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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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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은 핀란드에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며, 핀란드어로는 'suomenruotsalaiset', 법적으로는 'ruotsinkieliset' 또는 'ruotsinkielinen väestö'로 불린다. 이들은 400년대부터 올란드 제도에서 이주를 시작하여 1200년대 이후 핀란드 본토로 이주했으며, 스웨덴의 지배와 식민지화 시기를 거치며 스웨덴어 사용 인구가 형성되었다. 19세기 민족주의의 부상과 언어 갈등 속에서 핀란드어 사용 운동이 전개되었고,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은 자치와 영토적 보장을 추구했다. 오늘날 핀란드는 이중 언어 국가로, 스웨덴어 사용자는 언어적 권리를 보장받고 있으며, 스웨덴어는 핀란드 문화, 문학, 민속에도 영향을 미쳤다. 저명한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으로는 리누스 토르발스, 장 시벨리우스,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등이 있다. 핀란드 외에도 스웨덴, 북미 등지에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으며, 핀란드 귀족 계층에서 스웨덴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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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
개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의 깃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의 깃발
집단 명칭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
핀란드 스웨덴인
핀란드계 스웨덴인
페노스웨덴인
언어핀란드 스웨덴어
핀란드어
종교루터교
관련 민족스웨덴인
핀란드인
분포 지역
핀란드287,933명 (2021년)
스웨덴60,000–107,000명
지리적 분포
추가 정보
정체성2005년 조사에서 스웨덴어 사용 응답자의 82%는 "별도의 문화에 속하면서도 다른 핀란드인과 같은 핀란드인"이라고 응답했음.
민족성 기준핀란드에는 민족성의 4가지 주요 기준, 즉 민족성의 자기 식별, 언어, 사회 구조 및 조상을 충족하는 스웨덴어 사용 소수 민족이 있음.
국적 논쟁핀란드에서 이 질문(스웨덴 국적)은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었음. 핀란드 다수는 스웨덴 국적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함. 그 예로 법령에서 항상 '스웨덴어 사용'이라는 개념을 '스웨덴' 대신 사용하는 것을 들 수 있음.
민족 공동체국가는 조직과 관계없이 인구 집단 또는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는 다른 의미를 가짐. 예를 들어, 핀란드의 스웨덴인은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핀란드 헌법에 따라 핀란드 국적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하는 국적을 형성함.
문화적 특징언어 공동체뿐만 아니라 민속, 시, 문학, 민속 음악, 지혜, 행동 등 다른 특징의 공동체가 있는 경우 국적을 언어 그룹 또는 소수 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음.

2. 용어

핀란드 언어 연구소에서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 "스웨덴 핀란드인", "핀란드 스웨덴인"을 제안하며, 그중 첫 번째는 연구소 웹사이트에서 사용되는 유일한 형태이다. 일부 논쟁자들은 더 전통적인 영어 형태인 "핀란드 스웨덴인"의 사용을 주장하는데, 그들을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으로 표기하는 것이 그들의 민족적 소속감을 박탈하고 단순히 언어의 문제로 축소하며 핀란드 스웨덴 정체성의 "스웨덴 부분", 즉 스웨덴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19][20]

핀란드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스웨덴-핀란드인"이라는 용어가 1917년 핀란드의 독립 이전에 우세해졌으며, 나중의 이민자들이 "핀란드 스웨덴인"과 같은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현재까지 흔히 사용된다.[21]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 "핀란드의 스웨덴인", "핀란드 스웨덴인", "핀란드 스웨덴인", "스웨덴 핀란드인"과 같은 표현은 모두 학술 문헌에서 사용된다.

핀란드어에서는 일반적으로 'suomenruotsalaiset' (핀란드의 스웨덴인)라고 부르며, 법적으로는 'ruotsinkieliset' (스웨덴어계 사람) 또는 'ruotsinkielinen väestö' (스웨덴어계 주민)라고 부른다. 일본어 표기에서는 '''스웨덴어계 핀란드인'''도 있다. 또한, 스웨덴어 'finlandssvenskar'를 직역한 '''핀란드·스웨덴인'''이라는 표기도 존재한다.

스웨덴어 사용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hurri'가 사용되기도 한다.

