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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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키노섬은 일본 규슈 북쪽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고대 제사 유적과 무나카타 대사의 오키쓰궁이 있는 곳이다. 조몬 시대부터 어업 기지로 사용되었으며, 4세기 후반부터 9세기 말까지 국가적인 제사가 행해졌다. 1954년부터 1971년까지 세 차례의 발굴 조사를 통해 약 8만 점의 제사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바다의 쇼소인'으로 불린다. 섬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는 전통이 있다. 오키노섬은 또한 중요 조류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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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노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오키노시마 |
원어 이름 | 沖ノ島 |
![]() | |
위치 | 동해 (일본해), 동중국해 |
좌표 | 34°14′N 130°6′E |
군도 | 일본 열도 |
면적 | 0.97 |
해안선 길이 | 약 4 |
최고 높이 | 243.6 |
인구 | 1명 |
민족 | 일본인 |
행정 구역 | |
국가 | 일본 |
지방 | 규슈 |
현 | 후쿠오카현 |
시 | 무나카타시 |
유네스코 세계유산 정보 | |
유산 명칭 | 무나카타 지역의 오키노시마 섬과 관련 유적군 |
종류 | (ii), (iii) |
ID | 1535-001 |
등재 연도 | 2017년 |
면적 | 68.38 헥타르 |
추가 정보 | |
기타 명칭 | 오키 제도 |
일본어 표기 | 沖ノ島 |
로마자 표기 | Okinoshima |
다른 뜻 | 오키 제도 |
관련 |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에 있는 섬 오키 제도 (오키노시마의 별칭을 가진 군도) 도쿄도 오가사와라 제도에 속하는 섬 (오키노토리시마) 기타 오키노시마, 오키노시마, 오키시마 |
관련 카테고리 | 오키노시마, 무나카타 |
2. 역사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지키''와 ''일본서기''에는 오키노섬에 대한 기록이 있다.[3] ''고지키''에 따르면,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가 칼에서 세 딸을 낳아 일본으로 보냈고, 무나카타 씨족이 이들을 숭배했다.[6] 무나카타에 있는 세 신사의 집합체인 무나카타타이샤는 이 여신들에게 헌정되었으며, 현지인들은 바다 건너에서 그들의 보호를 위해 계속 숭배한다. 섬 자체도 신으로 여겨진다.[1] 본토에는 오키노섬 숭배 장소가 여러 곳 있으며, 섬으로의 여행은 제한된다.[7]
오키노섬에는 섬 안팎의 행동과 관련된 여러 전통과 금기가 있다.[3] 의례적 정화는 옷을 벗고 바다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수행해야 한다.[3] 섬에서는 풀 한 포기도 가져갈 수 없다. 방문 동안 본 것과 들은 것에 대해 누구도 말할 수 없다(''오이와즈-노-시마'').[8] 여성은 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뇨닌 킨세이'').[8]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남자는 사제, 연구자, 군인, 언론인이다.[3] 어부들은 항구에서만 활동하며 내륙으로 들어가지 않는다.[1] 201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을 받기 전에는 200명의 남성이 인근 쓰시마 해전의 1905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년에 한 번 섬을 방문했으나, 유산 등재 이후 이 연례 행사는 취소되었다.[3]
이러한 제한은 오키노섬을 신비로운 장소로 만드는 데 기여하며, "신들이 사는 섬", "바다의 쇼소인 보물 창고", "신비의 섬"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3]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4세기부터 종교 의식이 있었으며,[1][8][3] 그 시대의 수많은 이와쿠라(신성한 바위)가 온전하게 남아 있다.[8] 8만 점 이상의 유물이 발굴되었으며,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3] 오키노섬에 대한 신성한 관점과 다양한 금기는 섬으로의 여행을 방해하고 유물을 보존했을 수 있다.[8]
섬의 신은 한국으로 가는 무역로를 지킨다고 전해졌으며, 안전한 통행을 위해 어부들은 칼, 평철 잉곳, 거울, 청동 용머리 등을 바쳤다. 공물은 돌 아래에 숨겨지거나 바위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2] 1600년대에 기독교 봉건 영주인 구로다 나가마사는 공물을 수집하여 성의 탑에 보관했는데, 전설에 따르면 탑이 흔들리고, 밝은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으며, 질병이 나가마사의 백성을 괴롭혔다고 한다. 나가마사는 물건을 섬으로 돌려보냈고, 불안한 사건은 멈췄다.[2] 오늘날, 많은 보물들이 규슈에 있는 무나카타 신사에 전시되어 있다.[2]
"신의 섬"[17]이라고 불리며, 섬 전체가 무나카타대사 오키쓰궁의 고신타이(신성한 물건)이며, 지금도 여인 금제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남성이라도 일반인은 매년 5월 27일 현지 대제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상륙이 허가되지 않으며, 그 수도 200명 정도로 제한되어 왔다.[18] 세계유산 등록에 즈음하여, 섬으로의 접근・상륙 대책 강화를 유네스코로부터 요청받았기 때문에, 2018년부터 연구자 등을 제외한 일반인의 상륙은 전면 금지하기로 무나카타대사가 2017년 7월에 결정했다.[19]
산 중턱에는 무나카타대사 오키쓰궁 사당이 있으며, 무나카타 삼여신의 타코리히메노카미를 모시고 있다. 섬은 당시의 야마토 조정과 한반도를 잇는 바닷길 "해북도중"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대한민국의 부산까지 불과 1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몽골의 일본 침략 이후 1297년 (에이닌 4년)에 편찬된 『후키와카초』에는 "울렁이는 파도에 북소리를 더하여 당나라 사람은 오키노 섬을 지키지 않는다"라고 읊어져 있어, 오키노섬이 신국사상의 거점으로서 최전선의 방파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55년 (안세이 2년)에 제작된 『황국총해안도』에는 "御号島"로 기재되어 있다. 무인도이지만, 현재는 무나카타대사의 신직이 10일 교대로 파견되어 상시 체류하고 있다.
이집트고고학자 요시무라 사쿠지가 제창하여 규슈 전역, 특히 무나카타 지방을 중심으로 오키노섬을 세계 유산으로 만들려는 운동이 이루어졌고, 2009년 (헤이세이 21년) 1월 5일 "『신이 깃든 섬』무나카타·오키노섬과 관련 유산군"이 세계 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 게재되었다. 2015년 (헤이세이 27년) 7월 28일 문화청문화심의회에 의해 2017년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었고, 2016년 (헤이세이 28년) 1월 28일 정식 추천서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세계유산 센터에 제출되어 현지 시간 27일 오후에 수리되었다. 9월 8일, 유네스코 자문기관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 (이코모스)에서 파견된 뉴칼레도니아 연구자 크리스토프 상드가 상륙 허가를 받아 현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7년 (헤이세이 29년) 5월 6일 오키노섬과 구성 유산의 코야섬, 미카도바시, 텐구암만 등록해야 한다는 이코모스 권고가 나왔지만, 7월 9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코모스에 의해 제외된 나머지 구성 자산(무나카타대사 헤쓰미야·나카쓰미야, 오키쓰궁 요배소, 신바루·누야마 고분군)도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로써 일본이 추천하는 모든 구성 자산의 등록이 결정되었다.[20][21]
영해 유지의 관점에서는, 영해 및 접속수역에 관한 법률에 의한 특정 해역(쓰시마 해협 동수로)의 영해를 나타내는 기점이며,[22] 배타적 경제 수역 및 대륙붕의 보전 및 이용의 촉진을 위한 저조선의 보전 및 거점시설의 정비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저조선 보전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다.[23]
2. 1. 고대 제사 유적
오키노시마 남서부, 표고 75~85미터 부근에 거석군(반좌)이 밀집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고대부터 자연 숭배 형식(고신도)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1932년(쇼와 7년)에 여러 차례의 개축·수리로 거의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무나카타 신사 경내"로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24]
조몬 시대 전기에는 어민들이 상륙하여 바다사자 사냥의 어업 기지로 사용하였다. 야요이 시대의 재지 제사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가는 형태의 동모가 출토되었다.
