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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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콩고강은 아프리카 중부를 가로지르는 주요 강으로, 콩고 왕국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강은 4,014,500km²의 유역을 가지며,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량을 자랑한다. 콩고강은 콩고 열대 우림을 지나며, 콩고 민주 공화국과 콩고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를 관통한다. 콩고강은 콩고 민주 공화국과 콩고 공화국의 수도인 킨샤사와 브라자빌을 연결하며, 과거 유럽 탐험가들의 접근을 막았던 리빙스턴 폭포와 같은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콩고강은 수력 발전, 운송, 어업 등 다양한 경제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풍부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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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강 | |
---|---|
지도 정보 | |
일반 정보 | |
![]() | |
다른 이름 | 자이르강 |
고유어 이름 | 음토 콩고 |
다른 이름 | 플뢰브 자이르 |
다른 이름 | 히우 자이르 |
지리 | |
길이 (콩고-루알라바-루부아-루아풀라-참베시) | 4,700 km |
길이 (콩고-루알라바) | 4,374 km |
하구 최대 폭 | 19,000 m |
하구 위치 | 대서양 |
유역 면적 | 4,014,500 km2 |
좌안 지류 | 루부디, 로보이, 루비드조, 카수쿠, 로마미, 룰롱가, 이켈렘바, 루키, 이레부, 카사이, 루피미, 잉키시 |
우안 지류 | 루피라, 루부아, 루쿠가, 루아마, 엘릴라, 울린디, 로와, 마이코, 린디, 아루위미, 이팀비리, 몽갈라, 우방기, 상가, 리쿠알라, 알리마, 느케니, 레피니, 주에 |
수문학적 특징 | |
하구 평균 유량 (바나나 근처) | 41,400 m3/s |
하구 최소 유량 (바나나 근처) | 23,000 m3/s |
하구 최대 유량 (바나나 근처) | 75,000 m3/s |
킨샤사, 브라자빌 평균 유량 (1902–2019년) | 40,500 m3/s |
킨샤사, 브라자빌 최소 유량 | 22,000 m3/s (1905년) |
킨샤사, 브라자빌 최대 유량 | 77,000 m3/s (1961년) |
키상가니 평균 유량 (1951–2012년) | 7,640 m3/s |
키상가니 최소 유량 | 3,240 m3/s |
키상가니 최대 유량 | 13,930 m3/s |
킨두 평균 유량 | 2,213 m3/s |
킨두 최소 유량 | 640 m3/s |
킨두 최대 유량 | 7,640 m3/s |
부카마 평균 유량 | 322 m3/s |
부카마 최소 유량 | 52 m3/s |
부카마 최대 유량 | 1,229 m3/s |
하류 콩고 평균 깊이 | 12 ~ 75 m |
중류 콩고 평균 깊이 | 5 ~ 22 m |
하류 콩고 최대 깊이 | 220 m |
중류 콩고 최대 깊이 | 50 m |
하류 콩고 최소 폭 | 200 m |
중류 콩고 최소 폭 | 1,440 m |
발원지 | |
발원지 1 | 보요마 폭포 |
발원지 1 위치 | 키상가니 |
발원지 1 표고 | 373 m |
발원지 2 | 루알라바 |
발원지 2 위치 | 카탕가 고원 |
발원지 2 표고 | 1,420 m |
발원지 3 | 참베시 |
발원지 3 표고 | 1,760 m |
2. 명칭
"콩고/콩고(Congo/Kongo)"라는 이름은 한때 강 남쪽에 위치했던 콩고 왕국에서 유래되었다. 이 왕국은 17세기에 "에시콩고(Esikongo)"로 알려진 토착 반투족 콩고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5] 콩고족의 부족 이름은 공공 모임이나 부족 회의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바콩고(Bakongo)"라는 콩고족의 현대적 이름은 20세기 초에 도입되었다.
콩고강의 발원지는 동아프리카 고원의 서쪽 사면으로 잠비아의 탕가니카호, 므웨루호 남쪽 끝 부근이다. 몇 개의 작은 지류와 호수를 만나면서 급류를 이루고 흐르다가 7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있는 보요마 폭포로 떨어진 후 키상가니를 거쳐 원형에 가깝고 매우 넓은 콩고 분지로 흘러 들어가 주변의 담수를 빨아들인다.[70]
"자이르(Zaire)"라는 이름은 콩고어의 키콩고어 단어인 nzerekg ("강")를 포르투갈어로 변형한 것으로, nzadi o nzerekg ("강이 강을 삼킨다")에서 축약된 것이다. 이 강은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자이르"로 알려졌다. "콩고"는 18세기 동안 영어 사용에서 점차 "자이르"를 대체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 문헌에서는 "콩고"가 선호되는 영어 이름이었지만, 주민들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자히르" 또는 "자이르"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흔했다.[6] 콩고 민주 공화국과 콩고 공화국은 이 강을 따라 명명되었으며, 1960년 벨기에령 콩고로부터 독립한 이전의 콩고 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1971년에서 1997년까지 자이르 공화국 또한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로 강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71년부터 1997년까지 자이르 공화국(현재의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자이르 강'''이라고 불렸다. 이 명칭 변경은 자이르의 독재자였던 모부투 세세 세코가 주창한 오탕티시테(Authenticité, 진정화의 뜻) 정책에 따라 유럽에서 유래한 지명을 아프리카 본래의 지명으로 되돌리기 위해 행해졌다고 칭했으나, 구칭인 "콩고"는 콩고 왕국 시대부터 이어진 반투어 본래의 호칭인 데 반해, "자이르"는 15세기에 이 지방에 온 포르투갈인이 이 강의 명칭을 현지 주민에게 물었을 때 대답한 "은자디"(큰 강)를 포르투갈인이 "자이르"로 잘못 알아들은 것으로 성립된 유럽 측의 호칭이었기에 모순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콩고 공화국 측에서는 이 강을 콩고 강이라고 계속 불렀다. 1997년 모부투 정권이 붕괴되자 정권을 잡은 로랑 카빌라는 자이르 강이라는 호칭을 폐지하고 구칭인 콩고 강으로 복귀시켰다.
3. 지리
저지대에 이르러 강폭은 13km에 이르며 곳곳에서는 길게 형성된 하중도에 의해 흐름이 몇 개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콩고 분지의 대부분은 열대우림 지대이며 강 주변으로는 넓은 습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 열대의 습지 지대는 여러 차례의 범람으로 형성된 것으로 특히, 분지의 서쪽 지역에 잘 발달한다.[70]
이후 콩고강은 콩고 분지의 남서쪽 바테케 고원을 잘라 형성된 협곡을 따라 분지를 빠져나온다. 협곡의 회랑을 빠져나온 강은 폭이 다시 넓어지면서 폭이 27km에 이르는 말레보호로 흘러들어간다. 콩고의 수도 브라자빌은 호수의 북쪽에 위치하고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는 호수의 남쪽에 위치한다. 이 호수에서 콩고강의 상류를 따라 1600km까지 항해할 수 있다.[70]
콩고강의 유역은 4014500km2로, 유럽 연합과 거의 같은 면적을 차지한다. 콩고강의 방류량은 하구에서 23000m3/s에서 75000m3/s 사이이며, 평균 41000m3/s이다. 이 강은 매년 8,600만 톤의 부유 퇴적물을 대서양으로 운반하며, 추가로 6%의 하상 퇴적물을 운반한다.[7]
이 강과 그 지류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열대 우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열대 우림 지역인 콩고 열대 우림을 통과한다. 이 강은 또한 아마존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유량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존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유역을 가지고 있으며, 수심이 220m 이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강 중 하나이다.[3][8] 유역에 적도 북쪽과 남쪽 지역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강의 적어도 한 지역이 우기를 겪고 있어 유량이 안정적이다.[9]
콩고강의 발원지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고원과 산, 그리고 탕가니카 호와 므웨루 호에 있으며, 이 호수들은 루알라바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루알라바강은 보요마 폭포 아래에서 콩고강이 된다. 잠비아의 참베시강은 나일강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으로 인정된 가장 긴 지류를 사용하는 관례에 따라 콩고강의 발원지로 일반적으로 간주된다.
