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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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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조도일은 709년에 태어나 788년에 입적한 중국 당나라 시대의 선승이다. 그는 남악 회양의 제자였으며, 홍주 개원사에서 포교를 시작하여 마조 선으로 불리는 독자적인 선 사상을 확립했다. 마조는 "평상심시도"와 "즉심시불"을 강조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의 사상은 임제종, 위앙종 등 선종 여러 종파에 영향을 미쳤으며, 한국 선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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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도일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마조 도일
이명마조(馬祖)
바소(Baso, 로마자 표기)
법명도일(道一)
출생709년
출생지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한주(漢州) 십방현(什方縣)
사망788년 3월 13일 (음력 2월 1일)
사망지강서성(江西省) 정안현 보봉향 석문산 보봉사(寶峰寺)
국적중국
종교불교
종파선불교, 홍주종
사원홍주 개원사
시호대적선사(大寂禪師)
가계
속성마씨(馬氏)
스승 및 제자
스승처적
남악회양
제자백장회해
남전보원
가르침
주요 사상즉심즉불(卽心卽佛)
기타
관련 인물임제 의현
저서『마조대적선사어록』
칭호선불교 8대 조사
마조도일의 초상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시모무라 간잔(下村觀山, 1873-1930)이 그린 마조도일의 초상

2. 생애

마조도일은 709년 쓰촨성에서 태어나, 스승으로서의 생애를 장시성에서 보냈기 때문에 "장시 다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29] 그는 788년에 입적할 때까지, 769년부터 홍주 개원사에서 포교 활동을 하는 등[1] 불교 발전에 힘썼다. 그의 생애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연도사건
709년한주 십방현에서 출생
710년대자주 처적에게 출가
729년파서에서 수계
730년대난위에 화이장에게서 법을 이음
769년홍주 개원사에서 포교
788년석문산 보법사(강서성 의춘시 정안현)에서 입적, 대적선사로 시호됨


2. 1. 출생과 출가

마조(馬祖)의 성은 마(Ma)씨로, '마 씨의 조상' 또는 '마 선생'을 의미한다. 그는 709년 청두 북서쪽 쓰촨성에서 태어났다. 마조는 스승으로서의 생애 동안 장시성에서 살았으며, 이로 인해 "장시 다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1004년에 편집된 ''전등록''에는 마조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 그의 외모는 놀라웠다. 그는 황소처럼 걸어 다니며 호랑이처럼 주위를 노려보았다. 혀를 뻗으면 코 위까지 닿았고, 발바닥에는 두 개의 둥근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전등록''에 따르면, 마조는 후난성 헝산에서 난웨 화이rang(677-744)의 제자였다.

''전등록''의 난웨 화이rang에 대한 기록에 나오는 이야기는 마조의 깨달음의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해당 텍스트는 이를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더 초기의 원시적인 버전은 952년에 기록된 ''조당집''에 나타난다.

> 마 스님은 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랑 스님은 기와를 가져와 그를 마주보고 바위에 앉아 그것을 갈고 있었다. 마 스승이 물었다,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 랑 스승은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 스승은 "기와를 갈아서 어떻게 거울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화이rang] 스승은 "기와를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다면, 좌선으로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유마경육조단경에서 정화적이고 점진적인 수행 대신 직관을 통한 불성에 대한 통찰력을 낮추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2. 남악회양과의 만남

마조도일은 난웨 화이rang(677-744)의 제자였다.[31] ''전등록''에 따르면, 마조는 후난성 헝산에서 난웨 화이rang을 만났다.

''전등록''의 난웨 화이rang에 대한 기록은 마조의 깨달음 이야기로 여겨지지만, 해당 텍스트는 이를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31] 이 이야기의 초기 버전은 952년에 기록된 ''조당집''에 나타난다. 유마경육조단경에서는 정화적이고 점진적인 수행 대신 직관을 통한 불성에 대한 통찰력을 낮추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묘사된다.[31]

마조의 전기에는 마조가 스승인 남악 회양에게 좌선 수행에 대해 꾸짖음을 받는 유명한 일화가 묘사되어 있다. 회양은 부처가 되기 위해 좌선을 하는 것을 거울을 만들기 위해 기와를 닦는 것에 비유했다.[31] 이 만남에서 남악 회양은 마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그대는 좌선을 수행하는 것인가, 부처처럼 앉는 것을 수행하는 것인가? 좌선에 관해서 말하자면, 선(禪)은 앉는 것도 아니고 눕는 것도 아니다. 부처처럼 앉는 것에 관해서 말하자면, 부처에게는 정해진 형상이 없다. 무주(無住)의 법(法) 안에서, 붙잡거나 거부해서는 안 된다. 만약 부처처럼 앉으려 한다면, 그대는 그저 부처를 죽이는 것이다. 만약 앉는 형상에 집착한다면, 그대는 결코 진리를 깨닫지 못할 것이다."[31]

