했다. 광복 후 육군에서 복무하며 공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여운형의 권유로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귀국했다.
1968년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최초로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시작했고,[3] 1981년에는 해외유전개발사업에도 진출하여 1984년 마두라섬 인근 해역에서 원유를 발견했다.[5] 인도네시아 교민회장과 통천 최씨 대종회장을 지냈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1919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6세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 히로시마 광릉(廣綾)중학교, 히로시마 제1중학교,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 방공사령부에서 중위로 복무하였다. 광복 이후 귀국하여 육군에 복무하며 공군 창설을 위해 노력하다가 여운형의 권유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실업 활동에 몰두하였다.[3]2. 2. 군 복무와 광복 이후
1919년 경상남도 합천에서 태어났다. 6세에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 일본 히로시마 광릉(廣綾)중학교를 거쳐 일본 히로시마 제1중학교,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부를 나왔다.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일본군 방공사령부에서 중위로 복무하였다. 광복 이후에 잠시 귀국하여 육군에 복무하며 공군 창설을 위해 노력하다 몽양 여운형의 권유로 다시 일본에 건너가 실업 활동에 몰두하였다. 일본에서 사업을 진행하다 5.16 군사정변 이후 대한민국에 돌아왔다.한국 귀국 후 한국 최초의 해외자원개발인 칼리만탄의 산림개발을 위해 1968년 인도네시아에 해병대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원시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3] 당시 김종필은 '최 회장이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4] 1981년 국내 최초로 해외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어 1984년 8월에는 인도네시아 마두라섬 인근해역에서 원유를 발견 및 개발하기도 하였다.[5] 현재에도 마두라 유전지역 5광구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그레식화력발전소에 발전용으로 전량 판매하고 있다.[6]
최근까지 활발한 사업 활동을 하던 그는 사업의 무대 인도네시아에서는 교민회장을 지냈고, 국내에서는 통천 최씨 대종회장을 지냈다.[3]
2. 3. 한국 귀국과 해외 자원 개발
5.16 군사정변 이후 대한민국에 돌아와, 한국 최초의 해외자원개발인 칼리만탄의 산림개발을 위해 1968년 인도네시아에 해병대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원시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3] 당시 김종필은 '최 회장이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4] 1981년 국내 최초로 해외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어 1984년 8월에는 인도네시아 마두라섬 인근해역에서 원유를 발견 및 개발하기도 하였다.[5] 현재에도 마두라 유전지역 5광구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그레식화력발전소에 발전용으로 전량 판매하고 있다.[6]2. 4. 인도네시아에서의 활동과 말년
1968년 최계월은 한국 최초로 해외자원개발인 칼리만탄 산림개발을 위해 해병대상륙사단 출신 부사관 120명과 함께 인도네시아 원시정글에 들어가 원목개발을 했다.[3] 김종필은 '최 회장이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말했다고 한다.[4] 1981년 국내 최초로 해외유전개발사업에 뛰어들어 1984년 8월에는 인도네시아 마두라섬 인근해역에서 원유를 발견 및 개발하기도 하였다.[5] 현재에도 마두라 유전지역 5광구에서 천연가스를 생산하여 그레식화력발전소에 발전용으로 전량 판매하고 있다.[6]최계월은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며 교민회장을 지냈고, 국내에서는 통천 최씨 대종회장을 지냈다.
3. 학력
- 히로아야|廣綾일본어 중학교 수료
- 히로시마|廣島일본어 제1중학교 졸업
- 와세다 대학교|早稻田大學일본어 법학과 학사
- 대한민국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0기(1965년)
4. 경력
기간 | 직책 |
---|---|
1947년 4월 ~ 1958년 8월 | 동양무역사 사장 |
1958년 9월 ~ 1963년 10월 | 흥아상사(주) 전무이사 |
1963년 11월 ~ 1992년 11월 | 한국남방개발(주) 대표이사 사장 |
1976년 10월 ~ 1981년 2월 | 한국해외산림개발협회 회장 |
1980년 11월 ~ 1987년 | 해외국민연합회 회장 |
1981년 4월 ~ | 코데코에너지(주) 대표이사 사장 |
1988년 4월 ~ | 홍콩 석유판매회사 KIPCO 사장 |
1990년 6월 ~ | 인니 현지법인 KODECO HEAVY INDUSTRY 사장 |
1992년 10월 ~ | 인니 현지법인 KODECO FISHERY 사장 |
1992년 11월 ~ 1993년 11월 | 한국남방개발(주) 대표이사 회장 |
1993년 11월 ~ | 한국남방개발(주)(코데코) 그룹 총회장 |
5. 수상
6. 관련 저서
- 한대희, 《역사는 꿈꾸는 자가 만든다》 (명지사, 1992)
- 이호, 《나는 아스팔트 깔린 길은 가지 않는다》 (올림, 1993)
- 권태하, 《그들은 나를 칼리만탄의 왕이라 부른다》 (중앙M&B(랜덤하우스중앙), 1994) (실명소설)
- 이호, 《낭만의 제국》 (우석출판사, 2007)
참조
[1]
뉴스
남방개발 창업주 최계월 별세 외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5-11-30
[2]
뉴스
"[한-인니 수교 50주년] 보르네오 섬 대규모 원시림 개발…‘칼리만탄의 왕’ 별명"
https://www.dnews.co[...]
대한경제
2023-04-03
[3]
서적
아! 대한민국 (한국 현대사 40년, 격동의 100대 드라마)
랜덤하우스중앙
2005-12-01
[4]
서적
나는 아스팔트 깔린 길은 가지 않는다 (해외 자원개발의 살아있는 신화 최계월 회장의 영광과 도전)
올림
2007-03-23
[5]
뉴스
해외유전개발 첫 성공
https://www.mk.co.kr[...]
매일경제
1984-08-24
[6]
뉴스
西마두라 가스田 본격 생산개시
https://n.news.naver[...]
연합뉴스
199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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