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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란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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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윌란반도는 북해, 스카게라크 해협, 카테가트 해협, 발트해, 독일과 경계를 이루는 반도이다. 윌란반도의 북쪽 2/3는 덴마크 영토로, 북윌란, 중앙윌란, 남덴마크 지역으로 나뉘며, 반도 최북단은 림 협만으로 인해 벤쉬셀튀섬으로 분리되었다. 윌란반도의 덴마크 측 최대 도시는 오르후스이며, 그 외 주요 도시로는 올보르, 에스비에르 등이 있다. 반도의 남쪽 1/3은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속하며, 엘베강, 트라베강, 샤알제 호 등이 자연 경계를 이룬다. 윌란반도 앞바다에는 덴마크령 섬들과 독일령 페마른섬 등이 있으며, 윌란반도 방언이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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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란반도
지도 정보
윌란반도 지형도
윌란반도 지형도
일반 정보
위치유럽
국가덴마크
독일
면적약 29,775 km²
최대 길이약 360 km (북-남)
최대 너비약 177 km (동-서)
지리
지형평탄하거나 구릉진 지형, 해안선은 복잡함
해안선동쪽은 카테가트 해협과 발트 해, 서쪽은 북해와 접함
행정 구역 (덴마크)
북윌란 지역노르윌란 주
미트윌란 주 (일부)
중앙 윌란 지역미트윌란 주 (대부분)
남덴마크 지역남덴마크 주 (일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일부)
행정 구역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역사
주요 사건윌란 해전 (제1차 세계 대전)
기타
관련 항목유틀란트 곶

2. 지리

윌란반도는 서쪽으로 북해, 북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카테가트 해협발트해와 접하며, 남쪽으로는 독일과 육지로 연결된다.[23] 지형은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후는 서늘하다. 윌란반도는 덴마크독일의 영토 일부를 포함하며, 반도의 대부분은 덴마크가 차지하고 있다.

윌란반도 북서 해안의 모래 언덕


발트해북해를 가르는 듯이 뻗어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와의 사이에는 다수의 섬들이 있다. 선박 운항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독일령 내에 에이더 운하 (1784년 완공)와 킬 운하 (1895년 완공)가 반도의 기저부를 가로지르도록 건설되어 있다.[23] 킬 운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통행량이 많은 인공 수로 중 하나이다.

2021년에는 윌란반도 서부 육지와 림피요르드, 북해 해역이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었다.[23]

2. 1. 덴마크 지역

1825년 홍수로 림 협만이 생겨나 윌란반도 최북단이 벤쉬셀튀섬으로 분리되었으나, 여전히 윌란반도의 일부로 간주된다. 윌란반도의 북쪽 2/3는 덴마크 영토이며, 북윌란 지역, 중앙윌란 지역, 남덴마크 지역이 윌란반도에 속한다.[23]

2. 2. 독일 지역

반도의 남쪽 1/3은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에 해당한다.[23]

반도의 남동쪽과 남쪽의 육상 경계는 여러 강과 호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경계는 뤼베크-트라페뮌데의 트라베 하구에서 시작하여 트라베로 유입되는 바케니츠강 하구(뤼베크)를 거쳐, 라체부르거 호에서 바케니츠강이 흘러나오는 곳까지 이어진다. 그 후 클라이너 퀴헨제 호를 지나 :de:Schaalseekanal이 그로서 퀴헨제 호로 유입되는 하구까지, 거기에서부터 살레머 호, 파이퍼제 호, 풀제 호를 지나 샤알제 호까지 운하를 따라간다. 차렌틴 암 샤알제에서부터 샤알제 호의 유출구인 샤알레를 따라 텔다우에서 수데로 흘러드는 곳까지, 그 다음에는 수데를 따라 보이첸부르크에서 엘베강과 합류하는 곳까지, 그리고 함부르크 동쪽의 게스트하흐트 댐까지 엘베강을 따라 흐르며, 이곳에서 조수에 영향을 받는 엘베강 하구가 시작된다.

