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은 1967년 울산의 발전을 기원하며 건립된 건축물이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치사문과 울산공업센터 지정 선언문 등이 비문으로 새겨져 있다. 톱니바퀴 모양의 기반 위에 철근 콘크리트 기둥, 지구본, 월계수 잎, 남성 군상, 여성상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제 개발과 울산의 발전을 상징한다. 기념탑은 울산 남구에 위치한 공업탑로터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2010년 정비 공사 과정에서 조형물 부실 시공 논란이 있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대한민국의 탑 - 83타워
83타워는 대한민국에 위치한 고층 타워로, 지하 주차장, 로비, 유로지움, 아이스링크, 매직아트, 기념품 판매점, 푸드코트 등 다양한 시설과 전망대, 스카이점프와 같은 체험 시설을 갖춘 83층 건물이다. - 대한민국의 탑 - 경주타워
- 대한민국의 기념물 - 전쟁기념관 (대한민국)
전쟁기념관은 1994년 개관한, 한국 전쟁사를 다루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비영리 시설로, 전시 공간과 야외 전시장을 운영하며, 2010년부터 상설 전시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 대한민국의 기념물 -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하기 위해 대한민국과 세계 각지에 설치된 조형물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상징이자 전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반발과 역사 왜곡 시도, 일부 단체의 철거 운동 등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 1967년 완공된 건축물 - 치체르나카베르드
치체르나카베르드는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있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추모 기념관으로, 44미터 높이의 원주와 12개의 석판, 영원한 불꽃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95년에는 아르메니아인 학살 박물관이 개관했다. - 1967년 완공된 건축물 - 오스탄키노 타워
오스탄키노 타워는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540.1미터 높이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송신탑으로, 1959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967년에 완공되었으며, 방송 채널 송출과 전망대,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 - [지명]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다른 이름 | 공업탑 (工業塔) |
로마자 표기 | Gongeoptap (Industrial Tower, Industry Tower) |
위치 | 울산 |
건립 정보 | |
착공 | 1962년 |
준공 | 1967년 (탑) |
완공 | 1974년 (공원) |
종류 | 기념물, 로터리 |
2. 건립 배경 및 역사
1962년 당시 울산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명되고, 울산공업센터가 세워지면서 울산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 공업탑이 건립되었다. 설계와 건축은 부산 서면에 '부산탑'이라 불리던 국가재건비를 건립한 경력의 박칠성이 맡았다. 500만원의 예산은 대한민국 정부와 울산시에서 각각 절반씩 부담했다.
1967년에 건설된 부분은 지금의 하얀 탑과 주변의 동상이며, 화단과 분수대는 10여 년 후인 1974년 완성되었다. 공업탑의 준공식에는 박정희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였다.
2. 1. 울산공업센터 지정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는 울산공업센터 지정을 선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및 기타 관련 산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의 두왕리, 범서면의 무거리, 다운동리 및 농소면의 화봉리, 송정리를 울산공업지구로 설정했다.2. 2. 공업탑 건립
1962년 당시 울산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명되고, 울산공업센터가 세워지면서 울산의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67년 공업탑이 건립되었다. 설계와 건축은 부산 서면에 '부산탑'이라 불리던 국가재건비를 건립한 경력의 박칠성이 맡았다. 500만원의 예산은 대한민국 정부와 울산시에서 각각 절반씩 부담했다.1967년에 건설된 부분은 지금의 하얀 탑과 주변의 동상이며, 화단과 분수대는 10여 년 후인 1974년 완성되었다. 공업탑의 준공식에는 박정희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국무총리가 대신 참석하였다.
2. 3. 공업탑 정비 및 보수
3. 형태와 상징
공업탑은 톱니바퀴 모양의 기반 위에 철근 콘크리트물 다섯 개가 기둥으로 되어 있고, 상단부에는 톱니바퀴가 둘러져 있고 월계수잎으로 둘러싼 지구본이 있다. 탑의 앞뒤로는 청동 남성군상과 대리석 여성상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황동 재질로 바뀌었다.
