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박경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박경완은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 신고 선수로 입단하여 2013년 은퇴한 전 야구 선수이다. 2000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 4타석 연속 홈런을 포함, 40홈런으로 홈런왕과 MVP를 수상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이후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여 2004년 두 번째 홈런왕을 차지하고, 2007년과 2008년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었다. 2010년에는 통산 300홈런을 기록한 최초의 포수가 되었으며, 은퇴 후 SK 와이번스 육성총괄, 배터리 코치, 수석코치, 감독 대행 등을 역임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전주중앙초등학교 동문 - 이상직
    이상직은 전 이스타항공 회장 출신으로 제19대, 21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횡령 및 배임 혐의와 선거법 위반, 채용 비리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여러 논란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 전주중앙초등학교 동문 - 김원형
    김원형은 1991년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KBO 리그 최연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SK 와이번스, SSG 랜더스 감독을 역임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전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 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 - 이승엽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인 이승엽은 KBO 리그 최초 50홈런 및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우며 '국민 타자'로 활약했고,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 후 KBO 리그로 복귀하여 은퇴, 이후 방송 해설 및 사회 활동을 거쳐 두산 베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 한국 프로 야구 300홈런 클럽 - 이범호
    이범호는 대한민국 전 야구 선수로, 내야수, 특히 3루수로 활약했으며, 한화 이글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2024년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전주동중학교 동문 - 이용마
    이용마는 MBC 기자로 언론 자유를 위해 헌신하며 파업을 주도하다 해직되었지만 복직 후 방송 활동과 연구를 이어갔고, 방송 민주화 투쟁의 상징으로 평가받았으나 암 투병 중 별세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는 언론상이 제정되었다.
  • 전주동중학교 동문 - 심재철 (검사)
    심재철은 서울대 법대 졸업 후 검사로 활동하며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남부지검 검사장 등 주요 요직을 거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 후 변호사로 활동 중인 법조인이다.
박경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 정보
포지션포수 / 배터리 코치
LG 트윈스
등번호80
타석우타
투구우투
출생일1972년 7월 11일 ()
출생지전라북도 전주시
데뷔 리그KBO
데뷔 년도1991년
데뷔 팀쌍방울 레이더스
최종 리그KBO
최종 년도2013년
최종 팀SK 와이번스
통계
리그KBO
타율.249
홈런314
타점995
선수 경력
선수쌍방울 레이더스 (1991년–1997년)
현대 유니콘스 (1998년–2002년)
SK 와이번스 (2003년–2013년)
코치SK 와이번스 배터리 코치 (2016년–2018년)
LG 트윈스 배터리 코치 (2023년–현재)
감독SK 와이번스 벤치 코치 (2019년–2020년)
수상 내역
MVPKBO MVP (2000년)
골든 글러브4x KBO 골든 글러브 (1996년, 1998년, 2000년, 2007년)
한국 시리즈 우승5x 한국시리즈 우승 (1998년, 2002년, 2007년, 2008년, 2010년)
국가대표 경력
올림픽2000 시드니 동메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09 로스앤젤레스 준우승
기타 정보
군 복무병역 미필

2. 선수 시절

1991년 신고 선수(현재의 육성 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다. 처음에는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고 입단한, 고등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김원형의 덕분에 구단에 발탁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 1군 출전을 이루어내고, 점차 출전 횟수를 늘려갔다.

1994년 102경기에 출전하여, 쌍방울 레이더스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으면서, 강견 강타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고, 도루 저지율 리그 최고인 .433을 기록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경영 부실로 인해 1998년 현대 유니콘스로 금전 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금액은 당시 사상 최고였던 9억 원이었다. 현대에서는 2000년에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의 4타석 연속 홈런을 포함한 40홈런으로 홈런왕, 정규 시즌 MVP를 수상하며, 팀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02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자, 1999년을 끝으로 자금난으로 해체된 친정 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창단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2004년에는 34홈런으로 개인 통산 두 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을 이어갔고, 35세가 넘어서도 부동의 주전 포수로, 2007, 08년 SK의 한국 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다.

