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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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경도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으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러 현재의 명칭으로 굳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동북면, 영길도, 함길도, 영안도 등으로 불리다가, 예종 때 함경도로 명칭이 확정되었다. 1895년 23부제 실시로 폐지되었으며, 1896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로 분할되었다. 함흥을 중심으로 행정 구역이 편성되었으며, 북쪽으로는 청나라, 러시아 제국,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평안도, 남쪽으로는 황해도와 강원도에 접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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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유형 | 조선의 이전 지방 |
국가 | 조선 |
지역 | 관북 (북부), 관남 (남부) |
수도 | 함흥 |
방언 | 함경도 |
이름 | |
한글 | 함경도 |
한자 | 咸鏡道 |
로마자 표기 | Hamgyeong-do |
매큔-라이샤워 표기 | Hamgyŏng-do |
역사 | |
설치 | 1413년 |
해체 | 1895년 |
오늘날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강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자강도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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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칭 변천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고려 초에는 화주(영흥군) 이남까지만 영토로 편입되었고, 그 북쪽 지역은 여진족 등의 북방 민족이 차지했다. 고려-몽골 전쟁으로 철령 이북을 상실하여 전부 원나라가 차지했다가, 공민왕 때에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면서 길주까지 회복하였고, 이후 조선 초에 6진 등 북방 개척으로 두만강까지 회복했다. 명칭의 변천은 다음과 같다.
시기 | 명칭 | 비고 |
---|---|---|
1392년(태조 원년) ~ 1413년 | 동북면(東北面) | |
1413년(태종 13년) ~ 1416년 | 영길도(永吉道) | 영흥과 길주에서 유래, 영흥은 태조 이성계의 고향 |
1416년(태종 16년) ~ 1468년 | 함길도(咸吉道) | 함주와 길주에서 유래 |
1468년(예종 원년) ~ 1469년 | 함경도(咸鏡道) | |
1469년(성종 1년) ~ 1509년 | 영안도(永安道) | 이시애의 난에 가담한 이중화의 출신지인 함흥이 부에서 군으로 격하, 영흥과 안변에서 유래 |
1509년(중종 4년) ~ 현재 | 함경도(咸鏡道) | 함흥과 경성에서 유래 |
함경도는 원래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다. 고려 초기에는 화주(영흥군) 이남까지만 영토로 편입되었고, 그 북쪽 지역은 여진족 등 북방 민족이 차지했다.[1] 고려-몽골 전쟁으로 철령 이북을 상실하여 전부 원나라가 차지했다가, 공민왕 때 쌍성총관부를 탈환하면서 길주까지 회복하였고, 이후 조선 초에 6진 등 북방 개척으로 두만강까지 영토를 넓혔다.[1]
18세기에는 중국어를 통해 '''Kyen-king'''으로 표기되었고 "행복한"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19세기에는 '''Ham-kieng'''으로 표기되었다.
한국 내에서 이 도는 "동북"이라고도 불렸으며, 남쪽 절반은 "관남", 북쪽 절반은 "관북"으로 불렸다.
3. 역사
함경도는 시대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렸다.시기 명칭 비고 1392년 ~ 1413년 동북면(東北面) 태조 원년 1413년 ~ 1416년 영길도(永吉道) 태종 13년 1416년 ~ 1468년 함길도(咸吉道) 태종 16년 1468년 ~ 1469년 함경도(咸鏡道) 예종 원년 1469년 ~ 1509년 영안도(永安道) 성종 1년 1509년 ~ 1895년 함경도(咸鏡道) 중종 4년
1895년 팔도가 폐지되고 이십삼부가 설치되면서 함흥부, 갑산부, 경성부로 분할되어 함경도는 폐지되었다. 1896년에 이십삼부가 폐지되고 십삼도가 설치되면서 함흥부와 갑산부를 합쳐 함경남도, 경성부는 함경북도가 되었다.[1]
3. 1. 고려 시대
후고구려의 영역이었다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남부지역은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그러나 화주(和州 : 영흥군) 북쪽은 여진족의 땅이 되었다.[1]
성종 때 10도를 두면서 강원도 지역과 함께 삭방도(朔方道, 삭방은 안변의 별호이다)가 되었다가 현종 때 5도 양계로 정비하면서 동계가 되었다.[1] 윤관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 9성을 쌓았으나, 얼마 후 동북 9성은 여진족에게 돌려주었다.[1] 1258년에 원나라가 차지하고 쌍성총관부를 설치하면서 1356년에 공민왕이 되찾을 때까지 약 100년동안 원나라의 영토가 되었다.[1] 이후 동북면(東北面)이 되었고, 강릉삭방도(江陵朔方道), 삭방강릉도(朔方江陵道) 등으로 불리다가 공양왕때 강릉도(강원도)와 분리되어 별개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1]
3. 2. 조선 시대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함경도는 '''동북면'''으로 불렸다. 태종 13년(1413년)에 도내 영흥(태조 이성계의 고향)과 길주의 이름을 따서 '''영길도'''로 개칭되었다. 조사의의 난 이후, 태종 16년(1416년) '''함길도'''(함주와 길주에서 유래)로 다시 개칭되었다.[1]
세조 13년(1467년)에 처음 '''함경도'''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그러나 성종 원년(1470년), 이시애의 난에 가담한 이중화의 출신지인 함흥이 부에서 군으로 격하되고 관찰사영도 영흥으로 옮겨지면서 '''영안도'''(영흥과 안변에서 유래, 안변은 현재 북한의 강원도)로 개칭되었다.
