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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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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야자키 신궁은 진무 천황을 모시는 신사로, 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에 위치해 있다. 원래는 진무 천황 어묘로 불렸으며, 메이지 시대에 미야자키 신사, 미야자키 궁을 거쳐 신궁으로 승격되었다. 가마쿠라 시대에 처음 기록이 나타나며, 메이지 유신 이후 진무 천황 창업의 시작지로 여겨져 각광받았다. 주요 건축물로는 본전, 배전, 징고관 등이 있으며, 매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또한 본전 등 11동의 건조물이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경내의 오오시라 등나무는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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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신궁 - [지명]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미야자키 신궁
로마자 표기Miyazaki-jingū
위치미야자키현 미야자키시 진구2초메 4-1
웹사이트공식 홈페이지
종교
종교신토
진무 천황
우가야후키아에즈
다마요리비메 (진무 천황의 어머니)
역사
창건불명
설립불명
기타
제례10월 26일

2. 역사

진무 천황이 동정 이전에 거주하였던 궁궐이 있던 자리로 전해지는 곳으로,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며 최초 기록은 가마쿠라 시대이다. 당시 이 지역의 지두였던 쓰치모치 노부쓰나(土持信綱일본어)가 전각을 설치하고 '''황궁옥(皇宮屋일본어)'''이라 명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미야자키에 궁이 있었다는 진무 동정에 대한 기록에 따라 이 신궁은 진무 천황의 신사로 취급되기 시작한다.[1]

사전에 따르면, 진좌지는 진무 천황동정 이전에 궁을 경영했던 곳으로, 후에 규슈로 내려간 황손 건반룡명(아소 신사의 제신)이 그 인연으로 창사했다고 한다. 스진 천황 시대에 처음으로 사전이 창건되었고, 게이코 천황구마소 정벌 때 거듭 조영되었으며, 오진 천황 시대부터는 『국조본기』에 기록된 휴가 국조의 조상, '''오이오노미코토'''가 모셔지게 되었다고 전한다.[1]

분메이 5년 (1473년)에 이토 스케쿠니가 연가이케 (현 미야자키시 무라카도마치)와 시모기타가타 (동 시모기타가타마치)의 일부를 봉헌했다. 에이로쿠 3년 (1560년)에는 아리마 나가즈미가 사령으로 2석 5를 기증, 동 5년 (1562년)에는 이토 요시스케가 시모기타가타 · 에히라 (현 미야자키시 에히라마치 일대)에서 영지를 할애하여 봉헌, 덴쇼 5년 (1577년)에는 시마즈 요시히사가 미곡이나 폐백을 봉헌했다.[1]

2. 1. 메이지 유신과 미야자키 신궁

진무 천황이 동쪽으로 가기 전에 살았던 궁궐이 있던 자리로 전해지는 이곳은 원래 진무천황 어묘(神武天皇御廟일본어)라고 불렸다. 1873년 메이지 천황이 미야자키 신사(宮崎神社일본어)로 이름을 바꾸었고, 같은 해 11월에 미야자키 궁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1913년 다이쇼 천황이 신궁으로 승격시켰다.[1]

가마쿠라 시대에 이 지역의 지두였던 쓰치모치 노부쓰나(土持信綱일본어)가 건물을 세우고 황궁옥(皇宮屋일본어)이라 이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미야자키에 궁이 있었다는 진무 동정에 대한 기록에 따라, 이 신궁은 진무 천황의 신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1]

이후 계속해서 건물이 추가되었으나 지방 신사 취급을 받던 미야자키 신궁은 메이지 천황에 의해 진무 창업의 시작지로 지정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1]

에도 시대에는 노베오카 번이 이곳을 소령으로 삼았고, 아리마 야스즈미 번주가 사전을 짓고, 나이토 마사요시 번주가 보수공사를 했다. 그러나 에도 시대까지는 지방의 고사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메이지 유신의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진무 창업의 시작"으로 복귀하는 것이 주장되면서 이 신궁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1]

1873년에 현사로 지정되었고(이때 미야자키 신사로 개칭), 진무 천황의 최초 궁궐터라는 전승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았다. 1875년에 국폐중사, 1885년에는 관폐대사로 승격되었다. 1899년에는 "진무 천황 어강탄대제회"가 조직되어 전국에서 기부금을 모아 경내 정비를 실시했고, 1940년 기원 2600년을 기념한 확대 정비 사업으로 현재의 경내가 완성되었다.[1]

3. 제신

신일본이와레히코노미코토(가무야마토이와레비코노 미코토, 훗날의 신무 천황(초대 천황))을 주신으로 모시고, 아버지 신 갈매기풀 불합 존과 어머니 신 타마요리비메노 미코토 두 신을 배신으로 모신다.

