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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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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종교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며, 한국인의 삶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 고대부터 샤머니즘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삼국 시대에 불교가 전래되어 융성했다.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교가 되었으나, 민간에서는 불교와 샤머니즘이 지속되었다. 19세기 말 서양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기독교가 전파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종교 정책에 저항하며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해방 이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기독교가 급성장하는 한편, 불교도 꾸준히 신도를 유지했다.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가 가장 많았으며,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신자 비율이 높았다. 2024년 조사에서는 무종교가 여전히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기독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나타났다. 종교 인구는 연령, 성별, 지역에 따라 분포의 차이를 보이며, 기독교는 수도권과 호남 지역에서, 불교는 영남 지역에서 강세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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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종교
종교 현황 (2024년)
2024년 대한민국 종교 인구 분포 (원그래프)
2024년 대한민국 종교 인구 분포
무종교51%
개신교개신교 20%
천주교천주교 11%
불교불교 17%
기타2%
개요
종교 자유헌법에 보장됨
주요 종교불교
기독교
유교 (전통)
무속신앙 (토착)
상세 현황
종교 인구 비율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무종교: 56.1%
개신교: 19.7%
불교: 15.5%
천주교: 7.9%
기타: 0.8%
종교 인구 비율 (2024년)무종교: 51%
개신교: 20%
천주교: 11%
불교: 17%
기타: 2%
역사
전통 신앙무속신앙, 토테미즘, 애니미즘
외래 종교 유입불교, 유교, 도교, 천주교, 개신교
현대종교 자유 보장, 다양한 종교 활동
종교의 사회적 영향
사회 봉사종교 단체의 사회복지 활동
문화종교 건축물, 예술, 음악 등
정치종교계의 사회 문제 참여

2. 역사

한국의 종교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고조선 시대부터 샤머니즘(무속)이 한반도에 존재했으며, 이는 다른 종교가 유입된 이후에도 민간 신앙의 형태로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81][82][83][84]

4세기경 불교고구려에 전래된 이후, 백제신라에도 전파되었다. 통일 신라 시대에 불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크게 발전했다. 고려 시대에도 불교는 번성하여 정치적인 세력이 되기도 하였다.[27]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불교는 탄압을 받았지만, 민간에서는 여전히 불교 신앙이 유지되었다. 18세기 말에는 천주교가 전래되었으나, 조선 정부는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다.[35]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이 한국의 종교를 국가 신토와 결합시키려 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 시기에는 천도교, 원불교, 대종교, 증산교 등 새로운 종교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공산주의 북한과 반공주의 남한으로 나뉘면서 종교 지형도 크게 변화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박정희 정권의 "미신 타파 운동"으로 인해 많은 전통 사당이 사라졌지만,[36] 불교기독교는 오히려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38][39]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무종교이며, 개신교, 불교, 천주교 순으로 신자 수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25]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무종교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 1. 삼국 시대 이전

고조선 시대부터 샤머니즘(무속)이 한반도에 존재했으며, 샤머니즘은 다른 종교가 유입된 이후에도 민간 신앙의 형태로 한국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81][82][83][84] 한국 무속은 "무교(巫敎, Mugyo)"(무[무당] 종교)라고도 하며,[81] "신도(神道)"(신도|한국어) 또는 "신교(神敎, Singyo)"("신의 길")라고도 불린다.[82][83] 비록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두 용어는 동일하지 않다.[84]

현대 한국어에서 무당은 여성일 경우 ''무당''(巫堂), 남성일 경우 ''박수''라고 불리지만, 다른 이름과 표현도 사용된다.[84] 한국어 ''무''(mu, 무당)는 남녀 모두를 지칭하는 중국어 ''무''(巫)와 동의어이다.[85] ''무당''의 역할은 영 또는 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여, ''굿''(의식)을 통해 인간 삶의 발전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87]

중심에는 "모든 존재의 근원"[88] 및 모든 자연신,[85] 최고의 신 또는 최고 정신을 의미하는 ''하느님'' 또는 ''환인''과의 상호 작용이 있다.[89] ''무''는 신화적으로 "천왕"의 후손으로 묘사되며, 종종 여성 왕족 계보를 통해 권한이 부여된다.[90] 그러나 다른 신화는 전통 신앙의 유산을 천왕의 아들이자 한국 민족의 시조인 단군과 연결시킨다.[91]

