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소근진성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태안 소근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으로, 군과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축조되었다. 중종 9년(1514)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되었으며, 서해안 방비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의 둘레는 약 650m이며, 동문터 부근의 성벽 일부가 남아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태안군의 문화유산 - 태안 내파수도 해안지형
태안 내파수도 해안지형은 파도 작용으로 형성된 사취 및 역취가 발달하고 높은 원마도와 양호한 분급을 보이는 자갈로 구성된 희귀한 자연 현상으로, 서해안 연안의 퇴적 작용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 태안군의 문화유산 - 태안 백화산성
태안 백화산성은 태안반도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신라 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시대에 축성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폐성되었으나 봉수대는 유지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성벽과 우물터, 봉수대를 갖추어 봉수 통신에 활용되었다. - 태안군의 건축물 - 태안화력발전소
태안화력발전소는 안전 관리 소홀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 태안군의 건축물 - 태안시외버스터미널
태안시외버스터미널은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하며, 한양고속과 충남고속이 서울, 대전, 인천 방면 노선을 운행하고 수도권, 충청권, 호남권으로 가는 다양한 시외버스 노선이 운행되는 터미널이다. - 충청남도의 기념물 - 당진 신리 다블뤼주교유적지
당진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는 손자손 생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내포 지역 초기 천주교 공소이자 조선교구청으로 운영되었던 역사적 유적지로,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순교자들이 체포되어 순교하였으며 병인박해 순교자 32인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 충청남도의 기념물 - 보령 남포읍성
보령 남포읍성은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조선시대 읍성으로, 왜구 침입 방어를 위해 축조되었으며, 돌과 흙으로 쌓은 성벽과 방어 시설, 그리고 관아 건물이 남아 있어 당시 읍성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태안 소근진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위치 정보 | |
일반 정보 | |
이름 | 태안 소근진성 |
로마자 표기 | Taean Sogeunjinseong |
구분 | 충청남도 기념물 |
지정 번호 | 93 |
지정일 | 1993년 12월 31일 |
주소 |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소근리 산2번지 외 13필 |
시대 | 조선 시대 |
면적 | 6,347m2 |
필지 수 | 14필지 |
2. 역사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태안 소근진성은 조선 중종 때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된 읍성 중 하나이다.
2. 1. 축성 배경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했으며,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 곳에 성을 쌓게 되었다.2. 2. 축성 및 운영
태안 소근진성은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서북쪽으로 13.6km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으로, 조선 중종 9년(1514)에 축조되었다.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특히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왜구가 나타나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이 성은 서쪽으로 서해에 접하고 있으며, 동·남·북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였다. 성 둘레는 650m 정도인데 대부분 무너지고 현재는 동문터 부근만 남아있다. 동문터 북벽을 보면 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바닥 너비 8m, 바깥벽 높이 4.4m, 안쪽벽 높이 2m, 윗면 너비 1.7m이다. 성벽 안쪽은 군사들의 통행로로 사용하기 위해 흙을 덧대어 쌓아 바깥쪽에 비해 얕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중종 9년(1514)에 성이 만들어졌으며, 성 둘레가 2,165척(약 656m)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도 영조 당시 수군 실태가 기록되어 있어,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3. 구조
태안읍성은 조선 중종 9년(1514)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읍성이다. 고려 말부터 이 지역에 왜구가 자주 나타나 주민들의 피해가 컸기 때문에 축성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성 주위가 2,165척(약 656m)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에서도 영조 당시의 수군 실태를 기록하고 있어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3. 1. 위치 및 지형
태안읍성은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서북쪽으로 13.6km 떨어진 해안가에 있다. 서쪽으로는 서해에 접하고 있으며, 동·남·북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구축하였다.3. 2. 성벽 구조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으나, 동문터 부근에 남아있는 성벽을 통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동문터 북쪽에 남아있는 성벽은 바닥 너비 8m, 바깥벽 높이 4.4m, 안쪽벽 높이 2m, 윗면 너비 1.7m이다. 성벽 안쪽은 군사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흙을 덧대어 쌓았기 때문에 바깥쪽에 비해 상대적으로 얕다.3. 3. 보존 상태
성의 둘레는 650m 정도였으나, 대부분 무너지고 현재는 동문터 부근만 남아있다. 동문터 북벽에 남아 있는 성벽은 바닥 너비가 8m, 바깥벽 높이가 4.4m, 안쪽벽 높이가 2m, 윗면 너비가 1.7m이다. 성벽 안쪽은 군사 통로로 이용하기 위해 흙을 덧대어 쌓았기 때문에 바깥쪽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얕다.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