오키노 섬에서 국가적인 제사가 시작된 것은 4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측된다. 391년에 왜국이 고구려로 출병했을 때, 북부 규슈가 전선이 되었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사의 종료는 9세기 말 무렵으로 보이며, 894년(간페이 6년)에 견당사가 폐지된 것과 신도・신사의 형식이 확립된 것, 불교에 의한 진호 국가의 비중이 증가한 것 등이 이유로 꼽힌다.[28]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4년(쇼와 29년) - 1971년(쇼와 46년)에 걸쳐 세 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오키노 섬 오키쓰 궁(沖津宮) 사(社)전 주변의 거석에 기대어 있는 22개의 고대 제사 유적에서 약 8만 점의 제사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로 인해 오키노 섬은 '''바다의 쇼소인'''이라고 불린다.[29]

오키노시마의 제사 유구[祭祀遺構]의 특징은 일부는 매장 문화재화되지 않고, 유구[遺構]와 유물이 천 년 이상 지표에 노출된 채 훼손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점이다. 지방호족으로는 입수하기 어려운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야마토 정권에 의한 국가적 제사가 행해졌다고 추측된다. 위치 관계와 유물 편년에 따라 4개의 시기로 구분된다.[30]
시기 | 유구 | 특징 | 주요 유물 |
---|---|---|---|
4세기 후반부터 5세기 | 16・17・18・19・21호 유구 | 암상 제사/거석 위에서 제사 | 삼각연신수경[三角縁神獣鏡] 등의 동경 |
5세기 후반부터 7세기 | 4・6・7・8・9・10・11・12・13・15・22・23호 유구 | 암음 유적[岩陰遺跡] 제사/거석의 바위 그늘에서 제사 | 금[金]제 반지 등 한반도 유래의 유물 |
7세기 후반부터 8세기 전반 | 5・(14)・20호 유구 | 반암음・반노천 제사/바위 그늘에 접하는 평탄한 곳에서 제사 | 당삼채 등 중국 유래의 유물 |
8세기부터 9세기 말 | 1・2・3호 유구 | 노천 제사/바위에서 떨어진 평지에서 제사 | 활석제 형대류라고 불리는 사람이나 말과 비슷한 제사용 석제품(모형 제품) 등 국내 생산품 |
이 잃어버린 4세기라고 불리는 시대부터의 오키노시마 제사 유구는 일본의 국가 제사의 기원, 신도고고학에서의 원시 신도의 원류라고 고쿠가쿠인 대학 교수 오카다 쇼지 등이 지적하고 있다.
발굴 조사에서 유물 회수는 암상 및 지표에 노출되어 있던 것의 표층 회수(일부)와 트렌치 조사로 굴착한 범위 내에서 행해졌을 뿐이므로, 암음 및 노천 제사 유물의 대부분은 현재에도 그대로 섬 안에 남아 있다. 회수된 유물의 대부분은 무나카타 대사(헤쓰미야)에 병설된 신보관에서 볼 수 있다.
제41회 세계 유산 위원회에서는, 한국이 "오키노시마의 고고 유물의 대부분이 고대의 중국과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것이며, 그 분석을 진행해야 가치를 완전하게 증명할 수 있다"라고 공동 연구의 조건을 달아 승인했다.[32]
2. 2. 무나카타 대사 오키쓰궁
오키쓰구 신사는 오키노섬의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17세기 중반에 세워졌다. 신사가 신성한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기 전, 주변 부지는 ''가미''를 숭배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신사는 쇼와 시대 이후 비교적 동일한 상태로 유지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여러 번 수리 및 재건축을 거쳤다.[24]
오키노섬 남서부, 표고 75~85미터 부근의 거석군(반좌)이 밀집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돌 쌓기 기단 위에 목조 동판 지붕의 신명조 사전이 세워져 있다. 오키노섬에 사전이 건립된 가장 오래된 확실한 기록은 17세기 중반이며, 그 이전의 사전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이래로 오랫동안 자연 숭배 형식(고신도)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1932년(쇼와 7년)에 여러 차례의 개축·수리를 거쳐 거의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무나카타 신사 경내"로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25]
고사기에는 "무나카타노 오키쓰미야"라고 쓰여 있으며 무나카타타이샤의 오쿠미야로 하는 것은 오랜 옛 관습이지만, 근대적토지등기제도상에서는 사찰 등에 무상으로 빌려준 국유 재산의 처분에 관한 법률(국유 경내지 처분법)에 의해 1952년 (쇼와 27년)에 무나카타타이샤의 소유지(신령)이 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대장성 소관 명의였다. 지적 등기상의 주소는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오시마 오키노시마 2988번지이다.[26]
섬에 상주하는 신직이 묵는 사무소는 오마에하마(오키노시마 어항)라고 불리는 항구에 설치되어 있으며[24], 샘물의 용수가 있고, 태양광 발전장치와 선박 무선 등이 완비되어 있다. 신직은 매일 아침 신찬을 바치는 "닛쿠사이"를 일과로 하고 있다.[26]
2018년 (헤이세이 30년) 2월부터 사전의 수리가 진행되어 10월에 낙성했다.[27]
구 사(社)무소 부지에서의 발굴 조사에서 출토된 토기나 석기로부터, 조몬 시대 전기에는 어민들이 상륙하여 미치(바다사자) 사냥의 어업 기지로서 사용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구 사(社)무소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군용 도로 옆에서 가는 형태의 동모가 출토되었으며, 야요이 시대의 재지 제사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오키노 섬에서 국가적인 제사가 시작된 것은 출토 유물의 연대 편년에서 고분 시대 전기, 4세기 후반 무렵으로 추측된다. 391년에 왜국이 고구려로 출병했을 때, 북부 규슈가 전선이 되었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사의 종료는 9세기 말 무렵으로 보이며, 894년 (간페이 6년)에 견당사가 폐지된 것과 신도・신사의 형식이 확립된 것, 불교에 의한 진호 국가의 비중이 증가한 것 등이 이유로 꼽힌다.[28]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4년 (쇼와 29년) - 1971년 (쇼와 46년)에 걸쳐 세 차례의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오키노 섬 오키쓰 궁(沖津宮) 사(社)전 주변의 거석에 기대어 있는 22개의 고대 제사 유적에서 약 8만 점의 제사 유물이 출토되었다. 2003년 (헤이세이 15년)에는 관련된 유물 모두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로 인해 오키노 섬은 '''바다의 쇼소인'''이라고 불린다.[29]
2. 3. 러일 전쟁과 근현대
1905년 (메이지 38년) 5월 27일, 오키노섬의 신관이었던 사토 이치고로(1889~1974)가 수목 위에서 러일 전쟁의 동해 해전을 목격했다.[33] 그는 양 함대의 승무원을 제외하고 동해 해전을 목격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한 명이며,[34] 그 자세한 내용은 메이지 시대부터 기록된 『오키노섬 일지』에 기록되어 있다.[33]오키노섬은 쓰시마 해협 동쪽 해역에 위치해 있어, 1939년 (쇼와 14년) 대일본 제국 육군은 오키노섬에 시제 15cm 연장 곡사포 2기 4문을 설치했고,[35] 시모노세키 요새 중포병 연대가 배치되어 적 군함·잠수함 격퇴를 임무로 했다. 대일본 제국 해군도 군함을 탐사하는 방비 위소를 설치했으며, 전시 중에는 육해군 합쳐 200명 정도의 군인·병사가 주둔했다. 시라타케(해발 162m) 근처 덤불 속에는 탄약고, 섬 서부의 고지대에는 포대 유적 등 전쟁 유적이 남아 있다.
