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배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김득배는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 서북면도순문사 등을 역임했다. 1360년 홍건적 격퇴에 기여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1362년 김용의 모함으로 처형당했다. 정몽주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김득배의 공을 기리는 제문을 지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홍건적의 고려 침공 - 이방실
이방실은 고려 말기의 무신으로, 충목왕을 보좌하며 관직에 등용되었고 공민왕 때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웠으나, 정세운 암살 사건 연루와 권력 암투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 홍건적의 고려 침공 - 안우
안우는 고려 시대 무신으로, 홍건적 격퇴에 공을 세워 추충절의정란공신에 책봉되었으나 김용의 모함으로 정세운을 살해한 뒤 김용에 의해 살해당했다. - 1312년 출생 - 에드워드 3세
에드워드 3세는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으로, 쿠데타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친정 후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백년 전쟁을 일으켜 승리했으나 말년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잉글랜드 의회 발전과 국가 정체성 강화가 이루어졌다. - 1312년 출생 - 이인임
이인임은 고려 말 공민왕, 우왕 대에 권력을 행사하며 홍건적 격퇴, 원나라 토벌 등의 공을 세웠으나, 권문세족으로서 친원 정책과 전횡을 일삼다 최영, 이성계 등에 의해 제거되었다. - 상산 김씨 - 김기웅 (1961년)
김기웅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통일부 차관을 역임한 국민의힘 소속 제22대 국회의원이다. - 상산 김씨 - 김주호 (1933년)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인 김주호는 농림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농림수산부 장관 등 요직을 역임하고 한국사료협회 회장,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부문에서도 활동하였다.
김득배 | |
---|---|
기본 정보 | |
![]() | |
자 | 성가(盛可) |
시호 | 양평(良平) |
본관 | 안동(安東) |
묘소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능평리 |
생애 | |
출생 | 1303년 |
사망 | 1364년 |
주요 활동 | 나주 목사 밀직사사 첨의평리 정당문학 벽상호군 |
가족 | |
배우자 | 정부인(貞夫人) 전주 이씨 |
부 | 김방경(金方慶) |
모 | 안동 권씨 |
형제 | 김선평 김준 김양 김전 |
자녀 | 김사렴(金士廉) |
2. 약력
김득배는 과거에 급제하여 예문검열이 되었다.[1] 충혜왕 복위 전, 심양왕 지지파의 밀명을 받은 조적이 충혜왕을 폐위시키려 할 때 국인(國印)을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1] 이후 전객부령으로 옮겼다.[1]
공민왕 즉위 전 원나라에서 숙위하였고, 1351년 우부대언이 되었으나, 1352년 조일신과 최덕림의 무고로 파면되었다.[1] 1357년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 추밀원직학사, 서북면도순문사 겸 서경윤 · 상만호를 역임하였다.[1] 1358년 추밀원직학사로서 경천흥의 부장이 되었다.[1] 1359년 첨서추밀원사가 되었으며, 기철 일파 제거 후 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동지추밀원사, 도지휘사가 되었다.[1] 1360년 한방언과 함께 문과를 주관하였다.[1]
2. 1. 홍건적 격퇴와 죽음
