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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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심의겸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의 국구인 심강의 아들이자 인순왕후의 동생이다. 그는 세종의 국구 심온의 6대손이며, 윤두수, 구사맹과 사돈 관계를 맺었다. 명종 때 이량의 전횡을 탄핵하고 동서분당의 원인이 되어 서인의 영수로 지목되었다. 관직으로는 병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했으며, 개성부 유수, 전라도 관찰사 등을 거쳐 예조참판을 지냈다. 이후 동인 세력의 득세로 파직되어 파주에서 별세했다. 그의 날카로운 성격은 당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배우 강남길이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 풍란》에서 심의겸을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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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의 부마이자 명종의 외삼촌이었으며, 딸이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면서 왕실과 인연을 맺고 명종 즉위 후 청릉부원군에 봉해졌으나, 권력을 이용해 재물을 축적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 조선의 부총관 - 김만기 (조선)
김만기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1653년 문과 급제 후 효종과 숙종 대에 걸쳐 요직을 역임하며 서인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고, 딸이 숙종의 비인 인경왕후가 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저서로는 《서석문집》이 있다.
심의겸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로마자 표기 | Sim Uigyeom |
다른 이름 | 아명: 방숙(方叔) 자: 방숙(方叔) 호: 손암(巽菴), 간암(艮菴), 황재(黃齋) |
신상 정보 | |
출생 | 1535년 |
사망 | 1587년 |
국적 | 조선 |
가족 관계 | |
부 | 심강 |
모 | 완산부부인 전주 이씨 |
배우자 | 정부인 청주 한씨 |
자녀 | 2남 1녀 (심논, 심엄) |
학력 및 경력 | |
직업 | 문신 |
소속 정당 | 서인 |
기타 | 서인의 초대 영수 |
기타 정보 | |
봉군호 | 청양군(靑陽君) |
종교 | 유교(성리학) |
2. 가계 및 생애 초기
(내용 없음)
2. 1. 가계

세종의 국구인 영의정 청천부원군 심온(沈溫)의 6대손이며,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 심회(沈澮)의 5대손이다. 또한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청천부원군 심연원(沈連源)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명종의 국구이자 영돈녕부사를 지낸 청릉부원군 심강(沈綱)이고, 어머니는 완산부부인 전주 이씨이다. 심의겸은 심강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누나는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이며, 동생은 선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청림군 심충겸(沈忠謙)이다. 또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尹斗壽)와 사돈 관계였으며,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국구인 능안부원군 구사맹(具思孟)과도 사돈 관계였다.
구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아버지 | 심강(沈鋼) | 1514년 ~ 1567년 | 청릉부원군, 영돈녕부사 |
어머니 | 완산부부인 전주 이씨 | 1512년 ~ 1559년 | 효령대군의 증손녀, 의성군의 손녀 |
누나 | 인순왕후 | 1532년 6월 27일 ~ 1575년 2월 12일 | 명종의 왕비 |
매부 | 명종 | 1534년 7월 3일 ~ 1567년 8월 3일 | 조선 제13대 국왕 |
조카 | 순회세자 | 1551년 7월 1일 ~ 1563년 10월 6일 | |
양 조카 | 선조 | 1552년 11월 26일 ~ 1608년 3월 16일 | 조선 제14대 국왕 |
형 | 심인겸(沈仁謙) | 1533년 ~ 1580년 | |
본인 | 심의겸(沈義謙) | 1535년 ~ 1587년 | |
부인 | 정부인 청주 한씨 | 1532년 ~ 1613년 | |
아들 | 심논(沈惀) | ||
양자 | 심엄(沈㤿) | 1563년 ~ 1624년 | 동생 심충겸의 아들 |
며느리 | 능성 구씨 | 1563년 ~ 1620년 | 구사맹의 딸 |
딸 | 청송 심씨 | 1574년 ~ 1647년 | |
사위 | 윤훤(尹暄) | 1573년 ~ 1672년 2월 15일 | 해평 윤씨, 윤두수의 아들 |
외손자 | 윤순지(尹順之) | 1591년 ~ 1666년 | |
외손자 | 윤원지(尹元之) | 1596년 ~ 1641년 | |
외손녀 | 윤씨(尹氏) | 1596년 ~ 1656년 | |
외손자 | 윤징지(尹澄之) | 1601년 ~ 1661년 | |
외손자 | 윤의지(尹誼之) | 1605년 ~ 1666년 | |
남동생 | 심예겸(沈禮謙) | 1537년 ~ 1587년 | |
여동생 | 청송 심씨 | 1538년 ~ 1579년 | |
남동생 | 심지겸(沈智謙) | 1540년 ~ 1568년 | |
남동생 | 심신겸(沈信謙) | 1542년 ~ 1596년 | |
여동생 | 청송 심씨 | 1543년 ~ ? | |
남동생 | 심충겸(沈忠謙) | 1545년 ~ 1594년 | 청림군, 병조판서 |
남동생 | 심효겸(沈孝謙) | 1547년 9월 20일 ~ 1600년 9월 24일 | |
남동생 | 심제겸(沈悌謙) | 1550년 ~ 1589년 | |
여동생 | 청송 심씨 | 1556년 ~ ? |
명종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외척 이량을 탄핵하는 등 활동하였다. 선조 대에는 병조판서까지 올랐으나, 1575년 동서분당이 일어나자 서인의 영수로 지목되어 개성부 유수, 전라도 관찰사 등 외직을 주로 맡았다. 이후 예조참판으로 복귀하고 청양군(靑陽君) 작위를 이어받았다.
