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쉰들러 리스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쉰들러 리스트》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1993년 영화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오스카 쉰들러라는 독일인 사업가가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을 구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 영화는 나치 점령 하의 폴란드에서 쉰들러가 유대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려는 과정을 흑백 화면으로 생생하게 묘사한다. 쉰들러는 처음에는 이윤을 추구했지만, 유대인 회계사 이츠하크 슈테른의 도움과 나치의 만행을 목격하면서 점차 변화하여, 결국 자신의 재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많은 유대인들의 생명을 구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선과 악, 그리고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루며,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오스카르 쉰들러 - 에밀리 쉰들러
    에밀리 쉰들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남편 오스카 쉰들러와 함께 유대인 노동자들을 보호하며 나치 정권으로부터 구출하는 데 헌신한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인물로, '열방의 의인' 칭호를 받았고 그녀의 삶은 여러 예술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 스티븐 스필버그 -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스티븐 스필버그가 1969년에 설립한 앰블린 엔터테인먼트는 영화 《앰블린》에서 이름을 따온 미국의 영화 및 TV 프로그램 제작사로, 흥행 영화 제작과 TV 시리즈 제작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으며,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통해 스트리밍 서비스용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 스티븐 스필버그 - 캐치 미 이프 유 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프랭크 W. 애버그네일 주니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17세에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해 사기를 치는 프랭크와 그를 쫓는 FBI 요원 칼 핸래티의 추격전을 그린 영화이다.
  • 아몬 괴트 - 예니퍼 티에게
    예니퍼 티에게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으로, 나치 친위대 장교였던 할아버지 아몬 괴트의 가족사를 알게 된 후 가족사, 정체성, 트라우마에 대한 고민을 담은 회고록을 출간하고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우는 독일 작가이다.
  • 아몬 괴트 - 오스카르 쉰들러
    오스카르 쉰들러는 나치 독일 시기 유대인들을 홀로코스트로부터 구한 독일계 사업가로, 나치당원으로서 군수품 공장을 운영하며 유대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보호했고, 약 1,200명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가스실의 죽음으로부터 구했으며, 그의 이야기는 《쉰들러의 방주》와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알려졌고 "열방의 의인"으로 선정되었다.
쉰들러 리스트 - [영화]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극장 개봉 포스터
원제Schindler's List
제목시ンドラーのリスト
쉰들러 리스트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스티븐 스필버그
제럴드 R. 몰렌
브랭코 러스티그
각본스티븐 자일리언
원작토머스 케닐리의 《쉰들러의 방주》
제작 총지휘캐스린 케네디
출연리엄 니슨
벤 킹즐리
레이프 파인스
캐럴라인 구돌
조나단 사갈
엠베스 데이비츠
음악존 윌리엄스
촬영야누스 카민스키
편집마이클 칸
스튜디오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배급유니버설 픽처스
UIP
개봉일미국: 1993년 12월 15일
캐나다: 1993년 12월 25일
오스트레일리아: 1994년 2월 10일
영국: 1994년 2월 18일
아르헨티나, 페루: 1994년 2월 24일
일본: 1994년 2월 26일
프랑스, 그리스: 1994년 3월 2일
독일, 네덜란드, 이스라엘: 1994년 3월 3일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 터키: 1994년 3월 4일
대한민국: 1994년 3월 5일
필리핀: 1994년 3월 9일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1994년 3월 10일
브라질, 우루과이: 1994년 3월 11일
홍콩: 1994년 3월 17일
에스토니아: 1994년 9월 30일
상영 시간195분
국가미국
언어영어
독일어
제작 정보
제작비2200만 달러
흥행 수입전 세계: 3억 2216만 1245달러
미국, 캐나다: 9689만 8818달러
일본 배급 수입20억 5000만 엔
기타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출시 (대한민국 DVD)2004년 3월 26일

2. 줄거리

1939년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한 폴란드독일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이주한다. 그는 나치와 결탁해 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유대인을 자신의 공장의 인력으로 이용하지만, 유대인 회계사 이츠하크 슈테른의 영향으로 마음 속의 양심을 발견한다. 쉰들러는 유대인을 자신의 공장에 취직시키는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구하기 시작한다.[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는 현지 폴란드 유대인들을 과밀한 크라쿠프 게토로 강제 이주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나치 당원 오스카 쉰들러는 재산을 모으고자 크라쿠프에 온다. 그는 베어마흐트(독일 국방군)와 SS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공장을 인수하여 에나멜 제품을 생산한다. 쉰들러는 암시장과 유대인 사업계에 연줄이 있는 유대인 관리인 이츠하크 슈테른을 고용한다. 슈테른은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쉰들러가 자금을 조달하도록 돕는다. 슈테른은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 노동자들이 독일의 전쟁 노력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도록 하여 SS가 강제 수용소로 데려가거나 살해하는 것을 막는다. 한편, 쉰들러는 나치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새로운 부와 산업가로서의 지위를 누린다.[1]

SS-중위(소위) 아몬 괴트는 플라쇼프 강제 수용소 건설을 감독하기 위해 크라쿠프에 온다. 수용소가 완공되자 그는 게토 청산을 명령한다. 2,000명의 유대인이 플라쇼프로 이송되고 다른 2,000명은 SS에 의해 거리에서 살해된다. 쉰들러는 학살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특히 그는 나치로부터 숨는 어린 소녀의 빨간 코트를 눈여겨보았고, 나중에 시체가 실린 수레에서 그녀의 시체를 본다. 쉰들러는 괴트와의 우정을 유지하고 주로 뇌물을 통해 SS의 지원을 계속 받는다. 괴트는 유대인 하녀 헬렌 히르슈를 잔혹하게 학대하고 자신의 빌라 발코니에서 무작위로 사람들을 총으로 쏜다. 수감자들은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쉰들러의 관심은 돈을 버는 것에서 가능한 한 많은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노동자들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쉰들러는 괴트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의 공장에 분소를 설립하도록 허락받는다.[1]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기 시작하자 괴트는 플라쇼프에 남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쉰들러는 괴트에게 자신의 고향인 스비타비 근처 브륀리츠에 건설할 계획인 탄약 공장으로 노동자들을 옮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괴트는 마지못해 동의하지만 막대한 뇌물을 요구한다. 쉰들러와 슈테른은 아우슈비츠 대신 브륀리츠로 이송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다. 최종 명단에는 1,100명의 이름이 포함된다.[1]

