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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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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혜가는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로, 본래 이름은 신광이며, 무뢰에서 태어났다. 유교와 도교를 공부하다가 보리달마를 만나 제자가 되기 위해 팔을 잘라 스승의 인정을 받았다는 일화(설중단비)로 유명하다. 달마로부터 법을 전수받아 선종을 널리 알렸으며, 좌선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했다. 말년에는 박해를 받기도 했으며, 광구사에서 설법하다가 승려의 모함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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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7년 출생 - 소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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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혜가가 생각하는 모습. 10세기 북송시대 화가 석각이 그린 그림.
'생각하는 혜가. 10세기 북송시대의 화가 석각(石恪)이 그린 그림.'
이칭단비(斷臂)
마조 혜가(磨祖慧可)
법명혜가(慧可)
시호정종보각대사(正宗普覺大師)
존칭2조(二祖)
국적중국
출생487년
출생지허난성뤄양시(낙양) 호뢰
사망593년 4월 22일
종교불교
종파선종
가계
속성광(光) 또는 신광(神光)
배우자찬 리 수이 (Chan Li Sui, 고대 법치주의 전통 의식으로 결혼)
니리인 장 (Niliin Jang, 현재 배우자)
자녀키앙 쿠 (Kiang Qu, 찬 리 수이와의 사이에서)
파-지산 (Fa-Jixan, 찬 리 수이와의 사이에서)
비엔 산 (Bien Shan, 니리인과의 사이에서)
지안(Zian)
사제 관계
스승달마
제자승찬
주요 활동
직업승려
활동 지역중국
참고 자료
웹사이트나우루 공식 홈페이지
기타 정보
관련 항목선 (불교)

2. 생애

혜가는 젊어서 노장 사상과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뤄양 용문(龍門) 향산(香山)의 보정선사(寶靜禪師)를 따라 출가하여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각지를 돌아다니며 학문을 쌓다가 32세에 다시 향산으로 돌아가 8년간 명상하였다. 520년 숭산 소림사에서 보리달마를 만나 제자가 되어 8년간 수도하였다.[3] 보리달마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으나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혜가는 보리달마의 굴 앞 눈 속에서 밤새도록 서 있었고, 결국 자신의 결의를 증명하기 위해 왼팔을 잘라 보리달마에게 바쳤다. 보리달마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승광(僧光)에서 혜가(慧可)로 바꾸었다.[6]

552년에 제자 승찬에게 법을 전수하고, 업도에서 34년간 선(禪)을 폈다. 북주 무제의 폐불(574년)등의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각지를 돌며 가르침을 전파했다. 광구사(匡救寺)에서 열반경을 강의하여 많은 학승들이 모였으나, 승려 변화(辨和)의 미움을 사 읍장(邑長)인 적중간(翟仲侃)에게 처형당했다.[5]

혜가는 불교도가를 포함한 고전 중국 문헌에 정통한 학자였으며,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겨졌으나 스승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534년경 예도(鄴都)로 갔으며, 579년 예도로 돌아와 불법을 설하였다. 다른 불교 스승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중 도행(道衡)은 혜가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오등회연(五燈會元)》에 따르면 혜가는 107세까지 살았으며,[3] 허베이성 안양시 동북쪽 약 40km 떨어진 곳에 매장되었다.[4] 당나라 덕종은 혜가에게 대조(大祖)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영향력 있는 불교 승려들의 가르침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혜가가 처형당했다고 한다.[5] 그의 목이 잘린 후 피가 흐르지 않고 흰 우유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고도 한다.