콘크리트로 된 다섯 기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인구 50만을 상징한다. 경제개발이 화두였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10만명이 채 안되던 울산의 인구가 50년 안에 50만명이 되기를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탑 상부의 지구본은 세계 평화를, 월계수잎은 승리를, 톱니바퀴는 공업도시인 울산을 상징하며, 울산이 세계로 뻗어나가 공업 한국의 승리를 맞이하자는 것이다. 남성군상은 근면과 인내로 울산을 건설하자는 취지를, 여성상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힘차게 시작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3. 1. 구조 및 재료
공업탑은 톱니바퀴 모양의 기반 위에 철근 콘크리트 다섯 개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부에는 톱니바퀴가 둘러져 있고 월계수 잎으로 둘러싼 지구본이 있다. 탑의 앞뒤로는 청동 남성 군상과 대리석 여성상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황동 재질로 바뀌었다.콘크리트 기둥 다섯 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인구 50만을 상징한다. 이는 당시 울산의 인구가 10만 명이 채 안 되었지만, 50년 안에 50만 명이 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탑 상부의 지구본은 세계 평화를, 월계수 잎은 승리를, 톱니바퀴는 공업 도시인 울산을 상징한다. 이는 울산이 세계로 뻗어 나가 공업 한국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성 군상은 근면과 인내로 울산을 건설하자는 취지를, 여성상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며 힘차게 시작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3. 2. 상징적 의미
공업탑은 톱니바퀴 모양의 기반 위에 철근 콘크리트물 다섯 개가 기둥으로 되어 있고, 상단부에는 톱니바퀴가 둘러져 있고 월계수잎으로 둘러싼 지구본이 있다. 탑의 앞뒤로는 청동 남성군상과 대리석 여성상이 있었으나, 현재는 모두 황동 재질로 바뀌었다.콘크리트로 된 다섯 기둥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인구 50만을 상징한다. 경제개발이 화두였던 당시의 모습과 함께 10만명이 채 안되던 울산의 인구가 50년 안에 50만명이 되기를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탑 상부의 지구본은 세계 평화를, 월계수잎은 승리를, 톱니바퀴는 공업도시인 울산을 상징하며, 울산이 세계로 뻗어나가 공업 한국의 승리를 맞이하자는 것이다. 남성군상은 근면과 인내로 울산을 건설하자는 취지를, 여성상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모습으로 힘차게 시작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4. 비문
문수로 방면의 건설인상 아래에는 박정희 당시 육군 대장 겸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및 울산공업센터 지정 선언문이 적혀 있고, 그 옆에는 기념탑 건립 취지문이 별도로 세워져 있다. 이후 2012년에는 울산공업센터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만든 울산도약 제2선언문이 공업탑 정비공사 이후 공업탑로터리 내 두왕로 방면에서 제막했다.
탑 주변에는 4개의 금석문이 있는데, 그 중 2개는 1962년 독재자이자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가 작성했고, 다른 하나는 1967년 기념비 건립 위원회가 작성했으며, 나머지 하나는 2012년 울산시가 작성했다.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육군 대장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다음과 같은 치사문을 발표했다.
사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 공업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재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 5·16 혁명의 진의는 어떤 정권에 대한 야욕이나 정체의 변조에도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로지
이 겨레로부터 빈곤을 구축하고 자손만대를 위한 영원한 민족적 번영과 복지를 마련할 경제재건을 성취하여야 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
에서 궐기했던 것입니다. 이 울산 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온 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서 이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하여 분기 노력해 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이 치사문에서 독재자 박정희는 울산공업센터 건설이 4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의 숙원인 부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5.16 군사정변은 정권욕이 아닌 경제 재건을 위한 숭고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울산공업센터 건설은 혁명 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사업임을 천명했다. 이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울산공업센터를 통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표현은, 단순한 경제성장을 넘어,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16 군사정변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려는 의도 또한 엿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및 기타 관련 산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울산군의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의 두왕리, 범서면의 무거리, 다운리 및 농소면의 화봉리, 송정리를 울산공업지구로 설정함을 이에 선언한다.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아시아·태평양 시대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동해바다의 검푸른 물결을 바라보면서 조국 근대화의 고동소리도 우렁차게 메아리치는 이 고장 울산! 공업입국에 앞장선 지도 어느덧 여섯 해가 되었다. 한 줌의 흙, 한 그루 나무에도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역사가 담겨있는 이 터전에 맥을 잡고 삽을 내리니, 숙명처럼 되풀이해온 나라와 겨레의 가난과 슬픔은 새 역사와 더불어 윤택의 기쁨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기쁨과 자랑을 길이 기념하고 보다 더 알찬 앞날을 다지기 위하여 겨레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우고, 선언문과 치사문을 수록하여 땀 흘려 이룩한 민족 중흥의 교훈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1967년 4월 20일, 울산공업센터 기념탑 건립위원회
4. 1. 박정희 관련 비문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육군 대장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다음과 같은 치사문을 발표했다.사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 공업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재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 5·16 혁명의 진의는 어떤 정권에 대한 야욕이나 정체의 변조에도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로지
