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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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나라는 중국 고대 국가로, 기원전 11세기 주나라가 건국될 때 강태공에게 봉해진 땅에서 시작되어 강제(姜齊)와 전제(田齊) 시대를 거쳐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멸망했다. 강제 시대에는 제 환공이 춘추 오패 중 한 명으로 꼽히며 강성했으나, 환공 사후 내분으로 쇠퇴했다. 이후 전씨가 권력을 장악하여 전제 시대를 열었고, 위왕 시기에 국력이 강성해져 왕을 칭하기도 했으나, 연합군의 공격으로 쇠퇴하여 결국 진나라에 멸망했다. 제나라는 어업과 제염, 철 생산으로 경제적 부를 쌓았고, 특히 수도 임치는 상업이 발달한 대도시였다. 또한 직하학궁을 통해 학문과 사상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관중, 안영, 손자, 맹자 등 다양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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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나라 - 전제 (전국)
전제는 진나라에서 망명한 전완을 시조로, 기원전 386년 제나라를 찬탈하여 건국되었으며, 효율적인 정치와 인재 등용으로 강성했으나 민왕 이후 쇠퇴하여 기원전 221년 진나라에 멸망한 국가이다. - 제나라 - 북제
북제는 고환의 아들 고양이 동위 효정제로부터 선양받아 건국되었으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돌궐과 연합하여 북주와 대립했으나, 후주 시기의 실정과 내부 갈등으로 쇠퇴하여 577년 북주에 의해 멸망한 남북조 시대의 북조 국가이다. - 허베이성의 역사 - 하북도
하북도는 당나라가 설치한 행정 구역으로, 현재의 허베이성, 산둥성 전역, 허난성 북부를 관할했으며, 안사의 난 이후 절도사 체제로 전환되어 당나라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 허베이성의 역사 - 북한 (십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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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는 청나라 세조 순치제의 연호로, 1644년 명나라 멸망 후 베이징 천도와 함께 사용되어 1661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당시 다양한 세력의 연호와 병존했다. - 중국사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제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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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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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 제(齊) |
로마자 표기 | Qi |
고대 중국어 발음 | *Dzəj |
존속 기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21년 |
정치 체제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323년: 제후국 기원전 323년 – 기원전 221년: 왕국 |
수도 | 영구 (기원전 11세기–기원전 866년) 박고(기원전 866년–기원전 859년) 임치(기원전 859년–기원전 221년) |
종교 | 조상 숭배 중국 민간 신앙 |
통화 | 도자 |
역사 | |
건국 | 강태공의 봉건 (기원전 1046년) |
멸망 | 진나라에 의해 정복됨 (기원전 221년) |
이전 | 박고 |
이후 | 진나라 |
지도자 | |
군주 칭호 | 제후 |
주요 인물 | 제 환공 (기원전 685년–기원전 643년) 제 경공 (기원전 547년–기원전 490년) 안영 (기원전 556년–기원전 500년) 관중 (기원전 685년–기원전 645년) |
2. 역사
제나라의 역사는 크게 강제(姜齊) 시대와 전제(田齊) 시대로 구분된다.
강제(姜齊)는 주나라 무왕이 강태공을 제나라에 봉하면서 시작되었다. 강태공은 현지 풍속을 존중하는 정책으로 나라를 안정시켰고, 주 성왕은 제나라에게 주변 지역을 토벌할 권한을 부여했다.[30][29] 이후 제나라는 영토를 확장하며 춘추 시대 초기에 강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바다와 접해 소금과 철 생산이 가능하여 자원이 풍족했다.[27][30] 제 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행정 개혁을 단행하고 패자(覇)로 인정받아 춘추 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5][6] 그러나 환공 사후,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해 제나라는 크게 약화되었다.[7] 경공은 안영과 사마양저를 등용하여 잠시나마 소패업을 이루기도 했다.
기원전 672년, 진(陳)나라에서 망명 온 전완의 후손들이 제나라에서 강력한 대부 가문이 되었다. 이들은 경공의 실정을 틈타 세력을 키웠고, 기원전 489년 경공 사후에는 전항이 간공을 죽이고 평공을 왕으로 세웠다. 이후 전씨는 3대에 걸쳐 사실상 왕 노릇을 했다.