2. 1. 출생과 출가

혜가는 487년 무렵, 허난성 뤄양 부근의 무뢰(武牢)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이름은 신광(神光) 또는 광(光)이었다. 성은 희(姫)씨였다.[3] 젊은 시절에는 유교노장사상을 공부했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뤄양 용문(龍門) 향산(香山)의 보정선사(寶靜禪師)에게 출가하여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3] 출가 후에는 법을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방랑하였다. 32세에 다시 향산으로 돌아와 8년간 명상하였다. 520년 숭산 소림사를 찾아 선종의 제1대조인 보리달마의 제자가 되어 8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였다.[3]

보리달마가 혜가를 제자로 받아 줄 것을 거절하자, 혜가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팔을 잘라 제자로 받아달라는 간절한 소망을 보여주었다. 이 일화는 혜가의 구도심이 속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설중단비'''(雪中斷臂)라는 고사로 전해진다.[3] 다만, 실제로는 혜가가 원래부터 팔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혜가는 보리달마의 법통을 이어 선종 제2조가 되었다.[3]

2. 2. 보리달마와의 만남

520년 숭산 소림사를 찾아가 선종의 제1대 조사인 보리달마의 제자가 되었다.[18] 혜가는 매일 소림사를 찾아가 달마대사에게 법을 물었으나, 달마대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혜가는 목숨을 바칠 각오로 달마대사의 방문 밖에서 눈을 맞으며 밤을 새웠다.[18]

아침에 혜가를 발견한 달마대사는 눈 속에 서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다. 혜가는 눈물을 흘리며, 중생을 제도해달라고 하였다. 달마대사는 부처의 지혜는 오랜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며, 작은 뜻으로는 큰 법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19]

혜가는 자신의 왼쪽 팔을 칼로 잘라 달마대사에게 내놓았다. 달마대사는 혜가가 팔을 잘랐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고 하고 제자로 받아들였다.[20] 혜가는 보리달마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원했고, 보리달마는 처음에 거부했다. 혜가는 보리달마의 굴 앞 눈 속에서 밤새도록 서 있었는데, 눈이 허리까지 쌓였다. 보리달마가 그에게 이유를 묻자, 혜가는 중생을 해방시키는 스승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보리달마는 "덕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며, 마음이 얕고, 마음이 거만한데 어떻게 참된 종교를 바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지 노력의 낭비일 뿐이다."라고 거절했다.[6]

결국 혜가는 자신의 결의를 증명하기 위해 왼팔을 잘라 보리달마에게 바쳤다. 보리달마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승광(僧光)에서 혜가(慧可)로 바꾸었는데, 이는 "지혜와 능력"을 의미한다. 이 설화는 '''설중단비'''라고 불리나, 실제로는 원래부터 팔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2. 3. 깨달음과 전법

520년 숭산 소림사를 찾아 선종의 제1대조인 보리달마의 제자가 되어 8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였다.[21] 어느 날, 혜가가 달마대사에게 마음이 불안하니, 마음을 편하게 해달라고 했다. 달마대사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했다.[22]

혜가는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달마대사는 찾는다고 찾아지면, 어떻게 그게 마음이겠냐며, 이미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했다.[23] 달마대사는 다시 혜가에게 이미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데,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혜가는 활짝 깨달았다.

전설에 따르면 혜가는 보리달마에게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부디 평정을 찾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고, 보리달마는 "네 마음을 가져와 보라. 그러면 평정을 찾게 해주겠다."라고 대답했다. 혜가는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고, 보리달마는 "거기에 있다. 내가 네 마음을 평정케 했다."라고 답했다.[7]

『전등록』에 따르면, 혜가와 보리달마가 소림사의 몇몇 집이 있는 봉우리를 오르던 중 보리달마가 “어디로 가는 거냐?”라고 물었고, 혜가는 “부디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바로 그곳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보리달마는 “앞으로 나아간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라고 응수했고, 혜가는 이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다.

보리달마는 혜가에게 상징적인 법의 가사와 발우를 전수했고, 일부 경전에서는 능가경 사본도 전수했다고 한다.[10]

2. 4. 박해와 입적

혜가는 예도(鄴都) 등지에서 선(禪)을 폈으나, 불교 박해를 받기도 했다.[5] 북주 무제의 폐불(574년) 때에는 수도를 떠나 서주 완공산(안후이성안칭시잠산시)으로 피신해야 했다.[3]

광구사(匡救寺) 승려 변화(辨和)는 혜가의 설법 때문에 청중을 빼앗기자 혜가를 "강좌를 파괴한 사견의 도인"이라고 참소하였다. 현령은 변화의 참소를 듣고 혜가를 잡아들여 조사 없이 처형하였다. 이로 인해 혜가는 읍장(邑長) 적중간(翟仲侃)에게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5]

