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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최고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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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군최고사령부는 독일 해군의 최고 사령부로, 해군 최고 사령관이 지휘했다. 1935년 에리히 레더가 초대 해군최고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카를 되니츠,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발터 바르체하가 그 뒤를 이었다. 해군최고사령부는 해군 최고 사령관, 해전 사령부, 해군 사령부 등 여러 부서로 구성되었으며, 해군의 작전, 무기 개발, 행정 등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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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최고사령부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개요
번역해군 최고 사령부
약칭OKM
조직
창설1936년 1월 11일
해체1945년 7월 22일
군종독일 해군
본부셸 하우스
지휘부
사령관독일 해군 총사령관 목록 참조
관련 정보
상위 부대국방군 최고 사령부

2. 역대 지휘관

해군최고사령부(OKM)의 총수 직함은 '''해군최고지휘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de)이라고 했다. 초대 최고지휘관인 에리히 레더 대제독은 바렌츠 해전 패배의 책임을 지고 1943년 1월 30일 사임하였다. 사임 후 그는 해군 최고참으로서 예우 차원에서 실권 없는 전쟁해군 제독총감(Admiralinspekteur der Kriegsmarinede) 직책에 임명되었다. 레더의 뒤를 이어 카를 되니츠, 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 발터 바르체하가 차례로 지휘관직을 맡았다.

2. 1. 해군최고사령관 목록

OKM의 총수 직함은 '''해군최고지휘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de)이라고 했다.

순서초상화계급이름재임 시작재임 종료
1--Großadmiral|대제독de에리히 레더1935년 6월 1일1943년 1월 30일
2--Großadmiral|대제독de카를 되니츠1943년 1월 30일1945년 5월 1일
3--Generaladmiral|상급제독de한스게오르크 폰 프리데부르크1945년 5월 1일1945년 5월 23일
4--Generaladmiral|상급제독de발터 바르체하1945년 5월 23일1945년 7월 22일



2. 2. 해군총사령부 참모장

이름계급재임 기간
헤르만 덴쉬해군 소장1936년 1월 - 1936년 9월
헤르만 모츠해군 대령/해군 소장1936년 10월 - 1939년 1월
에리히 슐테 뫼팅해군 소장1939년 1월 - 1944년 2월
한스 폰 다비드손해군 대령1944년 2월 - 1945년 4월
하인리히 게를라흐해군 대령1945년 5월


3. 조직

해군최고사령부(OKM)는 최고 사령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오버베페ehlshaber der Marinede, OBdM)과 그의 직속 참모진을 정점으로 하여, 해상 작전, 무기 개발, 행정, 함선 건조 등 각 분야를 담당하는 여러 주요 부서로 구성되었다. 또한 크릭스마리네 함대 사령관( Flottenchef|플로텐셰프de ) 역시 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3. 1. 주요 부서

해군최고사령부(OKM)는 크게 6개의 부서로 나뉘었다.