3. 역사

15세기 초, 핀란드인의 마을(핀뷰)과 스웨덴인의 마을(스벤스크뷰)이라는 짝을 이루는 지명이 나타났는데, 이는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어 사용 지역의 언어 경계선에 대한 초기 증거로 해석된다.[45] 그러나 물질 문화는 언어와 관계없이 널리 퍼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42]

핀란드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이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과 핀란드어 사용 핀란드인 양쪽 모두에게 존재한다.[37] 20세기 초 남서 핀란드에서 수집된 익살스러운 이야기에는 스웨덴어를 모르는 핀란드 아줌마 셋이 스웨덴인의 시장에 가서 겪는 이야기가 있다. 이들은 순경에게 돈을 주고 스웨덴어 표현을 배우지만, 우연히 발견한 시체 때문에 살인범으로 오해받고 체포된다는 내용이다.[35]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남서부 해안 일대에 널리 퍼져 있으며, 여성의 출신이나 결말에는 여러 가지 변형이 있다.[35]

19세기 이후 핀란드어 사용 핀란드인 사이에서는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가 유행했다. 칼레발라를 편찬한 뢴로트는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이었다. 반면,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이나 범스칸디나비아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북유럽 신화의 에다사가가 선호되었다.[52]

3. 1. 스웨덴의 핀란드 지배와 식민지화

제1차 스웨덴 십자군(1150년경)은 핀란드에 스웨덴인이 처음 도착한 시기로, 기독교 전파와 핀란드 영토의 스웨덴 왕국 편입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스웨덴의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은 핀란드 남부 및 서부 해안 지역에 스웨덴 정착촌 건설을 야기했다.[22][23] 제2차 스웨덴 십자군 이후 스웨덴 정착촌은 뉘란드(우시마)까지 확장되었다.[22]

14세기에는 스웨덴 본토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스몰란드에서 헬싱글란드까지 스웨덴 동부 해안의 다양한 지역에서 새로운 정착민들이 대형 선박을 타고 도착했으며, 스웨덴 당국은 이러한 이주를 장려하고 조직했다.[22] 13세기와 15세기 동안 오스트로보스니아 해안은 노르란드로의 스웨덴 확장[22] 및 에스토니아 해안 지역과 병행하여 대규모 스웨덴 정착촌을 형성했다.

1323년 노브고로드 공국과 파흐키나사리 조약을 체결하면서 핀란드는 스웨덴-핀란드의 일부가 되었다.

1658년 스웨덴 왕국. 스웨덴 제국 또는 발트 제국이라고 불렸다.

3. 2. 핀란드 내 스웨덴어 사용 인구의 기원에 대한 논쟁

20세기 초, 핀란드 내 스웨덴어 사용 인구의 기원은 핀란드의 언어 갈등의 중요한 부분으로, 이와 관련하여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Ralf Saxén, Knut Hugo Pipping|후고 피핑sv, 토르 카르스텐 등 일부 핀란드계 스웨덴 학자들은 지명을 근거로 핀란드의 스웨덴 정착이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20년대에 Heikki Ojansuu는 이러한 주장에 반박했다.[24][25]

1966년, 역사가 Hämaläinen은 학자의 모국어와 핀란드의 스칸디나비아 정착 역사에 대한 견해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언급했다.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은 12세기 이전의 스웨덴어 사용자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최소화하려는 경향을 보인 반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학자들은 선사 시대부터 핀란드에 스웨덴 또는 게르만족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를 제시했다.[26]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핀란드의 여러 스웨덴어 사용 언어학자, 고고학자, 역사가들은 핀란드의 원게르만어/원노르드어 연속성에 대한 이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28][29][30][31][32][33] 현재의 연구에 따르면, 핀란드의 스웨덴어 사용 인구와 스웨덴 지명은 12세기와 13세기에 뉘란드와 오스트로보트니아의 핀란드 해안 지역에 대한 스웨덴 식민지화 시기부터 시작되었다.[34][24][25]

3. 3. 민족주의와 언어 갈등

핀란드어 사용 정당들은 언어법(1922년)과 핀란드 헌법의 언어 조항(1919년) 초안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E. N. 세탤래 상원의원의 주도 하에, 해당 언어 조항이 두 개의 국적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핀란드는 두 개의 국어를 가지지만 단 하나의 국적만을 가진다. 이 견해는 스웨덴어 사용 정치권에서는 결코 공유되지 않았고, 언어 분쟁의 길을 열었다.[12] 핀란드어 사용 측의 견해와는 반대로, 스웨덴 국적 운동의 지도자들(악셀 릴레 등)은 핀란드의 스웨덴계 인구가 자체적인 국적을 형성한다고 주장했으며, 헌법 조항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12]

핀란드어 사용 정치권은 핀란드 스웨덴계의 문화적 권리를 소수 민족 권리로 칭했다. 핀란드 스웨덴계의 정치적 견해는 핀란드어 사용 국적과 함께 스웨덴 국적의 동등성을 강조했으며, 핀란드의 국어는 국가 자체가 아닌, 해당 국가의 각 국적의 언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비록 스웨덴어 사용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소수 민족에 해당하지만, 소수 민족 개념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점차적으로 소수 민족 개념이 스웨덴어 사용자에게 적용되었으며, 심지어 핀란드 스웨덴계 정치 담론 내에서도 적용되었다.