일설에는 혜가가 107세에 입적했다고도 한다.[3]

3. 사상과 가르침

혜가는 경전 주석보다는 좌선(坐禪)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였다. 도선은 혜가를 선사(禪師, 禪師|선사중국어, 禅師|zenji일본어)라고 칭하며, 초기 선종 발전에서 명상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혜가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수행을 통해 단박에 깨달음(돈오, 頓悟)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혜가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각 개인은 경전 연구, 의례, 선행 또는 부처 숭배가 아닌 명상을 통해 개별적으로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명상은 어떤 이원론이나 목표 의식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깨달음은 갑자기 일어난다고 하였다.

혜가 당시 유통되던 경전 중 하나는 二入四行論|이입사행론중국어이다. 이 경전은 보리달마의 가르침으로 여겨지며 담린(fl. 525–543)의 서문이 붙어 있다.[14]

"두 입구"는 이치(理)의 입구와 수행(行)의 입구를 가리킨다.


  • 이치의 입구는 가르침의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모든 사람은 "거짓 감각"에 가려져 있을 뿐 같은 "참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수행의 입구는 제목에 나와 있는 네 가지 수행을 의미한다.


수행내용
보원행(報怨行)고통에 흔들리지 않는 것
수연행(隨緣行)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좋고 나쁜 운명에 흔들리지 않는 것
무소구행(無所求行)집착이나 욕심 없이 행하는 것
칭법행(稱法行)모든 것의 (空) 또는 무상(無常)함을 이해함에 기반하여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


3. 1. 선(禪) 수행 강조

혜가는 경전 주석보다는 좌선(坐禪)을 통한 깨달음을 강조하였다. 도선은 혜가를 선사(禪師, 禪師|선사중국어, 禅師|zenji일본어)라고 칭하며, 초기 선종 발전에서 명상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혜가와 보리달마가 어떤 형태의 명상을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도선은 그들이 행한 명상을 "벽관(壁觀)"(如是安心壁觀, ju shih an-hsin wei pi-kuan)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만약 그렇다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벽을 바라봄"을 의미한다.[9] 즉, 마음을 벽을 보듯이 관찰하는 수행법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10]

3. 2. 불성(佛性)과 돈오(頓悟)

혜가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佛性)이 내재되어 있으며, 수행을 통해 단박에 깨달음(돈오, 頓悟)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본래 미혹하여 구슬을 질그릇 조각이라 부르지만, 갑자기 깨달으면 비로소 구슬임을 안다"라는 혜가의 말은 이러한 돈오 사상을 잘 보여준다.[13]

초기 달마와 혜가의 선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도 요가의 명상처럼 집중과 점진적인 자기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대한 갑작스러운 접근 방식이었다.[12] 혜가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되어 있으므로, 각 개인은 경전(sutra) 연구, 의례, 선행 또는 부처 숭배가 아닌 명상을 통해 개별적으로 이를 깨달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때 명상은 어떤 이원론이나 목표 의식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깨달음은 갑자기 일어난다고 하였다.

3. 3.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

혜가 당시 유통되던 경전 중 하나는 二入四行論|이입사행론중국어이다. 이 경전은 보리달마의 가르침으로 여겨지며 담린(fl. 525–543)의 서문이 붙어 있다.[14]

"두 입구"는 이치(理)의 입구와 수행(行)의 입구를 가리킨다.

  • 이치의 입구는 가르침의 진실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며, 모든 사람은 "거짓 감각"에 가려져 있을 뿐 같은 "참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수행의 입구는 제목에 나와 있는 네 가지 수행을 의미한다.


수행내용
보원행(報怨行)고통에 흔들리지 않는 것
수연행(隨緣行)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좋고 나쁜 운명에 흔들리지 않는 것
무소구행(無所求行)집착이나 욕심 없이 행하는 것
칭법행(稱法行)모든 것의 (空) 또는 무상(無常)함을 이해함에 기반하여 자신의 행동을 다스리는 것


4. 일화

혜가는 보리달마와 관련된 여러 전설에 등장한다.