유대인 노동자들이 기차를 타고 브륀리츠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여성과 소녀들이 실수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 수용소로 잘못 이송된다. 쉰들러는 아우슈비츠의 소장인 루돌프 횔스에게 뇌물을 주고 그들을 석방시킨다. 새로운 공장에서 쉰들러는 SS 경비병들이 허락 없이 생산 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장려한다. 그 후 7개월 동안 그는 나치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고 다른 회사로부터 탄피를 사들이며 재산을 탕진한다. 쉰들러의 책략 덕분에 공장에서는 사용 가능한 무기가 생산되지 않는다. 그는 독일이 항복한 1945년에 돈이 바닥난다.[1]

나치 당원이자 전쟁 이익자였던 쉰들러는 체포를 피하기 위해 진군하는 소련군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공장의 SS 경비병들은 유대인 노동자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쉰들러는 그들을 설득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한다. 쉰들러는 노동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미국군에 항복하기를 바라며 서쪽으로 향한다. 노동자들은 그의 유대인 생명 구조 활동을 증명하는 서명된 진술서를 그에게 주고, 탈무드의 인용구 "한 생명을 구하는 자는 온 세상을 구하는 자이다"가 새겨진 반지를 선물한다. 쉰들러는 더 많은 일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떠나기 전에 노동자들의 위로를 받는다. 다음 날 아침 ''쉰들러 유대인''이 깨어나자, 한 소련 장교가 그들이 해방되었지만 "그들은 당신을 증오한다"며 동쪽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한다. 유대인들은 시골로 걸어간다.[1]

3. 등장인물

배우등장 인물인물 설명
리엄 니슨오스카 쉰들러독일인 사업가
벤 킹즐리이츠하크 슈테른유태인 회계사
랄프 파인스아몬 괴트나치 유태인 수용소장
캐럴라인 구돌에밀리 쉰들러오스카의 아내
엠베스 데이비츠헬렌 히르슈유태인 가정부
조너선 사갈폴덱쉰들러 공장에 납품하는 남자


  • 오스카 쉰들러 역: 리엄 니슨은 영화 제작 초기 오디션을 보았고, 1992년 12월에 캐스팅되었다. 케빈 코스트너멜 깁슨도 관심을 보였지만, 스필버그는 배우의 스타성이 캐릭터를 압도하지 않도록 상대적으로 무명인 니슨을 선택했다.
  • 이츠하크 슈테른 역: 벤 킹즐리. 더스틴 호프만에게도 제안되었지만 거절했다.[4][5]
  • 아몬 괴트 역: 랄프 파인스. 스필버그는 그의 오디션에 대해 "성적 악을 보았다. 미묘함 속에 그의 눈을 가로지르는 친절함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고 평했다. 파인즈는 역할을 위해 약 12.70kg을 증량했다.
  • 에밀리 쉰들러 역: 캐럴라인 구돌
  • 헬렌 히르슈 역: 엠베스 데이비츠
  • 폴덱 역: 조너선 사갈

3. 1. 오스카 쉰들러

리엄 니슨이 연기한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당 당원이자 독일인 사업가였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을 이용하여 이익을 얻고자 크라쿠프에 와서 폐업한 공장을 인수하여 에나멜 용기 공장을 설립했다. 그는 유능한 유대인 회계사 이차크 슈테른(벤 킹즐리 분)에게 공장 경영을 맡기고, 값싼 노동력으로 게토의 유대인들을 고용했으며, 뛰어난 사교성으로 친위대(SS) 장교들과 친분을 쌓으며 사업을 확장했다.

쉰들러는 플레이보이적인 향락과 성공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기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는 관심 없이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고, 미식과 음주에 빠져 살았다. 항상 좋은 옷을 차려 입은 그는 유대인들을 단지 성공을 위한 편의적인 노동력, 수단으로 여겼고,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아몬 괴트 소위(랄프 파인스 분)가 크라쿠프 플라쇼프 강제 수용소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쉰들러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 처음에는 괴트 소위의 친한 친구이자 술친구였지만, 점차 그의 행동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미한 저항에 불과했지만, 개별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데 비밀리에 나섰다. 마침내 유대인들에게 절망적인 멸망과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자, 그는 어떤 목록을 작성하기로 결심한다. 곁에는 그의 아내가 있었다.

각본가에 따르면, 쉰들러는 선과 악을 모두 지닌 인물이며, 그 때문에 갈등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한다. 극중 오스카 쉰들러의 인물상은 전 타임 워너 회장 스티브 로스를 모델로 하고 있다.

3. 2. 이츠하크 슈테른

벤 킹즐리가 연기한 이츠하크 슈테른은 회계사 슈테른, 공장 관리자 아브라함 방키어, 아몬 괴트의 개인 비서 미에텍 펨퍼를 합성한 캐릭터이다.[4][5] 오스카 쉰들러의 또 다른 자아이자 양심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5]

쉰들러는 유능한 유대인 회계사인 슈테른에게 공장 경영을 맡겼으며, 슈테른은 값싼 노동력으로 게토의 유대인들을 고용했다. 슈테른을 포함해 쉰들러 공장에서 일하는 유대인들에게 위기가 닥치자, 쉰들러의 심경에 점차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3. 3. 아몬 괴트

랄프 파인스가 연기한 아몬 괴트나치즘의 잔혹성과 비인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크라쿠프 플라쇼프 강제 수용소 소장으로 부임하여 유대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탄압하는 냉혹한 SS 장교로 묘사된다.