콩고강은 보요마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키상가니에서 일반적으로 북서쪽으로 흐르다가 점차 남서쪽으로 굽어져 음반다카를 지나 우방기강과 합류하여 말레보 호로 흘러 들어간다. 킨샤사와 브라자빌은 강의 좁아지는 지점인 호수의 양쪽에 위치해 있으며, 깊은 협곡(리빙스턴 폭포)에서 여러 개의 여울을 지나 마타디와 보마를 거쳐 무안다에서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콩고 분지는 10개 국가에 걸쳐 있으며, 아프리카의 약 13%를 차지한다. 콩고 분지의 최고점은 루웬조리 산맥에 있으며, 해발 약 4340m이다.
콩고 분지 면적의 국가별 분포:[10]국가 면적 (%) km2 sq mi 앙골라 8.2 부룬디 0.51 카메룬 2.3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10.8 콩고 민주 공화국 62.15 가봉 0.03 콩고 공화국 6.7 르완다 0.01 탄자니아 4.5 잠비아 4.8 colspan="4" | 콩고 분지 전체 100.0
콩고강을 따라 위치한 가장 중요한 수문 관측소는 다음과 같다:[10]관측소 강을 따른 거리 고도 분지 크기 연평균 방류량 km mi m ft km2 sq mi 측정 시작
연도m3/s cu ft/s 하부 콩고 바나나 1915 잉가 1959 킨샤사, 1902 중부 콩고 모사카 음반다카 1907 양감비 1907 키상가니 1907 상부 콩고
(루알라바강)보요마 폭포 1907 우분두 1907 킨두 1912 앙코로 1935 부카마 1933
콩고강의 유량은 측정 시작 이후(1902년~2021년) 킨샤사/브라자빌 측정소에서 다음과 같다.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 rowspan="2" |수문
연도
! colspan="3" |유량(m3/s, cu ft/s)
! rowspan="2" |수문
연도
! colspan="3" |유량(m3/s, cu ft/s)
! rowspan="2" |수문
연도
! colspan="3" |유량(m3/s, cu ft/s)
|-
!최소
!''평균''
!최대
!최소
!''평균''
!최대
!최소
!''평균''
!최대
|-
|1902/03
|
|''''
|
|1942/43
|
|''''
|
|1982/83
|
|''''
|
|-
|1903/04
|
|''''
|
|1943/44
|
|''''
|
|1983/84
|
|''''
|
|-
|1904/05
|
|''''
|
|1944/45
|
|''''
|
|1984/85
|
|''''
|
|-
|1905/06
|
|''''
|
|1945/46
|
|''''
|
|1985/86
|
|''''
|
|-
|1906/07
|
|''''
|
|1946/47
|
|''''
|
|1986/87
|
|''''
|
|-
|1907/08
|
|''''
|
|1947/48
|
|''''
|
|1987/88
|
|''''
|
|-
|1908/09
|
|''''
|
|1948/49
|
|''''
|
|1988/89
|
|''''
|
|-
|1909/10
|
|''''
|
|1949/50
|
|''''
|
|1989/90
|
|''''
|
|-
|1910/11
|
|''''
|
|1950/51
|
|''''
|
|1990/91
|
|''''
|
|-
|1911/12
|
|''''
|
|1951/52
|
|''''
|
|1991/92
|
|''''
|
|-
|1912/13
|
|''''
|
|1952/53
|
|''''
|
|1992/93
|
|''''
|
|-
|1913/14
|
|''''
|
|1953/54
|
|''''
|
|1993/94
|
|''''
|
|-
|1914/15
|
|''''
|
|1954/55
|
|''''
|
|1994/95
|
|''''
|
|-
|1915/16
|{{convert|27,760|m3/s|cuft/s|disp=br()|abbr=values|
3. 1. 상류
잠비아의 탕가니카호, 므웨루호 남쪽 끝 부근의 동아프리카 고원의 서쪽 사면이 콩고강의 발원지이다. 이곳에서 여러 작은 지류와 호수를 만나면서 급류를 이루며 흐르다가 7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있는 보요마 폭포로 떨어진 후 키상가니를 거쳐 원형에 가깝고 매우 넓은 콩고 분지로 흘러 들어간다. 콩고강의 발원지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고원과 산, 그리고 탕가니카 호와 므웨루 호에 있으며, 이 호수들은 루알라바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루알라바강은 보요마 폭포 아래에서 콩고강이 된다.
루알라바강은 콩고강 본류의 상류부로, 콩고 민주 공화국 남동부의 Katanga Plateau|카탕가 고원영어 남부, 잠비아 국경 근처에서 발원한다. 거기에서 거의 직선으로 북쪽으로 흐르며, 아프리카 지구대 서쪽의 미툰바 산맥에서 발원하는 지류를 합류하면서 수량을 늘려간다. 또 다른 원류인 챔베지강은 잠비아 북동부, 탕가니카 호 남쪽의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흘러 방궤울루 호 동단으로 흘러든다. 방궤울루 호 남단에서 다시 흘러나오지만, 여기부터는 Luapula River|루아풀라강영어이라고 불린다. 루아풀라강은 잠시 남하한 뒤 크게 호를 그리며, 이번에는 거꾸로 북상한다. 이 호의 부분에서 므웨루 호로 흘러드는 구간은 콩고 민주 공화국과 잠비아 사이의 국경을 이루며, 동쪽 기슭은 잠비아 영토, 서쪽 기슭은 콩고 민주 공화국 영토가 된다. 므웨루 호 남단으로 흘러든 강은 북단에서 다시 흘러나오지만, 여기부터는 루부아강이라는 명칭이 되며, 거의 북서쪽으로 흐른다. 이 두 강은 카탕가 북부의 Ankoro|안코로영어에서 합류하여, 루부아강이 루알라바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형태가 된다.
루알라바강은 더 북쪽으로 흐르며, 그 북쪽에서 탕가니카 호에서 흘러나오는 Lukuga River|루쿠가강영어도 합류한다. 본류는 더 북쪽으로 흘러 킨두에서 우분두까지 약 300km는 급류도 없이 완만한 흐름이 된다. 이 사이에 동쪽에서 흐르는 Ulindi River|울린지강영어이 합류한다. 우분두에서 키상가니 바로 상류에 있는 Boyoma Falls|보요마 폭포영어까지는 다시 급류가 되지만, 키상가니부터 하류의 킨샤사까지는 완만한 흐름으로 돌아간다. 보요마 폭포에서는 적도를 넘고, 또한 여기부터 하류는 콩고강으로 이름이 바뀌며, 호를 그리며 서쪽으로 흐른다.
