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군주주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군주제는 가장 오래된 정치 체제 중 하나로, 부족장 제도에서 기원하여 고대 문명에서 국가 형성의 개념을 제공했다. 역사를 통틀어 군주들은 권력을 양보하거나 상실했으며, 특히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 제1차 및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권위가 약화되었다. 현재는 입헌군주제가 일반적이며, 군주의 권한은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절대 군주제 국가는 소수이며, 옹호론과 비판론이 공존하며, 옹호론은 국가 통합과 정치적 안정을 강조하고, 비판론은 세습 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군주주의 - 존왕양이
    존왕양이는 주 왕실 존숭과 이민족 배척 사상에서 비롯되어 중국, 일본, 조선에서 나타났으며, 서양 세력에 대한 반발과 국가 체제 수립, 쇄국정책의 명분으로 활용되었으나, 근대화 저해와 배타적 민족주의를 야기하기도 한 역사적 사상이다.
  • 군주주의 - 연방군주제
    연방 군주제는 여러 군주국이 연합하여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는 정치 체제이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나타났고, 현대에는 아랍에미리트와 말레이시아 등에서 채택하고 있다.
  • 보수주의 -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강력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반공주의와 민족주의를 중시하며, 경제 개입주의를 옹호하는 경향과 소득 재분배에 대한 제한적인 입장을 취하고, LGBT 권리와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으며, 역사적으로 권위주의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을 받아왔으나 1987년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며 변화를 거듭해왔다.
  • 보수주의 - 에드먼드 버크
    에드먼드 버크는 1729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정치인, 철학자, 작가로, 영국 의회 하원 의원으로서 보수주의 사상을 주창하며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고 전통, 질서, 점진적 개혁을 강조했다.
  • 정치 이데올로기 - 일당제
    일당제는 하나의 정당만이 합법적이거나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체제로, 헌법이나 법률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야당 탄압 등으로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하며, 정책 결정에 있어 반대 의견 부재로 잘못된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단점이 있다.
  • 정치 이데올로기 - 왕족
    왕족은 왕실 구성원을 지칭하며 다양한 칭호로 불리고 왕위 계승권을 가지며 작위나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군주주의
개요
정의군주 또는 군주제를 옹호하는 정치 이념
관련 용어왕정복고
왕당파
군주제
왕권신수설
특징
핵심 가치군주를 국가의 수반으로 하는 정치 체제 지지
주요 주장국가 안정과 전통 유지
역사적 정통성 강조
현대적 관점절대군주제는 비민주적이라는 비판
입헌군주제는 민주주의와 공존 가능성 제시
유형
절대군주제군주가 모든 권력을 소유
입헌군주제군주는 상징적 존재, 실권은 의회에 있음
세습군주제혈통에 따라 군주 계승
선거군주제선출된 군주가 통치
역사
고대초기 국가 형태로서 군주제 등장
중세봉건제 사회에서 군주 권력 강화
왕권신수설 대두
근대시민혁명과 함께 군주제 약화
입헌군주제 등장
현대세계적으로 군주제 국가 감소 추세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영향력 행사
지지 기반
전통주의자전통과 역사적 가치 중시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군주제 옹호
보수주의자점진적 변화와 현상 유지를 선호
안정적인 정치 체제로서 군주제 지지
일부 대중군주에 대한 개인적 존경심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군주제 지지
비판
민주주의 가치 위배권력 세습과 비민주적 통치 방식 비판
사회 불평등 심화군주와 특권 계층에 대한 비판
현대 군주제 국가
유럽영국
스페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아시아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부탄
기타모로코
에스와티니
통가
레소토
관련 이념
같이 보기
추가 정보
참고 자료영문 위키백과: 군주주의
관련 이미지
왕관 문장
왕관 문장

2. 역사

군주제는 가장 오래된 정치 제도 중 하나이다.[5] 부족장 제도 또는 부족 왕정으로 알려진 유사한 사회 계층 구조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했다. 부족장 제도는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인더스 문명과 같은 문명에서 시작된 국가 형성의 개념을 제공했으며,[6]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장 제도가 군주제로 발전했다.[7]

근대에는 군주들이 권력을 양보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그 힘이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볼테르 등은 "계몽 전제정치"를 장려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예카테리나 2세가 이를 받아들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으로 이어져[9]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모두 유럽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영향을 주었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보여주었다. 1848년에는 유럽 대륙의 군주제에 대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로 로마노프 왕조, 독일 호엔촐레른 왕조(다른 모든 독일 군주제 포함),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왕조 등 세 개의 주요 유럽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1947년 말까지 동유럽에 공산주의가 도래하면서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 동유럽의 남은 군주제는 모두 군주제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2. 1. 세계의 군주제 역사

군주제는 가장 오래된 정치 제도 중 하나이다.[5] 부족장 제도 또는 부족 왕정으로 알려진 유사한 사회 계층 구조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했다. 부족장 제도는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인더스 문명과 같은 문명에서 시작된 국가 형성의 개념을 제공했다.[6]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장 제도가 군주제가 되었다.[7]

근대에는 군주들이 일반적으로 권력을 양보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 과정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볼테르 등이 "계몽 전제정치"를 장려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예카테리나 2세가 이를 받아들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9]으로 이어져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모두 유럽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추가적인 단계였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1848년에는 유럽 대륙의 군주제에 대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로 로마노프 왕조, 독일 호엔촐레른 왕조(다른 모든 독일 군주제 포함),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왕조 등 세 개의 주요 유럽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1947년 말까지 동유럽에 공산주의가 도래하면서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 동유럽의 남은 군주제는 모두 군주제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2. 2. 아시아의 군주제

중국은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여러 왕조 국가들로 조직되었으며, 세습 군주의 통치를 받았다. 우왕에 의한 왕조 통치의 시작(기원전 2070년경)부터 1912년 선통제의 퇴위까지, 중국 역사 서술은 군주제 왕조의 계승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10][11][12][13] 지배적인 한족 민족 또는 그 정신적 화하 선조들에 의해 세워진 왕조 외에도, 중국 역사 전반에 걸쳐 비한족 사람들에 의해 건국된 왕조들도 있었다.[15]

인도에서는 1950년 공화국으로 선포되기 수천 년 전부터 군주제의 역사가 기록되었다. 조지 6세는 1947년 8월 영국령 인도(British Raj)가 해체될 때까지 마지막 인도 황제였다.