이 경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트라페뮌데→트라베→바케니츠→라체부르거 호→클라이너 퀴헨제→그로서 퀴헨제→샤알제 운하→살레머 호→파이퍼제→풀제→샤알제→샤알레→수데→보이첸부르크의 엘베→게스트하흐트 댐 (엘베강 하구 시작)

발트해북해를 가르는 듯이 뻗어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와의 사이에는 다수의 섬들이 있다. 배의 항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에이더 운하 (Eiderkanal|아이더 운하de, 1784년 완공)와 킬 운하 (1895년 완공)가 반도의 기저부를 가로지르도록 독일령 내에 건설되어 있다. 킬 운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통행량이 많은 인공 수로 중 하나이다.

2. 3. 연안 지역

윌란반도 앞바다에는 덴마크령 피에네섬, 알스, 레쇠섬, 삼쇠섬, 안홀트와 독일령 페마른섬이 있다. 북해 연안에는 덴마크 덴마크 바덴해 제도에 속하는 뢰뫼섬, 파뇌섬, 만되섬과 독일 북프리지아 제도에 속하는 질트섬, 푀르섬, 암룸섬, 펠보름섬이 있다.[23]

2. 4. 하위 지역 (남에서 북으로)

윌란반도는 북쪽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동쪽으로 카테가트 해협발트해, 남쪽으로 독일과 접하고 있다. 윌란반도의 북쪽 2/3는 덴마크 영토로, 북윌란 지역, 중앙윌란 지역, 남덴마크 지역이 해당된다. 반도 북쪽 끝의 벤쉬셀튀섬1825년 홍수로 림 협만이 생겨나면서 섬이 되었지만, 여전히 반도의 일부로 간주된다.

반면, 윌란반도 남쪽 1/3은 독일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에 속하며, 역사적으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에 해당한다.

다음은 윌란반도의 하위 지역을 남쪽에서 북쪽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 '''홀슈타인''': 엘베 강에서 아이더 강까지 뻗어 있으며, 홀슈타인 스위스라고 불리는 높은 언덕들이 있다. 윌란반도에서 가장 많은 호수가 있으며, 그로세 플뢰너 호(윌란반도 전체에서 가장 큰 호수)를 포함한 10개의 큰 호수가 있다.
  • '''남슐레스비히''': 아이더 강과 덴마크-독일 국경 사이에 위치하며, 아이더슈테트 반도, 노르트프리슬란트, 덴마크 발트, 슈반젠, 앙겔른 반도 등의 하위 지역이 있다. 노르트프리슬란트에는 프리슬란트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앙겔른과 슈반젠에는 덴마크어를 사용하는 소수 민족이 있다. 다네비르케 요새와 헤데비 유적지가 있다.
  • '''남윌란(쇠네르윌란)''': 덴마크-독일 국경과 콩에오 사이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 북슐레스비히로도 알려져 있다. 슐레스비히 공국의 일부였다.
  • '''북윌란(뇌레윌란)''': 콩에오와 윌란반도 최북단 그레넨 사이의 지역으로, 북윌란 섬을 포함한다. 디우르스란 반도, 살링, 쇠호이란 등의 하위 지역이 있으며, 구데노 강이 흐른다.


함부르크 북쪽 엘베 지역은 슈토르마른에,[1] 라우엔부르크는 헤르초크툼 라우엔부르크 지역에 해당하며 윌란반도에 위치한다.