포르는 이러한 비판이 "'어떤 수행을 통해서든 '부처가 된다'는 생각, 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격하된 생각'"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다.[31] 루이스 고메즈는 많은 초기 선종 학교가 좌선 수행을 완전히 거부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텍스트가 문헌에 존재한다고 언급한다.[32] 야나기다 세이잔에 따르면 마조는 형식적인 좌선을 거부했다.[33] 반면, 마리오 포체스키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그러한 비판을 선 수행 자체에 대한 거부보다는 선 수행의 올바른 방법에 대한 경고로 본다.[34] 포르는 좌선에 대한 비판이 당나라 사회에서 승려들의 사회 경제적 역할과 지위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며, 제르네를 인용하여 "거룩한 경전을 암송하고 ''선''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은 경건한 일만 수행했다"고 말한다.[31] 규봉 종밀은 집중과 지혜의 균형을 추구했는데, 그의 영향으로 좌선은 남종선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았다.[31]

2. 3. 홍주 개원사에서의 활동

마조는 달마의 계승자가 되어 난위에 화이장의 법을 이었다. 결국 마조는 장시성 남부 간캉 근처 쿵쿵산에 정착하여 사찰을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모았다.[1]

마조 도일은 전통적으로 혜능의 계보에 있는 제자로 묘사되는데, 그의 스승 난위에 화이장이 혜능의 제자이자 계승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혜능과 난위에 화이장의 이러한 연결은 의심스러운데, 이는 마조 도일을 전통적인 계보에 포함시키기 위해 후대에 선종 역사를 다시 쓴 결과로 보인다.[1]

마조 도일은 선불교 형성에 있어서 매우 영향력 있는 가르침의 스승이었다. 선종은 송나라 시대에 불교의 지배적인 종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의 당나라 시대와 마조 도일의 홍저우 종파는 선종의 "황금기"로 여겨졌다. 안사의 난 (755-763)으로 당나라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수도권 선종은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다른 종파들이 군벌이 통제하는 외곽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선종의 선구자들이다.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며, 선회의 설법의 힘은 그들이 모두 혜능에게서 기원한다는 사실로 나타난다."[1]

홍저우 종파는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외침, 구타, 비합리적인 반론과 같은 충격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기술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선사들의 전통적이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일부는 나중의 오해와 번역 오류, 예를 들어 "캇츠"라고 알려진 큰 배꼽 외침과 같은 것 때문이었다. 중국어에서 "캇츠"는 "외치다"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외쳤다 '캇츠'"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외침을 외쳤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1]

769년, 마조는 홍주 개원사에서 포교하였다.[1]

2. 4. 입적

788년 당나라 장시성 의춘시 정안현 석문산 보법사에서 입적[1]하였고, 대적선사로 시호되었다.[1]

3. 사상

마조는 본질-기능 패러다임에 따라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나며, 그 기능이 곧 불성과 동일하다고 가르쳤다.[3] 진화 지아(Jinhua Jia)는 마조가 모든 현상이 여래의 발현이라는 화엄의 본기(性起) 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4] 본기 교리는 원리와 현상의 무애(理-事 無碍)라는 관련 화엄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5] 여기서 "원리"(理)는 여실(如實)과 같은 마음을, "현상"(事)은 생멸(生滅)의 대상이 되는 마음을 의미한다.[6] 법장은 여래장이 조건에 따라 모든 현상을 성취한다고 설명하며, "원리와 현상은 서로 융합하여 막힘이 없으니, 일심과 두 가지 진리도 막힘이 없다"고 말한다.[7][8] 마조 역시 "절대와 현상은 차이가 없으며, 둘 다 묘한 기능이다"라고 가르쳤다.[9]

지아는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난다는 마조의 이론은 화엄의 본기 교리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고 보았다. 화엄 이론에서 순수한 불성은 오염된 현상을 일으키고 중생의 깨달음을 실현하게 하더라도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지만, 마조는 순수함과 오염이 혼합된 인간의 마음과 삶의 자발적이고 평범한 상태가 불성과 동일하다고 보았다.[10]

마조는 도를 닦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데, 닦음을 통해 얻는 모든 것은 쇠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21] 그는 "\[그것]은 원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도를 닦고 좌선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닦음도 좌선도 없다. 이것이 여래의 순수한 선이다."라고 말한다.[22] 그러나 도를 닦을 수는 없지만, "의도적인 창조와 행위"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고, 다만 그것을 더럽히지 않으면 된다. 무엇이 오염인가? 생사의 마음과 창조와 행위의 의도를 가질 때, 이 모든 것이 오염이다."라고 설명한다.[23]

마조 도일은 제자들이 일상적인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갈(갑작스러운 외침), 때리기, 발로 차기, 제자가 떠날 때 예상치 못하게 이름을 부르는 등 새롭고 파격적인 가르침을 사용했다. 침묵, 무응답, 제자의 코를 비트는 행동을 통해 가르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활용하여 제자들이 습관적인 감정과 사고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했다.[35] 존 맥레이는 제자가 떠날 때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제자의 주의를 자동적인 반응("예?")의 완벽함으로 이끈다고 지적한다. 이는 "인지의 기본적인 능력, 인간 정신의 단순한 작용"을 "원초적인 인지 능력"으로 나타낸다.[36][37]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 사상에서는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며, 평상심시도(평상심이 곧 도), 즉심즉불 등 한마디로 깨달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또한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이를 통해 다채로운 제자를 길러내는 동시에 사대부 계급에서 수많은 신자를 얻어 마침내 선의 정통 계승자 자리를 하택종으로부터 빼앗았다.

