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디크 아흐메드 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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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는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군인이다. 그는 카라만 공국을 정복하여 아나톨리아 팽창에 기여했으며, 크림반도에서 제노바의 식민지를 점령하여 크림 한국을 보호했다. 또한, 이탈리아 원정에 참여하여 레프카다, 케팔로니아, 자킨토스 섬 등을 점령했으나, 오트란토 점령 후 군량 부족으로 알바니아로 철수했다. 술탄 바예지드 2세 즉위 후 투옥되어 1482년 처형되었다.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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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디크 아흐메드 파샤
본명게디크 아흐메드 파샤
로마자 표기Gedik Ahmed Pasha
관직
직위오스만 제국의 대재상
재임 시작1474년
재임 종료1477년
군주메흐메트 2세
이전마흐무트 파샤 안젤로비치
다음카라만리 메흐메트 파샤
직위 2대제독 of 오스만 함대
산자크베이 of 아블로냐 산자크
재임 시작 21478년
재임 종료 2기원후 1481년
군주 2메흐메트 2세
이전 2알려지지 않음
다음 2메시 파샤
직위 3Beylerbey of 아나톨리아 에얄레트
재임 시작 3기원후 1462년
재임 종료 31470년
군주 3메흐메트 2세
이전 3이샤크 파샤
다음 3코자 다부드 파샤
직위 4Beylerbey of 룸 에얄레트
재임 시작 4기원후 1451–1462년
재임 종료 4기원후 1451–1462년
군주 4메흐메트 2세
존칭 접두사게디크
존칭 접미사파샤
개인 정보
출생 지명푸노셰브체 (세르비아 공국)
사망일1482년 11월 18일
사망 장소에디르네 궁전, 에디르네, 오스만 제국
사망 원인교살
국적오스만
교육엔데룬 학교
직업정치가
가문세르비아 봉건 가문 출신
군사 정보
소속오스만 제국
군종오스만 육군 (기원후 1450년대–1477년, 1481–1482년)
오스만 해군 (1478–1481년)
계급육군 사령관
해군 대제독
참전오스만-카라만 전쟁
오스만-아크 코윤루 전쟁
코율히사르 전투 (1461년)
오틀루크벨리 전투
크르엘리 전투
오스만-제노바 전쟁
오스만 오트란토 침공
망구프 포위전
네그로폰테 포위전 (14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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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인 시절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는 메흐메트 2세의 신임을 받는 유능한 군인이었다. 그는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이끌며 아나톨리아지중해, 흑해 등지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특히 카라만 공국을 멸망시키고, 크림 한국을 구원했으며, 이탈리아 남부의 오트란토를 점령하는 등 오스만 제국의 팽창에 큰 공헌을 했다.

그는 지중해에서 베네치아와 싸우기도 했다.

2.1. 아나톨리아에서의 활약

오스만 제국의 군대를 이끌면서, 그는 오스만 제국의 아나톨리아 팽창에 있어서 끝까지 저항했던 카라만 공국을 무너뜨렸다. 카라만은 200년 가까이 아나톨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였으며, 심지어 오스만 제국이 발흥할 때보다 더욱 강력했다. 그들은 룸 셀주크를 계승한 나라였으며, 룸 셀주크의 수도였던 코냐 또한 그들의 영역으로 지니고 있었다. 1471년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의 카라만에 대한 승리는, 연이어 지중해 연안의 에르메네크, 메난, 실리프케를 점령할 수 있게 하였고, 이 전투는 오스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었다.

2.2. 크림반도 원정

1475년, 술탄의 명을 받아 크림 한국으로 파견되어 제노바의 식민지들에 맞서 싸웠다. 크림반도에서 그는 카파, 솔다이아, 쳄발로 등 제노바의 여러 식민지들과 테오도로 공국을 정복했으며, 크림 한국을 제노바의 위협으로부터 성공적으로 구원했다. 이 원정으로 크림반도체르케스오스만 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2.3. 지중해에서의 활약

1479년,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명령으로 오스만 제국의 해군을 이끌고 나폴리밀라노에 맞서 지중해에서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레프카다 섬, 케팔로니아, 잔테를 점령하였다.

1480년, 로도스섬 정복 시도가 실패한 후, 오트란토를 공격하여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러나 군량 부족으로 인해 함대를 이끌고 알바니아로 돌아가 1481년에 다시 원정할 계획을 세웠다.

3. 죽음

1481년 메흐메트 2세가 사망하면서 재원정 계획은 중단되었다. 바예지드 2세 즉위 후, 바예지드 2세는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를 신뢰하지 않아 그를 투옥시켰으며, 결국 1482년 11월 18일 아드리아노플에서 처형했다. 게디크 아흐메드 파샤의 죽음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 정책에 일시적인 제동을 걸었으며, 그의 군사적 업적은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