4. 건축물

미야자키 신궁에는 본전, 폐전, 배전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 본전(本殿일본어)
  • 폐전(幣殿일본어)
  • 배전(拝殿일본어)
  • 도전(渡殿일본어)
  • 어료옥(御料屋일본어)
  • 신찬소(神饌所일본어)
  • 배소(拝所일본어)
  • 징고관(徴古館일본어) - 구 보물전이었다.
  • 신궁회관(神宮会館일본어)
  • 일의 토리이(一之鳥居) - 경계 밖에 있으며, 일의 토리이에서 이의 토리이까지의 경계 밖 참배길은 약 800m이며, 나기의 가로수가 심어져 있다.
  • 이의 토리이(二の鳥居) - 경내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삼의 토리이(三之鳥居)
  • 정소(祓所)
  • 신문(神門)
  • 배소(拝所)
  • 본전(本殿)
  • 신지(神池)
  • 신전(神田)
  • 징고관(徴古館) - 구 · 보물관
  • 사무소(社務所)
  • 신궁회관(神宮会館)
  • 야부사메 바바(流鏑馬馬場)


본전은 정방 3칸의 기둥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에는 桁行(형행) 4칸의 양하조 건물이 접해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폐전으로 이어진다. 폐전 전면에는 桁行 3칸의 향배가 있으며, 좌우에는 건너 복도를 거쳐 어료옥(왼쪽), 신찬소(오른쪽)가 연결되어 있다. 어료옥과 신찬소는 각각 측면을 정면으로 향한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으로, 폐전 전방에는 정방 3칸 맞배지붕 평입의 배소가 있다.

이 건물들은 메이지 40년(1907년)에 개축되었으며, 사노 삼나무를 건축 자재로 사용한 덮개판 지붕이다. 삼나무를 신사 건축 자재로 사용한 드문 예이다. 본전을 비롯한 주요 건물에는 치기·가쓰오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직선적이고 간소한 모습은 이세 신궁의 신명조 양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도쿄 제국대학 명예교수 이토 주타가 설계를 맡았다. 2010년에는 "국토의 역사적 경관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여 본전을 포함한 11동의 건조물이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는 미야자키현 내에서 휴가시의 오고 신사에 이어 두 번째 신사 건축물 등록이다.

4. 1. 섭사


  • '''섭사''' '''고구 신사'''(皇宮神社)는 동궁에서 북서쪽으로 1km 떨어진 시내 시모키타마치의 다른 지역 경내에 있다. 진무 천황을 주 제신으로 하고 아히라쓰히메노미코토・테토메미미노미코토를 합사로 모시고 있다. 진무 천황의 궁터로 전해지기 때문에 일명 '''황궁옥'''이라고도 불리며, 가마쿠라 시대까지의 옛 사지이다. 1월 14일에는 오곡 풍년을 예측하는 특수 신사인 '''황궁옥 파마야 축제'''(고구야 하마야 마쓰리)를 거행한다. 또한, 사당은 1976년에 이세 신궁 제60회 시키넨센구 때 외궁 외폐전의 고재를 사용하여 개축했다.[1]
  • '''말사''' '''고쇼이나리 신사'''(五所稲荷神社)는 우카노미타마노카미를 모시고 있다. 시내 시모키타가타마치, 하나가시마마치 등 5개 신사를 합사하여 창건했다.[1]

5. 행사

행사명
1월1일세단제(歳旦祭|세단사이일본어)
1월2일대어찬제(大御饌祭|오미케사이일본어)
1월3일원시제(元始祭|겐시사이일본어)
1월7일소화천황제요배(昭和天皇祭遙拝|쇼와텐노사이요하이일본어)
2월23일천장제(天長祭|덴초사이일본어)
4월3일신무천황제(야부사메)
10월25일어동천기념제(御東遷記念祭|고토센키넨사이일본어)
10월26일예제(例祭|레이사이일본어)
10월예제 후 토, 일요일미야자키 신궁 대제(어신행제)
11월3일명치제(明治祭|메이지사이일본어)
11월23일신상제(新嘗祭|니나메사이일본어)
12월25일대정천황제요배(大正天皇祭遙拝|다이쇼텐노사이요하이일본어)
12월31일대불(大祓|오하라에일본어)



미야자키 신궁에서는 매년 4월 3일에 열리는 야부사메 축제를 포함하여 많은 행사가 열린다.

가장 중요한 행사는 10월에 열리는 아키노타이사이다. 이 행사는 진무 천황(일본 최초의 천황)을 기리는 의상 행렬로, 화려한 결혼 기모노를 입은 여성들이 참여한다.