2. 4. 1. 라우엔부르크

라우엔부르크 지역 지도


라우엔부르크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최남동부 지역이다. 행정적으로는 헤르초크툼 라우엔부르크 (Lauenburg 공작령) 자치구로 존재하며, 그 면적은 역사적으로 홀슈타인에 속하지 않았던 이전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령의 영토와 같다. 라우엔부르크 공작령은 1296년부터 존재했으며, 1876년 프로이센 왕국에 흡수되어 프로이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의 일부가 되었다. 새로운 자치구는 공작령의 과거를 기념하여 이름에 "공작령"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있었고, 오늘날 독일에서 이러한 명칭을 가진 유일한 자치구이다. 이 지역은 이전 수도인 엘베강의 라우엔부르크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현재 자치구청은 라체부르크에 있다. 라우엔부르크는 엘베-뤼베크 운하가 지나가며, 이 지역에는 50개가 넘는 호수가 있으며, 그 중 많은 호수가 라우엔부르크 호수 자연공원의 일부이다.

2. 4. 2. 함부르크

함부르크 북쪽 엘베 지역은 윌란반도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 슈토르마른 지역의 일부이다.[1]

2. 4. 3. 홀슈타인

윌란반도 최남단 지역 대부분은 남쪽의 엘베 강에서 북쪽의 아이더 강까지 뻗어있는 홀슈타인에 속한다. 홀슈타인에는 비교적 높은 언덕들 때문에 홀슈타인 스위스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다. 윌란반도에서 가장 많은 호수가 홀슈타인에 있으며, 10개의 가장 큰 호수는 그로세 플뢰너 호 (윌란반도 전체에서 가장 큰 호수이기도 하다), 젤렌터 호, 켈러제, 디크제, 랑커 호, 베흘러 호, 포스트제, 클라이너 플뢰너 호, 그로세 오이티너 호, 스톡제이다.

2. 4. 4. 남슐레스비히

아이더 강과 덴마크-독일 국경 사이에는 남슐레스비히가 펼쳐져 있다. 남슐레스비히의 주목할 만한 하위 지역으로는 북해 쪽에 있는 아이더슈테트 반도와 노르트프리슬란트가 있으며, 발트해 쪽에는 덴마크 발트, 슈반젠, 앙겔른 반도가 있다. 노르트프리슬란트에는 상당한 노르트프리슬란트 소수 민족이 있으며, 프리슬란트어는 이 지역의 공용어이다. 반면에 앙겔른과 슈반젠에는 덴마크 원주민 소수 민족이 있으며 덴마크어가 두 번째 공용어로 사용된다. 덴마크 발트는 한때 덴마크와 작센 정착지 사이의 국경 숲을 형성했다. 덴마크의 요새 시스템인 다네비르케는 남슐레스비히를 관통하며 발트해 (슐라이)와 북해 (라이더 아우) 사이의 배수 분할을 극복한다. 다네비르케의 발트해 끝에는 과거 중요한 바이킹 마을이었던 헤데비가 있다.

2. 4. 5. 남윌란 (쇠네르윌란)

덴마크-독일 국경과 콩에오 사이는 남윌란(남윌란 주)이며, 역사적으로 북슐레스비히로도 알려져 있다. 북슐레스비히와 남슐레스비히는 한때 옛 슐레스비히 공국의 영토였다. 이 지역은 덴마크어로 ''Sønderjyllands Amt''라고 불리며, 북슐레스비히와 남슐레스비히의 통합 영토를 지칭하는 ''Sønderjylland''의 북부로 간주된다.

2. 4. 6. 북윌란 (뇌레윌란)

콩에오와 윌란반도 최북단 지점인 그레넨 사이에 있는 지역이다. 덴마크어로는 ''Nørrejylland''(뇌레윌란)이라고 부르며, 북윌란 섬(덴마크어: ''Nørrejyske Ø'' 또는 ''Vendsyssel-Thy''(벤쉬셀튀))도 포함한다. 북윌란은 전통적으로 남윌란(''Sydjylland''), 서윌란(''Vestjylland''), 동윌란(''Østjylland''), 북윌란(''Nordjylland'')으로 세분된다. 보다 최근에는 전통적으로 서 및 동윌란 지역의 일부를 나타내는 중앙윌란(''Midtjylland'')이라는 명칭이 사용된다. 북윌란의 하위 지역으로는 몰스를 포함하는 디우르스란 반도와 살링이 있다. 또한 북윌란에는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가진 지역이자, 덴마크에서 호수가 가장 밀집된 지역인 쇠호이란드가 있다. 덴마크에서 가장 긴 강인 구데노 강이 북윌란을 통과한다.

