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신옹주
1. 개요
경신옹주는 조선 태종과 선빈 안씨의 장녀로, 전의위 이완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두었다. 1443년 아들의 노비 사건으로 남편 이완이 처벌받았으며, 1468년에는 노비 분배 문제로 어머니 선빈 안씨와 갈등을 겪어 녹봉을 삭감당하기도 했다. 1480년에는 동생의 아들이 연루된 사건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경신옹주의 사망 연도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능은 경기도 양주시에 있다.
| 이름 | 경신옹주 |
|---|---|
| 작위 | 조선의 옹주 |
| 아버지 | 태종 |
|---|---|
| 어머니 | 선빈 안씨 (숙선옹주) |
| 배우자 | 전의군 이완(全義君 李梡) |
|---|---|
| 자녀 | 이효충(李孝忠) 이신충(李信忠) 이예충(李禮忠) 이제충(李悌忠) 이의충(李義忠) 이경충(李敬忠) 강자정(姜子正)의 처 |
| 시호 | 알 수 없음 |
|---|---|
| 사망 원인 | 알 수 없음 |
-
15세기 사망 -
안드레이 루블료프
15세기 러시아의 이콘 화가이자 수도사인 안드레이 루블료프는 러시아 정교회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삼위일체」 이콘은 성삼위일체 묘사의 표준으로 인정받았으며 금욕적인 아름다움과 비잔틴 양식의 조화로 '루블료프파'라는 독자적인 예술 사조를 형성했다. -
15세기 사망 -
경선공주
경선공주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신의왕후의 딸로, 1393년 심종에게 하가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며, 남편의 사망 후 1446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고종 때 공주로 봉해졌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태종과 선빈 안씨(숙선옹주)의 장녀 경신옹주는 1430년(세종 12년)에 이완(李梡)과 혼인하였다.
1468년(세조 14년), 경신옹주는 노비 분배 문제로 어머니 선빈 안씨와 송사를 다투었다. 안씨가 딸의 불효를 호소하자 세조는 의금부에 이 일을 조사시켰고, 그 결과 경신옹주의 녹봉을 빼앗고 그 아들을 귀양보냈다. 또한 어머니 안씨가 임종할 때에는 올케인 남동생 익녕군의 아내 박씨와 갈등을 빚었다. 같은 해 예종이 즉위하여 거둔 녹봉을 다시 경신옹주에게 돌려주었다.
경신옹주가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480년(성종 11년) 동생인 소숙옹주의 둘째 아들 황제가 맹인 신연의 재물을 탐하여 그 딸 신씨를 첩으로 삼으려 할 때, 황제에게 거짓 혼서를 작성해주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경신옹주의 능원은 경기도 양주 고령에 있다.
2.1. 혼인과 자녀
태종과 선빈 안씨(숙선옹주)의 장녀 경신옹주는 1430년(세종 12년) 10월 28일에 전의위(全義尉) 이완(李梡)과 혼인하여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다.
1443년(세종 25년), 경신옹주의 아홉 살 난 아들 갯똥[介同]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 석류(石榴)의 열 살 짜리 아들 사민(思敏)과 장난치며 놀다가 사민에게 욕을 먹자, 경신옹주의 종들이 사민을 잡아들였다. 석류의 딸이자 사민의 누나인 구장(仇莊)이 경신옹주를 나무라며 욕을 하자, 후에 이 사실을 안 이완은 석류에게 형장을 쳤는데, 엿새 만에 석류가 죽었다. 이 일로 이완은 의금부에 갇혀 국문(鞫問)을 받고, 직첩(職牒)은 회수되고 진천(鎭川)에 부처(付處)되었다.
1467년(세조 13년), 경신옹주의 손녀인 이씨가 남편 황종동(黃終同) 일가에 소박을 당하고 모욕을 받자, 며느리 이씨의 아버지 이순경과 함께 상언을 올려 사헌부에서 쟁송을 형조에 넘기려 하였으나 무마된 소동이 발생하였다.
