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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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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참마도는 긴 칼날과 긴 자루를 가진 중국의 도검으로, 기병과의 전투에 사용되었다. 전한 시대의 참마검에서 유래하여 당나라 시대에는 대도, 미첨도, 맥도 등으로 발전했으며, 송나라 시대에 참마도로 통칭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왜구의 장검과 일본도의 영향을 받아 묘도로 발전하기도 했다. 참마도는 보병용 화기가 주력이 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20세기 초 의화단 운동에서도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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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마도
기본 정보
1766년 청나라 삽화에 나오는
1766년 청나라 삽화에 나오는 "말 도살도" zhanmadao
유형보병 대 기병 사브르
역사
기원한나라, 중국
변형장도, 묘도, 왜도, 잔바토
디자인
길이약 200cm 이상
칼날 길이약 150cm 이상
칼날 형태단날, 대부분의 길이에서 직선, 마지막 1/3에서 구부러짐
손잡이 형태양손
명칭
중국어간체: 斩马刀
정체: 斬馬刀
병음: zhǎnmǎdāo
의미: 말 베는 '사브르'/'도'/'외날 칼'
만주어만주어 유니코드: ᠰᠠᠴᡳᠮᡵᡳ ᠯᠣᡥᠣ
음역: sacimri loho
기타
관련 항목창도, 묘도

2. 역사

명나라 시대에 왜구가 중국 연안에 침입했을 때, 명나라 군대는 왜구의 긴 외날칼에 고전했다. 척계광은 『기효신서』에 이를 기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선 출병 당시, 조선 의정부영의정(총리)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벽제관 전투에서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 기병이 일본군의 긴 칼에 인마가 모두 쉽게 베였다고 기록했다. 이는 일본의 노타치나 나가마키로 추정된다.

명나라의 묘도 (현대 모조품)


명나라는 "왜의 길고 위력이 큰 칼"을 군비에 채용, 일본에서 노획하거나 무역을 통해 입수하고, 모방하여 만든 "묘도"를 북방 기마 민족(몽골)과의 전투에서 대 기마용 무기로 사용했다. 묘도 또한 "참마도"라고 통칭되었다.

참마검 및 참마도는 전한 시대부터 명나라 시대까지 보병용 화기(조총)가 보병 주력 장비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청나라 시대에는 총이 널리 사용된 후에도 연사가 불가능한 총병을 기마 돌격으로부터 지원하는 역할로 자총통(총검)이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20세기의화단 운동 때에도 의화단 중 참마도를 사용하는 자가 있었다.

2. 1. 초기 역사

전한 시대에는 "'''참마검'''(斬馬劍)"이라고 불리는 장병무기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있다. 이는 길이가 긴 양날검에 긴 자루를 붙인 것으로, 『한서』에도 이 이름을 가진 도검이 등장한다.[7] 한대에서 황제의 권력(왕권)의 상징이었던 "상방보검(尚方寶劍)"도 이 참마검의 양식이었다고 전해진다.

시대에는 더 긴 자루에 몸통이 넓은 외날 칼날을 장착한 것으로 발전하여, "'''대도'''"[8]라고 불리게 되었다. 대도는 몸통이 넓고 칼날이 비교적 짧은 것과 몸통은 그다지 넓지 않지만 칼날이 긴 것으로 분화되어 발전했으며, 후자는 "'''미첨도'''"라고 불리게 되었다.[9] 이 "대도"나 "미첨도"는 참마검과 마찬가지로 기마병과 싸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대에는 길고 거의 휘어짐이 없는 외날 또는 양날 칼날에 양손으로 잡기에 충분한 길이의 자루가 있는 것이 "'''맥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 역시 기마병과 싸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러한 장병무기, 또는 대형·장척의 칼은 시대가 지나 송대 무렵에는, "참마검"을 본따 "'''참마도'''"로 통칭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2. 2. 발전 과정

''참마도''는 길고 넓은 칼날과 양손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긴 자루를 가진 단일 날의 도이다. 한나라 성제 시대부터 기병을 상대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말의 다리를 자르기 위해 만들어졌다.[1] 1072년 송나라 군사 교범인 ''무경총요''에 언급되어 있다.[2] 1129년에서 1141년 사이 금나라 군대에 맞서 싸운 전투에서 두드러지게 사용되었다.[3]

''참마도''의 초기 형태는 "말 머리를 베는 ''검''"이라는 뜻의 '''''참마검'''''이다. 한나라 시대에 존재했으며, 말의 머리를 베어낼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렸다. ''참마검''은 양날인 반면, ''참마도''는 단일 날이라는 차이점이 있는데, 이는 ''검''과 ''도''의 의미와 일치한다. ''참마검''은 군사용 무기라기보다는 특별한 경우에 사용된 처형 도구였다는 주장도 있다.[4]

