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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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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곡사는 640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여러 차례의 중건과 증축을 거쳤으며, 임진왜란으로 전각이 소실되기도 했다. 김구 선생이 을미사변 이후 은신하며 수행했던 백련암이 위치해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 30본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웅보전, 영산전, 대광보전 등 여러 국가지정 보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변 지형이 태극 형상을 이루어 십승지지로 꼽히기도 한다. 현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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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 [지명]에 관한 문서
개요
마곡사 전경
마곡사 전경
위치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운암리)
종교조계종
상세 정보
한국어 이름마곡사
한자 이름麻谷寺
영어 이름Magoksa
마골짜기 절
종파조계종
창건자자장율사
창건 연도640년 (신라 선덕여왕 9년)
중창 연도1172년 (고려 명종 3년)
중창자지눌 (보조국사)
문화재 지정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
웹사이트한국관광공사 마곡사 소개
역사
창건640년 (신라 선덕여왕 9년),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
중창1172년 (고려 명종 3년), 지눌에 의해 중창
기타조선31본산 (일제강점기)
조계종 제6교구 본사
템플스테이
템플스테이 웹사이트마곡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현재 링크 접속 불가)

2. 역사

639년(신라 선덕여왕 7년)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통일 신라 말기인 888년(신라 진성여왕 1) 도선 국사가 중건하였고, 고려 명종 2년(1172년) 원경국사가 중수하였다.

1191년(명종 21) 보철 화상이 주석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이 삼대처럼 빽빽하여 마곡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나말여초 혼란기에 승려들이 떠나면서 폐사되어 약 200여 년간 도적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조선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 현판을 친필로 남기고, 가마 1대를 두고 갔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

1896년(고종 33년) 김구 선생이 이곳에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생활을 했다.

2. 1. 창건과 중건

640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중국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자장(慈藏) 율사(律師)가 백제 영토였던 이곳에 처음 창건했다고 전해진다.[7] 자장 율사는 선덕여왕에게 토지 200결을 받아 전탑 등을 세웠다고 한다.[7]

통일 신라 시대 말기인 888년(신라 진성여왕 1)에 도선(道詵) 국사(國師)가 중건하였다. 고려 시대 1172년(고려 명종 2년)에는 원경국사(元敬) 선사(禪師)가 중수하였고, 1188년(명종 18)에는 원경국사의 수제자인 순각(淳覺) 선승(禪僧)이 재건하였다. 1191년(명종 21)에는 원경국사의 또 다른 수제자인 보철 화상(保澈 和尙)이 주석(강론)할 때, 그의 법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이 삼대처럼 빽빽하게 많아서 마곡사라는 절 이름이 본격적으로 붙게 되었다고 한다.

나말여초 시대(통일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의 혼란기에 승려들이 떠나면서 암자와 절이 모두 폐사되고, 약 200여 년 동안 도적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1172년(고려 명종 2년), 원경국사가 무예에 능통한 승려들을 보내 도적 무리를 몰아낸 후, 자신의 수제자인 수우(水雨) 스님 등과 함께 본격적인 절간의 재건(중건 및 증축)을 시작했다. 1176년(명종 6)에는 지눌(知訥)에게 절의 각 현판 이름 등의 붓글씨(서예)를 부탁하며, 원경, 수우, 지눌 3명이서 대규모 불사 증축을 벌여 1178년(명종 8)에 절의 중창(증설)을 완료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세조가 이 절에 거둥하여 영산전(靈山殿)이라는 현판을 친필로 남기고, 자신이 타고 온 가마 1대를 두고 갔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화재로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1651년(조선 효종 2년)에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증창(중건)했다.

2. 2. 조선시대의 수난과 중흥

조선 세조가 이 절에 행차하여 영산전 현판을 친필로 남기고, 자신이 타고 온 가마 1대를 두고 갔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군의 습격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다.[6] 1651년 (효종 2년) 대웅전, 영산전, 대적광전을 중건했다.

1896년 (고종 33년) 백범 김구 선생이 황해도 안악 (치하포)에서 1895년 (고종 32년)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대마도 출신 일본군 장교이자 간첩인 쓰치다[6] 조스케(土田讓亮)를 살해하고 대동강에 던진 뒤, 인천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탈옥하여 이곳으로 피신해서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생활을 했다.[7] 지금 대광보전 앞 향나무는 당시 김구 선생이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7]

2. 3. 근현대와 김구 선생

1896년 (고종 33년), 김구 선생은 황해도 안악(치하포)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대마도 출신 일본군 장교 쓰치다[6] 조스케(土田讓亮)를 살해하고 대동강에 던졌다. 이후 인천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탈옥하여 마곡사로 피신,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생활을 하였다.

