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권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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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묘법연화경 권1-2는 대자본계 판본에 해당하는 1책 영본으로, 변상도 1장이 남아 있어 희귀성을 지닌다. 조선 시대에 간행된 묘법연화경 판본 중 대자본계에 속하며, 1470년 원간본을 바탕으로 1727년까지 41종이 간행되었다. 이 판본은 정희왕후가 예종과 세조, 의경왕의 명복을 빌며 간행한 것으로, 김수온의 발문이 있으며 도선의 홍전서가 수록되어 있다. 박영만 소장본은 변상도와 각수 홍개미치가 새긴 그림, 장막동 등 12명의 각수 이름이 특징이다. 묘법연화경 권1-2는 보물 제1147-2호보다 늦게 후쇄되었지만, 변상도가 남아있고 권2의 권말이 온전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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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권1-2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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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권1-2 (妙法蓮華經 卷1-2) | |
개요 |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
유형 | 유형문화재 |
지정번호 | 451 |
지정일 | 2019년 8월 1일 |
소유자 | 박영만 |
시대 | 선조 연간 |
수량 | 2권 1책 |
주소 |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
2. 지정 사유
지정 대상이 된 판본은 대자본계 판본에 해당하며, 묘법연화경 권1-2의 1책만 남아 있는 영본(零本)이다.[1] 대자본 묘법연화경 초간본의 변상도(變相圖)는 원래 5개의 절면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해지는 판본들에는 변상도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지정 대상본에는 유일하게 2절면(1장)의 변상도가 남아 있어 희귀한 가치를 지닌다.[1]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은 줄여서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불리며, 조선시대에 약 170여 종의 판본이 간행되었다. 이들 판본은 간행 방식 등에 따라 크게 6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1]
현재 보물로 지정된 대자본 묘법연화경은 10여 건에 이르지만, 완질본은 없고 모두 일부만 남은 결본이다. 이 지정 대상본은 보물 제1147-2호로 지정된 수덕사 소장본보다 후대인 1474년에서 1488년 사이에 인쇄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147-2호는 변상도가 없고 책의 뒷부분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반면, 이 지정 대상본은 비록 일부(5면 중 2면)이기는 하나 변상도가 남아 있으며, 권2의 권말 부분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1]
3. 조사 보고서
# 성달생(成達生) 서본계(書本系): 1405년~1443년 사이의 원간본 및 그 번각본
# 초주갑인자본계(初鑄갑인자本系): 1450년 원간본 및 그 번각본
# 을해자본계(乙亥字本系): 1455년 원간본 및 그 번각본
# 대자본계(大字本系): 1470년 원간본 및 그 번각본
# 언해본계(諺解本系): 1463년 간경도감(刊經都監) 원간본 및 그 번각본
# 기타 독자판본계(獨自板本系): 위 5가지 계통에 속하지 않는 판본
이 중 대자본계 판본은 1727년까지 약 41종이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1] 대자본 법화경의 판식(版式)은 1470년 원간본을 기준으로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크기 22.8cmx15.9cm, 유계(有界), 8행 13자, 주쌍행(註雙行), 대흑구(大黑口),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 백권점(白圈點) 등의 특징을 보인다. 후대로 가면서 간행된 판본 중에는 대흑구가 생략되거나 어미(魚尾) 모양이 바뀌는 경우도 나타난다.[1]
대자본 법화경은 왕실 주도로 간행된 관판본(官版本)이어서 당대 최고의 각수(刻手)들이 참여하여 판각이 매우 정교하며 인쇄된 먹색도 짙고 선명하다. 서체는 고려 말부터 유행한 송설체(松雪體)의 필의(筆意)가 가미된 해서체(楷書體)로, 유려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을 준다.[1]
1470년에 처음 간행된 대자본 원간본에는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이 쓴 발문(跋文)이 있다. 이 발문에 따르면, 세조(世祖)의 왕비인 정희왕후 윤씨(貞熹王后 尹氏)가 남편 세조와 일찍 죽은 맏아들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 및 둘째 아들 예종(睿宗)의 명복을 빌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경전을 간행했다고 한다. 본문 내용은 다른 계통의 법화경 판본들과 달리 법화경 원문만 수록하고 책 앞머리에는 당나라 승려 도선(道宣)의 '홍전서(弘傳序)'만 실었다. 이 원간본은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통도사와 아단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다.[1]