3. 2. 중류
키상가니에서 킨샤사까지 1,700km 구간은 콩고강의 흐름이 굵고 안정적이며, 고저차가 40m에 불과하여 급류가 없다. 이 때문에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 물자 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의 결절점이 된 키상가니는 이 지역 물자의 집산지로 발전하여 콩고 민주 공화국 북동부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콩고강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음반다카 주변에서 적도를 남쪽으로 넘는다. 음반다카 하류에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및 콩고 공화국과 콩고 민주 공화국의 국경을 이루는 대지류 우방기강과 합류한다. 우방기강 합류점부터는 서쪽 강변은 콩고 공화국, 동쪽 강변은 콩고 민주 공화국의 국경이 된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콩고 남서부와 앙골라 북동부를 유역으로 하는 대지류 카사이강과 합류하며, 킨샤사・브라자빌 부근에서 폭이 25km까지 넓어져 말레보 호를 형성한다.[49] 마레보 호는 안정된 수류의 끝에 위치하여 하천 교통의 종착점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교통망의 결절점으로서 프랑스는 브라자빌을, 벨기에는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을 건설하여 각각 유역의 수도로 삼았다.
강에는 Distichodontidae|디스티코두스과영어, 잉어과, Citharinidae|키타리누스과영어, Airbreathing catfish|히레나마즈과영어 등의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우방기강, 상가강 합류점 일대의 광대한 삼림 지대에는 보노보, 아프리카코끼리, 표범, 아프리카물소, 자주해오라기, 고릴라, 하마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람사르 협약 등록지이다.[50][51]
3. 3. 하류
말레보호를 지나면 급류와 폭포가 나타나는데, 이는 유럽인들의 탐험과 바다로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해왔다. 하류의 320km 구간에서 강은 협곡을 따라 거의 300m의 높이를 내려간 후에 대서양의 맹그로브 숲에 도달한다. 콩고강의 하구에는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대신 바다 밑에는 큰 협곡을 만들어 흐르다가 해저 선상지에 운반물질을 퇴적한다.[70]
'''하부 콩고'''는 대서양 하구에서 브라자빌과 킨샤사까지 이어지는 강 구간을 말한다. 이 강 구간에는 두 개의 중요한 지류가 있는데, 둘 다 왼쪽 또는 남쪽에 있다. 퀴루강은 앙골라 국경 근처의 언덕에서 발원하여 마타디에서 약 100km 상류 지점에서 콩고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다른 하나는 잉키시강으로, 앙골라의 위제주에서 콩고강과 합류지점인 콩고민주공화국 좡고로 흘러들어간다. 이곳은 쌍둥이 수도에서 약 80km 하류 지점이다. 특히 리빙스턴 폭포를 포함하여 많은 급류 때문에 이 강 구간은 강을 따라 운행하는 배로 지속적으로 운행되지 않는다.
말레보호에서 하류는 콩고 민주 공화국 영토가 되며, 콩고 분지의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Monts de Cristal (Congo)|크리스탈 산맥프랑스어을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Livingstone Falls|리빙스턴 폭포영어 (잉가 댐)라고 불리는 급류가 되며, 350km 사이에 30개 이상의 급류가 있고, 단번에 260m나 고도를 낮춘다. 특히 고저차가 심한 곳에서는 12km를 흐르는 동안 96m나 고도를 낮추기 때문에 격류가 된다. 이 격류는 배의 항해를 막아 콩고 분지 깊숙한 곳으로 유럽인의 침입을 오랫동안 막아 왔다. 약 350km에 걸쳐 이어지는 이 격류를 넘으면 고도는 해면 근처까지 내려가고, 리빙스턴 폭포의 폭포수 웅덩이에 해당하는 마타디부터 다시 안정된 흐름으로 돌아온다. 마타디부터는 정서쪽으로 유로를 취하게 되어 보마를 거쳐 Moanda, Democratic Republic of the Congo|무안다영어에서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이 구간은 북쪽 해안이 콩고 민주 공화국 영토, 남쪽 해안이 앙골라 영토이며, 다시 국경을 이루게 된다. 하구는 델타를 형성하지 않고 하나의 굵은 흐름 그대로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하구 일대에는 매너티 및 바다거북 등이 서식하고 있다.
브라자빌 서쪽 교외의 Djoué River|주에 강영어과의 합류점 부근 급류 지대 및 하구의 맹그로브와 사바나 지대의 Mangroves National Park|맹그로브 국립공원영어은 람사르 협약 등록지이다.
4. 유역
콩고 분지는 10개 국가에 걸쳐 있으며, 아프리카의 약 13%를 차지한다. 콩고 분지의 최고점은 루웬조리 산맥에 있으며, 해발 약 4340m이다.[10]
콩고 분지 면적의 국가별 분포는 다음과 같다:[10]
국가 | 면적(km2) | (%) |
---|---|---|
앙골라 | 305,760 | 8.2 |
부룬디 | 18,728 | 0.51 |
카메룬 | 85,300 | 2.3 |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 402,000 | 10.8 |
콩고 민주 공화국 | 2,307,800 | 62.15 |
가봉 | 1,146 | 0.03 |
콩고 공화국 | 248,400 | 6.7 |
르완다 | 382 | 0.01 |
탄자니아 | 166,800 | 4.5 |
잠비아 | 176,600 | 4.8 |
콩고 분지 전체 | 3,712,316 | 100.0 |
콩고강을 따라 위치한 가장 중요한 수문 관측소는 다음과 같다:[10]
관측소 | 강을 따른 거리(km) | 고도(m) | 분지 크기(km2) | 측정 시작 연도 | 연평균 방류량(m3/s) |
---|---|---|---|---|---|
하부 콩고 | |||||
바나나 | 0km | 0m | 3730740km2 | 1915 | 41400m3/s |
잉가 | 188km | 78m | 1959 | 41100m3/s | |
킨샤사, 브라자빌 | 498km | 269m | 3659900km2 | 1902 | 40500m3/s |
중부 콩고 | |||||
모사카 | 898km | 289m | 2490000km2 | ||
음반다카 | 1157km | 303m | 1683800km2 | 1907 | 19000m3/s |
양감비 | 2133km | 371m | 1069100km2 | 1907 | 8358m3/s |
키상가니 | 2240km | 380m | 974330km2 | 1907 | 7079m3/s |
상부 콩고 (루알라바강) | |||||
보요마 폭포 | 2310km | 400m | 1907 | 6550m3/s | |
우분두 | 2390km | 418m | 1907 | 6378m3/s | |
킨두 | 2705km | 448m | 810440km2 | 1912 | 2213m3/s |
앙코로 | 3455km | 556m | 171000km2 | 1935 | 901m3/s |
부카마 | 3695km | 567m | 63090km2 | 1933 | 322m3/s |
5. 역사
콩고강 유역은 기원전 2000년경에는 수렵 채집 사회였다. 현재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세력을 확장하여 서기 1년 전후에는 콩고강 유역에 널리 거주하게 되었다. 서쪽의 반투족 계열 주민은 화전을 행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다. 서기 1년경에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로 이주했던 동쪽의 반투족 계열 주민이 콩고강 유역에 정착을 시작했다.[71]
그러나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구 지역에 콩고 왕국이,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과 룬다 왕국이 성립된 정도였다. 이 왕국들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1482년 포르투갈인 디오고 캉이 콩고 왕국에 도달하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관계는 처음에는 대등하고 호혜적인 것이었지만, 곧 유럽 세계에서 노예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져 갔다. 한편 유럽 세계와의 접촉으로 콩고강 유역은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및 유럽의 교역권, 동쪽으로는 인도양 및 아랍의 교역권으로 통합되어 갔다. 그러나 유럽인은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아랍인은 동쪽 해안으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콩고 중류 지역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내륙에도 해안 세력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전반, 오만의 사이드 빈 술탄은 인도양의 잔지바르에 거점을 두고 내륙과의 교역에 힘썼다. 이 때문에 동쪽의 인도양 연안에서 뻗어 나온 아랍인의 노예 무역 루트의 종착점이 콩고강 중류 유역에 도달하고, 팁푸 팁과 같은 아랍인 상인들이 콩고강 중류 유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유럽인들도 콩고강 유역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815년, 영국 해군성은 니제르강 하구를 탐사할 계획을 세우고, 세네갈강에서 니제르강 상류 유역으로 향한 다음 그곳에서 강을 따라 하구로 향하는 대와, 콩고강 하구에서 거슬러 올라가 니제르강 상류 유역을 목표로 하는 대, 두 팀을 출발시켰다. 제임스 킹스턴 태키 대령을 대장으로 하는 콩고강 팀은 8월에 하구를 출발했지만, 열병으로 인해 두 달 만에 되돌아갔고, 백인 대원 54명 중 21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다음 콩고강 유역에 탐험대가 방문하게 된 것은 나일강의 수원 탐사가 고조된 1850년대이다. 1858년 2월 13일, 나일 수원 조사를 위해 동쪽에서 온 존 해닝 스피크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콩고강의 수원 유역에 해당하는 탕가니카 호를 발견했다. 그러나 버튼은 이것을 나일강의 수원이라고 생각했고, 스피크도 탕가니카 호로 흘러드는 루지지강을 조사했지만, 탕가니카 호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나일강 수원 논쟁은 큰 논쟁이 되었고, 마침내 이에 결착을 내기 위해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탐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지금까지의 어떤 설도 틀렸다고 생각하고, 탕가니카 호의 더 남쪽, 현재 지식으로 말하면 콩고강의 수원 유역이야말로 나일강의 수원 유역이라고 생각하고, 그 지역으로 탐사를 향했다. 1866년에 출발한 리빙스턴은 무에르 호를 발견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 루알라바강 중류의 교역 도시 니앙웨까지 도달했지만, 병으로 탕가니카 호반의 우지지로 되돌아갔다. 1871년 우지지에서 헨리 모턴 스탠리를 만나 보급을 받은 그는 다시 탐험을 계속했지만, 1872년 5월 1일 방궤울루 호반의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다.