전제(田齊)는 기원전 386년, 전화가 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면서 시작되었다.[156] 제 위왕 때 행정 개혁으로 국력이 강해져 왕을 칭했고, 제 민왕 때는 진(秦)나라와 함께 동제, 서제로 불릴 정도로 강성해져 송나라를 멸망시켰다.[158] 그러나 지나친 팽창 정책으로 연나라를 주축으로 하는 제후 연합군이 일어났고, 악의가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멸망 직전에 놓이기도 했다.[85] 전단의 활약으로 나라를 회복했지만, 제왕 건은 진 시황제에게 항복하여 제나라는 멸망했다.[85]
2. 1. 강제 (姜齊)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멸망시킨 무예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강태공은 산둥반도와 그 주변 지역을 영지로 받아 제나라를 건국하였다. 강태공은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주나라 무왕의 아버지인 문왕을 섬겼던 것과 마찬가지로 무왕을 섬기는 재상이 되었다.[24][25] 강태공은 현지 풍속을 존중하는 정치를 펼쳐 제나라를 안정시켰다.[26]무왕 사후, 강태공은 주공의 섭정 시대에 삼감의 난이라는 반란이 실패로 끝나는 동안에도 충성을 지켰다. 이 반란에는 상나라 왕자 무갱이 제나라 영토 내에 있던 동이 세력인 燕国|연나라중국어, 서, 포구와 함께 가담하였다. 반란은 기원전 1039년에 진압되었지만, 죽간에는 포구의 원주민들이 약 10년 동안 계속 반란을 일으켰다가 기원전 1026년경 두 번째로 진압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왕은 제나라에게 "동쪽은 바다, 서쪽은 황하, 남쪽은 목릉, 북쪽에 이르는 지역의 5후 9백이 죄를 범했을 경우, 그들을 토벌해도 괜찮다"는 권한을 부여했다.[30][29] 이후 제나라는 영토를 확장하여 춘추 시대 초기에 동쪽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제나라는 바다와 접하고 있어 소금 생산과 철 생산이 가능해 자원이 풍족했다.[27][30]
서주 시대의 전해지는 기록은 부족하지만, 주나라 희왕(재위 기원전 865~858년)이 제나라를 공격하여 애공(哀公)을 삶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선왕(재위 기원전 827~782년) 시대에는 지역적인 계승 다툼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원주민 동이 민족들은 주나라 문화권에 동화되었다.
2. 1. 1. 태공망의 봉건
주 문왕의 재상 강태공은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워 산둥반도 지역에 봉해졌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은 동이족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지 하사는 사실상 동중국 지역 세력들을 토벌하라는 명에 가까웠다.[24][25] 강태공은 제나라 제후가 되어 현지 풍속을 존중하는 정치를 펼쳐 제나라를 안정시켰다.[26] 관숙, 채숙의 반란 이후, 성왕은 제나라에게 "동쪽은 바다, 서쪽은 황하, 남쪽은 목릉, 북쪽에 이르는 지역의 5후 9백이 죄를 범했을 경우, 그들을 토벌해도 괜찮다"는 권한을 부여했다.[30][29] 이후 제나라는 영토를 확장하여 춘추 시대 초기에 동쪽의 강국으로 성장했다. 제나라는 바다와 접하고 있어 소금 생산과 철 생산이 가능해 자원이 풍족했다.[27][30]2. 1. 2. 제 환공의 패업
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주나라를 대신하여 제후들을 통제하였고, 남쪽의 초나라의 위협에 대항했다.[3] 縣중국어 제도를 수립하고[3] 소금과 철에 대한 국가 독점을 포함하는[4] 행정 개혁을 단행하여 법가 사상의 특징을 보였다.[4] 기원전 667년, 환공은 주나라 혜왕에게 패자(覇)로 인정받아[5] 춘추 오패의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6] 다른 국가들로부터 공물을 받았고, 왕실에 다른 누구보다 많은 공물을 바치는 영예를 얻었으며 그의 출병 명령은 왕 자신의 명령만큼이나 구속력이 있었다.[7] 이러한 권위를 바탕으로 환공은 노나라의 권력 투쟁에 개입하고, 침략하는 서융 유목민들로부터 연을 보호하고, 위와 형을 침략한 북적 유목민들을 몰아내고 백성들에게 식량과 보호 병력을 제공했으며, 8개국 동맹을 이끌고 채를 정복하여 초의 북쪽으로의 확장을 막았다.[7]그러나 환공 사후,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해 제나라는 크게 약화되었고 패권 시대는 막을 내렸다.[7]
2. 1. 3. 환공 사후의 분쟁
