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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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탱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라플라타강 유역에서 발생한 음악으로, 밀롱가, 아바네라, 칸돔베 등의 영향을 받아 1875년경에 싹텄다. 19세기 말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의 유럽 이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으며, 초기에는 플루트, 기타, 바이올린 트리오로 연주되다가 반도네온이 도입되었다. 20세기 초에는 매춘업소와 갱스터들의 음악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카를로스 가르델의 등장으로 중산층의 춤으로 변화했다. 1935년부터 1952년까지의 황금기를 거치며 오케스트라 티피카에 의해 연주되었고, 이후 아스토르 피아졸라에 의해 누에보 탱고라는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졌다. 1990년대 이후에는 오래된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탱고 작곡가와 오케스트라가 등장했으며, 전자 음악과 융합된 네오탱고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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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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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정보 | |
스타일 기원 | 폴카 콘트라단사 플라멩코 마주르카 콘트라단스 기타 유럽 음악 스타일 칸돔베 페루 왈츠 밀롱가 |
문화적 기원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
파생 장르 | 해당 없음 |
하위 장르 | 네오탱고 탱고-칸시온 |
융합 장르 | 탱고-록 |
지역적 장면 | 도돔파 탱고 라파누이 |
관련 토픽 | 탱고 (춤) 막시세 (춤) 레코드 레이블 목록 |
음악적 특징 | |
박자표 | 2/4, 4/4 |
관련 정보 | p. 28 ISBN 978-0-415-97439-4 ISBN 978-0-415-97440-0 |
기타 | |
언어별 명칭 | lláng(es): Tango 땅고(한국어) |
관련 뉴스 |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탱고 명예를 얻기 위해 화해 |
2. 기원
탱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를 흐르는 라플라타강 유역 몬테비데오, 부에노스아이레스 두 도시의 주변에서 생성된 음악이다. 탱고의 발상지로 알려진 아르헨티나(땅고 아르헨티노/Tango Argentinoes라 불림)에도 그 기원이나 변천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없다. 일반적인 정설로는 라플라타강 유역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의 선착장에 외양항로의 선원들이 1800년대 쿠바 섬에서 유행하던 2/4박자의 가요조의 음악 아바네라를 전하였고, 여기에 부에노스아이나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연주되고 춤추던 칸돔베가 섞여서 밀롱가가 파생하였으며, 그 밀롱가의 변형된 음악이 탱고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19세기 중반부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에서 현재의 탱고 형태가 발전했지만, 19세기와 20세기 초의 탱고 스타일 기록은 쿠바와 스페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3] 또한 플라멩코 탱고춤은 유럽의 미뉴엣 스타일 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할 수 있다.[4] 모든 자료들은 아프리카 공동체와 그들의 리듬의 영향을 강조하는 반면, 20세기에 유럽 이민자들이 가져온 악기와 기법은 탱고의 최종 정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탱고가 나중에 기여하게 되는 살롱 음악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안헬 비요르도의 1903년 탱고 "엘 초클로"는 1906년 이전에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녹음되었다.[5]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녹음 스튜디오가 없었기 때문에 비요르도 자신은 파리(아마 1908년 4월, 레스토랑 뒤 라 몰 쥐가의 집시 오케스트라와 함께)[6]에서 녹음했다.
초기 탱고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의 유럽 이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다.[7][8][9]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탱고 연주자들의 첫 세대는 "과르디아 비에하"(Old Guard, 원로)라고 불렸다. 더 넓은 사회로 진출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는데, 20세기 초에는 매춘업소를 드나드는 깡패와 갱스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었다.[10] (1914년 기준) 여성보다 10만 명 이상 많은 남성이 있는 도시에서 말이다. 이처럼 풍부한 음악에서 나온 복잡한 춤은 남성들이 그룹으로 춤을 연습하고, 남성성을 보여주고, 감정과 공격성을 혼합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음악은 휴대용 악기인 플루트, 기타, 바이올린 트리오로 연주되었으며, 반도네온은 19세기 말에 등장했다. 휴대용 자동 오르간인 오르가니토는 특정 노래의 인기를 넓혔다. 에두아르도 아롤라스는 반도네온의 대중화를 주도했고, 빈센테 그레코는 곧 피아노, 더블베이스, 두 개의 바이올린, 그리고 두 개의 반도네온으로 구성된 탱고 섹스테트를 표준화했다.
