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도강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요도강은 비와호에서 발원하여 세타강, 우지강을 거쳐 오사카만으로 흘러드는 강이다. 교토부, 오사카부를 지나며, 키즈강, 가쓰라강과 합류하여 요도가와가 된다. 요도강 유역은 예로부터 정치, 문화, 경제의 중심지였으며, 하천 정비와 개수 사업이 이루어졌다. 근대에는 비와코 소수이 건설과 수력 발전이 시작되었고, 댐 건설과 하천 개발이 진행되었다. 현재는 수질 오염과 어업 자원 감소 등의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며, 뱃길 부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요도강 | |
---|---|
지도 | |
개요 | |
![]() | |
명칭 | 요도강 (淀川, Yodo-gawa) |
다른 이름 | 요도가와강 |
위치 | 긴키 지방 |
종류 | 1급 하천 |
지리 | |
수원 | 비와호 (시가현) |
하구 | 오사카만 (오사카부) |
유역 | 일본 시가현, 교토부, 오사카부, 효고현, 나라현, 미에현 |
길이 | 75.1 km |
유역 면적 | 8,240 km² |
평균 유량 | 163 m³/s |
관측소 | 히라카타 관측소 (1952년 - 2002년) |
본류 | |
본류 | 세타강(비와호 )-우지강-요도강 |
2. 지리
비와호에서 흘러나와 오쓰시를 지나며, 여기서는 '''세타강'''으로 불린다. 교토부에 들어서면서 '''우지강'''으로 이름이 바뀌고, 오야마자키정 부근에서 가쓰라강, 기즈강과 합류한다. 합류 지점부터 하류는 좁은 의미의 '''요도가와'''가 되며, 오사카 평야를 지나 오사카시에서 오사카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미야코지마구 부근에서 구 요도가와와 분류되며, 이후 본류는 '''신 요도가와'''로 불리기도 한다. 하천법상 비와호가 요도가와의 수원이며, 비와호로 흘러 들어가는 모든 하천도 요도가와 수계로 취급된다.[3][4] 에도 시대까지 야마토강도 요도가와에 합류했으나,[5] 개수 공사로 인해 현재는 독립된 수계로 취급된다.
2. 1. 명칭의 유래
"세타가와"는 세타[8], "우지가와"는 우지[9], "요도가와"는 오구라 연못의 출구에 있는 요도 (강이 완만하게 흐르며 생긴 웅덩이를 의미)[9] 등 연안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3. 역사
요도강 유역은 예로부터 일본의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지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닌토쿠 천황 시대에 이바라다 제방 건설을 시작으로 하천 정비가 반복되었지만, 홍수도 자주 발생했다.[1]
헤이안 시대에 헤이안쿄(현재의 교토)가 고대 수도로 선택된 것은 오사카로 흘러 세토 내해로 통하는 요도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1870년대에 첫 기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요도강은 오사카와 교토 사이의 물품 이동 및 운송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858년에는 매일 약 50척의 다양한 종류의 배가 오사카에서 후시미구로 약 1,500명의 사람들을 수송한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에는 오사카와 후시미 사이의 증기선 여행이 12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1]
오늘날 교토부의 우지강(요도강)은 여름과 가을철에 인기 있는 낚시 명소이다.
3. 1. 나라 시대부터 전국 시대까지
나라 시대의 승려 교기는 비와호 주변의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세타강을 따라 있는 산을 깎으려 했으나, 하류 범람을 우려하여 단념했다.[10][11] 헤이안 시대 말기 시라카와 법황은 요도가와 상류인 가모가와의 치수를 "천하 삼불여의" 중 하나로 꼽았다.전국 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시미로 거처를 옮기면서 우지강을 개수했다. 마키시마 제방을 쌓아 우지강의 흐름을 현재와 같이 후시미로 흐르도록 바꾸었다. 이는 후시미성의 외해자 역할을 하고, 수위를 높여 후시미성 아래에 항구를 열 수 있게 했다. 또한, 요도 제방을 쌓아 후시미와 요도를 잇는 가도로 삼고, 분로쿠 제방을 통해 교토와 오사카를 잇는 가도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후시미는 교통의 요충지로 번성했다.