국내에서의 실적에 비해, 국제 대회 출전은 적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홍성흔과의 병용으로 출전 기회가 적었다. 오랜만에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젊은 강민호를 제치고 노련한 리드로 투수진을 이끌며, 결승 진출에 기여했다. 하지만 2009년 시즌은, 아킬레스건 파열로 전반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 역시 한국 시리즈 3연패를 놓쳤다. 2010년에는 주전 포수 자리에 복귀하여, SK를 2년 만에 공식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2011년은,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이 재발하여, 장기 이탈할 정도로 불운한 시즌이 되었다. 하지만 동료였던 김원형(2011년 은퇴)과 나란히, 현역 선수로서 실 21년으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2012년에도 1군 경기 출전 수가 겨우 8경기로 전년보다 감소했지만, 실 22년의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장 기록을 경신해나갔다. 2013년에도 1군의 경기 수에 출전해 실 23년으로 최장 기록을 경신했지만, 이 해에도 8경기에 출전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010년 시즌에 박경완은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홈런을 기록한 포수가 되었다. 박경완의 통산 166개의 사구는 최정에 이어 KBO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기록이다.[1]

2. 1. 아마추어 시절

군산금광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포수로 활동했으며, 6학년 때 전주중앙초등학교로 전학간 후에도 계속 포수를 맡았다. 전주동중학교전주고등학교를 거쳤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4]

2. 2.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1990년 12월 원광대학교 진학 예정이었으나 고졸 신고선수로 입단했다.[4] 팀이 1군 리그에 나서기 시작한 1991년은 그의 데뷔 시즌이었으나, 10경기에 출전해 6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4] 1992년 12월부터 당시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의 집중적인 훈련 과정을 거쳤다.[4] 1994년부터 주전으로 팀을 이끌었고 그 해 도루 저지율 4할 3푼 3리를 기록하며 이 부문 1위를 차지했다.[4] 1996년에는 4할 7푼 5리라는 도루 저지율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때 붙은 별명이 '포도대장'이었다.[4]

1991년 신고 선수(현재의 육성 선수)로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했는데, 처음에는 1차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고 입단한, 고등학교 동기이자 절친인 김원형의 덕분에 구단에 발탁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군 출전을 이루어내고, 점차 출전 횟수를 늘려갔다.

1994년 102경기에 출전하여 쌍방울 레이더스의 주전 포수로 자리 잡으면서, 강견 강타의 포수로 이름을 날렸고, 도루 저지율 리그 최고인 .433을 기록했다. 하지만 모기업의 경영 부실로 인해 1998년 현대 유니콘스로 금전 트레이드되었으며, 트레이드 금액은 당시 사상 최고였던 9억 원이었다.

2.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1997년 11월, 재정난에 빠진 쌍방울 레이더스는 박경완을 현대 유니콘스로 현금 트레이드했다. 이 트레이드에는 이근엽, 김형남 외에 현금 9억원이 포함되었다.[4] 그는 2002년까지 현대 유니콘스의 주전 포수로 활동하며 1998년2000년 두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4]

특히 2000년에는 국내 최초 4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시즌 40홈런을 기록하며 정규 리그 최우수 선수(MVP)를 수상했고,[4] 2001년에는 포수 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5시즌 동안 타율 0.245, 125홈런, 351타점을 기록하며 공수 양면에서 뛰어난 선수로 평가받았다.[4]

2. 4. SK 와이번스 시절

조범현이 감독으로 취임할 무렵인 2002년 12월에 FA 계약을 맺어 이적했고, 팀의 2007년 ~ 2008년,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1996년, 1998년, 2000년, 2007년에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2002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자, 1999년을 끝으로 자금난으로 해체된 친정 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들을 중심으로 창단된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2004년에는 34홈런으로 개인 통산 두 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15년 연속 100경기 이상 출전을 이어갔고, 35세가 넘어서도 부동의 주전 포수로, 2007, 08년 SK의 한국 시리즈 2연패에 기여했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개인 통산 287호 홈런을 쳐 내며 역대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을 돌파했다.

