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공주
1. 개요
경신공주는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의 둘째 딸로, 1396년 이거이의 장남 이백경(이애)과 혼인하였다. 1404년 남편 이애와 함께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나, 이후 죄를 용서받고 서울에서 거주하였다. 1426년에 사망했으며, 세종은 장례를 후하게 치렀다. 1872년 고종 때 공주로 봉해졌으며, 용인시에 이애·경신공주 묘가 있다. 2021년부터 2022년까지 방영된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김채린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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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이름 | 경신공주(慶愼公主) |
|---|---|
| 작위 | 태조의 공주 |
| 배우자 |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이애(李薆) |
|---|---|
| 자녀 | 1남 이후(李厚) |
| 아버지 | 태조 |
| 어머니 | 신의왕후 한씨 |
| 출생일 | 미상 |
|---|---|
| 출생지 | 고려 동북면 영흥 사저 |
| 사망일 | |
| 능묘 | 이애 · 경신공주묘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면 산 40-11 |
| 별칭 | 경신궁주(慶愼宮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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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년 사망 -
주고후
주고후는 명나라 영락제의 아들로, 정난의 변에서 공을 세우고 한왕에 봉해졌으나 황위 찬탈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처형되었다. -
1426년 사망 -
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
엑서터 공작 토머스 보퍼트는 존 오브 곤트의 서자로 태어나 헨리 4세 시대에 가터 훈장을 받고 군사 직책을 역임했으며, 헨리 5세 시대에는 여러 직책을 거쳐 엑서터 공작 작위를 받았고, 헨리 5세 유언 집행자 및 헨리 6세 통치 평의회에서 활동했으며 셰익스피어 희곡에도 등장한다. -
조선 태조의 자녀 -
경선공주
경선공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의 딸로, 1393년 심종에게 하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며, 남편의 사망 후 1446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고종 때 공주로 봉해졌다. -
조선 태조의 자녀 -
회안대군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 이방간은 조선 건국 공신으로 회안군에 봉해졌으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유배 생활을 하다 병사했고, 사후 고종 때 신원 회복되어 시호를 받았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2. 생애
경신공주는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다. 역사서에는 태조의 적장녀로,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는 장녀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자춘 신도비》(1387년)와 《정릉 신도비명》(1393년)을 통해 신덕왕후의 딸인 경순공주보다 늦게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1388년 위화도 회군 당시 고려 조정에서 요동 정벌에 출정한 장수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으려 하자, 오빠 이방원이 가족을 대피시켰는데, 이때 언니 경선공주와 함께 나이가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1396년(태조 5년) 이거이의 장남 이백경(李伯卿, 이후 이저, 이애로 개명)과 혼인하였고, 1426년 (세종 8년) 사망하였다. 세종은 경신공주의 장례를 상등(上等)의 예로 치르게 하였다.
1872년 (고종 9년), 조선 초기 궁주(宮主)들의 봉작을 공주(公主)로 바꾸면서 경신공주로 추봉되었다.
2.1. 출생과 혼인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이다. 역사서에는 태조의 적장녀로, 왕실 족보인 《선원록》에는 장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자춘 신도비》(1387년)와 《정릉 신도비명》(1393년)을 통해 신덕왕후의 딸인 경순공주보다 늦게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1388년 위화도 회군 당시 고려 조정에서 요동 정벌에 출정한 장수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으려 하자, 오빠 이방원이 가족을 대피시켰는데, 이때 언니 경선공주와 함께 나이가 어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1396년(태조 5년) 3월 19일, 이거이의 장남 이백경(李伯卿, 이후 이저, 이애로 개명)과 혼인하였다. 혼인 당시 이백경은 33세로 아들 이비(李俾)가 있었다. 이백경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후(李厚)를 낳았다.
2.2. 사망과 추봉
1426년 (세종 8년) 3월 22일에 경신공주가 사망하자, 세종은 내관 이용년을 보내 조문하고 다음날 쌀과 콩 각 50석, 종이 2백 권을 부조하며 상등(上等)의 예로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1872년 (고종 9년), 조선 초기 궁주(宮主)들의 봉작을 공주(公主)로 바꾸면서 경신공주로 추봉되었다.
3. 가족 관계
4. 관련 문화재
이애ㆍ경신공주 묘는 용인시 향토유적 제31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