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무
1. 개요
고덕무는 660년 또는 662년에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로 끌려갔으나, 699년 안동도호부 도독에 임명되어 요동 지역 통치권을 위임받았다. 당나라의 기미 통치 방식에 따른 것이라는 설과, 당나라의 괴뢰국인 소고구려를 건국했다는 설이 존재하며, 후자의 경우 소고구려의 건국 시조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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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왕자 -
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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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왕자 -
고복덕
고복덕은 연전왕의 아들로, 평양성 함락에 참여한 후 일본에 귀화하여 배내공 복덕 등으로 불리며 무사시국에 거주, 고마씨, 다카쿠라노씨, 배내씨 등의 성씨를 창설한 인물이다. -
고구려 유민 -
고선지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당나라의 장군이 되어 서역에서 활약했으며,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당나라의 서진을 종식시키고 안사의 난 진압 중 처형되었다. -
고구려 유민 -
보장왕
보장왕은 연개소문의 난으로 즉위하여 연개소문 사후 권력 다툼으로 혼란을 겪다 고구려 멸망 후 부흥을 시도하다 유배되어 사망했다. -
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고덕무는 660년 또는 662년에 고구려 보장왕의 3번째 아들(혹은 서자)로 태어났다고 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나라 뤄양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크게 격파하자, 당나라는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고 웅진도독부를 요동으로 옮기며 당의 지배권을 요동 지방으로 한정하였다. 당의 측천무후는 699년 요동의 안동도호부를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격하시킨 뒤, 699년에 고덕무를 안동도독부 도독(安東都督府 都督)에 임명하여 요동지역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699년 고덕무는 조카 고보원이 거부한 안동도호부 도호부사 자리에 임명되었다.
2.1. 안동도독부 도독 임명
699년 고덕무는 조카 고보원이 거부한 안동도호부 도호부사 자리에 임명되었다.
3. 소고구려
고덕무가 안동도독부 도독에 임명된 것은 당나라의 기미통치방식(羈縻統治方式)이었다는 설과, 요동 통치가 어려워진 당나라가 아예 요동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고구려 왕족의 후손인 고덕무에게 넘겨줘 당나라의 괴뢰국인 소고구려가 성립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소고구려가 당나라의 괴뢰국이었다는 설을 따른다면 고덕무는 소고구려의 건국 시조라고 할 수 있다.
3.1. 소고구려 건국설
고덕무가 안동도독부 도독에 임명된 것은 당나라의 기미통치방식(羈縻統治方式)이었다는 설과, 요동 통치가 어려워진 당나라가 아예 요동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고구려 왕족의 후손인 고덕무에게 넘겨줘 당나라의 괴뢰국인 소고구려가 성립하게 했다는 설이 있다. 소고구려가 당나라의 괴뢰국이었다는 설을 따른다면 고덕무는 소고구려의 건국 시조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