3. 1.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임제 의현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고 야나기다가 본 "인간의 근본 가치"를 마조는 긍정했으며, 진화 지아는 이를 마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11] "평상심이 도(道)이다"는 아마도 마조의 가장 유명한 슬로건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도를 직접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곧 도이다. 평상심이란 무엇인가? 의도적인 창조나 행위가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며, 붙잡거나 거부하는 것이 없고, 소멸하거나 영원한 것이 없으며, 속되거나 신성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경전에 이르기를, "평범한 사람들의 수행도, 성자들의 수행도 아니니, 그것이 곧 보살의 수행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바로 도이니, 걷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조건에 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12]


지아는 "절대적인 불성(佛性)을 평범한 인간의 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마조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궁극적인 진실이자 가치임을 확인했다"고 말한다.[13] 마찬가지로, 피터 그레고리에 따르면, 마조의 홍주종은 본질(불성)을 기능("좋든 나쁘든, 깨닫든 미혹되든 모든 활동")으로 융합한다.[14] 분주 무야가 마조에게 "이 마음이 부처이다"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마조는 "바로 그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니,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15]

마조의 설법은 깨달음과 무지가 거짓된 이분법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본래 무지함이 없기" 때문에 "깨달음 역시 세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16] 그는 "무한한 겁(劫) 이래로 모든 중생은 사마디의 법성(法性)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항상 법성의 사마디 속에 머물러 왔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말하고 응대하고, 육근(六根)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이 곧 법성이다"라고 말한다.[17] 따라서, 마조가 말했듯이 "당신은 스스로 다이아몬드-사마디이며, 다시 집중을 통해 사마디를 얻으려고 의도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사마디에 들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18]

마조는 마음은 본래 "청소하고 닦을 필요 없이" 순수하다고 가르쳤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마음은 본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의도적인 창조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순수했고 현재에도 순수하며, 청소하고 닦을 필요가 없다. 자성은 열반을 얻고, 자성은 순수하며, 자성은 해탈이며, 자성은 [망상에서] 벗어난다.[24]

자(Jia)가 지적하듯이, 마조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는 본각(benjue)의 교리와 관련이 있다.[25] 실제로 마조는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의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부처와 동일하다고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26]

''대승기신론''에서 본각은 "불각"(bujue)과 "실현된 깨달음"(shijue)이라는 두 가지 다른 용어와 함께 자리하며, 이 세 가지는 종교적 수행의 순환을 형성한다.[27] 즉, ''대승기신론''에서 모든 중생은 본래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이것이 불각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현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종교적 수행에 참여해야 하며, 이는 다시 본각으로 이어진다.[28] 그러나 자(Jia)가 지적하듯이, 마조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 ''대승기신론''이 불각에서 실현된 깨달음으로 나아가 본각을 되찾기 위한 수행의 순환을 가르치는 반면, 마조는 순환을 단순화하여 본각만을 강조한다.[29] 따라서 종교적 수행의 필요 없이 "본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30]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 사상에서는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며, "평상심시도"(병상심시도), "즉심즉불" 등 한마디로 깨달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3. 2. 즉심시불(卽心是佛)

마조는 본질-기능 패러다임에 따라,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나며 그 기능이 곧 불성과 같다고 가르쳤다.[3] 이는 모든 현상이 여래의 발현이라는 화엄의 본기(性起) 교리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4] 화엄의 본기 교리는 원리와 현상의 무애(理-事 無碍)라는 가르침과 관련이 깊다.[5] 여기서 "원리"(理)는 여실(如實)과 같은 마음을, "현상"(事)은 생멸(生滅)의 대상이 되는 마음을 의미한다.[6] 법장은 여래장이 조건에 따라 모든 현상을 성취한다고 설명하며, "원리와 현상은 서로 융합하여 막힘이 없으니, 일심과 두 가지 진리도 막힘이 없다"고 말한다.[7][8] 마조 역시 "절대와 현상은 차이가 없으며, 둘 다 묘한 기능이다"라고 가르쳤다.[9]

그러나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난다는 마조의 이론은 화엄의 본기 교리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화엄 이론에서 순수한 불성은 오염된 현상을 일으키고 중생의 깨달음을 실현하게 하더라도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는다. 반면 마조는 순수함과 오염이 혼합된 인간의 마음과 삶의 자발적이고 평범한 상태가 불성과 동일하다고 보았다.[10]