3. 2. 에도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명령에 따라 스미노쿠라 료이 부자는 호코지 대불전(교토 대불) 조영을 위한 자재 운반을 위해 가모강을 이용하고, 영구적인 운하로 다카세강을 개착했다. 이를 통해 교토로의 수운 정비를 행하여 물류를 발전시켰다. 오사카에서는 도톤보리가 개착되었고, 오사카 여름 전투로 황폐해진 시가지 재건 과정에서 수운과 교량 정비도 함께 이루어졌다. 오사카는 에도의 "팔백 팔십 마을"에 비유되어 "팔백 팔십 다리"라고 불렸다.에도 막부는 농업 기술 진보와 신전 개발을 장려했고, 오구라 연못의 간척도 시작되었다. 경제 활성화로 장작과 숯 채취와 신전 개발이 진행되면서 유역의 벌채가 이루어졌다. 삼림 감소는 산간부로부터 토사 유입을 야기했고, 이는 범람의 원인이 되는 하상 상승을 초래했다. 막부는 1660년에 야마시로국, 야마토국, 이가국에서 수목 뿌리줄기 채굴 금지령을 내렸고, 1666년에는 전국적인 제국 산천 율령을 발표했지만 토사 유입은 멈추지 않았다.
세타강 준설은 1670년 비와호 연안 마을들의 탄원으로 국익을 위해 시행되었다. 1684년에는 가와무라 즈이켄이 하천 개수 공사를 진행했고, 1699년에는 "가와무라 즈이켄의 대부신"이라 불리는 대규모 공사가 이루어졌다.[1] 1733년 세타강 유역 주민들이 다시 준설을 요구했지만, 막부는 하류 지역의 치수와 주운에 대한 영향, 그리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하 지라는 점을 고려하여 허가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재첩 채취를 핑계로 강바닥을 파는 방식으로 막부를 농락했고, 결국 겐로쿠 연간부터 메이지 원년까지 재첩 채취에 대한 면세를 받게 되었다. 1737년에는 소규모 준설이 허가되었으나 일시적인 효과에 그쳤다.[2]
다카시마군 후카미조 마을 촌장 후지모토 타로베는 177개 마을의 의견을 모아 군청에 진정했고, 하류의 우지강·요도강 연안 마을들과 협의하여 1785년에 자부신으로 준설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준설도 소규모여서 곧 다시 토사가 퇴적되었다. 후지모토 타로베는 4대에 걸쳐 노력하여 하류 약 300개 마을의 동의를 얻었고, 1831년 오쓰 다이칸소 관리 하에 "가와무라 즈이켄의 대부신" 이후 최대 규모의 준설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는 비와호 연안 300개 마을의 자부신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큰 경제적 부담을 졌다.[3] 한편, 1807년 5월에는 폭우로 비와호 물이 넘쳐 교토·오사카에 홍수가 발생했다는 기록이 아케치의 『운금수필』에 남아있다.[12]
3. 3. 근대의 요도가와 개수 사업
메이지 시대에 도쿄 천도로 쇠퇴한 교토의 산업 부흥을 위해 1885년(메이지 18년) 교토부 지사 기타가키 구니미치는 비와코 소수 건설을 추진했다. 1890년에는 비와코 소수이를 완성하고, 일본 최초의 수력 발전소인 게아게 발전소 운용을 시작하여 교토에 일본 최초의 노면 전차 개업을 가져왔다.[10][11]치수 사업은 조지 아놀드 에셀, 요하니스 데 레케에 의해 사방 공사가 시작되었다. 1889년부터 1897년까지 요도가와 개량 공사로 세타가와 세키 건설, 중류부에서는 후시미-요도 간의 우지가와 하도 변경, 가쓰라가와・키즈가와의 하도를 변경하여 합류 지점을 요도 부근에서 하류 쪽의 현재 위치로 이설, 신요도가와 개착 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세타가와 세키는 1904년에 완공되었고, 신요도가와 개착 공사는 1910년에 완료되었다.[15]
1917년 "다이쇼 대수해" 이후 1918년부터 1932년까지 등받이 둑 축조, 우지가와 오른쪽 기슭 간게쓰 다리-미스에 축제 건설 등이 이루어졌다. 1935년부터는 내무성에 의한 하천 수위 사업으로 세타가와 준설, 오토가와 변경 공사 등이 이루어졌다.