최종적으로 콩고강의 유로를 밝혀낸 것은 헨리 모턴 스탠리이다. 1874년에 탐험을 시작한 그는 빅토리아 호를 주항하여 나일강의 수원을 확정하고, 남하하여 탕가니카 호에서 니앙웨에 도달했다. 여기서 팁푸 팁을 설득하여 강 하행에 협력하게 하고, 강을 완전히 내려가 1877년에 하구에 도달했다. 이로써 유로가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게 되었다.
콩고강 유역이 거의 밝혀지자,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화가 이 지역에도 밀려들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1876년에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진출을 노리고 있었고, 스탠리를 지원하여 콩고강 유역에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했다. 스탠리는 레오폴드의 지원을 받아 1879년부터 1884년에 걸쳐 다시 이 지역을 탐험했다. 이 탐험에서 스탠리는 레오폴드의 대리인으로서 행동하며, 콩고강 주변의 추장들과 보호 조약을 체결해 나갔다. 한편, 스탠리의 움직임을 보고 자극받은 프랑스도 이 지역으로 진출을 꾀했다. 1879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은 피에르 브라자의 탐험대가 프랑스령 가봉의 리브르빌에서 출발하여, 오고웨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 동진하여, 마레보 호 북안에 도착했다. 이곳에 기지를 건설하고 브라자빌이라고 명명한 브라자는, 마침 마레보 호 남안에 온 스탠리와 회담하여, 콩고강 북안을 프랑스의 세력권으로 하는 것을 인정받았다. 스탠리 쪽도 콩고강 남안을 중심으로 탐사를 진행하여,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과 스탠리빌(현재 키상가니)과 같은 기지를 건설해 나갔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하구부의 카빈다와 앙골라를 영유하는 포르투갈이 이의를 제기하여, 1882년에는 콩고강 하구부의 지배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해안부에 점으로 거점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내륙부에는 진출하지 않았고, 영국의 지지를 얻었지만, 다른 열강은 이를 지지하지 않아, 각국의 사정이 엇갈렸다. 이러한 이해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1885년에는 베를린 회의가 개최되어, 콩고강 분지의 자유 무역과 중립화, 항행의 자유를 각국에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콩고 국제 협회의 이권이 인정되었다. 이를 받아 콩고 국제 협회는 개편되어, 콩고 자유국으로 정식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콩고 자유국에서는 상아나 고무의 채취를 위한 강제 노동이 행해지고, 엄청난 폭정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고, 1908년에는 레오폴드의 지배권이 박탈되어, 벨기에령으로 이관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양국 정부는 산업 개발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마레보 호에 면한 브라자빌과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은 콩고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의 결절점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1898년에는 레오폴드빌과 마타디를 잇는 마타디-킨샤사 철도가, 1934년에는 브라자빌과 푸앵트 누아르를 잇는 콩고-오세안 철도가 각각 개통되어, 내륙의 산물을 양 도시에 집적하여 해항으로 수송하여 수출하는 체제가 정비되었다. 콩고강에는 증기선이 띄워져, 내륙 수운이 적극적으로 개발되었다.
1960년, 벨기에령은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프랑스령은 콩고 공화국과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각각 독립을 이루었다.
5. 1. 식민지 이전 역사
콩고강 유역에는 기원전 2000년경 피그미족이 널리 분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현재의 카메룬 남부 주변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 계열 주민이 대규모 확장을 시작하여, 기원전 1120년경에는 그 중 서부 반투족 계열이 콩고강 유역에 도달했다. 기원후 전후에는 콩고강 유역에 널리 거주하게 되었다. 서부 반투족 계열은 얌과 기름야자를 식량 작물로 가져와 화전을 실시했다. 또한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이를 사용하여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기원후 1년경에는, 일단 아프리카 대륙 동부로 이주했던 동부 반투족 계열이 콩고강 유역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그들은 수수나 토종 수수와 같은 곡물 재배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밀림보다는 사바나와 같은 트인 땅을 선호했기 때문에 서부 반투족 계열과의 분리에 성공했고, 양자는 이윽고 섞여 갔다. 또한, 그들에 의해 5세기경 아시아로부터 바나나 재배 기술이 전해졌다. 바나나는 얌보다 재배하기 쉽고 생산성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콩고강 유역에 순식간에 퍼져나갔다.[56]그러나 콩고강 유역, 특히 중류역에는 광대한 영역 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구역에 콩고 왕국 등이, 최상류역에 등이 성립했을 뿐이다. 이들 왕국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부로 이어지는 교역로를 힘의 원천으로 삼았다.
이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포르투갈이 대서양을 남하하여 이 지역에 도달했을 때이다. 1482년 디오고 캉이 콩고 왕국에 도달하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의 관계는 처음에는 대등하고 호혜적인 것이었지만, 이윽고 유럽 세계에서 노예 수요가 격증함에 따라 노예를 대량으로 수출한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져 갔다. 한편, 유럽 세계와의 접촉은 서방으로의 교역로가 열린 것을 의미했고, 콩고강 유역은 차츰 서쪽의 포르투갈·유럽의 교역권 또는 동쪽의 인도양·아랍의 교역권으로 편입되어 갔다. 그러나 유럽인은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에, 아랍인은 동쪽 해안으로부터의 거리에 각각 막혀 콩고강 중상류역에 도달할 수 없었다.
유럽인과의 접촉으로 1600년경에는 콩고강 유역에 신대륙 원산의 카사바가 전해졌다. 이는 바나나보다 더욱 손이 덜 가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에 카사바의 도입은 다시 이 지역에 농업 혁명을 가져왔다.