3. 역사

스코네, 셸란섬과 함께 덴마크의 역사적 지역으로 여겨지는 윌란반도는 고대에 게르만족의 분파인 킴브리족이 거주했다. 450년경 앵글족, 색슨족, 유트족 등이 유럽 대륙에서 그레이트브리튼섬으로 이주하여 잉글랜드 왕국을 건설했다.[3]

3. 1. 중세 시대

8세기부터 데인인들은 프랑크인의 침공에 대비하여 윌란반도 남부에 다네비르케 요새를 건립했다.[4] 카롤루스 대제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 군대는 윌란반도 최남단에 거주하던 색슨족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개종시켰다.[4]

3. 2. 근세~근대

18세기 말 아이더 운하가, 1895년에는 킬 운하가 개통되면서 윌란반도는 발트 해와 북해를 오가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다.[5]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은 덴마크, 스웨덴, 독일 간의 영토 분쟁 지역으로, 17세기에는 북방 전쟁이, 18세기에는 대북방 전쟁이 일어났으며, 1864년에는 덴마크 전쟁이 벌어졌다.[4]

19세기 덴마크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하며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1800년대 덴마크 인구는 2.5배 증가하여 1901년에는 약 250만 명이 되었는데, 이는 출산율 증가보다는 영양, 위생, 건강 관리 서비스 개선에 따른 것이었다.[5] 장기 불황으로 인한 곡물 가격 하락과 도시의 더 나은 기회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거나 해외로 이민을 갔다. 19세기 후반 약 30만 명의 덴마크인 (주로 시골 지역의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5][6][7] 1850년 윌란반도의 가장 큰 도시인 올보르, 오르후스, 란데르스의 인구는 각각 8,000명 이하였지만, 1901년에는 오르후스의 인구가 51,800명으로 성장했다.[8]

3. 3. 현대

제1차 세계 대전 중이던 1916년, 윌란반도 서쪽 북해에서 영국 해군과 독일 제국 해군 간의 유틀란트 해전이 벌어졌다.[10] 이 해전은 역사상 최대의 해전 중 하나로, 양측 모두 큰 인명 피해와 함선 손실을 입었다. 영국 해군은 직접적인 손실은 더 컸지만, 주력 함대의 전투 능력은 유지할 수 있었다. 반면, 독일 해군은 주력 함선에 큰 피해를 입어 이후 대규모 해상 전투를 피하고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전술을 전환했다.

나치 침공 당일 아침, 국경에서 북쪽으로 10km 떨어진 브레데바드에 주둔한 덴마크 군인들. 이들 군인 중 2명이 교전 중 사망했다.


티보론에 남아 있는 제2차 세계 대전의 벙커 잔해. 독일군은 윌란반도 서해안 전체에 걸쳐 요새를 건설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덴마크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몇 시간 만에 점령당했다. 덴마크 군인 16명이 사망했다.[11] 독일은 대서양 방벽의 일환으로 윌란반도 서해안 전체에 요새를 건설했다. 윌란반도 북서쪽 곶에 있는 한스홀름 요새는 북유럽에서 가장 큰 요새가 되었다. 이 요새화 작업에는 덴마크 계약업체와 5만~10만 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덴마크 국립은행이 비용 대부분을 충당했다.[11] 전쟁 후, 남아 있는 독일 전쟁 포로들은 해안을 따라 140만 개의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해변 벙커 중 다수는 여전히 서해안에 존재하며, 일부는 블로반의 티르피츠 박물관, 벙커 박물관 한스홀름, 히르츠할스 벙커 박물관 등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남윌란에서는 독일계 소수 민족 일부가 공개적으로 독일 편을 들고 독일 군 복무에 자원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계 소수 민족의 많은 구성원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독일 학교는 덴마크 당국에 의해 몰수되었다. 1945년 12월, 독일계 소수 민족은 덴마크와 민주주의에 대한 충성을 선언하고 국경 변경에 대한 모든 요구를 철회했다.