2019년 나루히토 천황 즉위식


일본 천황(天皇, Tennō)은 말 그대로 "하늘의 아들" 또는 "천황"을 뜻하며,[16] 일본의 세습 군주이자 국가 원수이다. 일본황실전범은 일본 황위 계승의 계보를 규정한다. 천황은 개인적으로 국가 면책을 누리며,[18] 신도의 수장으로 인정받는데, 이는 천황이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직계 후손이라는 믿음에 기반한다. 전통에 따르면 천황직은 기원전 7세기에 창설되었지만, 현대 학자들은 최초의 천황이 기원후 5세기 또는 6세기에 등장했다고 믿는다.[19][20] 1185년부터 1333년까지의 가마쿠라 시대에는 ''쇼군''들이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였고, 천황과 궁정은 명목상의 지도자 역할을 했다.[21] 1867년,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물러남으로써 메이지 유신을 통해 메이지 천황이 권력을 되찾았다.[22] 1889년에는 메이지 헌법이 채택되었고, 그 후 천황은 국회와 권력을 나누는 적극적인 통치자가 되었다.[23]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1947년 일본국 헌법이 제정되어 천황을 일본 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의 통합을 상징하는 존재로 규정했다.[24] 그 이후로 천황은 순전히 의례적인 역할만 수행해왔다.[25]

2. 3. 유럽의 군주제

근대 유럽의 군주들은 일반적으로 권력을 양보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볼테르 등이 "계몽 전제정치"를 장려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예카테리나 2세가 이를 받아들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9]으로 이어져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모두 유럽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추가적인 단계였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1848년에는 유럽 대륙의 군주제에 대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로 로마노프 왕조, 호엔촐레른 왕조(다른 모든 독일 군주제 포함), 합스부르크 왕조 등 세 개의 주요 유럽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1947년 말까지 동유럽에 공산주의가 도래하면서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 동유럽의 남은 군주제는 모두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독립적인 군주국이 된 알바니아는 1914년 공국으로 인정받는 현대사를 시작했으며, 1925년부터 1928년까지 공화정 체제를 거친 후 왕국이 되었다. 1945년 이후로는 독립 공화국으로 운영되어 왔다. 알바니아 민주 군주주의 운동당(2004년 창당)과 합법성 운동당(1924년 창당)은 조구 왕가의 군주 복고를 주장하지만, 이러한 개념은 거의 지지받지 못하고 있다.

루이 필립 1세의 즉위 선서


프랑스는 843년 서프랑크 왕국이 세워진 이후 1870년 프랑스 제2제정이 끝날 때까지 여러 차례의 단절을 겪으면서 군주에 의해 통치되었다.

전통적인 프랑스 역사서술은 일반적으로 프랑크족의 왕 클로비스 1세를 프랑스의 초대 국왕으로 여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9세기 카롤링거 왕조의 붕괴 과정에서 서프랑크 왕국이 세워질 때까지 그러한 왕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27][28]

1920년대 독일에서는 여러 군주주의자들이 독일 민족인민당(1918년 창당)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호엔촐레른 왕가의 복위와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식을 요구했다. 나치즘이 1930년대에 부상할 때까지 이 당은 상당한 지지 기반을 유지했는데, 이는 아돌프 히틀러가 군주제에 단호히 반대했기 때문이다.[2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붕괴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독일 오스트리아의 제헌의회는 합스부르크 가문을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추방하는 합스부르크 법을 통과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에서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상당한 지지가 지속되었다. 1938년 안슐루스 이후, 나치 정부는 군주제 활동을 억압했다. 나치 통치가 오스트리아에서 끝날 무렵에는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대부분 사라졌다.[26]

헝가리에서는 1919년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등장이 군주제에 대한 지지를 증가시켰다. 그러나 헝가리 군주주의자들의 노력은 왕족 국가 원수를 복귀시키지 못했고, 군주주의자들은 왕위가 재차 점령될 때까지 군주를 대표할 섭정인 미클로시 호르티(Miklós Horthy) 제독을 선택했다. 호르티는 1920년부터 1944년까지 섭정으로 통치했다. 그의 섭정 기간 동안 카를 폰 합스부르크는 헝가리 왕위에 복귀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922년 카를의 사후, 헝가리 왕국에 대한 그의 주장은 오토 폰 합스부르크 (1912–2011)에게 상속되었지만, 헝가리 왕위를 차지하려는 추가적인 시도는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군주제와 공화제의 경쟁이 다시 불붙었고, 국가가 군주국으로 남을지 아니면 공화국이 될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공화파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면서 현대 이탈리아 공화국이 탄생하였다.[30]

1608년 이후 리히텐슈타인 공국에는 16명의 군주가 있었다. 현 리히텐슈타인 대공인 한스-아담 2세는 1989년부터 통치하고 있다. 2003년 국민투표에서 국민의 64.3%가 대공의 권한을 강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노르웨이 국왕의 지위는 872년 노르웨이 통일 이후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스웨덴과의 연합 해체와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의 노르웨이 국왕직 퇴위 이후, 1905년 노르웨이 군주제 국민투표에서 노르웨이 유권자의 78.94%가 덴마크의 칼(Carl) 왕자를 새로운 국왕으로 초청하자는 정부의 제안을 승인했다. 투표 후 왕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하콩 7세 국왕이 되었다.

2022년 노르웨이 의회는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으로 대체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이 제안은 군주제 유지를 찬성하는 134대 35의 결과로 부결되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노르웨이에서 매우 논란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투표가 전년도에 하랄 5세 국왕에게 충성 서약을 했던 현 문화평등부 장관에 의해 주도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론조사 결과 노르웨이 국민의 84%가 군주제를 지지하고, 단 16%만이 불확실하거나 군주제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17년 3월, 러시아 제국퇴위로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통치가 무너졌다. 백군의 일부, 특히 백계 이민자들과 그들의 Высший монархический советru (1921년 설립, 현재 캐나다에 본부 소재)는 "러시아의 재생을 위한 유일한 길"로서 군주제를 계속 주장했다. 현대에 와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1946–2022)를 포함한 소수의 러시아인들이 러시아 군주제의 복고를 공개적으로 옹호해 왔다. 복고가 일어날 경우 마리아 블라디미로브나 대공녀가 왕위 계승자로 널리 여겨지고 있다. 다른 왕위 계승자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그녀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1868년, 이사벨라 2세 여왕은 스페인 1868년 혁명으로 퇴위했다. 이탈리아 왕족인 아오스타 공작이 이사벨라 2세를 대신하여 통치하도록 초청받았다. 그는 아마데오 1세로 3년 동안 통치하다가 1873년 퇴위했고, 그 결과 제1 스페인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공화국은 2년도 채 지속되지 못하고 아르세니오 마르티네스 캄포스 장군의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캄포스 장군은 이사벨라 2세의 더 인기 있는 아들인 알폰소 12세에 의해 부르봉 왕가를 복원했다.

