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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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상은 불교에서 숭배의 대상이 되는 부처와 보살의 형상을 의미한다. 석가모니가 출가했을 당시에는 불상이 없었으나, 석가 사후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스투파, 법륜 등의 상징물을 숭배하다가 기원후 1~2세기경 북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제작되었다. 불상은 재료, 형태, 자세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며, 지역과 시대에 따라 특징적인 양식을 보인다. 불상의 제작 기법으로는 목조, 건칠조, 소조 등이 있으며, 법량이라고 불리는 각 부분의 치수를 통해 불상의 크기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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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상 |
|---|
2. 기원
석가모니가 출세했을 당시 인도는 브라만교가 주류였고, 브라만교는 제사를 중시하며 신상을 만들지 않았다. 원시 불교 역시 이러한 사회적 배경과 사성제, 십이연기 등 자연의 섭리를 중시하는 철학적 측면이 강했기에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석가모니는 "자등명 법등명"(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이라는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숭배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러나 석가모니 입멸 후, 그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석가모니의 모습을 직접 표현하는 대신 스투파(탑), 법륜, 불족석(석가의 발자취를 새긴 돌), 보리수 등 상징적인 형태로 석가모니를 예배했다. 초기 불교 미술에는 석가의 생애를 표현한 부조 등이 있지만, 석가모니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발자취, 보리수, 대좌 등으로 암시되었다.[9]
2. 1. 인도 불상의 기원
초기 불교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지했기 때문에 불상을 만들지 않았다. 석가모니 사후, 그의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스투파, 법륜, 불족적, 보리수 등 상징적인 조형물을 사용했다.[9]

기원후 1세기경,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 불상이 처음 제작되기 시작했다.[10] 대승불교의 발달은 불상 제작을 더욱 촉진시켰다. 대승불교에서는 이타행과 자비정신을 강조하며, 보살 사상이 등장했다. 이에 따라 아촉불, 아미타불, 미륵불, 약사여래 등 다양한 불상과 보살상이 제작되었다.[10]
간다라에서는 인도 문화를 기반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적인 풍모를 가진 불상이 만들어졌다. 점차 석가의 수행 시대를 나타내는 왕관 보살이나 미륵보살을 나타내는 묶은 머리(속발) 보살 등의 보살상이 생겨나 다양한 불상이 등장했다. 간다라 불상의 특징은 이마와 미간에 백호가 있으며, 뒤에 둥근 원반 모양의 광배를 갖춘 점 등이 꼽힌다.[10]
마투라의 불상은 어깨가 떡 벌어져 힘차고, 양감에 풍부한 불상이 만들어졌다. 이는 더욱 세련되어 굽타 왕조 시대의 완성된 불상으로 이어졌다.[10]
2. 2. 한국 불상의 기원
한국에 불상이 처음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인 4세기 후반으로, 불교의 전래와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 고구려는 372년에 전진으로부터, 백제는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불상 역시 함께 들어왔다.[11] 신라는 이보다 늦은 528년에 불교를 공인하였으나, 그 이전부터 고구려를 통해 불상이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삼국시대 초기에는 중국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점차 각국의 특색을 반영한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2. 2. 1. 삼국시대의 불상
고구려는 삼국 중 지리적 조건으로 가장 먼저 불교를 수용하여 불상 제작을 시작했다. 소수림왕 3년(372년)에 전진 왕 부견이 중 순도를 통해 불상을 전달했다.[11] 그러나 현존하는 초기 불상은 드물며, 6세기경의 금동불이나 진흙으로 만든 불상인 이불(泥佛)을 통해 그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11] 본격적인 불상 제작은 장수왕 15년(427년) 평양 천도 이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늦은 침류왕 원년(384년)에 동진으로부터 호승(胡僧)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를 받아들여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11] 백제 불상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것이 특징이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같은 마애불이 대표적이다.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은 법흥왕 15년(528년)에 양나라를 통해 불교를 공인했지만, 그보다 약 1세기 앞선 눌지왕 때부터 북방에서 고구려를 통해 불교가 민간에 보급되었던 흔적이 보인다.[11] 신라는 금동반가사유상과 같은 독창적인 불상을 제작했으며,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은 신라 불교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2. 2. 2. 고려시대의 불상
고려의 불교는 신라와 달리 도교적인 요소가 섞여 풍수설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불상은 예배 대상으로서의 관심보다는 선종 불교의 유행과 사경의 성행으로 인해 조형 정신이 해이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신라 시대의 숭고한 신격미를 추구했던 것과는 달리, 사실 기법만을 추종하다 결국에는 단순한 인형과 같은 형태로 전락하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조각 기술이 떨어졌으며, 특히 대형 조각에서 퇴화 현상이 두드러졌다.[12]초기에는 신라 말의 경향을 이어받아 철불이 많이 만들어졌고, 대형 석불과 마애불도 제작되었다. 또한, 소불, 목불, 소형 동불도 꾸준히 만들어졌다. 재료가 귀해 동불 제작은 신라에 비해 줄었지만, 협저칠불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 불상의 특징 중 하나이다.[12]
고려 불상의 양식은 크게 3기로 구분할 수 있다.