4. 문화

19세기 산업화 이전까지 윌란반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농촌 생활을 했다. 농업과 목축업은 북유럽 신석기 시대 후기부터 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어업은 마지막 빙하기 이후 약 12,000년 전 인간이 반도에 처음 정착한 시기부터 이어져 왔다.[12]

윌란반도와 관련된 예술, 특히 그림과 문학은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 산업화 시대에 번성했다. 토르발 니스(Thorvald Niss), 스카겐 화가 집단의 일원


산업화 이전 윌란반도 평민들의 지역 문화는 당시 기록에서 상세히 묘사되지 않았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문화 엘리트들은 이를 대체로 무지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거나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며 경멸했다.[12] 동부 덴마크의 농민들이 상위 봉건 계급에 지배를 받았지만, 서부 윌란반도의 농부들은 대부분 자신의 토지를 자유롭게 소유하거나 왕실로부터 임대했다. 서부 윌란반도의 비옥하지 않고 인구 밀도가 낮은 토지 대부분은 봉건화되지 않았다. 동부 윌란반도는 이 점에서 동부 덴마크와 더 유사했다. 비옥한 동부 언덕과 모래 서부 평원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남북 능선은 오늘날까지 중요한 문화적 경계이며, 서부와 동부 윌란반도 방언의 차이에도 반영되어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서부 윌란반도는 석남으로 덮인 광대한 황무지, 적은 인구, 저집약적 농업이 특징이었다.(프레데릭 베르메렌: 황무지 위의 윌란반도 양치기, 1855)


19세기에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사회 질서가 변화했고, 지식인과 교육받은 사람들의 관심사도 바뀌었다.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1818–1855)는 엄격하고 종교적인 서부 윌란반도 양모 상인의 아들로 코펜하겐에서 자랐다. 그는 1840년, 매우 전통적인 사회였던 그의 조상의 땅을 방문했다. 스테인 스테인센 블리케르(Steen Steensen Blicher, 1782-1848)와 H.C. 안데르센(1805–1875)과 같은 작가들은 윌란반도 지역 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애정과 편견 없이 제시했다.[12]

윌란반도 운동은 윌란반도 지역의 사회적 사실주의에 참여하여 예술적으로 연결되었다. 황금기 화가들 또한 P.C. 스코가르 (P. C. Skovgaard), 단크바르트 드레이어(Dankvart Dreyer), 스카겐 화가의 예술 집단을 포함하여 윌란반도의 자연에서 영감과 동기를 얻었다. 작가 에발트 탕 크리스텐센(Evald Tang Kristensen, 1843-1929)은 반도 전역을 여행하고 많은 인터뷰를 통해 윌란반도 지역의 민속에 대한 광범위한 기록을 수집하고 출판했으며, 여기에는 노래, 전설, 격언 및 일상생활이 포함되었다.

오르후스 대학교의 페터 스카우트루프 센터(Peter Skautrup Centret)는 산업화 이전 윌란반도 문화와 방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이 센터는 1932년 노르딕 언어학 교수 페터 스카우트루프(Peter Skautrup, 1896-1982)에 의해 설립되었다.[13]

철도, 자동차 및 대중 통신을 통해 윌란반도의 문화는 전반적인 덴마크 국가 문화와 융합되었지만, 일부 독특한 지역적 특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서부 윌란반도는 자립 정신, 직업 윤리와 기업가 정신, 그리고 약간 더 종교적이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덴마크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투표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된다.