괴트는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유대인 학살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쾌감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유대인들을 이유 없이 즉결 처형하고,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등 잔혹한 행위를 일삼는다. 이러한 괴트의 모습은 나치즘의 폭력성과 광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괴트는 오스카 쉰들러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악의 축으로 그려진다. 쉰들러가 처음에는 이기적인 사업가였지만 점차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인도적인 인물로 변화하는 반면, 괴트는 끝까지 자신의 악행을 뉘우치지 않고 파멸을 맞이한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영화는 선과 악의 대립을 강조하고, 나치즘의 비인간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랄프 파인즈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아몬 괴트의 잔혹성과 광기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영화의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 제작 과정

영화 기획은 1982년 원작 소설의 영화화 권리를 획득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0년 가까이 구상을 다듬고 준비하면서 시작되었다. 스필버그는 미국계 유대인으로서 "피로 물든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감독료 수령을 거부했다.

빌리 와일더, 마틴 스콜세지, 로만 폴란스키 등이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유니버설 측이 제시한 "쥬라기 공원 감독도 맡는다"는 조건을 스필버그가 수락하면서 최종 결정되었다.

제작에는 캐슬린 케네디가 참여했다.

제작캐슬린 케네디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원작토마스 케닐리
각본스티븐 자일리언
음악존 윌리엄스
바이올린 솔로잇작 펄만
촬영 감독야누시 카민스키
시각 효과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
편집마이클 칸



영화는 서두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편이 흑백으로 촬영되었다. 이는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을 기록한 필름은 흑백이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만, 쉰들러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치는 빨간 옷을 입은 소녀와 촛불의 붉은 불꽃 등은 부분적으로 컬러가 사용되었다.

쥬라기 공원 제작비 6300만달러에 비해, 이 작품은 2500만달러로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다. 소품과 헌옷은 현지에서 조달되었고, 출연료가 높은 스타는 기용되지 않았으며, 출연자 대부분도 현지에서 캐스팅되었다. 촬영 카메라도 파나비전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 아리플렉스가 사용되었고, 기본적으로 재촬영을 하지 않는 방침으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본은 3시간 15분으로 스필버그 감독 작품 중 가장 긴 러닝타임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는 매일 끔찍한 장면 촬영이 계속되어 기분이 가라앉은 스필버그는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를 걸어 웃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4. 1.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스티븐 스필버그는 1985년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의 영향을 받아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의 40%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소규모 예산으로 72일 만에 빠르게 촬영되었다.[7] 스필버그는 이것이 영화에 "자발성과 강렬함을 부여하고, 주제에도 부합한다"고 느꼈다.[7] 그는 스테디캠, 하이앵글 샷, 또는 줌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나에게 안전장치로 여겨질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7] 이를 통해 스필버그는 과거 세실 B. 드밀이나 데이비드 린과 같은 감독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 급급했던 자신을 성숙시켰다고 느꼈다.

스필버그는 당시 다큐멘터리 영상의 느낌과 맞추기 위해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그 효과를 독일 표현주의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비유했다.[7] 카민스키는 영화에 시대를 초월한 인상을 주고 싶어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도록" 하려고 했다.[7] 유니버설 회장 톰 폴록은 나중에 영화의 컬러 VHS 복사본을 판매할 수 있도록 컬러 네거티브로 촬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스필버그는 우연히 "사건을 미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7] 그러나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가 나오는 장면은 컬러로 촬영된 후, 코트를 제외한 모든 색상을 제거하기 위해 수작업으로 로토스코핑되었다.

스필버그와 자주 협업하는 존 윌리엄스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음악을 작곡했다. 작곡가는 영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너무 어려운 작업이라고 느꼈다. 그는 스필버그에게 "이 영화에는 저보다 뛰어난 작곡가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고, 스필버그는 "압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돌아가셨죠!"라고 답했다. 잇작 펄만이 바이올린으로 주제곡을 연주한다.

나치가 게토를 청산하는 장면에서 어린이 합창단이 민요 ''오이프 쁘리페치크''(אויפֿן פּריפּעטשיקyi, '온 더 쿠킹 스토브')를 부른다. 이 노래는 스필버그의 할머니인 베키(Becky)가 손주들에게 자주 불러주던 노래였다. 영화에서 들리는 클라리넷 독주는 클레즈머(Klezmer) 거장 기오라 파이드만이 연주했다. 윌리엄스는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최우수 음악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그의 다섯 번째 수상이었다. 음악의 일부는 사운드트랙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빌리 와일더, 마틴 스콜세지, 로만 폴란스키 등이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다. 결국 유니버설 측이 제시한 "쥬라기 공원 감독도 맡는다"는 조건을 스필버그가 받아들여 감독이 되었다. 1982년 원작의 영화화 권리를 얻은 스필버그는 이후 10년 가까이 구상을 다듬고 기획을 준비한 후 이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스필버그 자신도 미국계 유대인이다). 스필버그는 "피로 물든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감독료 수령을 거부했다.

서두와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편이 흑백 영화이다. 이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전쟁을 기록한 필름은 흑백이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다만, 파트 컬러가 채택되어 빨간 옷을 입은 소녀(쉰들러에게 심리적 영향을 미침), 촛불의 붉은 불꽃 등이 등장한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 장면에서 쉰들러는 "왜 저렇게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는가? 독일군은 왜 곧바로 잡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품지만, 이 시점에서는 홀로코스트 사실이 이미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소녀의 옷 색깔만큼 명확한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스필버그는 말하고 있다.[25] 그때까지 진한 색조가 주를 이뤘다는 점을 제외하면 독특한 영상 스타일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촬영 감독과 영화를 만들어 온 스필버그이지만, 이 작품 이후 폴란드 출신 야누시 카민스키와의 협력으로 작품의 외관이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이 작품에서는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다큐멘터리풍의 촬영 기법을 많이 사용).