스웨덴 국적 운동은 핀란드 독립 후와 곧 이어진 내전 동안 효과적으로 동원되었다. 핀란드의 스웨덴 의회는 스웨덴어 사용자의 언어적 완전성을 보호하고, 스웨덴어 사용자가 지역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 스웨덴어 사용에 대한 고정된 영토적 보장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39] 핀란드어 사용 정당과 지도부는 핀란드 본토의 스웨덴어 사용자 자치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스웨덴어 사용 정치 운동의 더 광범위한 바람 중에서 문화적 양보—특히 스웨덴 학교에 대한 행정 자치와 스웨덴 교구—만이 실현되었지만,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언어 집단 간의 더 철저한 갈등을 막기에 충분했다.

3. 4. 스웨덴 국적과 영토적 인정 추구

핀란드어 사용 정당들은 언어법(1922년)과 핀란드 헌법의 언어 조항(1919년) 초안 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E. N. 세탤래 상원의원의 주도 하에, 해당 언어 조항이 두 개의 국적(Nationality)의 존재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해석했다. 이 관점에 따르면 핀란드는 두 개의 국어를 가지지만 단 하나의 국적만을 가진다. 이 견해는 스웨덴어 사용 정치권에서는 결코 공유되지 않았고, 언어 분쟁의 길을 열었다. 핀란드어 사용 측의 견해와는 반대로, 스웨덴 국적 운동의 지도자들(악셀 릴레 등)은 핀란드의 스웨덴계 인구가 자체적인 국적을 형성한다고 주장했으며, 헌법 조항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12] 핀란드어 사용 정치권은 핀란드 스웨덴계의 문화적 권리를 소수 민족 권리로 칭했다. 핀란드 스웨덴계의 정치적 견해는 핀란드어 사용 국적과 함께 스웨덴 국적의 동등성을 강조했으며, 핀란드의 국어는 국가 자체가 아닌, 해당 국가의 각 국적의 언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비록 스웨덴어 사용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소수 민족에 해당하지만, 소수 민족 개념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점차적으로 소수 민족 개념이 스웨덴어 사용자에게 적용되었으며, 심지어 핀란드 스웨덴계 정치 담론 내에서도 적용되었다.

스웨덴 국적 운동은 핀란드 독립 후와 곧 이어진 내전 동안 효과적으로 동원되었다. 핀란드의 스웨덴 의회는 스웨덴어 사용자의 언어적 완전성을 보호하고, 스웨덴어 사용자가 지역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에 스웨덴어 사용에 대한 고정된 영토적 보장을 추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39] 핀란드어 사용 정당과 지도부는 핀란드 본토의 스웨덴어 사용자 자치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스웨덴어 사용 정치 운동의 더 광범위한 바람 중에서 문화적 양보—특히 스웨덴 학교에 대한 행정 자치와 스웨덴 교구—만이 실현되었지만, 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 언어 집단 간의 더 철저한 갈등을 막기에 충분했다.

3. 5. 19세기 말 이후의 변화

19세기 말,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스웨덴어 사용자와 핀란드어 사용자 간의 상호 작용이 증가했다. 20세기 후반에는 스웨덴어 사용자의 비율이 감소했으나, 최근에는 이중 언어 가정의 증가로 이러한 감소세가 둔화되고 있다.

4. 스웨덴어와 핀란드어 사용 인구의 역사적 관계

오늘날 스웨덴어 사용 지역 내 핀란드어 지명은 해당 지역에 핀란드인들이 이전에 정착했음을 나타낸다. 스웨덴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핀란드 정착지가 영구적이었는지 계절적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스웨덴어 사용자의 두 주요 지역(우시마와 오스트로보트니아)은 스웨덴인들이 도착할 당시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농민들은 동족 결혼을 해왔으며, 초기 이주 시대에는 핀란드인과의 혼인율이 상당했다.[22]

13세기에 제2차 스웨덴 십자군은 스웨덴 정착촌을 우시마까지 확장시켰다.[22] 14세기 동안, 스웨덴 본토로부터의 인구 확장은 조직적인 대규모 이주의 형태를 점점 더 띠게 되었다. 새로운 정착민들은 스몰란드에서 헬싱글란드까지 스웨덴 동부 해안의 다양한 지역에서 대형 선박을 타고 대거 도착했다. 스웨덴 당국은 스웨덴 본토에서 핀란드로의 이주를 장려하고 조직했다.[22] 13세기와 15세기 동안 오스트로보스니아 해안은 노르란드로의 스웨덴 확장[22] 및 에스토니아 해안 지역과 병행하여 대규모 스웨덴 정착촌을 받았다.