1931년 스페인 지방 선거 이후, 알폰소 13세 국왕은 자발적으로 스페인을 떠났고 공화파는 제2 스페인 공화국을 선포했다.[31] 1936년 야당 지도자 호세 칼보 소텔로의 암살 이후, 우익 세력들은 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해 연합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의 스페인 내전 동안,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프랑코 정권(1939년-1975년)의 기반을 마련했다. 1938년, 프랑코의 독재 정부는 스페인 왕위를 ''궐위 상태에서'' 재건했다고 주장했고 (결국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즉위로 이어짐), 이는 결국 왕위 복고로 이어졌다.

1975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국왕이 되었고 스페인 민주화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2014년 퇴위했고, 그의 아들인 펠리페 6세가 계승했다.

2022년 엘리자베스 2세의 플래티넘 주빌리에 참석한 군중


잉글랜드에서는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왕족이 다른 집단에게 권력을 양보했다. 1215년 귀족들은 존 왕에게 대헌장에 서명하게 강요했는데, 이는 잉글랜드 귀족들에게 특정한 자유를 보장하고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확립했다. 1649년 찰스 1세 왕이 처형되고 잉글랜드 연방이 공화국으로 수립되었다. 매우 인기가 없었던 이 공화국은 1660년에 종식되었고, 찰스 2세 왕 치하에서 군주제가 복고되었다. 1687~88년 명예혁명과 제임스 2세 왕의 전복은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확립했고, 이는 나중에 로크와 다른 사상가들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절대 군주제는 홉스가 ''리바이어던''(1651)에서 정당화했듯이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원칙으로 남아 있었다.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전임자인 제임스 2세보다 권력이 적은 입헌 군주로 등극했다. 그 이후로 왕실의 권력은 더 의례적인 것이 되었으며, 재가 거부와 같은 권력은 1708년 앤 여왕이 마지막으로 행사했다. 한때 영국(1801~1922)의 일부였던 아일랜드 남부는 군주제를 거부하고 1949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되었다. 브리튼에서는 의례적인 군주제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바티칸 시국은 유럽의 마지막 절대 군주국으로 여겨진다. 이 미니 국가는 바티칸 헌법에 따라 군주를 겸임하는 교황이 이끈다. 이 국가는 라테란 조약 체결 후 1929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수립되었다. 이는 1870년 비오 9세 교황 치하에서 붕괴된 교황령의 후신 국가이다. 2013년부터 재임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국가의 절대 군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 4. 아메리카의 군주제

멕시코의 이투르비데 황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멕시코 제1제국아구스틴 1세 황제의 통치 하에 수립되었다. 그러나 그의 통치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하고 강제로 폐위되었다. 1864년,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통치 하에 멕시코 제2제국이 형성되었으나, 프랑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3년 만에 붕괴되었다. 아구스틴 1세와 마찬가지로, 막시밀리안 1세도 공화주의자 반대파에 의해 폐위된 후 처형되었다. 1867년 이후로 멕시코는 군주제를 유지하지 않았다.[32]

오늘날, 일부 멕시코 왕정주의 단체들은 Maximilian von Götzen-Iturbide 또는 Carlos Felipe de Habsburgo를 멕시코 황제로 옹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왕정 요소가 포함된 온두라스의 옛 식민지 시대 문장


과테말라 총독령이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온두라스는 잠시 제1 멕시코 제국에 합류하였다. 이는 온두라스 엘리트 계층의 분열을 초래했다.[32] 엘리트들은 제국 편입을 지지한 합병주의자(주로 명문 스페인계 가문과 보수당원)와 중앙아메리카가 공화제 하에 독립된 국가가 되기를 원했던 자유주의자로 나뉘었다.

이러한 분열은 온두라스의 두 주요 도시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코마야과는 이투르비데 1세 황제의 정통성을 확고히 지지하며 온두라스 내 군주제 지지 기반으로 남았고, 테구시갈파는 공화제 하의 중앙아메리카 연방 국가 수립 구상을 지지했다.[32]

미스키토족(Miskito people)은 온두라스와 니카라과 대서양 연안 일부에 거주하는데, 17세기 초 타 우플리카(Ta Uplika)라는 단일 지도자 아래 재편되었다. 그의 손자 올드맨 1세(Oldman I) 왕 시대에는 영국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모스키티아(Mosquitia) 연안을 영국의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이 보호령은 19세기에 쇠퇴하여 로버트 2세(Robert II, Robert Henry Clarence)의 퇴위와 함께 1894년에 완전히 사라졌다.[32]

현재, 두 나라 사이에 거주하는 미스키토족은 공동체 방치와 당국의 학대를 규탄하고 있다. 이 결과로 니카라과에서는 여러 미스키토족이 니카라과로부터의 분리 독립 운동과 군주제 부활 운동을 시작했다.[32]

영국 정착민들은 1607년에 제임스 6세 겸 1세 국왕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 식민지를 처음 건설하였다. 이후 169년 동안, 13개 식민지는 영국 왕실의 권위에 의해 통치되었다. 13개 미국 식민지는 총 10명의 군주를 거쳤으며, 조지 3세로 끝났다. 미국 독립 전쟁 중에 식민지들은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널리 퍼진 잘못된 믿음과는 달리, 독립 전쟁은 반군주제가 아닌 독립을 위한 전쟁이었다. 실제로, 조지 3세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전한 많은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군주제 지지자였으며, 조지 3세에 반대했지만 다른 국왕을 원했다. 또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전쟁 중에 루이 16세와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후, 운영 방식에 대한 정부 형태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알렉산더 해밀턴과 내덜니얼 고험을 포함한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적어도 두 명은 미국이 독립 군주국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프로이센 계획을 포함하여 미국 군주제 창설을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고려되었는데, 이 계획은 프로이센의 헨리 왕자를 미국의 국왕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해밀턴은 미국의 지도자가 선출된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고험은 세습 군주제를 주장했다.[33][34] 미군 장교 루이스 니콜라도 미국이 군주제가 되기를 원했으며, 조지 워싱턴에게 미국의 왕관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모든 시도는 궁극적으로 실패했고, 미국은 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주제로의 복귀가 고려되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이후로 이러한 생각은 지지도가 낮았지만, 랄프 애덤스 크램, 솔랑주 헤르츠, 리랜드 B. 예거, 마이클 아우스린, 찰스 A. 쿨롬브, 커티스 야르빈과 같은 몇몇 공인들에 의해 옹호되었다.