  • 진무 천황제 (4월 3일) - '''신사 야부사메'''를 행하는데, 이 야부사메는 1940년 기원 2600년 봉축 행사의 일환으로 고례에 따라 부흥된 것이다. 4월 3일은 진무 천황 붕어일이다.
  • 미야자키 신궁 대제 (어신행제) (예제 후 토요일, 일요일) - 당궁에서 세두와 오요도 어여소 (격년으로 교대)까지, 가마를 중심으로 샹샹마와 어린아이 행렬이 행진한다. 메이지 시대에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손자 (천손) 니니기노 미코토의 능묘로 전해지는 전방 후원분 위에 있는 나고 신사 (미야자키시 미나미가타초, 메이지 4년 이전에는 나가야 신사라고도 불렀다)가 미야자키 신궁 대제의 출발점이 되어 미야자키 신궁까지 행진했다. ※ 미야자키현 내에서는 사이토시·사이토바루 고분군 내의 오사호즈카 (규슈 최대의 고분, 궁내청 능묘 참고지)도 니니기노 미코토의 능묘라는 전설이 있다.

6. 교통

7. 갤러리

8. 문화재

미야자키 신궁 본전을 포함한 11동의 건물은 "국토의 역사적 경관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2010년에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는 미야자키현 내에서 휴가시 오고 신사에 이어 두 번째 신사 건축물 등록 사례이다.[1]

본전은 정방 3칸의 기둥식 맞배지붕 건물로, 전면에 4칸 양하조 건물이 접해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폐전으로 이어지며, 폐전 전면에는 3칸 향배가 있고, 좌우에는 건너 복도를 통해 어료옥(왼쪽)과 신찬소(오른쪽)가 연결되어 있다. 어료옥과 신찬소는 각각 측면을 정면으로 향한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폐전 앞에는 정방 3칸 맞배지붕 평입의 배소가 있다. 이 건물들은 모두 메이지 40년(1907년) 사노 삼나무를 사용하여 개축되었으며, 덮개판 지붕으로 되어 있다. 삼나무를 사전 건축의 용재로 사용한 드문 예이다. 본전을 포함한 주요 사전에는 치기·가쓰오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직선적이고 간소한 모습에서 이세 신궁 신명조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설계는 동양 고대 건축 연구의 권위자인 도쿄 제국대학 명예교수 이토 주타가 맡았다.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1]
명칭비고
신전 (본전)
폐전
도전
신찬소
어료옥
투간원
배소
정문
옥원
석책
징고관



미야자키 신궁의 오오시라 등나무는 같은 종류 중 일본 최대이다. 1907년 당시 미야자키 정장이 이식한 것으로, 줄기가 둘로 갈라져 있으며, 뿌리 둘레는 2.95m, 나무 높이는 약 6.35m이다. 수령은 1980년대 말(20세기 말) 시점에서 약 600년 또는 200년으로 추정된다. 1951년에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8. 1.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

본전은 정방 3칸의 기둥식 맞배지붕 건물이다. 전면에는 4칸 양하조 건물이 접해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폐전으로 이어진다. 폐전 전면에는 3칸 향배가 있고, 좌우에는 건너 복도를 통해 어료옥(왼쪽)과 신찬소(오른쪽)가 연결되어 있다. 어료옥과 신찬소는 각각 측면을 정면으로 향한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폐전 앞에는 정방 3칸 맞배지붕 평입의 배소가 있다. 이 건물들은 모두 메이지 40년(1907년) 사노 삼나무를 사용하여 개축되었으며, 덮개판 지붕으로 되어 있다. 삼나무를 사전 건축의 용재로 사용한 드문 예이다. 본전을 포함한 주요 사전에는 치기·가쓰오기가 설치되어 있으며, 직선적이고 간소한 모습에서 이세 신궁 신명조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설계는 동양 고대 건축 연구의 권위자인 도쿄 제국대학 명예교수 이토 주타가 맡았다. 2010년, "국토의 역사적 경관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본전을 비롯한 11동의 건물이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는 미야자키현 내에서 휴가시 오고 신사에 이어 두 번째 신사 건축물 등록 사례이다.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1]
명칭비고
신전 (본전)
폐전
도전
신찬소
어료옥
투간원
배소
정문
옥원
석책
징고관


8. 2. 국가 천연기념물

미야자키 신궁의 오오시라 등나무는 같은 종류 중 일본 최대이다. 1907년 당시 미야자키 정장이 이식한 것으로, 줄기가 둘로 갈라져 있으며, 뿌리 둘레는 2.95m, 나무 높이는 약 6.35m이다. 수령은 1980년대 말(20세기 말) 시점에서 약 600년 또는 200년으로 추정된다. 1951년에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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