일본의 신토 외에도 한국 종교는 중국의 무교와 유사하며,[92] 시베리아, 몽골, 만주 종교 전통과 유사하다.[92] 일부 연구에서는 한국의 조상신인 단군을 우랄 알타이어의 텡그리 "하늘", 무당, 왕자와 연결짓는다.[93][94] 무속은 천도교증산교와 같은 일부 한국 신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다양한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개신교는 친근한 사고 방식과 종교의 토착 모델을 제공한 토착 무속에 많은 성공을 빚지고 있다.[95]

1890년대, 조선 왕조의 마지막 수십 년 동안, 개신교 선교사들은 상당한 영향력을 얻었고, 언론을 통해 토착 종교를 비방했으며, 심지어 지역 숭배를 물리적으로 탄압하는 캠페인을 벌였다.[96]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한민국에서 수행된 "신도 파괴 운동"은 한국 종교의 물리적 유산(사찰 및 신사)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으며, 특히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대에 그러했다.[97][98]

2. 2. 삼국 시대와 통일 신라 시대

4세기경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고구려에 전래되었다.[26] 당시 한반도는 세 개의 왕국 (고구려, 백제, 신라)으로 나뉘어 있었다. 불교는 5세기에 신라에 전래되었지만, 552년에 신라에서 국교로 지정되었다.[26] 불교는 신라와 백제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고구려에서는 한국 토착 신앙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 이후 통일 신라 시대에도 불교는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크게 발전하였고, 문화와 예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3. 고려 시대

고려 시대(918–1392)에는 불교가 번성하여 정치적인 세력이 되기도 하였다.[27] 불교는 삼국 중 하나인 고구려에 372년 중국전진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이후 한국적인 형태로 발전하였다.[26] 신라에는 5세기에 전래되었으나 552년에 국교로 공인되었으며,[26] 백제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한국 토착 신앙이 여전히 지배적이었다.[27]

2. 4.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불교는 탄압을 받았다. 불교 사찰은 파괴되거나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승려들은 사회적으로 차별받았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불교 신앙이 유지되었으며, 샤머니즘과 결합하여 민중 신앙의 형태로 이어졌다. 18세기 말, 서학이라는 이름으로 천주교가 전래되기 시작했으나, 조선 정부는 천주교를 사교로 규정하고 탄압하였다.[35]

2. 5. 일제 강점기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일본은 조선과 일본 두 민족의 기원이 같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인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다. 일본은 한국의 토착 신앙인 신도를 연구하여 국가 신토와 결합시켜 흡수하려 했고, 불교에도 유사한 정책을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전역에 수백 개의 일본 신사가 건설되었다.[116]

이러한 정책은 이미 한국에 깊이 뿌리내린 기독교 교회로의 대규모 개종을 유발했다. 기독교는 일본의 정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다.[117]

일제강점기에는 몇몇 새로운 신앙도 나타났는데, 이들은 서양, 동양, 그리고 한국 고유의 전통을 융합한 형태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천도교였으며, 20세기 초에는 백만 명 이상의 신자가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천도교 신자는 한국 전체 인구의 0.1% 미만이다. 이 외에도 원불교, 대종교, 증산교와 같은 신흥 종교들이 등장했다.

천도교는 성리학, 불교, 무속, 도교, 그리고 가톨릭의 영향을 종합한 종교이다.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 운동에서 성장했으며,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 특히 전라 지역에서 확산되어 1894년 반 왕조 폭동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동학 운동이 천도교로 개칭된 후, 일부 구성원들은 1910년 일본의 병합을 지지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반대하며 기독교인, 유교와 함께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0년대에는 천도교가 한국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발행된 잡지인 『개벽』을 지원하기도 했다.