스웨덴어 사용 사회는 내륙에도 있었으며, 측량사, 산림 감독관, 교사, 경찰관, 목사, 의사, 사진사, 군인, 약사, 제재소 주인, 지주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가구에서는 가정에서 스웨덴어를 사용하고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하인을 고용했다. 특히 19세기 이후 핀란드에서는 스웨덴어계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상류 계급 사회와 결부되었다. 실제 스웨덴어계의 중심은 해안 지역의 어부, 농민, 장인이었지만, 스웨덴어는 권력의 언어로 인식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핀란드를 직할지로 하여 1809년 핀란드 대공국을 건국했다. 러시아는 핀란드인을 대공국의 통치자로 대우했는데, 여기에는 스웨덴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러시아는 신앙의 자유, 의회와 의원, 신분과 특권 유지, 법률의 자유 등을 보장했다. 한편 1829년 이후 검열 제도가 강화되어 스웨덴 통치 시대에 존재했던 사상과 언론, 출판의 자유는 제한되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북유럽 국가들의 범 스칸디나비아주의의 영향으로 핀란드에서도 민족주의가 높아지자, 스웨덴어계 주민도 핀란드인과 함께 핀란드의 독립을 러시아에 호소했다. 스웨덴어계이며 범 스칸디나비아주의자인 아돌프 이바르 아르비드손|아돌프 이바르 아르비드손sv이 남긴 유명한 말에는 "더 이상 스웨덴인이 아니다. 러시아인이 될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핀란드인이 될 것이다"가 있다. 1863년 신분제 의회에서 알렉산드르 2세는 언어 포고령을 발표하여 이미 공용어가 되었던 스웨덴어와 함께 핀란드어도 공용어가 되어, 2개 공용어 체제가 시작되었다. 핀란드인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어졌고, 핀란드어계는 1860년대에 청년 핀란드당을 결성하여 정치 활동을 했으며, 스웨덴어계는 1870년에 스웨덴 인민당을 결성했다. 핀란드어계는 페노만|페노만fi, 스웨덴어계는 스베코만|스베코만fi이라고 불렸으며, 양자는 종종 충돌했다.

핀란드의 행정어를 러시아어로 하는 언어 선언(1900년)과, 핀란드군을 폐지하고 러시아 제국군에 징병하는 병역법(1901년)이 제정되자 러시아에 대한 반발이 강해졌고, 청년 핀란드당과 스베코만은 협력하여 호헌파를 구성하여 자치를 요구했다. 러시아는 국내외의 동란의 영향으로 핀란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1906년에 의회법을 제정했다. 1907년에는 최초의 보통 선거가 실시되었고, 스베코만 측의 스웨덴 인민당은 전체 200석 중 24석을 획득했으며, 이후 1920년대에도 10% 정도의 일정한 의석을 유지했다.

핀란드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모르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농담이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과 핀란드어 사용 핀란드인 양쪽 모두에게 존재한다. 민속학자가 20세기 초 남서 핀란드에서 수집한 익살스러운 이야기에는 "스웨덴인의 시장에 가는 3명의 핀란드 아줌마들"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되어 있다.

19세기 이후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핀란드어 사용 핀란드인 사이에서는 카렐리야 지방에서 유래한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가 유행했다. 칼레발라를 편찬한 엘리아스 뢴로트는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에 해당한다. 한편,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이나 범 스칸디나비아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북유럽 신화의 에다사가가 선호되었다.

5. 이중 언어 사용

핀란드는 핀란드 헌법에 명시된 이중 언어 국가이다. 스웨덴어 사용자는 모국어로 국가 기관과 소통할 권리가 있다.[54] 지방 자치 단체 수준에서 이 권리는 소수 언어 사용자가 일정 최소 인구수를 가진 지방 자치 단체로 법적으로 제한된다. 공공 표지판은 이중 언어 도시에서 두 언어로 표시된다.[54] 핀란드 본토의 스웨덴어 사용 지역은 고정된 영토적 보호를 받지 못한다.[51] 스웨덴어와 핀란드어는 모두 필수 학교 과목이다.