이러한 군사 시설 건설과 취사를 위해 신목인 원시림을 벌채하여 바다제비와 그 알을 식량으로 삼았다.[36]
'''오키노시마 등대'''는 섬의 주봉인 이치노다케 정상에 세워진 백색 탑형 등대이다. 등화 표고는 253m로, 일본에서 6번째로 높다.[65] 등대는 일본해 해전 직전인 1905년 4월에 설치되었고, 1921년 (다이쇼 10년)에 개수되었을 때 국산 최초의 프레넬 렌즈가 설치되어 2007년 (헤이세이 19년)까지 사용되었다.[66][67] 현재는 무인화되었다.
2002년 (헤이세이 14년), 등대에 NTT 도코모의 안테나가 설치되어 약 20km 사방의 해상에서 휴대 전화 (3G(FOMA)만) 통화가 가능하게 되었다.[68] 2017년 7월까지 LTE(Xi)에 대응할 예정이었다.
3. 전설과 금기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고지키''와 ''일본서기''에는 오키노섬에 대한 기록이 있다.[3] ''고지키''에는 태양신 아마테라스가 칼에서 세 딸을 낳아 일본으로 보냈고, 무나카타 씨족이 이들을 숭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6] 무나카타에 있는 세 신사의 집합체인 무나카타타이샤는 이 세 여신에게 헌정되었다. 현지인들은 바다 건너에서 이들의 보호를 기원하며 계속 숭배해왔다. 섬 자체도 신으로 여겨진다.[1] 본토에는 오키노섬을 숭배하는 장소가 여러 곳 있으며, 섬으로의 여행은 제한된다.[7]
오키노섬에는 섬 안팎에서의 행동과 관련된 여러 전통과 금기가 존재한다.[3] 의례적 정화는 옷을 벗고 바다에서 목욕을 함으로써 수행해야 한다.[3] 섬에서는 풀 한 포기도 가져갈 수 없다. 방문 동안 보고 들은 것은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오이와즈-노-시마'').[8] 여성은 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뇨닌 킨세이'').[8]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남자는 사제, 연구자, 군인, 언론인이다.[3] 어부들은 항구에서만 활동하며 내륙으로 들어가지 않는다.[1] 201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200명의 남성들이 인근 쓰시마 해전의 1905년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한 번 섬을 방문했다. 유산 등재 이후, 이 연례 행사는 취소되었다.[3]
이러한 제한들은 오키노섬을 신비로운 장소로 만드는 데 영향을 준다. 섬의 다른 이름으로는 "신들이 사는 섬", "바다의 쇼소인 보물 창고", "신비의 섬", "말없는 자" 등이 있다.[3]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4세기부터 종교 의식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1][8][3] 그 시대의 수많은 이와쿠라(신성한 바위)가 현재까지 남아있다.[8] 8만 점 이상의 유물이 발굴되었고,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3] 오키노섬에 대한 신성한 관점과 다양한 금기, 금지는 섬으로의 여행을 제한하고 유물을 보존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8]
섬의 신은 한국으로 가는 무역로를 지킨다고 전해진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어부들은 칼, 평철 잉곳, 정교한 거울, 청동 용머리 등 공물을 바쳤다. 공물은 돌 아래에 숨겨지거나 바위 사이에 흩어져 있었다.[2]
1600년대에 기독교 봉건 영주인 구로다 나가마사는 공물을 수집하여 자신의 성 탑에 보관했다. 전설에 따르면, 탑이 흔들리고, 밝은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으며, 질병이 나가마사의 백성을 괴롭혔다고 한다. 나가마사는 물건을 섬으로 돌려보냈고, 불안한 사건은 멈췄다.[2]
오늘날, 많은 보물들이 규슈에 있는 무나카타 신사에 전시되어 있다.[2]
오키노시마 남서부, 표고 75~85미터 부근 거석군(반좌)이 밀집한 장소에 위치한다. 돌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목조 동판 지붕의 신명조 사전이 세워져 있다. 오키노시마에 사전이 건립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7세기 중반이며, 그 이전의 사전 존재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부터 오랫동안 자연 숭배 형식(고신도)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막말 1851년 (가영 4년), 후쿠오카번번사 히라노 구니오미 등이 오키쓰미야의 사전 부정을 위해 무나카타 오시마에 체류했다. 여러 차례 개축과 수리를 거쳐 1932년 (쇼와 7년)에 현재의 형태가 되었다. "무나카타 신사 경내"로서 문화재 보호법에 의해 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무나카타 삼궁(오키쓰미야, 나카쓰미야, 헤쓰미야)은 고기에 신명과 진좌지가 명확하게 기술된 가장 오래된 사찰(창사)이며, 고사기에는 신대 상권, '故其先生神、多紀理毘売命胸形奥津宮坐、次市寸島比売命胸形中津宮坐、次田寸津比売命胸形辺津宮坐、此三柱神胸形君等以三前大神也'라고 쓰여 있다. 이는 야마토국 오미와 신사 미와 산전승의 기술보다 먼저 나온다. 일본 서기에서는 제6단,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의 맹세에서 처음 등장, 천손 강림 이전 아마테라스의 신칙에 의해, 해북 도중에 강림하여 천손을 돕고 천손을 섬기라고 겐카이灘의 섬들에 자리 잡았다.
