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시팀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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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시팀 사고는 1957년 9월 29일, 소련의 마야크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 발생한 방사능 누출 사고이다. 냉각 장치 고장으로 인한 폭발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으며, 동우랄 방사성 흔적(EURT)으로 불리는 광범위한 지역이 오염되었다. 사고는 극비에 부쳐졌으나, 1976년 소련 망명 과학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고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며, 오염된 지역은 현재까지도 방사능 위험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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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시팀 사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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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명칭 | 키시팀 사고 |
원어 명칭 | Кыштымская авария (러시아어) |
다른 명칭 | 마야크 사고 또는 오조르스크 사고 |
발생 시간 | 1957년 9월 29일 11:22 (UTC) |
발생 장소 | 마야크, 첼랴빈스크-40, 첼랴빈스크 주, 러시아 SFSR, 소비에트 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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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개요 | |
사고 유형 | INES 레벨 6 (심각한 사고) |
영향 | 27만 명 피해, 1만~1만 2천 명 대피, 최소 200명 방사선 병으로 사망 |
추가 영향 | 만성 방사선 증후군 66건 진단 |
관련 정보 | |
참고 | 카라차이 호수 오염 |
2.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은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1945년부터 1948년 사이, 마야크 핵연료 재처리 시설이 급하게 건설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핵 안전 및 환경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간주되었다. 초기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인근 테차 강 (이 강은 오비 강으로 흘러 북극해로 흘러들어갔다)과 카라차이 호에 방류하여 심각한 환경 오염을 야기했다.[38]
1953년경에는 액체 핵 폐기물 보관 시설이 추가되었다. 이 시설은 지하 8.2m 깊이에 콘크리트 기지에 설치된 강철 탱크로 구성되었다. 높은 수준의 방사능으로 인해 폐기물은 붕괴열을 통해 자체적으로 가열되었기 때문에, 20개의 탱크가 포함된 냉각기가 각 뱅크 주변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냉각기 작동 및 탱크 내용물 모니터링 시설은 부적절했다.[11]
2. 1. 마야크 핵 기술 시설
오조르스크시에 위치한 마야크 핵 기술 시설 (Маяк|마야크ru)은 원자 폭탄용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원자로 및 재처리 시설을 갖춘 플랜트였다. 1948년부터 건설되었으며, 플랜트 주변에는 기술자 거주 구역으로 암호명 '첼랴빈스크 65'라는 비밀 도시가 건설되었다.[34] 이 시설은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레벨 6 (대형 사고)으로 간주된다.[34]3. 폭발
1957년 9월 29일, 마야크 핵연료 재처리 시설 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 탱크의 냉각 시스템이 고장났다. 이로 인해 탱크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서 건조된 폐기물이 TNT 70~100톤에 해당하는 위력으로 폭발했다. 이 폭발로 160톤의 콘크리트 뚜껑이 날아가고,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다.[39]
폭발의 원인은 방사성 용액 보관에 대한 기술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메모에서 산업부 장관 E.P. 슬라브스키는 방사화학 공장의 책임자와 수석 엔지니어의 책임을 지적했다. 중형 기계 건설부의 명령에 따르면, 용기의 불충분한 냉각으로 인해 온도가 상승하여 내용물이 서로 반응하여 폭발했다. 이는 중앙 공장 연구소 (CPL)에서 수행한 실험에서 확인되었다. 공장 책임자 M. A. 데미아노비치는 사고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제대로 인지되지 않았거나 낮게 평가되었기 때문에, 방사성 폐기물 취급이 소홀했다. 액체 폐기물은 인근 테차 강(오비강 지류)이나 호수에 방류되었고, 주민들의 건강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액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농축하여 탱크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방사성 폐기물 탱크는 붕괴열로 인해 고온이 되므로 냉각 장치를 가동해야 하지만, 1957년 9월 29일 냉각 장치가 고장나 탱크 내부 온도가 급상승했다. 내부 조정 장치에서 발생한 불꽃으로 인해 용적 300 세제곱미터 탱크에 들어있던 질산염 결정과 재처리 잔사가 폭발했다. 이 폭발로 90Sr, 137Cs, 239Pu 등 반감기가 긴 동위 원소를 포함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으로 방출되었다. 핵폭발이 아닌 화학적 폭발이었지만, 그 규모는 TNT 화약 70t 상당이었다. 방사성 폐기물은 약 1,000m 상공까지 날아갔고 남서풍을 타고 북동 방향으로 폭 약 9km, 길이 105km의 띠 모양 지역을 오염시켰다. 약 1만 명이 대피했으며, 이들은 1주일에 0.025-0.5 시버트, 총 평균 0.52 시버트, 최고 0.72 시버트를 피폭당했다. 특히 사고 현장에 가까웠던 1,054명은 골수에 0.57 시버트를 피폭당했다.