많은 대중 음악과 마찬가지로 탱고는 하층민과 연관되었고, 그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조롱에도 불구하고, 작가 리카르도 귀랄데스와 같은 일부 사람들은 탱고 팬이었다. 귀랄데스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전 세계를 정복한 탱고의 국제적인 대중화에 일조했으며, 음악을 "순종적인 짐승처럼 복종적으로 항복한 여성들 위에, 그의 영토를 질투심으로 지키는 폭군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사랑"으로 묘사한 시 "탱고"를 썼다.[4]
모든 탱고 선율 중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노래[11]도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라 쿰파르시타"의 첫 두 부분은 1916년 우루과이의 십 대 헤라르도 마토스 로드리게스에 의해 악기 행진곡으로 작곡되었다.[12][13]
2. 1. 아바네라
아바네라(habanera영어)는 탱고의 할머니라고도 불리는 음악이다. 에스파냐 식민지였던 쿠바섬에 사탕수수와 담배재배의 잡역부로 건너온 아프리카 흑인들이 그들의 노래와 춤을 전하였고 그것을 토대로 쿠바 태생의 음악가 크레오르가 쿠바 사람에 대한 적합한 새로운 감각의 음악을 탄생시켰으며 이것을 아바네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1800년 중엽 에스파냐의 음악가 세바스티안 이라디에르가 쿠바섬을 찾아갔을 때 명곡 라 팔로마를 비롯하여 하바네라조의 음악을 수없이 작곡한 일이 있다.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주 비제도 가극 카르멘의 제2막에 아바네라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2. 2. 칸돔베
칸돔베(candombe영어)는 탱고의 할아버지라고 할 만하다. 사전에 의하면 '남녀 흑인의 상스러운 춤, 그 춤에 쓰이는 큰북의 일종'으로 되어 있다. 칸돔베는 식민지 시대 이래의 음악으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주변에서 추던 축제의 음악이었다. 밀롱가나 새로 탄생한 탱고가 점잖은 사람이나 상류사회의 사람들에게 백안시되면서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부에 침투한 데 대하여, 조잡하고 속된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칸돔베는 점차 쇠퇴했다. 1930년경까지는 카니발 때 젊은이들이 이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거리를 누비고 다녔지만, 카니발의 쇠퇴와 더불어 지금은 극장 또는 레코드 이외에는 들을 수 없게 되었다.2. 3. 밀롱가
밀롱가(milonga영어)는 탱고의 아버지에 해당한다. 하나의 음악이 파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겹치고 영향을 미쳐 탄생하게 된다. 밀롱가에는 하바네라와 칸돔베가 영향을 주고 있음이 확실하며, 현재 밀롱가의 형식에는 하바네라계와 칸돔베계의 2종류의 리듬이 있고, 양자 혼합형도 볼 수 있다. 밀롱가의 파생은 대체로 1860년경이며, 한때 빠른 유행을 보였으나 새로운 음악인 탱고의 탄생으로 칸돔베와 마찬가지로 쇠퇴했다.3. 탄생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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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는 밀롱가에서 파생되어 1875년경에 싹트기 시작했다.[14] 1880년경에는 가장 오래된 탱고로 알려진 페레스 작 <다메 라 라타>가 작곡되었고,[22] 1889년에는 칸포아모르 작 <사르헨트 카브라르>, 라도니사니의 <울보> 등이 잇달아 작곡되었다. 이 시기를 탱고의 유년기라고도 한다. 1900년 이후 탱고는 눈부신 발전을 하였으며, 악사, 악단이 배출되었다. 그 당시 작곡된 <엔트레리오스의 사람>, <엘 초클로>, <엘 폴테니토> 등은 그 리듬에 밀롱가적인 면모를 남기고 있다. 1916년 프란시스코 카날로가 처음으로 베이스를 사용하였고,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 등으로 5중주단을 편성하였다. 이 4악기를 주체로 한 편성을 표준적 편성악단(오르케스타 티피카/orquesta típicaes)이라고 명명하였다.