1822년 독립 이후 1889년까지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실의 한 분파가 군주로 통치하는 입헌 군주국이었다. 이 시기 이전 브라질은 왕실 식민지였으며,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포르투갈 점령 이후 포르투갈 제국의 정부 소재지 역할을 잠시 수행하기도 했다. 브라질 제국의 역사는 짧은 정치적 불안정 시대, 브라질이 승리한 여러 전쟁,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했던 브라질에 매력을 느낀 유대인과 프로테스탄트의 유입을 포함한 이민의 급격한 증가로 특징지어진다. 페드루 2세 치세하의 제국 말기 수십 년은 국내외 모두 상대적 평화와 극적인 경제 확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시민권 확대, 노예 제도의 점진적인 억제(1888년 최종 폐지)를 가져왔다. 또한 번영하는 문화와 예술로도 기억된다. 그러나 페드루 2세는 왕정 유지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1889년 군사 쿠데타에 의한 왕정 전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브라질 제1공화국으로 알려진 독재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35]

왕당파와 공화파 사이의 갈등은 1823년 코스타리카 내전으로 이어졌다. 코스타리카 왕당파에는 호아킨 데 오레아무노 이 무뇨스 데 라 트리니다드, 호세 산토스 롬바르도 이 알바라도, 호세 라파엘 갈레고스 알바라도가 포함된다. 코스타리카는 외국 왕정주의, 즉 왕당파가 토착 왕정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코스타리카 왕당파는 멕시코 제1제국의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 황제에게 충성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제 국가 중 하나로, 16세기에 건국되었다.[32]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52년 즉위하여 2022년 서거할 때까지 캐나다의 군주였다. 그의 아들인 찰스 3세 국왕이 현재 왕위에 있다.

2. 5. 아프리카의 군주제

아프리카에서 부족장 제도 또는 부족 왕정으로 알려진 사회 계층 구조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했다.[5]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장 제도가 군주제가 되었다.[7]

1966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은 장 베델 보카사에 의해 생실베스트르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그는 1976년에 중앙아프리카제국을 세우고 보카사 1세 황제로 1979년까지 통치하다가, 이후 카반 작전으로 폐위되었고 중앙아프리카는 공화정으로 돌아왔다.

1974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군주제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 제국이 에티오피아에서 하일레 셀라시에 1세 황제의 몰락과 함께 폐지되었다.

3. 현대의 군주제

근대에는 군주들이 일반적으로 권력을 양보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 상당히 약화되었다. 이 과정은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볼테르 등이 "계몽 전제정치"를 장려했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예카테리나 2세가 이를 받아들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9]으로 이어져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모두 유럽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추가적인 단계였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1848년에는 유럽 대륙의 군주제에 대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독일 호엔촐레른 왕조(다른 모든 독일 군주제 포함),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합스부르크 왕조 등 세 개의 주요 유럽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1947년 말까지 동유럽에 공산주의가 도래하면서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 동유럽의 남은 군주제는 모두 폐지(군주제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대부분의 현존하는 군주국은 입헌군주제이다. 입헌군주제에서는 군주의 권력이 성문 헌법 또는 불문 헌법에 의해 제한된다. 이는 의례적 군주제와 혼동해서는 안 되는데, 의례적 군주제에서는 군주가 상징적인 권력만 가지고 있으며 정부 또는 정치에 거의 또는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일부 입헌군주제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군주가 정치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태국의 경우 1946년부터 2016년까지 재위한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국가 정치 의제와 여러 군사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모로코의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상당한 권력을 행사하지만 절대적인 권력은 아니다.

리히텐슈타인은 국민들이 최근 몇 년 동안 자발적으로 군주에게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한 민주적인 공국이다.

군주제가 절대 군주제인 국가는 소수 남아 있다. 이들 국가의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와 같이 석유 생산국인 아랍 이슬람 군주국이다. 다른 강력한 군주제로는 브루나이에스와티니가 있다.

국가군주
안도라공동 군주 에마뉘엘 마크롱
공동 군주 후안 엔리케 비베스 이 시실리아
앤티가 바부다찰스 3세 국왕
오스트레일리아
바하마
벨리즈
캐나다
그레나다
자메이카
뉴질랜드
파푸아뉴기니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루시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솔로몬 제도
투발루
영국
바레인하마드 빈 이사 알 칼리파 국왕
벨기에필리프 국왕
부탄지그메 케살르 남겔 왕축 국왕
브루나이술탄 하사날 볼키아
캄보디아노로돔 시하모니 국왕
덴마크프레데리크 10세 국왕
에스와티니므스와티 3세 국왕
일본나루히토 천황
요르단압둘라 2세 국왕
쿠웨이트미샬 알 아흐마드 알 자베르 알 사바 에미르
레소토레치시 3세 국왕
리히텐슈타인한스 아담 2세 공작
룩셈부르크앙리 대공
말레이시아술탄 이브라힘
모나코알베르 2세
모로코모하메드 6세 국왕
네덜란드빌럼알렉산더르 국왕
노르웨이하랄 5세 국왕
오만하이삼 빈 타릭 술탄
카타르타밈 빈 하마드 알 타니 에미르
사우디아라비아살만 국왕
스페인펠리페 6세 국왕
스웨덴칼 16세 구스타프 국왕
태국라마 10세 마하 와찌랄롱꼰 국왕
통가투포우 6세 국왕
아랍에미리트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히얀
바티칸 시국프란치스코 교황



국가여론조사 기관/출처표본 크기찬성 비율조사 시행일참조
앤티가 바부다로드 애쉬크로프트 여론조사51045%2023년 2월과 3월[45]
오스트레일리아에센셜1,12548%2023년 4월[46]
벨기에IVOX1,00058%2017년 9월[47]
캐나다나노스 리서치1,00148%2022년 6월[48]
덴마크갤럽86%2014년[49]
자메이카로드 애쉬크로프트 여론조사51040%2023년 2월과 3월[45]
일본마이니치 신문74%2019년 4월[50]
레소토아프로바로미터75%2018년 6월[51]
모로코르 몽드1,10891%2009년 3월[52]
네덜란드EenVandaag56%2024년 4월[53]
뉴질랜드로드 애쉬크로프트 여론조사2,01244%2023년 2월과 3월[54]
노르웨이Nettavisen20,00085%2022년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정부 헌법 국민투표52,26256.3%2009년 11월
스페인스페인65.7%2024년 1월[55]
스웨덴노부스73%2023년 1월[56]
태국수안 두싯 라자바트 대학교5,70075%2020년 10월[57]
투발루정부 헌법 국민투표1,93964.9%2008년 4월[58]
영국입소스2,16681%2024년 5월


4. 군주제에 대한 논쟁

군주제는 가장 오래된 정치 제도 중 하나로, 부족장 제도에서 기원했다.[5][6] 근대에 들어 군주들의 권력은 약화되었으며, 특히 18세기 계몽 시대의 영향으로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 등 여러 혁명이 일어나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기여했다.[8][9] 1848년에는 유럽 대륙에서 혁명의 물결이 일어났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20세기 후반에는 동유럽의 여러 군주제가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군주제에 대한 논쟁은 크게 군주제 옹호론과 군주제 비판론으로 나뉜다.