대자본 묘법연화경은 완질이 총 7권 3책으로 구성되며, 원간본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인쇄(번각)되었다. 성달생 서본계 판본과 달리 원간본의 글씨를 쓴 사람(서사자, 書寫者)은 명확히 알 수 없다. 왕실에서 독송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구절마다 점(권점)을 찍어 간행했으며, 여러 번 간행되었기에 현재 비교적 많은 수량이 여러 기관에 남아 전하고 있다.[1] 현재 보물로 지정된 대자본 묘법연화경은 10여 건에 이르지만, 모두 일부 권만 남은 결본(缺本)이며 완질이 지정된 사례는 없다.[1]
3. 1. 박영만 소장본의 특징
박영만 소장본은 대자본(大字本)계 묘법연화경 판본에 해당하며, 전체 7권 중 권1~2에 해당하는 1책의 영본(零本)이다.[1] 표지는 후대에 능화문(菱花紋)이 없는 형태로 개장되었다.[1]
책의 앞부분에는 변상도(變相圖) 1장(반엽 크기: 23.7cmx16.5cm)이 있는데, 이는 각수(刻手) 홍개미치(洪介未致)가 새긴 것이다.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본래 대자본 초간본의 변상도는 5면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전하는 다른 판본들에는 변상도가 남아있지 않다. 유일하게 이 박영만 소장본에만 2면(1장)이 남아 있어 희귀한 자료로 평가받는다.[1]
변상도 다음에는 당나라 승려 도선(道宣)이 쓴 홍전서(弘傳序) 3장이 이어진다. 이 부분의 반곽 크기는 23cmx16cm이며, 유계(有界)에 8행 13자로 구성되어 있다. 각수 장막동(張莫同)의 이름이 해당 쪽 우변란(右邊欄) 아래에 인쇄되어 있다.[1]
본문은 '妙法蓮華經卷第一'이라는 권수제(卷首題)로 시작하며, '후진(姚秦) 삼장법사 구마라습(鳩摩羅什)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번역하다(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詔譯)'라는 역자 표시가 나온 뒤 바로 권1 본문(총 51장)으로 이어진다.[1] 판식(版式)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며, 반엽(半葉) 크기는 23.1cmx15.7cm이다. 판면에는 계선(界線)이 있으며, 본문은 8행 13자로 구성되어 있다. 판심(版心) 부분에는 큰 검은 네모꼴인 대흑구(大黑口)가 있고, 위아래로 안쪽을 향한 검은 물고기 꼬리 모양의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가 있다. 판심 중앙 어미 사이에는 '法華經'이라는 판심제(版心題)가 있고, 그 아래에는 장(張)의 순서를 나타내는 표시가 있다.[1]
서문과 본문에는 독송의 편의를 위해 구절 옆에 찍은 흰 동그라미 표식인 백권점(白圈點)이 있다. 또한 책 곳곳에는 후대에 철필(鐵筆)로 내용을 적은 흔적이 여러 군데 보이며, 한문 구절의 의미를 끊어 읽기 쉽도록 달아놓은 현토(懸吐)도 있다.[1] 본문 각 장에는 해당 판을 새긴 각수의 이름(예: 장막동(張莫同))이 해당 쪽 우변란(右邊欄) 우측 아래에 인쇄되어 있다.[1]
권1이 끝나면 권2(총 52장)가 시작된다. 마지막 장의 오른쪽 면(右葉) 5행에는 '妙法蓮華經卷第二'라는 권말제(卷末題)가 적혀 있으며 이것으로 내용이 끝난다. 이 책은 총 107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의 전체 크기는 34.6cmx22.3cm이다.[1]
이 책의 간행에 참여한 각수는 다음과 같다.[1]
각수 |
---|
홍개미치(洪介未致) |
장막동(張莫同) |
최금동(崔今同) |
박중련(朴仲連) |
고말종(高末終) |
이영산(李永山) |
최득산(崔得山) |
우인수(禹仁守) |
권돈일(權頓一) |
박군실(朴君實) |
김감동(金甘同) |
최말생(崔末生) |
4. 보물 지정 현황
현재 보물로 지정된 대자본 묘법연화경은 10여 건에 이르지만, 완질본은 없고 모두 일부만 남은 영본(零本) 형태로 지정되어 있다.[1] 이 중 권1-2에 해당하는 것은 보물 제1147-2호로 지정된 수덕사 소장본이 유일하다.[1]
문화재 | 지정번호 | 명칭 | 소장자 | 책수 및 권사항 | 발간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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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 936-1호 | 묘법연화경 권6~7 | 삼성(이건희) | 1책(권6-7) | 1482년(성종 13) |
보물 | 936-2호 | 묘법연화경 권6~7 | 삼성(이건희) | 1책(권6-7) | 1482년(성종 13) |
보물 | 950호 | 묘법연화경 권5~7 | 국립중앙박물관 | 1책(권5-7) | 1488년(성종 19) |
보물 | 959호 | 경주 기림사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 | 기림사 | 1책(권5-7) | 1474년(성종 5) |
보물 | 1147-1호 | 묘법연화경 권3~4, 5~7 | 아단문고(강태영) | 2책(권3-7) | 1470년(성종 1) |
보물 | 1147-2호 | 묘법연화경 권1~2 | 수덕사 | 1책(권1-2) | 1474년(성종 5) |
보물 | 1147-3호 | 묘법연화경 권5~7 | 본각사 | 1책(권5-7) | 1488년(성종 19) |
보물 | 1164-1호 | 묘법연화경 권3~4 | 구인사 | 1책(권3-4) | 1482년(성종 13) |
보물 | 1164-2호 | 묘법연화경 권3~4, 5~7 | 보문사 | 2책(권3-7) | 1482년(성종 13) |
보물 | 1240호 | 묘법연화경 권3~4 | 통도사 | 1책(권3-4) | 1470년(성종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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