초기 탱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팜파스의 밀롱가와 우루과이의 칸돔베 그리고 파야다의 지역적 영향을 받았다.[14] 아르헨티나에서는 18세기 중반부터 "시골 출신" 밀롱가가 있었고,최초의 "파야도르(payador)"는 산토스 베가(Santos Vega)이다. 밀롱가는 특히 지역 칸돔베를 통해 아프리카의 강한 영향을 받은 팜파스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최초의 노예들이 이 나라로 들어온 이후로 아르헨티나에서 존재하고 실천되었다고 여겨진다.[14]
1876년, "엘 메렝구엔게(El Merenguengué)"[16][17]라는 탱고-칸돔베가 아프로-아르헨티나인들의 카니발에서 성공을 거둔 후 매우 인기를 얻었다. 이것은 아프로-아르헨티나 칸돔베 드럼("야마도르(Llamador)"와 "레피카도르(Repicador)") 외에 하프, 바이올린, 플루트로 연주되어, 탱고의 탄생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18]
최초의 탱고 "그룹"은 "흑인" 카시미로 알코르타(Casimiro Alcorta) (바이올린)과 "멀라토" 신포로소(Sinforoso) (클라리넷)의 두 아프로-아르헨티나인으로 구성되었다.[19] 알코르타는 테세이레 형제가 부른 "엔트라다 프로이비다(Entrada Prohibida)" (출입 금지)[20]의 작곡가이며, F. 카나로가 "카라 수시아(Cara sucia)" (더러운 얼굴)로 각색하여 부른 탱고 "콘차 수시아(Concha sucia)"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1900년대 이전에는 "엘 케코(El queco)",[22] "세뇨라 카세라(Señora casera)", "안다테 아 라 레코레타(Andate a la recoleta)",[22] "엘 포르테니토(El Porteñito)",[22] "탱고 넘버 1(Tango Nº1)", "다메 라 라타(Dame la lata)",[22] "케 폴보 콘 탄토 비엔토(Que polvo con tanto viento)",[22] "노 메 티레스 콘 라 타파 데 라 오야(No me tires con la tapa de la olla)", "엘 탈라르(El Talar)"[23] 등의 탱고가 연주되었다. 엘로이사 데르빌(Eloísa D'Herbil)은 탱고 악보를 처음으로 작곡한 여성 중 한 명으로, 1872년에서 1885년 사이에 "이 아 미 케(Y a mí qué)", "체 노 칼로티에스!(Che no calotiés!)" 등을 작곡했다.[24][25]
최초로 기록된 악보는 "라 캉겔라(La Canguela)" (1889)이며, 최초로 저작권이 등록된 탱고 악보는 로센도 멘디사발(Rosendo Mendizabal)이 1896년에 발매하고 1898년에 인쇄한 "엘 엔트레리아노(El entrerriano)"이다.
옛 "탱고 크리요요(Tango criollo)"와 구세대의 탱고 사이의 전환 과정에는 안헬 비요도(Ángel Villoldo)의 "엘 초클로(El choclo)"(1903), "엘 핌폴라(El Pimpolla)"(1904), "라 비다 델 카레테로(La Vida del Carretero)"(1905), "엘 네그로 알레그레(El Negro Alegre)"(1907), 가비노 에세이사(Gabino Ezeiza)의 "엘 탱고 파타고네스(El Tango Patagones)"(1905), 이히니오 카손(Higinio Cazón)의 "엘 타이타(El Taita)"(1905)와 같은 노래들이 있다.