- 제1기: 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부 지역에서는 새로운 자연주의 양식이 나타났다. 영남 지방에서는 신라의 추상적인 경향이 이어져 경직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등 상반된 양식이 공존했다. 여래형, 보살형이 주를 이루었으며, 금동, 석조, 소조 등 다양한 재료가 사용되었다. 특히, 거대한 석불이 조성되고, 신라 말부터 이어져 온 철불 주조, 좌상이 많이 만들어진 점이 특징이다.[13]
- 제2기: 송나라 불상의 영향을 받아 사실적인 표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려도경》이나 《고려사》의 기록에서도 송나라 불상 양식이 고려 조각에 영향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13]
- 제3기: 13세기 초 몽골(원)의 침입 이후, 자연주의 양식은 쇠퇴하고 원나라의 영향으로 소형 불상이 유행했다.[13]
3. 불상의 종류
불상은 제작 재료와 형태, 자세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나뉜다. 재료에 따른 분류는 하위 섹션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형태에 따른 분류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인 여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 분노의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명왕, 불법을 수호하는 천부 등이 있다. 자세에 따른 분류로는 입상, 좌상, 의상, 반가상, 열반상 등이 있다.
불상의 이미지는 서기 1세기경 북인도에서 처음 등장하여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발전했다. 간다라 미술은 고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아 해부학적으로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부처의 모습을 담은 그레코-불교 미술로 이어졌다. 가장 영향력 있는 불교 미술 중 하나는 굽타 미술과 이후의 아마라바티 양식이었다. 부처의 묘사는 인도를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인도, 스리랑카, 자바의 샤일렌드라 및 캄보디아 미술의 불상은 대개 균형 잡힌 모습을 묘사하지만, 때로는 부처가 고행을 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수척한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8]
포대화상은 뚱뚱하고 행복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거의 항상 미소 짓거나 웃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고타마 붓다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미륵 즉 미래의 부처와 관련이 있다.[8]
3. 1. 재료에 따른 분류
불상은 사용된 재질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8]| 종류 | 설명 |
|---|---|
| 석불 | 돌을 조각하여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마애불 | 바위를 새겨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목불 |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주상 | 금속을 부어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금동불 | 구리를 부어 만든 후 금으로 도금을 한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철불 | 철을 부어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화상 | 천이나 종이에 그린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토상 | 흙으로 빚어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 이불 | 진흙으로 빚어 만든 부처와 보살의 형상 |
3. 2. 형태에 따른 분류
불상은 형태에 따라 다음과 같이 나뉜다.[8]- '''여래''':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장식이 없고 단순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 '''보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존재이다. 화려한 장신구와 옷차림을 하고 있다.
- '''명왕''': 밀교에서 신앙하는 분노의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이다.
- '''천부''':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다.
- '''나한''': 아라한과를 얻은 불제자이다.
- '''조사(祖師)''': 불교의 종파를 세우거나 발전시킨 고승이다.
3. 3. 자세에 따른 분류
불상은 그 자세에 따라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뉜다.4. 불상의 특징
불상은 불교 경전에 묘사된 부처의 신체적 특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는 문화적, 지역적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일반적인 지침이 있다.[1] 불상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균형 있게 길고, 코는 길고 매부리코이며, 귓불은 늘어져 있다. 또한 정수리가 융기되어 있고, 어깨가 넓은 특징을 보인다.
늘어진 귓불은 석가가 왕자 시절 화려한 보석을 착용했던 흔적이다. 머리 위 융기는 우쉬니샤라고 하며, 영성, 지혜, 깨달음을 나타낸다.[1]
석가가 출가했을 당시 인도 사회는 브라만교가 주류였으며, 브라만교는 제사를 중심으로 하고 신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당시 인도에는 불교 외에도 여러 종교가 있었지만, 존상을 만들어 모시는 습관은 없었다. 따라서 원시 불교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의 영향을 받았다.
원시 불교는 종교적 측면도 있었지만, 사성제나 십이연기와 같이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는 철학적 측면이 더 강했다. 석가는 "자등명 법등명"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이라는 기본적인 이념에서, 자신이 근본적인 신앙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석가가 입멸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석가의 상징으로 스투파(석가의 유골을 모신 것), 법륜(붓다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는 모습을 바퀴로 표현한 것), 불족석(석가의 발자취를 새긴 돌), 보리수, 불사리 등, 형태가 있는 것을 예배했다. 인도의 초기 불교 미술에는 불전도(석가의 생애를 나타낸 부조 등)가 다수 있지만, 석가의 모습은 표현되지 않고, 발자취, 보리수, 대좌 등으로 그 존재가 암시되었다.