쥬라기 공원의 제작비 6300만달러에 비해, 이 작품은 2500만달러로 풍족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소품과 헌옷은 현지에서 조달되었고, 출연료가 높은 스타는 기용되지 않았으며, 출연자 대부분도 현지에서 캐스팅되었다. 촬영 카메라도 파나비전에 비해 임대료가 저렴한 아리플렉스가 사용되었고, 기본적으로 재촬영을 하지 않는 방침으로 진행되었지만, 완성본은 3시간 15분으로 스필버그 감독 작품 중 가장 긴 러닝타임이 되었다.

쥬라기 공원 등과 마찬가지로 라이브 액션 부분은 표준 사이즈로 촬영되었으며, TV 방영이나 TV 사이즈 비디오화에서는 3:4 화면에 맞추기 위해 비스타비전 사이즈로 촬영된 시각 효과 장면의 화면 좌우 양쪽 끝이 잘렸다. 극장이나 와이드 버전 비디오에서는 라이브 액션 파트의 상하를 잘라 가로로 긴 화면을 얻었다.

이 작품에서는 매일 끔찍한 장면 촬영이 계속되어 기분이 가라앉은 스필버그는 로빈 윌리엄스에게 전화를 걸어 웃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4. 2. 각본

이 영화는 미국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착한 독일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선과 악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1] 괴트는 거의 완벽하게 악한 인물로 묘사되는 반면, 쉰들러는 점차 나치 지지자에서 구원자이자 영웅으로 변화해간다.[2] 이러한 과정을 통해, 명성의 경계에 있던 불명예스러운 책략가였던 쉰들러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면서 속죄라는 두 번째 주제가 도입된다.[3]

구분내용
원작토마스 케니리
각본스티븐 자일리언


4. 3. 촬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1985년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의 영향을 받아 스토리보드를 사용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영화의 40%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촬영되었고, 소규모 예산으로 인해 72일 만에 빠르게 촬영되었다.[7] 스필버그는 이것이 영화에 "자발성과 강렬함을 부여하고, 주제에도 부합한다"고 느꼈다. 그는 스테디캠, 하이앵글 샷, 또는 줌 렌즈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나에게 안전장치로 여겨질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스필버그는 과거 세실 B. 드밀이나 데이비드 린과 같은 감독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데 급급했던 자신을 성숙시켰다고 느꼈다.

스필버그는 당시 다큐멘터리 영상의 느낌과 맞추기 위해 흑백으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그 효과를 독일 표현주의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 비유했다. 카민스키는 영화에 시대를 초월한 인상을 주고 싶어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도록" 하려고 했다. 유니버설 회장 톰 폴록은 나중에 영화의 컬러 VHS 복사본을 판매할 수 있도록 컬러 네거티브로 촬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스필버그는 우연히 "사건을 미화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쉰들러가 크라쿠프 겟토 청산 당시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를 본 장면. 이 영화는 대부분 흑백으로 촬영되었지만, 빨간 코트는 몇 안 되는 컬러 장면 중 하나이다.


영화는 주로 흑백으로 촬영되었지만, 크라쿠프 겟토 청산 장면에서 한 어린 소녀를 구별하기 위해 빨간 코트가 사용되었다. 후반부에 쉰들러는 그녀의 시체를 발견하는데, 여전히 입고 있는 빨간 코트로만 그녀임을 알아본다. 스필버그는 이 장면이 미국의 최고위급 정부 관계자들이 홀로코스트가 발생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마치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 소녀가 거리를 걸어가는 것만큼이나 명백했지만, 독일 철도를 폭격하거나 유럽 유대인의 말살을 늦추기 위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장면을 컬러로 남겨 둔 것이 제 메시지였습니다."라고 말했다. IGN의 앤디 파트리지오는 쉰들러가 소녀의 시체를 보는 순간이 그가 변화하는 순간이며, 더 이상 "자신의 차에 쌓이는 타는 시체의 재와 그을음을 단순한 불쾌감으로 여기지 않는" 순간이라고 지적한다. 몬트리올 대학교의 안드레 H. 카론 교수는 빨간색이 "순수함, 희망 또는 홀로코스트의 공포 속에서 희생되는 유대인들의 붉은 피"를 상징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소녀는 당시 세 살이었던 올리비아 덤브로스카가 연기했다. 스필버그는 덤브로스카에게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영화를 보지 말라고 부탁했지만, 그녀는 열한 살 때 영화를 보았고 "끔찍했다"고 말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영화를 본 후, 그녀는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자부심을 느꼈다. 크라쿠프 겟토에서 빨간 코트로 유명했다고 말하는 로마 리고츠카는 이 캐릭터가 자신을 바탕으로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리고츠카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과 달리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영화가 개봉된 후,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빨간 코트를 입은 소녀: 회고록" (2002년, 번역본)을 집필하여 출판했다. 2014년 인터뷰한 그녀의 친척들에 따르면, 이 소녀는 크라쿠프 거주민인 게냐 기텔 칠에게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다.

유대인 여성들이 화물차에 실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도착하는 장면은 실제 그곳에서 촬영되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의 홀로코스트를 그린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구내 촬영 허가를 받을 수 없어 수용소 안에서 기차가 달려 도착한 것처럼 보이도록, 문 바깥쪽에 세트가 설치되었다. 스필버그가 수용소 구내에 비디오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전혀 작동하지 않아 촬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큐멘터리를 제외하고 아우슈비츠 내부 촬영 허가가 내려진 것은 『하얀거탑』(2003년 드라마)이 처음이다.

5. 역사적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이 점령한 크라쿠프에서 나치는 폴란드 유대인들을 크라쿠프 게토로 강제 이주시켰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나치 당원 오스카 쉰들러는 재산을 모으고자 크라쿠프에 와서 베어마흐트(독일 국방군)와 SS 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공장을 인수하여 에나멜 제품을 생산한다.

쉰들러는 유대인 관리인 이츠하크 슈테른을 고용하여 행정 업무를 처리하고 자금을 조달하도록 돕는다. 슈테른은 가능한 한 많은 유대인 노동자들이 독일의 전쟁 노력에 필수적이라고 판단되도록 하여 SS가 강제 수용소로 데려가거나 살해하는 것을 막는다. 한편, 쉰들러는 나치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부와 산업가로서의 지위를 누린다.

