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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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랜디 바스는 미국의 전 야구 선수이자 정치인이다. 메이저 리그에서 6시즌 동안 활약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한신 타이거스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뛰면서 1985년과 1986년 2년 연속으로 타격 3관왕을 달성했다. 1985년에는 한신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MVP를 수상했고, 1986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역대 최고 타율(.389)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고향인 로턴 시의 시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오클라호마 주 상원 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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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바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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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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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랜디 윌리엄 바스 |
영어 이름 | Randy William Bass |
출생일 | 1954년 3월 13일 |
출생지 | 오클라호마주 로턴 |
국적 | (미국) |
배우자 | 린다 바스 (1976년 결혼, 이혼) 켈리 바스 (2002년 결혼) |
자녀 | 3명 |
정치 경력 | |
정당 | 미국 민주당 |
직책 | 오클라호마 상원 소수당 대표 |
임기 시작 | 2015년 1월 6일 |
임기 종료 | 2015년 7월 3일 |
이전 | 숀 버라지 |
이후 | 존 스팍스 |
상원 | 오클라호마 |
선거구 | 32번 |
임기 시작 | 2005년 1월 4일 |
임기 종료 | 2019년 1월 3일 |
이전 | 짐 매덕스 |
이후 | 존 몽고메리 |
야구 선수 정보 | |
포지션 | 1루수 |
타석 | 좌타 |
투구 | 우투 |
데뷔 리그 (MLB) | MLB |
데뷔일 (MLB) | 1977년 9월 3일 |
데뷔 팀 (MLB) | 미네소타 트윈스 |
데뷔 리그 (NPB) | NPB |
데뷔일 (NPB) | 1983년 4월 9일 |
데뷔 팀 (NPB) | 한신 타이거스 |
최종 리그 (MLB) | MLB |
최종일 (MLB) | 1982년 6월 7일 |
최종 팀 (MLB) | 텍사스 레인저스 |
최종 리그 (NPB) | NPB |
최종일 (NPB) | 1988년 11월 30일 |
최종 팀 (NPB) | 한신 타이거스 |
MLB 통산 타율 | 0.212 |
MLB 통산 홈런 | 9 |
MLB 통산 타점 | 42 |
NPB 통산 타율 | 0.337 |
NPB 통산 홈런 | 202 |
NPB 통산 타점 | 486 |
소속 팀 | 미네소타 트윈스 (1977년) 캔자스시티 로열스 (1978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1979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0년~1982년) 텍사스 레인저스 (1982년) 한신 타이거스 (1983년~1988년) |
수상 경력 | 2x 일본 트리플 크라운 (1985년, 1986년) 센트럴 리그 MVP (1985년) 일본 시리즈 우승 (1985년) 일본 프로 스포츠 대상 (1985년) |
명예의 전당 |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
유형 | 일본 |
선정일 | 2023년 |
득표율 | 78.6% |
선정 방법 | 전문가 부문 |
2. 메이저 리그 시절
미국 메이저 리그 시절 미네소타 트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텍사스 레인저스를 전전하였다. 장타력을 보고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공을 날려보내는 남자’라고 불렸지만, 유소년기에 발이 복합골절된 적이 있어 전력 질주를 할 수 없었고 수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전 선수로 발탁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빠른 공에 약하다는 약점이 겹쳐 메이저 리그 통산 홈런은 9개에 그쳤다.[21] 워렌 크로마티가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팀 동료였다.
메이저 리그 5개 팀에서 6시즌 동안 주로 벤치에서 대타로 출전, 130경기에서 325 타수 동안 .212의 타율, 9홈런, 42 타점을 기록했다.
2. 1. 선수 경력
미국 메이저 리그 시절 미네소타 트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텍사스 레인저스를 전전하였다. 메이저 리그 시절에는 장타력을 보고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공을 날려보내는 남자’라고 불렸지만, 유소년기에 발이 복합골절된 적이 있어 전력질주를 할 수 없었고 수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전 선수로 발탁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빠른 공에 약하다는 약점이 겹쳐 메이저 리그 통산 홈런은 9개에 그쳤다.[21]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팀 동료로는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워렌 크로마티가 있었다.배스는 로턴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야구와 미식축구에서 올스테이트 선수로 선정되었다. 캔자스 주립 대학교와 오클라호마 대학교로부터 대학 미식축구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1]
미네소타 트윈스는 1972년 MLB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로턴 고등학교 출신 배스를 지명했다.[2]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트윈스와 계약했다.[1] Bass영어는 1977년에 1루수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1루에서 로드 커류에게 막혔고, 1977 시즌 이후 옵션이 소진되었다. 1978년 4월, 트윈스는 배스를 Triple-A 톨레도 머드 헨스에 완전히 매각했고, 머드 헨스는 그를 Triple-A 오마하 로열스에 팔았다.[3] 로열스는 1979년 4월, 라몬트 해리스를 받고 배스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했다.[4] 1980년 8월, 엑스포스는 존 다퀴스토를 받고 배스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했다.[5] 텍사스 레인저스는 1982년 5월 웨이버를 통해 파드리스로부터 배스를 영입했다.[6]
메이저 리그에서 5개 팀을 거치며 6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고, 주로 벤치에서 대타로 출전했다. 130경기에서 325 타수 동안 .212의 타율, 9개의 홈런, 42 타점을 기록했다.
1982년 오프, 하와이에서 개최된 윈터 미팅에서는, 한신 외에 한큐 브레이브스, 야쿠르트 스왈로스 등 NPB의 여러 구단이 바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당시 트윈스의 GM이었던 잭 매키언이 바스의 대리인인 앨런 미야샌드에게 "야쿠르트를 우선으로 해줬으면 한다"고 말해줬다는 점도 있어, 야쿠르트는 비디오를 확인한 후 "일본에서 활약할 수 있다"고 확신하여 계약 직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수비에 문제가 있었고 1루밖에 지킬 수 없었다. 당시 야쿠르트의 1루에는 오스기 가쓰오, 스기우라 쓰요시라는 강타자가 두 명이나 있어, 당시 감독인 다케가미 시로가 난색을 표하며 결국 오스기, 스기우라를 우선시하게 되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야쿠르트가 철수하고, 마지막에는 한신과 한큐 사이에서 획득 경쟁이 벌어졌고, 한신의 후지에 기요시 편성 부장과 한큐의 야가타 가쓰히로 영업 부장이 계약 금액을 경쟁했지만, 부머 웰스에 주목한 한큐는 손을 뗐다.
