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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정치군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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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1992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개칭된 북한의 공작원 양성 대학이다. 평양 형제산구역과 룡성구역에 위치하며, 1945년 금강학원 설립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명칭 변경과 통합 과정을 거쳤다. 이 대학은 작전부 소속으로, 한국과 일본 등 해외 침투 공작원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교육 과정은 6년 2개월이며, 격투기, 사격, 어학, 이데올로기 교육 등 혹독한 훈련을 실시한다. 졸업생들은 연락소에 배속되거나 직접 해외 공작 활동에 투입되며, 김현희, 안명진 등 유명 탈북자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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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정치군사대학 - [대학]에 관한 문서
학교 정보
이름김정일정치군사대학
한자 표기金正日政治軍事大學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위치평양시

2. 연혁


  • 1945년 - 평양시에 금강학원이 설립됨.[7]
  • 1948년 - 해주시에 송도정치학원이 설립됨.[7]
  • 1957년 - 2개 학원을 통합하여 평양에 조선로동당 정치학교를 설립함.[7]
  • 1960년대 - 686훈련소가 설치됨.[7]
  • 1972년 - 686훈련소를 폐지하고 시설은 국가안전보위부 정치대학에 이관됨.[7]
  • 1972년 - 조선로동당 정치학교를 금성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함.[7]
  • 1980년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직속 정치학교를 설립함.[7]
  • 1992년 1월 25일 - 대외정보조사부와 사회문화부가 관할하는 봉화정치대학을 분교로 분리함.[7] 금성정치군사대학은 작전부 관할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개칭됨.[7]

3. 조직 및 구성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북한 평양 북쪽 교외에 있는 간첩 양성 기관이다. 입학은 본인 의사가 아닌 당국 소집에 의하며, 많은 입학생은 간첩 양성 기관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입학한다.[2] 가문, 외모, 학교 성적, 북한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고려한 국가 심사를 통해 매년 200명이 선발되며, 철저한 간첩 교육이 실시된다.[3]

처음에는 대남(대한국) 간첩 양성 교육 기관으로 설립되었고, 이후 일본, 중국, 미국유럽 여러 국가에 대응하는 간첩 양성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현역 간첩 재교육을 위한 "초대소"라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으며, 간첩뿐만 아니라 납치 피해자 거주 시설로도 사용된다.[2] "초대소"는 북한 영내에 수백 곳 설치되어 있다.[2]

3. 1. 조선로동당 중앙당 3호청사

조선로동당 중앙당 3호청사 작전부에 소속되어 있다.[2] 3호청사는 “조선반도의 평화통일이란 있을 수 없고,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김일성·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조직된 기관이며, 대한민국에 대한 공작 활동을 수행한다.[2] 북한이 무력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내부에 반정부 세력을 구축할 간첩이 필요하며, 그 활동은 다양하다.[2] 3호청사는 평양시 중심부에 위치한 조선로동당 본청사에서 약간 떨어진 시내 전승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2]

중앙당 3호청사는 사회문화부(현 대외교류국), 대외정보조사부(일명 35호실), 작전부(현 조선인민군정찰총국), 통일전선부)의 4개 부서로 구성된다.[2][4] 4개 부서의 대략적인 역할 분담은 다음과 같다.

부서명역할
대외교류국한국에 침투하여 비밀 지하 조직을 구축하고, 한국 내 반정부 세력을 결집하여 반북 세력에 대한 테러 활동이나 납치 행위를 하는 부서.[4] 봉화정치대학이라는 자체 간첩 양성 기관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에 자체 “초대소”도 가지고 있다.[4]
대외정보조사부한국 이외의 세계 각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 납치, 테러 행위를 하는 부서.[1] 1987년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을 담당한 것이 이 부서이다.[1] 간첩 양성에 대해서는 작전부나 대외교류국에 위탁하고 있다.[1] 대외정보조사국의 “초대소”는 교육을 마친 간첩의 각종 교육·훈련 장소가 되며, 해외에도 많이 설치되어 있다.[1] 마약 밀매, 위조 지폐 사용, 무기 구입 등도 이 부서에서 하고 있다.[1]
작전부한국에 파견하는 비밀 지하 조직의 간첩을 안내하거나, 이송하는 외에, 요인 납치, 암살, 중요 시설 폭파 등의 임무를 담당하는 부서.[5] 가장 잘 훈련된 3,000명의 간첩(특수 훈련 요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평시는 물론, 전시에는 한국을 내부에서부터 와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5] 4개 부서 중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김씨 일족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서라고 알려져 있다.[5]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이 부서에 속한다.
통일전선부남북 회담을 주관하는 부서이며,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를 직접 관리, 지도하고 있다.[6] 북한 최고 지도자에게 “충성의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비밀 자금을 모을 때에도 앞장서고 있다.[6]


