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부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치마부에는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비잔틴 미술의 영향을 받아, 서양 회화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나아가는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레초의 십자가, 루브르 박물관 소장 '마에스타',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대성당 프레스코화 등이 있으며, 조토 디 본도네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4세기 화가 - 조토 디 본도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토 디 본도네는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거장으로 여겨지며,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와 공간감 표현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 14세기 화가 - 시모네 마르티니
시모네 마르티니는 14세기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의 화가이며, 부드럽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유명하며, 《마에스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폴립티크》, 《성 마가레트와 성 안사누스와 함께 한 수태고지》 등의 작품을 제작하고 1344년 아비뇽에서 사망했다. - 13세기 화가 - 조토 디 본도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인 조토 디 본도네는 서양 미술사에서 최초의 거장으로 여겨지며,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인물 묘사와 공간감 표현으로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 13세기 화가 - 시모네 마르티니
시모네 마르티니는 14세기 이탈리아 시에나 출신의 화가이며, 부드럽고 장식적인 화풍으로 유명하며, 《마에스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카타리나 폴립티크》, 《성 마가레트와 성 안사누스와 함께 한 수태고지》 등의 작품을 제작하고 1344년 아비뇽에서 사망했다. - 1302년 사망 - 설공검
설공검은 고려 후기 문신으로, 과거 급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중찬에 이르렀으며 청렴하고 검소한 성품으로 충렬왕 묘정에 배향되었다. - 1302년 사망 - 시조 사다코
시조 사다코는 가마쿠라 시대 사이온지 사네우지의 부인으로 고사가 천황와 고후카쿠사 천황의 중궁을 낳았으며, 107세의 장수를 누리며 90세 생일 축하연이 기록될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진 여성이다.
치마부에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이름 | 치마부에 |
출생일 | 1240년경 |
출생지 | 피렌체 |
사망일 | 1302년경 |
사망지 | 피사 |
국적 | 이탈리아 |
활동 | |
분야 | 미술 |
사조 | 중세 미술 고딕 미술 |
영향 관계 | |
영향을 준 사람 | 조토 디 본도네 |
기타 | |
별칭 | 베니치에네 디 페피 치마부에 |
2. 생애
치마부에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의 경력을 기술하는 한 가지 출처는 바사리의 ''화가·조각가·건축가 열전''이지만, 그 정확성은 불확실하다.
치마부에의 회화에는 금박 배경, 정면성·좌우 대칭성이 강한 구성, 인물의 도식적·평면적인 배치 등 고대 그리스 양식을 기초로 하는 비잔틴 미술의 양식이 아직 짙게 남아 있다. 그러나 중세 회화에 비해 인물의 자연스러운 표정, 성모의 자리와 의복의 표현에 보이는 공간 표현에 대한 의식 등 르네상스 회화로 향하는 길을 확실히 걸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토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치마부에는 시에나에서 활동한 두초 디 부오닌세냐와 함께 고딕과 르네상스의 가교 역할을 하는 서양 회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24]
치마부에의 주요 작품으로는 회화,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이 있다.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사에서 사망했다. 헤이든 매기니스는 그가 비잔틴 미술과 문화적으로 연관된 거장들 밑에서 피렌체에서 수련을 받았을 가능성을 추측한다. 미술사학자 피에트로 토에스카는 아레초의 산 도메니코 교회에 있는 ''십자가 처형 장면''을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돌리며, 약 1270년경으로 추정하고,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여긴다.[7] 치마부에의 그리스도는 구부러져 있으며, 의복에는 코포 디 마르코발도가 도입한 금빛 줄무늬가 있다.
1272년경, 치마부에는 로마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8] 얼마 후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교회를 위해 또 다른 ''십자가''를 제작했다.[9] 1966년 아르노 강 홍수로 손상되었던 이 작품은 현재 복원되었으며, 아레초의 작품보다 더 크고 발전된 것으로, 아마도 니콜라 피사노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자연주의의 흔적이 보인다.