이 겨레로부터 빈곤을 구축하고 자손만대를 위한 영원한 민족적 번영과 복지를 마련할 경제재건을 성취하여야 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
에서 궐기했던 것입니다. 이 울산 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온 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서 이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하여 분기 노력해 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이 치사문에서 박정희는 울산공업센터 건설이 4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의 숙원인 부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5.16 군사정변은 정권욕이 아닌 경제 재건을 위한 숭고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울산공업센터 건설은 혁명 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사업임을 천명했다. 이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울산공업센터를 통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표현은, 단순한 경제성장을 넘어,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16 군사정변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려는 의도 또한 엿보인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종합제철공장, 비료공장, 정유공장 및 기타 관련 산업을 건설하기 위하여 경상남도 울산군의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의 두왕리, 범서면의 무거리, 다운리 및 농소면의 화봉리, 송정리를 울산공업지구로 설정함을 이에 선언한다.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아시아·태평양 시대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동해바다의 검푸른 물결을 바라보면서 조국 근대화의 고동소리도 우렁차게 메아리치는 이 고장 울산! 공업입국에 앞장선 지도 어느덧 여섯 해가 되었다. 한 줌의 흙, 한 그루 나무에도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역사가 담겨있는 이 터전에 맥을 잡고 삽을 내리니, 숙명처럼 되풀이해온 나라와 겨레의 가난과 슬픔은 새 역사와 더불어 윤택의 기쁨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기쁨과 자랑을 길이 기념하고 보다 더 알찬 앞날을 다지기 위하여 겨레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우고, 선언문과 치사문을 수록하여 땀 흘려 이룩한 민족 중흥의 교훈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1967년 4월 20일, 울산공업센터 기념탑 건립위원회
4. 1. 1.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치사문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 육군 대장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서 다음과 같은 치사문을 발표했다.사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 공업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재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 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고,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며,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인 것입니다. 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나가는 그날엔, 국가와 민족의 희망과 발전이 눈앞에 도래하였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빈곤에 허덕이는 겨레 여러분, 5·16 혁명의 진의는 어떤 정권에 대한 야욕이나 정체의 변조에도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오로지
이 겨레로부터 빈곤을 구축하고 자손만대를 위한 영원한 민족적 번영과 복지를 마련할 경제재건을 성취하여야 되겠다는 숭고한 사명감
에서 궐기했던 것입니다. 이 울산 공업도시의 건설이야말로 혁명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웅도이며 그 성패는 민족 빈부의 판가름이 될
것이니, 온 국민은 새로운 각성과 분발 그리고 협동으로서 이 세기적 과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하여 분기 노력해 주시기 바라마지 않습니다.
—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이 치사문에서 박정희는 울산공업센터 건설이 4천 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의 숙원인 부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5.16 군사정변은 정권욕이 아닌 경제 재건을 위한 숭고한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울산공업센터 건설은 혁명 정부의 총력을 다할 상징적 사업임을 천명했다. 이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울산공업센터를 통해 이를 달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표현은, 단순한 경제성장을 넘어, 한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5.16 군사정변을 '혁명'으로 미화하고,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려는 의도 또한 엿보인다.
4. 1. 2. 울산공업센터 지정 선언문
1962년 2월 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4. 1. 3. 기념탑 건립 취지문
아시아·태평양 시대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동해바다의 검푸른 물결을 바라보면서 조국 근대화의 고동소리도 우렁차게 메아리치는 이 고장 울산! 공업입국에 앞장선 지도 어느덧 여섯 해가 되었다. 한 줌의 흙, 한 그루 나무에도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역사가 담겨있는 이 터전에 맥을 잡고 삽을 내리니, 숙명처럼 되풀이해온 나라와 겨레의 가난과 슬픔은 새 역사와 더불어 윤택의 기쁨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래서 이 기쁨과 자랑을 길이 기념하고 보다 더 알찬 앞날을 다지기 위하여 겨레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우고, 선언문과 치사문을 수록하여 땀 흘려 이룩한 민족 중흥의 교훈을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1967년 4월 20일, 울산공업센터 기념탑 건립위원회
4. 2. 울산도약 제2선언문
2012년 1월 27일,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을 기념하여 울산광역시는 "울산도약 제2선언문 - 새로운 백년, 영광을 위하여 -"를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울산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다짐을 담고 있다.선언문은 울산이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가지산과 신불산, 그리고 태화강이 흐르는 축복받은 땅이며, 반구대 문화를 통해 신라의 번영에 기여한 역사를 언급한다. 1962년 울산공업센터 지정 이후, 울산은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새로운 100년을 향한 도약을 다짐한다.