4. 위치 및 시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북한의 수도 평양 북쪽 교외에 있는 간첩 양성 기관이다.[2] 조선노동당 중앙당 3호청사 작전부에 소속되어 있다.[2] 3호 청사는 평양시 중심부에 있는 조선노동당 본청사에서 약간 떨어진 시내 전승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2]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작전부에 속해 있으며, 일본, 중국, 미국 및 유럽 여러 국가에 대응하는 간첩을 양성한다. 현역 간첩의 재교육을 위한 "초대소"라는 시설이 있으며, 간첩뿐만 아니라 납치 피해자도 이곳에 거주한다.[2]

순안비행장(평양국제공항)에서 남쪽으로 평양 시내로 들어갈 때, 왼쪽(동쪽)에 큰 방송 안테나가 2개 설치된 산이 있는데, 이 산을 넘어가면 김정일정치군사대학 부지가 있다. 철도 평양역에서는 북쪽으로 약 12.5km 지점에 있다.[8] 대학에서 북북동쪽으로 약 4km 지점에는 일본인 마을(일본인 교관 마을)이 있고, 남쪽에는 3호청사작전부 소속 915병원이 있다.[8]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평양직할시 형제산구역학산리룡성구역신미리 일대에 넓은 캠퍼스를 가지고 있다.[1][9] 북한 지도에서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행정 지역으로 표시하지 않으며, 외부에 주소를 알릴 때는 "평양시 모란봉구역 평화2동"이라는 가상의 주소를 사용한다.

대학 부지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안쪽에는 숲이 있어 장애물 훈련 코스와 직선 훈련 코스가 있다.[8] 구내에는 훈련용 무기피복 창고, 강당, 강의실, 실습실, 체육관, 도서관, 운동장, 학생과 교관의 숙소, 교관 전용과 학생 전용 식당, 695병원 등의 시설이 있고, 이러한 시설들을 둘러싸듯이 훈련 코스가 있다.[8] 대학에는 항상 150명에 달하는 조선인민군 병사가 주둔하며,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고 있다.[8] 대학 동쪽으로 약 4.4km, 순안공항 남동쪽 약 14km 지점에는 김씨 일가의 본가라고 불리는 대저택, "55호 관저"가 있다.[8]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북동쪽에는 분교인 봉화정치대학(조선노동당 110연락소)이 있다.[1]

5. 교육 과정 및 훈련 내용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교육 과정은 본교와 분교로 나뉜다. 본교는 6년제로, 주로 대한민국일본에 침투할 공작원을 목적지 해안까지 안내하는 요원과 공작선 승무원을 양성한다.[10] 이들은 졸업 후 작전부 소속 6곳의 연락소에 배치된다.[10] 분교는 1년, 2년, 3년 과정으로, 실제로 해외에서 공작 활동을 할 요원들을 양성한다.[10]

대학의 훈련은 매우 혹독하며, 학생들은 격투기, 사격, 수영, 폭탄 제조, 벽 오르기, 어학, 지질학, 무선(모스 부호), 항해술 등 다양한 분야를 훈련받는다.[3] 이러한 훈련은 모두 "주체사상"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교육과 결합되어 진행된다.[3]

공작원 양성 교관들은 학생들에게 "임무를 위해 항상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강조하며, 체포될 위기에 처하면 청산가리 캡슐을 이용해 자살하도록 가르친다.[3]

안명진은 대학 2학년부터 납치 훈련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한다.[27] 과거에는 이나 흉기를 사용하거나 급소를 가격해 기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는 가죽이나 나일론으로 만든 특수 주머니를 사용했다.[26] 이 주머니는 저항할수록 몸이 더 조여지도록 설계되었으며, 호흡을 위한 작은 구멍이 1~2개 뚫려 있었다.[26] 납치 대상자를 주머니에 넣기 전에는 손수건이나 수건에 강력한 마취제를 적셔 입을 막았고, 훈련 시에는 915병원에서 제조한 마취제를 사용하거나 정제를 사용하기도 했다.[26]