바사리에 따르면, 치마부에는 피렌체에서 베스피냐노로 여행하는 동안 매끄러운 돌 위에 거친 돌로 양을 그리는 10살 된 조토(약 1277년)를 만났다. 그는 조토에게 자신과 함께 지내고 싶은지 물었고, 아이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수락했다.[10] 바사리는 조토의 도제 생활 동안, 그는 치마부에가 작업 중이던 초상화의 코에 파리를 그렸다고 설명한다. 스승은 제자가 장난을 친 것을 이해하기 전에 여러 번 파리를 쫓아내려고 시도했다.[10] 많은 학자들은 현재 바사리의 주장, 즉 그가 조토를 제자로 삼았다는 주장을 부인하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는 이전의 자료들을 인용한다.[6]
1280년경, 치마부에는 ''마에스타''를 그렸는데, 원래 피사의 산 프란체스코 교회에 전시되었지만, 현재는 루브르에 있다.[11] 이 작품은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루첼라이 마돈나''(과거에는 잘못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여겨짐)뿐만 아니라 조토를 포함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후 따른 스타일을 확립했다. 조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당시의 다른 작품으로는 ''채찍질''(프릭 컬렉션),[12] 피렌체 세례당의 모자이크(현재 대부분 복원됨), 볼로냐의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 성당에 있는 ''마에스타'', 그리고 카스텔피오렌티노 피나코테카에 있는 ''마돈나''가 있다. 작업실 그림으로, 약간 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현재 우피치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와 도미니크와 함께 있는 마에스타''이다.[13]
교황령 기간 동안, 최초의 프란체스코회 교황인 니콜라스 4세[14] 치마부에는 아시시에서 활동했다.[15] 아시시의 하층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의 트란셉트에서 그는 ''왕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네 명의 천사와 성 프란체스코''라는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이 프레스코화의 왼쪽 부분은 사라졌지만, 성 안토니우스를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있다(최근 기술적 및 스타일상의 이유로 그림의 저자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13] 치마부에는 이후 로마의 예술가들이 네이브를 장식하던 같은 시기에 상층 아시시 대성당의 앱스와 트란셉트를 장식하도록 의뢰받았다. 그가 그곳에서 제작한 연작에는 복음서, 성모 마리아의 생애,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생애가 담겨 있다. 이 그림들은 현재 예술가가 사용했던 밝은 색깔의 산화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다.
약 1290~13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산타 트리니타의 마에스타''는 원래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교회를 위해 그려졌으며, 현재는 우피치 미술관에 있다. 등장인물의 부드러운 표정은 당시 이미 화가로 활동하고 있던 조토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16]
치마부에는 1301년부터 1302년까지 생애의 마지막 시기를 피사에서 보냈다. 그는 그곳에서 마에스트로 프란체스코가 시작한 앉아 있는 그리스도 모자이크를 피사 대성당의 앱스에서 완성하라는 의뢰를 받았다. 치마부에는 성 요한을 묘사하는 모자이크 부분을 제작했는데, 이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기록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17] 치마부에는 1302년경 사망했다.[18]
3. 작품 특징
4. 주요 작품
작품명 | 제작 연도 | 위치 | 특징 |
---|---|---|---|
산타 크로체의 십자가상 | 1265년경 |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 1966년 아르노 강 홍수로 손상되었다가 복원됨. |
아레초의 십자가상 | 1267~1271년경 | 아레초 산 도메니코 성당 | 비잔틴 미술 양식에서 벗어난 초기 작품. 코포 디 마르코발도의 영향을 받은 금빛 줄무늬가 특징. |
경건한 쌍폭화 | 1280년경 | 루브르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프릭 컬렉션 | 그리스도의 조롱, 두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스도의 채찍질 3개의 패널이 남아있음. |
마에스타 | 1280년경 | 루브르 박물관 |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루첼라이 마돈나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 |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의 마에스타 | 1280~1285년 |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 성당 | |
카스텔피오렌티노의 마돈나 | 1283~1284년경 | 카스텔피오렌티노 | |
산타 트리니타 마에스타 | 1290~1300년경 | 우피치 미술관 | 조토의 영향을 받은 부드러운 인물 표현이 특징. |
- 프레스코화: 아시시의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동정녀의 탄생과 약혼''(1277~1280년경)을 포함한 다수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교황령 기간 동안, 최초의 프란체스코회 교황인 니콜라스 4세[14]는 치마부에가 아시시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15] 그는 아시시의 하층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트란셉트에 ''왕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네 명의 천사와 성 프란체스코''라는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이 프레스코화의 왼쪽 부분은 사라졌지만, 성 안토니우스를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있다.[13] 치마부에는 이후 로마의 예술가들이 네이브를 장식하던 같은 시기에 상층 아시시 대성당의 앱스와 트란셉트를 장식하도록 의뢰받았다. 그가 그곳에서 제작한 연작에는 복음서, 성모 마리아의 생애,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생애가 담겨 있다. 이 그림들은 현재 예술가가 사용했던 밝은 색깔의 산화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다.