4. 1. 군주제 옹호론

군주제는 가장 오래된 정치 제도 중 하나이다.[5] 부족장 제도 또는 부족 왕정으로 알려진 유사한 사회 계층 구조는 선사 시대부터 존재했다.[6]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족장 제도가 군주제가 되었다.[7]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9]으로 이어져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절대 군주제는 무정부주의와 대립되는 입장이며, 계몽주의 이후로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도 대립된다.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최고 사법 기능의 우위를 기반으로 하는 입헌군주제의 한 형태를 주장했는데, 이는 세습 승계를 따르며, 적합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 중재 재판소에 의한 중재가 정당화된다.[36][37]

영국의 정치학자 버넌 보그다노르(Vernon Bogdanor)는 국가원수가 정당과 무관하며 정부 수반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군주제가 정당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국내외 최고 대표자를 보장한다는 근거로 군주제를 정당화한다.[38]

토마스 홉스는 군주제의 사익은 공익과 같다고 주장했다. 군주의 부, 권력, 기분은 오직 신하들의 부, 힘, 명성에서 비롯된다. 선출된 국가원수는 몇 년 후 퇴임하기 때문에 자신의 부를 늘리려는 유인이 있지만, 군주는 자신을 속이는 셈이 되므로 부정부패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토마스 홉스는 군주는 비밀리에 현명한 조언을 얻을 수 있지만 의회는 그럴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회의 고문들은 지식보다는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 데 더 능숙하며, 종종 사람들을 행동으로 이끌지만 실제로는 지휘하지 못하는 장황한 담화로 조언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깨달음이 아닌 열정의 불꽃에 이끌린다. 그들의 다수는 약점이다.

토마스 홉스는 군주의 결정은 인간 본성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모순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의회에서는 그 수로 인해 모순이 발생한다고 기술했다. 의회에서는 소수의 불참 또는 반대 의견을 가진 소수의 성실한 출석만으로도 "어제 한 모든 일을 오늘 무효화"할 수 있다.

토마스 홉스는 군주는 질투나 사익 때문에 스스로와 의견이 다를 수 없지만, 의회는 그럴 수 있으며,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내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 군주제 연맹은 1943년 설립된 이래로, 군주제가 민주주의와 독재 정권 모두에서 국민의 자유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군주제를 옹호해 왔다. 군주는 정치인들에게 빚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계 미국인 자유지상주의 작가 매슈 피니는 유럽 입헌 군주제가 "대부분 극단적인 정치"—특히 파시즘, 공산주의, 군사 독재—"를 피해왔는데, 이는 군주제가 뿌리 깊은 관습과 전통을 대표함으로써 인기 영합적인 정치인들의 의지를 견제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39]

사회주의 작가 조지 오웰도 비슷한 견해를 제시하며, 입헌 군주제는 파시즘의 발전을 효과적으로 막는다고 주장했다.

에릭 폰 쿠엘네르트-레디히는 자유와 평등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군주제 폐지를 통한 더 큰 사회적 평등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시민들의 자유를 더 크게 잃게 한다고 주장했다.

한스-헤르만 호페 또한 군주제가 민주주의보다 개인의 자유를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42]

1943년 영국 작가 C. S. 루이스가 ''더 스펙테이터''에 발표한 에세이 "평등"에서 그는 평등주의와 그에 따른 군주제 폐지 요구가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옥스퍼드 대학교 정치학자인 페트라 슐라이터와 에드워드 모건-존스는 군주제에서는 비선거적 교체보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이 더 흔하다고 썼다.[44]

군주제를 옹호하는 주요 저서는 다음과 같다.

제목저자출판 연도
호주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군주제: 그리고 왜 그것이 여전히 타당한가 (The Minimal Monarchy: And Why It Still Makes Sense For Australia)토니 애벗 (Tony Abbott)1995
군주론 (De Monarchia)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약 1312년
키프로스 왕에게 보내는 왕국론 (De Regno, to the King of Cyprus)토마스 아퀴나스 (Thomas Aquinas)1267
미국에는 왕이 필요하다 (America Needs a King)마이클 아우스린 (Michael Auslin)2014
유럽 문명: 유럽 문명에 대한 영향에 있어서 비교되는 프로테스탄티즘과 가톨릭교 (European Civilization: Protestantism and Catholicity Compared in their Effects on the Civilization of Europe)하이메 발메스 (Jaime Balmes)1850
로마 교황에 관하여 (De Romano Pontifice, On the Roman Pontiff)로베르토 벨라르미노 (Robert Bellarmine)1588
공화국의 6권 (The Six Books of the Republic)장 보댕 (Jean Bodin)1576
군주제와 헌법 (The Monarchy and the Constitution)버넌 보그다노르 (Vernon Bogdanor)1997
성경의 말씀에서 이끌어낸 정치학 (Politics Drawn from the Very Words of Holy Scripture)자크 베니뉴 보슈에 (Jacques-Bénigne Bossuet)1709
바실리케의 상징 (Eikon Basilike)잉글랜드의 찰스 1세 (Charles I of England)1649
별이 빛나는 왕관: 미국의 군주제에 대한 간단한 안내 (Star-Spangled Crown: A Simple Guide to the American Monarchy)찰스 A. 쿨롬브 (Charles A. Coulombe)2016
보나파르트와 부르봉 왕가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의 합법적인 왕자들 주위에 결집할 필요성에 관하여 (Of Buonaparte, and the Bourbons, and of the Necessity of Rallying Round Our Legitimate Princes)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François-René de Chateaubriand)1814
군주제로의 초대 (Invitation to Monarchy)랠프 애덤스 크램 (Ralph Adams Cram)1936
가장 (Patriarcha)로버트 필머 (Robert Filmer)1680
리바이어던 (Leviathan)토마스 홉스 (Thomas Hobbes)1651
민주주의: 실패한 신 (Democracy: The God That Failed)한스 헤르만-호페 (Hans Hermann-Hoppe)2001
귀족정에서 군주정으로, 그리고 민주주의로: 도덕적, 경제적 어리석음과 쇠퇴의 이야기 (From Aristocracy to Monarchy to Democracy: A Tale of Moral and Economic Folly and Decay)한스 헤르만-호페 (Hans Hermann-Hoppe)2014
자유 군주제의 진정한 법칙 (The True Law of Free Monarchies)제임스 6세 겸 1세 (James VI and I)1598
바실리콘 도론 (Basilikon Doron)제임스 6세 겸 1세 (James VI and I)1599
프랑스의 왕자 (Un Prince Français)파리 백작 장 (Jean, Count of Paris)2009
자유 또는 평등: 우리 시대의 도전 (Liberty or Equality: The Challenge of Our Times)에릭 폰 쿠엘넬트-레디히 (Erik von Kuehnelt-Leddihn)1952
군주제와 전쟁 (Monarchy and War)에릭 폰 쿠엘넬트-레디히 (Erik von Kuehnelt-Leddihn)2000
프랑스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s on France)조제프 드 메스트르 (Joseph de Maistre)1797
왜 우리의 목소리가 필요한가 (Pourquoi Notre Voix)비오 6세 (Pope Pius VI)1793
국가보다 높은 충성의 초점 (A Focus of Loyalty Higher Than the State)로저 스크루턴 (Roger Scruton)1991
왕 만세! (Vive le Roi!)루이 가스통 아드리앵 드 세귀르 (Louis Gaston Adrien de Ségur)1871
군주제는 중요하다 (Monarchy Matters)피터 휘틀 (Peter Whittle)2011