불상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불상의 이미지는 서기 1세기경 북인도에서 처음 등장하여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발전했다.
4. 1. 공통적인 특징
불상은 불교 경전에 묘사된 부처의 신체적 특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에는 문화적, 지역적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일반적인 지침이 있다.[1]- 손가락과 발가락이 균형 있게 길다.
- 길고 매부리코
- 늘어진 귓불
- 정수리 융기
- 넓은 어깨
늘어진 귓불은 석가가 화려한 보석을 착용했던 왕자 시절의 흔적이다. 머리 위 융기는 우쉬니샤이며, 영성, 지혜, 깨달음을 나타낸다.[1]
원래 석가가 출세했을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는 브라만교가 주류였으며, 브라만교에서는 제사를 중심으로 하고 신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당시 인도에는 불교 외에도 육사외도 등의 여러 종교가 있었지만, 어느 것도 존상을 만들어 모시는 습관은 없었다. 따라서 원시 불교도 이러한 사회적 배경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원시 불교는 종교적 측면도 있었지만, 사성제나 십이연기와 같이 자연의 섭리를 관조하는 철학적 측면이 더 강했다. 게다가 석가는 "자등명 법등명" (자신을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으라)이라는 기본적인 이념에서, 자신이 근본적인 신앙 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석가가 입멸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다. 붓다가 된 위대한 석가의 모습은 더 이상 사람의 손으로 표현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석가의 상징으로 스투파(석가의 유골을 모신 것), 법륜(붓다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는 모습을 바퀴로 표현한 것)이나, 불족석(석가의 발자취를 새긴 돌), 보리수, 불사리 등, 형태가 있는 것을 예배했다. 인도의 초기 불교 미술에는 불전도(석가의 생애를 나타낸 부조 등)가 다수 있지만, 석가의 모습은 표현되지 않고, 발자취, 보리수, 대좌 등으로 그 존재가 암시될 뿐이었다.
4. 2. 지역별 특징
불상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불상의 이미지는 서기 1세기경 북인도에서 처음 등장하여 간다라와 마투라에서 발전했다.간다라에서는 인도 문화를 기반으로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적인 풍모를 가진 불상이 만들어졌다.[4] 점차 석가의 수행 시대를 나타내는 왕관 보살이나 미륵보살을 나타내는 묶은 머리(속발) 보살 등의 보살상이 생겨나 다양한 불상이 등장하였다. 간다라 불상의 특징은 이마와 미간에 백호가 있으며, 뒤에 둥근 원반 모양의 광배를 갖춘 점 등이 꼽힌다.
간다라에서는 불탑 주변에 불상을 안치하는 불감이 만들어졌는데, 시대가 지나고 중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면서 불탑과 불상을 모시는 사당이 탄생한다. 그리하여 불상 숭배가 불탑 숭배보다 흥성하게 된다. 간다라 불교 미술은 불탑과 석굴 사원과 함께 간다라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로 전해졌다.
'''간다라 불교 미술의 시대적 배경'''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군이 페르시아를 넘어 북인도까지 제압하여 그리스 문화를 들여왔다. 그 후에도 기원전 2세기에는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그리스인 지배를 받는 등 서방 문화의 유입이 계속되었다. 즉, 간다라의 불교 미술은 그리스 미술, 페르시아 문화에 불교가 융합된 결과였다.
마투라의 불상은 어깨가 떡 벌어져 힘차고, 양감에 풍부한 불상이 만들어졌다. 이는 더욱 세련되어 굽타 왕조 시대의 완성된 불상으로 이어졌다.
4. 3. 무드라(Mudra, 인상)
무드라는 불상의 손 모양으로, 특정한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동작이다. 불상의 조각상이나 그림은 항상 무드라를 묘사하는데, 그 종류는 매우 많지만 몇 가지는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일반적이다.[2] 대승 불교에서는 5명의 초월적인 부처, 즉 "디야니 부처" 또는 "판차 부처"로 동일시되는 인물의 묘사가 있어, 무드라의 식별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2]- '''법륜인(Dharmachakra Buddha Mudra) – 비로자나불''': 두 손을 가슴에 대고 각 손의 엄지와 검지 끝을 맞댄 모습으로, 가르침을 나타낸다.