3. 관직 생활 및 동서분당
3. 1. 관직 생활
명종 때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예조좌랑, 사간원 정언, 이조좌랑, 홍문관 부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수찬, 병조정랑, 사헌부 지평 등을 역임하였고, 호당에 선발되어 사가독서의 기회를 얻었다. 1563년에는 외척으로서 권력을 남용하던 외삼촌 이량을 탄핵하여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데 역할을 했다.
이후 성균관 전적, 의정부 검상, 의정부 사인, 사간원 사간, 사복시 정, 홍문관 부응교, 홍문관 응교, 사헌부 집의, 홍문관 직제학, 군기시 정, 승정원 동부승지, 승정원 우부승지, 이조참의 등 다양한 관직을 거쳤다. 선조 즉위 후에는 승정원 우승지, 사간원 대사간을 지냈으며, 1573년 다시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이후 사헌부 대사헌, 형조참판, 병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에 이르렀으나, 1574년 대사헌과 오위도총부 부총관으로 좌천되었다. 1575년 동서분당이 일어나자 서인의 영수로 지목되었고, 이로 인해 개성부 유수, 전라도 관찰사, 함경도 관찰사, 전주 부윤 등 외직을 주로 맡게 되었다. 이후 다시 중앙 정계로 복귀하여 예조참판이 되었고, 청양군(靑陽君)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4. 생애 후반 및 평가
척신 가문 출신이었으나 사림 사이에서 명망이 높았던 인물이다. 명종 대에는 외숙부 이량이 사림을 탄압하려 하자 오히려 그를 탄핵하여 몰아내는 강직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김효원과의 갈등은 동서 분당이라는 조선 정치사의 큰 분기점을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심의겸은 서인의 영수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 갈등은 1573년 심의겸이 김효원의 이조정랑 임명을 반대한 것에서 시작되었고,[4] 이듬해 김효원이 앙심을 품고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의 이조전랑 임명을 막으면서[5] 본격화되었다. 당쟁의 격화를 우려한 율곡 이이의 조정 노력으로 잠시 개성부 유수, 전라도 관찰사 등 외직으로 나가기도 했으나, 1584년 이이가 세상을 떠난 후 동인 세력이 득세하자 결국 파직되었다. 이후 파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1587년 세상을 떠났다.