;2009년

WBC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출전했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붕대를 감은 채로 경기에 계속 출전해 팀이 1위를 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6월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상대 실책으로 2루로 전력 질주 중 왼쪽 발목을 접질렀음에도 다른 한 발만으로 1루로 돌아온 다음에야 쓰러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후 주전 포수 자리를 정상호에게 넘기고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았다.

4월 22일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내며 역대 8번째(포수 최초) 900타점을 달성했다.

;2010년

재활 후 다시 주전 포수로 복귀해 팀의 시즌 1위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우승 후 바로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부상의 몸으로 스승인 조범현이 이끄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귀국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재활했다.

4월 30일 LG 트윈스전에서 역대 5번째(포수 최초)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

7월 3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역대 8번째 통산 900득점을 달성했다.

10월 16일에 한국시리즈 역대 최고령 홈런을 달성했다.

;2011년 ~ 2013년

아킬레스건 부상이 재발해 일본에서 재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됐다.[5] 이후에는 재활하며 1군 경기 출전 수가 크게 감소했고, 2013년에는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6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간 이후 더 이상 포수로 활동하지 못했다. 2013년 6월 16일 KIA 타이거즈전이 마지막 경기가 됐다.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후 그는 "이제는 지쳤다"며 은퇴를 선언했다.[6] 그의 등번호인 '26번'은 구단의 첫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7]

2. 4. 1. 2006년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개인 통산 287호 홈런을 쳐 내며 역대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을 돌파했다.

2. 4. 2. 2009년

WBC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출전했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아킬레스건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에서 붕대를 감은 채로 경기에 계속 출전해 팀이 1위를 하는데 공헌했다. 그러나 6월 24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는 상대 실책으로 2루로 전력 질주 중 왼쪽 발목을 접질렀음에도 다른 한 발만으로 1루로 돌아온 다음에야 쓰러지는 투혼을 발휘했다. 이후 주전 포수 자리를 정상호에게 넘기고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았다.

4월 22일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송승준을 상대로 만루 홈런을 쳐 내며 역대 8번째(포수 최초) 900타점을 달성했다.

2. 4. 3. 2010년

재활 후 다시 주전 포수로 복귀해 팀의 시즌 1위 및 한국시리즈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우승 후 바로 아킬레스건 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부상의 몸으로 스승인 조범현이 이끄는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금메달을 획득했다. 귀국 후 삼성서울병원에서 오른쪽 발목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고 재활했다.

4월 30일 LG 트윈스전에서 역대 5번째(포수 최초) 통산 300홈런을 달성했다.

7월 3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역대 8번째 통산 900득점을 달성했다.

10월 16일에 한국시리즈 역대 최고령 홈런을 달성했다.

2. 4. 4. 2011년 ~ 2013년

아킬레스건 부상이 재발해 일본에서 재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됐다.[5] 이후에는 재활하며 1군 경기 출전 수가 크게 감소했고, 2013년에는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6월 19일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간 이후 더 이상 포수로 활동하지 못했다. 2013년 6월 16일 KIA 타이거즈전이 마지막 경기가 됐다. 팀이 포스트시즌에서 탈락한 후 그는 "이제는 지쳤다"며 은퇴를 선언했다.[6] 그의 등번호인 '26번'은 구단의 첫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7]