북한은 "조국통일 위업 완수"를 위해 일본인 납치를 감행하며, 김정일 체제는 적화통일을 위해 과거 식민지 지배를 했던 일본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공작원들은 일본 침투 시 일본인 납치 임무를 부여받으며, 납치된 일본인들은 공작원들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 등을 가르치는 데 활용되었다.[25]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일본인 납치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29]

5. 1. 교육 과정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교육 과정은 매우 혹독하며, 학생들은 주체사상에 입각한 이데올로기 교육과 함께 다양한 군사 훈련을 받는다. 교육은 크게 이데올로기 교육, 군사 훈련, 어학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

  • 이데올로기 교육: 혁명 역사, 노작, 사상, 철학, 정보학 등의 과목을 통해 주체사상을 심층적으로 교육한다.[3]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제국주의 아래 고통받는 가난한 꼭두각시"로, 서구 사회는 부유한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 사회라고 세뇌 교육을 한다.[3]
  • 군사 훈련: 격투기, 사격, 수영, 폭탄 제조, 벽 오르기, 무선 (모스 부호), 항해술 등 실전 훈련을 실시한다.[3] 특히, 남성 훈련은 더욱 엄격하여, 20kg 배낭을 메고 매일 12km 행군을 30~35분 안에 완료해야 하며, 주말에는 20km, 월말에는 40km, 연말에는 80km의 고된 훈련을 받는다.[15] 또한, 수영과 잠수 훈련도 강도 높게 진행된다.[15]
  • 어학 교육: 잠입 대상국에서 본국 사람과 구별되지 않도록 철저한 어학 교육을 실시한다. 예를 들어, 김현희는 일본어를 일본인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받았다.[19] 안명진은 한국 각지의 사투리를 실수 없이 말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다.[19]


교육 기간은 현재 6년 2개월이며, 4년제 대학의 일반 과목도 교육한다.[3] 10기생·11기생 당시 교육 기간은 2년이었으며, 김현희는 1년 과정의 단기 코스를 수료했다. 학생들은 대학 캠퍼스를 떠나거나 외부와 연락하는 것이 금지되며, 호적에서도 삭제되어 가족의 안부를 알 수 없다.[3][11] 예외적으로 1년에 두 번 외출과 한 번 연하장을 보내는 것이 허용되지만, 발신인 주소를 쓰는 것은 금지된다.[3][11]

학생들은 "임무를 위해 항상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강조받으며, 체포될 위기에 처했을 경우 청산가리 캡슐을 이용해 자살하도록 교육받는다.[3] 학비와 식비는 무료이며, 장교와 같은 수준의 식사가 제공된다.[12]

김현희와 김숙희의 일과를 예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간활동 내용
06:00기상, 세수, 청소
07:00아침 식사
07:30 ~ 08:30김일성 덕성 자료 낭독
08:30 ~ 13:00오전 강의 (군복 착용, 마스크선글라스 착용, 우산 휴대)
13:00 ~ 16:00점심 식사 및 휴식
16:00 ~ 17:30오후 강의
17:30 ~ 19:00자습 및 운동
19:00 ~ 20:00저녁 식사
20:00 ~ 21:00체력 단련 및 훈련
21:00 ~ 22:0010kg 배낭 메고 4km 산악 행군
22:00 ~ 23:00일기 작성, 다음 날 예습 후 취침



토요일에는 10kg 배낭을 메고 3시간에 걸쳐 25km 산악 행군을 실시한다.[14]

혹독한 훈련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무법자"와 같은 기풍을 가지게 되며, 교관을 구타하는 것이 정당하게 인정되기도 한다.[16] 1984년에는 학생들이 일반인과 군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17]

안명진은 매일 최소 7회 "수령과 당을 위해 자폭, 자살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생활했다고 증언했다.[18]

또한, 학생들은 『신칸센 대폭파』, 『육군 나카노학교』 등 300편이 넘는 외국 영화(주로 액션 영화나 스파이 영화)를 시청하며, 시청 후에는 토론을 하는 것이 필수 과제였다.[20][21]

5. 2. 학과 (반)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본교(6년제)에서는 한국과 일본에 침투하는 공작원을 목적지 해안까지 안내하는 요원 및 공작선의 승무원을 양성하며, 졸업 후에는 작전부 소속 6곳의 연락소에 배속된다.[10] 분교(1년, 2년, 3년 과정)에서는 실제로 해외에서 공작 활동을 하는 요원을 양성한다.[10]