마야크 회사와 관청에 따르면, 사고 후 전체적으로 400 PBq (4×1017 Bq)의 방사능이 2만 제곱 킬로미터 범위에 살포되었고, 27만 명이 높은 방사능에 노출되었다.
3. 1. 방사능 누출 및 확산
1957년 9월 29일, 마야크 재처리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광범위하게 누출 및 확산되었다. 폭발은 70~80톤의 방사성 폐기물이 담긴 탱크의 냉각 장치 고장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탱크 내부 온도가 상승하면서 건조된 폐기물이 TNT 70~100톤에 해당하는 비핵 폭발을 일으켰고, 160톤 콘크리트 뚜껑이 날아갔다.[39] 이 사고로 즉각적인 사망자는 없었지만, 2~50 메가퀴리(74~1850 페타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었다.[38][40]폭발 후 10~11시간 동안 방사성 구름은 북동쪽으로 300km 에서 350km 이동하면서 광범위한 지역을 오염시켰다.[38] 이 구름은 주로 세슘-137과 스트론튬-90을 포함하고 있었으며,[38] 800km2에서 20000km2 면적의 토지에 장기간 오염을 초래했다.[10] 이 지역은 '동우랄 방사성 흔적(EURT)'으로 불리게 되었다.[41] EURT에는 약 27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의 들판, 목초지, 저수지, 숲은 오염되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사고 이전, 마야크 공장에서는 폐기물을 테차 강에 버려왔으며, 이로 인해 강은 이미 심각하게 오염된 상태였다. 테차 강 인근 마을 주민들은 식수, 세탁, 목욕 등으로 강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1957년 사고 이후, 테차 강에 대한 폐기물 투기는 중단되었지만, 폐기물은 공장 근처 얕은 호수들에 방치되었다. 특히 카라차이 호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된 곳'으로 불릴 정도로 심각하게 오염되었는데,[8] 4.4 엑사베크렐의 고준위 액체 폐기물이 이 호수에 투기되었다.[14]
사고 직후, 오조르스크와 마야크 공장 노동자들은 오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었다. 방사성 물질은 자동차, 버스, 옷, 신발 등을 통해 도시로 유입되었고, 산업 시설과 건물, 차량, 철도 등이 오염되었다. 특히 레닌 거리와 숄나야 거리가 심하게 오염되었다. 이후 도시 당국은 오염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시행했다.
사고로 인해 20 MCi (800 PBq)의 방사능이 방출되었으며, 이 중 대부분은 사고 현장 근처에 정착했지만, 2 MCi (80 PBq)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퍼졌다.[19]
4. 경과
1957년 9월 29일 오후 4시 22분, 마야크 핵연료 재처리 시설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저장 탱크 냉각 시스템 고장으로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력은 최소 70톤의 TNT 폭약에 상당했으며, 이로 인해 160톤 콘크리트 슬래브가 날아가고 방사성 물질의 10분의 1이 공중으로 흩뿌려졌다. 폭발 후에는 1킬로미터 높이의 연기와 먼지 기둥이 솟아올라 주황색-적색 빛을 내며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16][17]
이 사고로 20 MCi (800 PBq)의 방사능이 방출되었고, 그중 2 MCi (80 PBq)는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확산되어 동우랄 방사성 흔적(EURT)으로 불리는 800km2~20000km2 지역을 오염시켰다.[10]
오조르스크와 마야크 공장 노동자들은 즉각 오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방사성 물질은 자동차, 버스, 옷, 신발 등을 통해 도시로 유입되었다. 이후 도시 당국은 오염 확산을 막기 위해 차량 및 버스 출입 통제, 검문소에서 신발 세척 등의 조치를 시행했다.[16][17]
사고 직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보낸 메모에서 산업부 장관 E.P. 슬라브스키는 방사화학 공장 책임자와 수석 엔지니어의 기술 규정 위반을 사고 원인으로 지적했다. 중형 기계 건설부 명령에서는 용기 냉각 부족으로 인한 온도 상승과 내용물 반응이 폭발을 야기했다고 언급했으며, 공장 책임자 M. A. 데미아노비치는 사고 책임을 지고 해임되었다.
사고 이후 대피가 이루어진 마을과 대피 기간, 평균 유효 선량 등가는 아래 표와 같다.
