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 쇼이치
1. 개요
곤도 쇼이치는 아이치현 출신의 일본 정치인으로, 1996년부터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10선에 성공했다. 그는 환경 부대신, 중의원 징벌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고 원전 제로를 목표로 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며 과거사 문제 해결을 통한 교류를 강조한다. 입헌민주당 내 그룹 '생츄어리' 회장을 맡고 있으며, 다양한 의원 연맹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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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쇼이치 콘도 |
|---|---|
| 원어 이름 | 近藤 昭一 |
| 원어 이름 (언어) | ja |
| 출생일 | 1958년 5월 26일 |
| 출생지 | 나고야시 |
| 소속 정당 | 입헌민주당 |
| 과거 소속 정당 | 민주당 민주당 신당 사키가케 |
| 학력 | 소피아 대학교 졸업 |
| 직책 | 중의원 의원 |
|---|---|
| 선거구 | 아이치 3구 (2014년–현재, 2000년–2012년) 도카이 비례대표 (1996년–2000년, 2012년–2014년) |
| 임기 시작 | 1996년 10월 21일 |
| 소속 그룹 | 구 콘도 그룹 |
| 웹사이트 | 콘도 쇼이치 공식 웹사이트 |
| 기타 직책 | 입헌민주당 차기 환경대신 |
| 출신 학교 | 소피아 대학교 법학부 법률학과 졸업 |
|---|---|
| 전 직업 | 주니치 신문 사원 |
| 학위 | 법학사 (소피아 대학교, 1984년) |
| 아버지 | 콘도 아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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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당의 정치인 -
에다노 유키오
에다노 유키오는 1993년 정계 입문 후 민주당에서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립헌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민진당의 정치인 -
아즈미 준
아즈미 준은 1996년부터 중의원 의원으로 활동하며, NHK 기자 출신으로 일본신당, 민주당 등을 거쳐 현재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국회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
조치 대학 동문 -
윤석중
윤석중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아동문학 운동을 이끌고 수많은 동요와 동시집을 발표하며 한국 아동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
조치 대학 동문 -
사기사와 메구무
사기사와 메구무는 1987년 데뷔하여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르는 등 활발히 활동한 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아동 그림책 번역가, 극작가로, 젊은 세대의 고민과 사회 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으며 한국계 재일 한국인으로 연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
입헌민주당 (2020년 일본)의 정치인 -
이즈미 겐타
이즈미 겐타는 1974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태어나 2003년 중의원 의원으로 당선된 후 민주당 정권에서 내각부 부대신을 역임하고, 2021년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어 중도 자유주의, 진보주의적 입장을 표방하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
입헌민주당 (2020년 일본)의 정치인 -
에다노 유키오
에다노 유키오는 1993년 정계 입문 후 민주당에서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정부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립헌민주당을 창당하여 대표를 역임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2. 정치 경력
곤도 쇼이치는 1993년 주니치 신문사를 퇴사하고 정계에 입문했다. 신생당 공천 실패로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출마를 포기했지만, 이후 신당 사키가케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아이치 3구에 민주당 공천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후,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까지 10선에 성공했다.
2009년 중의원 총무위원장, 2012년 징벌위원장을 역임했고, 2010년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과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에서 환경 부대신을 지냈다.
2013년 일본국 헌법 제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입헌 포럼을 발족하고 대표를 맡았다.
2014년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선 후 민주당 간사장 대리, 민진당 간사장 대리 및 부대표를 역임했다.
2017년 입헌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부대표 겸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며, 2021년 생츄어리 회장, 2022년 다음 내각에서 넥스트 환경대신을 맡고 있다.
2024년 중의원환경위원장에 취임하였다.
다음은 곤도 쇼이치의 중의원 의원 당선 이후 역대 총선 결과이다.
| 선거명 | 당락 | 선거구 |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 순위 | 후보자 수 |
|---|---|---|---|---|---|---|---|
| 제41회 | 낙선 | 아이치 3구 | 구 민주당 | 38,351 | 23.57 | 3 / 7 | |
| 제42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95,533 | 49.52 | 1 / 4 | |
| 제43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05,017 | 53.65 | 1 / 3 | |
| 제44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10,799 | 48.99 | 1 / 4 | |
| 제45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53,735 | 62.18 | 1 / 4 | |
| 제46회 | 비례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73,927 | 34.89 | 2 / 4 | |
| 제47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82,422 | 41.45 | 1 / 5 | |
| 제48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구 입헌민주당 | 98,595 | 46.85 | 1 / 3 | |
| 제49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입헌민주당 | 121,400 | 54.96 | 1 / 2 | |
| 제50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입헌민주당 | 103,624 | 46.96 | 1 / 5 |
2.1. 초기 정치 활동 (1993-1996)
1993년 1월, 주니치 신문사를 퇴사했다. 같은 해 6월 18일, 중의원 해산이 있었다. 6월 22일, 아이치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 아이치 제1구에서 무소속으로 입후보할 의향을 표명하고, 하타 신당으로부터 공인 또는 추천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월 29일, "신생당으로부터 공인, 추천을 얻지 못했다"며 입후보를 철회했다.
