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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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재웅은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로, 외야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서울길동초등학교,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휘문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여 장타력을 보여주며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며, 2008년에는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1년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은퇴 후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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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웅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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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선수명 | 兪 在雄 (유재웅) |
영어 표기 | Yu Jae-Yung |
국적 | 대한민국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생년월일 | 1979년 5월 20일 |
신장 | 184cm |
체중 | 86kg |
利き腕 | 오른쪽 |
타석 | 왼쪽 |
수비 위치 | 외야수 |
프로 입단 연도 | 1998년 |
드래프트 순위 | 고졸 우선 지명 (2002년 입단) |
선수 경력 | |
경력 | 徽文高等学校 건국대학교 두산 베어스 (2002 - 2011) SK 와이번스 (2012) |
첫 출장 및 최종 경기 | |
첫 출장 | KBO 리그 / 2002년 4월 7일 잠실 대 KIA전 |
최종 경기 | KBO 리그 / 2012년 6월 13일 잠실 대 LG전 |
계약 정보 | |
계약금 | 2억원 |
국가대표 | |
대표팀 | 대한민국 |
대륙간컵 | 2006년 대만 |
2. 선수 경력
휘문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대학 진학 후 2002년에 정식 입단했다. 입단 초기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나 2002년 교통사고를 겪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점차 팀 내 입지를 다져가며 2008년에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으나, 2010년 부상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2. 1. 아마추어 시절
서울길동초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를 졸업하고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OB 베어스로부터 고등학교 졸업 선수 우선 지명을 받았다. 이후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1998학번)에 진학했다.2. 2. 두산 베어스 시절
1998년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았으나, 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진학을 선택했다.건국대학교 체육교육학과 졸업 후 2002년 두산 베어스에 정식으로 입단했다. 입단 초기에는 타이론 우즈에 버금가는 장타력을 선보이며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같은 해 8월 9일 새벽, 송원국의 승용차를 함께 타고 잠실야구장으로 가던 중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뒤집히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승했던 송원국은 왼쪽 무릎 인대를 크게 다쳐 독일에서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으나, 오랜 재활에도 불구하고 결국 은퇴하게 되었다. 유재웅 본인은 비교적 가벼운 타박상과 찰과상만 입었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책임 소재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2]
2004년 이후, 타율은 높지 않았지만 강한 승부욕과 준수한 외야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팀 내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19일 잠실에서 열린 SK와의 경기에서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7회말, 양 팀의 신경전이 고조된 상황에서 SK 투수 김준이 유재웅을 향해 빈볼성 공을 던졌다. 자칫 큰 충돌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유재웅은 손을 들어 흥분한 동료들을 진정시키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해 불상사를 막았다. 이 행동으로 팬들로부터 대인배라는 의미의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작 투수 김준은 데뷔 첫 등판 경기에서 퇴장당했다. 유재웅은 이날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같은 해 9월 19일, 치열한 2위 싸움 중이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사직 원정 3연전 첫 경기에서는 팀이 3:5로 역전당한 9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 2점 홈런을 쳐내며 팀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2010년 9월 14일 군산에서 열린 KIA전에서는 아쉬운 장면을 연출했다. 팀이 2-3으로 뒤진 9회초 마지막 공격, 민병헌의 적시타 때 동점 주자로 홈에 쇄도하던 중 발목 통증을 느끼며 아웃되어 마지막 역전 기회를 무산시켰다. 이 플레이 이후 문책성으로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3]
2. 3. SK 와이번스 시절
2011년 11월 22일 국내 처음으로 실시된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4][1] 하지만 SK 와이번스에서는 세대교체 등의 이유로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2년 시즌 1군 9경기에 출장하여 타율 .154(13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군에서도 17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50 7타점을 기록하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5] 결국 시즌 종료 후 2012년 12월 20일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팀을 떠났고, 이후 현역에서 은퇴했다.3.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2008년 4월 19일 잠실 SK 와이번스전에서 7회말 양 팀의 분위기가 격해진 상황에서 SK 와이번스 투수 김준이 유재웅에게 빈볼성 투구를 던졌다.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으나, 유재웅이 손을 들어 덕아웃을 진정시키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현해 불상사를 막았다. 이 사건으로 유재웅은 대인배라는 뜻에서 '유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반면 김준은 데뷔 첫 등판 경기에서 퇴장당했다. 유재웅은 이날 경기에서 2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같은 해 9월 19일, 2위 싸움 중이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사직 경기에서 팀이 5:3으로 역전당한 9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 동점 홈런을 쳐 팀을 승리로 이끄는 활약을 펼쳤다.
2010년 9월 14일 군산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9회초 마지막 공격, 팀이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민병헌의 적시타 때 홈으로 쇄도하다 발목 통증을 느끼며 아웃되어 동점 및 역전 기회를 무산시켰다. 이후 문책성으로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3]
4. 1. 2002년 교통사고
2002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유재웅은 같은 해 8월 9일 오전, 동료 선수 송원국과 함께 차를 타고 잠실야구장으로 향하던 중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전복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2] 이 사고로 유재웅은 타박상과 찰과상 등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함께 탔던 송원국은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송원국은 이후 독일에서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2년이 넘는 재활 훈련을 했으나, 끝내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이 사고의 책임 소재와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몇 가지 의혹이 있으며, 유재웅에게 책임이 있다는 설도 있다.[2]5.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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