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빌라스 바나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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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빌라스 바나가스는 리투아니아의 아이스 댄싱 선수로, 3세에 스케이트를 시작하여 남자 싱글 선수로 6번의 전국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소련 군 복무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스 댄서로 전향하여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지도 아래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즈코와 파트너를 이루었다. 소련 붕괴 후 리투아니아를 대표하여 1992년부터 2006년까지 5번의 동계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2000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아이스 쇼에 출연하여 리투아니아 정부로부터 훈장과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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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빌라스 바나가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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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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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리투아니아 |
출생일 | 1970년 7월 23일 |
출생지 | 샤울랴이, 리투아니아 |
키 | 1.80m |
스케이팅 시작 | 1974년 |
은퇴 | 2002년, 2006년 |
소속 클럽 | Sports School Baltu Ainiai |
이전 훈련 장소 | 카우나스 모스크바 |
파트너 | |
파트너 |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츠코 |
코치 | |
이전 코치 | 엘레나 마슬렌니코바, 이고르 슈필반트, 로스티슬라프 시니친, 엘레나 차이콥스카야, 릴리야 바나기에네, 아나톨리 페투호프, 베티 캘러웨이, 타티아나 타라소바, 나탈리아 두보바, 나탈리아 리니추크 |
안무가 | |
이전 안무가 | 엘레나 마슬렌니코바, ギン타라스 스비스트나비시우스, Vasily Kleimenov, 엘레나 차이콥스카야, 크리스토퍼 딘, 제인 토빌 |
기록 | |
아이스 댄싱 점수 | 196.18 |
아이스 댄싱 날짜 | 2006 유럽 선수권 대회 |
CD 점수 | 38.34 |
CD 날짜 | 2006 유럽 선수권 대회 |
OD 점수 | 59.60 |
OD 날짜 | 2006 세계 선수권 대회 |
FD 점수 | 100.89 |
FD 날짜 | 2006 유럽 선수권 대회 |
메달 | |
동메달 | 2000 니스 아이스 댄싱 |
동메달 | 2006 리옹 아이스 댄싱 |
동메달 | 2000 빈 아이스 댄싱 |
동메달 | 2001-2002 키치너 아이스 댄싱 |
동메달 | 2000-2001 도쿄 아이스 댄싱 |
동메달 | 1999-2000 리옹 아이스 댄싱 |
2. 경력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즈코와 함께 아이스 댄스 종목에 출전하여, 1991-1992 시즌부터 2005-2006 시즌까지 주요 국제 대회에 참가했다. 올림픽에 5회 출전하여 1992년 16위, 1994년 12위, 1998년 8위, 2002년 5위, 2006년 7위를 기록했다.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는 2000년에 동메달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2000년과 2006년에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3번 동메달을 땄다.
1999년, 드로비아즈코와 바나가스는 엘레나 차이코프스카야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훈련을 받았고, 릴리야 바나기에네와 아나톨리 페투호프의 코치를 받기도 했다. 2001-2002 올림픽 시즌 이후 은퇴했다가 2005년에 복귀하여 다섯 번의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이자 유일한 피겨 스케이터가 되었다. 2006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마치고 다시 은퇴했다.
현역 시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와 캐나다 페어는 넘어졌는데,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것은 이상하다"라고 발언하거나, 200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항의했고, 불가리아의 덴코바&스타비스키 조에 대해 "리투아니아 조가 3위여야 한다"는 서명 운동이 일어날 정도의 논란이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이던 2022년 여름, 바나가스는 크렘린이 주최한 소치에서 드로비아즈코와 함께 아이스 발레 ''백조의 호수''에 출연했다.[1] 2022년 8월 10일, 리투아니아 대통령 기타나스 나우세다는 이 사건을 이유로 두 스케이터에게 수여되었던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을 박탈하는 칙령에 서명했다.[1]
2. 1. 초기 경력
바나가스는 3세에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 릴리야 바나기에네는 리투아니아 국가대표 스케이팅 코치였다. 바나가스는 남자 싱글 부문에서 리투아니아 전국 선수권 대회 우승을 6번 차지했다. 18세에 소련 군대에 징집되어 러시아 SFSR 모스크바로 보내졌다. 군인이 되거나 전업 스케이터가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지시를 받고 아이스 댄서가 되기로 결정했다.타티아나 타라소바는 바나가스와 러시아 아이스 댄서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즈코를 모스크바에서 짝지어 주었다. 소련 붕괴 후, 그들은 리투아니아를 대표하기로 결정했다. 바나가스는 "처음에는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마찰이 많아서 어려웠습니다. 리타(마르가리타 드로비아즈코)가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 카우나스로 이주하여 엘레나 마슬레니코바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베티 캘러웨이, 제인 토빌, 크리스토퍼 딘과 함께 잉글랜드에서도 훈련을 받았다.