핀란드의 모든 공동체와 도시들은 단일 언어 또는 이중 언어로 분류된다. 소수 언어 사용자의 비율이 8%(또는 3000명)로 증가하면 해당 지방 자치 단체는 이중 언어로 정의되며, 6% 미만으로 떨어지면 단일 언어가 된다. 이중 언어 지방 자치 단체에서는 모든 공무원이 핀란드어 또는 스웨덴어 중 하나에 대한 만족스러운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모국어 수준의 다른 언어 능력 외에). 이러한 도시의 공무원과의 모든 의사 소통에서 두 언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다.

핀란드 본토의 스웨덴어 사용 지역은 벨기에의 독일어와 북 이탈리아와 같은 중부 유럽의 여러 국가 소수 민족 언어와 달리 고정된 영토적 보호를 받지 못하여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51][52] 핀란드의 언어법은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의 언어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있다.[53]

1970년대 교육 개혁 이후, 스웨덴어와 핀란드어는 모두 필수 학교 과목이 되었다. 학교 과목은 학생의 모국어에 따라 '핀란드어' 또는 '스웨덴어'로 불리며, 공식적으로 '모국어'(핀란드어: ''äidinkielifi'', 스웨덴어: ''modersmålsv'')라고 불린다. 보조 언어는 '다른 국내 언어'(핀란드어: ''toinen kotimainen kielifi'', 스웨덴어: ''andra inhemska språketsv'')라고 불린다. "다른 국내 언어" 수업은 종합 학교의 3, 5 또는 7학년에 시작되며 모든 중등 교육 과정의 일부이다. 폴리테크닉 및 대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은 "다른 국내 언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소수 민족이라는 것은 기능적인 이중 언어 구사 능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들은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핀란드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헬싱키투르쿠와 같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대부분 스웨덴어와 핀란드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한다.

6. 인구 통계

스웨덴어 사용 핀란드인은 2020년 기준 핀란드 인구의 약 5.2%를 차지하며,[57] 주로 핀란드 연안 지역과 올란드 제도에 거주한다.

스웨덴어 사용 지역의 핀란드어 지명은 과거 핀란드인 정착의 흔적을 보여준다.[40] 투르쿠 제도 지명 분석에 따르면, 초기 근대 시대까지 핀란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상당수의 인구가 존재했다.[40] 그러나 스웨덴인 도착 이전 핀란드인 정착지가 영구적이었는지, 계절적이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남서부 해안과 제도의 일부 핀란드 마을과 농장이 동화 과정을 통해 스웨덴어 사용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41]

다른 관점에서는 스웨덴어 사용자의 주요 지역인 뉘랜드와 오스트로보트니아가 스웨덴인 도착 당시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본다.[22] 최근 유전자 연구와 교회 기록에 따르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농민들은 동족 결혼을 하는 경향이 강했다.[22] 역사학자 Tarkiainen(2008)은 중세 후기부터 최근까지 스웨덴어 사용 농민들이 같은 교구, 종종 같은 마을에서 배우자를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초기 이주 시대(약 1150~1350년)에는 현지 핀란드인과 스웨덴 이민자 간 혼인율이 상당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 핀란드인들이 스웨덴어 사용 인구에 동화되었다.[22]

핀란드 헌법 제17조는 스웨덴어 사용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법원 및 공공 기관에서 스웨덴어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스웨덴어 미디어와 정당이 존재하며, 스웨덴어로만 교육받아 대학까지 진학할 수 있다.

핀란드 내 스웨덴어 사용 인구 분포는 다음과 같다.

구분비율 (%)
핀란드어가 우세한 공식적인 이중 언어 도시 및 자치구 거주44
스웨덴어가 우세한 공식적인 이중 언어 도시 및 자치구 거주41
올란드 제도 거주9
공식적인 단일 언어 핀란드어 사용 도시 및 자치구 거주6



올란드 제도는 주민의 약 90%가 스웨덴어를 사용하며,[57] 1920년 제정된 올란드 자치법에 의해 자치가 보장된다. 올란드 제도 주민은 병역이 면제되고, 교육 언어는 스웨덴어만 사용된다.

핀란드는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덴마크와 함께 북유럽 언어 협정을 체결하여, 각국 국민이 상호 공공 기관에서 자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7. 문화, 문학, 민속

핀란드 스웨덴 민속은 전통적으로 해양의 영향을 받아왔으며, 북유럽 맥락에서 전형적인 주제를 다룬다. 사악한 물의 정령과 관련된 이야기와 설화가 중심을 이룬다. 일부 이야기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래되었으며, 북유럽 환경에 맞춰 각색되었다.[22] 핀란드 스웨덴 민속은 핀란드어 사용자의 민속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핀란드 스웨덴 문학은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에디트 쇠데르그란은 영어권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했으며, 군나르 비외를링과 엘메르 딕토니우스와 함께 20세기 초 핀란드 스웨덴 모더니스트들은 스칸디나비아 모더니즘 전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토베 얀손은 핀란드 스웨덴 산문의 가장 유명한 예시일 것이다. 그녀의 ''무민'' 시리즈는 전 세계 어린이와 어른들을 매료시켰다.