3. 4. 요도가와 수계 개수 기본 계획
1953년 태풍 13호로 인한 수해는 요도강에 과거 최대의 홍수를 일으켜 비와호 연안과 우지강 유역을 중심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러한 수해의 근본적인 대책으로 1954년 '요도가와 수계 개수 기본 계획'이 정리되었다.[18]건설성 긴키 지방 건설국 (현: 국토교통성 긴키 지방 정비국)은 비와호를 포함한 요도강 유역의 하천 종합 개발 사업을 태풍 13호 수해를 기준으로 한 홍수 조절 계획으로 하였다. 요도강 본류 (우지강)에서는 아마가세 댐 건설을 계획했다. 키즈강 유역에서는 지류인 나바리가와에 타카야마 댐 건설을 추진하여 요도강·키즈강의 홍수 조절을 꾀했다. 아마가세 댐은 상류의 시가현이 비와호 개발과 관련하여 현 의회의 건설 반대 결의 채택 등을 실시하여 반대했고, 하류의 교토부 등과의 사업 조정이 난항을 겪었지만 1964년에 완성되었다.[18]
1971년 건설성은 '요도가와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을 수립했다. 이 안에서 슈퍼 제방 도입이나 나가라 가동보의 개축 계획, 키즈강 유역·카츠라강 유역·칸자키강 유역에서의 다목적 댐의 신규 계획을 중심으로 한 치수 대책을 정리했다. 이렇게 계획된 것이 요도강 오제 (요도강) · 이치고 댐 (이치고 오지로가와) · 히요시 댐 (카츠라강) · 히나치 댐 (나바리가와) 등이다.[18]
한편, 지방 자치체에서도 독자적으로 보조 다목적 댐 건설이 실시되었고, 관개 전용 댐 건설을 하고 있던 시가현에서는 요고호의 홍수 조절을 도모하는 요고호 댐 (요고강) 건설을 시작으로 히노강 · 야스가와 · 이시다강 등에서 다목적 댐을 건설했다. 오사카부는 1967년의 호쿠세츠 호우를 계기로 칸자키강 유역의 종합 개발을 계획, 아이카와 댐 (아이카와) · 미노오가와 댐 (미노오가와) 건설을 계획·실시했다.[18]
3. 5. 관개와 수자원 개발
패전 후 식량 증산을 위해 농림성(현 농림수산성) 주도로 국영 농업 수리 사업이 추진되었다.[10] 1947년부터 전국 4개 수계(水系)에서 댐, 두수공, 용수로를 종합적으로 운용하여 물 공급을 촉진하고 농지 개척을 시도했는데, 야스 강이 여기에 포함되었다.[10] 오미 분지는 예로부터 곡창 지대로 알려졌지만, 천정천이 많아 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10] 1939년부터 시가현 주도로 '야스 강 농업 수리 사업'이 추진되었고, 전후 국영 사업으로 야스 강 댐이 건설되었다.[10] 이후 아이치 강의 에이겐지 댐 등이 관개 전용으로 건설되어 오미 분지의 관개 사업이 크게 개선되었다.[10]고도 경제 성장으로 오사카 시, 교토 시 등 간사이 지방의 인구가 증가하고 한신 공업 지대가 팽창하면서 물 수요가 증가했다.[11] 이에 정부는 1962년 수자원 개발 촉진법과 수자원 개발 공단법을 제정하고, 수자원 개발 공단(현 수자원 기구)에 의한 수자원 종합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11] 요도강 수계는 톤 강 수계와 함께 수자원 개발 수계로 지정되어 '요도 강 수계 수자원 개발 기본 계획'에 따라 비와호를 포함한 요도강 수계 전반의 수자원 개발이 시작되었다.[11]
건설성은 고야마 댐(나바리가와) 사업을 승계받아 '키즈 강 상류 종합 개발 사업'으로 쇼렌지 댐(쇼렌지 강), 무로 댐(우다가와), 누메 댐(누메 강), 히나치 댐(나바리가와) 등 "키즈 강 상류 댐군"을 건설했다.[12] 또한 히요시 댐(카츠라 강), 히토쿠 댐(히토쿠오지로지가와), 나가라 가동 보(요도가와 대보로 개축) 등을 건설하여 간사이 지방의 물 수요를 크게 개선했다.[12] 현재는 니부 댐(타카토키 강)과 카와카미 댐(마에후카세 강)이 건설 중이다.[12]