SS-''중위''(소위) 아몬 괴트는 플라쇼프 강제 수용소 건설을 감독하기 위해 크라쿠프에 온다. 수용소가 완공되자 그는 게토 청산을 명령한다. 2,000명의 유대인이 플라쇼프로 이송되고 다른 2,000명은 SS에 의해 거리에서 살해된다. 쉰들러는 학살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특히 그는 나치로부터 숨는 어린 소녀의 빨간 코트를 눈여겨보았고, 나중에 시체가 실린 수레에서 그녀의 시체를 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쉰들러의 관심은 돈을 버는 것에서 가능한 한 많은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노동자들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해 쉰들러는 괴트에게 뇌물을 주어 자신의 공장에 분소를 설립하도록 허락받는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기 시작하자 괴트는 플라쇼프에 남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이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쉰들러는 괴트에게 자신의 고향인 스비타비 근처 브륀리츠에 건설할 탄약 공장으로 노동자들을 옮기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괴트는 막대한 뇌물을 요구하며 마지못해 동의한다. 쉰들러와 슈테른은 아우슈비츠 대신 브륀리츠로 이송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다.

5. 1. 홀로코스트와 대한민국

Schindler's List영어홀로코스트라는 역사적 비극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억압과 차별을 경험했던 한국인들에게 이 영화는 깊은 공감과 연대를 불러일으킨다.

일제강점기 한국인들은 강제 징용,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끔찍한 인권 유린을 겪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쉰들러 리스트에 묘사된 유대인들의 고통과 다르지 않다. 영화 속에서 나치에 의해 자행된 잔혹한 학살과 비인간적인 행위는 일제가 한국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을 떠올리게 한다.

쉰들러 리스트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강조한다. 영화는 오스카 쉰들러라는 한 개인의 용기와 양심이 어떻게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보편적인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훼손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이 영화는 과거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홀로코스트일제강점기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교훈을 되새기는 것은 미래에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다. 쉰들러 리스트는 역사적 성찰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30]

6. 영화 기법

《쉰들러 리스트》는 영화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으며, 오프라 윈프리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같은 유명 인사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11][12] 로튼 토마토에서는 137개의 평론을 바탕으로 98%의 신선도를 기록했으며, 평균 평점은 9.20/10이다. 메타크리틱에서는 30명의 평론가를 바탕으로 100점 만점에 95점의 가중 평균 점수를 부여했다. 시네마스코어의 설문 조사에서 관객들은 이 영화에 A+부터 F까지의 등급 중 보기 드문 "A+"의 평균 점수를 부여했다.[13]

뉴요커의 스티븐 시프는 이 영화를 홀로코스트에 관한 최고의 역사 드라마이자 "문화사에 자리 잡고 영원히 남을" 영화라고 칭했다.[11] 시카고 선타임스의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를 스필버그의 최고작이자 "뛰어난 연기, 각본, 연출, 그리고 시각적 연출"이라고 묘사했다.[12] 뉴요커의 테렌스 라퍼티는 이 영화의 "대담한 서사, 대담한 시각, 그리고 감정적인 직접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특히 아우슈비츠의 샤워실 장면을 "지금까지 촬영된 가장 무서운 장면"이라고 불렀다.[12]

이러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특히 학계에서는 영화의 단순화된 묘사와 특정 묘사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사라 호로위츠는 게토에서 보이는 유대인들의 활동 상당 부분이 돈을 빌려주거나, 암시장에서 거래하거나, 재산을 숨기는 등의 금융 거래로 이루어져 유대인 생활에 대한 고정관념적인 견해를 영속화한다고 지적했다.[11] 브라운 대학교의 오머 바르토프 역사 교수는 쉰들러와 괴트의 신체적으로 크고 강하게 그려진 인물들이 작고, 허둥지둥하며, 겁에 질린 유대인 희생자들을 가리고 있으며, 이들은 선과 악의 투쟁에 대한 단순한 배경일 뿐이라고 지적했다.[12]

또한, 영화의 절대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이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가해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제이슨 엡스타인은 이 영화가 사람들이 충분히 똑똑하거나 운이 좋으면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고 논평했다.[11]

영화 제작자 장-뤼크 고다르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비극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 쉰들러의 아내인 에밀리 쉰들러아르헨티나에서 가난하게 살았다고 비난했다.[12] 영화 제작자 미하엘 하네케는 쉰들러의 여성들이 우연히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샤워실로 몰려드는 장면을 비판하며 "스필버그는 선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었습니다."라고 말했다.[12] 9시간짜리 홀로코스트 다큐멘터리 《쇼아》 (1985)의 감독인 클로드 랑즈만은 《쉰들러 리스트》를 "싸구려 멜로드라마"이자 역사적 진실의 "왜곡"이라고 불렀다.[12]

6. 1. 흑백 영화

영화의 대부분은 흑백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다큐멘터리 영상과 같은 사실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의도였다. 흑백 화면은 영화에 역사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관객들이 영화 속 사건을 실제 일어난 일처럼 느끼도록 돕는다.

6. 2. 상징

죄송합니다.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쉰들러 리스트' 영화의 상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아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원본 소스에 해당 내용이 없으므로, '상징' 섹션은 비워두거나 관련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해야 합니다.

6. 3. 음악

존 윌리엄스는 영화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아 스필버그에게 "이 작품에는 저보다 더 훌륭한 작곡가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지만, 스필버그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미 고인이죠."라고 답했다.[27] 윌리엄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작곡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작곡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메인 테마를 비롯한 주요 바이올린 독주는 저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만이 연주했다.

초반, 쉰들러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과 아내 에밀리에와 식사하는 장면에서는 "자살의 성가"라고 불리는 어둠 속의 일요일이 흐른다. 초반의 것은 바이올린을 기반으로 애수에 찬 멜로디로 되어 있으며, 중반의 것은 솔로 보컬이 들어 있다. 두 곡 모두 원곡처럼 음울한 분위기는 아니다.