2. 2. 활약상
미국 메이저 리그 시절에는 미네소타 트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텍사스 레인저스를 전전하였다. 메이저 리그 시절에는 장타력을 보고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공을 날려보내는 남자’라고 불렸지만, 유소년기에 발이 복합골절된 적이 있어 전력질주를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수비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주전 선수로 발탁된 적은 없었다.[1] 빠른 공에 약하다는 약점이 겹쳐져 메이저 리그 통산 홈런은 9개에 그쳤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팀 동료로는 후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활약한 워렌 크로마티가 있었다.1972년 MLB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되었고,[2]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트윈스와 계약했다.[1] 1977년에 1루수로 메이저 리그에 데뷔했으나, 로드 커류에게 밀려 1977 시즌 이후 옵션이 소진되었다. 1978년 4월, 트윈스는 배스를 Triple-A 톨레도 머드 헨스에 매각했고, 머드 헨스는 그를 오마하 로열스에 팔았다.[3] 1979년 4월, 로열스는 라몬트 해리스를 받고 배스를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했다.[4] 1980년 8월, 엑스포스는 존 다퀴스토를 받고 배스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트레이드했다.[5] 1982년 5월, 텍사스 레인저스는 웨이버를 통해 파드리스로부터 배스를 영입했다.[6]
메이저 리그에서 5개 팀을 거치며 6시즌 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고, 주로 벤치에서 대타로 출전했다. 130경기에서 325 타수 동안 .212의 타율, 9개의 홈런, 42 타점을 기록했다.
1982년 오프 시즌, 하와이에서 개최된 윈터 미팅에서는 한신 외에 한큐 브레이브스, 야쿠르트 스왈로스 등 일본프로야구(NPB) 여러 구단이 바스에게 관심을 보였다.
3. 일본 프로 야구 시절
1985년, 오 사다하루가 세운 시즌 55홈런 기록에 도전했지만, 54홈런으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들은 바스가 기록을 깨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사구를 던지기도 했다.[7][8]
1986년에는 7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며 오 사다하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에가와 스구루와의 승부에서 홈런을 친 것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같은 해, 바스는 타율 .389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30] 2년 연속 타격 3관왕을 차지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31]
1987년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츠와의 3관왕 대결이 주목받았지만, 두 선수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1988년에는 아들의 병 때문에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시즌 도중에 팀에서 방출되었다.[33]
3. 1. 한신 타이거스 입단

Randy Bass영어는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자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한신 타이거스와 계약을 맺고, 팀의 주전 1루수로 활약했다.[22] 배스는 종종 타이거스의 운명을 혼자서 바꿔놓은 선수로 평가받으며, 결국 팀은 1985년에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배스는 일본 투구에 빠르게 적응하여 1983년 첫 시즌에 35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몇 시즌 동안 타이거스의 간판 슬러거가 되었다. 그는 4년 연속 리그 타격왕을 차지했다. 1986년에는 일본 선수 최초로 타율 4할에 근접하며, .389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이 기록은 이치로 스즈키가 1994년과 2000년에 도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배스는 2년 연속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1985년과 1986년).
1985년에는 오 사다하루의 한 시즌 55홈런 기록에 도전했지만, 54홈런으로 시즌을 마쳤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당시 오 사다하루가 감독으로 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는 배스가 기록을 깨거나 동률을 이루는 것을 막기 위해 고의 사구를 네 번이나 던졌다.[7][8]
한신 입단 초기에는 후지타 히라가 1루수로 많이 기용되었기 때문에 우익수로 수비를 했지만, 전력 질주를 할 수 없는 점과 후지타의 나이로 인한 쇠퇴로 인해 나중에 1루수로 고정되었다. 오픈전에서 갑작스럽게 사구를 맞아 골절된 영향으로 공식 첫 출장은 개막 5번째 경기가 되었고, 첫 타석에서 대타로 나와 삼진으로 물러났으며, 이후에도 안타를 치지 못해 개막 후 15타석 무안타라는 당시 구단 용병 최저 기록을 세우며 부진한 출발을 보였다.[23] 초반에는 타격 부진에 시달렸지만, 5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고라쿠엔 구장)에서 첫 안타를 기록했고, 5월 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진구)에서는 첫 홈런을 기록하며, 최종적으로 이 해의 타격 성적은 타율 .288, 35홈런, 83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그 해 시즌 후반에는 25경기 연속 안타도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에 히야마 신지로가 28경기로 갱신하기 전까지 구단 기록이었다.
1983년에는, 바스가 시즌 도중에 해고될 가능성이 있었다. 전년도 후반에 팀이 대약진했기 때문에 한신 팬들은 우승에 대한 기대를 품었지만, 4월을 2위로 마쳤지만 5월 중순에는 3승 10패로 크게 부진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바스가 부진의 원인이라는 비판도 많았고, 동기 입단으로 미트가 좋은 스티브 스트로터가 NPB의 야구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가 높았다. 그런 가운데, 선발 투수진이 부족한 구단은 투수 리차드 올슨을 영입하려 했다. 당시 규정으로는 외국인 선수는 1팀 3명(1군 동시 등록・출장은 2명)까지밖에 계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미 김 아렌, 스트로터, 바스 3명의 야수와 계약한 구단은 이 중 1명을 해고해야 했다. 아렌은 잔류했지만, 스트로터와 바스 중 선택해야 했는데, 구단은 파워 외에 태도・노력・인격을 평가하여 바스를 잔류시켰다. 그 기대대로 바스는 후반전부터 급격하게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1984년에는 타율 .326을 기록했지만, 27홈런으로 전년보다 홈런 수가 감소하여 다시 해고 위기에 몰렸지만, 이 해 오프에 감독으로 취임한 요시다 요시오는 바스의 장타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구단에 잔류시키도록 요청했고, 해고를 면했다.