- 모자이크: 피렌체 세례당 모자이크 천장 (1300년경), ''성모와 성 요한과 함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 (피사 대성당, 1301~1302년)에 참여했다. 특히, 피사 대성당 앱스에 마에스트로 프란체스코가 시작한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과 함께 앉아 있는 그리스도 모자이크를 완성하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이 모자이크 중 복음사가 요한을 묘사하는 부분은 그의 작품으로 기록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17]
4. 1. 회화
치마부에는 회화에서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나 자연주의적인 묘사를 시도한 초기 이탈리아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작품은 조토를 비롯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십자가상:
작품명 | 제작 연도 | 위치 | 특징 |
---|---|---|---|
산타 크로체의 십자가상 | 1265년경 | 피렌체 산타 크로체 성당 | 1966년 아르노 강 홍수로 손상되었다가 복원됨. |
아레초의 십자가상 | 1267~1271년경 | 아레초 산 도메니코 성당 | 비잔틴 양식에서 벗어난 초기 작품. 코포 디 마르코발도의 영향을 받은 금빛 줄무늬가 특징. |
- 프레스코화: 아시시의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에 ''동정녀의 탄생과 약혼''을 포함한 다수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1277~1280년경)
- 경건한 쌍폭화: 128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쌍폭화 중 세 개의 패널이 남아있다.
- ''그리스도의 조롱'' (파리 루브르 박물관)
- ''두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그리스도의 채찍질'' (뉴욕 프릭 컬렉션)
- 마에스타 (옥좌에 앉은 성모자):
- 마에스타 (1280년경, 피사,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 두초 디 부오닌세냐의 ''루첼라이 마돈나''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
-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의 마에스타 (1280~1285년, 볼로냐 산타 마리아 데이 세르비 성당)
- 산타 트리니타 마에스타 (1290~1300년경,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 성당, 현재 우피치 미술관): 조토의 영향을 받은 부드러운 인물 표현이 특징.
- 카스텔피오렌티노의 마돈나 (1283~1284년경, 카스텔피오렌티노 산타 베르디아나 박물관)
- 모자이크:
- 피렌체 세례당 모자이크 천장 (1300년경)
- ''성모와 성 요한과 함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 (피사 대성당, 1301~1302년): 복음사가 요한을 묘사한 부분은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확실시되는 유일한 기록.

4. 2. 프레스코화
아시시의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에는 치마부에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교황령 기간 동안, 최초의 프란체스코회 교황인 니콜라스 4세[14]는 치마부에가 아시시에서 활동하도록 하였다.[15] 그는 아시시의 하층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트란셉트에 ''왕좌에 앉은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네 명의 천사와 성 프란체스코''라는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이 프레스코화의 왼쪽 부분은 사라졌지만, 성 안토니우스를 보여주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기술적 및 스타일상의 이유로 그림의 저자가 논쟁의 여지가 있다).[13] 치마부에는 이후 로마의 예술가들이 네이브를 장식하던 같은 시기에 상층 아시시 대성당의 앱스와 트란셉트를 장식하도록 의뢰받았다. 그가 그곳에서 제작한 연작에는 복음서, 성모 마리아의 생애,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생애가 담겨 있다. 이 그림들은 현재 예술가가 사용했던 밝은 색깔의 산화로 인해 상태가 좋지 않다.4. 3. 모자이크
치마부에는 피렌체 세례당의 모자이크(현재 대부분 복원됨)에 참여했다.[12] 그는 피사 대성당 앱스에 마에스트로 프란체스코가 시작한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과 함께 앉아 있는 그리스도 모자이크를 완성하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이 모자이크 중 복음사가 요한을 묘사하는 부분은 그의 작품으로 기록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17]5. 영향
오랫동안 역사는 치마부에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가려진 시대의 마지막 화가로 여겨왔다. 1543년에 이미 바사리는 치마부에에 대해 "치마부에가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 혁신의 주요 원인이었다"라고 썼지만, "조토가 마치 큰 불빛이 작은 불빛을 가리듯이 치마부에의 명성을 완전히 압도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19]