이러한 교리적 맥락에서 마조는 임제 의현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던 "인간의 근본 가치"를 긍정했다.[11] "평상심이 도(道)이다"라는 말은 마조의 유명한 가르침이다. 그는 평상심이란 의도적인 행위, 옳고 그름, 붙잡거나 거부하는 것, 소멸하거나 영원한 것, 속되거나 신성한 것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12]

마조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궁극적인 진실이자 가치임을 확인했다.[13] 홍주종은 본질(불성)을 기능("좋든 나쁘든, 깨닫든 미혹되든 모든 활동")으로 융합한다.[14] 마조는 분주 무야에게 "바로 그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니,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말한다.[15]

마조는 깨달음과 무지가 거짓된 이분법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본래 무지함이 없기" 때문에 "깨달음 역시 세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16] 그는 "무한한 겁(劫) 이래로 모든 중생은 사마디의 법성(法性)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항상 법성의 사마디 속에 머물러 왔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말하고 응대하고, 육근(六根)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이 곧 법성이다"라고 말한다.[17] 따라서 의도적으로 사마디에 들려고 할 필요가 없었다.[18]

마조는 마음은 본래 순수하여 "청소하고 닦을 필요 없이" 순수하다고 가르쳤다.[24] 이는 본각(benjue)의 교리와 관련이 있다.[25] 마조는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의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부처와 동일하다고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26]

''대승기신론''에서 본각은 "불각"(bujue)과 "실현된 깨달음"(shijue)이라는 두 가지 다른 용어와 함께 종교적 수행의 순환을 형성한다.[27] 즉, ''대승기신론''에서 모든 중생은 본래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이것이 불각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현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종교적 수행에 참여해야 하며, 이는 다시 본각으로 이어진다.[28] 그러나 마조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 ''대승기신론''이 불각에서 실현된 깨달음으로 나아가 본각을 되찾기 위한 수행의 순환을 가르치는 반면, 마조는 순환을 단순화하여 본각만을 강조한다.[29] 따라서 종교적 수행의 필요 없이 "본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30]

마조의 선 사상은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며,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했다. "평상심시도", "즉심즉불" 등의 명언을 남겼으며,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많은 제자와 신자를 얻었다.

3. 3. 대기설법(對機說法)

본질-기능 패러다임에 따라, 마조는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나며, 그 기능이 곧 불성과 동일하다고 가르쳤다.[3] 진화 지아(Jinhua Jia)는 마조가 모든 현상이 여래의 발현이라는 화엄의 본기(性起) 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4] 본기 교리는 원리와 현상의 무애(理-事 無碍)라는 화엄 가르침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5] 여기서 "원리" (리, 理), 즉 절대는 여실(如實)과 같은 마음을 의미하고, "현상" (사, 事)은 생멸(生滅)의 대상이 되는 마음을 의미한다.[6] 화엄 종주 법장은 그 자성이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 여래장이 조건에 따라 모든 현상을 성취한다고 설명한다.[7] 그는 "원리와 현상은 서로 융합하여 막힘이 없으니, 일심과 두 가지 진리도 막힘이 없다"고 말한다.[8] 마조는 "절대와 현상은 차이가 없으며, 둘 다 묘한 기능이다"라고 가르쳤다.[9]

지아는 불성이 기능으로 나타난다는 마조의 이론은 화엄의 본기 교리와 유사하지만,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이들의 이론적 틀은 같지만, 화엄 본기의 목표와 내용, 그리고 기능이 불성과 동일하다는 마조의 생각은 그럼에도 다르다. 화엄 이론에서 순수한 불성은 오염된 현상을 일으키고 모든 중생의 깨달음을 실현하게 하더라도 영원히 더럽혀지지 않는다. 마조의 교리에서는 순수함과 오염이 혼합된 인간의 마음과 삶의 자발적이고 평범한 상태가 불성과 동일하다."[10]

이러한 교리적 맥락 안에서 마조는 임제 의현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고 야나기다가 본 "인간의 근본 가치"를 긍정했으며, 진화 지아는 이를 마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11] "평상심이 도(道)이다"는 마조의 가장 유명한 슬로건이었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만약 도를 직접 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곧 도이다. 평상심이란 무엇인가? 의도적인 창조나 행위가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며, 붙잡거나 거부하는 것이 없고, 소멸하거나 영원한 것이 없으며, 속되거나 신성한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경전에 이르기를, "평범한 사람들의 수행도, 성자들의 수행도 아니니, 그것이 곧 보살의 수행이다."라고 하였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바로 도이니, 걷고, 머무르고, 앉고, 눕고, 조건에 응하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12]