4. 2. 군주제 비판론

군주제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인 정치 체제(정체)인 군주제를 대상으로 하거나, 특히 세습적인 왕족이 통치하는 특정 군주정을 대상으로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이러한 비판은 신성모독죄와 같이 법적 제약에 의해 제한되고 범죄적 발언으로 간주될 수 있다. 유럽의 군주제와 왕권신수설과 같은 근본적인 개념들은 계몽시대 동안 자주 비판받았는데, 이는 특히 프랑스 혁명프랑스에서의 왕정 폐지 선포의 길을 열었다. 그 이전에, 미국 독립 전쟁에서는 애국자들이 왕당파를 억압하고 모든 왕실 관리들을 추방했다. 이 시대에 군주제는 왕권의 정도와 민정에 대한 개입 정도가 다른 여러 형태로 세계에 존재한다.

20세기는 1917년 러시아2월 혁명으로 시작하여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 의해 가속화되어 많은 유럽 국가들이 군주제공화제로 대체했고, 다른 국가들은 절대 군주제를 입헌 군주제로 대체했다. 역으로, 부르봉 왕정 복고, 7월 왕정, 제2 프랑스 제정 하의 프랑스에서의 군주제의 짧은 복귀, 잉글랜드 내전 이후 스튜어트 왕조, 프랑코 독재 이후 스페인의 부르봉 왕조와 같은 역행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5. 주요 군주제 관련 인물

군주제를 옹호하거나 지지했던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작가 및 예술가신학자 및 성직자철학자 및 정치 이론가정치인 및 기타


6. 주요 군주제 관련 사건

17세기와 18세기에는 계몽 시대가 시작되었다.[8] 이는 새로운 반군주제 사상[9]으로 이어져 18세기 미국 독립 혁명프랑스 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을 일으켰고, 이는 모두 유럽 군주제의 권력 약화에 추가적인 단계였다. 각각의 혁명은 장 자크 루소가 주장한 국민 주권의 개념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었다. 1848년에는 유럽 대륙의 군주제에 대한 1848년 혁명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그 여파로 로마노프 왕조, 호엔촐레른 왕조(다른 모든 독일 군주제 포함), 그리고 합스부르크 왕조 등 세 개의 주요 유럽 군주제가 막을 내렸다.

1947년 말까지 동유럽에 공산주의가 도래하면서 루마니아 왕국, 헝가리 왕국, 알바니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 등 동유럽의 남은 군주제는 모두 폐지되고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대체되었다.

1868년, 이사벨라 2세 여왕은 스페인 1868년 혁명으로 퇴위했다. 이탈리아 왕족인 아오스타 공작이 이사벨라 2세를 대신하여 통치하도록 초청받았다. 그는 아마데오 1세로 3년 동안 통치하다가 1873년 퇴위했고, 그 결과 제1 스페인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공화국은 2년도 채 지속되지 못하고 아르세니오 마르티네스 캄포스 장군의 쿠데타로 전복되었다. 캄포스 장군은 이사벨라 2세의 더 인기 있는 아들인 알폰소 12세에 의해 부르봉 왕가를 복원했다.

1931년 스페인 지방 선거 이후, 알폰소 13세 국왕은 자발적으로 스페인을 떠났고 공화파는 제2 스페인 공화국을 선포했다.[31] 1936년 야당 지도자 호세 칼보 소텔로의 암살 이후, 우익 세력들은 공화국을 전복하기 위해 연합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의 스페인 내전 동안,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프랑코 정권(1939년-1975년)의 기반을 마련했다. 1938년, 프랑코의 독재 정부는 스페인 왕위를 ''궐위 상태에서'' 재건했다고 주장했고 (결국 후안 카를로스 1세 국왕의 즉위로 이어짐), 이는 결국 왕위 복고로 이어졌다.

1975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스페인 국왕이 되었고 스페인 민주화 과정을 시작했다. 그는 2014년 퇴위했고, 그의 아들인 펠리페 6세가 계승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멕시코 제1제국아구스틴 1세 황제의 통치 하에 수립되었다. 그의 통치는 1년도 채 지속되지 못했고, 그는 강제로 폐위되었다. 1864년, 막시밀리안 1세 황제의 통치 하에 멕시코 제2제국이 형성되었다. 막시밀리안 정부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으나, 미국의 반대에 부딪혀 3년 만에 붕괴되었다. 아구스틴 1세와 마찬가지로, 막시밀리안 1세도 공화주의자 반대파에 의해 폐위되었고, 이후 처형되었다. 1867년 이후로 멕시코는 군주제를 유지하지 않았다.

오늘날, 일부 멕시코 왕정주의 단체들은 막시밀리안 폰 괴첸-이투르비데 또는 카를로스 펠리페 데 합스부르고를 멕시코 황제로 옹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 정착민들은 1607년에 제임스타운 식민지를 처음으로 건설하였는데, 이는 제임스 6세 겸 1세 국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69년 동안, 13개 식민지는 영국 왕실의 권위에 의해 통치되었다. 13개 미국 식민지는 총 10명의 군주를 거쳤으며, 조지 3세로 끝났다. 미국 독립 전쟁 중에, 식민지들은 1776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했다. 널리 퍼진 잘못된 믿음과는 달리, 독립 전쟁은 사실 반군주제가 아닌 독립을 위해 싸운 전쟁이었다. 실제로, 조지 3세에 대항하여 전쟁에 참전한 많은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군주제 지지자였으며, 조지 3세에 반대했지만 다른 국왕을 원했다. 또한,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전쟁 중에 루이 16세와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후, 운영 방식에 대한 정부 형태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 중 적어도 두 명인 알렉산더 해밀턴과 내덜니얼 고험은 미국이 독립 군주국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미국 군주제를 창설하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고려되었는데, 여기에는 프로이센 계획이 포함되었으며, 이 계획은 프로이센의 헨리 왕자를 미국의 국왕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해밀턴은 미국의 지도자가 선출된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고험은 세습 군주제를 주장했다.[33][34] 미군 장교 루이스 니콜라도 미국이 군주제가 되기를 원했으며, 조지 워싱턴에게 미국의 왕관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모든 시도는 궁극적으로 실패했고, 미국은 공화국으로 건국되었다.

