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와 슌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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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라사와 슌지로는 1930년 도쿄에서 태어난 일본의 정치인이다.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후지 은행에 입행하여 경제기획청 파견을 통해 경제백서 작성에 참여했다. 1967년 아버지의 선거 유세를 돕고, 아버지 사망 후 1969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 나카소네파에 속했다.

가라사와 슌지로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인명가라사와 슌지로
원어명唐沢 俊二郎
로마자 표기Garasawa Syunjirō
출생지일본 제국 도쿄부 고지마치구
사망지일본 도쿄도
학력도쿄 대학
정당자유민주당
정치 경력
소속 정당자유민주당
전직후지 은행 행원
직위제47대 우정대신
내각제3차 나카소네 내각
취임일1986년 7월 22일
퇴임일1987년 11월 6일
직위 2중의원 의원
선거구 2구 나가노 4구
당선 횟수 29회
취임일 21969년 12월 28일
퇴임일 21996년 9월 27일
기타 직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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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대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취임일 61989년
퇴임일 61990년
기타 정보
칭호/훈장정3위
훈1등 욱일대수장
친족 (정치인)가라사와 도시키 (부)
국기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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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930년 도쿄부에서 태어난 가라사와 슌지로는 후지 은행에서 근무하던 중 1967년 아버지 가라사와 도시키가 총선에 출마했을 때, 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1개월 휴가를 얻어 선거 운동을 도왔다. 아버지 도시키는 당선되었으나 한 달 반 뒤에 사망했다.

선거 후 가라사와는 가메이도지점 차장으로 복귀했지만, 지역구 후원회와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권유로 1969년 총선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이후 나카소네파에 들어갔다.

1975년 미키 내각에서 대장정무차관, 1976년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문부정무차관을 역임했다. 문부정무차관 시절 월경 입학 문제에 대해 텔레비전 방송에서 비판적인 발언을 했지만, 자신도 과거 월경 입학을 한 적이 있다는 지적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이후 중의원 사회노동위원장, 자민당 정무조사회 부회장 등을 거쳐 1985년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2차 개조)에서 내각관방부장관(정무 담당)을 맡아 쇼와 천황의 재위 60주년 기념 식전과 제12회 G7 정상회의 준비를 담당했다. 1986년 제3차 나카소네 내각에서는 우정상에 임명되어 우편 사업 흑자 전환과 소액 저축 비과세 제도 폐지를 추진했다. 당시 우정민영화 논의가 있었으나, 가라사와는 비수익 지역 서비스 유지를 위해 반대했다.

1989년 제1차 가이후 내각에서 자유민주당 총무회장에 임명되어 정치 개혁 관련 법안을 다뤘다.

1996년 총선에 불출마하며 정계를 은퇴했고, 2000년 훈1등 욱일대수장을 수훈했다. 2001년부터 일본케이블텔레비전연맹 이사장, 2011년부터 고문을 역임했다.

2021년 11월 19일 도쿄도의 한 병원에서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정3위에 추서됐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1930년 6월 24일 도쿄부 고지마치구(지금의 도쿄도 시부야구) 가스미가세키에서 태어났다. 내무관료 출신으로 중의원 의원을 지낸 가라사와 도시키의 차남이다.

가라사와가 6살일 때 도시키는 내무성 경보국장을 지내고 있었는데 이때 2·26 사건이 터졌다. 경보국장 관사가 반란군의 습격을 받을 우려가 있었기에 가라사와는 가족과 함께 택시를 타고 피난을 갔다. 이후 가라사와 도시키는 책임을 지고 경보국장을 사임했다.

1943년에 구제 무사시노 고등학교 심상과(지금의 무사시 중학교·고등학교)와 고등과를 거쳐 1950년에 도쿄 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리고 도쿄 대학으로 개편된 뒤인 1953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후지 은행에 입행했다. 이후 경제기획청에 파견을 나가 『경제백서』 작성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