천도교의 기본적인 신조는 인류 전체의 본질적 평등을 포함한다. 모든 사람들이 "신성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각각의 사람은 존경심을 가지고 대우받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삶의 신성함을 표현하기 위해 성실하게 자신을 개척해야 하며, 자기 수련은 의식이나 세레모니가 아닌 구원의 길이라고 한다.

대종교를 포함한 주요 신종교는 그 중심 신조로 고조선의 창시자인 단군 숭배를 내세웠다. 증산교는 20세기 초에 설립되었으며, 우주가 일으키는 지상의 기후 변동이나 다른 재앙 이후 지상에 낙원을 만들고, 신봉자들은 대변동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으며, 다가오는 세계 문명의 붕괴와 마술의 실천을 강조한다.

몇몇 신종교는 기독교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박태선이 설립한 천부교(복음교)는 원래 장로교였으나, 박태선이 자신에게 특별한 영적인 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1950년대에 이단으로 간주되어 쫓겨났다.

문선명1954년에 설립한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구 통일교)은 기독교 배경에서 유래한 교단으로, 대외 포교 활동으로 널리 알려졌다. 문선명은 스스로를 메시아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칭하며, 예수의 미완성된 임무를 완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 6. 해방 이후

1945년 한반도 분단으로 공산주의 북한과 반공주의 남한으로 나뉘면서, 당시까지 한반도 북부에 있던 대부분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남한으로 피난했다. 남한으로 이주한 기독교인은 100만 명이 넘었다. 기독교인과 마찬가지로 북쪽에 집중되어 있던 천도교는 분단 이후에도 그곳에 남아 있었으며,[35] 현재 남한에는 수천 명의 천도교 신자만이 남아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한 이른바 "미신 타파 운동"은 토착 신앙을 금지하고 유교적 친족 종교의 거의 모든 전통 사당을 없앴다.[36] 이는 불교 신자였던 박정희 정권 하에서 특히 가혹했다.[37] 이 조치는 같은 시기의 급격한 사회 변화[5]와 결합되어, 전통적으로 민간 신앙과 융합되어 왔고 이러한 전통 신자들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종교의 맥락에서 민간 신앙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 불교의 급격한 부활을 가져왔다.[38] 이 시기에는 또한 조직화된 종교의 구성원으로 등록하려는 경향에 따라 기독교 교회의 성장도 나타났다.[39]

1962년부터 1997년까지 불교 사찰의 수는 2,306개에서 11,561개로 증가했고, 개신교 교회는 6,785개에서 58,046개로 증가했으며, 천주교는 1965년 313개 교회에서 2005년 1,366개로, 원불교는 1969년 131개 사찰에서 1997년 418개로 증가했다.[40] 대순진리회의 사찰도 1983년 700개에서 1994년 1,600개로 증가했다.[41] 인구 조사의 통계에 따르면 1962년 2.6%였던 불교 신자는 2005년 22.8%로 증가했으며,[5] 1962년 5%였던 기독교인은 2005년 29.2%로 증가했다.[5] 그러나 두 종교 모두 2005년과 2015년 사이에 감소세를 보였으며, 불교는 인구의 15.5%로 급격히 영향력이 감소했고, 기독교는 27.6%로 감소했다.[42]

퓨 리서치 센터는 2010년 조사에서 인구의 약 46%는 무종교였고, 23%는 불교 신자, 29%는 기독교 신자였다고 발표했다.[43] 2015년 전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56.1%가 무종교였으며, 개신교는 전체 인구의 19.7%, 한국 불교는 15.5%, 천주교는 7.9%를 차지했다. 소수의 한국인(전체의 0.8%)은 원불교, 유교, 천도교, 대순진리회, 이슬람교, 대종교, 증산교동방 정교회를 포함한 다른 종교의 신자였다.[25]