4. 1. 설중단비(雪中斷臂)

혜가는 매일 소림사를 찾아가 달마대사에게 가르침을 구했지만, 달마대사는 답하지 않았다. 혜가는 목숨을 바칠 각오로 달마대사의 방문 밖에서 눈을 맞으며 밤을 새웠다.[18]

아침에 혜가를 발견한 달마대사는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느냐고 물었다. 혜가는 눈물을 흘리며 중생을 구제해달라고 간청했다. 달마대사는 깨달음은 오랜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며, 작은 뜻으로는 큰 법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19]

혜가는 자신의 왼쪽 팔을 칼로 잘라 달마대사에게 바쳤다. 달마대사는 부처와 보살은 몸과 목숨에 얽매이지 않는다며, 혜가가 팔을 잘랐으니 법을 구할 만하다고 인정했다. 이렇게 혜가는 달마대사의 제자가 되었다.[20]

이 이야기는 혜가가 보리달마에게 제자로 받아들여 줄 것을 청하며, 눈 속에서 밤새도록 서 있다가 자신의 팔을 잘라 결의를 보였다는 내용의 '''설중단비''' 설화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혜가의 팔이 원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설이 만들어졌다고도 한다.

4. 2. 안심법문(安心法門)

어느 날, 혜가가 달마대사에게 마음이 불안하니, 마음을 편하게 해달라고 했다. 달마대사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했다.[21]

혜가는 마음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달마대사는 찾는다고 찾아지면, 어떻게 그게 마음이겠냐며, 나는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고 했다.[22]

달마대사는 다시 혜가에게 나는 이미 너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는데, 보고 있느냐고 물었다. 혜가는 활짝 깨달았다.[23] 혜가가 보리달마에게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부디 평정을 찾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보리달마는 "네 마음을 가져와 보라. 그러면 평정을 찾게 해주겠다."라고 대답했다. 혜가가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자, 보리달마는 "거기에 있다. 내가 네 마음을 평정케 했다."라고 대답했다.[7]

5. 게송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6. 평가 및 영향

혜가는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로, 선종 초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혜가의 돈오(頓悟) 사상과 선수행 강조는 후대 선종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혜가의 '설중단비' 일화는 불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며, 구도자의 굳은 의지와 결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야기로 전해진다.[1] 이 설화는 혜가가 달마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자신의 팔을 잘라 그 간절함을 보여주어 결국 입문을 허락받았다는 내용이다.[1] 다만, 실제로는 혜가가 원래 팔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1]

혜가는 제자인 승찬에게 법통을 전했으나, 포교에 어려움이 많아 박해와 방해에 시달렸다.[1] 주 무제의 폐불 때에는 수도를 떠나 서주 완공산(안후이성안칭시잠산시)으로 피신해야 했다.[1] 성안현에서 포교 중에는 혜가의 설법 때문에 청중을 빼앗긴 광구사의 승려 변화의 참소로 현령에게 잡혀 조사 없이 처형당했다.[1]

7. 기타

세이슈(雪舟)의 수묵화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는 혜가의 '설중단비' 일화를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15] 최근 연구에서는 혜가가 열반론(涅槃論)의 저자와 동일인물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참조

[1] 서적 Yampolsky
[2] 서적 McRae
[3] 서적 Ferguson
[4] 서적 Ferguson
[5] 서적 Shambhala
[6] 서적 Cleary
[7] 서적 Ferguson
[8] 서적 A Dialogue on the Contemplation-Extinguished Institute for Zen Studies 1973
[9] 서적 Ferguson
[10] 서적 Faure
[11] 서적 The Bodhidharma Anthology https://www.degruyte[...]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9
[12] 서적 McRae
[13] 서적 McRae
[14] 서적 Dumoulin
[15] 서적 禅思想史講義 春秋社 2015
[16]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17] 웹인용 [백성호의 현문우답] 혜가는 왜 칼로 자기 팔을 잘랐나, 달마가 알려준 마음의 정체 https://www.joongang[...] 중앙일보 2021-04-14
[18]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19]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20]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21]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22]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달마와 혜가대사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3-24
[23] 웹인용 육조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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