1985년에는 전 다이요 호에루즈의 나가사키 케이지를 본보기로 한 미트 배팅을 혼자 터득했다. 카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후미와 강력한 클린업 트리오를 형성했다. 같은 해 4월 17일 대 자이언츠전, 마키하라 히로미로부터 백스크린 3연타 중 1개가 바스의 이 해 첫 홈런이었다.[25] 이 이후 바스는 파죽지세로 맹타를 휘둘렀고,[26] 최종적으로 타율 .350, 54홈런, 134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과 시즌 MVP를 획득했고, 팀의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시즌 내내 3번 타자는 바스, 카케후는 4번 타자로 타순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바스를 고의 사구로 거르면 결국 4번 타자인 카케후와 승부해야 했기 때문에 승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스가 승부할 수 있었던 것이 트리플 크라운을 획득할 수 있는 성적으로 이어졌다고도 한다.[27]
3. 2. 1983년 ~ 1984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바스는 후지타 다이라가 1루수로 기용되면서 우익수로 뛰었지만, 전력 질주가 어렵고 후지타의 체력이 쇠약해지면서 1루수로 고정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컨디션 난조로 출발이 늦었지만, 타율 2할 8푼 8리, 35홈런, 82타점을 기록하며 장타력을 과시했다. 같은 해 시즌 종반에는 25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했는데, 이는 2001년 히야마 신지로가 28경기로 경신하기 전까지 구단 기록이었다.[82]1983년, 바스는 방출 위기에 놓였다. 팀의 부진으로 바스가 원흉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함께 입단한 스티브 스트로터가 일본 야구에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신은 투수 리처드 올센을 영입하기 위해 외국인 선수 정원 문제로 스트로터와 바스 중 한 명을 방출해야 했다. 구단은 바스의 파워, 태도, 노력, 인격을 높이 평가하여 그를 잔류시켰고, 바스는 곧바로 컨디션을 회복했다.[82]
1984년 시즌 후에도 수비 불안으로 방출될 뻔했지만, 요시다 요시오 감독이 구단에 바스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잔류하게 되었다.[82]
3. 3. 1985년: 3관왕, 리그 우승, 일본 시리즈 우승
ランディ・バース일본어는 1985년에 가케후 마사유키, 오카다 아키노부와 강력한 클린업 타선을 형성했다. 4월 17일 요미우리전에서 마키하라 히로미로부터 ‘백 스크린 3연발’중 1개가 바스의 시즌 제1호 홈런이었다.[25] 이 해에 타율 0.350, 54홈런, 134타점으로 타격 부문 3관왕을 달성했고, 한신의 21년 만에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센트럴 리그 최초로 외국인 선수 홈런왕이 되었다.같은 미네소타 트윈스 출신 찰리 매뉴엘이 보유하고 있던 외국인 등록 선수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 48개와 타이 기록에서부터 54호까지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날짜 | 상대 투수 | 구장 | 내용 |
---|---|---|---|
10월 8일 | 다카노 히카루 | 한신 고시엔 구장 | 우익 방향 48호 2점 홈런 |
10월 12일 | 오노 유타카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백 스크린 결승 49호 솔로 홈런 (외국인 기록 경신) |
10월 14일 | 가와구치 가즈히사 | 히로시마 시민 구장 | 좌익 방향 50호 3점 홈런, 고바야시 세이지로부터 51호 솔로 홈런 |
10월 16일 | 아라키 다이스케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우익 방향 52호 2점 홈런 (21년 만의 우승 결정) |
10월 17일 | 다카노 히카루 | 메이지 진구 야구장 | 백 스크린 왼쪽 53호 솔로 홈런 |
10월 20일 | 고마쓰 다쓰오 | 나고야 구장 | 좌측 폴대 54호 2점 홈런 |
이 해에 오 사다하루가 1964년에 기록한 시즌 55홈런을 경신할지 주목됐지만, 54개를 친 단계에서 남은 경기 수는 2경기였다. 모두 요미우리전이며 그 감독은 오 사다하루였다. 첫 경기(10월 22일,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선발 에가와 스구루는 3 타석 스트라이크로 승부하여 1안타로 막았지만, 다른 투수들은 사실상의 고의 사구를 주며 바스와의 대결을 피했다. 최종전(24일, 고라쿠엔 구장)의 1, 2, 4, 5타석은 스트레이트 볼넷, 세 번째 타석은 선발 사이토 마사키가 방망이가 닿는 곳으로 던진 초구를 중견수 앞 단타를 때려내 1타수 1안타 볼넷 4개로 기록은 달성하지 못했다. 다음날 호치 신문은 ‘바스 기록 달성 실패’라는 헤드라인과 “자신은 바스에게 고의 사구를 지시하지 않았다”라는 오 사다하루의 발언도 함께 게재됐다. 당시 요미우리 소속 외국인 투수 키스 콤스톡은 “바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1구당 벌금 1000USD가 부과됐었다”라고 밝혔는데 그 지시를 내린 것은 투수 코치로 밝혀졌다.[83][84] 바스는 최종전을 앞두고 “기록 달성은 무리일 것이며 나는 외국인이니까”라고 말했다.
이 고의 사구 공격의 영향으로 바스의 출루율이 상승했고, 전날까지 9리 차이로 1위였던 요시무라 사다아키를 마지막 타석에서 0.0005 차로 따돌리고 바스는 최고 출루율 타이틀도 석권하였지만 요미우리 벤치는 이 기록을 잊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스는 당시 타격 부문 타이틀이었던 최다 승리 타점과 함께 타격 부문 5관왕을 달성했다. 바스는 기록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를 펼쳤던 에가와를 높이 평가하고 “현재 일본 프로 야구 투수 가운데 최고의 투수다. 메이저 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라고 말했다.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센트럴 리그의 명유격수였던 요시다 요시오 대 히로오카 다쓰로의 숙명적인 대결을 펼쳤는데 바스는 1차전부터 3차전까지 3경기 연속 홈런[85]을 기록해 2차전에는 수비에서도 역사적인 파인플레이 보여주는 등 공수에 걸친 큰 활약으로 팀을 이끌었다. 한신을 구단 창단 이래 최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으며 바스는 정규 시즌과 일본 시리즈의 양쪽 모두에서 MVP를 석권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3. 4. 1986년: 2년 연속 3관왕, 일본 신기록
새 스트라이크 존이 도입된 1986년 4월, 개막 경기인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전에서는 5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지만, 8경기 만에 타율 3할대에 진입했다. 5월에는 6경기 연속 멀티 안타를 기록했고, 5월 하순부터 6월에 걸쳐 16타수 12안타로 타율 .369를 기록, 5월 31일에는 그 해 처음으로 수위 타자가 되었다. 이후 타율을 더 끌어올려 7월 2일 다이요전에서 5타수 4안타를 기록하며 타율을 .402로 만들었다.7월 8일에 .407을 기록하며 최고점에 도달했지만, 주니치의 고마쓰 다쓰오에게 4타수 무안타로 막히며 타율이 4할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25타수 무안타라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376까지 떨어졌으나, 8월 12일에 .399까지 회복했다. 8월 이후 각 경기 종료 시점에서 타율 4할을 넘지는 못했지만, .390 아래로 떨어진 적도 없었다. 9월 3일과 19일에는 .389를 기록했지만, 9월 종료 시점에는 .394였다. 10월에도 4할 타율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으나, 7일 다이요전과 이어지는 히로시마전에서 무안타를 기록하며 .388로 떨어졌다. 14일 최종전인 다이요전에서 2타수 2안타를 기록, .389로 타율 부문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86] 이 외에도 47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며 롯데 오리온스의 오치아이 히로미쓰와 함께 2년 연속 타격 3관왕을 달성했다.