오케스트라에 의해 녹음된 최초의 탱고는 에르네스토 폰시오(Ernesto Ponzio)가 작곡한 "돈 후안(Don Juan)"이며, 비센테 그레코(Vicente Greco)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녹음되었다.[26][27]
3. 1. 초기 탱고 (과르디아 비에하)
탱고는 밀롱가에서 파생되어 1875년경에 싹트기 시작했다.[14] 1880년경에는 가장 오래된 탱고로 알려진 페레스 작 <다메 라 라타>가 작곡되었고,[22] 1889년에는 칸포아모르 작 <사르헨트 카브라르>, 라도니사니의 <울보> 등이 잇달아 작곡되었다. 이 시기를 탱고의 유년기라고도 한다. 1900년 이후 탱고는 눈부신 발전을 하였으며, 악사, 악단이 배출되었다. 그 당시 작곡된 <엔트레리오스의 사람>, <엘 초클로>, <엘 폴테니토> 등은 그 리듬에 밀롱가적인 면모를 남기고 있다. 1916년 프란시스코 카날로가 처음으로 베이스를 사용하였고,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 등으로 5중주단을 편성하였다. 이 4악기를 주체로 한 편성을 표준적 편성악단(오르케스타 티피카/orquesta típicaes)이라고 명명하였다.초기 탱고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팜파스의 밀롱가와 우루과이의 칸돔베 그리고 파야다의 지역적 영향을 받았다.[14] 아르헨티나에서는 18세기 중반부터 "시골 출신" 밀롱가가 있었고,최초의 "파야도르(payador)"는 산토스 베가(Santos Vega)이다. 밀롱가는 특히 지역 칸돔베를 통해 아프리카의 강한 영향을 받은 팜파스에 있는 것으로 보이며,최초의 노예들이 이 나라로 들어온 이후로 아르헨티나에서 존재하고 실천되었다고 여겨진다.[14]
1876년, "엘 메렝구엔게(El Merenguengué)"[16][17]라는 탱고-칸돔베가 아프로-아르헨티나인들의 카니발에서 성공을 거둔 후 매우 인기를 얻었다. 이것은 아프로-아르헨티나 칸돔베 드럼("야마도르(Llamador)"와 "레피카도르(Repicador)") 외에 하프, 바이올린, 플루트로 연주되어, 탱고의 탄생과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 중 하나로 간주되어 왔다.[18]
최초의 탱고 "그룹"은 "흑인" 카시미로 알코르타(Casimiro Alcorta) (바이올린)과 "멀라토" 신포로소(Sinforoso) (클라리넷)의 두 아프로-아르헨티나인으로 구성되었다.[19] 알코르타는 테세이레 형제가 부른 "엔트라다 프로이비다(Entrada Prohibida)" (출입 금지)[20]의 작곡가이며, F. 카나로가 "카라 수시아(Cara sucia)" (더러운 얼굴)로 각색하여 부른 탱고 "콘차 수시아(Concha sucia)"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1]
1900년대 이전에는 "엘 케코(El queco)",[22] "세뇨라 카세라(Señora casera)", "안다테 아 라 레코레타(Andate a la recoleta)",[22] "엘 포르테니토(El Porteñito)",[22] "탱고 넘버 1(Tango Nº1)", "다메 라 라타(Dame la lata)",[22] "케 폴보 콘 탄토 비엔토(Que polvo con tanto viento)",[22] "노 메 티레스 콘 라 타파 데 라 오야(No me tires con la tapa de la olla)", "엘 탈라르(El Talar)"[23] 등의 탱고가 연주되었다. 엘로이사 데르빌(Eloísa D'Herbil)은 탱고 악보를 처음으로 작곡한 여성 중 한 명으로, 1872년에서 1885년 사이에 "이 아 미 케(Y a mí qué)", "체 노 칼로티에스!(Che no calotiés!)" 등을 작곡했다.[24][25]
최초로 기록된 악보는 "라 캉겔라(La Canguela)" (1889)이며, 최초로 저작권이 등록된 탱고 악보는 로센도 멘디사발(Rosendo Mendizabal)이 1896년에 발매하고 1898년에 인쇄한 "엘 엔트레리아노(El entrerriano)"이다.