대광보전 앞 향나무는 당시 김구가 직접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7]

2. 4. 일제강점기

1896년, 김구을미사변에 가담했다고 오해하여 일본인 상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치하포 사건 이후, 원종이라는 법명으로 마곡사의 백련암에서 은신하며 수행했다.[6] 1946년 김구는 마곡사를 다시 찾아 대광보전과 응진전 사이에 노간주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7]

일제강점기1911년 사찰령 시행 규칙(7월 8일)에 의해 조선 30본산으로 지정되었다. (1924년 이후에는 조선 31본산)

3. 특징

마곡사에는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전각의 현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신품사현 중 하나로 꼽히는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대웅보전 현판, 세조가 쓴 것으로 보이는 영산전 현판, 강세황의 대광보전 현판 등이 대표적이다. 심검당 현판은 정조 때 청백리였던 조윤형의 글씨이며, 요사에 있는 마곡사 현판은 근대 서화가 김규진의 작품이다.

3. 1. 태극 형상의 지형과 십승지지

마곡사 주변의 물과 산의 형태가 태극형이라고 해서 택리지정감록 등 여러 감여서에서는 이곳을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의 하나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마곡사에는 시대를 초월한 여러 문화재가 있다. 그 가운데서도 마곡사에서는 특히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전각의 현판들을 찬찬히 음미해서 볼 필요가 있다.[3]

3. 2. 다양한 시대의 문화재

마곡사 주변은 물과 산의 형태가 태극 모양이어서 擇里志|택리지중국어나 鄭鑑錄|정감록중국어 등 여러 풍수지리서에서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 중 하나로 꼽았다. 그래서인지 마곡사에는 여러 시대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마곡사에서는 전각의 현판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신품사현 중 하나로 꼽히는 김생의 글씨로 전해지는 대웅보전 현판은 큰 글씨임에도 꽉 차 보이고 활달한 기운이 느껴진다. 영산전 현판은 세조 어필이라 현판 한쪽에 쓰여 있어 재위 중 온양이나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마곡사에 들러 쓴 것으로 보인다. 강세황의 대광보전 현판은 신위, 김홍도의 스승이었던 강세황의 작품이다.

이외에도 심검당은 정조 때 청백리였던 조윤형의 글씨이고, 요사에 붙은 마곡사 현판은 근대 서화가인 김규진이 그림을 곁들여 쓴 글씨이다.

4. 주요 문화재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로, 보물로 지정된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창건 당시에는 30여 칸의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이 남아있다.[5]

마곡사는 조선 시대 풍수지리 서적인 《택리지》, 《정감록》 등에서 난리와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왔다.

특히 마곡사의 여러 법당에 걸려 있는 현판들은 뛰어난 서예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신라 명필 김생이 쓴 것으로 알려진 대웅보전 현판, 조선 세조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영산전 현판, 강세황이 쓴 대광보전 현판, 조윤형이 쓴 심검당 현판, 김규진이 그림을 곁들여 제작한 "마곡사" 현판 등이 대표적이다.

마곡사에는 오층석탑, 영산전, 대웅보전, 대광보전, 해탈문, 천왕문, 명부전, 응진전, 심검당, 국사당, 매화당, 흥성루, 수선사, 대향각, 영각, 고방 등 다양한 건물과 탱화, 전적, 판본들이 있다.

4. 1. 국가지정 보물

보물설명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제799호)꼭대기에 청동 장식이 있는 세계 3개뿐인 탑 중 하나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1]
마곡사 영산전(보물 제800호)[5]
마곡사 대웅보전(보물 제801호)[5]
마곡사 대광보전(보물 제802호)[5]
마곡사 석가모니불괘불탱(보물 제1260호)숙종 13년(1687)에 제작된 괘불탱화, 채색된 삼베에 목판으로 인쇄.[4]
마곡사 백범일지(1929년(상권), 1943년(하권))보물 제1245호


4. 2.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유형문화재문화재자료


5. 템플스테이

마곡사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곡사 템플스테이


마곡사 템플스테이


마곡사 템플스테이

6. 교통

서산영덕고속도로 마곡사 나들목

참조

[1] 웹사이트 Magoksa Temple http://english.visit[...] 2009-11-03
[2] 웹사이트 Magoksa Temple stay program http://eng.templesta[...]
[3] 서적 Korea Guide-Mogaksa Seoul International Tourist Publishing Company
[4] 웹사이트 Koreatemple.net http://eng.koreatemp[...] 2010-12-09
[5] 문서 사회 I·문화재 > 문 화 재 > 중요 문화재 > 충청남도 > 마곡사
[6] 문서 소 요시아키라(宗 義達)가 심어놓은 간세(세작)로, 미우라 고로(三浦梧楼)의 이간 관련 사주를 받으며, 지난 1895년(고종 32년) 당시의 명성황후 시해(明成皇后 弑害)에 가담한, 쓰시마섬|대마도(對馬島)의 군사 간첩 행위|간첩(軍事 間諜)이었었던, 일본 제국 육군|일본군 위관 장교 중위 출신의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
[7] 서적 백범 김구, 백범일지, 도진순 주해 돌베개
[8] 뉴스 '공주 10景' 탄생! http://www.newstown.[...] 뉴스타운 2012-07-02

관련 사건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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