바스는 규정 타석 도달 이후 하리모토 이사오가 보유하던 시즌 타율 .383의 일본 기록을 넘으면 일본 투수들이 더 이상 승부를 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독에게 직접 호소해 이후 경기 출전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국 타율이 그 이하를 기록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마지막까지 계속 타석에 섰다.
32세의 바스는 일본 구장에서는 좌측 방향으로 쳐도 홈런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익수 방향으로 홈런을 양산했다. 그 해 6월 26일에는 오 사다하루와 나란히 7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일본 타이 기록을 달성했다. 6월 18일에는 다카노 히카루에게서 좌익수 방향으로 16호 솔로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19일 아라키 다이스케에게서 우익수 방향으로 17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0일 가쿠 겐지에게서 좌익 폴대 쪽으로 18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1일 스즈키 다카마사에게서 좌익수 방향으로 19호 솔로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2일 히라누마 사다하루에게서 몸쪽 포크볼을 좌익수 방향으로 20호 2점 홈런(한신 고시엔 구장), 24일 신인 구와타 마스미가 던진 시속 114km/h의 한가운데 높은 커브를 백 스크린 우측 방향으로 21호 2점 홈런(고라쿠엔 구장)을 때려냈다.
일본 타이 기록을 달성한 26일, 5대 5 상황에서 맞은 8회초에 120개 이상의 공을 던진 에가와 스구루를 상대로 타석 2구째에 날아온 시속 136km/h의 한가운데 높은 몸쪽 직구를 고라쿠엔 구장 우익 장외에 있는 낚시용품점 지붕까지 날려보냈다. 이 홈런은 비거리가 약 150m에 달하는 결승 22호 솔로 홈런(통산 138호)이었다. 이 때는 기록을 달성한 바스 뿐만 아니라, 이 경기에서 바스에게 던진 12구 중 11구를 직구로 던져 정면승부를 걸었던 에가와에게도 찬사가 쏟아졌다. 당시 에가와 외에도 바스에게 정면 승부로 도전장을 내밀었던 투수로는 히로시마의 쓰다 쓰네미가 있는데, 그는 바스를 상대로 모두 시속 150km/h가 넘는 스트레이트로만 승부를 걸어 3구 삼진으로 잡은 적도 있었다. 그 경기를 마친 후 쓰다에 대해 바스는 “쓰다는 미쳤다”라고 말했다.
그 밖에도 5월 30일에 열린 경기의 6회와 8회에 세키네 히로후미에게서 홈런을 때려내는가 하면 다음날 6월 1일에는 1회와 4회에 가케하타 미쓰노리에게서 홈런을 때려내며 이틀에 걸쳐 4타수 연속 홈런, 13경기 연속 타점(앞에서 말한 7경기 연속 홈런부터 시작해서 7월 4일까지), 시즌 장타율 7할 7푼 7리(당시[87][88]) 등 일본 기록을 연거푸 달성했다. OPS도 오 사다하루의 1.293(1974년)에 다음으로 역대 2위가 되는 1.258을 기록했다. 그러나 MVP에는 리그 우승 팀인 히로시마의 기타벳푸 마나부에게 내줘야 했다. 팀의 우승에 기여한데다 투수 부문 3관왕을 달성한 기타벳푸의 MVP 수상은 타당하다는 의견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바스가 MVP를 놓친 데에는 2년 연속으로 외국인 선수에게 MVP를 수여하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관계자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이 작용했다는 견해도 있다.
3. 5. 1987년 ~ 1988년
Randy Bass영어는 1987년에는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주니치 드래곤즈로 트레이드 이적하여 "트리플 크라운 대결"로 화제가 되었지만, 두 선수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아 타이틀 획득에 실패했다. 또한, 이전 해부터 소문이 있던 요시다 요시오 감독과의 불화가 더욱 깊어졌다. 타이틀을 얻지 못하고 팀 성적도 부진했던 이 해, 잡지 인터뷰에서 요시다 감독을 비판하여 구단으로부터 벌금을 부과받는 사건도 있었지만, 이 벌금은 결국 흐지부지되어 실제로 내지는 않았다. 한편, 인터뷰를 한 로버트 와이팅은 책임을 느끼고 바스에게 같은 금액을 지불했다.1988년, 수두증을 앓고 있는 장남 때문에 구단과 갈등을 빚었고, 시즌 중인 6월 27일에 해고되었다. 계약 상으로는 가족이 아플 경우 구단이 의료비를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의료비를 부담하는 것을 꺼려 해고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퇴단 후 발매된 자서전 '바스의 일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바스가 퇴단한 후 7월 19일, 당시 한신 구단 대표였던 후루야 신고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투신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바스의 퇴단 문제를 둘러싸고 구단과 바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냐는 보도가 나왔다.[33] 이 사건은 나중에 구단 측이 합의금을 지불하면서 해결되었다. 아직 34세로 몸 상태도 나빠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MLB 3개 구단에서 제안이 오거나, 야쿠르트 스왈로스나 주니치 드래곤즈, 후쿠오카로 막 이전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입단이 자주 보도되었지만, 결국 이 해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쳤다.[34]
1988년 당시 감독이었던 무라야마 미노루와 당시 베테랑 선수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바스의 일기'(슈에이샤 문고)에서는 "벌칙으로 힘든 달리기를 한다고 우리가 좋아지는가.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다"라며 근성론적인 지도 방법에 의문을 제기했고, 무라야마가 자신의 젊은 시절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결혼식 스피치도 "전혀 상황에 맞지 않는 바보 같은 스피치였다"라고 비판했다. 경기 후에는 선수회 미팅에서 "어차피 감독은 내년에 해고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생생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35] 한편, 2023년 시점에서는 한신 타이거스나 관계자에 대한 나쁜 감정은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는 코멘트를 하고 있으며, 불화가 있었던 요시다에 대해서도 "훌륭한 지휘"였다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36]
4. 플레이 스타일
바스는 무릎이 좋지 않아 경기 중에 보조기를 착용했고, 발이 빠르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마유미 아키노부와 이케다 치카오키는 주루는 능숙했다고 회상하고 있다.[51] 바스는 장기 원정에 대해 "그 시기에는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원래 혼자 익숙해져 있었다(그래서 괜찮았다)"라고 말하며, 다른 선수들보다 장기 원정을 (비교적) 덜 힘들어했다.[52]
4. 1. 타격