2.2. 노비 사망 사건
1443년(세종 25년), 경신옹주의 아홉 살 난 아들 갯똥(介同)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 석류(石榴)의 열 살 짜리 아들 사민(思敏)과 장난치며 놀다가 사민에게 욕을 먹었다. 그러자 경신옹주의 종들이 사민을 잡아들였다. 석류의 딸이자 사민의 누나인 구장(仇莊)이 경신옹주를 나무라며 욕을 하자, 후에 이 사실을 안 경신옹주의 남편 이완(李梡)은 석류에게 형장(笞刑)을 쳤는데, 엿새 만에 석류가 죽었다. 이 일로 이완은 의금부에 갇혀 국문(鞫問)을 받고 직첩(職牒)이 회수되었으며 진천에 부처(付處)되었다.
2.3. 며느리 관련 분쟁
1467년(세조 13년), 경신옹주의 손녀 이씨가 남편 황종동(黃終同) 일가에 소박을 당하고 모욕을 받자, 며느리 이씨의 아버지 이순경과 함께 상언을 올려 사헌부에서 쟁송을 형조에 넘기려 하였으나 무마된 소동이 발생하였다.
2.4. 재산 분쟁과 가족 갈등
1443년(세종 25년), 경신옹주의 아홉 살 난 아들 갯똥[介同]이 집에서 부리는 노비 석류(石榴)의 열 살 짜리 아들 사민(思敏)과 장난치며 놀다가 사민에게 욕을 먹자, 경신옹주의 종들이 사민을 잡아들였다. 석류의 딸이자 사민의 누나인 구장(仇莊)이 경신옹주를 나무라며 욕을 하자, 후에 이 사실을 안 남편 이완은 석류에게 형장을 쳤는데, 엿새 만에 석류가 죽었다. 이 일로 이완은 의금부에 갇혀 국문(鞫問)을 받고 직첩(職牒)은 회수되고 진천(鎭川)에 부처(付處)되었다.
1467년(세조 13년), 경신옹주의 손녀 이씨가 남편 황종동(黃終同) 일가에 소박을 당하고 모욕을 받자, 며느리 이씨의 아버지 이순경과 함께 상언을 올려 사헌부에서 쟁송을 형조에 넘기려 하였으나 무마된 소동이 있었다.
1468년(세조 14년), 경신옹주는 노비 분배 문제로 어머니 선빈 안씨(숙선옹주)와 송사를 다투었고, 안씨가 딸의 불효를 호소하니 세조가 의금부에 이 일을 조사시킨 끝에 경신옹주의 녹봉을 빼앗고 그 아들을 귀양보냈다. 또한 어머니 안씨의 임종에 이르러서는 올케인 남동생 익녕군의 아내 박씨(朴氏)와 갈등을 빚었다. 같은 해 예종이 즉위하여 거둔 녹봉을 다시 경신옹주에게 돌려주었다.
2.5. 사망과 능원
경신옹주가 언제 사망하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1480년(성종 11년) 동생인 소숙옹주의 둘째 아들 황제가 맹인 신연의 재물을 탐하여 그 딸 신씨를 첩으로 삼으려 할 때, 황제에게 거짓 혼서를 작성해주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다.
옹주의 능원은 경기도 양주 고령에 있다.
3. 가족 관계
翁主중국어 경신옹주는 태종과 선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소숙옹주, 익녕군과 동기간이다. 이완과 혼인하여 6남 1녀를 두었다.
| 이름 | |
|---|---|
| 장남 | 이효충(李孝忠) |
| 차남 | 이제충(李悌忠) |
| 3남 | 이신충(李信忠) |
| 4남 | 이예충(李禮忠) |
| 5남 | 이의충(李義忠) |
| 6남 | 이경충(李敬忠) |
| 장녀 | 진주 강씨 강자정(姜子正)의 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