급변하는 대한민국의 종교 인구 통계에 대한 응답으로, 한국 연구 저널인 '여론 속의 여론'은 현재 대한민국의 종교 인구 통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설문 조사에 따르면 새로운 결과는 한국 문화의 전통적인 정서와 다르다. 인구의 상당수가 무종교인인 반면, 개신교가 가장 큰 종교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45] 종교를 가진 인구의 절반은 20%는 개신교, 16%는 불교, 13%는 가톨릭교, 1%는 기타 종교 또는 이단 종교를 믿는다. 연구 결과는 현재 한국인의 50%가 무종교이며, 32%가 기독교의 일부 분파를 따르고, 16%가 불교 신자이며, 2%가 다른 형태의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한국 문화와 인구 통계에서 벗어나 무신론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이전에, 한국학술지인용색인에서 발표한 '한국 종교 인구 변화에 대한 코호트 분석'[46]은 1999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의 종교 인구 통계를 분석했다. 이 연구의 데이터는 인구 통계 내에서 종교의 개종, 변경 또는 포기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췄다. 오늘날, 이 연구는 한국 종교 인구 통계의 변화가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영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연구 저널 '여론 속의 여론'에서 수행한 연구는 한국 종교 인구 통계의 변화가 젊은 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의 젊은 층은 무신론자의 비율이 더 높은 경향이 있는 반면, 고령층은 비교적 종교적인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20세 전후의 한국인 중 33%가 종교를 믿는 반면, 60세 이상 인구의 61% 이상이 계속해서 종교를 믿는다. 이 연구는 또한 신자와 비신자의 인구 통계가 훨씬 더 많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특정 종교와 개인에게 종교가 소개된 연령이 개인이 평생 동안 종교를 유지할 확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전에 종교를 접한 사람과 50대 이후에 종교를 접한 사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대상자 101명 중 29명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18명은 초등학교 때, 9명은 40대에, 7명은 50대에 종교를 접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유사한 표준 편차를 유지했지만, 불교 신자들은 30대 즈음에 시작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의 젊은 세대가 점점 더 무종교적이 되어가고 한국이 전통적으로 종교적인 국가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종교 인구 통계의 발전은 국가의 문화, 정치 및 생활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3. 주요 종교

대한민국은 다종교 사회로, 다양한 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다. 주요 종교로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이 있다.

불교삼국 시대중국으로부터 유입되어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나, 조선 시대에 억압을 받았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불교는 동부 지역에서 강세를 보인다. 2005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불교 신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 불교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 다양한 종파가 있다.

그리스도교(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가 주를 이루며, 오순절교회와 초교파 교회도 존재한다. 기독교는 18세기 말 천주교 전래 이후,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1970~80년대에 크게 성장했으며, 서부 지역에서 우세를 보인다.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조상 숭배 의례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여 배격하며, 불교 및 전통 신앙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유교조선 시대의 지배적인 이념이었으나, 현대에는 신봉자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교 윤리 사상은 여전히 한국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문묘 제례와 같은 유교 의례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무속(무교 또는 신교)은 한국의 토착 신앙으로, 무당(박수)을 통해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최근 부활하고 있다.

3. 1. 불교



불교(佛敎, ''Bulgyo'')는 삼국 시대 (372년, 즉 4세기)에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로 유입되었다.[26] 남북국 시대 (698–926)와 그 이후의 고려 (918–1392) 시대에 지배적인 종교적,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조선 왕조 (1392–1910) 시대에는 한국 유교가 국가 이념이자 종교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불교는 500년 동안 억압을 받았다.[29] 현대 대한민국에서 불교는 영남과 강원도 지역, 그리고 제주 지역 등 동부 지역에서 더 강세를 보인다.

2005년 정부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4분의 1이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52] 그러나 불교 신자는 불교가 한국 전통 문화에 통합되면서 형식적인 종교라기보다는 철학이자 문화적 배경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 결과, 종교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불교 전통의 영향을 깊이 받는다. 따라서 세속적인 신자나 불교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대한민국 불교 신자의 수는 훨씬 더 많다고 여겨진다.[53]

한국 불교에는 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파"가 있다. 2005년 기준으로 907개 주요 한국 불교 사찰을 종파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51]

907개 주요 한국 불교 사찰, 종파별 (2005년)
종파사찰 수
조계종(조계종/曹溪宗)735 (81%)
천태종 (천태종/天台宗)144 (16%)
태고종 (태고종/太古宗)102 (11%)
법화종 (법화종/法華宗)22 (2%)
선학원 (선학원/禪學院)16 (2%)
원효종 (원효종/元曉宗)5 (1%)
기타27 (3%)



압도적으로 많은 수(90% 정도)의 사찰은 대한불교 조계종에 소속되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의 전통과 결합된 종파이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사찰인 불국사범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에 의해 운영되며, 서울 중심부의 조계사가 그 총본산이다.