대학에서의 훈련은 매우 고되며, 격투기, 사격, 수영, 폭탄 제조, 벽 오르기, 어학, 지질학, 무선 통신(모스 부호), 항해술 등 다양한 훈련을 실시한다. 이러한 훈련은 모두 “주체사상”에 의한 이데올로기 교육과 결합되어 있으며, 혁명 역사, 노작, 사상, 철학, 정보학 등의 과목을 포함한다.[3]

현재 교육 기간은 6년 2개월이며, 4년제 대학의 일반 과목도 교육한다. 10기생·11기생 당시 교육 기간은 2년이었다. 김현희는 1년 과정의 단기 코스를 수료했다.

김현희의 재학 시절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반(학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교육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진위는 불명확하다.[13]

  • 정보반
  • 외국어반
  • 전투원반


1990년대 6년제 본교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반이 있었으며, 각 반의 학생 수는 18명에서 23명 정도였다.[15]

  • 안내반(특공대반): 한국·일본 침입 시 공작원을 목표 해안까지 안내하는 요원 양성
  • 항해반: 항해사 양성
  • 기관반: 엔진·조선 전문 요원 양성
  • 통신반: 무선·전자 기기 조작원 양성


분교에는 공작원을 양성하는 공작반, 교관 요원을 양성하는 양성반, 한국 정세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연구반이 설치되어 있었다.[15]

5. 3. 훈련 내용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의 훈련은 매우 혹독하다. 학생들은 격투기, 사격, 수영, 폭탄 제조, 벽 오르기, 어학, 지질학, 무선(모스 부호), 항해술 등을 훈련받으며, 이 모든 것은 “주체사상”에 기반한 이데올로기 교육과 함께 이루어진다.[3] 이데올로기 교육은 혁명 역사, 노작, 사상, 철학, 정보학 등의 과목으로 구성된다. 한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제국주의 아래 고통받는 가난한 꼭두각시”라고 세뇌하며, 서구 사회는 부유한 자본가들이 부를 독점하는 불평등 사회라고 가르친다.[3] 교육 기간은 6년 2개월이며, 4년제 대학의 일반 과목도 교육한다.

공작원 양성 교관은 학생들에게 “임무를 위해 항상 목숨을 희생할 각오를 가져라”라고 반복해서 강조한다.[3] 또한, 공작원은 체포될 위기에 처했을 경우, 생포되어 심문을 받느니 청산가리 캡슐을 마시고 자살하라고 교육받는다.[3]

김현희의 증언에 따르면, 1살 어린 김숙희와 짝을 이루어 같은 숙소에서 생활했다. 이들의 일과는 다음과 같았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세수와 청소를 하고, 7시에 아침 식사를 한 후,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 김일성 덕성 자료를 낭독한다. 그 후 군복을 입고 마스크선글라스를 착용하여 얼굴을 가리고, 언제든지 모습을 숨길 수 있도록 우산을 휴대하고 대학 강의실로 향한다.[13] 8시 30분부터 13시까지 오전 강의가 진행되며, 그 사이 동급생에게도 얼굴을 드러내거나 목소리를 들려서는 안 된다.[13] 오후에는 16시까지 점심 식사와 휴식을 취하고, 17시 30분까지 오후 강의, 그 후 19시까지는 자습과 운동 시간이다. 저녁 식사 후 20시부터 21시까지는 체력 단련 및 훈련 시간이다.[13] 그리고 21시부터 22시까지 10kg의 배낭을 메고 매일 4km의 “산악 행군”을 하고, 그 후 일기를 쓰고 다음 날 예습을 한 후 23시에 취침하는 것이 평일의 대략적인 일정이었다.[13][14] 토요일에는 같은 무게의 배낭을 메고 3시간에 걸쳐 25km의 산악 행군을 실시했다.[14]

남성 훈련은 더욱 엄격하여, 20kg의 배낭을 메고 매일 12km의 행군을 30분에서 35분 안에 완료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자동 탈락한다.[15] 주말에는 20km, 월말에는 40km, 연말에는 80km 등 고된 훈련이 실시된다.[15] 또한, 교육 12일째에는 8km를 2시간 안에 수영으로 완주해야 한다.[15] 2학년이 되면 4km의 잠수 훈련을 25일간 받는다.[15] 학과 과정은 1년차에는 김일성·김정일 저작, 철학, 수학, 물리학, 화학, 영어 등이고, 2년차에는 남한 정세가 추가되며, 기초 특공 훈련, 정보학, 사격, 격검 등이 추가된다.[15]

혹독한 훈련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무법자”와 같은 기풍을 가지게 된다.[16] 교관을 구타하는 것이 정당하게 인정되기도 한다.[16] 1984년에는 19기생이 평양직할시 중심부의 유원지에서 일반인과 군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큰 사회 문제가 되기도 했다.[17] 또한 21기생 35명이 조선인민군의 한 대대와 대난투를 벌여 한 대대를 순식간에 제압하는 사건도 있었다.[17]

훈련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분화된다.