11월 6일, 핀란드 스웨덴 유산의 날은 핀란드의 스웨덴어 사용 인구, 그들의 문화, 핀란드의 이중 언어 사용을 기념하는 날이다.[43]

8. 정체성

핀란드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수와 구별되는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47] 이들은 스웨덴어로 말할 때 모든 핀란드 국민을 지칭할 때 주로 'finländare|핀랜다레sv'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자신과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을 모두 포함하기 위한 것이다. 스웨덴어 단어 'finnar|핀나르sv'는 핀란드 스웨덴어 사용법에서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제법 및 소수 민족 권리에 관한 문헌에서는 핀란드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별개의 국적을 구성한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12] 핀란드 다수는 스웨덴 국적의 존재를 부정하려 하며, 법령에서 항상 "스웨덴어" 대신 "스웨덴어를 사용하는"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그 예시이다. 핀란드 헌법 14조 1항("핀란드어와 스웨덴어는 공화국의 국어이다")은 핀란드의 두 국적의 언어가 아니라 핀란드의 국가 언어임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12]

9. 저명한 핀란드 스웨덴어 사용자


  • 리누스 토르발스 -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리눅스 커널 창시자
  • 라르스 알포르스 - 수학자, 필즈 메달 수상자
  • 장 시벨리우스 - 클래식 작곡가
  •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 - 원수이자 핀란드 제6대 대통령
  • 몬티 와이드니어스 - MySQL 창시자
  • 알렉산데르 스투브 - 전 핀란드 총리 및 제13대 대통령
  • 토베 얀손 - 화가, 삽화가, 작가, 무민 캐릭터 창작자
  • 에디트 쇠데르그란 - 모더니스트 시인
  • 벵트 홀름스트룀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 안티 아흘스트룀 - 기업가, 아흘스트룀 기업 창립자
  • 구스타프 마우리츠 아르메펠트 - 궁정인이자 외교관. 핀란드에서는 핀란드의 위대한 정치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 니클라스 백스트룀 - NHL 미네소타 와일드 아이스하키 골키퍼
  • 얄마르 폰 본스도르프 - 제독, 올란드 제도 초대 총독이자 정치인
  • 요른 도너 - 작가, 영화 감독, 배우, 프로듀서 및 정치인
  • 알베르트 에델펠트 - 화가
  • 요한 알브레히트 에렌스트룀 - 헬싱키 시 재건을 담당하는 위원회 의장 및 건축가
  • 요한 카시미르 에른로트 - 러시아 제국 군인, 불가리아 총리 역임
  • 아르비드 아돌프 에톨렌 - 러시아-미국 회사에 고용된 해군 장교[74]
  • 칼-아우구스트 파게르홀름 - 핀란드 총리 세 번 역임
  • 카이 프랑크 - 핀란드 디자인의 주요 인물
  • 악셀리 갈렌-칼레라 - 칼레발라 (핀란드 국민 서사시) 삽화로 가장 잘 알려진 화가
  • 라그나르 그라니트 - 과학자, 1967년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
  • 마르쿠스 그로holm - 랠리 드라이버, 2회 월드 챔피언
  • 프레드릭 이데스탐 - 광산 기술자이자 사업가, 노키아 창립자로 가장 잘 알려짐
  • 에로 얘르네펠트 - 사실주의 화가
  • 페르닐라 칼슨 - 가수
  • 린다 람페니우스 -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 케빈 란키넨 - NHL 내슈빌 프레데터스 아이스하키 골키퍼
  • 마티아스 릴마스 - 포크/블랙 메탈 밴드 핀트롤 보컬
  • 마그누스 린드베르그 - 작곡가
  • 이사크 엘리엇 룬덴 - 싱어송라이터
  • 구스타프 노르덴셸드 - 콜로라도 메사 베르데의 절벽 주거지 탐험가, 아돌프 에릭 노르덴셸드의 아들
  • 아돌프 에릭 노르덴셸드 - 북극 탐험가, 북동 항로를 최초로 정복하고 유라시아 일주, 구스타프 노르덴셸드의 아버지
  • 군나르 노르드스트룀 - 물리학자
  • 파라다이스 오스카르 - 싱어송라이터 (본명: 악셀 에른스트룀)
  • 케부 - 키보드 연주자, 작곡가, 프로듀서 (본명: 세바스티안 테이어)
  • 에밀 폰 크반텐 - 시인 및 정치인
  • 요한 루드비그 루네베르크 - 낭만주의 작가이자 핀란드의 국민 시인
  • 헬레네 스셰르프베크 - 화가
  • 안드레 린만 - 음악가
  • 크리스타 지그프리드 - 팝 음악가
  • 야니나 오를로프 - 번역가
  • 요한 빌헬름 스넬만 - 영향력 있는 페노만 철학자이자 핀란드 정치가
  • 라르스 손크 - 건축가
  • 벵트 이데스탐-알름크비스트 - "스웨덴 영화 비평의 아버지"[75]
  • 팀 스파르브 - 전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카알로 유호 스톨베르그 - 핀란드 제1대 대통령
  • 페르 에빈드 스빈후부드 - 핀란드 제3대 대통령
  • 에릭 티게르스테트 - 20세기 초 핀란드의 발명가, 종종 "핀란드의 토머스 에디슨"으로 불림
  • 자카리아스 토펠리우스 - 언론인, 역사가 및 작가
  • 마이클 위데니우스 -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이자 오픈 소스 MySQL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의 원래 버전 주요 저자
  • 루돌프 발덴 - 기업가이자 장군
  • 마르틴 베겔리우스 - 작곡가, 음악학자,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창립자
  • 게오르크 헨리크 폰 브라이트 - 철학자
  • 알바르 알토 - 건축가, 디자이너
  • 한스 빈드 - 군인, 에이스 파일럿
  • 마르쿠스 그론홀름 - 랠리 드라이버
  • 키릴 라크스만 - 박물학자
  • 케케 로즈버그 - 전 F1 드라이버