그 외 한국 불교의 전통은 "태고종"과 "천태종" 계통을 포함한다. 천태종은 한국에서 법화경에 초점을 맞춘 현대의 부흥이며, 태고종은 선의 일종이다. 또 다른 계통인 진각종은 밀교 계열의 불교이다. 태고종과 진각종은 승려의 결혼을 허용하는 반면, 조계종과 천태종은 승려에게 금욕 생활을 요구한다. 한국에는 서양에서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소규모 종파가 있다.

많은 불교 신봉자들은 불교 수행과 샤머니즘을 결합한다.

3. 2. 기독교

전주시 전동성당


대한민국에서 그리스도교(기독교/基督敎 ''Gidoggyo'')는 가톨릭교회(천주교/天主敎),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네 교파가 주를 이룬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오순절교회이며, 일부 초교파 교회도 존재한다.[80] 2015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 신자는 960만 명, 가톨릭 신자는 380만 명이었다. 소규모의 동방 정교회 공동체도 존재한다.

기독교는 18세기 말 천주교 전래를 시작으로, 19세기 말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확산되었다.[56] 이승훈이 베이징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한국인 외교관으로 귀국한 지 10년이 지나서야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했다.[56] 그는 한국에서 풀뿌리 평신도 가톨릭 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미 베이징의 황실에 거주하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저술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실학'' 학자들은 가톨릭 교리에 매료되었고, 이는 1790년대 가톨릭 신앙이 확산되는 주요 요인이었다.[57]

개신교 선교단은 1880년대조선에 들어와 가톨릭 성직자들과 함께 수많은 조선인을 개종시켰다. 감리교와 장로교가 특히 성공했다. 그들은 학교, 대학, 병원, 고아원을 세우고 조선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쇠퇴한 한국 불교의 상황, 지식인 엘리트의 지지, 한국 교회 구성원 간의 자립과 자치를 장려한 점, 그리고 기독교가 한국 민족주의와 동일시된 점 등은 가톨릭과 개신교 성장에 기여한 요인이다. 기독교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괄목할 만하게 성장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지속적으로 성장했지만, 그 속도는 둔화되었다. 기독교는 특히 서울, 인천, 경기와 호남 지역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서부 지역에서 우세를 보인다.[80]

일부 개신교 교단에서는 유교적 전통과 조상 숭배 의례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여 배격하며,[74][75][76][77][78][53] 불교 및 전통 신앙 시설을 훼손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불교 신자와 전통 종교 신자들을 상대로 적대 행위를 저질렀다. 여기에는 사찰 방화, 불상과 보살상의 머리 절단, 불상이나 다른 불교 및 타 종교 재산에 붉은 십자가를 칠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47] 이러한 행위 중 일부는 교회 목사들에 의해 조장되기도 했다.

3. 3. 유교

현대 대한민국 국민 중 유교(儒敎, ''Yugyo'') 신봉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 지식인들은 역사적으로 독자적인 한국 유교를 발전시켰다.[110][111] 그러나 조선 왕조의 멸망과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중국의 영향력 쇠퇴로 인해 유교는 쇠퇴했다. 유교 윤리 사상은 다른 종교적 실천과 전반적인 한국 문화에 여전히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교 의례는 일 년 중 다양한 시기에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서울 문묘에서 매년 열리는 연례 의례이다. 씨족 창시자를 기리는 의례와 같은 다른 의례는 전국 곳곳의 사당에서 열린다.[112][113]

문묘에서의 제례 (1935년 이전).