선언문은 사람과 자연을 중시하고, 노동의 가치와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울산을 친환경 산업수도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 또한,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키고 모든 시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정의로운 문화 복지 도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이를 115만 울산광역시민의 이름으로 천명하고 있다.
5. 공업탑로터리
공업탑로터리(Gongeoptap Rotary영어)는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원형교차로로, 이곳의 중심부에 공업탑이 설치되어 있다. 내·외부에 신호기가 없는 교차로였다가, 태화로터리·신복로터리보다 빠른 2000년 7월 들어 신호체계가 도입되었다.
공업탑로터리에서는 삼호동·태화로터리 방향의 봉월로, 옥동·무거동·문수월드컵경기장 방향의 문수로, 청량읍 덕하리·온산읍 방향의 두왕로, 야음동·석유화학공단·장생포 방향의 수암로, 시청·삼산동·시외/고속버스터미널·태화강역 방향의 삼산로가 교차한다. 이로 인해 이곳은 울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하며, 대부분의 시내·외 버스가 공업탑을 경유하기 때문에 학성공원과 함께 실질적인 환승지 역할을 하고 있다.[1]
기념탑의 기둥 개수와 마찬가지로 북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봉월로, 문수로, 두왕로, 수암로, 삼산로에서 진출하는 5개의 출구가 있으며, 이로 인해 달걀 모양의 비대칭 형태를 띤다.
5. 1. 구조 및 특징
공업탑로터리는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원형교차로로, 중심부에 공업탑이 설치되어 있다. 2000년 7월에 신호체계가 도입되었다. 삼호동·태화로터리 방향의 봉월로, 옥동·무거동·문수월드컵경기장 방향의 문수로, 청량면 덕하리·온산읍 방향의 두왕로, 야음동·석유화학공단·장생포 방향의 수암로, 시청·삼산동·시외/고속버스터미널·태화강역 방향의 삼산로가 교차한다. 이러한 도로구조는 달걀 모양의 비대칭 형태를 이루는 원인이 된다.이곳은 울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하며, 대부분의 시내·외 버스가 공업탑을 경유하기 때문에 학성공원과 함께 실질적인 환승지 역할을 하고 있다.
5. 2. 교통 허브
공업탑로터리는 울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원형교차로로, 중심부에 공업탑이 설치되어 있다. 2000년 7월에 신호체계가 도입되었다.공업탑로터리에서는 삼호동, 태화로터리 방향의 봉월로, 옥동, 무거동, 문수월드컵경기장 방향의 문수로, 청량읍, 온산읍 방향의 두왕로, 야음동, 석유화학공단, 장생포 방향의 수암로, 시청, 삼산동, 시외/고속버스터미널, 태화강역 방향의 삼산로가 교차한다. 이 5개의 도로가 교차하는 형태는 달걀 모양의 비대칭 형태를 띈다.
이러한 도로 구조로 인해 울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이며, 대부분의 시내·외 버스가 공업탑을 경유하므로 학성공원과 함께 대중교통 환승지 역할을 하고 있다.[1]
5. 3. 버스 정류장
공업탑로터리 주변에는 '공업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4개의 시내버스 정류장과 2개의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다. 이 정류장들은 버스 정보 시스템(BIS)에 등록되어 있다.- 삼산로
- 공업탑 (BIS 번호 40401): 동쪽 방향이나, 태화강역 방면으로 직행하는 버스는 없다.
- 공업탑 (BIS 번호 40403): 동쪽 방향, 실제로는 태화강역 방면 버스 정류장이다.
- 공업탑 (BIS 번호 40402): 서쪽 방향, 실제로는 로터리를 경유하는 버스 정류장이다.
- 공업탑 (BIS 번호 40404): 서쪽 방향, 봉월로 또는 문수로로 직행하는 버스 정류장이다.
- 공업탑: 동쪽 방향, 시외/고속버스 하차 전용 정류장이다.
- 문수로
- 공업탑 시외정류소: 서쪽 방향, 시외버스 승차 전용 정류장이다. 2015년에는 동일한 명칭과 위치의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나 폐지되었다.
과거에는 봉월로의 상·하행 1곳씩의 정류장 이름 또한 '공업탑' 이었으나 2013년 '신정2동주민센터입구'로 바뀌었다.
