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삼국지)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장훈은 삼국 시대 원술 휘하의 무장이다. 193년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을 살해하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197년 여포와의 전투에서 한섬과 양봉의 배신으로 대패하고, 9월에는 조조에게 패하여 다른 장수들과 함께 죽을 뻔했으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199년 원술 세력이 몰락한 후 손책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유훈에게 사로잡혔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대장군으로 등장하며, 여포와의 전투에서 패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한나라의 대립 정권의 재상 - 유림 (왕랑)
유림은 전한 말에서 후한 초에 활동하며 뛰어난 술책과 언변으로 이름을 떨친 임협이었으나, 왕랑을 옹립하여 세력을 확장하려다 광무제에게 패배하여 몰락한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손견
손견은 후한 말의 군벌이자 오나라의 시조이며 손책과 손권의 아버지로, 황건적의 난 진압 등 공을 세웠고 반동탁 연합군에 참여하여 낙양 함락에 기여했으나, 향양 전투 중 전사했으며, 뛰어난 무력과 리더십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과감한 성격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인물이다. - 원술과 주변 인물 - 진기 (원술 부하)
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삼국지연의》는 나관중이 유비를 중심으로 184년부터 280년까지의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저술한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역사 소설로, 격동적인 시대의 사건과 인물들의 활약상을 다루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미디어로 각색되어 왔다.
장훈 (삼국지) | |
---|---|
인물 정보 | |
이름 | 장훈 |
한자 표기 | 張勲 |
로마자 표기 | Jang Hun |
시대 | 후한 → 중(仲) 왕조 |
직책 | 대장군 |
출생지 | 불명 |
사망지 | 불명 |
주군 | 원술 |
2. 생애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할 때, 장훈은 교유(橋蕤)와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1] 『삼국지』 오서(吳書) 손책전에 따르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했을 때 장훈은 20세 전후였던 손책을 높이 평가하며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陳溫)을 살해하고(진온에 대해서는 병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우(陳瑀)를 쫓아내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1]
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5]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줘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2]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3]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4]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
2. 1. 원술의 부하
193년(초평 4년), 원술이 남양군을 잃고 구강군 일대에 새로운 거점을 마련할 때, 장훈은 교유(橋蕤)와 함께 원술의 핵심 장수가 되었다.[1] 『삼국지』 오서(吳書) 손책전에 따르면, 손책이 원술에게 의탁했을 때 장훈은 20세 전후였던 손책을 높이 평가하며 마음을 주었다고 한다. 같은 해 3월, 원술이 양주 자사 진온(陳溫)을 살해하고(진온에 대해서는 병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진우(陳瑀)를 쫓아내고 양주에 근거지를 옮기자, 교유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되었다.[1]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 교유, 한섬, 양봉 등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줘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진규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아채고 그 둘을 구슬릴 것을 제안하였다.[2]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100보가량 되었을 때 한섬과 양봉도 돌아서서 장훈군을 동시에 타격하였다. 그 탓에 대패하여 살상되거나 물에 빠져 죽은 자를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3]
9월(음력),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 호현(苦縣) 부근에서[4]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
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5]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2. 2. 여포와의 전투와 패배
197년(건안 2년),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고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은 교유, 한섬, 양봉 등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서주를 공격했다.[2] 진규(陳珪)는 한섬·양봉과 원술의 관계가 긴밀하지 않은 것을 알고 이들을 설득하여 여포에게 협력하게 하였다.[2] 여포군이 응전하여 장훈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한섬과 양봉이 돌아서서 장훈군을 공격하였다. 그 탓에 장훈군은 대패하였고, 수많은 병사들이 죽거나 물에 빠져 죽었다.[3] 그 해 9월, 장훈은 원술을 따라 진국을 침공하여 진민왕 유총과 그의 상 낙준을 살해했다. 그러나 조조가 직접 원술 토벌에 나서자, 원술은 장훈을 포함한 여러 장수들을 남겨두고 자신만 회남으로 도망쳤다.2. 3. 원술의 몰락과 최후
197년(건안 2년),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서주목 여포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장훈에게 수만 명의 대군을 주어 일곱 길에서 밀고 올라가게 했다. 그러나 진규의 계략으로 한섬과 양봉이 배신하여 여포군과 함께 장훈군을 공격했고, 그 탓에 대패하였다.[3] 같은 해 9월, 원술이 진국을 침입하여 진민왕 유총(명제의 후예)과 그의 상 낙준을 살해하였다. 연주목 조조가 몸소 응징에 나섰고, 원술은 장훈·교유, 이풍·양강·악취를 남겨두고 돌아갔다.[4] 호현(苦縣) 부근에서[4] 참패하여 장훈만 간신히 퇴각하고 다른 네 장수는 죽음을 당했다.[4]199년, 원술의 세력이 와해되고 원술도 객사하였다. 원술의 남은 일족은 옛 부하인 여강태수 유훈에게 의탁한 반면, 장훈과 장사 양홍은 회계태수 손책을 의지하려 하였다. 도중에 유훈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히고 보물들도 빼앗겼다.[5]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원술이 황제를 칭하면서 장훈은 도독(都督)에서 대장군으로 오른다. 일곱 부대 중 제1로군을 맡아 서주로 직공한 후 다른 부대를 기다리는데 밤 2경에 한섬과 양봉이 불을 지르며 여포군과 같이 기습하는 바람에 패주하고 만다. 그 후로는 등장이 없다.
4. 조조의 부하로 오해받는 경우
『정사 삼국지 6』(지쿠마 학예 문고)에서는 건안 4년에 손책이 로강을 공략했을 때, 장훈이 조조에게 항복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지』 오서 손책전의 원문과 대조해보면 명백히 이는 위에 언급된 '''유훈'''의 오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고판의 기술에 기반하여 몇몇 삼국지 기반 창작물에서는 장훈이 조조의 부하가 되었다는 설정이 채용되기도 한다.
참조
[1]
서적
삼국지
[2]
서적
후한서
[3]
서적
구주춘추
[4]
서적
삼국지
[5]
서적
삼국지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