지아는 "절대적인 불성(佛性)을 평범한 인간의 마음과 동일시함으로써 마조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궁극적인 진실이자 가치임을 확인했다"고 말한다.[13] 피터 그레고리에 따르면, 마조의 홍주종은 본질(불성)을 기능("좋든 나쁘든, 깨닫든 미혹되든 모든 활동")으로 융합한다.[14] 분주 무야가 마조에게 "이 마음이 부처이다"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자, 마조는 "바로 그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니, 다른 어떤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15]

마조의 설법은 깨달음과 무지가 거짓된 이분법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본래 무지함이 없기" 때문에 "깨달음 역시 세울 필요가 없다"고 한다.[16] 그는 "무한한 겁(劫) 이래로 모든 중생은 사마디의 법성(法性)에서 벗어난 적이 없으며, 항상 법성의 사마디 속에 머물러 왔다. 옷을 입고, 음식을 먹고, 말하고 응대하고, 육근(六根)을 사용하는 모든 활동이 곧 법성이다"라고 말한다.[17] 따라서, 마조는 "당신은 스스로 다이아몬드-사마디이며, 다시 집중을 통해 사마디를 얻으려고 의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며, 의도적으로 사마디에 들려고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했다.[18] 또한 마조는 도는 닦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닦음을 통해 얻는 모든 것은 쇠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21] 마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그것]은 원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도를 닦고 좌선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닦음도 좌선도 없다. 이것이 여래의 순수한 선 (선)이다."[22]

그러나 도를 닦을 수는 없지만, 마조는 그것이 "의도적인 창조와 행위"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도는 닦을 필요가 없고, 다만 그것을 더럽히지 않으면 된다. 무엇이 오염인가? 생사의 마음과 창조와 행위의 의도를 가질 때, 이 모든 것이 오염이다."[23]

따라서 마조는 마음은 본래 "청소하고 닦을 필요 없이" 순수하다고 가르쳤다. 마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마음은 본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하며, 의도적인 창조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것은 본래 순수했고 현재에도 순수하며, 청소하고 닦을 필요가 없다. 자성은 열반을 얻고, 자성은 순수하며, 자성은 해탈이며, 자성은 [망상에서] 벗어난다.[24]

지아는 마조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는 본각(benjue)의 교리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25] 마조는 "여러분 모두는 여러분의 마음이 부처이고, 이 마음이 부처와 동일하다고 믿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26]

''대승기신론''에서 본각은 "불각"(bujue)과 "실현된 깨달음"(shijue)이라는 두 가지 다른 용어와 함께 자리하며, 이 세 가지는 종교적 수행의 순환을 형성한다.[27] ''대승기신론''에서 모든 중생은 본래 깨달음을 얻었지만,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며, 이것이 불각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현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종교적 수행에 참여해야 하며, 이는 다시 본각으로 이어진다.[28] 그러나 지아는 마조의 접근 방식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대승기신론''이 불각에서 실현된 깨달음으로 나아가 본각을 되찾기 위한 수행의 순환을 가르치는 반면, 마조는 순환을 단순화하여 본각만을 강조한다.[29] 따라서 종교적 수행의 필요 없이 "본래 존재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30]

마조 도일은 제자들이 일상적인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새롭고 파격적인 가르침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된다. 마조는 갈(갑작스러운 외침), 때리기, 발로 차기, 제자가 떠날 때 예상치 못하게 이름을 부르는 혁신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침묵, 무응답, 제자의 코를 비트는 행동을 통해 가르침을 전달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충격을 활용하여 제자들이 습관적인 감정과 사고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했다. 비엘레펠트는 이러한 방법들이 선(禪)에서 본질(t'i)에서 기능(yung)으로의 강조점 변화를 반영한다고 보았다.[35]

존 맥레이는 제자가 떠날 때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제자의 주의를 자동적인 반응("예?")의 완벽함으로 이끈다고 지적한다. 오가와 타카시를 따라 맥레이는 "부처와 같은 평범한 마음이 마치 거울의 헌신적이고 순수한 반사처럼 항상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자에게 알리는 것이 목표였다. 제자가 그 '평범한 마음'을 사용하여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이름에 자동적으로 응답할 때조차도."라고 설명한다.[36] 이것은 "인지의 기본적인 능력, 인간 정신의 단순한 작용"을 "원초적인 인지 능력"으로 나타낸다.[37]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 사상에서는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며, "평상심시도"(평상심이 곧 도), "즉심즉불" 등 한마디로 깨달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또한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이를 통해 다채로운 제자를 길러내는 동시에 사대부 계급에서 수많은 신자를 얻어 마침내 선의 정통 계승자 자리를 하택종으로부터 빼앗았다.

4. 일화

마조도일은 조사선(祖師禪)의 시조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방식으로 가르침을 펼쳤다.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다짜고짜 뺨을 때리는 등의 행동은 마조도일 이전에는 없던 일이다.[40]

마조도일은 제자들이 일상적인 의식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새롭고 파격적인 가르침을 사용했다. 갑작스러운 외침(갈)[40], 때리기, 발로 차기, 제자가 떠날 때 예상치 못하게 이름을 부르는 등의 혁신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침묵, 무응답, 제자의 코를 잡고 비트는 등의 행동으로도 유명했다. 그는 이러한 충격 요법을 통해 제자들이 습관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도록 이끌었다.