6. 논란 및 사건사고
울산시는 2010년 노후화된 공업탑 및 일대 조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2010년 공업탑 정비공사'를 시행하여 박정희의 비문 복원, 울산도약 제2선언문비 제막, 콘크리트 탑 보수 및 박칠성 조각가가 새로 제작한 청동 지구본으로 교체 등을 2011년 1월 완료하였다.[2] 그러나 정비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지구본에서 녹물이 흘러내려 탑 및 주변 조경을 오염시켰다.[3] 이에 자체조사를 벌임과 동시에 경찰에 조사를 의뢰, 박칠성 옹이 청동을 빼돌리고 값싼 철을 사용한 것으로 결론지었다.[3]
시는 나머지 조경을 맡은 원도급업체 한림조경㈜에게 재공사를 지시하여, 2012년 9월 1일 오염된 탑을 흰색으로 재도색하고 문제의 지구본을 구리로 만든 다른 지구본으로 교체하였다. 같은 해 11월 박칠성 옹이 사기 혐의로 입건[4]되었으나, 2013년 12월 13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5]
6. 1. 지구본 녹물 사건
울산시는 2010년 노후화된 공업탑 및 일대 조경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2010년 공업탑 정비공사'를 시행하여 박정희의 비문 복원, 울산도약 제2선언문비 제막, 콘크리트 탑 보수 및 박칠성 조각가가 새로 제작한 청동 지구본으로 교체 등을 2011년 1월 완료하였다.[2] 그러나 정비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지구본에서 녹물이 흘러내려 탑 및 주변 조경을 오염시켰다.[3] 이에 자체조사를 벌임과 동시에 경찰에 조사를 의뢰, 박칠성 옹이 청동을 빼돌리고 값싼 철을 사용한 것으로 결론지었다.[3]시는 나머지 조경을 맡은 원도급업체 한림조경㈜에게 재공사를 지시하여, 2012년 9월 1일 오염된 탑을 흰색으로 재도색하고 문제의 지구본을 구리로 만든 다른 지구본으로 교체하였다. 같은 해 11월 박칠성 옹이 사기 혐의로 입건[4]되었으나, 2013년 12월 13일 무죄 판결을 받았다.[5]
7. 기타
'공업탑'은 2000년 4월 25일 창간한 울산 남구청의 구정소식지 이름이기도 하다. 현재 '공업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버스 정류장은 경유 방향, 시내·외 여부에 따라 7개로 나뉜다. 과거에는 봉월로의 상·하행 1곳씩의 정류장 이름 또한 '공업탑' 이었으나 2013년 '신정2동주민센터입구'로 바뀌었고, 리무진(급행) 5004번이 울산대공원동문앞 정류장을 "공업탑(울산대공원동문앞)" 정류장으로 호칭하여 남창고등학교방면에 한하여 정차하였으나 2014년부터 경로를 바꿔 삼산로의 정류장에 양방향 정차한다.
공업탑 로터리는 대칭을 이루는 원형이 아닌, 탑이 로터리의 무게중심 위치에서 서북서로 치우쳐 있고 곡점이 정동으로 늘어진 형태의 삐뚤빼뚤한 달걀 모양이다. 공업탑 로터리 주변에는 '공업탑'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4개의 시내버스 정류장과 2개의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이는 버스 정보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다. 삼산로에는 동쪽 방향으로 '태화강역 방면'으로 잘못 안내되었지만 실제로는 해당 방향으로 직행하는 버스가 없는 정류장(BIS 번호 40401),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실제로는 태화강역 방면 버스 정류장(BIS 번호 40403), 서쪽 방향으로 '공업탑 방면'으로 안내되어 있으며 실제로는 로터리를 경유하는 버스 정류장(BIS 번호 40402), 별다른 설명은 없지만 봉월로 또는 문수로로 직행하는 버스 정류장(BIS 번호 40404), 시외/고속버스 하차 전용 정류장이 있다. 문수로에는 시외버스 승차 전용 공업탑 시외정류소가 있으며, 2015년에 동일한 명칭과 위치의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나 폐지되었다.
참조
[1]
웹사이트
공업탑로터리 퇴근시간 최악 정체구간
http://www.ksilbo.co[...]
2011-05-12
[2]
뉴스
공업탑 43년만에 새단장
http://www.ujeil.com[...]
울산제일일보
2011-01-17
[3]
뉴스
명예시민 박칠성씨 울산을 우롱?
http://www.ujeil.com[...]
울산제일일보
2012-07-18
[4]
뉴스
경찰, 울산 공업탑 지구본 부실 제작자 입건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2-11-05
[5]
뉴스
울산공업탑 지구본 부실 제작자 사기혐의 '무죄'
http://www.yonhapnew[...]
연합뉴스
2013-12-1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