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연수
1. 개요
감연수는 전한 시대의 인물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우림, 낭, 기문을 거쳐 요동 태수를 역임했다. 이후 서역도호 기도위로 임명되었으며, 부교위 진탕과 함께 흉노의 질지선우를 토벌했으나 칙명 위조 문제로 논란이 일었다. 유향의 진언으로 죄를 사면받고 의성후에 봉해졌으며, 장수교위, 성문교위, 호군도위를 거쳐 사망했다. 시호는 장이며, 아들 감건이 작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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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4년 사망 -
금와왕
금와왕은 부여의 왕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버지이며, 곤연에서 발견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였고, 주몽을 보호하다가 대소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사망했다. -
기원전 24년 사망 -
유화부인
유화부인은 고구려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하백의 딸로, 해모수와의 인연과 금와왕의 후궁으로서 주몽을 낳은 전설 속 인물이며, 고구려에서 숭배받고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재해석된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전한의 열후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전한의 열후 -
신도가
신도가는 전한 시대의 무관 출신으로, 항우와의 싸움과 영포의 난에 참여하고 혜제 때 회양태수를 거쳐 승상에 올랐으며, 청렴한 성품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던 등통을 처벌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조조와의 갈등 끝에 죽음을 맞이하여 절후의 시호를 받았다.
2. 생애
감연수는 젊어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우림이 되었고, 곧 낭(郞)이 되었다. 이후 기문이 되어 총애를 받았고, 요동 태수에 이르렀으나 파면되었다. 훗날 거기장군 허가의 추천으로 낭중(郞中)·간대부(諫大夫)를 지냈고, 서역도호기도위에 임명되었다.
건소 3년(기원전 36년), 흉노의 질지선우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고 의성후(義成侯)에 봉해졌다. 이후 장수교위(長水校尉), 성문교위(城門校尉), 호군도위(護軍都尉)를 역임하다가 죽었다. 시호는 장(壯)으로 정해졌고, 아들 감건이 작위를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하여 젊어서 우림(羽林)이 되었고, 곧 낭(郞)이 되었다. 이후 기문(期門)이 되어 총애를 받았고, 요동 태수에 이르렀으나 파면되었다.
2.2. 서역도호 임명과 질지선우 토벌
건소 3년(기원전 36년), 감연수는 부교위(副校尉) 진탕과 함께 흉노의 질지선우를 치기 위해 서역의 병력을 동원하고자 했다. 원제에게 먼저 윤허를 받고자 하였으나, 진탕은 독단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칙명을 날조하여 서역의 병력과 도호 휘하의 둔전병을 동원하였다. 감연수는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곧 진탕의 의견을 따랐고,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질지선우를 공격하여 그의 수급을 취하였다(질지 공성전).
그러나 논공행상을 벌일 때, 감연수 등이 칙명을 날조하였고, 감연수가 예전에 중서령 석현의 누이와의 혼인을 거절한 적이 있어 승상 광형과 석현은 포상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유향의 진언으로 원제는 감연수 등의 죄를 사하였고, 감연수는 의성후(義成侯)에 봉해졌다.
2.3. 칙명 위조 논란과 포상
건소 3년(기원전 36년), 흉노의 질지선우를 부교위(副校尉) 진탕과 함께 서역의 병력을 동원하여 치고자 하였다. 먼저 원제의 윤허를 받고자 하였으나 진탕은 독단으로 행동할 것을 주장하였고, 결국 칙명을 날조하여 서역의 병력과 도호 휘하의 둔전병을 동원하였다. 감연수는 이를 제지하려 하였으나 곧 진탕의 의견을 따랐고, 4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질지선우를 공격하여 결국 그의 수급을 취하였다(질지 공성전).
그러나 논공행상을 벌일 때, 감연수 등이 칙명을 날조하였고 또 감연수는 예전에 중서령 석현의 누이와의 혼인을 거절한 적이 있어 승상 광형과 석현은 포상을 반대하였다. 하지만 유향의 진언으로 원제는 감연수 등의 죄를 사하였고, 감연수는 의성후(義成侯)에 봉해졌다.
2.4. 이후 관직 생활과 죽음
이후 장수교위, 성문교위, 호군도위를 역임하다가 죽었다. 시호는 장으로 정해졌고, 아들 감건이 작위를 이었다.
4. 출전
* 반고의 《한서》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권70 부상정감진단전에 감연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5. 둘러보기
* 반고, 《한서》 권17 경무소선원성공신표·권70 부상정감진단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