1986년, 새 스트라이크 존이 도입된 첫해에 랜디 바스는 뛰어난 타격 성적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했지만, 5월부터 타격감을 회복하여 7월 2일에는 타율을 4할 2리까지 끌어올렸다.[86] 7월 8일에는 4할 7리를 기록하며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슬럼프를 겪으며 3할 7푼 6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8월에 다시 회복하여 3할 9푼 9리까지 타율을 끌어올렸고, 9월에는 3할 9푼 4리를 기록했다. 10월 7일에는 무안타를 기록하며 3할 8푼 8리까지 떨어졌지만, 14일 최종전에서 2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최종 타율 3할 8푼 9리로 시즌을 마감, 일본 프로 야구 기록을 경신했다.[86]47홈런, 109타점을 함께 기록하며 오치아이 히로미쓰와 2년 연속 타격 3관왕을 달성했다. 시즌 중에는 오 사다하루와 나란히 7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일본 타이 기록을 세웠다. 특히 6월 26일에는 에가와 스구루를 상대로 비거리 150m의 결승 솔로 홈런을 쳐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86]
바스는 하리모토 이사오가 보유했던 시즌 타율 기록(3할 8푼 3리)을 넘어설 경우 일본 투수들이 승부를 걸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경기 출전을 포기하려 했으나, 결국 타율이 그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었고 마지막까지 타석에 섰다.
5월 30일과 6월 1일에는 이틀에 걸쳐 4타수 연속 홈런, 13경기 연속 타점, 시즌 장타율 7할 7푼 7리 등 일본 기록을 연이어 달성했다.[87][88] OPS는 1.258로 오 사다하루의 1.293(1974년)에 이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바스가 뛰어난 성적을 거둔 요인으로는 상대하기 어려운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일본에 적었다는 점과 일본 야구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 가케후 마사유키에게서 전수받은 흘려치기 타법은 그의 타격 폭을 넓혀주었다.
4. 2. 수비
바스는 무릎이 좋지 않아 플레이 중에 보조기를 착용했고, 발이 빠르다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주루는 능숙했다고 마유미 아키노부와 이케다 치카오키가 회상하고 있다.[51] 바스는 장기 원정에 대해 "그 시기에는 가족은 본국으로 돌아가 있기 때문에, 원래 혼자 익숙해져 있었다(그래서 괜찮았다)"라고 말하며, 다른 선수들보다 장기 원정을 (비교적) 덜 힘들어했다.[52]5. 은퇴 후
1988년 은퇴 이후 바스는 고향에서 야구를 장려하는 지역 사회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문화 사절로서 일본 방문을 계속했다. 귀국 후에는 농장 경영과 함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카우트로 활동했고,[37]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로턴 고등학교에서 여자 골프 코치를 맡았다.[38] 2004년 오클라호마 상원 의원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5. 1. 미국
은퇴 이후 바스는 고향에서 야구를 장려하는 지역 사회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문화 사절로서 일본 방문을 계속했다. 바스는 2004년 오클라호마 상원 의원으로 민주당 소속으로 선출되었다. 2006년 총선에서 에드 피터슨을 꺾고 재선에 성공했으며, 2010년과 2014년에 무투표 또는 무경쟁으로 재선되었다. 상원에서 그는 예산 소위원회 천연 자원 및 규제 서비스의 공동 의원을 역임했다. 또한 예산, 퇴직 및 보험, 일반 정부 및 사법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90][91]2014년 4월 10일, 바스는 퇴임하는 숀 버리지의 뒤를 이어 오클라호마 상원에서 민주당 소수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당초 12명의 구성원들은 2월에 존 스파크스를 새로운 소수 지도자로 지명했지만 결정을 번복했다. 이러한 결정의 이유는 의원 총회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입법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아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파크스가 민주당이 일반적으로 반대하는 석유 및 가스 산업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를 지지하는 글을 ''더 저널 레코드''에 기고했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었다.[14] 바스는 2014년 중간 선거 직후 소수 지도자가 되었으나,[15] 2015년 7월에 8석으로 줄어든 의원 총회는 그를 스파크스로 교체했다.[16]
바스는 임기 제한으로 인해 2018년 재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17] 귀국 후에는 본업인 농장 경영과 함께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카우트를 했다고 한다.[37] 또한 2000년부터 2003년까지는 로턴 고등학교에서 여자 골프 코치를 맡았다.[38]
6. 에피소드
일본에서 귀국한 이후 바스는 본업인 목장 경영 외에도 이벤트 등으로 일본을 가끔 방문했다. 프로 야구 마스터스 리그 팀인 ‘오사카 로만스’의 선수로 등록되었으며, 현역 시절 라이벌이었던 오노 유타카와 대결하여 팬들을 흥분시켰지만, 오노의 140km/h가 넘는 직구에 삼진을 당했다. 산토리 몰츠(몰츠 구단) 등 여러 CF에 출연했고, 도쿄 스타 은행 오사카 지점 명예지점장으로도 활동했다.[12] 2007년에는 《24시간 TV ‘사랑은 지구를 구한다’》에 타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한신 대 주니치전 시구식에 시구자로 등장했고, TV 해설자로도 활동했다. 2009년에는 나라현에서 열린 ‘헤이조 천도 1300주년 축제’를 지원하기 위해 나라 현에 100만엔을 기부했는데, 이는 바스가 한신 선수 시절부터 이미지 캐릭터를 담당했던 ‘닛포리 화공’의 본사가 가시바시에 있어 ‘나라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미국에서는 고향인 로턴 시의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2004년에는 민주당 공천을 받아 오클라호마 주의회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2006년에는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 내에서는 야구 선수로서의 지명도는 높지 않지만, 지역구에서는 봉사단체나 경찰, 소방 관계자 등으로부터 지지를 얻어 정치가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2년에는 TBS 방송 《퀴즈☆탤런트 명감》에 출연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 가케후 마사유키와 함께 홈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도전 과제에 진지하게 임하는 바스의 모습을 보고 출연자들은 그의 신사적인 성격에 감탄했다.