고사기에는 "무나카타노 오키쓰미야"라고 쓰여 있으며 무나카타타이샤의 오쿠미야로 하는 것은 오랜 관습이지만, 근대적토지등기제도상에서는 사찰 등에 무상으로 빌려준 국유 재산의 처분에 관한 법률(국유 경내지 처분법)에 의해 1952년 (쇼와 27년)에 무나카타타이샤의 소유지(신령)이 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대장성 소관 명의였다. 지적 등기상의 주소는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 오시마 오키노시마 2988번지이다.
섬에 상주하는 신직이 묵는 사무소는 오마에하마(오키노시마 어항)라고 불리는 항구에 설치되어 있으며[24], 샘물이 솟아나고, 태양광 발전장치와 선박 무선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전에는 해변 위쪽 고지대에 사무소가 있었으며, 작은 밭이 만들어져 경작도 이루어졌다[25]。신직은 매일 아침 신찬을 바치는 "닛쿠사이"를 일과로 한다[26]。
2018년 (헤이세이 30년) 2월부터 사전 수리가 진행되어 10월에 낙성했다[27]。
섬 전체가 무나카타 대사의 사유지이므로, 무나카타 대사의 허가 없이는 (공권력 행사를 제외하고) 섬에 상륙하거나 출입할 수 없다. 또한, 섬은 중요한 종교 시설인 동시에 "오키노시마 원시림"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2017년까지는 일반인의 상륙이 허가되었는데, 이는 매년 5월 27일 동해 해전을 기념하여 열리는 현지 대제 때에 한정되었다. 상륙할 수 있는 것은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 중에서 추첨으로 선정된 200명 정도의 남성뿐이었다.
특별한 입국 허가는, 현지 청년단 (겐카이 미라이주쿠 등)에 의한 청소 봉사, 무나카타 계열 신사 (이쓰쿠시마 신사, 벤자이텐) 신주, 네기 인솔에 의한 정식 참배, 정재계 유력자가 대표를 맡는 참배단, 등대와 휴대 전화 안테나의 보수 점검 및 문화재, 자연 보전 상황 확인 작업원 등, 필요한 경우의 공사 관계자 등이 사전에 허가를 얻어 상륙이 인정된다. 그 외, 2012년 (헤이세이 24년) 11월 1일에 무나카타 대사가 초청한 세계 유산 등록 전문 회의의 한국인, 중국인, 스리랑카, 영국인 연구자 등 외국인이 상륙, 2015년 (헤이세이 27년) 10월 24일 후쿠오카에서 개최된 국제 기념물 유적 회의 (이코모스) 총회에 따라 구스타보 아로즈 회장 등 임원이 상륙이 인정되었다.
2015년 11월 17일에는 근래 처음으로 보도진의 일제 상륙을 인정했다. 또한, 보도 관계의 일환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취재도 특별히 허가되는 경우가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이라는 틀은 존재하지 않으며, 2017년까지 일반인 틀에 들어가거나 보도 프로그램 취재의 일환으로 참가하는 것에 그친다.
2018년 이후, 대사의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현지 대제 등의 일반인 상륙 허가를 내지 않는 방침으로 했다.
위의 모든 경우 여성 금제와 미소기는 지켜지고 있다.
세계 유산 등록 전, 아시즈 궁사는 "세계 유산이 되더라도 오키노 섬은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으며, 일반 공개는 물론, 여인 금제의 전통적인 금기도 계승된다. 이 점에 대해 여성 권리 단체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관광 업계에서도 우려가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 지침 "젠더와 세계 유산"[37]에서는 "개별 종교관이나 문화성은 존중한다", "인습을 논의할 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여인 금제가 세계 유산 등록 심사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했다[38]。
국내법적으로는, 무나카타 대사의 사유지 내이며, 소유자가 출입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여성 차별 등의 위헌 (일본국 헌법 제14조에 저촉)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39]。세계 유산 조약에서도 "해당 국내 법령에 규정된 재산권은 해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유권과 그 권리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섬 전체가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1년에 한 번만 상륙이 허용되고,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며, 정화 의식(미소기) 등 금기 사항으로 신성함이 강조되는 오키노시마이지만, 에도 시대에는 후쿠오카 번이 방인을 주둔시켰다. 이는 신역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에도 막부 쇄국정책에 따른 외국 선박 감시 임무였다.
섬에 대한 견문은 섬의 별칭인 "오이야와즈사마(말하지 않는 님)"로서 일절 발설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에도 시대에 들어 카이바라 에키켄은 방인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지쿠젠 국 속 풍토기』에 섬의 상세한 모습을 기록했다. 다만 에도 시대 이전에는 문서에 기록하는 것조차 꺼려졌다는 설도 있다. 또한, 현대에도 "오이야와즈사마"의 범위는 도리이 (실물)에서부터 그 안의 경내이며, 선착장 주변이나 섬의 외관은 특별히 공개를 금지하지 않았다.
섬 안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라도 가지고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지만, 지쿠젠 영주 쿠로다 나가마사는 제사 유물인 금동제 직조기 등을 가신에게 명하여 가져오게 했고, 이후 벌을 받아 유물은 섬으로 되돌려졌다. 또한, 방인들은 섬의 특산물이라 칭하며 산에서 약초를 가져갔다.
섬 안에서의 살생은 금지되어 있지만, 방인과 뱃사람들은 어패류를 먹었고, 나오라이 후에는 술판도 벌어졌다. 방인들은 다수의 무기를 가지고 들어왔다.
오키노시마에는 지쿠젠 오시마 어부들도 방문하여, 정화 의식을 하고 상륙했다. 산에서는 "침을 뱉지 않는다", "볼일을 보지 않는다", "부정한 말을 하지 않는다" 등 부정을 피하는 행위를 하지만, 산과 갯가에는 성과 속의 경계가 있었으며, 섬 전체를 신성시하지는 않았다.[55] 지적도에는 섬의 동해안에 2989번과 2990번이 부여되어 어업 협동 조합 명의로 되어 있으며, 계류 설비와 헛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공사 과정에서 섬의 암벽을 폭파했다). 레저로서의 낚시가 성행한 현대에는, 오키노시마 주변 바다에 어초를 설치하기 위해, 많은 폐선박을 침몰시키고 있다. 또한, 예전부터 지역 어민들은 어업과 낚시를 해양신인 무나카타 신의 선물(사물)이라는 생각으로 행했으며, 어부들은 물고기를 무나카타 신사에 봉납했다. 또한, 정상에는 오키노시마 등대 (후술)가 있으며, 등대에 휴대폰 안테나도 병설되어 있다. 하지만, 신사 외 인공물은 등대와 피난항으로서의 선착장, 방파제, 계류 시설, 신관을 포함한 관계자의 주거 가옥 (태양광 패널도 있다) 등 제한적이다.
1888년 (메이지 21년)에는 무나카타 대사 자체가 남성 씨족을 대상으로 오키쓰미야 참배 여행을 기획하여, 하카타에서 참가자를 모집하여 시행했다 (일정은 6월 24~27일).