5. 2. 유럽인과의 접촉
기원전 2000년경 콩고강 유역은 수렵 채집 사회였다. 현재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세력을 확장하여 서기 1년 전후에는 콩고강 유역에 널리 거주하게 되었다. 서쪽의 반투족 계열의 주민은 화전을 행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다. 서기 1년경에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로 이주했던 동쪽의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콩고강 유역에 정착을 시작했다.[71]그러나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구 지역에 콩고 왕국이,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과 룬다 왕국이 성립된 정도였다. 이 왕국들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1482년 포르투갈인 디오고 캉이 콩고 왕국에 도달하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관계는 처음에는 대등하고 호혜적인 것이었지만, 곧 유럽 세계에서 노예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져 갔다. 한편 유럽 세계와의 접촉으로 콩고강 유역은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및 유럽의 교역권, 동쪽으로는 인도양 및 아랍의 교역권으로 통합되어 갔다. 그러나 유럽인은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아랍인은 동쪽 해안으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콩고 중류 지역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유럽인과의 접촉으로 1600년경에는 콩고강 유역에 신대륙 원산의 카사바가 전해졌다. 이는 바나나보다 재배하기 쉽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에, 카사바의 도입은 이 지역에 농업 혁명을 가져왔다.
5. 3. 탐험사
콩고강 유역은 기원전 2000년경에는 수렵 채집 사회였다. 현재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세력을 확장하여 서기 1년 전후에는 콩고강 유역에 널리 거주하게 되었다. 서쪽의 반투족 계열의 주민은 화전을 행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다. 서기 1년경에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로 이주해서 동쪽의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콩고강 유역에 정착을 시작했다.[71]그러나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구 지역에 콩고 왕국이,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과 룬다 왕국이 성립된 정도였다. 이 왕국들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포르투갈이 대서양 남쪽 지역에 도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1482년 포르투갈 인이 콩고 왕국에 도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관계는 당초 대등하고 호혜적이었지만, 곧 유럽에서 노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졌다. 한편 유럽 세계와의 접촉으로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유럽의 교역권, 동쪽으로는 인도양 아랍 무역권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유럽은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아랍인은 동쪽 원거리 때문에 콩고 중류 지역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내륙에도 해안 세력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1874년 헨리 모턴 스탠리가 유역 전체를 탐험하였고, 1877년에 유로 전체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스탠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피에르 부라자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콩고강 유역을 탐험했다. 이 탐험의 성과를 바탕으로, 오늘날 콩고와 중앙 아프리카 지역의 북부와 서부는 프랑스령이 되었다.
말레보호를 마주 보고 있는 도시 브라자빌과 킨샤사는 부라자와 스탠리가 각각 건설했다. 브라자빌과 레오폴드 빌(현 킨샤사)는 콩고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의 결절점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1898년에는 킨샤사와 마타디를 연결하는 철도가, 1934년에는 브라자빌과 푸앵트누아르를 잇는 철도가 각각 개통되어 내륙의 산물을 두 도시에 있는 항구로 수송하고 수출하는 체제가 정비되었다.
1960년 벨기에령은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프랑스령은 콩고와 중앙 아프리카로 각각 독립했다. "콩고/콩고(Congo/Kongo)"라는 이름은 한때 강 남쪽에 위치했던 콩고 왕국에서 유래되었다. 이 왕국은 17세기에 "에시콩고(Esikongo)"로 알려진 토착 반투족 콩고족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5] 콩고 왕국 남쪽에는 1535년에 언급된, 이름이 비슷한 카콩고 왕국이 있었다.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는 1564년 세계 지도에서 강 어귀에 있는 도시를 "마니콩고(Manicongo)"로 표기했다. 콩고족의 부족 이름은 공공 모임이나 부족 회의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콩고족 또는 "바콩고(Bakongo)"의 현대적 이름은 20세기 초에 도입되었다.
"자이르(Zaire)"라는 이름은 콩고어의 키콩고어 단어인 nzerekg ("강")를 포르투갈어로 변형한 것으로, nzadi o nzerekg ("강이 강을 삼킨다")에서 축약된 것이다. 이 강은 16세기와 17세기 동안 "자이르"로 알려졌다. "콩고"는 18세기 동안 영어 사용에서 점차 "자이르"를 대체한 것으로 보이며, 19세기 문헌에서는 "콩고"가 선호되는 영어 이름이지만, 주민들이 사용하는 이름으로 "자히르" 또는 "자이르"에 대한 언급은 여전히 흔했다.[6] 콩고 민주 공화국과 콩고 공화국은 이 강을 따라 명명되었으며, 1960년 벨기에령 콩고로부터 독립한 이전의 콩고 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1971년에서 1997년까지 자이르 공화국 또한 프랑스어와 포르투갈어로 강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유럽인들은 1876~77년 헨리 모턴 스탠리가 상부 콩고 연구 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탐험하기 전까지 콩고 분지 중앙 지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당시 아프리카 탐험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풀리지 않은 의문 중 하나는 루알라바 강이 나일강(데이비드 리빙스턴의 이론)이나 콩고강, 심지어 나이저강으로 흘러드는지 여부였다. 1874년에 자금을 지원받은 헨리 모턴 스탠리의 첫 번째 아프리카 횡단 탐험은 잔지바르에서 시작하여 1876년 10월 17일에 루알라바 강에 도달했다. 육로로 그는 팁푸 팁이 노예 무역을 하던 식인종 부족이 있는 무법 지대인 냥웨에 도착했다. 스탠리는 팁푸 팁으로부터 약 90일 동안 그를 보호하도록 군대를 고용할 수 있었다.
일행은 빽빽한 마팀바 숲을 통해 육로로 냥웨를 떠났다. 11월 19일, 그들은 다시 루알라바 강에 도달했다. 숲을 통과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팁푸 팁은 12월 28일에 그의 일행과 함께 돌아섰고, 스탠리는 8명의 아이와 16명의 여성을 포함한 143명의 사람들과 함께 홀로 남겨졌다. 그들은 23척의 카누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만난 지역 부족은 식인종인 웬야족이었다. 스탠리는 강에서 총 32번의 적대적인 만남을 보고했는데, 그중 일부는 폭력적이었고, 심지어 평화적인 통행을 협상하려고 시도했지만 부족들은 외부인과의 유일한 경험이 노예 상인들과의 만남이었기 때문에 경계했다.
1877년 1월 6일, 그들은 보이오마 폭포(한동안 스탠리 폭포라고 불렸다)에 도달했는데, 이는 약 97km에 걸쳐 있는 7개의 폭포로 구성되어 있어 육로로 우회해야 했다. 폭포의 끝에 도달하는 데 2월 7일까지 걸렸다. 여기서 스탠리는 그 강이 ''이쿠타 야콩고''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가 콩고 강에 도달했으며 루알라바 강이 나일강으로 흘러들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시점부터 부족들은 더 이상 식인종이 아니었고 포르투갈의 영향의 결과로 보이는 총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약 4주 후, 그는 오늘날의 킨샤사와 브라자빌이 있는 지역인 스탠리 풀(현재 풀 말레보)에 도달했다. 더 하류에는 리빙스턴이 콩고 강에 결코 간 적이 없었음에도 리빙스턴 폭포라고 잘못 불린 일련의 32개의 폭포와 급류가 있었는데, 이는 약 354km에 걸쳐 고도가 274m 변화하는 곳이었다. 3월 15일, 그들은 폭포를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5개월이 걸렸고 많은 생명을 잃었다. 이산길레 폭포에서, 발에서 5개의 폭포를 지나 카누와 ''레이디 앨리스''를 해변으로 끌어올린 후, 보마의 포르투갈 전초 기지를 향해 육로로 강을 떠났다.