옛 "탱고 크리요요(Tango criollo)"와 구세대의 탱고 사이의 전환 과정에는 안헬 비요도(Ángel Villoldo)의 "엘 초클로(El choclo)"(1903), "엘 핌폴라(El Pimpolla)"(1904), "라 비다 델 카레테로(La Vida del Carretero)"(1905), "엘 네그로 알레그레(El Negro Alegre)"(1907), 가비노 에세이사(Gabino Ezeiza)의 "엘 탱고 파타고네스(El Tango Patagones)"(1905), 이히니오 카손(Higinio Cazón)의 "엘 타이타(El Taita)"(1905)와 같은 노래들이 있다.
오케스트라에 의해 녹음된 최초의 탱고는 에르네스토 폰시오(Ernesto Ponzio)가 작곡한 "돈 후안(Don Juan)"이며, 비센테 그레코(Vicente Greco)의 오케스트라에 의해 녹음되었다.[26][27]
3. 2. 탱고의 표준 편성 (오르케스타 티피카)
탱고는 밀롱가가 파생된 후 1875년경에 싹이 터서 1880년경에는 가장 오래된 탱고라고 하는 페레스 작 <다메 라 라타>가 작곡되었고, 1889년에는 칸포아모르작 <사르헨트 카브라르>, 라도니사니의 <울보> 등이 잇달아 작곡되었다. 이 시기를 탱고의 유년기라고도 한다. 1900년 이후 탱고는 눈부신 발전을 하였으며, 악사, 악단이 배출되었다. 그 당시 작곡된 <엔트레리오스의 사람>, <엘 초클로>, <엘 폴테니토> 등은 그 리듬에 밀롱가적인 면모를 남기고 있다.연주 방법은 당시 3중주 또는 4중주 정도의 소편성 악단이었으며, 악기도 클라리넷, 플루트, 바이올린, 기타가 사용되고 있었다. 1905년경 처음으로 피아노가 사용되었다. 그 후 독일의 반도네온이 등장하여 기존의 플루트, 클라리넷 등이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연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16년 프란시스코 카날로가 처음으로 베이스를 사용하였고,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반도네온 등으로 5중주단을 편성하였다. 이 4악기를 주체로 한 편성을 표준적 편성악단(오르케스타 티피카/orquesta típicaes)이라고 명명하였다.
4. 콘티넨탈 탱고
콘티넨탈 탱고(Continental Tango영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건너온 아르헨티나의 작품이다. 표준적 편성악단 형식으로 연주된 탱고를 아르헨티나 탱고라고 하며, 아르헨티나 이외의 나라에서 만들어져 티피카 악기편성 이외로 연주되고 구미에서 도래한 탱고를 콘티넨탈 탱고라 한다.
콘티넨탈 탱고의 기원은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1905년 아르헨티나 해군 연습함 '사르미엔트 호'가 두 번째의 유럽 방문 때 <엘 초클로>와 <라 몰로차>의 악보를 기항지마다 살포한 것이 처음이며, 1907년 그 곡의 작곡자들인 안헤르 비졸드나 엔리케 사보리드 등이 유럽에 건너가 탱고 보급에 힘썼다. 1914년부터 1918년에 이르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아르헨티나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여러 나라, 북아메리카와의 교류는 한층 활발해져서 유럽이나 미국에는 구미 사람들에게 적합한 우아하고 친하기 쉬운 탱고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제라시>, <꿈의 탱고>, <푸른 하늘>, <부인이여, 그 손을>, <장미의 탱고> 등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이다. 한편, 연주가도 게치, 웨버 등의 명연주가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달그늘에 피는 난초꽃>, <헤르난도스 하이도어웨이> 등이 작곡되어, 현재 탱고는 전 세계에 유행하고 있다.