10. 스웨덴어 사용 이민자

핀란드에는 소규모의 스웨덴어 사용 이민자 커뮤니티가 있다. 이들 중 다수는 스웨덴 출신이거나 스웨덴에 거주한 적이 있다(약 8,500명의 스웨덴 시민이 핀란드에 거주[58], 핀란드 거주자 중 약 3만 명이 스웨덴에서 태어남[59]). 다른 사람들은 거주하는 도시의 주요 언어가 스웨덴어이거나 배우자가 스웨덴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스웨덴어를 선택했다.[60] 헬싱키 지역 이민자의 약 4분의 1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스웨덴어로 통합되기를 원한다.[61] 핀란드의 스웨덴어 싱크탱크인 마그마(Magma)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에 다수 사회보다 더 쉽게 통합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일부 이민자들은 자신이 핀란드 스웨덴인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62]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은 자체 단체인 Ifisk[63]를 가지고 있으며, 수도권에는 스웨덴어를 알고 있거나 배우고 싶어하는 이민자들의 통합을 돕기 위한 공공 자금 지원 프로젝트인 ''Delaktig''가 있다.[64] 거의 모든 이민자는 핀란드 사회에서 핀란드어가 지배적인 언어이기 때문에 핀란드어에 능통해지기를 원한다.

11. 디아스포라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들은 세계 여러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다른 핀란드 인구보다 이주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65] 1870년대 초부터 1920년대 후반까지 약 7만 명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이 북미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많은 수가 아이언 레인지, 미니애폴리스-세인트 폴, 덜루스를 포함한 주 북동부 지역과 슈페리어 호수의 노스 쇼어에 정착했다. 핀란드의 라르스모에서 이름을 딴 미네소타주 라르스몬트는 1900년대 초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들에 의해 세워졌다.[66][67]

지리적, 언어적 이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였다. 2000년부터 2015년까지의 한 연구에 따르면, 해외로 이주한 26,000명 이상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 중 절반 이상이 스웨덴으로 이주했다.[68] 핀란드 방송사 YLE에 따르면 스웨덴에는 약 20만 명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Sverigefinlandssvenskarsv)이 살고 있다. 핀란드 스웨덴어와 스웨덴에서 사용되는 스웨덴어의 눈에 띄는 차이로 인해,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은 비원어민으로 오해를 받아 언어 강좌를 수강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69][70] 특히 스웨덴 핀란드인 권익 단체인 Finlandssvenskarnas riksförbund i Sverigesv(Fris)를 비롯한 단체들은 사미족, 유대인, 로마니족, 스웨덴 핀란드인, 토르네달인 외에 공식적인 소수 민족 그룹으로 인정받기 위해 스웨덴에서 수십 년 동안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 문제는 스웨덴 의회(Riksdag)에서 여러 차례 논의되었으며, 2017년 시도는 이 민족 집단이 1900년 이전에 스웨덴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패했다.[71][72]

스웨덴-핀 역사 협회는 미국 워싱턴주에 기반을 둔 단체로, 이 민족 집단의 이주 역사를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6]

1990년부터 2021년까지 총 50,034명의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이 해외로 이주했다. 이 중 76.5%가 다른 북유럽 국가로 이동했다. 가장 인기 있는 목적지는 다음과 같다.

