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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전대책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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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전대책협의회는 중일 전쟁 시기인 1941년 8월, 잡지 《삼천리》 사장 김동환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이 단체는 전시 체제 협조를 목표로, 윤치호가 낭독한 결의문을 통해 일사보국을 맹세하고 물질과 노동력 공출, 국민 생활 수준 저하, 전시 봉공 의용화를 실천 방침으로 삼았다. 주요 활동으로는 채권가두유격대를 조직하여 저축보국 운동을 전개했으며, 윤치호, 최린 등의 주도로 결성 두 달 만에 흥아보국단과 합병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하면서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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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전대책협의회
임전대책협의회
인용문

2. 결성 배경

1941년 8월, 중일 전쟁 시국에 대한 협조를 위해 《삼천리》 사장 김동환이 중심이 되어 임전대책협의회를 조직하였다. 8월 25일 김동환은 각계 인사 약 200명을 부민관에 초청하여 임전체제 하에서 자발적으로 황국신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고, 실천 활동을 위한 상설 조직으로 임전대책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윤치호가 낭독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다.

: 아등은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며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기로 결의함.

임전대책협의회의 실천 방침은 다음과 같다.

# 물질, 노무 공출의 철저화

# 국민생활을 최저표준으로 인하

# 전시봉공의 의용화

윤치호, 최린 등의 주도로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는 두 달 만에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흥아보국단과 합병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하면서 해체되었다.

2. 1. 중일 전쟁 발발과 전시 체제 강화

1941년 8월, 중일 전쟁 시국에 대한 협조를 위해 《삼천리》 사장 김동환이 중심이 되어 임전대책협의회를 조직하였다. 김동환은 8월 25일 각계 인사 약 200명을 부민관에 초청하여 임전체제 하에서 자발적으로 황국신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장시간 논의했고, 실천 활동을 위한 상설 조직으로 임전대책협의회를 결성했다.

이때 윤치호가 낭독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다.

임전대책협의회의 실천 방침은 다음과 같다.

# 물질, 노무 공출의 철저화

# 국민생활을 최저표준으로 인하

# 전시봉공의 의용화

윤치호, 최린 등의 주도로 결성된 임전대책협의회는 두 달 만에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흥아보국단과 합병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하면서 해체되었다.

2. 2. 김동환 등 친일파의 주도

1941년 8월 중일 전쟁 시국에 대한 협조를 위해 《삼천리》 사장인 김동환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였다. 김동환은 8월 25일 각계 인사 약 200명을 부민관에 초청하여 임전체제 하에서 자발적으로 황국신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장시간 논의하였고, 상설 조직으로 임전대책협의회를 결성하였다.

이때 윤치호가 낭독한 결의문은 다음과 같다.

: 아등은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며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기로 결의함.

임전대책협의회의 실천 방침은 다음과 같다.

# 물질, 노무 공출의 철저화

# 국민생활을 최저표준으로 인하

# 전시봉공의 의용화

윤치호, 최린 등의 주도로 결성 두 달 만에 비슷한 성격의 단체인 흥아보국단과 합병하여 조선임전보국단을 결성하면서 해체되었다.

2. 3. 윤치호의 결의문 낭독

1941년 김동환이 부민관에서 각계 인사 약 200명을 초청하여 임전체제 하에서 황국신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장시간 동안 논의하였고, 이때 윤치호가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위의 제시된 출력물에서 제거해야할 템플릿은 이다. 인용문 템플릿을 제거하고, 해당 내용을 일반 텍스트로 풀어서 작성하면 최종 출력물은 다음과 같다:

1941년 김동환이 부민관에서 각계 인사 약 200명을 초청하여 임전체제 하에서 황국신민화 운동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장시간 동안 논의하였고, 이때 윤치호가 다음과 같은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 아등은 황국신민으로서 일사보국(一死報國)의 성(誠)을 맹서하며 임전국책에 전력을 다하여 협력하기로 결의함.

