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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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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민당(1994년)은 1994년 6월 통일국민당과 신정치개혁당의 합당으로 창당되었으며, 14대 국회에서 15석을 보유한 원내 정당이었다. 창당 이후 당내 갈등과 분열을 겪었으며, 김동길과 박찬종 간의 갈등, 전당대회에서의 폭력 사태 등으로 혼란을 겪었다. 이후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과의 통합을 추진하여 1995년 5월 31일 합당을 통해 소멸되었다. 합당에 반대하는 일부 당원들은 탈당하여 신민당을 재창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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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당 (1994년) - [정당]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신민당
원어 이름新民黨
약칭해당사항 없음
당기해당사항 없음
신민당 (1994년) 로고
신민당 (1994년) 로고
총재해당사항 없음
원내대표해당사항 없음
창당1994년 7월 8일 (창당)
선행 조직통일국민당
신정치개혁당
통합 정당자유민주연합
후계 정당무정파전국연합
국제해당사항 없음
해산1995년 5월 31일 (자유민주연합과 합당)
개명 전해당사항 없음
중앙 당사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8길 18 (여의도동 15-11, 금영빌딩)
이념보수자유주의
스펙트럼중도우파
상징색청록
의회 정보
대한민국 국회 의석수15
대한민국 국회 정수299
교섭단체해당사항 없음
기타 정보
웹사이트해당사항 없음

2. 역사

1994년 6월 30일에 김동길이 대표를 맡고 있던 통일국민당박찬종이 대표를 맡고 있던 신정치개혁당과의 합당을 결의하고 당명을 '''신민당'''(新民黨)으로 결정했다.[1] 신민당은 창당과 동시에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에서 15석을 보유한 원내정당이 되었다. 신민당은 1994년 8월 2일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참여했는데 슬롯머신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박철언 전 민주자유당 의원의 아내인 현경자가 대구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신민당은 합당 이후에도 큰 세를 발휘하지 못했다. 특히 김동길 공동대표는 1994년 8월 29일에 박찬종 공동대표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적했는데 양순직 최고위원은 1994년 3월에 김동길 공동대표로부터 신민당 창당을 위하여 영입된 과정에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신민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먼저 구성하고 박찬종을 개별 영입한다. 신민당은 김동길을 대권 후보로 옹립하고 양순직 최고위원이 당권을 행사하는 체제로 역할을 분담한다. 김동길 공동대표는 나중에 양순직 최고위원으로부터 당권을 인계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내용이 담긴 비밀 합의 각서를 썼다고 폭로했다.[2] 김동길 공동대표는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적한 지 8일이 지난 1994년 9월 6일에 신민당 당사로 돌아왔다가 양순직, 유수호 최고위원을 비롯한 당내 비주류 인사들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3] 1994년 10월 5일에는 박찬종 공동대표가 기자 회견을 통해 김동길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4]

박찬종 공동대표를 위시한 신민당 내 비주류 세력은 1994년 10월 10일에 서울 63빌딩에서 전당대회를 강행하고 박찬종을 단독 대표로, 양순직·정상구·한영수·김용환·유수호·박철언·임춘원 7명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는 한편 김동길 공동대표를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5] 이러한 결정은 김동길 공동대표를 위시한 신민당 내 주류 세력으로부터 "쿠데타와 같은 당권 찬탈 행위"라는 반발을 불렀는데 김동길 공동대표는 박찬종 공동대표에게 제명 처분을, 양순직 최고위원에게 2년 간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렸다.[5][6] 또한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린 63빌딩에서는 박찬종을 위시한 당내 비주류 세력을 추종하던 당원들 200여 명과 김동길을 위시한 당내 주류 세력을 추종하던 당원들 200여 명이 소화기와 각목을 동원한 폭력 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7][8]

박찬종을 위시한 신민당 내 비주류 세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중앙당 변경 등록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1994년 11월 3일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9] 김동길 공동대표는 1994년 11월 9일에 당무위원회 회의를 열고 박찬종 공동대표에게 2년 간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1994년 10월 10일에 신민당 내 비주류 세력이 독자적으로 개최한 전당대회에 참여한 당원 37명에게 무더기 제명 처분을 내렸다.[10]

그러던 중에 김종필 민주자유당 대표가 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인해 1995년 2월 9일에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하고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모색하면서 신민당에서도 민주당 또는 일명 '김종필 신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11] 신민당은 1995년 3월 27일에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김복동 최고위원을 당 대표로 추대했다.[12]

김복동 신민당 대표는 1995년 4월 21일에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신민당과 민주당 간의 통합에 합의했으나[13] 법적 공동 대표 등록 문제로 인하여 결별했다.[14] 신민당은 김종필이 대표를 맡고 있던 자유민주연합과의 합당을 추진했으나 임춘원을 비롯한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15]