4. 1. 콘티넨탈 탱고의 기원
콘티넨탈 탱고(Continental Tango영어)는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건너온 아르헨티나의 작품이다. 표준적 편성악단 형식으로 연주된 탱고를 아르헨티나 탱고라고 하며, 아르헨티나 이외의 나라에서 만들어져 티피카 악기편성 이외로 연주되고 구미에서 도래한 탱고를 콘티넨탈 탱고라 한다.콘티넨탈 탱고의 기원은 아르헨티나 탱고에서 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1905년 아르헨티나 해군 연습함 '사르미엔트 호'가 두 번째의 유럽 방문 때 <엘 초클로>와 <라 몰로차>의 악보를 기항지마다 살포한 것이 처음이며, 1907년 그 곡의 작곡자들인 안헤르 비졸드나 엔리케 사보리드 등이 유럽에 건너가 탱고 보급에 힘썼다. 1914년부터 1918년에 이르는 제1차 세계 대전 후 아르헨티나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유럽 여러 나라, 북아메리카와의 교류는 한층 활발해져서 유럽이나 미국에는 구미 사람들에게 적합한 우아하고 친하기 쉬운 탱고가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제라시>, <꿈의 탱고>, <푸른 하늘>, <부인이여, 그 손을>, <장미의 탱고> 등 수많은 아름다운 곡들이다. 한편, 연주가도 게치, 웨버 등의 명연주가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달그늘에 피는 난초꽃>, <헤르난도스 하이도어웨이> 등이 작곡되어, 현재 탱고는 전 세계에 유행하고 있다.
4. 2. 유럽과 미국의 탱고
아르헨티나 탱고가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콘티넨탈 탱고가 발생하였다. 1905년 아르헨티나 해군 연습함 '사르미엔트 호'가 유럽을 방문했을 때 <엘 초클로>와 <라 몰로차>의 악보를 배포한 것이 콘티넨탈 탱고의 시초로 알려져 있다. 1907년에는 안헤르 비졸드나 엔리케 사보리드 등이 유럽에서 탱고 보급에 힘썼다.제1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와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제라시>, <꿈의 탱고>, <푸른 하늘>, <부인이여, 그 손을>, <장미의 탱고> 등 유럽과 미국인의 취향에 맞는 우아한 탱고들이 나타났다. 게치, 웨버 등 뛰어난 연주가들도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달그늘에 피는 난초꽃>, <헤르난도스 하이도어웨이> 등이 작곡되었고, 현재 탱고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5. 1920년대와 1930년대, 카를로스 가르델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은 1920년대에 영화에서 탱고를 관능적으로 묘사하며 섹스 심벌(sex symbol)로 알려졌고, 특히 미국에서 새로운 관객들에게 탱고를 알렸다. 탱고는 하층 계급의 문화에서 벗어나 더욱 존중받는 음악과 춤의 형태가 되었다. 로베르토 피르포(Roberto Firpo)와 프란시스코 카나로(Francisco Canaro)와 같은 밴드 리더들은 플루트를 없애고 더블베이스(double bass)를 추가하는 등의 변화를 주었다. 가사는 여전히 전형적인 마초적 경향을 보이며 여성을 비난하는 내용이었고, 춤 동작 또한 성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가르델은 하층 계급의 음악이었던 탱고를 존중받는 중산층의 춤으로 전환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1920년대에 탕고 칸시온(tango-canción)을 발전시키는데 기여했고,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탱고 아티스트 중 한명이 되었으며, "탱고 황금기"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다.
가르델의 사망 이후, 탱고는 여러 운동으로 나뉘었다. 아니발 트로이요(Aníbal Troilo)와 카를로스 디 사를리(Carlos di Sarli)와 같은 진화론자들은 로돌포 비아지(Rodolfo Biagi)와 후안 다리엔조(Juan d'Arienzo)와 같은 전통주의자들과 대립했다.
6. 황금기 (1935-1952)
탱고 음악과 춤의 "황금기"는 1935년부터 1952년까지의 기간으로, 빅 밴드 시대와 거의 동시대적이다. 탱고는 오케스트라 티피카에 의해 연주되었으며, 이는 종종 12명 이상의 연주자로 구성된 밴드였다.