- '''항마촉지인(Bhumisparsa Buddha Mudra) – 아촉불''': "땅을 만지는" 무드라로,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어머니 대지를 부른 것을 나타낸다. 오른손으로 땅을 만지는 모습으로 표현되며, 마라비자야 자세와 관련이 있다.
- '''시무외인(Varada Buddha Mudra) – 보생불''':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근처에서 펴고, 왼손은 바루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산스크리트어로 Varada는 "은혜를 베푸는 것"을 의미하며, 오른손바닥을 은혜를 받는 사람을 향하게 하고 손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는 제스처로 표현된다.
- '''선정인(Dhyana Buddha Mudra) – 아미타불''': 왼손을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여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을 왼손 위에 올려 놓은 모습이며(손바닥도 위로 향함), 두 엄지손가락이 서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다. 때때로 손바닥 위에 바루가 놓여 있기도 하다. 깊은 명상의 상태와 지혜와 자비의 통일을 나타낸다.
- '''시무외인(Abhaya Buddha Mudra) – 불공성취불''': 두려움 없음과 보호를 나타내는 손짓이다. 보통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고 모든 손가락이 위로 뻗은 왼손으로 나타낸다. 설법의 행위를 해석한 것으로, 보살의 길을 따르면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눕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처의 이미지는 그의 죽음에서의 마지막 열반으로의 ''파리니르바나''(떠남)을 나타낸다. 다른 경우에는 다양한 상징적인 물건을 들고 있거나 상징적인 무드라(몸짓)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5. 불상의 제작 기법
불상을 만드는 기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무를 깎아 만드는 목조(木彫), 흙을 빚어 만드는 소조(塑造), 옻칠을 이용하는 건칠조(乾漆造) 등 다양한 기법이 사용된다. 또한 금박을 입히는 절금, 수정으로 눈을 표현하는 옥안 등의 장식 기법도 있다.
5. 1. 목조(木彫)
나무를 조각하여 불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일본 불상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아스카 시대에는 주로 녹나무가 사용되었다. 예외적으로 아카마츠 재료를 사용한 교토 고류지의 미륵보살 반가상이 있지만, 이 상의 제작지에 대해서는 일본과 한반도 양쪽 설이 있다.[6] 나라 시대에는 동조, 건칠조, 소조 불상이 많이 제작되었고, 건칠을 병용하지 않은 순수한 목조상은 오히려 소수였다. 나라 도쇼다이지 강당에 안치되어 있던 목조 불상군은 가야나무 재료가 사용되었고, 간진 주변 장인의 참가가 예상된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요세기(寄木造)가 주류가 되면서, 히노키를 비롯해 가츠라나 느티나무 등,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었다.[6] 사용되는 목재는 신목(神木) 등의 신성한 나무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어, 고대부터의 애니미즘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다.5. 2. 건칠조(乾漆造)
- 탈활건칠조 - 찰흙으로 만든 원형 위에 삼베를 옻칠로 덧대어 조형한 후, 나중에 내부의 찰흙을 제거하는 기법이다. 흥복사 팔부중상이 이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 목심건칠조
5. 3. 소조(塑造)
소조는 찰흙을 쌓아 올려 불상을 만드는 기법이다.5. 4. 장식 기법
6. 불상의 법량(法量)
불상의 높이, 어깨 너비 등 각 부분의 치수를 통틀어 "법량"이라고 부른다. 석가의 신장이라고 여겨지는 크기로 만들어진 불상은 장륙불이라고 부른다.
장륙불보다 큰 불상은 대불이라고 부르며, 그중에서도 특히 거대한 것은 거대불이라고 부른다.
참조
[1]
웹사이트
Iconography of the Buddha
http://www.vam.ac.uk[...]
2014-02-18
[2]
웹사이트
Buddha Mudra: Meanings of Five Dhyani Buddha Mudras
https://shakyahandic[...]
2020-08-21
[3]
서적
ケンペルと徳川綱吉 ドイツ人医師と将軍との交流
中央公論社
1994
[4]
서적
仏像の起源
岩波書店
1967
[5]
웹사이트
明王
http://www10.ocn.ne.[...]
2019-04-22
[6]
서적
成城学園創立100周年記念シンポジウム報告書 仏像の樹種から考える 古代一木彫像の謎
東京美術
2015-12-25
[7]
서적
日本の美術202 一木造と寄木造
至文堂
1983
[8]
사전
佛像(불상)
http://buddha.donggu[...]
동국역경원
2011-07-06
[9]
백과사전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불교신앙의 보급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10]
백과사전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대승불교의 흥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11]
백과사전
한국미술 > 한국미술의 흐름 > 고구려의 미술 > 고구려의 조각 > 불상의 전래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12]
백과사전
고려 불상의 특색
http://donation.enc.[...]
글로벌세계대백과2
[13]
백과사전
고려 불상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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