김복동 신민당 대표는 1995년 5월 16일에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을 당 대 당 형식으로 통합하기로 합의했다.[16][17] 이에 따라 신민당은 1995년 5월 31일을 기해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면서 소멸되었다.[18] 하지만 임춘원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은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합당 결정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특히 신민당 비상대책위원회 의장을 역임했던 박영록 전 의원은 1995년 6월 3일에 열린 기자 회견을 통해 "김복동 신민당 대표, 한영수 의원이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통합에 반대했던 자신을 회유하기 위하여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하면서 현금 5,000만원이 든 가방을 증거물로 제시했다.[19][20] 임춘원 의원은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합당 결정에 반발한 일부 당원들과 함께 신민당(나중에 무정파전국연합으로 이름을 바꿈)을 재창당하면서 독자적인 정당 활동에 나섰다.

2. 1. 창당 배경

1994년 6월 30일, 김동길이 대표로 있던 통일국민당박찬종이 대표로 있던 신정치개혁당과 합당을 결의하고 당명을 '''신민당'''(新民黨)으로 결정했다.[1] 이 합당으로 신민당은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에서 15석을 보유한 원내정당이 되었다. 같은 해 8월 2일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된 박철언 전 의원의 아내 현경자가 대구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 당선되어 주목받았다.[1]

2. 2. 김동길-박찬종 갈등

1994년 6월 30일, 김동길이 대표로 있던 통일국민당박찬종이 대표로 있던 신정치개혁당이 합당하여 '''신민당'''(新民黨)이 창당되었다.[1] 하지만 합당 이후에도 신민당은 큰 세를 발휘하지 못했고, 김동길과 박찬종 공동대표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1994년 8월 29일, 김동길 공동대표는 박찬종 공동대표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적했다.[2] 양순직 최고위원은 김동길 공동대표가 신민당 창당 과정에서 "신민당은 원내교섭단체를 먼저 구성하고 박찬종을 개별 영입한다. 김동길을 대권 후보로 옹립하고 양순직 최고위원이 당권을 행사하는 체제로 역할을 분담한다. 김동길 공동대표는 나중에 양순직 최고위원으로부터 당권을 인계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내용의 비밀 합의 각서를 썼다고 폭로했다.[2] 김동길은 8일 만에 당에 복귀했지만, 양순직, 유수호 최고위원 등 당내 비주류 인사들과 언쟁을 벌였다.[3] 1994년 10월 5일, 박찬종 공동대표는 김동길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4]

1994년 10월 10일, 박찬종을 위시한 신민당 내 비주류 세력은 전당대회를 강행하여 박찬종을 단독 대표로, 양순직 등 7명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고 김동길을 상임고문으로 추대했다.[5] 김동길을 위시한 주류 세력은 이를 "쿠데타와 같은 당권 찬탈 행위"라고 반발하며 박찬종에게 제명 처분을, 양순직에게 2년간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렸다.[5][6] 신민당 전당대회가 열린 63빌딩에서는 양측 당원들 간에 폭력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7][8]

박찬종을 위시한 비주류 세력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중앙당 변경 등록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각하되었고,[9] 김동길 공동대표는 1994년 11월 9일 당무위원회를 열어 박찬종에게 2년간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비주류 측 당원 37명에게 무더기 제명 처분을 내렸다.[10]

2. 3. 자유민주연합과의 통합 과정

1995년 2월 9일, 김종필 민주자유당 대표가 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인해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하고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모색하면서 신민당에서도 민주당 또는 일명 '김종필 신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11] 신민당은 1995년 3월 27일에 서울 잠실롯데호텔에서 열린 전당대회를 통해 김복동 최고위원을 당 대표로 추대했다.[12]

김복동 신민당 대표는 1995년 4월 21일에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신민당과 민주당 간의 통합에 합의했으나,[13] 법적 공동 대표 등록 문제로 인하여 결별했다.[14] 이후 신민당은 김종필이 대표를 맡고 있던 자유민주연합과의 합당을 추진했으나, 임춘원을 비롯한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15]

김복동 대표는 1995년 5월 16일에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표와의 회동을 통해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을 당 대 당 형식으로 통합하기로 합의했다.[16][17] 이에 따라 신민당은 1995년 5월 31일을 기해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면서 소멸되었다.[18] 하지만 임춘원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은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합당 결정에 반발하여 탈당했다.

박영록 전 의원은 1995년 6월 3일에 열린 기자 회견을 통해 "김복동 신민당 대표, 한영수 의원이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통합에 반대했던 자신을 회유하기 위하여 금품을 제공했다."고 폭로하면서 현금 5,000만원이 든 가방을 증거물로 제시했다.[19][20] 임춘원 의원은 신민당과 자유민주연합 간의 합당 결정에 반발한 일부 당원들과 함께 신민당(나중에 무정파전국연합으로 이름을 바꿈)을 재창당하면서 독자적인 정당 활동에 나섰다.