러일 전쟁 당시에는 육군 방어 기지가 설치되면서 주둔한 병사들의 입에서 섬의 모습이 언급되었고 (함구령은 없었다), 1936년 (쇼와 11년)에 무나카타 고등 여학교 (현 무나카타 고등학교) 교사였던 타나카 유키오 (1901~1982)가 『무나카타의 여행』을 출간하여 그 존재가 전국에 알려졌으며, 역사학, 민속학, 종교학 등 학술 논의가 활발해졌고, 개인적으로 섬을 방문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오키노시마의 신성성이 강조되고 문화적 공간이 형성된 것은 메이지 시대, 국가 신도 성립 과정과 관련이 있으며[25], 이코모스의 권고에서도 "자연 숭배에 기초한 고대 오키노시마 신앙과 현재 무나카타 대사 신앙의 지속성은 확인할 수 없다", "여성 금지 등 오키노시마 금기 기원은 17세기까지밖에 기록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56]
4. 유네스코 세계유산
2009년, 오키노섬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될 것을 목표로 무나카타 지역의 오키노 섬 및 관련 유적의 일부로 제출되었다.[9][10] 2017년 7월 9일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11]
지역 주민들은 유네스코 목록에 이 섬이 포함되면 섬의 신성함이 위협받을 정도로 관광객이 증가할 것을 우려했다. 무나카타 대사의 주임 사제인 아시즈 타카유키는 오키노섬이 유네스코 문화 유산 목록에 추가되든 그렇지 않든, "호기심으로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12]
"신의 섬"[17]이라고 불리는 오키노섬은 섬 전체가 무나카타대사 오키쓰궁의 고신타이(신성한 물건)이며, 지금도 여인 금제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남성이라도 일반인은 매년 5월 27일 현지 대제 이외에는 기본적으로 상륙이 허가되지 않으며, 그 수도 200명 정도로 제한되어 왔다.[18] 세계유산 등록에 즈음하여, 유네스코로부터 섬으로의 접근・상륙 대책 강화를 요청받았기 때문에, 2018년부터 연구자 등을 제외한 일반인의 상륙은 전면 금지하기로 무나카타대사가 2017년 7월에 결정했다.[19]
이집트 고고학자 요시무라 사쿠지가 제창하여 규슈 전역, 특히 무나카타 지방을 중심으로 오키노섬을 세계 유산으로 만들려는 운동이 이루어졌다. 2009년 (헤이세이 21년) 1월 5일 "무나카타·오키노섬과 관련 유산군"(현재 명칭 "『신이 깃든 섬』무나카타·오키노섬과 관련 유산군")의 구성 유산 중 하나로 세계 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 게재되었고, 2015년 (헤이세이 27년) 7월 28일 문화청 문화심의회에 의해 2017년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2016년 (헤이세이 28년) 1월 28일 정식 추천서가 프랑스・파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센터에 제출되었고, 현지 시간 27일 오후에 수리되었다. 9월 8일, 유네스코 자문기관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 (이코모스)에서 파견된 뉴칼레도니아 연구자 크리스토프 상드가 상륙 허가를 받아 현지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7년 (헤이세이 29년) 5월 6일 오키노섬과 구성 유산의 코야섬, 미카도바시, 텐구암만 등록해야 한다는 이코모스 권고가 나왔지만, 7월 9일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이코모스에 의해 제외된 나머지 구성 자산(무나카타대사 헤쓰미야·나카쓰미야, 오키쓰궁 요배소, 신바루·누야마 고분군)도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되는 것이 결정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이 추천하는 모든 구성 자산의 등록이 결정되었다.[20][21]
일반인의 상륙을 제한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세계유산"이 되었고, 세계유산 등록 시 세계유산 위원회로부터 "오키노섬의 실태를 알 수 있도록 궁리할 필요가 있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지적을 받아 거석 제단을 촬영한 사진과 측량도에 표기된 치수 등을 융합하는 포토그래메트리에 의해 3D 입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5. 중요 조류 지역 (IBA)
오키노섬은 인근의 암초 섬인 코야지마와 함께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에 의해 중요 조류 지역(IBA)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이곳이 일본 비둘기, 줄무늬바다제비, 일본 괭이갈매기 및 북방섬개개비 개체군을 지원하기 때문이다.[13]
6. 자연환경
오키노섬은 인근의 암초 섬인 코야지마와 함께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에 의해 중요 조류 지역(IBA)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이곳이 일본 비둘기, 줄무늬바다제비, 일본 괭이갈매기 및 북방섬개개비 개체군을 지원하기 때문이다.[13]
섬은 신생대 신제3기 중신세의 지각 변동에 따라 해저 암반이 융기한 것이 원형으로, 중핵부는 주로 석영반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4기 홍적세의 최종 빙기에 일본 열도가 유라시아 대륙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시기, 섬의 원형도 육지의 일부(산)가 되어 토양이 퇴적되었다. 홀로세에 빙기가 끝나 해수면 상승으로 쓰시마 해협과 동해가 형성되면서 겐카이灘의 고립된 섬이 형성되었고, 조산 운동으로 해저에 퇴적되어 있던 쓰시마층이 주변 해역에서의 화산 활동으로 분출하여 섬 표면에 노출되는 이암이 되었다.[57]
섬의 형태는 북동⇔남서 방향으로 능선이 뻗어 있으며, 항구와 오키쓰미야가 있는 정면(남동면)은 가파른 절벽이 솟아 있지만, 배면(북서면)은 전체가 무너져 사면을 형성한다. 섬을 상공에서 보면 능선을 향해 방추형을 이루며, 북부에 주봉 이치노다케(해발 243.6m)가 있다.
오키노시마는 아열대성 식물의 북한계로 빈랑이나 넓은잎고란초 등의 아열대성 식물이 생육하며, 산림 지역은 후박나무나 계수나무 등을 중심으로 한 원시림이므로 1926년 (다이쇼 15년) 10월 20일에 "오키노시마 원시림"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검은바다제비, 뿔바다오리 및 슴새 등의 바닷새의 집단 번식지가 되어 있으며, 1978년 (쇼와 59년) 3월 31일에 국가지정 오키노시마 조수 보호 구역(집단 번식지)으로 지정(면적 97ha, 그 중 특별 보호 지구 94ha)되었으며, 겐카이 국립공원의 자연환경 보전 지역이기도 하다.[58]
그 외의 동물상으로는, 파충류에서 뱀이 서식하지 않아 천적이 없는 점을 통해 바닷새가 번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규슈 대학에 의해 실시된 곤충 조사에서는 99과 448종이 확인되었다.[59]
세계 유산 추천에 즈음하여 내걸었던 테마에 "무나카타 신앙의 근간이 되는 해신(해양) 숭배를 표현하는 바다(겐카이灘)"가 있으며, 오키노시마 주변 해역의 자연 환경은 중시된다. 1980년대에 규슈 대학이 실시한 해양 조사에서는 64과 168종을 확인했지만, 최근 조사에서는 남양계 열대어 등이 증가하고 있으며[60], 해조류가 자라지 않게 되는 바다 사막화도 발생하여 어획량이 감소하는 등 지구 온난화(해수온 상승)를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61]
최근에는 해양 투기된 표류·표착 쓰레기의 착안이 확인되어, 성역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경관과 생태계를 손상시킬 우려도 있다.