3. 6. 뱃길 부활 움직임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 이후, 재해 복구 시 자재 수송에 있어 수상 수송이 재검토되면서 요도가와 연안에 방재 선착장이 정비되었다. 이와 함께 평상시에는 정기 관광선이 취항하게 되었다.[19] 게이한 홀딩스는 2017년 9월, 오사카 덴마바시의 하치켄야하마 선착장과 요도가와 하천공원의 히라카타 선착장(히라카타시)을 잇는 정기 관광선 운항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요도가와에서의 첫 정기선이며, 게이한 간 항로 개설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20]2024년 10월 13일에는 요도가와 크루즈 FESTIVAL이 개최되어 오사카-히라카타 간 항로에 더해, 62년 만에 히라카타-교토(후시미) 간 관광선이 운항되었다.[19]
4. 환경 문제
2006년 시가현 지사 선거에서 당선된 가다 유키코 지사는 '아깝다'는 슬로건 아래 신칸센 신역, 산업 폐기물 처리장과 함께 댐 건설 계획을 불필요한 공공 사업으로 간주하여 동결을 발표했다. 이는 나가노현에 이은 자치단체 단위의 탈(脫) 댐 시책이었다.
대상 사업은 기타가와 제1댐(기타가와), 기타가와 제2댐(아소가와), 세리타니 댐(세리카와) 등 현영 댐과 국 직할 사업인 오토가와 댐, 니우 댐, 에이겐지 제2댐 등 총 6개 사업이었다. 가다 지사는 재정 문제와 환경 문제 양면에서 댐 사업 중지를 주장하며, 제방 건설이나 산림 정비를 통한 자연 친화적인 치수 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교토부와 교토시는 댐 동결 선언을 지지했지만, 상류 수혜지인 오쓰시, 히코네시, 다카초 등은 댐 건설을 촉구하며 반발했다. 수몰 예정 주민들 역시 조속한 건설을 요구했다. 가다 지사는 초기에는 동결 입장을 고수했지만, 2006년 7월 호우와 나가노현 지사 선거 (다나카 야스오 낙선)의 영향으로 "다른 유효한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댐 건설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2006년 12월, 가다 지사는 세리타니 댐에 대해 긍정적인 검토를 시작했고, 2007년에는 기타가와 제1댐 사업 추진을 표명했다. 오토가와 댐에 대해서도 사업을 용인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지역과의 의견 조율 및 대체안과의 비교를 통해 재정적 관점과의 균형을 맞춘 결과였다. 그러나 자연 보호 단체는 가다 지사의 방침을 '공약 위반'으로 간주하며 반발하기도 했다.
2007년, 가다 지사는 '댐 동결 선언'을 철회하고 오토가와, 니우 양 댐에 대해 구멍 뚫린 댐으로의 건설을 용인하며 국토교통성에 건설 재개를 촉구했다. 국토교통성 긴키 지방 정비국은 '요도강 수계 하천 정비 계획 원안'을 책정하고 동결 댐 건설 재개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오토가와 댐은 치수 댐으로서 건설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요노가와 댐은 2008년 중지가 결정되었고, 니우 댐은 저수 방식에 대한 현과 요고정(현: 나가하마시)의 대립이 있었다. 또한 '유역 위원회' 운영 방식을 둘러싼 비판도 제기되었다.