4. 1. 윌란반도 방언

표준 덴마크어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독특한 윌란 반도(유틀란트) 방언은 특히 서부 윌란과 남부 윌란 지역에서 두드러진다. 페터 스카우트루프 센터는 윌란 반도 방언의 공식 사전을 관리하고 발행한다.[14] 윌란 반도 방언 사용은 감소하는 추세이지만, 동부 덴마크보다 윌란 반도에서 더 잘 보존되어 있으며, 윌란 반도 사람들의 말투는 많은 코펜하겐 시민들과 동부 덴마크인들 사이에서 고정관념으로 남아 있다.

벤쉬셀 출신 북부 윌란의 음악가이자 연예인인 이그 귕베크[15][16][17][18]와 닐스 하우스가르는 뚜렷한 윌란 반도 방언을 사용한다.[19]

윌란 반도의 최남단과 최북단 지역에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북프리지아어 사용 지역을 포함하여 각 방언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이 있다.[20]

4. 2. 문학

스테인 스테엔센 블리케르는 1800년대 초 당시 윌란반도의 농촌 문화를 묘사했다. 그는 1842년에 출판된 'E Bindstouw' 등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윌란반도 방언을 장려하고 보존했다.[12]

덴마크의 사회적 사실주의자이자 급진적인 작가인 예페 오키에르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윌란반도 사람들과 윌란반도 문화를 다루었다. 예를 들어, 1911년에 출간되어 널리 읽힌 'Af gammel Jehannes hans Bivelskistaarri. En bette Bog om stur Folk'가 있다. 그는 또한 로버트 번스의 시를 자신의 특정 중서부 윌란 방언으로 번역했다.[12]

예술적 열망을 가진 프뢰슬레우의 여관 주인인 카르스텐 톰센(1837–1889)은 자신의 지역 방언을 사용하여 남윌란반도의 고향에 대해 따뜻하게 글을 썼다.[1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Jylland mellem tvende have'("두 바다 사이의 윌란반도", 1859)와 스테인 스테엔센 블리케르의 방언으로 된 'Jyden han æ stærk aa sej'("유트족, 그는 강하고 억세다", 1846) 두 곡은 종종 윌란반도의 지역적 국가로 여겨진다.[12]

윌란반도 출신 마렌 마드센(1872-1965)은 19세기 후반에 미국의 야머스 (메인주)로 이민을 갔다. 그녀는 이주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 'From Jutland's Brown Heather to the Land Across the Sea'를 썼다.[21]

출판사 프레데릭 윌리엄 앤토센은 남윌란반도의 토르란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4년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22]

참조

[1] 웹사이트 Region Nordjylland http://www.rn.dk/Ser[...] 2015-03-22
[2] 간행물 Pingo problems in the Scandinavian countries
[3] 서적 Kings and kingdoms of early Anglo-Saxon England https://www.worldcat[...] Seaby 1990
[4] 서적 The History of Vandalia, Vol. 1 https://books.google[...] 2017-01-06
[5] 웹사이트 Da danskerne udvandrede https://www.dr.dk/ny[...] Danmarks Radio 2019-02-14
[6] 웹사이트 Udvandringen fra Thisted amt 1868-1910 http://www.arkivthy.[...] Historisk Årbog for Thy og Vester Hanherred 2009 2019-02-14
[7] 간행물 Mass Emigration from Denmark to the United States 1868-1914 https://rauli.cbs.dk[...] Copenhagen Business School 2019-02-14
[8] 웹사이트 Det unge demokrati, 1848-1901 - Befolkningsudviklingen https://danmarkshist[...] Aarhus University 2019-01-17
[9] 웹사이트 Stormfloden i 1825, Thyborøn Kanal og kystsikring https://danmarkshist[...] Aarhus University 2020-06-13
[10] 웹사이트 The Battle of Jutland http://www.historyle[...] History Learning Site 2016-07-27
[11] 문서 Historien bag 10. batteri (in Danish) http://vhm.dk/museer[...] Vendsyssel Historic Museum
[12] 웹사이트 Jysk som litteratursprog http://www.vejenkuns[...] Peter Skautrup Centret
[13] 웹사이트 Peter Skautrup Centret http://jysk.au.dk/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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