현재 한국인 중 단 0.2%만이 "유교"를 자신의 종교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유교의 윤리 사상이 다른 종교의 실천과 한국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유교 의례는 지금도 1년 내내 다양한 행사에서 행해진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서울의 문묘에서 열리는 연례 의례이다. 그 외의 의례는, 예를 들어 일족의 창시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당에서 행해진다.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은 세속적인 사람들과 다른 종교의 신자들까지도 행하는 유교 전통과 조상 숭배 의례를 포함한 문화의 혼합주의적 측면에 계속 반대하고 있다.[74][75][76][77][78][53] 결과적으로,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 특히 개신교인들은 이러한 한국 고유의 전통을 버렸다.[79][80]

193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전통적인 민간 의례 금지가 해제된 후,[74] 많은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공개적으로 ''제사''(조상 숭배 의례)를 지낸다. 한국 전통은 중국과 일본에서 발견되는 제도적 종교적 조상 숭배와는 매우 다르며, 가톨릭교에 부속된 것으로 쉽게 통합될 수 있다. 반대로, 개신교인들은 이 관습을 완전히 버렸다.[80]

3. 4. 무속

한국 무속은 "무교(巫敎)"(巫敎|무교중국어) 또는 "신교(神敎)"(神敎|신교중국어)라고도 불리는 한국의 토착 신앙이다.[81][82][83] 무당(여성) 또는 박수(남성)를 통해 신과 인간을 연결하고, 굿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87]

현대 한국어에서 여성 무당은 ''무당''(巫堂), 남성 무당은 ''박수''라고 불리지만, 다른 이름과 표현도 사용된다.[84] 한국어 ''무''(巫)는 남녀 모두를 지칭하는 중국어 ''무''(巫)와 같은 의미이다.[85] ''무당''의 역할은 굿(의식)을 통해 인간 삶의 발전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영 또는 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87]

무속 신앙의 중심에는 "모든 존재의 근원",[88] 모든 자연신의 최고의 신 또는 최고 정신을 의미하는 ''하느님'' 또는 ''환인''과의 상호 작용이 있다.[85][89]

한국 종교는 중국의 무교와 유사하며,[92] 시베리아, 몽골, 만주 종교 전통과 유사하다.[92] 일부 연구에서는 한국의 조상신인 단군을 우랄 알타이어의 텡그리(Tengri) "하늘", 무당, 왕자와 연결짓기도 한다.[93][94] 무속은 천도교증산교와 같은 일부 한국 신종교에 영향을 미쳤다.[95]

무당은 도시의 아픈 사람들, 특히 최근 시골에서 이주하여 도시 생활에 적응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기도 한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신도 파괴 운동"을 통해 한국 종교의 사찰 및 신사를 파괴하기도 하였다.[97][98]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무속이 부활했다.[99][100]

4. 기타 종교

대한민국에는 주요 종교 외에도 다양한 소수 종교들이 존재한다.

원불교는 1916년 박중빈이 창시한 한국의 신종교이며, 천도교는 19세기 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을 계승한 종교이다.[101] 대종교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숭배하는 종교이며,[104]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다. 증산교는 강증산(강일순)의 마법적 수행과 종말론적 가르침을 강조하는 종교로, 20세기 초에 창시되었다.[105]

서울에 있는 모스크


한국의 이슬람교 인구는 약 4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 전쟁 시기에 개종한 사람들과 그 후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에서 온 10만 명의 무슬림 노동자도 있다.[115]

바하이 신앙은 미국 여성 애그니스 알렉산더에 의해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다.[109] 힌두교는 대한민국 내 소규모 인도인, 네팔인 및 발리 출신 이주민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요가와 베단타와 같은 힌두교 전통은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114] 시크교 신자는 50년 동안 대한민국에 존재해왔으며, 최초의 대한민국 구르드와라는 2001년에 세워졌다.[118] 유대교의 경우, 한국 전쟁을 계기로 그 존재가 시작되었으며, 오늘날 유대계 커뮤니티는 매우 작고 서울 수도권에만 한정되어 있다.

4. 1. 원불교

원불교는 1916년 박중빈이 창시한 한국의 신종교이다.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현대 사회에 맞게 재해석한 종교이다.

