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민족전선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은 1946년 2월 미군정 지역의 좌파 계열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결집하여 결성된 단체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른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싸고 좌우 대립이 격화되면서 결성되었으며,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등이 참여했다. 민전은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총체적 지지"를 주장하며, 친일파 처단, 토지 개혁, 8시간 노동제 실시 등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 수립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참여했으며, 1949년 북한 측의 민전과 통합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흡수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민주주의민족전선 - 하필원
하필원은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운동가로 활동하며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장을 역임했으며, 해방 후 좌익 세력 통합 운동에 참여하고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 민주주의민족전선 - 허성택
허성택은 일제강점기 노동운동가이자 해방 후 북한 정치인으로, 반일운동을 주도하며 전평 의장을 맡았고, 월북 후 김일성 내각에서 여러 직책을 역임했으나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 장건상 - 좌우합작운동
좌우합작운동은 해방 직후 좌우익 대립 심화 속에서 김규식, 여운형 등 중도파가 주도한 민족통일운동으로, 미군정 지원과 좌우합작 7원칙 발표 등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소공동위원회 결렬, 냉전 심화, 여운형 암살 등으로 실패하여 1947년 해산되었으나, 남북 분단 방지와 통일 정부 수립 노력으로 평가받는다. - 장건상 - 허헌
허헌은 일제강점기 변호사이자 독립운동가로서 3·1 운동 관련자 변호와 신간회 활동을 했고, 해방 후에는 건준위 부위원장, 민전 공동의장 등을 지내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월북 후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등을 지냈다. - 김원봉 - 최창익
최창익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일본 유학 중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중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전개했으며, 광복 후 북조선에서 요직을 맡았으나 종파 사건으로 숙청되었다. - 김원봉 - 김성숙 (1898년)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3·1 운동 참여 후 중국에서 의열단,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의용대 등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했으며, 해방 후 독립노동당을 창당하여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민주주의민족전선 | |
---|---|
기본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약칭 | 민전 |
영문 명칭 | National Democratic Front |
설립일 | 1949년 6월 |
해체일 | 1949년 12월 |
창립 주체 | 남조선로동당 |
주요 인물 | 김달삼 이승엽 |
활동 | |
주요 활동 |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점령 지역에서 활동 |
해체 이유 | 한국 전쟁 발발 및 남로당 숙청 |
2. 결성 배경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안이 결정되자, 국내에서는 이를 찬성하는 입장(찬탁)과 반대하는 입장(반탁)이 격렬하게 대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6년 2월, 우파 민족주의 세력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 대한민국 임시 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비상국민회의를 결성했다.[1] 이에 맞서 좌파 세력은 조선인민공화국을 실질적으로 계승하는 조직인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하여 대응했다. 민주주의민족전선에는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등 좌파 정당과 전평, 전농 등의 사회단체들이 참여했다.[1]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따라 한민족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대립하는 이념 분쟁이 심화되면서, 1946년 2월 미군정 지역의 좌파 계열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결집하여 민주주의민족전선이 결성되었다.[1]
민주주의민족전선(약칭 민전)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지지, 친일파 처단, 토지 개혁, 8시간 노동제 실시 등을 강령으로 내세웠다.[2] 조선 인민당, 조선 공산당 등 좌파 정당과 관련 단체가 결집하여 결성되었으며, 광복 직후 좌파와 민족주의자가 결성한 조선 인민 공화국을 실질적으로 계승한 조직이다. 민전은 "모스크바 3상 회의의 총체적 지지"를 주장하며, "[친일파] 민족 반역자, 파시스트, 민족 분열주의자 등을 배제한 민주주의 민족 통일체"임을 선언했다.
3. 결성 과정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전평, 전농, 청년총동맹, 부녀총동맹, 각종 문화단체 등이 참여하였다.[1]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출신 김원봉, 장건상, 성주식, 김성숙과 중도우파 인사 이극로, 천도교 간부 오지영 등이 합류했다.[1] 공동의장단은 여운형, 박헌영, 허헌, 김원봉, 백남운의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다.[1]
우파 계열이 김구 중심의 비상국민회의를 출범시키고 미군정 자문기관으로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이 설치되자, 이에 대응하여 좌파 정치 세력의 결집을 시도한 성격이 짙다. 주도 단체는 조선공산당이었다.
4. 강령 및 활동
민전은 친일파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산하에 친일파·민족반역자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2]
제1공화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참여했다. 삼팔선 이남 지역을 대표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360명을 선출하는 작업을 주도했으며, 이들은 각 마을과 직장 단위로 비밀 투표를 받아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인민대표자회의에 참석하였다.
1949년, 민전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측의 민전과 통합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에 흡수되었다.
4. 1. 강령 5원칙 전문
5. 조직 구성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으로 한민족이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대립하면서, 1946년 2월 미군정 지역의 좌파 계열 정당 및 사회단체가 모여 민주주의민족전선을 결성했다.[1]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전평, 전농, 청년총동맹, 부녀총동맹, 각종 문화단체 등이 참여했다.[1]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출신 김원봉, 장건상, 성주식, 김성숙과 중도우파 이극로, 천도교 간부 오지영 등도 합류했다.[1]
우파 계열이 김구 중심의 비상국민회의를 출범시키고 미군정 자문기관으로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이 설치되자, 이에 맞서 좌파 정치 세력의 결집을 시도한 것이다. 주도 단체는 조선공산당이었다.
이 단체 결성을 계기로 좌파 계열의 진영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신탁통치 문제를 계기로 좌·우파의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5. 1. 지도부
1946년 2월, 민주주의민족전선 결성 당시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1]
5. 2. 참여 단체
조선공산당, 조선인민당, 남조선신민당, 조선민족혁명당 등과 전평, 전농, 청년총동맹, 부녀총동맹, 각종 문화단체 등이 참여하였다.[1]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출신 김원봉, 장건상, 성주식, 김성숙과 중도우파 이극로, 천도교 간부 오지영 등도 합류했다.[1]6. 미군정의 탄압과 지하 활동
미군정은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조선공산당을 사실상 불법화하였다.[1] 이에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주요 참여자들은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하거나 피신하거나 체포되었다.[1] 민주주의민족전선도 지하 활동에 들어갔다.[1]
7. 해체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으로의 통합
1949년 9월, 평양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통합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면서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1]
참조
[1]
서적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
서적
분단의 두 얼굴
역사비평사
2005-07-3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