8월 3일, 그들은 Nsada 촌락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스탠리는 4명의 남자를 편지와 함께 보마로 보내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음식을 요청했다. 8월 7일, 리버풀 무역 회사인 해턴 & 쿡슨의 대표자들이 보낸 구호가 도착했다. 8월 9일, 그들은 1874년 11월 12일 잔지바르를 떠난 지 1,001일 만에 보마에 도달했다. 그 당시 일행은 여행 중에 태어난 3명의 아이를 포함하여 108명으로 구성되었다. 스탠리의 간행물에서 일관성이 없는 수치를 제시하고 있지만, 질병, 굶주림, 익사, 살해 및 탈주로 인해 132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46]
킨샤사는 1881년 스탠리가 무역 기지로 설립했으며 레오폴드 2세를 기리기 위해 레오폴드빌로 명명되었다. 콩고 분지는 1885년 레오폴드 2세가 콩고 자유국으로 사적으로 소유했으며, 그곳에서 많은 콩고 자유국 만행이 저질러졌고, 그 지역은 벨기에령 콩고라고 불렸다.
19세기 전반, 오만의 사이드 빈 술탄은 인도양의 잔지바르에 거점을 두고 내륙과의 교역에 힘썼다. 이 때문에 동쪽의 인도양 연안에서 뻗어 나온 아랍인의 노예 무역 루트의 종착점이 콩고강 중류 유역에 도달하고, 팁푸 팁과 같은 아랍인 상인들이 콩고강 중류 유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유럽인들도 콩고강 유역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콩고강 유역에는 나일강이나 니제르강과 같은 오랜 대문명이 없었기 때문에 탐험의 주된 목적이 되는 것은 유럽의 아프리카 탐험도 말기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콩고강과 니제르강, 나일강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두 강 탐험과 관련하여 콩고강 유역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었다.
처음 콩고강이 탐험 대상으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니제르강 하구 탐사에 관련된 일이었다. 1796년에 니제르강에 유럽인으로서 근대 최초로 도달한 뭉고 파크는 니제르강이 내륙에서 크게 굽이쳐 콩고강이 되어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1805년에 제2차 탐험을 떠났지만, 하구에서 3분의 1 지점에서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고, 이 추측을 바탕으로 최초의 콩고강 탐험이 기획되었다.
1815년, 영국 해군성은 니제르강 하구를 탐사할 계획을 세우고, 세네갈강에서 니제르강 상류 유역으로 향한 다음 그곳에서 강을 따라 하구로 향하는 대와, 콩고강 하구에서 거슬러 올라가 니제르강 상류 유역을 목표로 하는 대, 두 팀을 출발시켰다. 제임스 킹스턴 태키 대령을 대장으로 하는 콩고강 팀은 8월에 하구를 출발했지만, 열병으로 인해 두 달 만에 되돌아갔고, 백인 대원 54명 중 21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탐험의 실패로 인해, 이후 하구에서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 탐험하는 사람은 없어졌고, 콩고강의 루트는 상류에서 온 탐험대에 의해 밝혀지게 되었다.
그 다음 콩고강 유역에 탐험대가 방문하게 된 것은 나일강의 수원 탐사가 고조된 1850년대이다. 1858년 2월 13일, 나일 수원 조사를 위해 동쪽에서 온 존 해닝 스피크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콩고강의 수원 유역에 해당하는 탕가니카 호를 발견했다. 그러나 버튼은 이것을 나일강의 수원이라고 생각했고, 스피크도 탕가니카 호로 흘러드는 루지지강을 조사했지만, 탕가니카 호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나일강 수원 논쟁은 큰 논쟁이 되었고, 마침내 이에 결착을 내기 위해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탐험을 시작했다. 그러나 리빙스턴은 지금까지의 어떤 설도 틀렸다고 생각하고, 탕가니카 호의 더 남쪽, 현재 지식으로 말하면 콩고강의 수원 유역이야말로 나일강의 수원 유역이라고 생각하고, 그 지역으로 탐사를 향했다. 1866년에 출발한 리빙스턴은 무에르 호를 발견하고, 강을 따라 내려가 루알라바강 중류의 교역 도시 니앙웨까지 도달했지만, 병으로 탕가니카 호반의 우지지로 되돌아갔다. 1871년 우지지에서 헨리 모턴 스탠리를 만나 보급을 받은 그는 다시 탐험을 계속했지만, 1872년 5월 1일 방궤울루 호반의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다.
리빙스턴은 스탠리와의 만남 후 다시 행방불명되었고, 이를 찾아내기 위해 영국의 왕립 지리학회가 버니 러벳 캐머런을 대장으로 하는 탐험대를 파견했지만, 도중 카제(현재의 타보라)에서 리빙스턴의 관을 운반하는 종자들과 만나게 되어, 캐머런은 목적을 이 지역 탐험으로 바꾸어 더욱 서진하여, 탕가니카 호에서 흘러나오는 루크가 강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이 강을 따라 내려가 니앙웨까지 도달했지만, 여기서 위험하다는 팁푸 팁의 조언을 받아들여 강 하행을 단념하고, 이듬해 벵겔라에 도달했다. 최종적으로 콩고강의 유로를 밝혀낸 것은 헨리 모턴 스탠리이다. 1874년에 탐험을 시작한 그는 빅토리아 호를 주항하여 나일강의 수원을 확정하고, 남하하여 탕가니카 호에서 니앙웨에 도달했다. 여기서 팁푸 팁을 설득하여 강 하행에 협력하게 하고, 강을 완전히 내려가 1877년에 하구에 도달했다. 이로써 유로가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게 되었다.
5. 4. 식민지화
콩고강 유역은 기원전 2000년경 수렵 채집 사회였다. 현재 카메룬 남부 지역을 기원으로 하는 반투족 계열의 주민이 세력을 확장하여 서기 1년 전후에는 콩고강 유역에 널리 거주하게 되었다. 서쪽의 반투족 계열 주민은 화전을 행했고, 철기 제조 기술을 가지고 밀림 안쪽으로 세력을 확대해 갔다. 서기 1년경에는 아프리카 대륙 동부로 이주한 동쪽의 반투족 계열 주민이 콩고강 유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71]그러나 콩고강 유역 전체를 아우르는 광대한 국가는 성립하지 않았다. 하구 지역에 콩고 왕국, 상류 지역에 루바 왕국과 룬다 왕국이 성립된 정도였다. 이 왕국들은 인도양에서 아프리카 내륙에 이르는 교역 루트를 가지고 있었다.
포르투갈이 대서양 남쪽에 도달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1482년 포르투갈 인이 콩고 왕국에 도달하여 포르투갈과 콩고 사이에 교역이 시작되었다. 양국 관계는 당초 대등하고 호혜적이었지만, 곧 유럽에서 노예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노예가 대량으로 납치되었고, 콩고 왕국의 힘은 약해졌다. 한편 유럽과의 접촉으로 서쪽으로는 포르투갈, 유럽의 교역권, 동쪽으로는 인도양 아랍 무역권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유럽은 리빙스턴 폭포의 급류 때문에, 아랍인은 동쪽 원거리 때문에 콩고 중류 지역에는 도달할 수 없었다.
