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구려
1. 개요
소고구려는 699년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셋째 아들 고덕무가 건국한 왕국이다. 고덕무는 당나라의 요동군 태수로 임명된 후 고구려 부활을 꾀하며 안동도호부를 장악하고 왕국을 세웠다. 소고구려는 발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820년경 발해 선왕 통치 기간에 발해에 흡수되었다. 소고구려 승려 구덕이 신라로 불경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 현지 이름 | 고려(高麗) |
|---|---|
| 다른 표기 | 高麗 |
| 존속 기간 시작 | ? |
| 존속 기간 끝 | ? |
| 이전 국가 | 고구려 |
| 이후 국가 | 발해, 당나라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국성 | 고 |
|---|---|
| 수도 | 밝혀지지 않음 |
| 수도 위치 | 밝혀지지 않음 |
| 공용어 | 고구려어 |
| 정부 형태 | 군주제 |
| 현재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
| 공식 명칭 | 소고구려 |
|---|---|
| 통용되는 긴 명칭 | 소고구려 |
| 통용되는 짧은 명칭 | 소고구려 |
| 지위 | 당나라의 봉신국 사실상 독립 왕국 |
| 공용어 | 고구려어 (한국어족) 중국어 |
|---|
| 종교 | 불교, 유교, 도교, 중국 민간 신앙, 한국 무속 신앙 |
|---|
| 건국 사건 | 설립 |
|---|---|
| 멸망 사건 | 멸망 |
| 멸망 연도 | 820년 |
| 계승 국가 | 발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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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부흥운동 -
천문령 전투
천문령 전투는 698년 대조영이 이끄는 고구려 유민 군대가 당나라 군대를 상대로 승리한 전투이며, 발해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고구려 부흥운동 -
보덕국
보덕국은 668년 고구려 멸망 후 신라가 고구려 유민을 통합하고 당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익산에 건국한 국가이며, 고구려의 국호를 사용하고 자치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안승의 신라 귀속과 반란 진압으로 멸망했다. -
발해 -
두막루
두막루는 5세기에서 8세기 초 헤이룽장성 지역에 부여 유민이 예맥족의 옛 땅에 세운 농경 중심의 국가로, 중원 왕조에 조공하며 교류했으나 726년경 발해와 흑수말갈에 멸망했다. -
발해 -
크라스키노
크라스키노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 하산스키군의 도시형 정착촌으로, 과거 발해의 염주성이 위치했으며, 1936년 미하일 크라스킨 중위의 이름을 따 명칭이 변경되었고, 중국 훈춘과 블라디보스토크를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통과한다. -
랴오닝성의 역사 -
쓰핑 육군전차학교
쓰핑 육군전차학교는 1940년 일본 제국 육군이 중국 만주 쓰핑에 설립하여 기갑사단 장병의 교육 훈련을 담당하다 1945년 종전 직전 폐쇄된 전차 교육 기관이다. -
랴오닝성의 역사 -
육군 궁주링 학교
육군 공주령 학교는 1939년 창설되어 관동군 소속 지휘관급 장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다가 1944년에 폐쇄된 일본 육군의 군사 학교이다.
2. 건국
699년, 고덕무가 소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소고구려 건국에 대한 주변 왕국들의 반응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발해는 소고구려와 비슷한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 배경
699년, 당나라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셋째 아들 고덕무를 요동반도로 파견하여 그를 "좌현왕"이자 안동도호부의 요동군 태수로 임명했다. 고덕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고구려를 부활시키고 고구려 백성들을 위한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나라는 당시 안사의 난을 비롯한 여러 위기를 겪고 있었고, 발해의 압박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고덕무는 안동도호부를 장악하고 왕국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2.2. 고덕무의 건국
699년, 당나라는 고구려의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셋째 아들 고덕무를 요동반도로 파견하여 "좌현왕"이자 안동도호부의 요동군 태수로 임명했다. 고덕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고구려를 부활시키고 고구려 백성들을 위한 왕국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 등 여러 위기를 겪고 있었고, 발해의 압박도 받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덕무는 안동도호부를 장악하고 왕국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고구려는 그 해 고덕무를 초대 국왕으로 하여 건국되었다. 주변 왕국들이 소고구려 건국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발해는 두 왕국이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고구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