마리아노 모레스, 후안 다리엔소, 프란시스코 카나로, 아니발 트로이요 등이 인기 있고 영향력 있는 오케스트라에 포함된다. 다리엔소는 그의 많은 녹음에서 들을 수 있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리듬 때문에 "콤파스의 왕"(Rey del compás) 또는 "리듬의 왕"이라고 불렸다. "엘 플레테"는 다리엔소의 접근 방식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카나로의 초기 밀롱가는 일반적으로 가장 느리고 춤추기가 가장 쉬워, 탱고 춤(밀롱가)에서 가장 자주 연주된다. "밀롱가 센티멘탈"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황금기부터 그 이후까지 오스발도 푸글리에세와 카를로스 디 사를리의 오케스트라도 많은 녹음을 남겼다. 디 사를리는 풍부하고 장대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으며, 반도네온보다 현악기와 피아노를 강조했는데, "알라 그란 무네카"와 그의 고향 이름을 딴 "바이아 블랑카"에서 들을 수 있다.
푸글리에세의 초기 녹음은 다른 댄스 오케스트라의 녹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는 그의 대표곡인 "갈로 시에고", "에만시파시온", "라 윰바"에서 들을 수 있는 복잡하고 풍부하며 때로는 불협화음적인 사운드를 개발했다. 푸글리에세의 후기 음악은 관객을 위해 연주되었고 춤을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었지만, 그 극적인 잠재력 때문에 종종 무대 안무에 사용되고, 때로는 밀롱가에서 늦은 밤에 연주되기도 한다.
결국 탱고는 유럽 밴드들이 그들의 춤 레퍼토리에 채택하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경계를 넘어섰다.[28][29][30][31][32] 반도네온 대신 아코디언, 색소폰, 클라리넷, 우쿨렐레, 만돌린, 전자 오르간 등 비전통적인 악기와 스페인어가 아닌 언어의 가사가 종종 추가되었다. 유럽 탱고는 폭스트롯, 느린 왈츠, 룸바와 함께 주류 세계적인 춤과 인기 음악 스타일이 되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 기원에서 다소 벗어나 특징적인 유럽 스타일을 발전시켰다. 탱고를 채택한 유명한 유럽 밴드 지휘자로는 , 마렉 베버, 오스카 요스트, , 호세 루체시, , , 폴 고드윈, 알렉산더 차프스만 그리고 유명 가수 레오 모노손, 자라 린더, 루디 슈리케, 티노 로시, , 미에치스와프 포그, 표트르 레시첸코 등이 있다. 유럽 탱고의 인기는 1950년대~60년대 록큰롤의 등장과 함께 급격히 감소했다.[28][29][30][31][32]
7. 누에보 탱고 (Tango Nuevo)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탱고의 후기 시대를 이끌었으며, 그의 작품 "아디오스 노니노(Adiós nonino)"는 1935년 카를로스 가르델의 "엘 디아 케 메 케라스(El día que me quieras)"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탱고 음악이 되었다. 1950년대에 피아졸라는 고전 탱고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사운드를 통해 학문적인 형태를 만들고자 했으며, 이로 인해 순수주의자들과 오래된 연주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197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재즈와 탱고를 융합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리토 네비아(Litto Nebbia)와 시글로 XX(Siglo XX)가 이 흐름을 주도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활동한 보컬 옥텟 부에노스아이레스 8(Buenos Aires 8)은 정교한 편곡과 복잡한 화성, 그리고 재즈의 영향을 받은 고전 탱고를 선보였으며, 피아졸라의 작품을 담은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이른바 피아졸라 이후 세대에는 디노 살루치(Dino Saluzzi), 로돌포 메데로스(Rodolfo Mederos), 구스타보 베이텔만(Gustavo Beytelmann), 후안 호세 모살리니(Juan Jose Mosalini)와 같은 음악가들이 등장했다. 피아졸라와 그의 추종자들은 재즈와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아 더욱 실험적인 스타일을 결합한 새로운 탱고, 즉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발전시켰다.
1990년대 후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페르난도 오테로(Fernando Otero)는[33]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혁신적인 과정에 요소들을 추가하여, 자신의 작품에 즉흥 연주와 무조적인 측면을 도입하고 오케스트레이션과 형식을 확장했다.