오키노시마 주변에는 작은 섬과 암초, 여울이 여러 개 있다. 섬의 남쪽 약 1km 지점에 있는 코야지마와 미카도바시, 텐구이와가 오키노시마의 토리이 역할을 한다고 하여 부대 시설로서 세계유산 후보의 구성 자산이 되었고, 세계유산에 요구되는 완전성(인테그리티)으로서의 법적 보호 근거를 충족하기 위해 사적 추가 지정이 이루어졌다. 코야지마(해발 29m)에서는 낚시배에 몰래 숨어 들어온 쥐가 괭이갈매기를 잡아먹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62]
오키노시마 북쪽 해안에서 20~30m 거리에 있는 노리세는, 「해양 관리를 위한 낙도 보전·관리의 기본 방침」에 근거하여 배타적 경제 수역의 외연을 뒷받침하는 낙도로서 2011년(헤이세이 23년)에 행정 재산화되었고, 이듬해 노리세가 공식 명칭으로 지도・해도에 기재되었다.[63]
섬 북동부의 해저 암초에서는 인공적인 계단이나 길과 같은 유적과 같은 구조도 발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해저 유적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학술적인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정식 유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64]
7. 접근 제한과 보존 노력
오키노섬은 섬 전체가 무나카타 대사의 소유이며, 종교적 중요성과 더불어 "오키노섬 원시림"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49] 따라서 일반인의 상륙은 매우 제한적이며, 무나카타 대사의 허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섬에는 여러 전통과 금기가 존재한다.[3] 섬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옷을 벗고 바다에서 목욕하는 의례적 정화를 해야 한다.[3] 섬에서는 풀 한 포기도 가져갈 수 없으며, 방문 동안 보고 들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오이와즈-노-시마'').[8] 또한, 여성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된다(''뇨닌 킨세이'').[8] 섬에 들어갈 수 있는 남성은 사제, 연구자, 군인, 언론인 등으로 제한되며,[3] 어부들은 항구에서만 활동하고 내륙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1]
2017년까지는 매년 5월 27일 쓰시마 해전을 기념하는 현지 대제 때 일반 남성(약 200명)의 상륙이 허용되었으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이 연례 행사는 취소되었다.[3] 2018년부터는 연구자 등을 제외한 일반인의 상륙은 전면 금지되었다.[19] 이는 유네스코의 요청에 따라 섬으로의 접근 및 상륙 대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특별한 입국 허가는 청소 봉사, 신사 참배, 유력 인사 참배단, 시설 보수 점검, 문화재 및 자연 보전 상황 확인 작업원 등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2012년에는 세계 유산 등록 전문 회의에 참석한 외국인 연구자들이,[49] 2015년에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총회 임원들이 상륙하기도 했다.[49]
2015년에는 보도진의 상륙이 허용되었으며,[49]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취재도 특별히 허가되는 경우가 있다.
무단 상륙은 여러 차례 발생해 왔으며, 1998년에는 북한 탈북자가,[40] 1963년에는 한국에서 34명이 밀입국한 사건도 있었다.[41] 이러한 경우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의해 퇴거 강제 처분된다.[42][43] 일본인이나 재류 자격자가 무단 상륙할 경우, 경범죄 처벌법 및 형법 188조의 예배소 불경죄에 해당될 수 있다. 불법 침입을 막기 위해 섬 항만부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44]
섬 주변 암초에 낚시 목적으로 상륙하는 것은 용인되었으나,[45] 2016년부터는 섬 접근을 2km 이내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관계 기관들이 합의했다.[46]
무나카타 대사의 허가를 받은 상륙은 모두 신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 상륙 전에는 나카쓰미야를 참배하고, 오키쓰미야 봉찬회비(사실상 배삯)를 지불해야 한다.[47] 섬에 도착하면 고젠하마에서 전라로 바다에 들어가 미소기(고리)를 해야 한다.[49] 섬 내 식물, 암석 채취는 금지되지만, 샘물(고신수)은 예외이다. 체류 시간은 2시간 정도로 제한된다.[49]
여성은 오시마에 있는 오키쓰미야 요배소에서 오키노시마를 바라보며 참배한다.[49]
오키노시마는 제4종 피난항으로 지정되어 있어,[50] 악천후 시에는 인근 선박이 피난할 수 있도록 항만 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이 경우에도 상륙하려면 사무소 허가와 미소기가 필요하다.[51]
2018년부터 일반인 입도가 금지되면서, 무나카타시는 규슈 본토의 "바다의 길 무나카타 관"에서 오키노섬 3차원 영상을 통해 간접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52]
일반인 상륙 제한으로 "볼 수 없는 세계유산"이 되자, 세계유산 위원회는 오키노섬 실태를 알릴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적했다. 이에 따라 포토그래메트리를 이용한 3D 입체화가 진행되고 있다.
8. 논란
2009년, 오키노섬은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될 것을 목표로 무나카타 지역의 오키노 섬 및 관련 유적의 일부로 제출되었고,[9][10] 2017년 7월 9일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11]
지역 주민들은 유네스코 목록에 이 섬이 포함되면 섬의 신성함이 위협받을 정도로 관광객이 증가할 것을 우려했다. 무나카타 대사의 주임 사제인 아시즈 타카유키는 오키노 섬이 유네스코 문화 유산 목록에 추가되든 그렇지 않든, "호기심으로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12]
오키노섬은 무인도이고 감시원이 적어 불법 침입이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다.
국제 관계상으로는 1998년 쓰시마 해류를 타고 북한에서 온 탈북자가 잠입하여 해상보안부에 신병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40] 1963년에는 한국에서 34명이 밀입국하기도 했다.[41] 이러한 경우,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의해 퇴거 강제 처분된다. 오키노섬의 영해 12해리(nmi)에 들어가는 외국 선박, 군함은 물론, 불법 침입을 시도하여 오키노섬의 접속 수역 24해리(nmi)에 진입한 불법 목적의 선박, 군함은 국제법에 의해 나포, 강제 퇴거 등의 대상이 된다.[42][43] 영해는 이키섬 (다쓰노시마 북서단의 암초), 오키노섬와 미시마섬 사이로 직선 기선이 그어져 있다.
일본인이나 재류 자격자가 무단 상륙했을 경우, 경범죄 처벌법 1조 32호 (입장 금지 장소 등 침입)가 적용되며, 형법 188조의 예배소 불경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 불법 침입 대책으로, 섬의 항만부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44]
섬 주변의 암초 (실질적으로 섬 본체의 지소를 포함)에 낚시 목적으로 상륙하는 것은 용인되어 왔지만,[45] 2016년부터 후쿠오카현과 무나카타시, 무나카타 타이샤, 어업자가 협의를 거듭한 결과, 섬에의 접근은 2km까지로 하는 것으로 거의 합의했다. 그러나, 2km 이내의 해역에 들어간 일본 국적 선박을 단속하는 법률이나 조례는 없으므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46]
8. 1. 여성 출입 금지
섬 전체가 무나카타 대사의 사유지이므로, 무나카타 대사의 허가 없이는 섬에 상륙하거나 출입할 수 없다. 또한, 섬은 중요한 종교 시설인 동시에 "오키노시마 원시림"으로 국가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다.2017년까지는 일반인의 상륙이 허가되었는데, 이는 매년 5월 27일에 동해 해전을 기념하여 열리는 현지 대제 때에 한정되었다. 상륙할 수 있는 것은 사전에 신청한 사람들 중에서 추첨으로 선정된 200명 정도의 남성뿐이었다.