연산군 4년(1498년) 4월 4일에 영안도에서 '''함경도'''로 다시 개칭되었다. 이후 중종 4년 (1509년)에 함흥의 지위가 회복되고 관찰사영이 함흥으로 다시 옮겨지면서 함경도라는 명칭이 정착되었다.
1895년 팔도가 폐지되고 이십삼부가 설치되면서 함흥, 갑산, 경성으로 분할되어 함경도는 폐지되었다. 1896년 십삼도가 설치되면서 함흥부와 갑산부를 합쳐 함경남도가, 경성부는 함경북도가 되었다.
조선 시대 함경도의 행정 구역 직제는 다음과 같다.[1]
수령과 그 품계 | 경국대전 (1484) | 대전통편 (1785) | 대전회통 (1865) |
---|---|---|---|
부: 부윤(府尹), 종2품 | 영흥(永興) | 함흥(咸興) | 함흥(咸興) |
부: 대도호부사(都護府使), 정3품 | 안변(安邊) | 영흥(永興) | 영흥(永興) |
목: 목사(牧使), 정3품 | 길주(吉州) | 길주(吉州) | |
부: 도호부사(都護府使), 종3품 | 경성(鏡城), 경원(慶源),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흥(慶興), 부령(富寧), 북청(北靑), 덕원(德源), 정평(定平), 갑산(甲山) | 안변(安邊), 경성(鏡城), 경원(慶源),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흥(慶興), 부령(富寧), 북청(北靑), 덕원(德源), 정평(定平), 갑산(甲山), 삼수(三水), 단천(端川), 명천(明川), 무산(茂山) | 안변(安邊), 경성(鏡城), 경원(慶源), 회령(會寧), 종성(鍾城), 온성(穩城), 경흥(慶興), 부령(富寧), 북청(北靑), 덕원(德源), 정평(定平), 갑산(甲山), 삼수(三水), 단천(端川), 명천(明川), 무산(茂山), 장진(長津), 후주(厚州) |
군: 군수(郡守), 종4품 | 삼수(三水), 문천(文川), 고원(高原), 단천(端川), 함흥(咸興) | 문천(文川), 고원(高原) | 문천(文川), 고원(高原) |
현: 현감(縣監), 종6품 | 홍원(洪原), 이성(利城), 길성(吉城), 명천(明川) | 홍원(洪原), 이성(利城) | 홍원(洪原), 이원(利原) |
비고 | 길성→길주 무산(신설) | 장진·후주(신설) 이성→이원 개칭 |
4. 행정 구역
1413년, 한반도 북동쪽 변경은 처음으로 영길도로 편성되었다.
1895년, 이 도는 북동쪽의 경성부(府|푸중국어), 북서쪽의 갑산, 남쪽의 함흥부로 대체되었다.
1896년, 경성부는 함경북도로 개편되었고, 갑산과 함흥부는 함경남도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분할은 현재 북한에서도 이어진다.
4. 1. 조선 시대
《경국대전》에서는 함경도(영안도)의 관할로 1부 1대도호부 11도호부 5군 4현을 규정하고 있으며, 영안도 관찰사가 영흥 부윤을, 북도·남도 절도사가 각각 경성과 북청 도호부사를 겸임한다고 규정하였다. 이후 《속대전》에서는 함경도 관찰사가 함흥 부윤을 겸임한다고 규정하였다.[1]1413년, 한반도 북동쪽 변경은 처음으로 영길도로 편성되었다.
함경도의 관할 구역은 다음과 같았다.
1895년, 이 도는 북동쪽의 경성부(府|푸중국어), 북서쪽의 갑산, 남쪽의 함흥부로 대체되었다.
1896년, 경성부는 함경북도로 개편되었고, 갑산과 함흥부는 함경남도로 개편되었다. 이러한 분할은 현재 북한에서도 이어진다.
4. 2. 현대
1895년, 함경도는 북동쪽의 경성부(京城府, 府|부중국어), 북서쪽의 갑산(甲山), 남쪽의 함흥부(咸興)로 대체되었다.[1]1896년, 경성부는 함경북도로 개편되었고, 갑산과 함흥부는 함경남도로 개편되었다.[1] 이러한 분할은 현재 북한에서도 이어진다.[1]
5. 주요 인물
- 이시애 (이시애의 난 주동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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