2. 2. 드로비아즈코와의 파트너십
타티아나 타라소바는 모스크바에서 바나가스와 러시아 아이스 댄서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즈코를 짝을 지어주었다. 소련 붕괴 후 그들은 리투아니아를 대표하기로 결정했다. 바나가스는 "처음에는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사이의 마찰이 많아서 어려웠습니다. 리타가 러시아인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야기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리투아니아 카우나스로 이주하여 엘레나 마슬레니코바와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베티 캘러웨이, 제인 토빌, 크리스토퍼 딘과 함께 잉글랜드에서도 훈련을 시작했다.1999년, 드로비아즈코와 바나가스는 카우나스에서 마슬레니코바와 계속 훈련하면서 엘레나 차이코프스카야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한 릴리야 바나기에네와 아나톨리 페투호프의 코치를 받았다. 드로비아즈코와 바나가스는 2001–2002 올림픽 시즌 이후 선수 생활을 은퇴했지만, 다섯 번째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2005년에 선수 생활에 복귀했다. 2005–2006 시즌을 준비하면서, 그들은 미국, 독일, 러시아, 리투아니아에서 마슬레니코바, 로스티슬라프 시니친, 이고르 슈필반트, 마리나 주에바, 긴타라스 스비스투나비치우스, 데이비드 리우와 함께 훈련했다. 드로비아즈코와 바나가스는 다섯 번의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이자 유일한 피겨 스케이터가 되었다. 그들은 2006년 세계 선수권 대회를 마치고 다시 은퇴했다.
그들의 안무가로는 엘레나 마슬레니코바, 제인 토빌과 크리스토퍼 딘, 엘레나 차이코프스카야, 타티아나 포메란체바, 엘레나 홀리나, 유리 푸자코프, 바실리 클레이메노프, 그리고 긴타라스 스비스투나비치우스가 있었다.
1990년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츠코와 페어를 결성했다. 1992년, 처음 출전한 유럽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15위,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는 16위,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는 17위에 머물렀다. 1994년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는 12위를 기록했다.
1995-1996 시즌부터 ISU 그랑프리 시리즈(당시 명칭은 ISU 챔피언 시리즈)에 출전했으며, 처음 개최된 스케이트 이스라엘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1998년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는 8위, 같은 해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1998-1999 시즌에는 스케이트 캐나다, 네이션스 컵, NHK 트로피에서 3개 대회 연속으로 시상대에 올랐고, 1998/1999 ISU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했다. 1999-2000 시즌에는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ISU 그랑프리 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했고, 1999/2000 ISU 그랑프리 파이널, 2000년 유럽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2000년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에서 각각 3위를 기록하며, 리투아니아 선수 최초로 메달을 획득했다. 같은 해 6월, 파트너인 마르가리타 드로비아츠코와 결혼했다.
2002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는 5위에 머물렀다. 이후 아마추어에서 은퇴하고 프로 스케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5-2006 시즌에 아마추어로 복귀하여,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했지만 7위에 그쳤다. 2006년 세계 피겨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이후 다시 아마추어에서 은퇴하여 프로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이탈리아와 캐나다 페어는 넘어졌는데,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것은 이상하다"라고 발언하거나, 200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항의했고, 불가리아의 덴코바&스타비스키 조에 대해 "리투아니아 조가 3위여야 한다"는 서명 운동이 일어날 정도의 소란이 있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 파트너인 드로비아츠코와 타티아나 나프카가 주최한 모스크바 아이스 쇼 "백조의 호수"에 출연했다. 같은 해 8월 10일, 이 사건을 이유로 리투아니아 정부는 바나가스와 드로비아츠코로부터 리투아니아 대공 게디미나스 훈장과 시민권을 박탈했다.[1]
2. 3. 주요 경기 성적
36.5259.6
99.75
''195.87
35.23
52.79
95.19
''183.21
38.34
56.95
''100.89
''196.18
36.63
56.29
91.3
''184.22
34.77
55.32
92.1
''18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