3.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직후 SK 와이번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됐다.[8] 2014년 시즌 후 육성총괄을 맡고 있던 김용희SK 와이번스의 감독이 되자 수석코치 이동설이 들렸지만 김용희의 뒤를 이어 SK 와이번스의 육성총괄을 맡아 프런트로 자리를 옮겼다.[8] 이후 시즌 후반 SK 와이번스가 부진하자 전력분석원으로 임명됐으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배터리코치로 활동했다. 2018년 시즌 후 트레이 힐만이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염경엽이 감독으로 부임 후 2018년부터 수석코치를 맡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25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염경엽이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자 그가 감독 대행을 맡았다.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20년 시즌 후 사임했다.[8]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염경엽의 부름을 받아 LG 트윈스의 배터리코치로 선임됐다.[8] 2014년 3월 10일,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에서 현역 시절에 사용했던 등번호 26번이 구단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4월 5일, 문학 야구장에서 은퇴 및 영구 결번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2014년 10월, SK 육성 총괄, 2015년 10월, SK 1군 배터리 코치로 전임. 코치로서의 등번호는, 영구 결번과는 다른 번호를 착용하고 있다.[8]

2020년 6월 25일, 염경엽 감독이 경기 중에 쓰러진 후에도 안정이 필요하여 지휘를 할 수 없게 되자, 임시로 SK의 감독 대행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1일, 염경엽 감독이 복귀하면서 수석 코치로 돌아갔다. 하지만 9월 6일, 염경엽 감독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아, 9월 8일부터 2020년 시즌의 남은 경기에 다시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2020년 시즌 종료 후 SK의 코치직을 사임했다.[8]

2023년부터 LG 트윈스의 코치로 현장에 복귀했다.[8]

4. 플레이 스타일

2010년 포수로서 한국 프로 야구 사상 최초로 300홈런을 달성하는 등 장타력이 있었다. 강견으로 홈을 몸을 사리지 않고 지키는 플레이가 돋보였으며, 리드도 뛰어났다. 2010년에는 개인 통산 최다 사구(165개) 기록을 경신했지만, 2017년에 최정이 다시 경신했다.

5. 주요 기록

박경완은 선수 시절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2010년 9월 3일 두산 베어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통산 2000경기 출장을 달성하며 역대 5번째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7월 30일 KIA 타이거즈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상대투수 콜론을 상대로 5회말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통산 900득점을 달성했다. 4월 30일 LG 트윈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상대투수 박명환을 상대로 5회말 홈런을 쳐 통산 300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역대 5번째이자 포수 최초의 기록이었다.

2009년 4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1회 만루 홈런(상대 투수 송승준)으로 역대 8번째이자 포수 최초로 통산 900타점을 달성했다. 같은 해 4월 19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경기에서는 6회에 역대 3번째로 통산 900 4구를 기록했다. 2008년 7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통산 1800경기 출장을, 5월 14일 두산 베어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역대 13번째로 통산 800득점을 달성했다. 같은 해 6월 2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마산 경기에서는 역대 26번째로 통산 1300안타를 기록했다.

2007년 6월 3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3연타석 홈런(통산 4호)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2006년 4월 9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8회 1사 4-6에서 상대 투수 황두성을 상대로 동점 2점 홈런을 쳐 이만수의 종전 기록(287개)과 함께 역대 포수 통산 최다 홈런 타이를 기록했다. 2004년 5월 16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수원 경기에서는 11년 연속 세 자릿수 루타 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4월 29일 현대 유니콘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4월 월간 최다 홈런(13개) 신기록을 세웠다.

2003년 8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경기에서는 통산 600타점을, 2003년 6월 18일 KIA 타이거스와의 문학 경기에서는 상대 투수 김진우를 상대로 통산 200홈런을 기록했다. 2001년 9월 20일 두산 베어스와의 수원 경기에서는 포수 최초로 20-20클럽에 가입했다. 2000년에는 40개의 홈런으로 역대 포수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세웠다. 같은 해 9월 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3연타석 홈런(통산 3호)을 기록했고, 5월 19일 한화 이글스와의 대전 경기에서는 국내 최초로 4연타석 홈런(상대 투수 조규수(2-3회)-오창선(5회)-김경원(6회))을 기록했다.