4. 2. 천도교

천도교(天道敎)는 19세기 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을 계승한 종교이다.[101] 동학은 "외래 종교"의 부상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으며, 여기에는 불교와 서학의 일부인 기독교가 포함되었다.[102] 최제우는 하느님을 경험하고 질병으로부터 치유된 후 동학을 창시했다고 한다.

동학 운동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고, 1864년 조선 정부는 최제우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은 계속 성장하여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을 일으켰다. 1945년 한국 분단 이후 대부분의 천도교 공동체는 북쪽에 남아 있었으며,[35] 오늘날 남한에는 수천 명의 신자만이 남아있다.

천도교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은 "신성함"을 가지고 있으며, "인내천"이 있으므로 존경받아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자신의 삶에서 신성함을 발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성실하게 가꾸어야 하며, 이는 의식이나 세레모니가 아닌 자기 수련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신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학자나 고위 관리와 마찬가지로 노력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으며, 한국의 민주화와 반권위주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천도교는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잡지인 개벽을 지원하며 한국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북한에서는 천도교를 민족 (민중) 운동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103] 남한에서는 그 사회적, 역사적 중요성이 대체로 무시되어 왔다.

4. 3. 대종교

대종교단군을 민족의 시조로 숭배하는 종교이다.[104]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데 기여하였다. 대종교는 천도교와 더불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토착 신앙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종파 중 하나이다.[104]

4. 4. 증산교 계열 종교

강증산(강일순)의 마법적 수행과 종말론적 가르침을 강조하는 증산교는 20세기 초에 창시된 종교이다.[105] 대순진리회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종단으로, 태극도에서 파생되었으며, 증산도는 해외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106] 100개 이상의 "증산교"가 있으며, 현재는 소멸된 보천교도 있다. 증산교는 우주가 일으키는 지상의 기후 변동이나 다른 재앙 이후 지상에 낙원을 만들고, 신봉자들은 대변동에서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으며, 다가오는 세계 문명의 붕괴와 마술의 실천을 강조한다. 증산교는 몇몇 경쟁하는 종파로 분리되었고, 그들 중 하나는 접근 방법을 현대화하여 일부 한국인이 아닌 신봉자를 모으고 있다.

4. 5. 이슬람교



한국의 무슬림 인구는 약 4만 명으로 추산되며, 한국 전쟁 시기에 개종한 사람들과 그 후손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온 노동자는 포함하지 않는다. 가장 큰 모스크는 이태원 지역에 있는 서울중앙성원이다. 더 작은 모스크는 주요 도시 대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순수 한국인 무슬림 외에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이슬람 국가에서 한국으로 온 10만 명의 무슬림 노동자가 살고 있다.[115]

4. 6. 기타

바하이 신앙은 미국 여성 애그니스 알렉산더에 의해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다.[109]

힌두교는 대한민국 내 소규모 인도인, 네팔인 및 발리 출신 이주민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요가와 베단타와 같은 힌두교 전통은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 내 힌두교 사원으로는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스리 라다 샴수다르 만디르, 서울 광역시에 위치한 스리 락슈미 나라야난 사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히말라야 명상 및 요가 사다나 만디르, 그리고 서울 외곽 20km 떨어진 의정부시에 위치한 스리 스리 라다 크리슈나 사원 등이 있다.[114]

시크교 신자는 50년 동안 대한민국에 존재해왔다. 최초의 대한민국 구르드와라는 2001년에 세워졌다.[118] 현재 대한민국에는 약 550명의 시크교 신자가 있으며, 최근에 시크교 신자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허용되었다.[119]

한국에서의 유대교인의 존재감은 1950년 한국 전쟁 개시와 함께 극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때는 선교사 Chaim Potok|체임 포토크영어를 포함하여 많은 수의 유대인 병사가 한반도에 왔다. 오늘날 유대계 커뮤니티는 매우 작고 서울 수도권에만 한정되어 있다. 한국인의 유대교 개종자도 매우 적다.