고딕 시대 피렌체에서 활동한 화가로, 조토는 그의 제자로 여겨진다. 서양 회화가 중세에서 근세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초기의 화가로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 조토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치마부에는 시에나에서 활동한 두초 디 부오닌세냐와 함께 고딕과 르네상스의 가교 역할을 하는 서양 회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
6. 단테의 신곡
역사는 오랫동안 치마부에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가려진 시대의 마지막 화가로 여겨왔다. 1543년에 이미 바사리는 치마부에에 대해 "치마부에가 어떤 의미에서는 회화 혁신의 주요 원인이었다"라고 썼지만, "조토가 마치 큰 불빛이 작은 불빛을 가리듯이 치마부에의 명성을 완전히 압도했다"라는 단서를 달았다.[19]
단테는 《신곡》 중 〈연옥〉(Purgatorio) 제11가에서 예술에 있어 조토의 혁명 앞에서 치마부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급격히 사라진 것을 애도한다.[21] 치마부에는 〈연옥〉(Purgatorio)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고 있는 오데리시에 의해 언급된다. 이 화가는 영원하신 신과 대조적으로 명성의 덧없는 본질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21]
[22]
오, 인간 능력의 허영이여,
얼마나 짧은 시간에 영광의 푸른 관이 시들어 가는가,
어둠의 시대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회화에서 치마부에(Cimabue)는 자신이 그 분야를 장악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지오토(Giotto)가 찬사를 받고 있으니,
다른 이의 명성은 흐릿해졌다.
참조
[1]
웹사이트
Cimabue
https://www.collinsd[...]
HarperCollins
2019-05-12
[2]
서적
Lives of the Artists
Oxford University Press
[3]
서적
Pseudonyms
BCA
1977
[4]
서적
A History of Painting in Italy; Umbria, Florence and Siena from the Second to the Sixteenth Century
AMS Press
[5]
서적
Gardner's Art through the Ages: A Global History
Cengage Learning EMEA
[6]
서적
The Cambridge Companion to Giotto
[7]
서적
Art in Renaissance Italy
Laurence King Publishing
[8]
서적
A Short History of Italian Painting
J.M. Dent & Sons, ltd.
[9]
뉴스
Carpentry and Symmetry in Cimabue's Santa Croce Crucifix
1978-10-01
[10]
서적
The World of Giotto: c. 1267–1337
https://archive.org/[...]
Time-Life Books
[11]
서적
Tuscany & Umbria
Lonely Planet
[12]
서적
Cimabue and Early Italian Devotional Painting
The Frick Collection
[13]
웹사이트
Madonna Enthroned with the Child, St. Francis, St. Dominic, and two Angels attributed to Cimabue
https://www.uffizi.i[...]
2024-03-02
[14]
서적
Dante and the Franciscans: Poverty and the Papacy in the 'Commed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15]
서적
The Image of St. Francis: Responses to Sainthood in the Thirteenth Centu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6]
서적
Art in Renaissance Italy
Laurence King Publishing
[17]
서적
Art and architecture in Italy 1250-1400
Yale University Press
1993-05-26
[18]
서적
Medieval Italy: An Encyclopedia
Routledge
[19]
서적
Lives of the Artists, 1550
https://archive.org/[...]
Oxford University Press
[20]
웹사이트
Cimabue
http://www.oxfordart[...]
www.oxfordartonline.com
2017-02-11
[21]
서적
Purgatorio
Anchor Books, Random House Inc.
[22]
서적
Purgatorio
Anchor Books, Random House
[23]
뉴스
Masterpiece found in French kitchen fetches €24m
https://www.bbc.com/[...]
2019-10-27
[24]
기타
[25]
뉴스
台所で発見のチマブーエ作品、仏ルーブルに所蔵へ 29億円で落札
https://www.cnn.co.j[...]
CNN
2023-11-18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