1999년 7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전주 경기에서는 상대 투수 구대성으로부터 통산 100홈런을 뽑아냈다. 1994년 7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3연타석 홈런(1호)을, 1992년 5월 26일 OB 베어스와의 전주 경기에서는 상대 투수 장호연으로부터 자신의 1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는 2000년과 2004년에 홈런왕을 차지했고, MVP(2000년), 골든글러브(1996년, 1998년, 2000년, 2007년)를 수상했다. 그의 등번호 26번은 SK 와이번스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6. 통산 기록


도소





장타







2

3



















O
P
S




타몸

맞희





4
1991쌍방울19108600000000026.000.250.000.250000000199220315249511103600313.224.269.429.6982120000199321265748110200200314.208.283.250.53312024001994221022742403157821431022575.238.322.463.78511135400199523121429361488213219465256100.227.344.432.77615658404199624126480367588019215742560113.218.349.403.752148619241031997258231423946671511648235859.280.430.552.983132785411998현대261234584045410125119663339103.250.324.458.78218510672019992712446736767811612367227295.221.359.458.8161689818222000281305174088311516040957487112.282.419.6151.03425171264720012913052842166108131248121891121.257.395.463.85819597632200230119398330426710119426447108.203.311.412.7231366612342003SK3112242833649841621560665993.250.374.443.8171498921322004321325264109412119134792594126.295.440.5951.036244914623200533114425347438517011441457100.245.357.389.7461356786720063411138032438821301351223791.253.342.414.7561345964520073511943735260872111560635568.247.357.440.79715591011942008361013703044483170736644864.273.377.398.775121867502009376524619832531001238313339.268.375.500.87599521122201038129472381511002001467114688.262.379.425.804162112715322011391016150200010016.133.188.133.321220000201240823200200000016.100.143.100.243220200201341821191200110005.105.150.263.413511100KBO 통산 : 23년2043732659469131480271153149957559974.249.367.458.82527231301661786248

7. 여담

이만수 이후 공격형 포수의 선두를 이끌며 각종 역대 포수 관련 기록을 갱신했으나,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은 강민호에 의해 갱신됐다.[9] 수비에서도 투수 리드, 블로킹, 도루 저지 등에서 최고의 경험과 막강한 파워를 보이는 완성형 포수였다. 김원형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10] 포수 최초 40홈런을 기록했다.

8. 출신 학교

참조

[1] 뉴스 Choi Jeong remains unfazed after 200th HBP, https://koreajoongan[...] Korea JoongAng Daily 2017-07-12
[2] 뉴스 KBO manager's collapse shows how stressful the job is, https://koreajoongan[...] Korea JoongAng Daily 2020-06-28
[3] 웹사이트 https://www.skwyvern[...]
[4] 간행물 박경완, 포수를 말하다 SPORTS 2.0 2007-07-09
[5] 뉴스 박경완 수술로 시즌 아웃, SK 초비상 https://news.naver.c[...] 일간스포츠
[6] 뉴스 “이젠 지쳤다” 박경완 현역 은퇴 https://news.naver.c[...] 스포츠동아
[7] 뉴스 SK, 박경완 '26번' 영구 결번… 프로야구 사상 12번째 https://news.naver.c[...] 마이데일리
[8] 뉴스 '현역 은퇴' 박경완, 2군 감독으로 새 출발 http://sports.news.n[...] 이데일리
[9] 뉴스 "'강민호 315호 홈런포→레전드 박경완 넘었다' 삼성, 라팍 열광케 한 짜릿한 역전극 'KT 5연승 저지' [대구 현장리뷰]" https://sports.news.[...] 스타뉴스 2023-08-03
[10] 뉴스 준PO 1차전 시구 김원형, “경완이가 볼을 받았으면 했는데” http://sportsworldi.[...] 스포츠월드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