마을 | 인구 | 대피 기간 (일) | 평균 유효 선량 등가 (mSv) |
---|---|---|---|
베르디야니시 | 421 | 7–17 | 520 |
살틀리코보 | 219 | 7–14 | 520 |
갈리카예보 | 329 | 7–14 | 520 |
루스. 카라볼카 | 458 | 250 | 440 |
알라부가 | 486 | 255 | 120 |
유고-코네보 | 2,045 | 250 | 120 |
고르니 | 472 | 250 | 120 |
이기시 | 223 | 250 | 120 |
트로슈코보 | 81 | 250 | 120 |
보요브카 | 573 | 330 | 40 |
멜니코보 | 183 | 330 | 40 |
파디노 | 266 | 330 | 40 |
구세보 | 331 | 330 | 40 |
말. 샤부로보 | 75 | 330 | 40 |
스코리노보 | 170 | 330 | 40 |
브류하노보 | 89 | 330 | 40 |
크리보셰이노 | 372 | 670 | 40 |
멜리노 | 631 | 670 | 40 |
티기시 | 441 | 670 | 40 |
체티르키노 | 278 | 670 | 42 |
클류키노 | 346 | 670 | 40 |
키르피치키 | 160 | 7–14 | 5 |
4. 1. 은폐 및 폭로
마야크 재처리 공장은 비밀 시설이었기 때문에 사고 직후 지역 주민들은 사고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고 발생 1주일 후에야 영향 지역 주민 1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대피 이유는 설명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얼굴, 손 등 드러난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는 이상한 질병을 앓기 시작했다.[42] 이 사고는 조레스 메드베데프가 네이처에 폭로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소련 정부는 사망자 수 등 정보 প্রকাশ을 감추었으며, 이로 인해 대략 200여 명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졌다.[43] 사고 후, 오염된 지역의 흙을 파묻고 울타리를 쳐서 "지구의 무덤"이라고 불렀다.[44] 1968년, 소련 정부는 이 지역을 동우랄 자연 보호지역으로 위장하여 접근을 금지시켰다.
서방에서는 첼랴빈스크 주변에서 원자력 재난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련이 우랄 동쪽 지역의 식물, 동물, 생태계에 대한 방사능 영향 조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서방에서는 원자력 사고 발생을 인지했다. 정보 자유법을 통해 입수된 미국 중앙 정보국(CIA) 파일에 따르면,[45] CIA는 1957년 키시팀 사고를 알고 있었지만, 미국의 원자력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비밀로 유지했다. 1990년에 소련 정부가 기밀 해제한 관련 문서가 발견되었을 뿐이었다.[46]
사고는 소련의 군사 시설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극비에 부쳐졌으나, 1958년에는 "무언가 있었던 것 같다"는 정도의 정보가 미국에도 전해졌다. 사고 개요가 밝혀진 것은 1976년 11월, 소련에서 망명한 과학자 조레스 메드베데프가 영국의 과학 잡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논문을 게재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이후 『우랄의 핵 사고』(한국어 번역 있음)를 출판했다. 소련은 이러한 고발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원자력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는 있을 수 없으며, 단순한 억측이나 소련의 음모론으로 치부했다. 처음 유포된 소문에서는 핵폭발에 달하는 임계 사고가 일어났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1989년 9월 20일 글라스노스트(정보 공개)의 일환으로 외국 기자단(일본인 5명 포함)에게 자료가 공개될 때까지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지역 주민에게 방사능 오염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연방 정부가 출범한 1992년 전후였으며, 대책은 뒤늦게 시행되어 방사능 피해를 확대시켰다.
4. 2. 건강 피해 및 역학 조사
마야크 재처리 공장은 비밀 시설이었기 때문에 사고 직후에는 인근 주민들에게 사고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고 발생 1주일 후에야 영향 지역 주민 1만 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지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들에게 이상한 질병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희생자들의 얼굴, 손 등 노출된 신체 부위의 피부가 허물처럼 벗겨지는 증상이었다.[42] 이는 조레스 메드베데프가 네이처에 폭로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소련 정부는 사고 관련 정보를 은폐했으나, 대략 200여 명이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암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43] 1957년 사고 이전, 폐기물의 상당량이 테차 강에 버려져 강물을 식수 등으로 사용하던 강변 마을 주민들이 피해를 입었다. 특히 강변 주민들 사이에서 방사선 노출과 관련된 암 사망자가 49~55명으로 추정된다는 역학 조사 결과도 나왔다.[24] 사고와 가장 가까운 지역에서는 66건의 만성 방사선 증후군 사례가 진단되기도 했다.[26]
1950년대 당시 소련에서는 방사능의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거나 낮게 평가되었기 때문에, 방사성 폐기물 관리가 소홀했다. 이로 인해 액체 폐기물은 인근 테차 강이나 카라차이 호수 등에 방류되었고, 이는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
5. 현재 상태
오조르스크의 연간 방사선 수치는 약 0.1mSv로[32] 무해하지만,[33] 동우랄 방사능 추적(EURT) 지역은 여전히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다.[43] 2002년 연구에 따르면 마야크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와 테차 강변 주민들은 여전히 방사능의 영향을 받고 있다.[25]
5. 1. 추가 오염
1967년 봄, 가뭄으로 인해 방사성 폐기물 저장소였던 카라차이 호수 바닥이 드러나면서,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모래와 흙이 바람에 날려 오염 지역이 넓어졌다. 이로 인해 주변 주민들에게 새로운 건강 피해가 발생했다.[36]또한 1950년대에 테차 강에 투기된 방사성 폐기물은 대책 없이 하상에 침전된 상태로 남아, 해마다 하류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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