19세기에 들어서 내륙에 해안 세력이 스며들게 되었다. 헨리 모턴 스탠리는 1874년 콩고강 유역 전체를 탐험하였고, 1877년에 콩고강 유역 전체가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스탠리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피에르 브라자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콩고강 유역을 탐험했다. 이 탐험의 성과를 바탕으로, 오늘날 콩고와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북부와 서부는 프랑스령이 되었다.
말레보호를 마주 보고 있는 도시 브라자빌과 킨샤사는 브라자와 스탠리가 각각 건설했다. 브라자빌과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은 콩고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의 결절점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1898년에는 킨샤사와 마타디를 연결하는 철도가, 1934년에는 브라자빌과 푸앵트누아르를 잇는 철도가 각각 개통되어 내륙의 산물을 두 도시에 있는 항구로 수송하고 수출하는 체제가 정비되었다.
콩고강 유역이 거의 밝혀지자, 유럽 제국에 의한 식민지화가 이 지역에도 밀려들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는 1876년에 국제 아프리카 협회를 설립하여 아프리카 진출을 노리고 있었고, 스탠리를 지원하여 콩고강 유역에 지배권을 확립하려고 했다. 스탠리는 레오폴드의 지원을 받아 1879년부터 1884년에 걸쳐 다시 이 지역을 탐험했다. 이 탐험에서 스탠리는 레오폴드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며, 콩고강 주변의 추장들과 보호 조약을 체결해 나갔다. 한편, 스탠리의 움직임을 보고 자극받은 프랑스도 이 지역으로 진출을 꾀했다. 1879년,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은 피에르 브라자의 탐험대가 프랑스령 가봉의 리브르빌에서 출발하여, 오고웨강을 거슬러 올라간 후 동진하여, 마레보 호 북안에 도착했다. 이곳에 기지를 건설하고 브라자빌이라고 명명한 브라자는, 마침 마레보 호 남안에 온 스탠리와 회담하여, 콩고강 북안을 프랑스의 세력권으로 하는 것을 인정받았다. 스탠리 쪽도 콩고강 남안을 중심으로 탐사를 진행하여,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과 스탠리빌(현재 키상가니)과 같은 기지를 건설해 나갔다. 이 탐험의 결과, 콩고강 유역의 상당 부분이 1882년에 콩고 국제 협회의 세력 범위가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하구부의 카빈다와 앙골라를 영유하는 포르투갈이 이의를 제기하여, 1882년에는 콩고강 하구부의 지배권을 주장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해안부에 점으로 거점을 유지하고 있을 뿐 내륙부에는 진출하지 않았고, 영국의 지지를 얻었지만, 다른 열강은 이를 지지하지 않아, 각국의 사정이 엇갈렸다. 또한, 벨기에는 국가도 의회도 식민지를 영유할 의도를 갖지 않았고, 레오폴드의 행동을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러한 이해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1885년에는 베를린 회의가 개최되어, 콩고강 분지의 자유 무역과 중립화, 항행의 자유를 각국에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콩고 국제 협회의 이권이 인정되었다. 이를 받아 콩고 국제 협회는 개편되어, 콩고 자유국으로 정식 레오폴드 2세의 사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콩고 자유국에서는 상아나 고무의 채취를 위한 강제 노동이 행해지고, 엄청난 폭정이 시행되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고, 1908년에는 레오폴드의 지배권이 박탈되어, 벨기에령으로 이관되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양국 정부는 산업 개발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마레보 호에 면한 브라자빌과 레오폴드빌(현재 킨샤사)은 콩고강을 이용한 내륙 수운의 결절점으로 개발이 진행되어, 1898년에는 레오폴드빌과 마타디를 잇는 마타디-킨샤사 철도가, 1934년에는 브라자빌과 푸앵트 누아르를 잇는 콩고-오세안 철도가 각각 개통되어, 내륙의 산물을 양 도시에 집적하여 해항으로 수송하여 수출하는 체제가 정비되었다. 콩고강에는 증기선이 띄워져, 내륙 수운이 적극적으로 개발되었다.
5. 5. 독립 이후
1898년에는 킨샤사와 마타디를 연결하는 철도가, 1934년에는 브라자빌과 푸앵트누아르를 잇는 철도가 각각 개통되어 내륙의 산물을 두 도시에 있는 항구로 수송하고 수출하는 체제가 정비되었다.[71] 1960년 벨기에령은 콩고 민주 공화국으로, 프랑스령은 콩고와 중앙 아프리카로 각각 독립했다.[71]6. 경제
리빙스턴 폭포는 바다에서의 접근을 막고 있지만, 폭포 상류의 콩고강은 구간별로, 특히 킨샤사와 키상가니 사이에서는 배가 쉽게 다닐 수 있어, 대형 강 증기선이 최근까지 운행되었다. 콩고강은 도로와 철도가 부족한 지역의 생명선 역할을 한다.[16]
6. 1. 수력 발전
콩고강은 아프리카에서 수량이 가장 많은 강이다. 우기에는 초당 50000m3 이상의 물이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콩고강과 그 지류는 수력 발전을 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콩고 분지 전체가 전 세계 수력 발전 잠재력의 13%를 차지하며, 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전체의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하다고 계산했다.[18]현재 콩고 분지에는 약 40개의 수력 발전소가 있다. 가장 큰 발전소는 킨샤사에서 남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잉가 댐이다. 이 댐은 1970년대 초에 건설이 시작되어, 현재 잉가 I 댐과 잉가 II 댐이 가동 중이며 총 1,776 M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18][19]

콩고강은 세계 2위의 거대한 유량을 가지며, 유량의 계절 변동이 거의 없고, 하류부에 큰 고저차가 있어 수력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콩고강 수계의 발전 잠재력은 세계 수력 발전 총 잠재력의 13%를 차지하며,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전력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계산되었다.[61] 특히 리빙스턴 폭포 하류에 있는 잉가 급류는 12km 사이에 96m나 고도를 낮추는 급류로, 1957년부터 조사가 시작되어 5개의 댐을 건설하여 총 34,500MW의 전력을 생산하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1961년 콩고 내전으로 계획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지만, 1966년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에 의해 잉가 댐 건설이 시작되어 1974년에 1, 2차 계획이 완료되었다.[62] 그러나 자금 부족과 모부투 정권의 실정으로 3차 계획은 실시되지 못했고, 전력 생산량도 계획의 40% 수준에 머물렀다.
콩고 민주 공화국은 심각한 전력 부족을 겪고 있지만, 잉가 댐에서 생산된 전력은 장거리 송전선을 통해 남부 카탕가 주의 구리 광산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까지 공급되고 있다. 최근 전력 부족을 겪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아프리카 남부 국가들은 콩고강의 발전에 주목하고 있으며, 남부 아프리카 개발 공동체를 통해 광역 전력망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62] 2004년에는 44,000MW의 발전 시설을 건설하는 웨스턴 파워 코리더 계획이 발표되었다.
6. 2. 교통
콩고강은 도로와 철도가 부족한 지역에서 중요한 교통로 역할을 한다.[16] 현재 철도가 3개의 주요 폭포를 우회하며, 구리, 팜유 (커널), 설탕, 커피, 면화를 포함한 중앙 아프리카 무역의 많은 부분이 강을 따라 운송된다.[17]콩고강에서 선박 운송이 가능한 구간은 크게 4개로 나뉜다.
