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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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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여성은 일제강점기 언론인, 사회운동가, 미술사 연구자이다. 1901년 경상북도 칠곡에서 태어나 3·1 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었고, 이후 일본 릿쿄대학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다. 상하이 체류 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조사부장을 지냈으며,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저서를 펴냈다. 8·15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1948년 북한으로 건너가 미술사 연구를 이어갔으나 1958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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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성

2. 생애

이여성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언론 활동과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1918년 김약수 등과 함께 중화민국 난징에 있는 난징 대학(진링 대학)에 유학했으나, 이듬해인 1919년 조선으로 돌아와 3·1 운동에 참여하여 투옥되었다.

이후 일본 유학과 사회주의 운동, 상하이 체류, 언론 및 저술, 해방 이후 활동과 월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섹션을 참고하면 된다.

2. 1. 초기 생애 (1901년 ~ 1919년)

은 1901년 경상북도 칠곡의 만석꾼 집안에서 아버지 이경옥과 어머니 윤정렬 사이 2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1] 대구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9세 때 서울로 올라와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18년 중국 난징에 있는 난징 대학(진링 대학)에 입학했으나, 1919년 3·1 운동 직후 귀국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독립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 몰래 땅문서를 팔다가 체포되어 대구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하였다.[1]

2. 2. 중국 유학 및 3.1 운동 참여 (1918년 ~ 1922년)

1918년 중국 난징 (진링대학)에 유학했으나, 1919년 3·1 운동 직후 귀국하여 독립군에 자금을 대려고 아버지 몰래 땅문서를 팔다가 체포되어 대구교도소에서 3년간 복역하였다.[1]

2. 3. 일본 유학 및 사회주의 운동 (1922년 ~ 1929년)

1922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경제학과에 입학했으며, 유학 중이던 1923년 1월 도쿄에서 사회주의 단체인 북성회를 조직하고 국내에 사회주의 사상을 알리는 데 힘썼다.[1] 1925년까지 리쓰메이칸 대학에 유학하며 북성회, 일월회 등의 조직과 연관되어 사회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재도쿄 조선인들이 발행한 잡지 『사상운동』의 편집장을 맡았으며, 김약수 등이 중심이 되어 발행한 잡지 『대중시보』의 집필자로도 활동했다.[1]

리쓰메이칸 대학 문학부 재학 중이던 1925년에는 리쓰메이칸 대학 신문에서 『민족 문제의 추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2]

1926년부터 1929년까지는 상하이에 체류했다.[1]

2. 4. 상하이 체류 및 귀국 (1926년 ~ 1930년)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상하이에 체류했다.[1] 귀국 후 1930년대 초반에는 조선일보에서 사회부장, 조사부장을 역임했고, 동아일보에서 조사부장을 맡아 사설 집필 등을 담당했다. 김세용과 함께 사회경제사 분야의 대작으로 알려진 『숫자 조선 연구』를 집필했다.[1] 친구들과 출판사 세광사를 차려 자신이 쓴 책 외에도 각종 조선 통계를 총망라한 〈숫자조선연구〉(김세용 공저)와 〈애란민족운동〉·〈약소민족운동의 전망〉 등을 펴냈다.[3]

2. 5. 언론 활동 및 저술 활동 (1930년 ~ 1945년)

1930년 상하이(上海|상하이중국어)로 건너갔다가 곧 귀국해서 동아일보 조사부장을 지냈다. 친구들과 출판사 세광사를 차려 자신이 쓴 책 외에도 각종 조선 통계를 총망라한 〈숫자조선연구〉(김세용 공저)와 〈애란민족운동 愛蘭民族運動〉·〈약소민족운동의 전망〉 등을 펴냈다.[1] 1935년 이상범과 2인전을 열어 당시 국내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31년 초, 이여성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세계의 피억압 민족·인종에 대한 연구에 매달렸는데, 그 내용의 일부를 「약소 민족 운동의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연재했다.[1] 특히 미국 흑인 운동과 대만 원주민 역사에 대한 논고는 『조선일보』의 마이크로필름 판에 남아 있다. 연재의 마지막 회인 제25회 기사 「대만 번인의 대반란과 그 장래」는 일단 인쇄되었지만, 조선총독부의 검열에 의해 삭제 처분되었다. 또한 단행본으로 출판된 『약소 민족 운동의 전망』은 미국 워싱턴 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열람이 가능하다.[1]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아버지가 마련한 중학동 집에서 살다가, 1938년 옥인동 56번지에 새로 지은 2층 양옥으로 이사했다.[3]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당한 뒤로는 복식 분야에 몰입해 〈조선복식고〉를 펴냈다.[4] 이 책은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 복식 분야를 개척한 점에 의의가 있으며, 복식사와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복식고〉에는 이화여전 학생들이 이여성의 고증으로 재현한 삼국 시대 옷을 입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4]

2. 6. 해방 이후 활동과 월북 (1945년 ~ 1958년)

해방 직후 여운형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문화부장 및 선전부장에 임명되었고, 뒤이어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으로 뽑혔다.[1] 1948년 남북협상 이후 혼자 북한에 남았다.[3]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되었고, 미술사 연구자로서도 활동했다.[1]

한국전쟁 중 인민군 포로로 오인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던 동생 이쾌대도 이후 월북하였다. 이여성은 북한에서 〈조선미술사개요〉(1955), 〈조선건축미술의 연구〉(1956) 등을 펴냈으나, 1958년 말경에 숙청된 것으로 보인다.[1]

3. 사상 및 평가

이여성은 여운형을 추종하였다.

4. 저서

數字朝鮮硏究중국어 (김세용 공저)

愛蘭民族運動중국어

弱小民族運動의 展望중국어

朝鮮服飾考중국어 (1947)

朝鮮美術史槪要중국어 (1955)

朝鮮建築美術의 硏究중국어 (1956)

1940년 동아일보가 폐간된 뒤 복식 분야에 몰입해 펴낸 朝鮮服飾考중국어는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한국 복식 분야를 개척했다는 의의가 있으며, 복식사와 미술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4] 朝鮮服飾考중국어에는 이화여전 학생들이 이여성의 고증으로 재현한 삼국 옷을 입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4] 1990년대에는 朝鮮服飾考중국어 (1947)의 일본어 번역판이 출판되었다.

5. 기타

여운형을 추종하였다.

참조

[1] 간행물 『語られた運動、削除された蜂起:李如星の新史料における米国黒人運動と台湾原住民史の叙述』 https://www.jkcf.or.[...] 公益財団法人 日韓文化交流基金
[2] 간행물 『立教大学新聞 第12号』 https://library.rikk[...] 1925-02-20
[3] 서적 오래된 서울 동하 2013
[4] 서적 오래된 서울 동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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