바스는 1985년 일본 시리즈 우승 후 축제에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커널 샌더스 모형이 도톤보리 강에 던져진 사건으로 인해 "커널의 저주"로 유명하다.[12] 이 사건은 팀이 이후 10년 동안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원인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2번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고 1985년 한신 타이거스의 우승에 기여한 바스는 당시 팬들에게 "신"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현재에도 "역대 최강의 용병"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다. 2018년에는 TV 아사히 계열에서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프로 야구 팬과 전 프로 야구 선수들의 앙케이트 결과, 최강 용병 외국인 랭킹 1위에 선정되었다.[62]
한신은 MLB에서 실적이 있는 좌타 외국인 야수와 계약하거나 오픈전 등에서 외국인 야수가 활약하는 것을 언론이 보도할 때, 선수에게 기대를 품게 하는 의미를 담아 "'''버스의 재림'''" 등의 제목으로 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퇴단하는 케이스가 많아[63][64][65][66][67] 데일리 스포츠의 기자 트레버 레이추라는 " '버스의 재림'이라는 말, 이제 슬슬 금지어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2020년에 기사화하며, 용병을 가볍게 버스의 재림이라고 부르는 풍조에 의문을 제기했다.[68]
6. 1. 이름 표기 문제
일본에서 바스의 성은 일반적으로 バス|바스일본어로 표기되지만, バース|바스|발음 로 알려져 있다. 한신 타이거스는 선수 시절 바스가 활동하는 동안 버스 노선(한신 버스)을 소유한 한신 전기 철도 주식회사가 팀의 기업 소유주였기 때문에 이러한 변경을 요청했다. "버스" 역시 일본어에서 バス|바스일본어로 표기되기 때문에, 타이거스 구단 측은 일본 신문에서 "한신 버스 파죽지세"(바스가 연속 안타를 쳤을 경우), "한신 버스 폭발"(홈런을 쳤을 경우), "한신 버스 침몰"(슬럼프에 빠졌을 경우)과 같은 헤드라인이 한신 버스의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13]6. 2. 수염
바스의 수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1986년 캠프 중 2월 11일, 질레트사의 면도기 광고에서 수염을 깎은 모습을 공개하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55][56] 이 광고는 이틀 연속 신문에 게재되었으며, 첫날은 "내일의 나를 봐줘"라는 캡션과 함께 수염을 깎기 전 사진, 다음 날은 수염을 깎은 후의 사진이었다. (티저 광고) 텔레비전 광고도 방송되었으며, "나는 수염을 못 깎아. 절대로 못 깎아"라고 수염을 깎기 전에 코멘트한 후, 수염을 깎고 "면도칼의 삼관왕"이라고 선전했다.이 "수염 삭발료"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1억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용한 질레트사의 경상이익은 바스 효과로 그 약 100배인 약 100억엔이 되었다.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왔을 때는 이미 수염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1983년 처음 일본에 왔을 때는 턱수염이 없는 등, 후년에 익숙해진 풍모와는 약간 달랐다.
6. 3. 좋아하는 음식
랜디 바스는 일본 야구에 적응하기 위해 일본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일본 음식에도 관심을 가졌다. 현역 은퇴 후에도 일본 음식을 즐겨 먹었는데[57], 특히 고베 소고기를 매우 좋아했다. 미국산 소고기의 대일 수출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인이 소고기에 쏟는 생각과 열정을 나만큼 이해하는 정치인은 미국에 없다", "일본인이 수입에 민감해지는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일본의 입장을 옹호했다. 또한 고시엔 구장 내의 우동도 즐겨 먹었다.6. 4. 사생활
랜디 바스는 한신에서 퇴단한 후 이혼했지만, 이후 재혼하여 자녀 한 명을 두었다. 어릴 때 중병을 앓았던 장남은 결혼하여 굳이어에 근무하고 있으며, 슬하에 3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92]8살 때 미국의 경마장에서 경주마를 돌보는 일을 한 경험이 있으며,[92] 일본에서는 번역가 히라오 게이고의 권유로 샤다이 사라브레드 클럽(샤다이 레이스 호스)의 마주로 투자하기도 했다.[92] 2011년에는 미국의 로컬 경마에 출주하는 경주마를 5마리 소유한 마주가 되었다.[93]
바스는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아내인 린다와는 두 자녀를 두었고, 두 번째 아내인 켈리와는 한 자녀를 두었다.