구간 | 거리 | 설명 |
---|---|---|
상류 부카마에서 콩고로 사이 | 645km | |
킨두에서 우분두 사이 | 300km | |
중류부 키상가니에서 킨샤사 사이 | 1742km | |
하구부 마타디에서 하구까지 | 138km | 마타디-킨샤사 철도로 연결 |
교통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콩고 민주 공화국 및 주변 국가들에게, 고저차가 없고 수심이 깊은 콩고강은 중요한 하천 교통로가 되고 있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수도 킨샤사는 이 하천 교통망의 결절점으로 건설되었으며, 이곳을 기점으로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 방기, 콩고 중부의 대도시 키상가니, 카사이주 및 카탕가로 가는 관문인 일레보 등에 오나트라사 등의 정기선 및 화물선이 취항하고 있으며, 이 나라의 대동맥이 되고 있다. 키상가니와 우분두 사이의 급류에는 우회로로 철도가 부설되어 있으며, 우분두에서 킨두까지는 다시 선박 수송이 중심이 된다.
선박 운송에 의해 킨샤사에 모인 화물은, 리빙스턴 폭포를 우회하는 마타디-킨샤사 철도에 의해 해안에서 138km 상류에 있는 마타디로 운반된다. 마타디에서 보마를 거쳐 하구까지는 다시 항행이 가능하며, 원양 선박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하항 마타디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주요 무역항이 되고 있다. 콩고 공화국의 수도 브라자빌도 같은 기능을 가지며, 콩고-오세안 철도에 의해 해항 푸앵트누아르로 연결된다. 바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콩고강의 지류인 우방기강이 유일한 외국 무역 루트로서 매우 중요하며, 대형 선박이 들어갈 수 있는 이 나라 유일의 항구인 수도 방기는 내륙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수출항이 되고 있다.
콩고강의 명물은 연결식 밀배이다. 동력선 하나 앞에 바지선을 2, 3척 연결하여 밀면서 나아가는 것으로, 바지선에는 많을 때는 1000명 이상이 승선하여 키상가니에서 킨샤사까지의 1742km를 왕복한다. 1985년 시점에는 하행이 6일, 상행이 10일 걸렸다. 이 배는 수송 수단일 뿐만 아니라, 연안의 각 마을들에게 중요한 거래 상대이며, 연안에서 배가 닿으면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진다.[63] 운행 스케줄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아 없는 것과 같다. "오나트라 선"이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오나트라사가 관리하는 선박은 현지에서 모두 오나트라라고 불리기 때문에, 이 형식의 배를 가리켜 오나트라 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다. 오나트라사 운항 선박 외에도 바지선 등 다양한 배가 콩고강을 왕복하고 있다.
콩고강 본류에는 2개의 다리밖에 놓여 있지 않다. 상류, 루크가강과 루알라바강의 합류점부터 하류에 있는 콩고로의 Kongolo Bridge|콩고로교영어와, 하류의 마타디에 있는 마타디교이다. 콩고로교는 1939년에 벨기에 정부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마타디교는 1974년에 일본의 정부 개발 원조로 건설이 시작되어 1983년에 완성되었다. 마타디교의 전체 길이는 722m이며, 건설 당시에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긴 다리였다.[64] 이 다리는 콩고강 남안에 있는 마타디와 북안의 콩고 민주 공화국 영토를 연결하며, 마타디-킨샤사 철도를 연장하여 북안의 보마, 더 나아가 하구의 바나나 항까지 철도를 건설할 계획으로 건설되었다. 이 때문에, 마타디교는 도로·철도 병용교가 되었지만, 연장 계획은 그 후의 경제 파탄과 정정 불안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도로 정비도 같은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리의 기능은 계획에 비해 크게 제한되어 있다.
콩고 민주 공화국의 수도 킨샤사와 콩고 공화국의 수도 브라자빌 사이는 강을 사이에 두고 2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차례 가교 계획(:en:Brazzaville–Kinshasa Bridge)이 부상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콩고강의 수상 교통은 만성적으로 정원 초과, 과중 적재한 선박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종종 큰 인적 피해를 동반하는 침몰 사고가 발생한다. 2014년에는 세 자리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가 2회 발생했는데, 3월에 210명, 12월에 129명이 사망했다.[65]
7. 생태
콩고강은 플라이스토세에 현재의 물길이 형성되었으며, 이는 대략 150만 년에서 200만 년 전이다.[21][22] 콩고강의 형성은 보노보와 일반적인 침팬지가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리되는 동소적 종분화로 이어졌을 수 있다.[26]
콩고강 유역은 수생 생물 측면에서 종의 풍부성이 매우 높으며, 알려진 고유종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이다.[29] 2009년 기준으로 약 800종에 달하는 어류가 콩고강 유역에서 기록되었다.[30] 콩고강은 아프리카의 어떤 강보다 훨씬 높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콩고강 유역은 급류, 깊은 강, 늪, 호수와 같은 큰 생태적 차이 때문에 여러 생태 구역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리빙스턴 폭포 급류는 300종 이상의 어류를 포함하며,[35] 약 80종의 고유종이 서식하고,[36] 남서부 (카사이강 유역)는 200종 이상의 어류가 서식하며, 그 중 약 1/4이 고유종이다.[37]
강의 적어도 일부 지역에서 우세한 어류 과는 잉어과, 모르미루스과, 알레스테스과, 모코키과, 시클리드과이다.[38] 강에 서식하는 고유종 중에는 거대하고 육식성인 골리앗 타이거피쉬가 있다.
보노보는 이 지역의 습한 숲에 고유종이며, 알렌늪원숭이, 드리아스원숭이, 수생사향고양이, 오카피, 콩고공작과 같은 다른 상징적인 종들도 마찬가지이다.[27][28] 또한 수많은 고유종 개구리와 달팽이가 있다.[38][41]
몇몇 종의 거북이와 가는주둥이크로커다일, 나일악어, 왜소악어가 콩고강 유역에 서식한다. 아프리카매너티는 강의 하류 지역에 서식한다.[42]
8. 언어 및 민족
콩고강 유역 주민은 거의 모두 반투족에 속하며, 극히 일부는 밀림 깊숙한 곳에 피그미계 주민이 존재한다. 종주국이었던 프랑스와 벨기에가 모두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콩고강 유역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콩고강 상류역의 루알라바강이라 불리는 지역에서는 스와힐리어가 공통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스와힐리어가 공통어인 이유는 19세기 후반에 대륙 동쪽 해안의 잔지바르에서 스와힐리 상인의 대상(隊商)이 도착하게 되면서 스와힐리 교역권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사에 의해 이 지역의 교육 언어로서 스와힐리어가 채택되면서 전파가 가속화되었다. 키상가니에서 킨샤사에 이르는 콩고강 중류역의 공통어는 린갈라어이다. 콩고 민주 공화국뿐만 아니라 콩고강에 면한 콩고 공화국 북부에서도 린갈라어가 공통어로 사용된다. 원래 린갈라어는 콩고강 중류역의 링구아 프랑카로서 탄생하고 성장한 언어이며, 콩고강 중류역으로부터의 유입자와 교역 증가에 의해 원래 콩고어 권이었던 킨샤사에서도 20세기 초에는 공통어가 린갈라어로 대체되었다. 린갈라어는 킨샤사라는 대도시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킨샤사에서 탄생한 린갈라 음악의 융성에 따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리빙스턴 폭포에서 하류는 콩고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콩고인의 거주지이며, 그들이 사용하는 여러 언어 중에서 공통어로 성립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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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oks.googl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
[68]
웹인용
K-water와 함께하는 물정보포털 Mywater(수자원,수도,지하수)
http://www.water.or.[...]
2022-12-05
[69]
웹인용
콩고강-중앙아프리카의 예술/현재 전시
https://www.museum.g[...]
2022-12-05
[70]
서적
Smithsonian Institution Earth
[71]
서적
新書アフリカ史 第8版
講談社現代新書
200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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