5. 종교 인구 통계

대한민국의 종교 인구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1985년부터 2015년까지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무종교 인구 비율이 대체로 가장 높았으며, 불교, 개신교, 천주교 순으로 나타났다.[143]

연도무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기타
198551.2%26.1%16%4.4%2.3%
199549.3%23.2%19.7%6.6%1.2%
200546.9%22.8%18.3%10.9%1.1%
201556.1%15.5%19.7%7.9%0.8%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 1995, 2005, 2015)



2023년 조사에서는 무종교 51%,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로 나타났다.[144]

기독교는 신자와 비신자를 명확하게 구분하지만, 불교유교는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종교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세습되는 경향이 있어, 귀의와 같은 불교 신자 구분 서약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특정 종교 집단에 속하지 않더라도 전통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불교 사찰에서 기도하거나 유교식 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거나, 무속 신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122]

5. 1. 연도별 종교 인구 변화 (1950년 ~ 현재)

1980년대까지 무종교 인구가 가장 많았으나, 이후 기독교 인구가 증가하여 2000년대 초반까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기독교 인구는 감소하고 무종교 인구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불교 인구는 1990년대까지 증가하다가 2000년대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19][20][21][22][23]

연도무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기타
198551.2%26.1%16%4.4%2.3%
199549.3%23.2%19.7%6.6%1.2%
200546.9%22.8%18.3%10.9%1.1%
201556.1%15.5%19.7%7.9%0.8%
출처: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1985, 1995, 2005, 2015)



종교1950–1962[19]19851995[20]2005[21]2015[22]2024[23]
%%%%%%
기독교11,390,00026.0%13,461,00029.2%13,566,00027.6%16,030,10031%
(개신교)8,505,00019.4%8,446,00018.3%9,676,00019.7%10,342,00020%
(천주교)2,885,0006.6%5,015,00010.9%3,890,0007.9%5,688,10011%
불교10,154,00023.2%10,588,00022.8%7,619,00015.5%8,790,70017%
기타1,034,2002%
무교26,372,10051%



2024년 대한민국 지역별 종교 분포[24]
행정 구역개신교천주교불교기타무교
서울22%13%13%1%51%
인천/경기22%12%12%2%52%
대전/세종/충청21%10%17%2%51%
광주/전라25%10%11%3%50%
대구/경북15%10%24%2%49%
부산/울산/경남14%7%29%2%48%
강원도/제주17%11%19%2%52%
전국20%11%17%2%51%



2023년 종교인구 비율은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 종교 없음 51%였다.[144]

5. 2. 연령별, 성별 종교 분포 (2015년, 2024년)

201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무종교 인구 비율이 56.1%로 가장 높았으며, 개신교(19.7%), 불교(15.5%), 천주교(7.9%) 순이었다.[22] 2024년 조사에서는 무종교 인구 비율이 51%로 여전히 가장 높았고, 개신교(20%), 불교(17%), 천주교(11%) 순으로 나타났다.[23] 젊은 세대일수록 무종교 비율이 높고, 고령층일수록 종교를 가진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인다.

나이 [25]개신교천주교불교기타 종교무교
18–29세13%7%8%2%69%
30–39세16%9%11%2%63%
40–49세20%9%14%2%56%
50–59세20%9%20%2%49%
60–69세23%14%23%1%38%
70세 이상29%18%22%2%30%
기타 종교에는 원불교, 유교, 천도교, 대순진리회, 대종교, 증산교가 포함된다.



성별개신교천주교불교기타 종교무종교
남성18%10%16%2%55%
여성22%12%17%2%47%
기타 종교에는 원불교, 유교, 천도교, 대순진리회, 대종교, 증산교 등이 있다.


5. 3. 지역별 종교 분포 (2024년)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서울, 인천/경기 지역은 개신교와 천주교 비율이 높고,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불교 비율이 높다. 전반적으로 수도권과 호남 지역은 기독교세가 강하고, 영남 지역과 강원도, 제주도는 불교세가 강한 경향을 보인다.

기독교 단체를 제외하면, 불교도와 유교를 구별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귀의 계통 등 불교도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별하는 서약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종교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세습되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이 붕괴되었고 발견하기 어렵다.[122]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전통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아왔다. 한국인이 불교 사찰에서 기도하거나 유교의 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거나, 무당에게 상담하거나 굿을 지원하는 것조차 드물지 않다.[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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