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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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854년)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에서 기원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가 머물며 국가의 축원 도량으로 사용되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되었다. 조선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이장하고 능사로 용주사를 창건하였으며,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30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0호 용주사 동종, 보물 제1754호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대웅보전 후불탱화 등이 있다. 현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경기도 남부 지역의 80여 사찰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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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주사 -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은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불교를 장려하기 위해 1790년에 건립한 정면 5칸, 측면 5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며 보물로 지정되었다가 한국 전쟁 때 소실 후 복원되었다. - 용주사 - 화성 용주사 동종
화성 용주사 동종은 854년 범일이 주조하여 병자호란의 화마를 피해 보존되어 1790년 용주사 재건과 함께 다시 설치된 조선 시대의 동종으로, 용뉴, 비천상, 삼존상 등의 장식과 문양을 갖추고 한국 불교 미술과 종 제작 기술을 보여주는 국보 제120호 문화유산이다. - 경기도의 절 - 용문사 (양평군)
용문사는 913년 신라 신덕왕 때 대경이 창건한 사찰로, 고려 시대에 대장경을 봉안하고 조선 시대에 중창되었으며, 현재 대웅전, 은행나무 등 여러 문화재를 보유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경기도의 절 - 수종사
남양주시에 위치한 수종사는 두물머리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관과 세조의 창건 설화가 깃든 사찰로, 명승 제109호로 지정되었으며 팔각오층석탑과 사리탑 등 여러 보물이 있다. - 일제강점기의 불교 - 범어사
범어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 중건되었고, 조선시대 불교 탄압에도 존속하며 근대 고승들의 수행을 통해 선불교 전통을 계승하고, 현재도 한국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사찰이다. - 일제강점기의 불교 - 법주사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번성하고 조선 시대에 재건되었으며, 국보와 사적을 보유하고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찰이다.
용주사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위치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
좌표 | 37°12′44″N 127°00′18″E |
종교 | 조계종 |
google_map | 용주사 |
일반 정보 | |
한국어 이름 | 용주사 (龍珠寺) |
영어 이름 | Temple Yongju |
로마자 표기 | Yongjusa |
한자 표기 | 龍珠寺 |
종류 | 불교 사찰 |
역사 | |
창건 연도 | 854년 |
창건자 | 염거 |
중창 연도 | 1790년 (조선 정조 14년) |
중창 주체 | 정조 |
과거 이름 | 갈양사 (葛陽寺) |
소속 | |
종파 | 조계종 |
본사 | 조계종 제7교구 본사 |
과거 소속 | 조선삼십본산 (일제강점기) |
주요 인물 | |
관련 인물 | 정조 |
주요 내용 | |
주존 |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
2. 역사
854년(문성왕 16년), 가지산문(迦智山門)의 2대 조사인 염거 화상(廉居和尙)이 가량사(伽良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은 염거화상이 갈양사를 창건한 것을 용주사의 창건으로 보고 있다.
조선 시대, 태종 (1407년, 태종 7년)과 세종 (1424년, 세종 6년)의 불교 탄압 당시 존속을 허가받은 사찰 목록에 용주사의 이름이 없어, 폐사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량사는 이후 중건되었으나, 병자호란(1636년~1637년) 때 소실되었다.
이후 조선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를 화성으로 이장하고, 능 근처 갈양사 터에 장헌세자의 능사로 용주사를 창건했다.
2. 1. 고려 시대: 국가의 축원 도량
고려 광종 때 혜거국사가 머물며 국가의 축원도량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3] 수륙대재가 우리나라 최초로 970년 광종 때 시작되었고,[2] 고려 왕실의 원찰이 되어 국가적 지원을 받기 시작하였다.[3]2. 2. 조선 시대: 정조의 효심과 용주사 중창
정조는 즉위 13년에 전농동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 근처로 이장하고, 행궁을 만드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였다. 아버지 묘와 화성의 건설 과정을 보기 위해 수시로 이곳까지 거둥하게 되자 아예 시흥으로 질러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고 안양의 만안교라는 돌다리도 새로 만들었다.[1]이때 정조의 마음을 크게 움직인 스님이 보일스님이다. 장흥 가지산 보림사 출신이었던 보일스님은 정조에게 부모은중경의 내용을 설해주었다고 한다. 정조는 보일스님이 들려준 부모은중경의 내용에 깊은 감명을 받아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고 그 주변에 폐사된 갈양사터에 절을 새로 중창하여 용주사라 이름 붙여서 사도세자 묘의 능침사찰로 삼았다.[1]
1790년(정조 14년), 정조가 비명에 죽은 생부 장헌세자의 능을 화성으로 이장하고, 능 근처 갈양사 터에 장헌세자의 능사로 용주사를 창건했다. 낙성식 밤에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꾼 데서 유래하여 용주사로 명명되었다고 전해진다.[1]
2. 3. 일제강점기와 현대
일제강점기에 30본산 중 하나가 되어 경기 남부의 49개 절과 암자를 관할하는 본사 역할을 한다.[3]1911년 사찰령 시행 규칙(7월 8일)에 의해 조선 30본산으로 지정되었다. (1924년 이후 조선 31본산)
용주사는 정조의 효성이 깃든 효심의 본찰이자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 사찰을 거느린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오랜 역사와 문화재, 수행의 전통을 간직한 사찰이다.