국토교통성은 요도가와 유역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할 경우 오사카시 중심부가 수몰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을 제시했다. 요도강의 치수는 유역 주민의 안전, 자연 보호, 재정 부담 경감 사이에서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4. 1. 비와호의 오염과 대책
1960년대 이후 비와호 주변이 택지화되었지만, 하수도 정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생활 배수가 그대로 비와호로 유입되었다. 이로 인해 특히 오쓰시와 구사쓰시 연안을 중심으로 한 비와호 남부(남호)의 수질 오탁이 심화되어 적조 발생과 악취 등이 발생하여 어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11]시가현은 하수도 정비 등으로 대응했지만, 긴키 최대의 수원지이기도 한 비와호의 오염은 간사이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합성 세제에 포함된 유기 인 성분이 수질 오탁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지면서, 합성 세제에 대한 규제도 제기되었다. 1980년 시가현 의회는 '비와호 조례'를 제정하여 유기 인 성분을 포함한 합성 세제의 추방 등을 정하고, 비와호의 부영양화를 막고자 했다. 합성 세제 제조사로부터 격렬한 반발이 있었지만, 호소의 수질 오탁으로 고민하는 다른 지역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으며, 수질 오탁 대책의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11]
1984년 호소 수질 보전 특별 조치법이 제정되었다. 1985년 비와호가 이 법의 지정을 받아 수질 보전에 관한 엄격한 대책이 시행되었고, 비와호 유역의 하수도 정비와 하수 처리장에서 질소, 인을 제거하는 고도 처리가 이루어져 수질은 점차 개선되었다.[11]
4. 2. 요도가와의 오염과 대책
요도강 수계의 수질 악화는 쇼와 중기에 문제가 되었다. 쇼와 30년(1955년)과 쇼와 40년(1965년)의 수질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21]지점 | 쇼와 30년 (1955년) | 쇼와 40년 (1965년) |
---|---|---|
세타강에서 우지강 시작 부근의 본류 | 빈부수성 | 빈부수성 (단, 야마나강 합류 직전에서 β-중부수성으로 악화) |
야마나강 (우지강 우안 합류) | 빈부수성 (단, 유입 직전에 α-중부수성으로 악화) | α-중부수성 |
비와호 소수[23] (우지강 우안 합류) | 강부수성 | 강부수성 |
신타카세강 (우지강 우안 합류) | 강부수성 | 강부수성 |
하치만 앞[24]까지의 우지강 본류 | 우안: α-중부수성 좌안: 빈부수성 (하치만・야마자키 부근에서 양자 혼합되어 β-중부수성) | 우안: α-중부수성에서 강부수성 좌안: β-중부수성에서 α-중부수성 |
기즈강 (우지강 좌안 합류) | 빈부수성 | β-중부수성 |
가쓰라강 (우지강 우안 합류) | 강부수성 | 강부수성 |
하치만・야마자키 이후[25] 요도강 본류 | 우안: 강부수성 (단, 히라카타시 부근에서 α-중부수성으로 회복) 좌안: β-중부수성 | 우안: 강부수성 (이후 도리카이 부근까지 회복되지 않음) 좌안: β-중부수성이지만히라카타 부근에서 α-중부수성으로 악화 |
아쿠타강 (요도강 우안 합류) | α-중부수성 | 강부수성 |
히라카타 부근[26] 이후의 요도강 본류 | 우안: α-중부수성 좌안: β-중부수성 (도리카이 부근에서 혼합되어 α-중부수성이 되고, 이후는 감조역까지 동일) | 우안: 강부수성 좌안: α-중부수성 (도리카이 부근에서 혼합되어 α-중부수성이 되고, 이후는 감조역까지 동일) |
쇼와 30년 시점에서 교토시에서 하수가 흘러드는 하천(가쓰라강 등)이 오염되었고, "(도리카이에서 앞의 니와쿠보・시바시마 부근에서) 상수도의 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양쪽 모두 상수의 수원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쇼와 40년에는 후시미 평호 갑문에서 배출되는 비와호 소수나 신타카세강이 같은 강부수성이라도 극도로 오염되어 합류 후 우안(두 하천의 합류 측)으로부터 상당한 거리가 강부수성이 되었고, 하류의 삼천(우지강・기즈강・가쓰라강) 합류점 부근이나 미유키 다리에서는 쇼와 30년에 β-중부수성이었던 곳이 α-중부수성으로 악화되었다.
