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이병원은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자는 경심이며 한성부 출신이다. 178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795년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종실 관직에는 출사하지 못했다. 1806년 삼가현감을 지냈으며, 1822년 통정대부에 제수되고 오위장에 임명되었다. 그의 차남 남연군 이구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다. 1822년 11월 11일에 사망했으며, 사후 증 의정부 좌찬성,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822년 사망 - 윌리엄 허셜
독일 태생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음악가에서 천문학자로 전향하여 직접 망원경을 제작, 천왕성 발견, 쌍성·심원 천체·적외선 발견, 태양계 운동·은하수 구조 연구 등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며,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 또한 여성 천문학자로서 업적을 남겼다. - 1822년 사망 - 안토니오 카노바
안토니오 카노바는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이탈리아 조각가로,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며 《키스로 깨어나는 프시케》,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르스》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나폴레옹의 후원을 받으며 유럽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752년 출생 - 주문모
청나라 출신 가톨릭 신부 주문모는 1794년 조선에 잠입하여 선교 활동을 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였으며, 초기 조선 천주교회 성장에 기여하여 2014년 시복되었다. - 1752년 출생 - 정조
정조는 조선의 제22대 왕으로,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장용영 설치, 신해통공 실시, 수원 화성 건설 등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으며, 47세에 사망하여 건릉에 안장되었다. - 가계도 - 장미 전쟁
장미 전쟁은 1455년부터 1487년까지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왕위 계승 분쟁으로 시작되어 헨리 7세의 승리로 튜더 왕조가 건국되면서 종결된 일련의 내전입니다. - 가계도 - 김설송
김설송은 김정일과 김영숙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에서 김정일의 비서로 활동했으며, 몰타와 유럽에서 유학하며 외국어를 배웠다.
이병원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이병원 |
관직 | 통정대부 |
증직 | 증 의정부 영의정 |
본관 | 전주 이씨 |
지파 | 인평대군파 |
계승 | 이진익의 둘째 아들 |
휘 | 병원 |
자 | 경심 |
아호 | (기록 없음) |
시호 | (기록 없음) |
출생 | 건륭 17년 (1752년) 4월 6일 |
사망 | 도광 2년 (1822년 11월 11일) |
사망 장소 | 조선 한성부 안흥군 가통 사저 |
사인 | 풍증 |
아버지 | 이진익 |
어머니 | 한양 조씨 (생모), 청풍 김씨 (전모) |
배우자 | 초취 연일 정씨, 재취 광주 김씨 |
자녀 | 이도중, 남연군 이구, 이휘중 |
묘소 | (기록 없음) |
가족 관계 | |
조부 | 안흥군 이숙 |
장인 | 정의환, 김진구 |
친척 | 이석중 (11촌 족조카) |
기타 정보 | |
직업 | 왕족, 시인 |
종교 | 유교(성리학) |
2. 생애
조선 후기의 왕족으로 자는 경심(敬心)이며 한성에서 태어났다. 시문에 능통하여 1783년 생원시, 1795년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왕족 종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직 생활은 순탄치 않아 감역관, 부사과, 영희전령, 평시서령, 삼가현감 등을 역임했으나 현감직에서는 면직되기도 했다. 말년인 1822년, 아들인 남연군의 생부라는 점이 고려되어 70세가 넘어 통정대부 품계를 받고 첨지중추부사, 오위장 등에 임명되었다. 사후에는 의정부 좌찬성을 거쳐 1864년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2. 1. 초기 생애
자는 경심(敬心)이며 한성 출신이다. 시문에도 능통하였으며, 1783년(정조 7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였다. 12년 뒤인 1795년(정조 19년)에는 진사시(進士試)에도 합격하였으나, 왕족 종실(宗室)임에도 불구하고 종실 관련 관직에는 임명되지 못하였다. 이후 감역관을 지냈고, 1804년에는 부사과를 역임했다. 1805년에는 영희전령과 평시서령을 지냈으며, 1806년에는 삼가현감으로 부임하였으나 4년 뒤 면직되었다.2. 2. 관직 생활
1783년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1795년 진사시(進士試)에도 합격하였으나, 왕족 종실(宗室)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종실 관직에는 쉽게 나아가지 못하였다. 이후 감역관을 지냈고, 1804년에는 부사과를 역임했다. 1805년에는 영희전령과 평시서령을 지냈으며, 1806년에는 삼가현감으로 부임했으나 4년 뒤 면직되었다.1821년 아들인 남연군이 생부 이병원의 나이가 70세가 넘었음을 이유로 노인직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이듬해인 1822년(순조 22) 음력 3월 25일, 70세가 넘었고 남연군의 생부라는 이유로 통정대부(정3품 당상관) 품계를 받았다. 같은 날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고, 이어 음력 윤 3월 8일에는 오위장에 제수되었다.
아래는 주요 관직 및 추증 내역이다.
서기 | 음력/양력 | 내용 |
---|---|---|
1783년 | 생원시 합격 | |
1795년 | 진사시 합격 | |
1804년 | 부사과 역임 | |
1805년 | 영희전령, 평시서령 역임 | |
1806년 | 삼가현감 부임 (~1810년경 면직) | |
1822년 | 음력 3월 25일 (양력 5월 16일) | 통정대부 제수 (정3품 당상관) |
1822년 | 음력 3월 25일 (양력 5월 16일) | 첨지중추부사 제수 |
1822년 | 음력 윤 3월 8일 | 오위장 제수 |
사후 | 의정부 좌찬성 (추증) | |
1864년 | 음력 1월 10일 (양력 2월 17일) | 의정부 영의정 (추증) |
2. 3. 가족 관계와 논란
슬하 3남 가운데 차남 남연군 이구(南延君 李球)는 1815년(순조 15년) 예조, 판돈녕부사 이언식(李彦植) 등의 건의로 은신군 이진의 양자로 지명되어 입적되었다. 은신군은 사도장헌세자 이선의 서자이며 낙천군 이온에게 입양된 인물이었다.차남 이채중(남연군의 아명)은 은신군의 양자로 출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살던 생가 근처에서 계속 생활하여 한때 조정으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했다. 1821년에는 아들 남연군이 아버지 이병원의 나이가 70세가 넘었음을 들어 노인에게 주어지는 관직(노인직)을 조정에 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822년(순조 22년) 음력 3월 25일, 이병원은 70세가 넘었고 남연군의 생부라는 점이 고려되어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았다. 같은 날 첨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며, 음력 윤 3월 8일에는 오위장에 제수되었다.
3. 가계
조선의 왕족으로, 인조의 셋째 아들인 린평대군의 5대손이다.
차남인 남연군은 영조의 서자인 사도세자의 서자 은신군에게 양자로 입적되었다. 이로 인해 이병원의 가계는 정조의 동생인 은신군의 후사(後嗣)를 잇게 되었으며, 대한제국 황실과 연결된다.
3. 1. 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