마조의 가르침은 후대의 송나라 선종 어록, 만남 대화, 공안 등에 등장한다. 전등록(1004년), 원오극근이 편찬한 벽암록, 무문혜개가 편찬한 무문관 등에 마조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센가이의 「마조・린자이 화찬」에 따르면, 린자이의 스승인 마조의 고함 소리는 3일 동안이나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고 한다. (출광 미술관 소장).

마조도일의 일화로는 남악회양과의 마전작경, 석공혜장과의 일전일군 고사, 분주무업과의 만남, 양좌주와의 만남 등이 있다. (각 일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조)

4. 1. 마전작경(磨塼作鏡)

남악회양이 마조도일의 암자 앞에서 벽돌을 가는 것을 보고 마조도일이 까닭을 묻자, 남악회양은 거울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42]

마조도일은 벽돌을 간다고 거울이 될 수 없다고 하자, 남악회양은 좌선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고 답했다. 어떻게 해야 성불할 수 있냐는 마조도일의 질문에 남악회양은 소달구지가 움직이지 않을 때 달구지를 때려야 하는지, 소를 때려야 하는지 물었다.[43]

마조도일이 대답하지 못하자 남악회양은 좌선만 하는 것은 부처를 흉내만 내는 것이며, 이는 부처를 죽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조도일은 이 가르침에 크게 깨달았다.[44]

남악회양의 가르침은 좌선은 달구지(몸)를 때리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으려면 소(마음)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운전수가 운전하지 않으면 차가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45]

4. 2. 일전일군(一箭一群)

마조도일에게는 석공혜장이라는 사냥꾼 출신 제자가 있었다. 마조도일이 석공혜장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이다. 사냥꾼이었던 석공혜장이 사슴 떼를 쫓던 중 마조도일을 발견하고는 사슴을 보았냐고 물었다.[46]

그러자 마조도일은 석공혜장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고, 석공혜장은 사냥꾼이라고 말했다. 마조도일은 그럼 화살을 잘 쏘겠다고 하며, 화살 하나로 사슴 몇 마리를 잡냐고 물었다. 석공혜장이 한 마리를 잡는다고 하니, 마조도일은 화살을 쏠 줄 몰라서 그렇다며 자신은 화살 하나로 사슴을 떼거리로 잡는다고 했다.[47]

그러자 석공혜장이 사슴도 생명이 있는데, 스님은 어떻게 사슴을 떼거리로 죽이냐고 따졌다. 이때, 마조도일은 석공혜장에게 이런 것을 잘 알면서, 왜 자신은 잡지 못하냐고 물었다.[48] 이에 석공혜장이 출가를 하여, 마조도일의 제자가 되었다.

4. 3. 분주무업(汾州無業)과의 만남

분주무업(汾州無業, 782∼823)은 12살에 출가하여 20살에 구족계를 받은 후, 경학을 배워 뛰어난 학자로 인정받았다.[49]

그러던 중 분주무업은 마조도일을 찾아가 '즉심시불(卽心是佛)'을 잘 모르겠다고 질문했다. 마조도일은 잘 모르겠다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답했다. 분주무업이 다시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전한 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마조도일은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다.[50]

분주무업이 나가려는 순간, 마조도일이 크게 불렀다. 분주무업이 고개를 돌리자, 마조도일은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분주무업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큰절을 올렸다.[51]

4. 4. 강백(講伯) 양좌주(楊座主)와의 만남

양좌주는 불교학에 통달한 강사 승려였다. 강백은 강사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어느 날, 마조도일이 양좌주를 만났다.

마조도일이 양좌주에게 경론에 해박하다는데, 무엇을 가지고 강의하냐고 물었다. 양좌주는 마음을 가지고 강의한다고 했다. 그러자 마조도일은 마음은 광대이고, 의식은 광대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악공)인데, 어떻게 마음으로 강의할 수 있냐고 물었다.[52]

양좌주는 마조도일의 말에 마음이 상해서, 마음으로 강의하지 못한다면 허공으로 하냐며 소리쳤다. 마조도일은 허공은 할 수 있다며 선문답을 했다. 양좌주는 더 이상 대화를 하기 싫어 나가려고 했다. 마조도일이 큰소리로 양좌주를 불렀고, 양좌주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크게 깨닫고 마조도일에게 큰 절을 올렸다.[53]

양좌주는 절에 돌아가서, 자신이 가르치는 승려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자신의 불교학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마조도일과 문답을 하니 평생 공부한 것이 얼음처럼 녹아버렸다고 했다. 이후 양좌주는 서산으로 갔고, 소식이 끊겨버렸다.[54]

센가이 필의 「마조・린자이 화찬」에 따르면, 린자이의 스승인 마조의 일갈은 3일 동안이나 귀를 먹먹하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출광 미술관 소장).