특별한 입국 허가는 청소 봉사, 무나카타 계열 신사 (이쓰쿠시마 신사나 벤자이텐)의 신주·네기 인솔에 의한 정식 참배, 정재계 유력자가 대표를 맡는 참배단, 등대와 휴대 전화 안테나의 보수 점검 및 문화재·자연 보전 상황 확인 작업원 등 필요한 경우의 공사 관계자 등이 사전에 허가를 얻어 상륙이 인정된다. 그 외, 2012년 11월 1일에는 한국인, 중국인, 스리랑카, 영국인 연구자 등 외국인이 상륙하였고, 2015년 10월 24일에는 구스타보 아로즈 회장 등 임원이 상륙이 인정되었다.
2015년 11월 17일에는 보도진의 상륙을 인정하였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의 취재도 특별히 허가되는 경우가 있다. 연예인 등 유명인은 일반인 틀에 들어가거나 보도 프로그램 취재의 일환으로 참가하는 것에 그친다.
2018년 이후, 대사의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일반인의 상륙 허가를 내지 않는 방침으로 했다.
이상의 경우 모두 여성 금제와 미소기는 지켜지고 있다. 세계 유산 등록 전, 아시즈 궁사는 "세계 유산이 되더라도 오키노 섬은 공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명언했으며, 일반 공개는 물론, 여인 금제의 전통적인 금기도 계승된다. 이 점에 대해 여성 권리 단체에서 항의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관광 업계에서도 우려가 확산되었다.
이에 대해 유네스코 지침 "젠더와 세계 유산"[37]에서는 "개별 종교관이나 문화성은 존중한다", "인습을 논의할 장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여인 금제가 세계 유산 등록 심사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했다[38]。
국내법적으로는, 무나카타 대사의 사유지 내이며, 소유자가 출입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여성 차별 등의 위헌 (일본국 헌법 제14조에 저촉)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39]。 세계 유산 조약에서도 "해당 국내 법령에 규정된 재산권은 해하지 않는다"고 하여, 소유권과 그 권리의 행사를 인정하고 있다.
8. 2. 불법 상륙
오키노섬은 무인도이고 감시원이 적어 불법 침입이 여러 차례 발생하고 있다.국제 관계상으로는 1998년 쓰시마 해류를 타고 북한에서 온 탈북자가 잠입하여 해상보안부에 신병이 구속되는 사건이 발생했으며[40], 1963년에는 한국에서 34명이 밀입국하기도 했다[41]。이러한 경우,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에 의해 퇴거 강제 처분된다. 오키노섬의 영해 12nmi에 들어가는 외국 선박, 군함은 물론, 불법 침입을 시도하여 오키노섬의 접속 수역 24nmi에 진입한 불법 목적의 선박, 군함은 국제법에 의해 나포, 강제 퇴거 등의 대상이 된다[42][43]。 영해는 이키섬 (다쓰노시마 북서단의 암초), 오키노섬와 미시마섬 사이로 직선 기선이 그어져 있다.
한편 일본인이나 재류 자격자가 무단 상륙했을 경우, 경범죄 처벌법 1조 32호 (입장 금지 장소 등 침입)가 적용되며, 형법 188조의 예배소 불경죄에도 해당될 수 있다. 불법 침입 대책으로, 섬의 항만부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었다[44]。
섬 주변의 암초 (실질적으로 섬 본체의 지소를 포함)에 낚시 목적으로 상륙하는 것은 용인되어 왔지만[45], 2016년부터 후쿠오카현과 무나카타시, 무나카타 타이샤, 어업자가 협의를 거듭한 결과, 섬에의 접근은 2km까지로 하는 것으로 거의 합의했다. 그러나, 2km 이내의 해역에 들어간 일본 국적 선박을 단속하는 법률이나 조례는 없으므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46]
참조
[1]
웹사이트
The Sacred Island of Okinoshima
https://www.gov-onli[...]
Government of Japan
2020-10-22
[2]
뉴스
A sacred Japanese island struggles secrecy and survival
https://www.latimes.[...]
2017-12-08
[3]
웹사이트
Okinoshima, Japan's Newly Minted UNESCO World Heritage Site
https://www.asianstu[...]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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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 Japanese island that excludes women may soon be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https://www.washingt[...]
2022-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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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Landform features of Okinoshima of Munakata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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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 Geoscience Union.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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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Readable Japanese Mythology: Selections from Nihon shoki and Kojiki
https://www.jstor.or[...]
American Association of Teachers of Japanese
202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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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Sacred Island of Okinoshima and Associated Sites in the Munakata Region
https://www.ltij.net[...]
Let's Travel in Japan!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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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kinoshima Seen from Shint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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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eritage Promotion Committee of Okinoshima Island and Related Sites in Munakata Region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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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kinoshima Island and Related Sites in Munakata Region
https://whc.unesco.o[...]
UNESCO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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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kinoshima Island and Related Sites in Munakata Region
http://www.okinoshim[...]
World Heritage Promotion Committee of "Okinoshima Island and Related Sites in Munakata Region"
20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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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Japan's Okinoshima islands gains Unesco World Heritage status
https://www.b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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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Sacred' men-only Japanese island to make UNESCO bid, but locals fear tourism
http://www.japantime[...]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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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Okinoshima and Koyajima isl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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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Life International
2021-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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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宗像市市勢要覧資料編(2008年版)
http://www.city.m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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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후쿠오카현 시구정촌의 관공서・관청 및 동서남북단점의 경도위도(세계측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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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지리원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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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지형과 역사에서 찾는 후쿠오카
엠디엔코퍼레이션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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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神の島 沖ノ島
小学館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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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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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沖ノ島、一般人の上陸全面禁止へ 世界遺産登録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
2017-07-15
[20]
뉴스
ユネスコ世界遺産に「沖ノ島」日本推薦の構成資産すべて登録
http://www3.nhk.or.j[...]
NHKオンライン
[21]
뉴스
沖ノ島 勧告覆し全て世界遺産
https://news.yahoo.c[...]
Yahoo!뉴스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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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領海及び接続水域に関する法律施行令
https://www1.dosh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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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排他的経済水域等の基礎となる 低潮線を有する離島に関する調査報告書
https://www.kantei.g[...]
首相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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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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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F
『「宗像・沖ノ島と関連遺産群」研究報告』Ⅰ~Ⅲ
http://www.okinos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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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Pen
CCCメディアハウス
2017-07-15
[27]
뉴스
沖ノ島・沖津宮の修復過程の写真を公開
https://mainichi.jp/[...]