미국 남북 전쟁 동안,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군주제로의 복귀가 고려되었지만,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그 이후로 이러한 생각은 지지도가 낮았지만, 랄프 애덤스 크램, 솔랑주 헤르츠, 리랜드 B. 예거, 마이클 아우스린, 찰스 A. 쿨롬브, 그리고 커티스 야르빈과 같은 몇몇 공인들에 의해 옹호되었다.

1822년 독립을 쟁취한 이후 1889년까지 브라질은 포르투갈 왕실의 한 분파가 군주로서 통치하는 입헌 군주국으로 통치되었다. 이 시대 이전에 브라질은 왕실 식민지였으며, 180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포르투갈 점령 이후 포르투갈 제국의 정부 소재지 역할을 잠시 수행하기도 했다. 브라질 제국의 역사는 짧은 정치적 불안정 시대, 브라질이 승리한 여러 전쟁, 그리고 종교적 관용으로 유명했던 브라질에 매력을 느낀 유대인과 프로테스탄트의 유입을 포함한 이민의 급격한 증가로 특징지어진다. 페드루 2세 치세하의 제국 말기 수십 년은 국내외 모두 상대적 평화의 놀라운 시대와 극적인 경제 확장,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시민권의 확대, 그리고 노예 제도의 점진적인 억제를 가져왔으며, 1888년 최종 폐지로 절정에 달했다. 또한 번영하는 문화와 예술로도 기억된다. 그러나 페드루 2세는 왕정을 유지하는 데 거의 관심이 없었고, 1889년 군사 쿠데타에 의한 왕정 전복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브라질 제1공화국으로 알려진 독재 정권을 수립하게 되었다.[35]