삼천 합류점 하류에서는 오염이 심했던 가쓰라강의 오수를 희석시키던 우지강과 기즈강의 수질 악화로 회복이 더뎠다. 야마자키에서 시바시마까지 우안에는 두꺼운 오탁균 피복이 보였으며, 비교적 상태가 좋았던 좌안도 오탁균이 증가했다.[27]
이에 교토시는 하수도를 정비하여 2019년도 말에는 시가지화 구역의 99.5%에 달했다. 그러나 초기 하수도는 우수와 오수를 함께 흘려보내는 합류식(약 40%)이라 집중 호우 시 오수가 미처리된 채 강에 흘러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0년대 중반부터 저수 간선을 정비, 호리카와도리 아래 직경 6m, 길이 2.7km, 저수량 7만㎥의 '호리카와 중앙 간선'을 시작으로 총 50만 7천㎥의 우수 저장 설비를 정비했다. 또한 4개 시영 하수 처리장에 질소・인 제거 고도 처리 설비를 도입, 유젠 염색 제조 시 발생하는 색소 오수 처리를 위해 2곳 하수 처리장에서는 오존 처리를 도입했다. 그 결과, 처리수 BOD는 국가 기준(1L당 20mg)보다 낮은 1L당 3mg 전후로 정화된다. 서일본 최대 하수 처리장 도바 물 환경 보전 센터에서는 2012년부터 메가 솔라를 설치, 2021년도부터 오니를 연료로 가공하여 화력 발전을 할 예정이다.[28]
교토부도 가쓰라강에 난탄 정화 센터, 락사이 정화 센터를 건설하고, 야와타시의 우지강・기즈강 합류부 부근에 락난 정화 센터(1986년 3월 공급 개시), 세이카정에 기즈강 상류 정화 센터(1999년 11월 공급 개시) 등 하수도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하류의 오사카부는 상수도 취수구가 여러 곳 있어 요도강 좌안 "나기사 물 미래 센터(히라카타시)"에서는 처리수를 네야가와로 배수, 일부는 게이한 히라카타시역이나 주변 공공 시설에서 재이용한다. 요도강 우안 "다카쓰키시 물 미래 센터", "이바라키시 중앙 물 미래 센터"에서는 처리수를 아이강에서 칸자키강으로 흘려보낸다.
4. 3. 어업 자원 문제
1980년대 이후 비와호에서 블랙 배스 등 외래어종이 확산되면서 재래 어패류의 생태계가 파괴되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특히 블랙 배스나 블루길과 같이 흉포한 어류는 비와호 재래 어패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업협동조합이 구제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2003년 시가현은 블랙 배스 방류 금지 및 벌칙을 명시한 "'비와호 레저 이용 적정화 조례'"를 제정했다. 어업 관계자들은 환영했지만, 시미즈 구니아키 등 배스 낚시 애호가들은 맹렬히 반대했다. 현재 비와호에서는 블랙 배스 방류가 금지되었으며, 가져가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1993년 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로 지정된 비와호에는 조류도 많이 서식하는데, 최근 가마우지의 이상 번식이 새로운 문제가 되고 있다. 가마우지 떼가 저녁 무렵 하천이나 호수의 어류를 포획하여 어업 수확량이 감소하고, 배설물로 인한 삼림 및 건축물 피해가 다케시마(시가현)를 중심으로 비와호 북부 지역에서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요도가와 하류역에서는 갈대 군생지 수몰 등으로 멸종 위기종인 이타센바라 개체 수가 격감했다. 국토교통성 긴키 지방 건설국은 인공 웅덩이를 설치하여 이타센바라 서식지 확보 및 개체 수 회복을 도모하는 대책을 실시했지만, 현재로서는 개체 수 회복이 절망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만 최근 요도가와의 수질 개선으로 신요도가와에서 천연 장어가 잡혀 브랜드화되거나, 천연 은어가 요도가와에서 가쓰라가와·가모가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확인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5. 주요 하천
(km)
면적
(km2)
2차
지류
호소
도도부현
시군
키타가와
핫토리가와
마에후카세가와
이자키가와
나바리가와
오세가와
누노메가와
와즈카가와
시라사고가와
쇼렌지호
무로호
히나치호
누노메호
(호즈가와)
소노베가와
덴진가와
키즈가와
도톤보리가와
도지마가와
덴마가와
토사보리가와
네야가와
아이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