毎日新聞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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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宗像大社・古代祭祀の原風景
NHKブック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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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沖ノ島 海の正倉院
http://www.fihes.pre[...]
福岡県保健環境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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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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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月刊出光
出光興産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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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41st World Heritage Committee 9 July 2017 AM PM
https://www.youtube.[...]
UNESCO
2017-07-09
[33]
뉴스
児玉克哉『宗像市大島で日露戦争の慰霊祭~日本とロシアの新たな友好と平和の懸け橋を!』
https://news.yahoo.c[...]
2013-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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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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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日本陸軍の火砲 要塞砲
光人社NF文庫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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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沖ノ島、今も戦争の跡 世界遺産候補「神の島」に砲台・弾薬庫…古木も伐採 元軍人「祭神にお詫びしたい」
https://withnews.jp/[...]
朝日新聞
2015-08-15
[37]
간행물
How does gender affect visiting a World Heritage Site?
https://www.ua.pt/RT[...]
UNESCO
[38]
문서
世界遺産にはギリシアのアトス山や紀伊山地の霊場と参詣道の大峯山寺など女人禁制を堅持している場所がある
[39]
뉴스
女人禁制「沖ノ島」が世界遺産候補に 「島に入りたい」女性の主張は認められるか?
https://www.bengo4.c[...]
法律事務所オーセンス
2015-08-09
[40]
서적
ある北朝鮮難民の告白 韓国と日本を生き抜いた、たった1人の叛乱
扇社
[41]
간행물
ひととき
東海道新幹線
2008-08-01
[42]
문서
なお、領海については無害通航に当たる場合はこの限りでない。また接続水域については、領土・領海に対する通関、財政、出入国管理、衛生に関する法令の違反について防止や処罰を目的とした措置を除き、沿岸国の権限は及ばない。
[43]
웹사이트
特定海域
https://www1.kaiho.m[...]
2018-08-15
[44]
뉴스
沖ノ島に防犯カメラ 無断上陸監視へ2カ所設置
http://www.nishinipp[...]
西日本新聞
2016-05-10
[45]
문서
磯場から沖ノ島内部へ入り込むのは自然保護の法的制限から不法行為である。実際には切り立った断崖でよじ登れない。また漁業にはあたらないため、渡船は筑前大島以外の港からも出航できる
[46]
뉴스
「何キロまで近づいていいか」手付かずの国宝 沖ノ島 接近・上陸懸念
https://headlines.ya[...]
Yahoo!ニュース
2017-05-06
[47]
문서
荒天で渡島が中止になっても返金されない
[48]
문서
沖ノ島の地先権(操業の優先権)が筑前大島(宗像漁協大島支所)にあるため
[49]
문서
荒天で渡島が中止になった場合には、大祭参加者の男性もここを訪れる。また、男性であっても一般人は上陸が原則認められないためここを訪れることになる。
[50]
웹사이트
沖ノ島漁港
https://www.kaiho.ml[...]
福岡海上保安部
[51]
문서
港に投錨し船内で過ごすだけであるなら禊は不要
[52]
웹사이트
海の道むなかた館
http://searoad.city.[...]
海の道むなかた館ホームページ
2017-08-17
[53]
웹사이트
昭和二十五年総理府令第十三号 公職選挙法施行規則
https://laws.e-gov.g[...]
2021-10-27
[54]
문서
期日前投票宣誓書 兼 不在者投票請求書・宣誓書
https://www.city.mun[...]
[55]
문서
現在も用を足すのであれば海でと指示される
[56]
뉴스
ユネスコ諮問機関 信仰の継続性に疑義 世界遺産へ大きな壁 半数除外の理由
http://www.sankei.co[...]
産経新聞
2017-05-25
[57]
간행물
重要な地形・地質
http://d-munahaku.co[...]
[58]
간행물
国指定沖ノ島鳥獣保護区沖ノ島特別保護地区 指定計画書
https://www.env.go.j[...]
環境省
2003-08-27
[59]
간행물
御神体の島・福岡県沖ノ島の昆虫相
http://www.book-stac[...]
ニュー・サイエンス社
2011-07-01
[60]
논문
九州北部対馬暖流岩礁域における磯魚群集の季節的動態
http://www.wdc-jp.bi[...]
魚類学雑誌
[61]
뉴스
神宿る島、観光だけじゃない
http://www.asahi.com[...]
朝日新聞デジタル
2016-01-18
[62]
문서
殺生を禁じる神域であるため害獣や外来生物であっても駆除が難しい
[63]
웹사이트
排他的経済水域(EEZ)外縁を根拠付ける離島の地図・海図に記載する名称の決定について
https://www.kantei.g[...]
首相官邸
[64]
문서
自然科学では中新世の島形成時の柱状節理、あるいは更新世に島が陸地であった際の風化部分が、完新世になり水没したものとされる。島が陸地であったのは約3万年前頃とされ日本列島の旧石器時代であり、大規模な人工的土木構築物は造られなかったとするのが考古学の定説である
[65]
웹사이트
灯台豆知識
http://www6.kaiho.ml[...]
敦賀海上保安部
2013-11-17
[66]
문서
撤去されたレンズは現在犬吠埼灯台に併設された資料展示館で公開されている
[67]
뉴스
国産初の灯台レンズが回転 高さ2.53メートル、重さ2.65トン 銚子・犬吠埼資料展示館
http://www.chibanipp[...]
千葉日報
2013-03-28
[68]
문서
アンテナ設置に際し工事関係者は海保詰所で寝泊りし、毎朝禊をしてから灯台へ向かった
[69]
뉴스
世界遺産・沖ノ島の祭祀遺跡、過去の写真資料使い3次元モデル…「フォトグラメトリ」技術
https://www.yomiuri.[...]
読売新聞
2024-04-06
[70]
뉴스
QUEEN BEETLEに沿岸輸送特許 3/20に沖ノ島遊覧でデビュー
https://funeco.jp/ne[...]
FUNECO
2021-03-16
[71]
간행물
観光事業者と多様な関係者が連携した地域の観光資源の磨き上げを応援します! ~「地域の観光資源の磨き上げを通じた域内連携促進に向けた実証事業」による支援事業の選定(第1次)~
https://www.mlit.go.[...]
観光庁
[72]
잡지기사
「『神宿る島』宗像・沖ノ島 世界遺産をめぐる特別体験ツアー 1泊2日」販売開始のお知らせ
https://crea.bunshun[...]
CREA
2024-04-26
[73]
웹인용
The Sacred Island of Okinoshima
https://www.gov-onli[...]
Government of Japan
2020-10-22
[74]
웹인용
Okinoshima, Japan's Newly Minted UNESCO World Heritage Site
https://www.asianstu[...]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2020-10-22
[75]
뉴스
A Japanese island that excludes women may soon be a UNESCO World Heritage site
https://www.washingt[...]
2017-05-12
[76]
뉴스
A sacred Japanese island struggles secrecy and survival
http://beta.latimes.[...]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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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