현존하는 참마도의 예시로는 나가마키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검이 있다. 이 검은 37cm 길이의 감싸인 자루를 가지고 있어 양손으로 잡기 쉽고, 날은 114cm 길이로 곧으며, 마지막 절반 부분에 약간의 곡선이 있다.[5]

녹영참마도


전한 시대 문헌에는 "'''참마검'''(斬馬劍)"이라고 불리는 장병무기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길이가 긴 양날검에 긴 자루를 붙인 것으로, 『한서』에도 등장한다.[7] 한대에서 황제의 권력(왕권) 상징이었던 "상방보검(尚方寶劍)"도 이 참마검의 양식이었다고 전해진다.

시대에는 더 긴 자루에 몸통이 넓은 외날 칼날을 장착한 '''대도'''[8]로 발전했다. 대도는 몸통이 넓고 칼날이 비교적 짧은 것과 몸통은 그다지 넓지 않지만 칼날이 긴 것으로 분화되었으며, 후자는 "'''미첨도'''"라고 불렸다.[9] 이 "대도"나 "미첨도"는 참마검과 마찬가지로 기마병과 싸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당대에는 길고 거의 휘어짐이 없는 외날 또는 양날 칼날에 양손으로 잡기에 충분한 길이의 자루가 있는 "'''맥도'''"가 사용되었으며, 이 역시 기마병과 싸우기 위해 사용되었다.

송나라 시대에는 이러한 장병무기, 또는 대형·장척의 칼을 "참마검"을 본따 "'''참마도'''"로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에 중국 연안으로 쳐들어온 왜구는 명나라 군대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긴 외날칼을 사용하며 명나라 군을 고전시켰다고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기효신서』에 기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출병 때에는 일본군이 자루가 긴 장척의 칼로 명나라 군의 기병을 고전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의정부영의정(총리[10])이었던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 기병이 일본군의 장척 칼에 인마가 모두 쉽게 베어졌다고 기록했다. 이들은 일본의 노타치나 나가마키로 추정된다.

"왜의 길고 위력이 큰 칼"은 명나라 군비에 채용되어, 일본에서 노획하거나 무역을 통해 입수한 것, 및 모방하여 명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묘도"라고 불렸다. 묘도는 북방 기마 민족(몽골)과의 전투 시 대 기마용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이 또한 "참마도"라고 통칭되었다.

참마검 및 "참마도"는 중국에서 전한 시대부터 대에 보병용 화기(조총)가 보병의 주력 장비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총이 널리 사용된 후에도 연사가 불가능한 총병을 기마 돌격으로부터 지원하는 역할로, 청나라 시대에 자총통(총검)이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20세기의화단 운동 때에도 의화단 중에 "참마도"를 사용하는 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2. 3. 명나라와 조선, 그리고 일본

명나라 시대에 중국 연안으로 쳐들어온 왜구는 명나라 군대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긴 외날칼을 사용하며 명나라 군을 고전시켰다고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기효신서』에 기록했다.[10] 도요토미 히데요시조선 출병 때에는 일본군이 자루가 긴 장척의 칼로 명나라 군의 기병을 고전시켰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의정부영의정(총리[10])이었던 유성룡은 후에 저서 『징비록』에서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이끄는 명나라 군 기병이 일본군의 장척 칼에 인마가 모두 쉽게 베어졌다고 기록했다. 이들은 일본의 노타치나 나가마키로 추정된다.

이 "왜의 길고 위력이 큰 칼"은 명나라의 군비에 채용되어, 일본에서 노획하거나 무역을 통해 입수한 것, 및 모방하여 명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은 "묘도"라고 불리며 북로(북방 기마 민족(몽골)과의 전투 시 대 기마용 무기로 사용되었으며, 이것 또한 "참마도"라고 통칭되었다.

2. 4. 청나라 이후

전한 시대에는 "'''참마검'''(斬馬劍)"이라는 장병무기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남아있으며, 이는 한대에서 황제 권력(왕권)의 상징이었던 "상방보검(尚方寶劍)"도 이 참마검의 양식이었다고 전해진다. 송대에는 "참마검"을 본떠 "'''참마도'''"로 통칭되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청나라 시대에는 연사가 불가능한 총병을 기마 돌격으로부터 지원하는 역할로 참마도가 사용되었고, 자총통(중국어로 "총검"의 의미)이 보급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20세기 초, 의화단 운동 때에도 의화단 중 "참마도"를 사용하는 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3. 실용