3. 주요 문화재
용주사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문화재가 있다.
- 용주사 동종(국보)
-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보물)
-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보물)
- 용주사 회양목(천연기념물)
유형 | 명칭 | 지정 번호 |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용주사상량문 | 제13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전적수사본 | 제14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용주사병풍 | 제15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용주사대웅전후불탱화 | 제16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용주사오층석탑 | 제212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용주사대웅보전목조삼세불좌상 | 제214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목조감실 | 제222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지장전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일괄 | 제223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 제225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중종 | 제226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 | 제237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화성 용주사 전답양안2건 | 제269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 용주사 천보루 | 제36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 화성 용주사 목조불패 | 제151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 화성 용주사 목조소대 | 제152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 화성 용주사 청동시루 | 제156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금동향로 | 제11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 청동향로 | 제12호 |
3. 1. 국보
용주사 동종은 국보 제120호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종에는 "석반야가 성황산 가량사를 위해 청동 15000kg으로 주조했다. 정조 16년 9월, 승려 염거"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1] 이를 통해 승려 염거가 설악산 억정사, 원주 흥법사, 그리고 용주사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염거화상의 승탑은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양식으로 보아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1]3. 2. 보물
-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 보물 제1754호
-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 보물 제1942호
- 국보 제120호 범종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판목 - 보물 제1754호
3. 3. 경기도 유형문화재
지정 번호 | 명칭 | 비고 |
---|---|---|
제13호 | 용주사상량문 | |
제14호 | 전적수사본 | |
제15호 | 용주사병풍 | |
제16호 | 용주사대웅전후불탱화 | |
제212호 | 화성용주사오층석탑 | |
제214호 | 화성용주사대웅보전목조삼세불좌상 | |
제222호 | 화성 용주사 목조감실 | |
제223호 | 화성 용주사 지장전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일괄 | |
제225호 | 화성 용주사 삼장보살도 | |
제226호 | 화성 용주사 중종 | |
제237호 | 화성 용주사 남무대성인로왕보살번 | |
제269호 | 화성 용주사 전답양안2건 |
용주사 대웅보전은 1790년에 건립되었으며, 부처님 상을 모시고 있는 중심 건물이다. 오래된 건물은 아니지만, 건립 당시의 규모와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다포계 양식이며, 겹처마에 다채로운 색상과 문양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돋보인다. 사찰 건축의 특징과 더불어 궁궐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용주사 대웅보전의 주불화는 가로 3m, 세로 4m의 그림으로, 김홍도가 그렸다.[1] 주불화는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윗단에는 모든 중생의 질병과 고통을 덜어주는 약사불이 왼쪽에, 모든 중생을 천국으로 인도할 아미타불이 오른쪽에 위치하며, 그 사이에 불상이 놓여 있다. 아랫단에는 십대제자, 부처의 제자들과 불교의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그림 속 모든 사람이 부처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특징이며, 원형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정조는 용주사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가장 아끼던 화가인 김홍도(金弘道, 호: 단원)를 기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김홍도는 용주사 대웅전에 이 그림을 그렸으며, 현재 이 그림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어 있다.[1] 이 두루마리 그림은 서양화의 원근법과 음영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인쇄하는 데 사용된 목판(보물 제1754호)은 김홍도의 삽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아름다움으로 널리 칭송받고 있다.[1]
3. 4. 경기도 문화재자료
명칭 | 지정 번호 |
---|---|
천보루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 |
화성 용주사 목조불패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1호 |
화성 용주사 목조소대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
화성 용주사 청동시루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6호 |
4. 템플스테이
용주사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4] 방문객들은 불교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1]
5. 기타
참조
[1]
웹사이트
Yongjoosa temple Templestay program
http://eng.templesta[...]
2016-03-29
[2]
뉴스
“용주사 수륙대재 정신으로 지구촌 밝힌다"
https://news.bbsi.co[...]
BBS불교방송
2023-10-26
[3]
웹인용
교구본사 제2교구 용주사
http://www.buddhism.[...]
대한불교조계종
2023-11-05
[4]
웹사이트
용주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http://templestay.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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