전년도에 개봉한 《여인의 향기》에 이어 카를로스 가르델 작곡의 탱고 "Por una Cabeza"가 사용되었다. 이 곡은 다음 해에 공개된 《트루 라이즈》에서도 사용되었다.

7. 평가 및 영향

《쉰들러 리스트》는 개봉 후 여러 비평가와 단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다양한 "최고의 영화"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994년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 심포지엄에서 역사학자 아네트 인스도르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어머니의 말을 인용하며 영화가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우리 D. 허셔 랍비는 이 영화를 인도주의의 "매력적"이고 "고무적인" 증거로 여겼다.

영화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96100000USD의 수익을 올렸고, 전 세계적으로 321200000USD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개봉 첫 주에 48개 스크린에서 10만 명 이상이 관람했고,[15] 최종적으로 500개 극장에서 상영되어[16]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 38000000USD의 수익을 올렸다.[17] 25주년 기념 상영에서는 1,029개 극장에서 551000USD의 수익을 기록했다.[18]

스필버그는 이 영화로 미국감독조합상 극영화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브랑코 루스티그, 제럴드 R. 몰렌과 함께 미국제작자조합상 최우수 극영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티븐 자일리언은 미국작가조합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또한 전미비평가협회,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 등에서 주요 상을 휩쓸었다.

《쉰들러 리스트》는 바티칸이 선정한 중요 영화 45편 목록에 포함되었으며, 채널 4의 설문조사에서 역대 9번째로 위대한 영화로 선정되었다. 제임스 베라디넬리, 로저 에버트, 진 시스켈 등 여러 비평가들이 1993년 최고의 영화로 꼽았으며, 미국 국립영화등기소는 2004년 영구 보존 대상으로 선정했다. 2023년 2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스필버그는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했다.[20]

영화의 배경이 된 크라쿠프는 영화로 인해 관심이 높아졌고, 2007년 오스카 쉰들러의 에나멜 공장을 매입하여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점령기에 대한 상설 전시를 열었다. 박물관은 2010년 6월에 개관했다.

하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인 임레 케르테스는 영화 마지막 장면이 생존자들에게 미친 끔찍한 후유증을 간과하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무사했던 것처럼 묘사했다고 비판했다.

7. 1. 비평

제66회 아카데미상에서 12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전까지 영화계와 대중 모두에게 "뛰어난 오락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감독"으로 높이 평가받았지만, 그동안 제작한 『태양의 제국』이나 『퍼플 컬러』와 같이 심각한 주제의 작품들은 평가를 받지 못했고, 본 작품에서 염원하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을 이루었다.

1998년 AFI가 선정한 미국 영화 베스트 100에서는 9위에, 2006년 선정한 감동의 영화 베스트 100에서는 3위에, 2007년 선정한 미국 영화 베스트 100(10주년 에디션)에서는 8위에 랭크인되었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본 작품을 극찬하며 1993년 연간 베스트 1위로 선정하고, "생존자에게 이토록 영예롭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장 뤼크 고다르나 다른 감독들도 스필버그 이상으로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28]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의 존 그로스는 "뛰어난 성공작이다"라고 평가했다. 빌리 와일더[29], 로만 폴란스키 등의 영화 감독들로부터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본 작품이 성공함으로써 자신이 기획했던 홀로코스트 영화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등 높은 평가를 받는 한편, 『쇼아』를 감독한 클로드 란즈만은 "사건을 전설화하는 것이다"라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7. 2. 수상 내역

촬영상, 미술상, 음악상, 편집상[34]골든 글로브 상작품상, 감독상, 각본상[35]



스티븐 스필버그는 미국감독조합상 극영화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브랑코 루스티그와 제럴드 R. 몰렌 공동 제작자와 함께 미국제작자조합상 최우수 극영화상을 공유했다. 스티븐 자일리언은 미국작가조합상 각색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전미비평가협회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조연상,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했다. 뉴욕 영화 비평가 협회의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조연상, 최우수 촬영상도 수상했다. 로스앤젤레스 영화 비평가 협회는 이 영화에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촬영상(''피아노''와 공동 수상), 최우수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수여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다른 상과 후보 지명을 받았다.

주요 수상
부문대상결과
아카데미상
작품상스티븐 스필버그, 제럴드 R. 몰렌, 브랑코 루스티그수상
감독상스티븐 스필버그수상
각색상스티븐 자일리언수상
음악상존 윌리엄스수상
편집상마이클 카한수상
촬영상야누시 카민스키수상
미술상에바 브라운, 앨런 스타스키수상
남우주연상리암 니슨후보
남우조연상랄프 파인즈후보
분장상크리스티나 스미스, 매슈 멍글, 주디 알렉산더 코리후보
음향상앤디 넬슨, 스티브 페더슨, 스콧 밀란, 론 주드킨스후보
의상상애나 B. 셰퍼드후보
에이스 에디상
극영화 부문 최우수 편집상마이클 카한수상
BAFTA상
작품상스티븐 스필버그, 브랑코 루스티그, 제럴드 R. 몰렌수상
감독상스티븐 스필버그수상
남우조연상랄프 파인즈수상
각색상스티븐 자일리언수상
음악상존 윌리엄스수상
편집상마이클 카한수상
촬영상야누시 카민스키수상
남우조연상벤 킹즐리후보
남우주연상리암 니슨후보
분장상크리스티나 스미스, 매슈 W. 멍글, 발데마르 포크롬스키, 폴린 헤이스후보
미술상앨런 스타스키후보
의상상애나 B. 셰퍼드후보
음향상찰스 L. 캠벨, 루이스 L. 에드먼, 로버트 잭슨, 로널드 주드킨스, 앤디 넬슨, 스티브 페더슨, 스콧 밀란후보
시카고 영화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스티븐 스필버그, 제럴드 R. 몰렌, 브랑코 루스티그수상
최우수 감독상스티븐 스필버그수상
최우수 각본상스티븐 자일리언수상
최우수 촬영상야누시 카민스키수상
최우수 남우주연상리암 니슨수상
최우수 남우조연상랄프 파인즈수상
골든 글로브상
극영화 부문 작품상스티븐 스필버그, 제럴드 R. 몰렌, 브랑코 루스티그수상
감독상스티븐 스필버그수상
각본상스티븐 자일리언수상
극영화 부문 남우주연상리암 니슨후보
남우조연상랄프 파인즈후보
음악상존 윌리엄스후보