환공 사후, 환공의 아들들 사이에 후계 다툼이 일어나 제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환공이 태자로 지목한 효공 대신 환공의 총신 역아와 수초가 지지한 무궤가 뒤를 이었으나, 무궤는 효공을 앞세운 송 양공 주도의 제후 연합군과 국내의 호응에 쫓겨나 죽었다.[3] 이후 소공, 혜공, 의공 세 형제가 효공의 즉위를 저지하여, 송 양공이 재차 제나라를 침입하고 나서야 효공이 즉위할 수 있었다.[3] 효공의 치세에는 일단 안정되었으나, 이미 패자의 권위는 잃은 상태였다.효공 사후, 효공의 아들을 또 다른 환공의 총신이자 소공의 당인 공자 개방이 죽이고 소공이 즉위했다. 소공이 죽은 후에는 소공의 아들 사가 즉위했으나, 얼마 못 가 의공이 죽이고 의공이 즉위하는 등 혼란은 계속 이어졌다. 이 혼란은 환공이 죽은 지 35년 후에 혜공이 등극함으로써 겨우 종식되었다.[3]
그동안 소공 시대에 이미 패자는 진나라의 문공이 되었고, 소공은 문공의 패업에 협조했다. 문공이 패자가 되고 제나라도 국력을 유지했지만, 중원의 주도권은 북쪽의 진(晉)나라와 남쪽의 초나라의 패권 다툼으로 옮겨졌다. 그 상황에 제나라와 진(秦)나라가 관련되는 것이 춘추 시대 중기의 흐름이 되었다.[3]
2. 1. 4. 경공의 소패업
장공 때, 재상 최저는 자신의 아내가 장공과 사통한 것을 알고 장공을 시해하였다. 최저는 장공의 아우 경공을 세웠지만, 후에 경씨에게 죽었다. 기원전 532년, 경공은 안영을 등용하고 군사 분야에는 사마양저를 등용하였다.[59]2. 1. 5. 전씨의 전횡
기원전 672년, 진(陳)나라에서 망명 온 전완의 후손들이 제나라에서 강력한 대부 가문이 되었다. 전씨는 경공의 실정을 틈타 민심을 얻고 세력을 강화했으며, 안영은 진나라의 양설힐과 대화하면서 전씨 왕조가 들어설 것을 예언했다.기원전 489년, 경공이 죽자 전걸은 경공의 유지를 어기고 도공을 왕으로 세웠다. 전걸의 아들 전항은 도공을 죽이고 간공을 왕으로 세웠다. 간공은 총신 감지와 함께 전항에 맞섰으나, 전항은 감지와 간공을 모두 죽이고 평공을 왕으로 세웠다. 이후 전씨는 평공, 선공, 강공 3대에 걸쳐 전항 - 전반 - 전백 - 전도자 - 전화로 이어지며 사실상 왕 노릇을 했다.
2. 2. 전제 (田齊)
기원전 386년, 전화가 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면서 전제(田齊) 시대가 시작되었다.[156] 위왕 때 행정 개혁으로 국력이 강해져 왕을 칭했고, 제 민왕 때는 진(秦)나라와 함께 동제, 서제로 불릴 정도로 강성해져 송나라를 멸망시켰다.[158] 그러나 민왕의 지나친 팽창 정책과 외교적 충돌로 연나라를 주축으로 하는 제후 연합군이 일어났고, 악의가 이끄는 연합군에 의해 제 민왕이 살해되고, 거와 즉묵을 제외한 모든 성읍이 함락되어 멸망 직전에 놓이기도 했다.[85] 제 양왕이 즉위해 항전을 계속했으며, 전단이 계략으로 연나라 군대를 물리치고 나라를 회복했다.[85]제 양왕의 뒤를 이은 제왕 건은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며 다른 나라들이 멸망하는 것을 방관했다.[85] 결국 위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야 위협을 느꼈으나,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가 침공하자 항복하여 제나라는 멸망했다.[85]
2. 2. 1. 전제의 건국과 발전
기원전 386년에 전화가 강공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었다.[156] 위왕은 행정 개혁을 통해 국력을 증대시키고 왕을 칭했으며, 기원전 4세기에는 제 민왕이 진(秦)나라와 함께 동제, 서제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세력을 자랑했다. 또한 송나라를 멸망시켰다.[158]2. 2. 2. 쇠퇴와 멸망
제 민왕의 지나친 팽창 정책과 외교적 충돌은 연나라를 중심으로 하는 제후 연합군의 침략을 불러왔다. 악의가 이끄는 연합군은 제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며, 제 민왕은 이 과정에서 살해되었다.[85] 거와 즉묵을 제외한 모든 성읍이 함락될 정도로 제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85]제 민왕의 아들 제 양왕이 즉위하여 항전을 계속했으며, 전단이 악의와 연나라 사이를 이간질하고, 새로 부임한 연나라 장수 기겁을 격파하여 제나라를 부흥시키는 데 성공했다.[85]
제 양왕의 뒤를 이은 제왕 건은 진나라와의 친선 관계를 유지하며 다른 나라들이 진나라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방관하였다.[85] 결국 위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멸망하고 나서야 진나라의 위협을 인지하고 방어 태세를 갖추려 했으나,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의 침공을 막아낼 힘이 없었다.[85] 제왕 건은 스스로 항복하였고, 이로써 제나라는 멸망하였다.[85]
3. 역대 군주
제나라의 역대 군주는 강성(姜姓)의 강제(姜齊)와 전성(田姓)의 전제(田齊)로 나뉜다.
3. 1. 강제 (강성 왕조)
齊太公齊丁公
齊乙公
齊癸公
齊哀公
齊胡公
齊獻公
齊武公
齊厲公
齊文公
齊成公
齊前莊公
齊僖公
齊襄公
無知
齊桓公
無虧
齊孝公
齊昭公
舍
齊懿公
齊惠公
齊頃公
齊靈公
齊後莊公
齊景公
安孺子
齊悼公
齊簡公
齊平公
齊宣公
齊康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