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
1. 개요
고려장은 노인을 산 채로 내다 버리는 한국의 풍습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며, 일제 식민 사관에 의해 날조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려 시대에는 효를 중시하여 불효를 엄하게 처벌했고, 관련 기록과 더불어 ‘외사’에 대한 해석 논란이 존재한다. 고려장을 소재로 한 김기영 감독의 영화와 전상국의 소설 등이 있으며, 설화의 기원과 진실에 대한 다양한 주장이 있다.
| 한글 | 고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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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 | 高麗葬 |
| 일본어 (히라가나) | こうらいそう |
| 일본어 (가타카나) | コリョジャン |
| 관련 정보 | 무덤 고려청자 일제강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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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기사 | 무덤 파헤쳐 고려청자 도굴하려고…일제 ‘고려장’ 날조 “서프라이즈” |
| 관련 뉴스 | [재미있는 역사이야기] 고려장 '현대판 고려장' 횡행…학대당해도 쉬쉬하는 노인 |
| 다른 뜻 | 고려장이라는 장례 방식 지명에 해당하는 마을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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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한 민속 -
킬트
킬트는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유래한 남성용 스커트 형태의 전통 의상으로, 타탄 무늬와 함께 스코틀랜드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다양한 행사나 군대 등에서 활용되고 현대적인 패션 아이템으로도 주목받는다. -
날조한 민속 -
바포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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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 운동 직후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목표로 상하이에서 수립되어 일본 제국에 맞서 무장 투쟁과 외교 활동을 펼쳤으나, 해방 후 정치적 난관을 겪으며 정통성과 역할에 대한 논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일제강점기 -
광복절
광복절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기념하는 날로서,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국경일 및 공휴일로 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조국해방의 날로 기념한다.
2. 고려 시대의 노인 정책
고려 시대에는 충효 사상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불효는 큰 죄로 여겨져 엄하게 처벌받았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고려장이 왜곡되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2.1. 노인 학대 처벌 기록
고려 시대에는 반역과 더불어 불효를 중죄로 여겨 엄벌하였으며, 따라서 충효를 중시했다. 《고려사》에는 “조부모나 부모가 살아있는데, 아들과 손자가 재산을 달리하고 공양을 하지 않을 때는 징역 두 해에 처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국왕이 효행이 있는 사람과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주고 선물을 하사하였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2.2. 고려도경의 기록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지은 〈고려도경〉에는 극빈한 자식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주검이 까마귀밥이 되게 하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지만, 이는 노부모를 산 채로 버렸다는 내용과는 다르다. 따라서 고려에서 노부모를 함부로 내다버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3. 조선 시대의 기록과 해석 논란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에는 고려 말기 백성들이 부모가 죽으면 집을 허물고, 숨이 끊어지기 전에 외사(外舍)로 내어두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충효 사상을 지키지 않는 행위는 불효죄로 엄하게 처벌받았기 때문에,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이 이야기가 조선 시대에 날조된 이야기이며, 이른바 "일제 식민 사관"에서 기원한 것으로 간주한다.
3.1. 세종실록 기록에 대한 반론
"조선왕조실록에 '외사(外舍)로 내어 두게 되니'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를 '밖에 내다버리니'라고 오독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외사(外舍)는 '안채'인 내사(內舍)와 대비되는 '바깥 행랑채'를 뜻하는 말로, '바깥 행랑채에 모셨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있다. 중국의 〈효자전〉, 인도의 〈잡보장경〉등의 설화에도 고려장과 유사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고려장이 특정 지역의 풍습이 아니라 보편적인 설화 유형임을 알 수 있다.
4. 고려장을 소재로 한 작품
김기영 감독의 1963년 흑백 영화 고려장과 전상국 작가의 1978년 단편 소설 '고려장'이 대표적이다. 그리피스는 1882년 자신의 저서 『은자의 나라 조선』에서 고려장을 일본에서도 17세기 무렵까지 있었고, 조선 (19세기 말)에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노인을 산 채로 묻어버리는 습관'으로 묘사했다.
1919년 발행된 『전설의 조선』에는 '불행한 아들'이라는 동화가, 1924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동화집』에는 '부모를 버리는 사나이'라는 이야기가 수록되었는데, 늙은 부모(전자는 할아버지, 후자는 할머니)를 고려장하여 산에 버린 아버지를 자식이 깨우치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