3. 주요 활동

임전대책협의회는 전쟁 경비 동원을 위해 채권가두유격대를 조직하고 저축보국 운동을 벌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3. 1. 채권가두유격대 조직 및 채권 판매

주요 활동은 전쟁 경비 동원을 위해 명사들을 동원하여 채권가두유격대를 조직한 것과, 연설회를 갖고 저축보국 운동을 벌인 것 등이다.

채권가두유격대는 약 70명의 사회 저명인사가 참가하여 다음과 같이 편성되었다. 회원들은 경성부의 11개 장소에 파견되어 거리에서 직접 1원짜리 소액 채권을 판매하였다. 구호는 "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였다.

지부참가자
종로대윤치호, 한상룡, 최린, 이광수, 김동환, 이용신, 방응모, 박인덕, 모윤숙
황금정대고원훈, 박흥식, 장우식, 이종린 부부, 박창서, 김택용
남대문대김갑순, 조병상, 원덕상, 오긍선, 이각종, 이용설
본정대이진호, 신용욱, 김시권, 김연수, 임흥순, 김승복, 최정희, 신태악
명치정대김명준, 이종만, 최창학, 이숙종, 이정섭, 이종회
경성역대정교원, 이돈화, 박기효, 송금선, 김사연, 손홍원
광화문대박상준, 이성근, 민규식, 양주삼, 김성진, 김동진, 유억겸, 박영희
서대문대신흥우, 주요한, 구자옥, 노창성, 소완규, 신봉조, 고황경
종로4정목대한규복, 이종욱, 조인섭, 이극로, 오용탁, 조대하
동대문대윤인석, 최원섭, 윤치영, 전부일, 이정재, 함상훈
청량리대성의경, 정인과, 홍세뢰, 원익상, 정광조, 조기간
연락본부이성환, 이규재


3. 2. 저축보국 운동 전개

주요 활동으로는 전쟁 경비 마련을 위해 명사들을 동원하여 채권가두유격대를 조직한 것과, 연설회를 열고 저축보국 운동을 벌인 것 등이 있다.

채권가두유격대는 약 70명의 사회 저명인사가 참가했다. 이들은 경성부의 11개 장소에 파견되어 거리에서 직접 1원짜리 소액 채권을 판매하였다. 당시 구호는 "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였다.

지부참가자
종로대윤치호, 한상룡, 최린, 이광수, 김동환, 이용신, 방응모, 박인덕, 모윤숙
황금정대고원훈, 박흥식, 장우식, 이종린 부부, 박창서, 김택용
남대문대김갑순, 조병상, 원덕상, 오긍선, 이각종, 이용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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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4정목대한규복, 이종욱, 조인섭, 이극로, 오용탁, 조대하
동대문대윤인석, 최원섭, 윤치영, 전부일, 이정재, 함상훈
청량리대성의경, 정인과, 홍세뢰, 원익상, 정광조, 조기간
연락본부이성환, 이규재


4. 조선임전보국단과의 통합

임전대책협의회와 조선임전보국단은 모두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선전과 동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단체였다. 1941년 10월 22일, 두 단체는 조선총독부의 주도 하에 통합되어 조선임전보국단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는 일제가 조선인들의 전쟁 협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5. 비판 및 역사적 평가

임전대책협의회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조직된 친일 단체로,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고 조선 민중의 전쟁 참여를 강요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이 단체는 황민화 운동을 주도하며, 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부정하고 일본의 정신과 사상을 강요하는 데 앞장섰다.

윤치호, 김연수, 고원훈 등이 주요 인물로 참여 했으며, 대동아 공영권 건설이라는 일제의 허황된 주장에 동조하여 조선인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등 민족 반역 행위를 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는다.

5. 1. 친일 행적

임전대책협의회는 1941년 8월에 조직된 단체로, 황민화 운동을 추진하고 일본의 전쟁 독려를 위한 선전·선동을 주도했다. 주요 인물로는 윤치호, 김연수, 고원훈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대동아 공영권' 건설이라는 일제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조선인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활동을 펼쳤다.

5. 2. 민족 반역 행위

임전대책협의회는 민족 반역 행위를 했다고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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