5. 영향

마조 도일은 선불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었다. 송나라 시대에 선종은 불교의 지배적인 종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의 당나라 시대와 마조 도일의 홍저우 종파는 선종의 "황금기"로 여겨졌다. 안사의 난 (755-763) 이후, 수도권 선종은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다른 종파들이 군벌이 통제하는 외곽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선종의 선구자들이다."[1]

이 종파는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외침, 구타, 비합리적인 반론과 같은 충격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기술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선사들의 전통적이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일부는 "캇츠"라고 알려진 큰 배꼽 외침과 같은 것의 오해와 번역 오류 때문이었다. 중국어에서 "캇츠"는 "외치다"를 의미하며, "외침을 외쳤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1]

845-846년 동안 당나라 무종은 중국의 불교 종파를 박해했다. 이 박해는 수도권 선종에 파괴적이었지만, 마조와 그의 추종자들의 종파는 살아남아 후기 당나라의 선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1]

마조의 선 사상은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며,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였다.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즉심즉불"(卽心卽佛) 등의 명언을 남겼으며,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수많은 신자를 얻었다.[1]

육조
혜능(638-713)
남악 회양(677-744)
마조 도일(709-788)
남천 보원(748-835)백장 회해(720-814)
조주 종심(778--879)황벽 희운(850년 사망)위산 영우(771-853)
임제 의현(866년 사망)위앙종
임제종


5. 1. 홍주종(洪州宗)의 발전

마조는 달마의 계승자가 되어 난위에 화이장의 을 이었다. 마조는 장시성 남부 간캉 근처 쿵쿵산에 정착하여 사찰을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모았다.[1]

마조 도일은 혜능의 계보에 있는 제자로 묘사되는데, 그의 스승 난위에 화이장이 혜능의 제자이자 계승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혜능과 난위에 화이장의 이러한 연결은 의심스러운데, 이는 마조 도일을 전통적인 계보에 포함시키기 위해 후대에 선종 역사를 다시 쓴 결과이다.[1]

마조 도일은 선불교 형성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르침의 스승이었을 것이다. 선종은 송나라 시대에 불교의 지배적인 종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의 당나라 시대와 마조 도일의 홍저우 종파는 선종의 "황금기"로 여겨졌다. 안사의 난 (755-763)은 당나라의 통제력 상실로 이어졌고, 수도권 선종은 지위를 잃어가기 시작했고, "다른 종파들이 군벌이 통제하는 외곽 지역에서 생겨났다. 이들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선종의 선구자들이다.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며, 선회의 설법의 힘은 그들이 모두 혜능에게서 기원한다는 사실로 나타난다."[1]

이 종파는 "제자들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기 위해 외침, 구타, 비합리적인 반론과 같은 충격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이러한 충격적인 기술은 제자들을 돕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선사들의 전통적이고 여전히 인기 있는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이미지의 일부는 나중의 오해와 번역 오류, 예를 들어 "캇츠"라고 알려진 큰 배꼽 외침과 같은 것 때문이었다. 중국어에서 "캇츠"는 "외치다"를 의미하며, 전통적으로 "외쳤다 '캇츠'"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외침을 외쳤다"는 의미가 되어야 한다.[1]

845-846년 동안 독실한 도교 신봉자였던 당나라 무종은 다른 반체제 인사들과 함께 중국의 불교 종파를 박해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있었다.[1]

이 박해는 수도권 선종에 파괴적이었지만, 마조와 그의 추종자들의 종파는 살아남아 후기 당나라의 선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1]

마조의 직계 제자들 중에는 백장 회해(720-814), 남천 보원(748-835), 분주 오엽(760-821), 그리고 대매 법상(752-839)이 있었다.[1]

한 세대 후 백장을 통한 그의 계통은 황벽 희운(850년 사망), 그리고 그의 제자인 임제 의현(866년 사망)을 포함하게 되었다. 임제 의현으로부터 임제종과 일본의 종파인 린자이 종이 파생되었다.[1]

두 번째 계통은 위산 영우(771-853)였으며, 그에게서 위앙종의 이름이 유래되었고, 여기에는 양산 혜적(807-883)이 있었다.[1]

육조
혜능(638-713)
남악 회양(677-744)
마조 도일(709-788)
남천 보원(748-835)백장 회해(720-814)
조주 종심(778--879)황벽 희운(850년 사망)위산 영우(771-853)
임제 의현(866년 사망)위앙종
임제종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 사상에서는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며, "평상심시도"(병상심시도), "즉심즉불" 등 한마디로 깨달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또한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이를 통해 다채로운 제자를 길러내는 동시에 사대부 계급에서 수많은 신자를 얻어 마침내 선의 정통 계승자 자리를 하택종으로부터 빼앗았다.[1]

5. 2. 한국 선종에 미친 영향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아홉 산문 가운데 일곱 산문이 마조도일의 법손이다. 마조 계열까지 합치면 여덟 산문이다.[55]