  • 해군 최고 사령관(Oberbefehlshaber der Marine|오버베페ehlshaber der Marinede, OBdM): 최고 사령관과 그의 참모진으로 구성되었다. 국방군 최고 사령부(OKW)와의 연락, 계획 수립, 기술, 공학, 의학, 경제, 연구, 선전 및 인사 관련 업무를 총괄했다.
  • 해전 사령부(Seekriegsleitung|제크릭스라이퉁de, SKL): 1937년 4월 1일에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해군 최고 사령관(OBdM) 및 해군 사령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운영되었다. 당시 OBdM은 SKL의 최고 사령관을 겸임했고, 해군 사령부의 최고 책임자는 SKL 참모장 역할을 함께 수행했다. 그러나 1939년 8월 23일부터 두 조직은 분리되었고, 해군 사령부는 SKL에 종속되어 자체적인 최고 책임자와 참모진을 갖게 되었다. SKL은 해상 전투의 계획과 실행을 주도하고 해군력 배치를 지휘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전쟁 중에는 그 권한이 독일 국내 해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제한되었으며, 1943년 2월 되니츠가 OBdM으로 임명된 이후에는 U보트 작전에 대한 통제권도 상실했다. 1944년 5월 1일부로 SKL 참모장은 '해전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부서는 수송선, 봉쇄 돌파선, 보조 순양함 및 보급 선박으로 운용되는 함대 부대의 지휘도 담당했다.
  • 해군 사령부(Marinekommandoamt|마리네코만도암트de): 해군최고사령부(OKM)가 설립된 1936년 1월 11일에 함께 만들어졌지만, 그 뿌리는 1920년부터 존재했던 '해군 지도부'에 두고 있다. 처음에는 해군 최고 사령관(OBdM)에게 직접 보고하는 체계였으며, 1937년 4월부터는 해군 사령부의 최고 책임자가 SKL 참모장을 겸임했다. 1939년 중반, 두 조직이 분리되면서 해군 사령부는 SKL 참모장에게 종속되는 새로운 최고 책임자를 맞이했다. 1942년부터는 '병참 참모부'(Quartiermeisteramt|크바르티어마이스터암트de)라는 이름으로도 불렸고, 1943년 4월 20일에는 최고 책임자의 명칭이 '해군 병참총장'(Admiralquartiermeister|아트미랄크바르티어마이스터de)으로 변경되었다. 최종적으로 1944년 5월 1일, 이 부서는 공식적으로 '병참 참모부'로 명칭이 바뀌었다. 해군 사령부는 해상 작전 지원 외에도 인력 관리, 보급, 정보 수집, 훈련, 해안 방어 및 대공 방어에 대한 책임을 맡았다.
  • 해군 무기 부(Marinewaffenamt|마리네바펜암트de): 1934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1939년에는 '해군 무기 총괄 부'(Marinewaffenhauptamt|마리네바펜하웁트암트de)로, 1944년에는 '해군 군비'(Kriegsmarine-Rüstung|크릭스마리네-뤼스퉁d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 부서는 모든 종류의 해군 무기 개발, 시험, 생산 과정을 감독했으며, 전자전 및 무선 통신 기술 분야도 담당했다.
  • 해군 일반 부(Allgemeines Marineamt|알게마이네스 마리네암트de): 1936년 1월에 설립되었다. 1939년 11월에는 '해군 일반 총괄 부'(Allgemeine Marinehauptamt|알게마이네 마리네하웁트암트de)로, 1944년에는 '해군 방위'(Kriegsmarine-Wehr|크릭스마리네-베어de)로 다시 명칭이 변경되었다. 주로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했으며, 법률, 의학, 경제, 건설 및 수출 관련 부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 건설 부(Konstruktionsamt|콘스트룩치온스암트de): 1936년에 설립되었다. 1939년에는 '군함 건설 부'(Amt Kriegsschiffsbau|암트 크릭스시프스바우de)로, 같은 해 말에는 '군함 건설 총괄 부'(Hauptamt Kriegsschiffsbau|하웁트암트 크릭스시프스바우de)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44년에 다시 원래 이름인 건설 부로 돌아왔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부서는 해군을 위한 새로운 함선의 건조를 책임졌으며, 선박 및 U보트의 설계와 엔지니어링을 담당하고, 부품 공급업체 및 조선소와의 협력, 군수 및 전쟁 생산 관련 부서와의 연락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크릭스마리네 함대 사령관( Flottenchef|플로텐셰프de ) 역시 해군최고사령부(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3. 2. 함대 사령관

크리그스마리네 함대 사령관(Flottenchef|플로텐셰프de) 또한 OKM의 현역 구성원으로 간주되었다.

4. 해군 최고사령관기

(내용 없음)

4. 1. 변천사

1935년 11월 7일,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국방부 장관이자 국방군 최고 사령관은 해군 최고 사령관이 사용할 새로운 형태의 기를 도입하라는 칙령을 내렸다. 이 기는 흰색 사각형 바탕에 커다란 검은색 철십자 훈장이 그려져 있었고, 그 뒤에는 밝은 노란색의 칼날이 곧은 두 개의 칼이 칼집 없이 서로 직각으로 교차된 형태로 배치되었다.

1939년 4월 1일, 에리히 레더가 Großadmiral|그로스아드미랄de(대제독)으로 승진하면서 기가 수정되었다. 이후 1943년 1월 30일 카를 되니츠가 이 직책을 맡았을 때에도 이 기는 계속 사용되었으나,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기존의 교차된 칼은 두 개의 제독 지휘봉이 직각으로 교차된 모습으로 대체되었고, 교차된 지휘봉과 철십자 훈장 위에는 깃대 쪽을 향하는 금색의 Wehrmachtsadler|베어마흐츠아들러de(국방군 독수리)가 추가되었다.

같은 날인 1943년 1월 30일에는 Admiralinspekteur|아드미랄인스펙퇴르de(해군 감찰관)로서의 에리히 레더 대제독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특별한 기도 도입되었다. 이 기는 해군 최고 사령관의 기와 동일한 디자인이었지만, 넓은 연한 파란색 테두리가 추가된 점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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