7. 수상 및 타이틀 경력
연도 | 수상 내용 |
---|---|
1985년 | 타격 부문 3관왕 |
수위 타자 | |
홈런왕 | |
타점왕 | |
최고 출루율 | |
최다 승리 타점 | |
최다 안타[3] | |
MVP | |
1985년 ~ 1987년 | 베스트 나인 (3회) |
1985년 | 일본 시리즈 MVP (1985년) |
1985년 4월, 1986년 6월 | 월간 MVP (2회) |
1986년 | 타격 부문 3관왕 |
수위 타자 | |
홈런왕 | |
타점왕 | |
최고 출루율 | |
최다 안타[3] | |
1985년, 1986년, 1987년 | 올스타전 출장 (3회) |
- 첫 출장: 1983년 4월 16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2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 8회초에 1루수로 출장
- 첫 선발 출장: 1983년 4월 24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2차전 (나고야 구장), 3번・좌익수로 선발 출장
- 첫 타점: 동일, 6회초에 미사와 아츠시로부터
- 첫 안타: 1983년 5월 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5차전 (고라쿠엔 구장), 6회초에 요시타케 하루키의 대타로 출장, 에가와 스구루로부터 적시타
- 첫 홈런: 1983년 5월 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2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6회초에 카지마 켄이치로부터 솔로 홈런
- 100홈런: 1985년 8월 24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17차전 (오카야마 현 야구장), 4회말에 아라키 다이스케로부터 솔로 홈런 ※역대 142번째
- 150홈런: 1986년 8월 19일,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와의 19차전 (요코하마 스타디움), 8회초에 엔도 카즈히코로부터 중월 솔로 홈런 ※역대 82번째
- 200홈런: 1987년 10월 3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25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 7회초에 아라키 다이스케로부터 2점 홈런 ※역대 54번째 (외국인 선수 7번째)
- 트리플 크라운: 2회 (1985년, 1986년) ※역대 6번째, 센트럴 리그 20세기 마지막 달성자
- 시즌 타율 .389: 1986년 ※일본 기록
- 97경기에서 시즌 40홈런 달성: 1985년 ※역대 최속
- 25경기 연속 안타: 1983년 9월 6일 - 1983년 10월 15일
- 5경기 연속 홈런: 1985년 4월 17일 - 1985년 4월 22일
- 4타석 연속 홈런: 1986년 5월 31일 - 1986년 6월 1일 ※역대 12번째 13번째, 역대 2위
- 4타수 연속 홈런: 동일 ※역대 10번째, 역대 2위
- 13경기 연속 타점: 1986년 6월 18일 - 1986년 7월 4일 ※일본 기록
- 시즌 134타점: 1985년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동률인 좌타자 일본 기록
- 시즌 22 결승 타점: 1985년 ※일본 기록
- 4경기 연속 결승 타점: 1985년 10월 9일 - 1985년 10월 14일
- 고시엔 구장 5경기 연속 홈런: 1986년 ※1960년 후지모토 카츠미, 2023년 마키 슈고와 동률인 일본 기록
- 7경기 연속 홈런: 1986년 6월 18일 - 1986년 6월 26일 ※오 사다하루에 이어 역대 2번째, 일본 타이기록
1986년 7경기 연속 홈런 | ||||||
---|---|---|---|---|---|---|
# | 날짜 | 상대팀 | 차전 | 투수 | 이닝 | 구장 |
1 | 6월 18일 | 야쿠르트 | 11 | 타카노 히카루 | 1회 | 고시엔 구장 |
2 | 6월 19일 | 야쿠르트 | 12 | 아라키 다이스케 | 1회 | 고시엔 구장 |
3 | 6월 20일 | 주니치 | 13 | 곽원지 | 3회 | 고시엔 구장 |
4 | 6월 21일 | 주니치 | 14 | 스즈키 타카마사 | 2회 | 고시엔 구장 |
5 | 6월 22일 | 주니치 | 15 | 히라누마 사다하루 | 3회 | 고시엔 구장 |
6 | 6월 24일 | 요미우리 | 11 | 쿠와타 마스미 | 4회 | 고라쿠엔 구장 |
7 | 6월 26일 | 요미우리 | 12 | 에가와 스구루 | 8회 | 고라쿠엔 구장 |
참조
[1]
뉴스
New Royal Bass Swings Bat To Heat Up Chilly Weather
https://www.newspape[...]
2024-10-06
[2]
뉴스
Twins draft hurler first, 3 from state
https://www.newspape[...]
2024-10-06
[3]
뉴스
Bass finding Hurdles everywhere in majors
https://www.newspape[...]
2024-10-06
[4]
뉴스
Royals' Bass Traded for Outfielder
https://www.newspape[...]
2024-10-07
[5]
웹사이트
THE HOTTEST AMERICAN IMPORT IN JAPAN
https://vault.si.com[...]
2023-07-09
[6]
뉴스
Rangers get Randy Bass
https://www.newspape[...]
2024-10-07
[7]
웹사이트
Equaling Oh's HR record proved difficult
https://www.japantim[...]
2024-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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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阪神・バース氏 大谷だけじゃない「メジャーに行っていない選手もレベルが高い」レジェンドが説いた外国人活躍の秘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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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ースはヤクルト入団寸前だった 3連発から35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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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タイガース 1985-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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覚醒のボーアはどこまで成績を伸ばす? バースの1年目はどう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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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の猛虎は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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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わやクビも「絶対に必要」と年俸アップ、でも開幕から絶不調……。1985年、バースの序盤戦【プロ野球はみだし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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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田良弘氏の眼】阪神 5番の座勝ち取る選手出てき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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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様”バースの名前が阪神スタメンから消えた日「君は、解雇だ」…あの日本一から3年、なぜ阪神とバースは“泥沼の争い”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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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ンディ・バースが明かす、日本で戦った最高の投手と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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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タイガース、歴代助っ人外国人選手ランキングトップ5<野手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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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レンティンが歴代最高長打率 86年のバース上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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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タイガース血風録 猛虎水滸伝】古谷代表の訃報…バース自分が原因ギクッ(2/4ペー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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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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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の“最強助っ人”バースはなぜ34歳で突然引退したのか? 「スワローズとホークスから話が来ている」他球団移籍が成立しなかった事情(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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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年連続三冠王の史上最強助っ人は、なぜ突然日本を去ったのか?【バース・最後の1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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殿堂入りのランディ・バース氏「阪神タイガースは日本一のチーム」【コメント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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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クラホマ州議会公式HPでのバースの紹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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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y Bass' Biography - The Voter's Self Defense System - Vote S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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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ース再来日!さすが、ポーンと100万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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ランディ・バース氏が野球殿堂入り「とても名誉」阪神に感謝「素晴らしいチー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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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戸新聞社
2023-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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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球殿堂】バース氏、三度目正直ついに選出「阪神は日本一のチーム。そしてファンも日本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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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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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野球殿堂】ラミレス氏「日本文化尊重し学んだ」成功の1歩はわけも分からずやった「アイー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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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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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バース氏「44」タテジマで開幕戦始球式 岡田監督との再会に「ハッピーな時間でした」
https://www.daily.co[...]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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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阪神】ランディ・バース氏ワンバン始球式「思ったより遠かったね」背番号44ユニに虎党大歓声
https://www.nikkansp[...]