산문창시자개산조비고
가지산문 (전남 장흥 보림사)도의서당지장서당지장은 마조도일의 제자
실상산문 (전남 남원 실상사)홍척서당지장서당지장은 마조도일의 제자
동리산문 (전남 곡성 태안사)혜철서당지장서당지장은 마조도일의 제자
사굴산문 (강원도 강릉)범일염관제안염관제안은 마조도일의 제자
성주산문 (충남 보령)무염마곡보철마곡보철은 마조도일의 제자
사자산문 (강원도 사자산 법흥사)도윤남전보원남전보원은 마조도일의 제자
봉림산문 (경남 창원)현욱장경회휘장경회휘는 마조도일의 제자
쌍계산문혜소창주신감창주신감은 마조도일 계열



'''마조 선'''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선 사상에서는 선종에서 처음으로 경전이나 관심에 의존하지 않고 일상생활 속에 깨달음이 있다는 대기대용의 선을 설파하며,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즉심즉불"(卽心卽佛) 등 한마디로 깨달음을 나타내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또한 상대에 맞춰 가르치는 방식을 바꾸는 '''대기설법'''을 시작하여, 이를 통해 다채로운 제자를 길러내는 동시에 사대부 계급에서 수많은 신자를 얻어 마침내 선의 정통 계승자 자리를 하택종으로부터 빼앗았다.

6. 비판

마조도일의 홍주종은 급진적인 돈오 사상으로 인해 비판을 받았다. 규봉 종밀(780–841)은 선불교와 화엄종 모두에 영향을 준 인물로, 홍주종의 가르침이 선악의 모든 행위를 불성의 표현으로 보아 수행과 도덕적 규율을 부정하는 급진적 무이원론으로 이어진다고 비판했다.[3] 이는 모든 도덕적 구분을 없애고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율법 폐기론적 관점이라는 것이다.[3]

종밀은 불성의 본질과 현실 작용이 동일한 현실의 다른 측면임을 인정하면서도, 차이를 강조했다. 그는 북종의 이원론과 홍주종의 무이원론 및 율법 폐기론을 모두 피하고자, "더 큰 존재론적 통일성 내에서 윤리적으로 비판적인 이원성"을 유지하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3]

참조

[1]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UNY Press 2012
[2] 웹사이트 Liberating Language in Linji and Wittgenstein http://www.thezensit[...] 2003
[3]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4]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5] 서적 Tsung-mi and the Sinification of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6] 서적 Tsung-mi and the Sinification of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7] 서적 Avatamsaka Buddhism in East Asia Harrassowitz Verlag · Wiesbaden 2012
[8] 서적 Avatamsaka Buddhism in East Asia Harrassowitz Verlag · Wiesbaden 2012
[9]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0]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1]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2]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3]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4] 서적 Tsung-mi and the Sinification of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02
[15]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6]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7]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8]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19]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23
[20] 서적 The Platform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Bukkyō Dendō Kyōkai and Numata Center for Buddhist Translation and Research 2000
[21]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2]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3]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4]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5]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6] 서적 Ordinary Mind as the Way: The Hongzhou School and the Growth of Chan Buddh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27]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8]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29]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30] 서적 The Hongzhou School of Chan Buddhism in Eighth- through Tenth-Century China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6
[31] 서적 Sun-Face Buddha: The Teachings of Ma-tsu and the Hung-chou School of Ch'an Asian Humanities Press 1992
[32] 간행물 Sudden and Gradual Approaches to Enlightenment in Chinese Thought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987
[33] 서적 Ordinary Mind as the Way: The Hongzhou School and the Growth of Chan Buddh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34] 서적 Ordinary Mind as the Way: The Hongzhou School and the Growth of Chan Buddh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07
[35] 서적 Traditions of Meditation in Chinese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86
[36] 논문 Ordinary Mind as the Way: The Hongzhou School and the Growth of Chan Buddhism (review) https://muse.jhu.edu[...] 2008
[37] 논문 Ordinary Mind as the Way: The Hongzhou School and the Growth of Chan Buddhism (review) https://muse.jhu.edu[...] 2008
[38] 웹인용 마조도일(馬祖道一)선사 〈중〉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6-06-07
[39] 웹인용 한국선은 마조선(馬祖禪) 영향아래 형성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12-07-26
[40] 웹인용 처음 읽는 선불교의 역사 - 마조도일 - 새로운 중국 부처의 탄생 http://www.buddhismj[...] 불교저널 2019-07-11
[41]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4-28
[42]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4-28
[43]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4-28
[44] 웹인용 선사들의 선문답-회양대사와 마조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1998-04-28
[45] 웹인용 “수레를 때릴 건가? 소를 때릴 건가?”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09-11-25
[46] 웹인용 16. 마조의 문하- ①독특한 행적을 남긴 제자들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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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웹인용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5-08
[51] 웹인용 17. 마조의 문하-②사교입선한 제자들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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