김득배는 상주 출신으로 호는 난계(蘭溪)이다. 1357년 서북면홍두왜적방어도지휘사로 임명되었고, 이후 추밀원직학사, 서북면도순문사 겸 서경윤, 상만호를 역임하였다.[1] 1359년에는 첨서추밀원사가 되었고, 기철 일파 제거 후 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1]1360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고려군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김득배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홍건적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1] 이 공으로 수충보절정원공신에 책록되고 정당문학이 되었다.[1] 1361년 홍건적이 다시 침입했을 때, 김득배는 도병마사로서 안우 등과 함께 절령책에서 방어 임무를 맡았으나 패배하였다.[1]
1362년 고려군이 개경을 탈환한 후, 총병관이었던 김용은 정세운을 시기하여 안우, 이방실 등에게 정세운을 죽이도록 사주했다.[1] 김득배는 이에 반대하였으나, 결국 정세운은 살해되었다.[1] 이후 김용은 안우, 이방실, 김득배마저 제거하려 하였다.[1] 김득배는 기주에서 변란 소식을 듣고 도망쳐 선영에 숨었으나, 결국 붙잡혀 1363년 3월 1일 상주에서 처형당했다.[1] 그의 나이 51세였다.[1]
3. 고려 16공신
강감찬, 서희, 김부식, 조충 등과 함께 고려 16공신 중 한 명이다. 정당문학(正堂文學) 관직을 역임하였다.[1]
순번 | 이름 | 관직 | 비고 |
---|---|---|---|
1 | 복지겸 | 태사개국 무공공 | |
2 | 신숭겸 | 태사개국 장절공 | |
3 | 홍유 | 태사개국 충렬공 | |
4 | 강감찬 | 태사 문하시중 인헌공 | |
5 | 배현경 | 태사개국 무열공 | |
6 | 서희 | 태사 내사령 장위공 | |
7 | 유금필 | 태사개국 충절공 | |
8 | 윤관 | 수 태보 문하시중 문숙공 | |
9 | 김부식 | 문하시중 문열공 | |
10 | 김취려 | 문하시중 위열공 | |
11 | 조충 | 문하평장사 문정공 | |
12 | 김방경 | 첨의령 충렬공 | |
13 | 김득배 | 정당문학 | |
14 | 이방실 | 추밀원부사 | |
15 | 안우 | 중서평장사 | |
16 | 정몽주 | 수 문하시중 문충공 |
4. 평가
정몽주(鄭夢周)는 김득배가 죽임을 당할 당시 직한림(直翰林)을 맡고 있었는데, 김득배가 주관했던 과거의 문생(門生)이기도 했다. 정몽주는 왕에게 죽은 김득배의 시신을 수습하게 해줄 것을 청하고, 직접 제문을 지어 위로하였다. 제문에서 정몽주는 "아아, 황천(皇天)이시여! 내 죄가 무엇이었습니까? 아아, 황천이시여! 이것은 누구의 잘못입니까? 대개 들으니, 복선화음(福善禍淫)이란 하늘이 하는 일이요 상선벌악(賞善罰惡)이란 사람이 하는 일이라 하였습니다. 하늘과 사람이 비록 다르다 하나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옛 사람의 말씀에 ‘하늘은 이기는 사람을 정해놓으나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기리라(天定勝人, 人衆勝天).’ 하였는데 하늘이 이기는 자를 정해놓는다 함은 과연 어떤 이치이옵고,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이기리라 하심은 또한 어떤 이치이나이까?"라며 김득배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1]
정몽주는 이어 "지난날 홍구(紅寇)가 쳐들어와서 승여(乘輿)가 파월하셨을 적에 국가의 명이 위태롭기가 가느다란 선과 같았습니다. 오로지 공이 먼저 대의(大義)를 외치고 원근(遠近)이 향응하여 몸을 만 번 죽을 계책에 내어서 삼한을 극복하는 업을 이루었습니다. 무릇 지금의 사람들이 이리 편안히 먹고 자는 것이 과연 누구의 덕분입니까? 죄가 있었다면 공(功)으로 덮었어야 옳았습니다. 죄가 공보다 무거웠다면 반드시 그 죄를 승복시킨 연후에 주벌하였어야 옳았습니다. 어찌하여 말이 흘린 땀이 마르기도 전에, 개선의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태산(泰山) 같은 공을 세운 분이 칼날 아래서 피로 물들이게 되었습니까? 이것이 내가 피눈물로 하늘에 묻는 까닭이외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충혼장백(忠魂壯魄)은 천추만세 필시 구천 아래에서 눈물을 삼킬 것입니다. 아아, 명이라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어찌하겠습니까?"라며 김득배의 공을 기리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1]
5. 가족
6. 등장 작품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