훈련 종류내용
육상 훈련
수중 훈련
격투 훈련
단도 조작법
사격 훈련
해상 훈련
합법·반합법·불법 훈련



작업원은 한국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5개월 동안 훈련을 받는다. 졸업 후에는 “에네마이제이션(적과의 동화)” 훈련이 실시된다.[3] 훈련 장소인 이남화 환경관(한국인화 교육회관)은 길이 10km의 거대한 지하 터널 안에 서울을 재현해 놓았다.[22] 납치된 한국인 등의 지도하에 사투리, 한국의 사회·정치 문화를 배우며, 쇼핑 실습, 노래방 훈련, 약국 실습(한국 약사 참여) 등도 진행된다.[3][22] 한국군 내정에 대해서도 상세히 교육받는다.[22]

5. 4. 납치 훈련

안명진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는 2학년 때부터 납치 훈련이 시작되었다.[27] 이전에는 이나 흉기를 사용하거나 급소를 가격하여 기절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는 가죽이나 나일론으로 만든 특수 주머니를 사용했다.[26] 이 주머니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저항할수록 몸이 더 조여지도록 설계되었다. 주머니에는 호흡을 위한 작은 구멍이 1~2개 뚫려 있었다.[26]

납치 대상자를 주머니에 넣기 전에는 손수건이나 수건에 강력한 마취제를 적셔 입을 막았다.[26] 훈련 시에는 915병원에서 제조한 마취제를 실제로 사용했으며, 정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26]

북한이 일본인을 납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조국통일 위업 완수"를 위해서라고 한다.[25] 김정일 체제는 분단된 조선반도를 적화통일하기 위해서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했던 일본의 희생이 당연하며,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공작원들은 일본에 침투했을 때 가능한 한 일본인을 납치해 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25] 또한, 납치된 일본인들은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침투할 공작원들에게 일본어, 일본 문화, 풍습, 지역 특성 등을 가르치는 교육 담당으로 활용되었다.[25]

1970년대 이후 본격적인 일본인 납치의 배후에는 김정일이 있었다.[29]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사용되던 교재에는 납치 지령이 김정일로부터 내려왔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30]

6. 교관

지도관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출신 공작원이 맡는 경우가 많다. 다른 교육기관 출신 교관에 대해서는 학생들이 대체로 불복종하는 경향이 있다.[16] 다른 해군군사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군인이 교관을 맡았던 적도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집요하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하다가 결국 전출되었다.[16]

외국인화 훈련은 “리은혜”(본명, 다구치 야에코)와 같이 납치된 외국인이 맡는 경우가 있다. 김현희는 1981년 7월부터 1983년 3월까지 “리은혜”와 동거하며 일대일로 일본인화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현희는 방일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기자들과 자유롭게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일본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31] 김현희의 동료 공작원이었던 김숙희는 13세에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에게서 일본어 교육을 받았다는 여러 증언이 있다.[32] 김현희와 김숙희는 1984년 6월부터 8월까지 룡성 40호 초대소에서 공링화라는 중국인 여성에게서 중국어(베이징어)를 배웠는데, 이 여성 역시 1978년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북한에 납치된 여성이었다.[33][34]

안명진은 대학 구내에서 납치된 일본인 6명을, 다른 분교나 초대소, 915병원에서 10여 명을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또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납치했는지에 대한 증언을 선배 공작원으로부터 들었다.

7. 출신 인물


  • 안명진 - 김정일정치군사대학 25기 졸업생이다. 1993년 9월 한국으로 망명했으며, 요코다 메구미 목격 증언 등 중요한 증언을 다수 남겼다.[2]
  • 김현희 - 금성정치군사대학 17기 공작반을 졸업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실행범 중 한 명으로, 공범은 김승일이다.[1]
  • 김승일 -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공범이다.[1]
  • 이선실 - 금강학원에서 집중 학습을 받았다.[36]
  • 정순권 - 11기생으로, 요코다 메구미를 니가타에서 납치한 실행범이다.
  • 김숙희 - 북한 공작원으로, 김현희와 동기이다. 요코다 메구미에게서 일본어 지도를 받았다.
  • 김동식 - 19기생으로, 1995년 한국 잠입 중 체포되었다. 현재 한국 정보기관에 협력하고 있다.