2. 4. 해산

1994년 6월 30일, 김동길이 대표로 있던 통일국민당박찬종이 대표로 있던 신정치개혁당이 합당하여 신민당이 창당되었다.[1] 창당 당시 신민당은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에서 15석을 보유한 원내정당이었다. 1994년 8월 2일에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슬롯머신 사건으로 구속된 박철언 전 의원의 아내 현경자가 당선되어 주목받았다.

하지만 합당 이후에도 신민당은 큰 세를 발휘하지 못했고, 당내 갈등이 심화되었다. 김동길 공동대표는 박찬종 공동대표에게 사퇴서를 제출하고 잠적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양순직 최고위원 등 당내 비주류 인사들과 갈등을 빚었다.[2][3] 1994년 10월 5일에는 박찬종 공동대표가 김동길 공동대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4]

1994년 10월 10일, 박찬종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 세력은 전당대회를 열어 박찬종을 단독 대표로 선출했지만,[5] 김동길 중심의 주류 세력은 이를 "쿠데타와 같은 당권 찬탈 행위"라고 비판하며 박찬종에게 제명 처분을 내렸다.[5][6] 양측 지지자들 간의 폭력 사태까지 발생했다.[7][8]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박찬종 측의 중앙당 변경 등록 신청을 각하했고,[9] 김동길은 박찬종에게 당원권 정지 처분을 내리는 등 당내 분란은 계속되었다.[10]

이후 김종필김영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신당 창당을 모색하면서,[11] 신민당은 민주당 또는 '김종필 신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1995년 3월 27일, 신민당은 김복동 최고위원을 당 대표로 추대했다.[12]

김복동 대표는 이기택 민주당 대표와 통합에 합의했으나,[13] 법적 문제로 결별하고,[14] 자유민주연합과의 합당을 추진했다. 일부 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15] 1995년 5월 16일 김복동 대표는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대표와 당 대 당 통합에 합의했고,[16][17] 1995년 5월 31일 신민당은 자유민주연합과 합당하여 소멸되었다.[18]

합당에 반발한 임춘원 의원 등 일부 당원들은 탈당하여 신민당(후에 무정파전국연합으로 개칭)을 재창당했다.[19][20]

3. 역대 정당 당원 및 당내 관련 사안

wikitext

신민당에는 김대중을 추종하던 세력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대한 세력이 합류하였다.

참조

[1] 뉴스 新政(신정)과 통합의결 당명 新民黨(신민당)으로 國民(국민)전당대회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9-14
[2] 뉴스 代表職(대표직) 포기인가「깜짝쇼」인가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4-03-10
[3] 뉴스 돌아온 김동길 대표가 몰고온 신민당의 내분[김석진] https://imnews.imbc.[...] MBC뉴스 2024-03-10
[4] 뉴스 新民(신민) 金(김)-朴(박)동거 청산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9-14
[5] 뉴스 新民(신민) 전당대회 亂鬪劇(난투극)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4-03-10
[6] 뉴스 新民(신민) 全大(전대) 강행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24-03-10
[7] 뉴스 신민당 비주류,전당대회 강행 박찬종 대표 단일대표 추대[황외진] https://imnews.imbc.[...] MBC뉴스 2024-03-10
[8] 뉴스 分黨(분당)위기 치닫는「新民號(신민호)」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24-03-10
[9] 뉴스 박찬종대표'나홀로 당권'무산 https://newslibrary.[...] 한겨레 2024-03-10
[10] 뉴스 朴燦鍾(박찬종)대표 당원권 정지 https://newslibrary.[...] 조선일보 2024-03-10
[11] 뉴스 "민주당이냐…自民聯(자민련)이냐…" 新民(신민)「통합선택」기로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19-09-14
[12] 뉴스 金復東(김복동)씨 새대표 신민당 전당대회 https://newslibrary.[...] 매일경제 2019-09-14
[13] 뉴스 民主(민주)·新民(신민) 통합선언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9-14
[14] 뉴스 民主(민주)·新民(신민) 통합 백지화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2019-09-14
[15] 뉴스 自民聯(자민련)—新民(신민) 통합 진통 https://newslibrary.[...] 매일경제 2019-09-14
[16] 뉴스 自民聯(자민련)—新民黨(신민당) 통합선언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19-09-14
[17] 뉴스 열달만에 간판내린 新民黨(신민당)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19-09-14
[18] 웹인용 홈 > 선거 바로알기 > 대한민국선거사 > 정당사 연표 http://museum.nec.go[...] 대한민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 2020-09-14
[19] 뉴스 自民聯(자민련)—新民黨(신민당) 통합선언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19-09-14
[20] 뉴스 성명서 (신민당 비상대책위원회)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2019-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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