참조

[1] 서적 Webster's Encyclopedic Unabridged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2] 서적 The Standard Library Cyclopedia of Political, Constitutional, Statistical and Forensic Knowledge https://books.google[...]
[3] 웹사이트 Definition of Republic https://www.merriam-[...] 2017-02-18
[4] 웹사이트 The definition of republic http://www.dictionar[...] 2017-02-18
[5] 웹사이트 Sumerian King List https://web.archive.[...] 2012-04-07
[6] 서적 Cultural Anthropology https://books.google[...] McGraw-Hill
[7] 서적 Topics in West African History https://books.google[...] Longman Group
[8] 웹사이트 Enlightenment https://www.history.[...] 2020-02-21
[9] 웹사이트 A beginner's guide to the Age of Enlightenment (article) https://www.khanacad[...] 2020-06-22
[10] 서적 The Wiley-Blackwell Companion to Chinese Religions https://books.google[...] John Wiley & Sons
[11] 서적 Musing with Confucius and Paul: Toward a Chinese Christian Theology https://books.google[...] James Clarke & Company Limited
[12] 서적 Medicine and Society in Late Imperial China: A Study of Physicians in Suzhou, 1600–1850 https://books.google[...] Peter Lang
[13] 학술지 夏、商、周之前还有个虞朝 https://www.ixueshu.[...] 2020-08-20
[14] 웹사이트 远古时期的"古唐朝"?比夏朝还早1600年,如被证实历史或将改写 https://k.sina.cn/ar[...] 2019-11-09
[15] 서적 Encyclopedia of the World's Minorities https://books.google[...] Routledge
[16] 웹사이트 Tennō https://www.britanni[...] 2021-08-12
[17] 서적 The early institutional life of Japan: a study in the reform of 645 A.D. https://archive.org/[...] Shueisha
[18] 웹사이트 最高裁判所判例集 事件番号 平成1(行ツ)126 https://www.courts.g[...] 2020-08-10
[19] 서적 Japanese Politics: Fixed and Floating Worlds
[20]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Japan to 1945 https://books.google[...] Scarecrow Press 2013-01-01
[21] 서적 Kamakura-jidai https://books.google[...] Japan Encyclopedia
[22] 논문 Political Succession in The Tokugawa Bakufu: Abe Masahiro's Rise to Power, 1843–1845
[23] 웹사이트 Meiji Constitution 1889, Japan https://www.britanni[...] 2017-08-21
[24] 웹사이트 The Constitution of Japan https://japan.kantei[...] 2021-07-08
[25] 서적 Japanese Law http://www.oxfordsch[...] Oxford University Press
[26] 논문 Österreichische Aktion: Monarchism, Authoritarianism, and the Unity of the Austrian Conservative Ideological Field during the First Republic https://www.jstor.or[...] 2014
[27] 서적 Clovis chez les historiens https://books.google[...] Librairie Droz
[28] 서적 Popular History of France https://books.google[...] Longman
[29] 웹사이트 Die Deutschnationale Volkspartei (DNVP) https://www.dhm.de/l[...] 2023-05-30
[30] 간행물 Gazzetta Ufficiale n. 134 http://www.gazzettau[...] 1946-06-20
[31] 서적 The Spanish Republic and Civil War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2-09-10
[32] 웹사이트 BBC Mundo - América Latina - los miskitos luchan por su independencia https://www.bbc.com/[...]
[33] 서적 The Papers of Alexander Hamilton, Volume 9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2
[34] 학술지 Prince Henry of Prussia and the Regency of the United States, 1786 https://academic.oup[...] 1911-10
[35] 백과사전 Enciclopédia Barsa Encyclopædia Britannica do Brasil
[36] 웹사이트 Untitled Document http://home1.gte.net[...] 2022-01-11
[37] 웹사이트 Monarchy or Republic? http://www.worldfree[...]
[38] 웹사이트 The Guardian has got it wrong https://www.theguard[...] 2000-12-06
[39] 웹사이트 The Benefits of Monarchy http://reason.com/ar[...] 2013-07-25
[40] 간행물 Spring 1944 Partisan Review
[41] 서적 Liberty or Equality: The Challenge of Our Time The Mises Institute
[42] 웹사이트 Review of Hans-Hermann Hoppe, ''Democracy: The God that Failed'' https://mises.org/mi[...] 2002-03-01 #Spring으로 추정
[43] 웹사이트 Equality http://archive.spect[...] 1943-08-26
[44] 뉴스 Shut up, royal baby haters. Monarchy is awesome. https://www.washingt[...] 2013-07-13
[45] 뉴스 The monarchy: the view from the "Commonwealth realms" https://lordashcroft[...] 2023-05-05
[46] 웹사이트 Support for a Republic https://essentialrep[...] 2023-05-15
[47] 웹사이트 Kwart van de Belgen wil republiek in plaats van monarchie https://www.hln.be/r[...] 2017-09-17
[48] 웹사이트 Majority of Canadians want Queen to apologize for residential schools: survey https://www.ctvnews.[...] 2022-06-01
[49] 웹사이트 What do the Danes think of their Royal Family and what role does the Danish Monarchy have? https://www.yourdani[...] 2022-01-07
[50] 뉴스 74% back emperor as symbol of state defined by current Constitution: Mainichi poll https://mainichi.jp/[...] 2019-05-03
[51] 뉴스 'We need the king!' Lesotho fed up with politicians' mistakes https://www.timesliv[...] 2018-06-11
[52] 뉴스 Government bans Le Monde opinion poll on royalty https://www.france24[...] 2009-03-08
[53] 뉴스 Steun voor de monarchie https://eenvandaag.a[...] 2024-05-06
[54] 뉴스 The monarchy: the view from the "Commonwealth realms" https://lordashcroft[...] 2023-05-05
[55] 웹사이트 Sociometric Survey (Jan 6): 58,6% support the Monarchy https://electomania.[...] 2024-01-06
[56] 웹사이트 TV4 https://www.tv4.se/a[...] 2023
[57] 뉴스 Strength of support for the monarchy being seen this week as political unrest deepens into standoff https://www.thaiexam[...] 2020-10-25
[58] 웹사이트 Tuvaluans vote against Republic http://www.tuvaluisl[...] 2008-04-30
[59] 뉴스 A century after Austrian-Hungarian Empire's fall, some nostalgic for monarchy https://www.efe.com/[...] EFE, S.A. 2018-11-11
[60] 뉴스 Survey shows support for republic https://barbadostoda[...] 2021-12-21
[61] 웹사이트 CMB Pesquisa de conhecimento e opinião pública https://documentclou[...] 2019-09-27
[62] 뉴스 Two-fifths of Croatians want a return to the monarchy https://www.thedubro[...] The Dubrovnik Times 2019-01-26
[63] 뉴스 Průzkum ke 100 rokům od vzniku Československa: kdyby se monarchie nerozpadla, měli bychom se lépe nebo stejně https://www.irozhlas[...] 2018-12-03
[64] 웹사이트 BVA Group - Société d'études et conseil https://staticswww.b[...] BVA 2018-12-03
[65] 웹사이트 Georgia: Five-Year-Old Prince Prepares to Reign https://eurasianet.o[...] Eurasianet 2017-04-17
[66] 웹사이트 8 percent of Germans want a monarchy https://www.iamexpat[...]
[67] 뉴스 Το ΒΗΜΑ onLine - ΠΟΛΙΤΙΚΑ http://tovima.dolnet[...] 2007-04-25
[68] 웹사이트 GYŐZTEK A HABSBURGOK: AZ AZONNALI OLVASÓINAK 46 SZÁZALÉKA ÚJRA KIRÁLYSÁGOT SZERETNE https://azonnali.hu/[...] azonnali.hu 2021-05-17
[69] 웹사이트 Iranians’ Attitudes toward Political Systems: A 2022 Survey Report – Gamaan https://gamaan.org/2[...]
[70] 뉴스 Emanule Filiberto: "Politici? Sono dei parac***"". Occhio, il Savoia vuole fare il re https://www.liberoqu[...]
[71] 뉴스 ¿Qué opinan los mexicanos de la Monarquía? http://www.parametri[...] 2021-06-18
[72] 뉴스 In Nepal, Long-Lived Monarchy Fades From View https://www.nytimes.[...] 2008-04-03
[73] 뉴스 Portugueses optam com clareza pela república https://www.dn.pt/po[...] 2021-09-13
[74] 웹사이트 SONDAJ - Românii spun PAS monarhiei: SURPRIZĂ în topul personalităților apreciate din Casa Regală https://www.stiripes[...] 2018-01-31
[75] 웹사이트 Россияне против монархии https://iz.ru/news/6[...] National Media Group 2017-03-23
[76] 웹사이트 ANKETA Da li Srbija treba da bude monarhija? https://www.blic.rs/[...] 2015-07-27
[77] 웹사이트 황실 복원…찬성 41% vs 반대 23% https://n.news.naver[...] 2024-10-15
[78] 웹사이트 MetroPOLL anketi: "Türkiye'nin nabzı, Atatürk, cumhuriyet ve laiklik diye atıyor" https://medyascope.t[...] 2023-11-01
[79] 웹사이트 Three in five Americans say it would be bad for the U.S. to have a monarchy https://today.yougov[...] YouGov 2023-05-05
[80] 웹사이트 Balzac: A Fight Against Decandence and Materialism http://www.mtholyoke[...] 2017-11-26
[81] 잡지 Looking Behind Éric Rohmer's Cinematic Style https://www.newyorke[...] 2021-03-24
[82] 뉴스 Joan Collins so happy with husband https://www.film-new[...] 2012-01-21
[83] 뉴스 Happy Birthday, America. One Small Suggestion https://www.nytimes.[...] 2017-06-30
[84] 서적 De Regno, to the King of Cyprus
[85] 서적 On the Roman Pontiff
[86] 서적 Politics Drawn from the Very Words of Holy Scripture
[87] 서적 Pourquoi Notre Voix
[88] 서적 A History of the Popes: Vicars of Christ MJF Books
[89] 서적 Modern Italy's Founding Fathers: The Making of a Postwar Republic Bloomsbury Publishing
[90] 서적 Italy After Fascism A Political History 1943–1965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91] 서적 De Monarchia
[92] 서적 Patriarcha
[93] 서적 Thomas Hobbes: Political Ideas in Historical Context MacMillan 1992
[94] 간행물 Ultra-Royalism Revisited
[95] 서적 Søren Kierkegaard: A Biography
[96] 웹사이트 Charles Maurras on the French Revolution · Liberty, Equality, Fraternity https://web.archive.[...] 2019-04-12
[97] 웹사이트 Invitation to Monarchy https://archive.org/[...] 1936
[98] 뉴스 The Guardian has got it wrong https://www.theguard[...] 2000-12-06
[99] 웹사이트 'A Focus of Loyalty Higher Than the State : The monarchy created peace in Central Europe, and its loss precipitated 70 years of conflict.' by Roger Scruton https://www.latimes.[...] 1991-06-16
[100] 서적 Democracy: The God that Failed
[101] 서적 Of Buonaparte, and the Bourbons, and of the Necessity of Rallying Round Our Legitimate Princes
[102] 웹사이트 Monarhia salvează PSD. Tăriceanu şi Bădălău susţin un referendum pe tema monarhiei. Când ar avea loc acesta http://adevarul.ro/n[...] 2017-12-18
[103] 웹사이트 Civil.Ge - Politicians Comment on Constitutional Monarchy Proposal http://www.civil.ge/[...] 2007-10-08
[104] 뉴스 Ten things you didn't know about Tony Abbott https://www.telegrap[...] Telegraph Media Group Limited 2013-09-07
[105] 서적 Abbott's Gambit: The 2013 Australian Federal Election ANU Press
[106] 학술지 Líder de movimento que pediu impeachment de Dilma agora é monarquista https://epoca.globo.[...] 2017-11-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