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쌍충사
1. 개요
고흥 쌍충사는 이대원을 기리기 위해 1587년 녹도에 처음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사당이다. 이후 재건되어 정운과 이대원을 함께 모시는 사당으로 바뀌었으며, 1946년에 현재의 본전이 건립되었다. 정운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했고, 이대원은 왜구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좌표 | 34°31′40″N 127°07′54″E |
|---|
| 명칭 | 쌍충사 (雙忠祠) |
|---|---|
| 종류 | 사당 |
| 지정 번호 | 전라남도 기념물 제128호 |
| 지정 일자 | 1990년 2월 24일 |
| 소재지 |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
| 시대 | 조선 시대 |
| 개요 | 조선시대의 사당. |
|---|---|
| 설명 | 쌍충사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정운과 정발 두 분의 충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32년(1706)에 처음 지어졌으며,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에 따라 폐쇄되었다가 1919년에 다시 지어졌다. 경내에는 사당인 쌍충사와 비각이 있다. 사당 안에는 정운과 정발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제사를 지낸다. 정운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정발은 부산진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순절하였다. 쌍충사는 두 충신의 넋을 기리고, 그들의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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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당 -
사직단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으로, 한국의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중국의 명청시대까지 존재했으며, 현재는 한국의 사직단 터 일부와 중국 베이징의 사직단이 남아 각 지역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
조선의 사당 -
종묘
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왕실의 권위와 유교적 이념을 반영한 건축물이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사적 제125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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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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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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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이대원을 기리기 위한 최초의 사당은 1587년 녹도(鹿島)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이후 사당은 재건되었으며, 정운과 이대원을 함께 모시는 쌍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쌍충사 본전은 1946년에 건립되었으며, 강당은 1957년에 추가되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경내 건물 네 채가 개축 및 증축되었다.
2.1. 건립과 소실
이대원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최초의 사당은 1587년 녹도(鹿島)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2.2. 재건과 변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사당은 재건되었으며, 정운과 이대원을 함께 모시는 쌍충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의 쌍충사 본전은 1946년에 건립되었으며, 강당은 1957년에 추가되었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경내 건물 네 채가 개축 및 증축되었다.
3. 모셔진 인물
정운과 이대원 두 충신을 모시고 있다.
3.1. 정운
정운(1543년~1592년)은 무관의 아들이었다. 1570년 2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금갑도(우 전라 수군)의 부장, 이후 웅천(우 경상 수군)의 현감을 역임했다.
1591년 녹도(좌 전라 수군)의 만호로 임명되어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일본군에 맞서 싸웠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다 전사했으며, 이순신 장군이 가장 신뢰하는 부장이었다.
3.2. 이대원
1566년 ~ 1587년)은 1583년 1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였고, 1586년 20세의 나이로 녹도 만호가 되었다. 이듬해인 1587년 2월 10일, 왜구(다른 표기: 왜)가 배반자 사화동의 안내를 받아 약 20척의 일본 해적선을 이끌고 현재 전라남도 고흥군에 위치한 손죽도(다른 표기: 손대)를 습격했다. 이대원 만호는 해적을 격퇴하고 왜구를 포로로 잡았다.
조정에서는 2월 10일 전라남도 관찰사로부터 이대원의 승전 소식을 전해 듣고 심암을 파면하고 이대원을 전라좌수영의 수군 통제사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대원은 승진을 명하는 왕명을 받기 전에 사망했다.
1587년 2월 17일, 일본 해적이 손죽도를 두 번째로 습격했다. 이대원 만호는 수적으로 열세여서 구원을 요청했으나, 상관인 심암(전라좌수영 통제사)은 이대원의 공적을 시기하여 응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대원은 일본 해적에게 패배하고 전사했다. 심암은 이러한 대응 실패의 결과로 1587년 4월 4일에 처형되었다.
4.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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