4. 1. 생애 후반
척신 가문 출신이었지만 기존 정치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서 사림 사이에서 높은 명망을 얻었다. 명종 재위 시기에는 외숙부인 이량이 사림들을 공격하려 하자, 오히려 이량을 탄핵하여 정치적으로 몰아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1573년 심의겸이 이조참의 자리에 있을 때, 김종직의 학문적 계보를 잇는 신진 세력인 김효원이 이조정랑 후보로 추천되자 이를 반대했다.[4] 심의겸은 김효원이 과거 권력을 휘둘렀던 윤원형의 집을 드나들며 도움을 받았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효원은 윤원형의 식객이 아니라, 윤원형의 사위였던 이조민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인순왕후는 이미 수렴청정에서 물러나 있었기에, 왕실 외척이었던 심의겸에게는 예전과 같은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다. 1574년 이조정랑에 임명된 김효원은 이 일에 앙심을 품게 되었고, 이듬해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에 임명되는 것을 막아섰다.[5] 김효원은 심충겸이 인순왕후의 동생, 즉 외척이기 때문에 청요직으로 꼽히는 이조전랑 자리에 오르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반대하며 후임자 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결국 심충겸은 이조전랑에 오르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 사림 세력이 두 파벌로 나뉘는 동서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기존 세력은 심의겸을 중심으로 서인을 형성했고, 신진 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후 당파 싸움이 격화될 것을 우려한 율곡 이이의 조정 노력으로 심의겸은 개성부 유수와 전라도 관찰사 등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함경도 관찰사, 전주 부윤, 예조참판 등을 지냈으나, 1584년 그를 옹호하던 율곡 이이가 세상을 떠나자 동인 세력이 힘을 얻고 서인이 몰락하면서 관직에서 파면되었다. 이후 파주로 내려가 지내다가 1587년 세상을 떠났다.
4. 2. 평가
척신 가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사림 사이에서 높은 명망을 얻었다. 명종 재위 시절, 외숙부인 이량이 사림 세력을 탄핵하려 하자, 오히려 그를 탄핵하여 정치적으로 축출시키는 데 앞장섰다.1573년 심의겸이 이조참의로 재직할 당시, 김종직의 학문적 계보를 잇는 신진 사림인 김효원이 이조정랑 후보로 추천되자 이에 반대했다.[4] 심의겸은 김효원이 과거 권신 윤원형의 식객 노릇을 했다고 주장하며 그의 임명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조사 결과 김효원은 윤원형의 식객이 아니라, 윤원형의 사위였던 이조민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인순왕후는 이미 수렴청정에서 물러나 있었기에, 외척으로서 심의겸이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력은 크지 않았다.
1574년 이조정랑 자리에 오른 김효원은 과거 심의겸이 자신을 반대했던 일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듬해인 1575년,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이조전랑 후보로 거론되자 김효원은 이를 강력하게 반대하며 저지했다.[5] 김효원은 심충겸이 인순왕후의 동생, 즉 외척이라는 점을 들어 청요직인 이조전랑직에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후임자 지명권 행사를 거부했다. 결국 심충겸은 이조전랑에 임명되지 못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심의겸과 김효원을 중심으로 한 양측의 갈등은 격화되어 사림 세력이 두 파벌로 나뉘는 동서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심의겸을 지지하는 기성 사림 세력은 서인으로, 김효원을 따르는 신진 사림 세력은 동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당쟁의 심화를 우려한 이이의 중재 노력으로 심의겸은 개성부 유수와 전라도 관찰사 등 외직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함경도 관찰사, 전주 부윤, 예조 참판 등을 역임했으나, 1584년 그를 비호하던 이이가 세상을 떠나자 동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서인이 몰락하면서 결국 파직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심의겸은 파주로 낙향하여 지내다가 1587년에 세상을 떠났다.
심의겸의 날카롭고 타협을 모르는 성격은 결과적으로 조선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자리 잡은 당쟁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김우옹은 선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심의겸과 김효원 본인들은 본래 붕당을 만들 생각이 없었으나, 주변 인물들이 파당을 형성하면서 붕당 정치가 심화되었다고 변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조는 심의겸을 붕당을 일으킨 주요 인물 중 하나로 지목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5. 가족 관계
세종의 국구인 영의정 청천부원군 심온의 6대손이며,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 심회의 5대손이다. 할아버지는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청천부원군 심연원이고, 아버지는 명종의 국구이자 영돈녕부사를 지낸 청릉부원군 심강이다. 어머니 완산부부인 전주 이씨는 효령대군의 5세손이다.