8. 1990년대 이후의 탱고
1990년대 후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새로운 탱고 작곡가와 탱고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피아졸라의 혁신과 전자 음악 실험보다는 오래된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34]
21세기 첫 20년 동안, 이 운동은 수많은 새로운 탱고를 연주하는 밴드의 탄생과 함께 성장했다. Orquesta Típica Fernandez Fierro의 창립자인 후리안 페랄타[34][35][36][37]는 나중에 Astillero와 Orquesta Típica Julián Peralta를 설립했다. Orquesta Rascacielos, Altertango, Ciudad Baigón과 같은 다른 밴드들도 이 운동에 참여했으며, 알프레도 "테이프" 루빈[34][38], 빅토리아 디 라이몬도[39], 후안 세렌[34][40], 나탈리 데 비센조[36], 그리고 파차 곤잘레스[36][37][40] 와 같은 싱어송라이터들도 있다.
8. 1. 네오탱고 (Neotango)
누에보 탱고에서 멈추지 않고 21세기 탱고는 네오탱고로 불린다. 최근 경향은 전자 음악의 영향이 미묘한 것부터 지배적인 것까지 다양한 "일렉트로 탱고" 또는 "탱고 퓨전"으로 설명할 수 있다.탕게토와 카를로스 리베딘스키는 전자 요소를 미묘하게 사용한 좋은 예이다. 음악은 여전히 탱고의 느낌, 탱고를 독특하게 만드는 복잡한 리듬과 선율의 얽힘을 가지고 있다. 고탄 프로젝트는 1999년 파리에서 결성된 필립 코앵 솔랄, 에두아르도 마카로프, 크리스토프 H. 뮬러 음악가들로 구성된 그룹이다. 그들의 발표작에는 ''Vuelvo al Sur/El capitalismo foráneo'' (2000), ''라 레반차 델 탱고'' (2001), ''인스피라시온 에스피라시온'' (2004), 그리고 ''루나티코'' (2006)가 있다. 그들의 음악은 탱고 그루브 위에 샘플, 비트, 사운드와 같은 전자 요소를 특징으로 한다.
바호폰도 탱고 클럽은 일렉트로 탱고의 또 다른 예이다. 다른 예로는 ''탱고?'', ''하이브리드 탱고'', ''탱고포비아 Vol. 1'', 주요 재즈의 영향을 받은 ''탱고 크래시'', 고전적이고 현대적인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 로드리고 파벨라의 ''라틴 탱고'', ''누탱고'', 뮌헨의 "탱고 퓨전 클럽"이라는 밀롱가를 만든 사람의 ''탱고 퓨전 클럽 Vol. 1'', 노르웨이 그룹 일렉트로쿠탕고의 ''펠리노'', 그리고 컴필레이션 CD인 ''일렉트로닉 탱고''가 있다. 2004년, 월드 뮤직 네트워크 음반사는 ''The Rough Guide to Tango Nuevo''라는 제목으로 컬렉션을 발매했다.
8. 2. 1990년대~2000년대 탱고
1990년대 후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새로운 탱고 작곡가와 탱고 오케스트라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피아졸라의 혁신과 전자 음악 실험보다는 오래된 오케스트라 스타일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34]21세기 첫 20년 동안, 이 운동은 수많은 새로운 탱고를 연주하는 밴드의 탄생과 함께 성장했다. Orquesta Típica Fernandez Fierro의 창립자인 후리안 페랄타[34][35][36][37]는 나중에 Astillero와 Orquesta Típica Julián Peralta를 설립했다. Orquesta Rascacielos, Altertango, Ciudad Baigón과 같은 다른 밴드들도 이 운동에 참여했으며, 알프레도 "테이프" 루빈[34][38], 빅토리아 디 라이몬도[39], 후안 세렌[34][40], 나탈리 데 비센조[36], 그리고 파차 곤잘레스[36][37][40] 와 같은 싱어송라이터들도 있다.
9. 한국에서의 탱고
9. 1. 일제강점기
9. 2. 해방 이후
9. 3.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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