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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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석가모니불을 나타내는 철불이다. 머리에는 소라 모양의 머리칼과 육계가 있으며, 갸름한 얼굴에 삼도가 뚜렷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를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에서 고려 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신라 말부터 유행한 철불의 전통을 계승하여 불국사의 불상과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등 장신 계통의 불상을 이어받은 고려 시대 불상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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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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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 | |
이름 |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
로마자 표기 | Pyeongtaek Mangisa Cheoljo Yeoraejwasang |
영어 이름 | Iron Seated Buddha of Mangisa Temple, Pyeongtaek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보물 |
번호 | 567 |
지정일 | 1972년 7월 22일 |
주소 |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진위로 181-82 만기사 (동천리) |
시대 | 고려시대 |
소유자 | 만기사 |
수량 | 1구 |
2. 특징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나발/螺髮중국어을 붙여 놓았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肉髻중국어가 큼직하게 있으며,[1][2] 그 가운데에는 계주/髻珠중국어도 표현되어 있다.[1] 갸름한 얼굴에 알맞은 이목구비를 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중국어가 뚜렷하며, 귀는 긴 편이다.[1]
어깨는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2] 넓고 가슴이 발달되었고,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크고 넓은 결가부좌/結跏趺坐중국어한 다리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1]
법의/法衣중국어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2][1] 옷주름 표현은 왼쪽 어깨의 삼각형의 옷 접힘과 무릎 부분에 세 가닥으로 세로줄이 접혀 있는데, 약간 도식적으로 새겨졌다.[1] 어깨 부분에서는 크게 접어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고,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매우 형식적이다.[2]
손모양수인/手印중국어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중국어이다.[1]
2. 1. 머리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나발/螺髮중국어을 붙여 놓았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肉髻중국어가 큼직하게 있으며,[1][2] 그 가운데에는 계주/髻珠중국어도 표현되어 있다.[1] 갸름한 얼굴에 알맞은 이목구비를 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중국어가 뚜렷하며, 귀는 긴 편이다.[1]2. 2. 얼굴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나발/螺髮중국어]을 붙여 놓았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肉髻중국어]가 큼직하게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계주(髻珠)도 표현되어 있다.갸름한 얼굴에 알맞은 이목구비를 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가 뚜렷하며, 귀는 긴 편이다.
2. 3. 신체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나발/螺髮중국어을 붙여 놓았고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肉髻중국어가 큼직하게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계주/髻珠중국어도 표현되어 있다.갸름한 얼굴에 알맞은 이목구비를 하고, 목에는 3줄의 삼도/三道중국어가 뚜렷하며, 귀는 긴 편이다.
어깨는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고 가슴이 발달되었고, 상체가 약간 긴 편이나 크고 넓은 결가부좌/結跏趺坐중국어한 다리를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비례가 알맞은 편이어서 안정감이 있다.
법의/法衣중국어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은 왼쪽 어깨의 삼각형의 옷 접힘과 무릎 부분에 세 가닥으로 세로줄이 접혀 있는데, 약간 도식적으로 새겨졌다. 어깨 부분에서는 크게 접어 계단식의 주름을 만들었고,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매우 형식적이다.
손모양수인/手印중국어은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중국어이다.
2. 4. 법의 (옷)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치는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옷주름은 왼쪽 어깨의 삼각형 옷 접힘과 무릎 부분에 세 가닥 세로줄로 표현되었는데, 약간 도식적으로 새겨졌다. 어깨 부분에는 크게 접어 계단식 주름을 만들었고, 팔과 다리 부분에도 주름을 표현했으나 매우 형식적이다.2. 5. 수인 (손모양)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3. 양식 및 가치
이 불상은 신라 말부터 유행하던 철불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양식적으로는 불국사에 있는 9세기 무렵의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등 장신 계통의 불상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불상이다.[1]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이 잘 반영된 철불이다.[2][1]
3. 1. 양식적 특징
이 불상은 신라 말부터 유행하던 철불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양식적으로는 불국사에 있는 9세기 무렵의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등 장신 계통의 불상을 이어받은 고려시대 불상이다.[1]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이 잘 반영된 철불이다.[2][1]3. 2.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
이 불상은 신라 말부터 유행하던 철불의 전통을 계승하였다.[1] 양식적으로는 불국사에 있는 9세기 무렵의 금동아미타불좌상이나 금동비로자나불좌상,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 등 장신 계통의 불상을 이어받았다.[1] 당당한 형태이지만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이 잘 반영된 철불이다.[2][1]4. 현지 안내문
4. 1. 국문 설명
이 불상은 석가모니불을 나타낸 것으로 고려시대에 조성되었다.불상은 철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두껍게 금칠되어 있다. 이와 같은 철불은 통일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 초기에 유행하였다. 당시에 철은 값비싼 금동과 달리 생활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으며, 철불은 주로 지방 호족이나 평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불상의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지금의 양 손과 오른팔은 모두 새로 만들어 끼운 것으로, 원래의 것은 절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다.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전형적인 고려시대 불상 양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도식적인 옷주름의 표현과 단정해진 얼굴 등에서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볼 수 있다.
4. 2. 영문 설명
Iron Seated Buddha of Mangisa Temple, Pyeongtaek은 고려 시대(918-1392)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가모니 불상이다. 철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은 금으로 두껍게 씌워져 있다. 부처의 오른손은 땅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깨달음을 얻었음을 나타낸다. 오른팔과 양손은 새로 만들어졌으며, 원래의 것은 절 안에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 옷 주름은 당시의 표준 양식을 따라 정형화되어 있다.철불상은 고려 초기에 유행하였다. 철은 비싼 금이나 청동에 비해 구하기 쉬웠고, 불교가 융성하면서 지방 호족과 평민들에 의해 많은 철불상이 만들어졌다.
참조
[1]
간행물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平澤萬奇寺鐵造如來坐像)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문화재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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