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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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ジェンド始球式!】2023年開幕戦の始球式に伝説の助っ人!ランディ・バース氏降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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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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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y Bass - Ballot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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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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ボーアよ バースまねろ!浜風に逆らうな左方向へ打て!掛布氏が新助っ人に金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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デイリースポーツ online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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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球殿堂入り表彰 バース氏「掛布さん、真弓さん、岡田さん、そして川藤さん」に感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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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刊スポーツ新聞社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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落合博満氏 バース氏は「頭のいい選手」ラミレス氏は「素晴らしいのひと言」日本で成功を収めた両助っ人を高評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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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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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月27日】1985年(昭60) “神様、仏様、バース様”、守備でも魅せ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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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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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岡田はセカンド嫌だった】真弓さんが語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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バース氏 虎長期ロードへの心構え説く「門限守りなさい」 槇原氏との“伝説”対決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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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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阪神ランディ・バースが「バス」から「バース」になった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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ベースボールマガジ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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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虎のソナタ】2001試合目の虎を見てくれ!ロハスひげ剃って心機一転も快音響か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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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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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篠塚和典】中西清起を苦しめた巨人屈指の巧打者!!【池田親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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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バースさん、阪神にエール「18年ぶりのリーグ制覇期待してい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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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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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元阪神のバース氏が私生活語る 引退後に離婚と再婚を経験 水頭症を患った長男・ザクリー氏の現在、孫の存在も明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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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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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元阪神のバース氏が私生活語る 引退後に離婚と再婚を経験 水頭症を患った長男・ザクリー氏の現在、孫の存在も明か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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株式会社デイリースポーツ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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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馬家先生のパカパカ問答 (9) ゲスト R・バースさん
日本中央競馬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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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夕刊フジ
201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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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中居正広のスポーツ!号外スクープ狙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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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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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猛虎先勝!ゴメス、85年バースの再来や!!3打点でタカ粉砕
https://www.sanspo.c[...]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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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バースの再来」も…オープン戦だけ凄かった選手列伝<外国人編>
https://dot.asahi.co[...]
2019-11-28
[65]
웹사이트
新助っ人 ボーア合意!バースの再来や 逆方向も軽々!メジャー通算92発の左の大砲
https://www.daily.co[...]
2019-11-28
[66]
웹사이트
阪神がバース級助っ人と入団合意 内野争いが激化
https://www.tokyo-sp[...]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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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阪神新外国人「バースの再来」に「何人目や!」ツッコミの嵐
https://www.news-pos[...]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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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バースの再来」って言葉、そろそろNGワードにしない?/トレバーの虎場/阪神タイガース
https://www.daily.co[...]
2022-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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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歴代授賞者
http://www.jpsa.jp/a[...]
公益財団法人日本プロスポーツ協会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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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野球殿堂】ランディ・バース氏、アレックス・ラミレス氏、作曲家の故古関裕而氏が選出
https://www.nikkansp[...]
2023-01-13
[71]
웹사이트
【野球殿堂】阪神岡田監督がバース氏祝福「もっと早くなっても、良かったんちゃうかなあ」
https://www.nikkansp[...]
2023-01-13
[72]
웹사이트
【データ】村上宗隆プロ野球新5打席連続本塁打 20人「打数」と13人「打席」の両方を更新
https://www.nikkansp[...]
2022-08-02
[73]
웹사이트
ヤクルト山田哲が記録した12試合連続打点の価値 阪神バースはどうだった?
https://full-count.j[...]
2018-08-07
[74]
웹사이트
ヤクルト村上、今季最終打席で王超え56号&令和初3冠王のダブル偉業 打点はバースに並んだ
https://www.sponichi[...]
2022-10-03
[75]
웹사이트
【データBOX】DeNA・牧秀悟が自身最多タイ24号 甲子園でシーズン5試合連続本塁打は、阪神以外の選手で初めて
https://www.sanspo.c[...]
2023-08-30
[76]
웹사이트
真っ向勝負の江川から7試合連続本塁打を放ったバース/プロ野球仰天伝説198
https://column.sp.ba[...]
2018-07-09
[77]
웹사이트
達成記録 三冠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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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野球機構
2024-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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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ランディ・バースが“縦じまユニ”姿でCM出演! 現役時代の豪快スイングが復活
https://www.oricon.c[...]
オリコン
201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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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プロ野球オーナーズリーグ」,新CMに元阪神のランディ・バース氏が登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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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tas
2011-09-07
[80]
웹사이트
ランディ・バース CM出演情報
https://www.oricon.c[...]
オリコン
2024-08-16
[81]
웹사이트
【代打 川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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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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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008년(방송 날짜는 미상)에 방송된 아사히 방송 《토라반》 중에서
[83]
뉴스
Equaling Oh’s HR record proved diffic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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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방송
‘한신 전선의 3연발 트리오 바스, 가케후, 오카다 꿰뚫기 SP!’에서 마키하라 히로미와의 대화 중에서
TBS
2009-07-12
[85]
문서
1차전은 구도 기미야스의 바깥쪽 커브를 좌익 방향에 결승 3점 홈런, 2차전은 다카하시 나오키의 110km/h의 바깥쪽 커브를 좌익 방향에 결승 2점 홈런, 3차전은 구도 기미야스로부터 우익 방향에 3점 홈런을 때려냈다.
[86]
서적
여기까지의 기술과 출처는 《일본 프로 야구 기록 대감》(우사미 데쓰야 저, 고단샤, p.274 ~ 275) 중에서의 일부분이다.
고단샤
[87]
문서
2013년에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7할 7푼 9리로 기록을 경신했다.
[88]
뉴스
バレンティンが歴代最高長打率 86年のバース上回る
http://www.asahi.com[...]
[89]
뉴스
【10月27日】1985年(昭60) “神様、仏様、バース様”、守備でも魅せた!
http://www.sponichi.[...]
2007-10-27
[90]
문서
2007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소속했던 애덤 바스와 같은 성이지만, 이쪽은 등록명을 ‘바스’로 등록하였다.
[91]
문서
이것에 대해서는 미즈모토 요시마사가 보도 자료에서 ‘Bass’로 배부되었을 때 미국 시절에 다리를 다쳐서 달릴 수 없는 것을 알고 프런트에게 쳐도 ‘한신 버스, 고장만 난다’치지 못해도 ‘한신 버스, 브레이크’라고 쓰이자 구단에게 말하여 급하게 ‘버스가 아니고 바-스다’라고 정정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일본 진출 첫 해인 1983년에 17타수 무안타였을 때는 ‘버스였으면 버스 스톱이 될 뻔했다’라는 구단 프런트의 블랙조크도 나왔다고 한다.
[92]
간행물
‘마가 선생의 바보 문답(9) - 게스트 R. 바스’
일본 중앙 경마회
1985-11
[93]
뉴스
석간 후지
201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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