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연도목록결과
1998AFI 선정 100년...100대 영화9위
2003AFI 선정 100년...100대 영웅과 악당오스카 쉰들러 – 13위 영웅; 아몬 괴트 – 15위 악당
2006AFI 선정 100년...100대 영화의 주요 명장면3위
2007AFI 선정 100년...100대 영화 (10주년 기념판)8위
2008AFI 선정 10대 장르 10대 영화3위 서사 영화



제66회 아카데미상에서 12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되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미술상, 음악상 등 7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전까지 "뛰어난 오락 영화를 만드는 영화 감독"으로 높이 평가받았지만, 그동안 제작한 『태양의 제국』이나 『퍼플 컬러』와 같이 심각한 주제의 작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본 작품을 통해 염원하던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및 감독상 수상을 이루었다.

1998년 AFI가 선정한 미국 영화 베스트 100에서는 9위에, 2006년 선정한 감동의 영화 베스트 100에서는 3위에, 2007년 선정한 미국 영화 베스트 100(10주년 에디션)에서는 8위에 랭크되었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본 작품을 극찬하며 1993년 연간 베스트 1위로 선정하고, "생존자에게 이토록 영예롭고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장 뤼크 고다르나 다른 감독들도 스필버그 이상으로 성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28]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의 존 그로스는 "뛰어난 성공작이다"라고 평가했다.[29] 빌리 와일더, 로만 폴란스키 등 유명 영화 감독들에게도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스탠리 큐브릭은 본 작품이 성공하면서 자신이 기획했던 홀로코스트 영화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카데미상 수상 등 높은 평가를 받는 한편, 『쇼아』를 감독한 클로드 란즈만은 "사건을 전설화하는 것이다"라며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7. 3.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쉰들러 리스트》는 리처드 코를리스와 리처드 시켈이 선정한 ''타임''지 톱 100, ''타임 아웃''지 100대 영화 100주년 설문조사, 레너드 말틴의 "세기의 필수 시청 영화 100편" 등 여러 "최고의 영화" 목록에 등재되었으며, 비평가들과 여러 단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20] 바티칸은 이 영화를 중요 영화 45편 목록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목록에 포함된 영화 중 가장 최근에 개봉된 영화이다.[20] 채널 4 설문조사에서는 역대 9번째로 위대한 영화로 선정되었고, 2005년 전쟁 영화 설문조사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20] 제임스 베라디넬리, 로저 에버트, 진 시스켈 등은 이 영화를 1993년 최고의 영화로 꼽았다.[20] 미국 국립영화등기소는 2004년 이 영화를 "문화적, 역사적, 또는 미학적으로 중요한" 영화로 간주하여 보존 대상으로 선정했다.[20]

영화의 배경이 된 크라쿠프는 영화로 인해 관심이 높아졌고, 2007년 오스카 쉰들러의 에나멜 공장을 매입하여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 점령기에 대한 상설 전시를 열었다. 박물관은 2010년 6월에 개관했다.[20]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인 임레 케르테스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생존자들에게 미친 끔찍한 후유증을 간과하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무사했던 것처럼 묘사했다고 비판했다.[20]

8. 논란

말레이시아에서는 이 영화가 처음에 상영 금지되었다. 말레이시아 영화 검열 위원회는 영화 배급사에 이 영화의 주제는 나치 병사들의 유대인에 대한 잔혹함과 잔인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것은 동정심을 구걸하고 다른 인종을 헐뜯는 목적을 가진 선전인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19]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였던 마하티르 모하마드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어떤 영화든 금지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반유대주의자가 아니며, 시오니스트 확장과 시오니스트들에 의한 아랍 영토 정복에 반대한다고 말했다.[19]

인도네시아에서도 이 영화는 금지되었는데, 세계 무슬림 연대 위원회는 이를 "시오니스트 선전일 뿐"이라고 묘사했다.[19]

필리핀에서는 수석 검열관이 성교와 여성의 나체를 묘사한 세 장면을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스필버그는 이를 거부하고 필리핀 극장에서 영화 상영을 취소했는데, 이는 필리핀 상원이 검열 위원회 폐지를 요구하게 만들었다. 필리핀 대통령 피델 V. 라모스가 직접 개입하여 15세 이상이면 편집되지 않은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판결했다.

슬로바키아 영화감독 유라이 헤르츠에 따르면, 한 무리의 여성들이 실제 샤워실을 가스실로 착각하는 장면은 그의 영화 ''자스티흘라 메 노츠''(밤이 나를 덮친다, 1986)에서 장면 하나하나 직접 따온 것이라고 한다. 헤르츠는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소송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영화 사운드트랙에는 "예루살렘 셸 자하브 (황금의 예루살렘)"이라는 노래가 실려 있으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이 노래는 1967년 나오미 셰머가 작곡한 것으로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념하는 비공식 국가로 널리 여겨지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스라엘에서 상영된 영화에서는 이 노래 대신 제2차 세계 대전의 저항 전사였던 하나 세네스의 "할리카 레케사리아 (카이사레아로 가는 길)"이 사용되었다.