명종의 왕비인 인순왕후는 그의 누나이며, 선조 때 병조판서를 지낸 청림군 심충겸은 그의 동생이다. 또한,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윤두수와 사돈 관계였으며, 인조의 아버지 원종의 국구인 능안부원군 구사맹과도 사돈 관계였다.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조부 | 심연원(沈連源) | 1491년 ~ 1558년 | 영의정, 청천부원군 |
조모 | 경주 김씨(慶州 金氏) | 1485년 ~ 1564년 | 김당(金璫)의 딸 |
아버지 | 심강(沈鋼) | 1514년 ~ 1567년 | 청릉부원군, 영돈녕부사, 명종의 국구 |
외조부 | 전성군 이대(全城君 李薱) | 1488년 ~ 1543년 | 효령대군의 5세손 |
외조모 | 동래 정씨(東萊 鄭氏) | ? ~ 1557년 | 정종보(鄭宗輔)의 딸 |
어머니 | 완산부부인(完山府夫人) 전주 이씨(全州 李氏) | 1512년 ~ 1559년 | 전성군 이대의 딸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누나 | 인순왕후(仁順王后) | 1532년 ~ 1575년 | 명종의 왕비 |
형 | 심인겸(沈仁謙) | 1533년 ~ 1580년 | |
동생 | 심예겸(沈禮謙) | 1537년 ~ 1598년 | |
여동생 | 심술정(沈戌貞) | 1538년 ~ ? | 임영로(任榮老)에게 출가 |
동생 | 심지겸(沈智謙) | 1540년 ~ 1568년 | |
동생 | 심신겸(沈信謙) | 1542년 ~ 1596년 | |
동생 | 심충겸(沈忠謙) | 1545년 ~ 1594년 | 청림군, 병조판서 |
동생 | 심효겸(沈孝謙) | 1547년 ~ 1600년 | |
동생 | 심제겸(沈悌謙) | 1550년 ~ 1589년 |
관계 | 이름 | 생몰년 | 비고 |
---|---|---|---|
부인 | 한은학(韓恩鶴) | 1532년 ~ ? | 한흥서(韓興緖)의 딸 |
장남 | 심론(沈惀) | 1562년 ~ ? | |
며느리 | 문화 유씨(文化 柳氏) | ? | 유공신(柳公信)의 딸 |
손자 | 심익세(沈翼世) | ? | |
차남 | 심엄(沈㤿) | 1563년 ~ 1609년 | 형 심인겸에게 입양됨 |
며느리 | 구경완(具敬婉) | 1563년 ~ 1620년 | 구사맹의 딸, 인헌왕후의 언니 |
손자 | 심광세(沈光世) | 1577년 ~ 1624년 | |
손자 | 심정세(沈挺世) | 1579년 ~ 1613년 | 김제남의 사위, 인목왕후의 형부, 계축옥사 때 처형됨 |
손자 | 심명세(沈命世) | 1587년 ~ 1632년 | 인조반정 정사공신 1등 |
손자 | 심장세(沈長世) | 1594년 ~ 1660년 | 태백오현(太白五賢) |
손자 | 심안세(沈安世) | 1598년 ~ 1616년 | |
손자 | 심필세(沈弼世) | ? | |
손자 | 심희세(沈凞世) | 1601년 ~ 1645년 | 심열(沈悅)에게 입양됨 |
손녀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 | 유준(柳浚)에게 출가 |
손녀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 | 성여용(成汝用)에게 출가 |
손녀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1585년 ~ 1658년[6] | 이식(李植)에게 출가 |
손녀 | 청송 심씨(靑松 沈氏) | ? | 이승형(李承亨)에게 출가 |
장녀 | 심숙신(沈淑愼) | 1574년 ~ 1648년 | |
사위 | 윤훤(尹暄) | 1573년 ~ 1627년 | 윤두수의 아들, 정묘호란 패배 책임으로 처형됨 |
외손자 | 윤순지(尹順之) | 1591년 ~ 1666년 | |
외손자 | 윤원지(尹元之) | 1596년 ~ 1641년 | |
외손자 | 윤징지(尹澄之) | 1601년 ~ 1663년 | |
외손자 | 윤의지(尹誼之) | 1605년 ~ 1666년 | |
외손녀 | 해평 윤씨(海平 尹氏) | ? | 신면(申冕)[7]에게 출가 |
6. 심의겸을 연기한 배우
7. 작품
- 광평대군 이여 신도비
참조
[1]
웹사이트
스카이데일리, 세종 아내 일가후손, 서울·수원 5채빌딩 300억대
https://www.skyedail[...]
2022-11-15
[2]
웹사이트
沈義謙
http://koreandb.nate[...]
[3]
서적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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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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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석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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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선비정부인행장(先妣貞夫人行狀)
[7]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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