참마검, 혹은 대도 및 미첨도, 맥도는 모두 이나 과 같은 장병기에 가까운 것으로, 기마 위에서 적 기마를 향해 찌르거나 베거나, 또는 기마 위에서 보병을 향해 찌르거나 베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마했을 때, 혹은 보병이 사용했을 때도 지면에서 기마를 노려 찌르거나 베는 용도로 사용했다.[1]

맥도는 당나라 군대에서 가로로 늘어선 보병이 무릎을 꿇고 낮은 자세로 앞 위쪽으로 찌르듯이 자세를 취하며, 이른바 “창진”과 유사한 것을 만들어 적 기마의 돌격을 막고, 보병의 대열 뒤에서 활을 든 병사를 보호하는 동시에 이 “도진”으로 발을 묶인 기마대를 맹사하는 진형을 취했음이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저술한 『연병실기』에는, 기마병에 대한 유효한 전술로서, 왜도 (및 그것을 모방한 “묘도”)로 말의 머리나 다리를 베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1]

“참마”도라는 말에서, 말을 통째로 벨 수 있는 강력한 절삭력을 가진 물건이라고 상상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픽션에서의 표현 등에서는 말의 몸통 또는 목과 기수를 함께 베는 호쾌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의 위력은 아니었다. 긴 칼날과 자루를 가진 것에 의한 리치의 길이를 살려, 말과 기수로부터의 공격을 피하면서, 기수를 낙마시키거나, 다리를 노려 말을 쓰러뜨리는 것이 현실적인 전투에서의 사용법이었다. 그렇다 해도, 크고 무거운 칼날을 한 손으로 휘두르는 통상의 칼이나 검보다 훨씬 큰 공격력이 있으며, 설령 충분한 방어력을 가진 갑옷 등을 착용하고 있는 상대라도, 참격을 가할 수 있다면, 벨 수 없더라도 심한 타박상이나 골절을 입힐 수 있는 강력한 휴대 무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1]

4. 유사 무기

창도, 와도, 묘도는 참마도의 중국 도검 변형으로 꼽힌다.[6] 오오다치(노다치)를 ''참마도''(ざんばとう)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중국과 일본의 도검 발전사를 비교하면, 중국 대륙의 참마도(검)는 일본의 오오다치(노다치)와 그것이 발전한 나가마키노다치, 더 나아가 그 발전형인 나가마키와 유사성을 보인다. 그러나 명나라 시대의 "묘도"에서 왜구를 통한 일본의 영향을 볼 수 있는 것을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으며, 중국 대륙에서 사용되었던 "참마도(검)"와 일본의 오오다치는 근본적으로 다른 무기이다.

이러한 혼동은 최근의 만화 등 창작물이 발단이라고 여겨진다. "참마도" 혹은 "참마검"이라는 명칭의 무기가 등장하는 창작 작품은 몇몇 있지만, 모두 중국의 "참마도(검)"와는 다른 창작상의 디자인, 혹은 오오다치의 별칭으로서 존재한다.

참조

[1] 서적 Ancient Chinese Weapons: A Martial Artist's Guide https://books.google[...] YMAA Publication Center Inc 1999-03-01
[2] 웹사이트 The Mongol Siege of Xiangyang and Fan-ch'eng and the Song military http://www.deremilit[...] deremilitari.org 2010-11-06
[3] 서적 Empires of the Dragon: The Far East at War https://books.google[...] Osprey Publishing 2009-09-22
[4] 간행물 Zhan Ma Dao (斬馬刀) http://greatmingmili[...] 2015-04-07
[5] 서적 Cavalry from Hoof to Track https://books.google[...] Greenwood Publishing Group 2008
[6] 서적 "Breverton's Encyclopedia of Inventions: A Compendium of Technological Leaps, Groundbreaking Discoveries and Scientific Breakthroughs that Changed the World" https://books.google[...] Quercus Publishing 2012-04-26
[7] 문서 『漢書』巻六十七 「朱雲伝」及び『漢書』巻九十九 「王莽伝」
[8] 문서 日本の打刀の様式の一つである「大小_(日本刀)|大小拵」の「大刀」とは別のものである。
なお、「大刀」は日本に伝えられて薙刀の祖になったともされる{{要出典|date=2015-11-03 }}。

[9] 문서 眉尖刀は日本にも似た形状の武器が存在し、同じく「眉尖刀」と呼ばれているが、日本のものは中国におけるものと比べると刀身が大身で身巾が広く、柄も含めた全体の長さが短い。このために「[[薙刀#日本式眉尖刀|日本式眉尖刀]]」と呼び分ける場合もある{{要出典|date=2015-11-03 }}。
[10] 문서 現在の大韓民国であれば[[国務総理_(大韓民国)|国務総理]]にあたる役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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