국가이주자 수비율
32,86765.7%
3,4376.9%
1,8723.7%
1,7203.4%
1,4462.9%
1,3522.7%
9321.9%
4951.0%
1150.2%



2021년에는 1,432명의 핀란드 스웨덴인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이는 1996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이다. 이주는 2015~2018년 사이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연간 2,000명 가까이 이주했다. 이들은 2021년 핀란드 이민자의 20.1%를 차지했다. 2021년 스웨덴에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순이동은 256명이었다.[73]

12. 핀란드 귀족 계층에서 스웨덴어의 역사적 우세

핀란드 17세기 귀족 구스타프 호른


오늘날 핀란드의 일부 지역은 13세기에 스웨덴 왕국에 통합되었으며, 당시 왕국은 아직 스웨덴의 통합 과정에 있었다.[22] 핀란드는 550년 동안 본토 스웨덴의 일부였기 때문에 스웨덴어는 귀족, 행정 및 교육의 언어였다.[22] 따라서 왕국의 신분 중 가장 높은 두 신분인 귀족성직자는 스웨덴어를 사용했다. 부르주아와 농민에게도 스웨덴어가 영향을 미쳤지만, 지역에 따라 정도가 달랐다.

중세 시대 대부분의 귀족 가문은 스웨덴에서 직접 왔다.[49] 상당수의 귀족은 외국 출신(주로 독일인)이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일반적으로 스웨덴어를 모국어로 채택했다.

루터교(고교회 루터교 형태) 초기 성직자는 중세 시대 핀란드 귀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확장되는 도시에서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함께 농민의 부유한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교회는 주로 또는 완전히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교구(국가의 대부분)에서 봉사하는 성직자에게 핀란드어 구사를 요구했다.[22] 그 결과 성직자 가문은 높은 수준의 기능적 이중 언어 구사 능력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성직자 가문은 부르주아보다 핀란드어에 더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시대 핀란드를 포함한 스웨덴 왕국의 상업은 스웨덴과 핀란드의 도시로 이주한 독일 상인들이 대규모로 지배했다. 그 결과, 중세 후기 스웨덴(그리고 투르쿠(Åbo) 및 비보르(비보르))의 부유한 부르주아들은 독일 출신인 경향이 있었다. 19세기에는 독일어 사용 국가에서 상업 활동과 주로 관련된 새로운 이민 물결이 있었고, 오늘날까지 핀란드의 대부르주아의 주목할 만한 부분을 형성했다.

핀란드 전쟁 이후,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잃었다. 핀란드 대공국 시대(1809–1917) 동안 러시아 당국은 스웨덴과의 문화적, 정서적 유대를 끊고 스웨덴과의 재결합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핀란드어를 장려했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에는 핀란드어가 행정 및 문화 영역에서 스웨덴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핀란드어가 사회에서 점점 더 지배적인 위치로 부상한 것은 처음에는 주로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가족 배경을 가진 사회 상류층의 핀란드어 열성 옹호자들의 산물이었다. 특히 20세기 초반에는 스웨덴 성씨를 핀란드어로 채택하거나 번역하거나 수정하는 것(핀란드화)이 사회 전체에서, 특히 상류층 가문의 방계에서 주로 이루어졌다.[50]

스웨덴어에 대한 반대는 19세기에 발생한 역사적 편견과 갈등을 부분적으로 기반으로 했다. 핀란드의 언어 갈등이 격화되고 핀란드어와 핀 문화가 농민 신분에서 국가 언어와 국가 문화의 지위로 격상하려는 열망은 스웨덴어 사용자를 평화로운 핀란드어 사용 농민의 외국 억압자로 부정적으로 묘사하게 만들었다.

스웨덴어 사용자의 비율 분포가 다른 사회 계층에서 일반 인구의 비율 분포를 밀접하게 반영하지만, 스웨덴어는 여전히 핀란드의 역사적인 상류 계급 문화의 언어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이는 스웨덴어 사용자가 "구 화폐" 가문뿐만 아니라 약 6,000명으로 구성된 핀란드 귀족(약 3분의 2가 스웨덴어 사용자) 내에서 통계적으로 과다 대표된다는 사실에 의해 강화된다. 여전히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핀란드인의 대다수는 전통적으로 핀란드 해안 자치구와 군도의 농부와 어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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