1997년 미국 TV 방영에서는 사실상 편집되지 않은 채 방송되었다. 이 방송은 그해 초에 제정된 TV 부모 가이드라인에 따라 TV-M(현재 TV-MA) 등급을 받은 최초의 방송이었다. 당시 오클라호마 의원이었던 톰 코번은 NBC가 이 영화를 방영함으로써 "전면 나체, 폭력, 저속한 언어로 TV를 최악의 수준으로 끌어내렸다"며 "도덕적인 사람들을 모욕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공화당과 미국 민주당 양쪽의 비난을 받은 코번은 "내 의도는 좋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을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히 판단 미스를 저질렀다"며 사과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하면서 "부모의 감독 없이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시청하지 않도록" 밤늦게 방송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 프로지벤 채널을 통한 영화 TV 첫 방영을 두고 논란이 있었다. 방송국이 3~4분씩 두 차례의 광고 방영을 계획했을 때 유대인 공동체의 항의가 이어졌다. 독일 중앙 유대인 평의회 회장인 이그나츠 부비스는 "그러한 영화를 광고로 중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 유대인 공동체 회장 예르지 카날은 "광고 없이 방송될 때 영화가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방송국은 방해받지 않고 영화를 방송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타협으로 방송에는 광고가 포함된 짧은 뉴스 업데이트로 구성된 한 번의 광고 방영이 포함되었다. 프로지벤은 또한 방송 전에 "헤브론과 뉴욕의 유대인들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고, 방송 후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해야 했다.

참조

[1]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1993) https://www.boxoffic[...] 2021-04-16
[2] 웹사이트 AFI's 100 Years ... 100 Movies – 10th Anniversary Edition https://www.afi.com/[...] American Film Institute 2007-06-20
[3]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credits still https://www.flickr.c[...] Flickr 2018-08-07
[4] 웹사이트 Dustin Hoffman: Facing down my demons https://www.theguard[...] 2012-12-14
[5] 웹사이트 Dustin Hoffman on 'fear of success,' why he turned down 'Schindler's List' http://www.today.com[...]
[6] 뉴스 Jews Try To Halt Auschwitz Filming https://www.nytimes.[...] 1993-01-17
[7] 웹사이트 How Steven Spielbergs Cinematographer Got These Eleven Shots https://www.vulture.[...] 2012-11-14
[8] 뉴스 More videos present movies in original widescreen images https://www.newspape[...] 1997-09-06
[9] 잡지 'Schindler's List' will return to theaters for its 25th anniversary https://ew.com/movie[...] 2018-08-29
[10]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4K Blu-ray https://www.blu-ray.[...]
[11]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1993) https://www.rottento[...] Fandango Media
[12]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Reviews http://www.metacriti[...] CBS Interactive
[13] 웹사이트 Why CinemaScore Matters for Box Office https://www.hollywoo[...] 2011-08-19
[14] 뉴스 Mietek Pemper: Obituary https://www.telegrap[...] 2011-06-15
[15] 잡지 'Doubtfire' sweeps up o'seas B.O. 1994-03-14
[16] 잡지 'Schindler' dominates o'seas B.O. 1994-04-04
[17] 잡지 Exceptions are the rule in foreign B.O. 1994-11-14
[18] 뉴스 'Ralph' tops box office again, 'Aquaman' is a hit in China https://www.ctvnews.[...] 2018-12-09
[19] 웹사이트 The Manila Envelope, Please... https://www.washingt[...]
[20] 뉴스 'Steven Spielberg delivers memorable Berlin Speech' https://www.screenda[...] 2023-02-22
[21] 웹사이트 Schindler's List (1994) https://www.boxoffic[...] Amazon.com
[22] 웹사이트 日本映画産業統計 過去配給収入上位作品 (配給収入10億円以上番組) 1994年(1月~12月) https://www.eiren.or[...] 社団法人日本映画製作者連盟
[23] 트윗 出演した佐久間本人の投稿 2018-03-11
[24] 서적 ワイルダーならどうする? キネマ旬報社
[25] 문서 映像の魔術師 スピルバーグ自作を語る
[26] 문서 Biographer takes shine off Spielberg's Schindler
[27] 웹사이트 The man behind the music of 'Star Wars' https://www.today.co[...] NBC 2005-05-06
[28] 웹사이트 In Praise Of Love https://www.rogerebe[...]
[29] 서적 ワイルダーならどうする? キネマ旬報社
[30] 뉴스 「シンドラーのリスト」の実物の写し、図書館で発見 豪州 写真2枚 国際ニュース:AFPBB News https://www.afpbb.co[...]
[31] 웹사이트 http://www.mydvdlist[...]
[32] 웹인용 CINE 21의 쉰들러 리스트 소개 https://web.archive.[...] 2006-09-16
[33] 웹사이트 http://www.mydvdlist[...]
[34] 웹인용 Academy Awards, USA (1994) https://www.imdb.com[...] 2018-05-10
[35] 웹인용 Golden Globes, USA (1994) https://www.imdb.com[...] 2018-05-10
[36] 잡지 엠파이어 http://www.empireonl[...]
[37] 웹인용 American Film Institute: Welcome to the 100 Years - Top 100 Movies Official Site https://web.archive.[...] 2009-05-28
[38]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s://web.archive.[...] 2009-12-09
[39] 뉴스 (제목 없음) http://www.khan.co.k[...] 경향신문
[40] 웹인용 IMDb 15th Anniversary https://www.imdb.com[...] 2018-05-10
[41] 웹사이트 (제목 없음) http://www.cine21.co[...]
[42] 웹인용 ALL-TIME 100 Movies - TIME https://web.archive.[...] 2009-12-09
[43] 웹인용 ALL-TIME 100 Movies - TIME https://web.archive.[...] 2009-12-09
[44] 서적 위대한 영화 1 & 2 박스 세트 을유 문화사 2006
[45] 웹인용 rogerebert.com :: greatmovies_intro https://web.archive.[...] 2009-12-09
[46] 웹사이트 rogerebert.com :: greatmovies_fulllist http://rogerebert.su[...]
[47] 웹인용 :: rogerebert.com :: https://web.archive.[...] 2009-12-09
[48] 웹인용 1001 Series https://web.archive.[...] 2012-10-04
[49] 웹인용 보관된 사본 https://web.archive.[...] 2009-12-09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