8. 참고 도서


  • 안명진, 安明進|안메이신일본어, 번역 김찬(金燦), 《북한납치공작원》(北朝鮮拉致工作員), 도쿠마쇼텐(徳間書店), 도쿠마문고(徳間文庫), 2000년 3월, ISBN 978-4198912857
  • 안명진, 安明進|안메이신일본어, 번역 타도가와 마사키(太刀川正樹), 《신증언·납치》(新証言・拉致), 코세이도출판(廣済堂出版), 2005년 4월, ISBN 4-331-51088-3
  • 김현희(金賢姫), 번역 이케다 기쿠토시(池田菊敏), 《김현희 전고백 지금, 여자로서(상)》(金賢姫全告白 いま、女として(上)), 분게이슌주(文藝春秋), 1991년 9월, ISBN 4163456406
  • 김현희, 金賢姫|김현희일본어, 번역 이케다 기쿠토시(池田菊敏), 《김현희 전고백 지금, 여자로서(하)》(金賢姫全告白 いま、女として(下)), 분게이슌주(文藝春秋), 1991년 9월, ISBN 4163456503
  • 시미즈 준(清水惇), 《북한 정보기관의 전모 독재정권을 지탱하는 거대 조직의 실태》(北朝鮮情報機関の全貌―独裁政権を支える巨大組織の実態), 코진샤(光人社), 2004년 5월, ISBN 4-76-981196-9
  • 전부억(全富億), 《북한의 여자 스파이》(北朝鮮の女スパイ), 고단샤(講談社), 1994년 4월, ISBN 4-06-207014-6
  • 니시오카 치카라(西岡力), 《코리아 타부를 풀다》(コリア・タブーを解く), 아키쇼보(亜紀書房), 1997년 2월, ISBN 4-7505-9703-1
  • 니시오카 치카라(西岡力), 조갑제(趙甲濟), 《김현희로부터의 편지》(金賢姫からの手紙), 소시샤(草思社), 2009년 5월, ISBN 978-4-7942-1709-7
  • 《횡다 메구미는 살아있다 안명진이 폭로한 일본인 납치의 음모》(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安明進が暴いた日本人拉致の陰謀), 고단샤(講談社), 고단샤 Mook(講談社MOOK), 2003년 4월, ISBN 4-06-179395-0

참조

[1] 서적 안(2000)
[2] 서적 안(2005)
[3] 웹사이트 爆弾製造にKポップ習得…元工作員が明かす北朝鮮のスパイ養成法 https://www.afpbb.co[...] AFP通信 2021-09-18
[4] 서적 안(2000)
[5] 서적 안(2000)
[6] 서적 안(2000)
[7] 서적 안(2005)
[8] 서적 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9] 서적 안(2000)
[10] 서적 清水(2004)
[11] 서적 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12] 서적 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13] 서적 金賢姫全告白 いま、女として(下)
[14] 서적 金賢姫全告白 いま、女として(下)
[15] 서적 清水(2004)
[16] 서적 안(2000)
[17] 서적 안(2000)
[18] 서적 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19] 서적 안(2000)
[20] 서적 안(2000)
[21] 서적 金賢姫全告白 いま、女として(下)
[22] 서적 안(2000)
[23] 서적 안(2000)
[24] 서적 안(2005)
[25] 서적 안(2000)
[26] 서적 안(2000)
[27] 서적 안(2005)
[28] 서적 안(2000)
[29] 서적 안(2005)
[30] 서적 안(2005)
[31] 서적 西岡(1997)
[32] 뉴스 「田口さんとめぐみさん、招待所で同居」金元死刑囚証言 http://www.asahi.com[...] 朝日新聞デジタル 2009-04-06
[33] 서적 西岡・趙(2009)
[34] 웹사이트 救う会全国協議会ニュース マカオ人拉致被害者孔氏が金賢姫氏の中国語教師 http://www.sukuukai.[...] 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 2021-09-20
[35] 서적 横田めぐみは生きている
[36] 서적 全富億 (출판사 정보 없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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