1994년, 전년에 결성된 신당 사키가케에 입당하여, 사키가케 아이치 준비회 대표로 취임했다. 아이치현 제5구에서 출마하기 위해 나카무라구에 사무소를 열었다.
2.2. 중의원 의원 당선 (1996-현재)
1996년 5월 29일, 신당 사키가케는 아이치 5구에서 사회민주당과의 선거 협력을 결정했다. 그 결과, 곤도는 아카마쓰 히로타카와의 대결을 피하여 아이치 3구로 출마하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아이치 3구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입후보하여, 비례 도카이 블록에서 부활,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아이치 3구에서 자민당 후보를 꺾고 재선되었다. 2003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3선에 성공하였다.
2005년 9월 11일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아이치 3구에서 의석을 지켰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5선에 성공하고, 중의원총무위원장에 취임했다。
2010년 간 나오토 제1차 개조 내각에서 환경 부대신으로 임명되어, 간 나오토 제2차 개조 내각까지 역임했다。
2012년 12월 16일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비례 도카이 블록에서 부활하여 6선에 성공하였다。 중의원 징벌위원장에 취임하였다.
2013년 일본국 헌법 제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초당파 의원 연맹 "입헌 포럼" 발족의 발기인을 맡아, 의원 연맹의 대표에 취임했다。
2014년 12월 14일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7선에 성공하고, 민주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했다。
2016년 3월 27일 민진당에 참가하여, 민진당 간사장 대리에 취임, 이후 민진당 부대표에 취임하였다.
2017년 입헌민주당을 결성한다고 표명했다。 10월 3일 입헌민주당에서 입후보할 의사를 밝혔다。 10월 6일, 입헌민주당 부대표에 취임했다。 10월 22일, 총선거에서 8선에 성공했다。 10월 26일, 집행 임원회에서 선거 대책 위원장 겸무가 결정되었다。
2018년 10월 24일, 부대표와 선거 대책 위원장을 사임했다.
2021년 10월 31일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9선에 성공하였다。 생츄어리 회장에 취임했다。
2022년 9월 13일 입헌민주당 다음 내각에서 넥스트 환경대신에 취임했다.
2024년 10월 27일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0선에 성공하였다。 같은 해 11월 13일, 중의원환경위원장에 취임。
| 선거명 | 당락 | 선거구 | 정당명 | 득표수 | 득표율 (%) | 순위 | 후보자 수 | 연령 |
|---|---|---|---|---|---|---|---|---|
| 제41회 | 낙선 | 아이치 3구 | 구 민주당 | 38,351 | 23.57 | 3 / 7 | 7 | 38 |
| 제42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95,533 | 49.52 | 1 / 4 | 4 | 42 |
| 제43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05,017 | 53.65 | 1 / 3 | 3 | 45 |
| 제44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10,799 | 48.99 | 1 / 4 | 4 | 47 |
| 제45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153,735 | 62.18 | 1 / 4 | 4 | 51 |
| 제46회 | 비례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73,927 | 34.89 | 2 / 4 | 4 | 54 |
| 제47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민주당 | 82,422 | 41.45 | 1 / 5 | 5 | 56 |
| 제48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구 입헌민주당 | 98,595 | 46.85 | 1 / 3 | 3 | 59 |
| 제49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입헌민주당 | 121,400 | 54.96 | 1 / 2 | 2 | 63 |
| 제50회 | 당선 | 아이치현 제3구 | 입헌민주당 | 103,624 | 46.96 | 1 / 5 | 5 | 66 |
3. 정책 및 입장
곤도 쇼이치는 국내 정책, 외교·안보 정책, 그리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다.
* 국내 정책:
*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하며, 평화 헌법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 2030년까지 원전 제로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에너지 정책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 차원에서 이 제도를 지지한다.
*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권 부여에 대해 어느 정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안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 수동 흡연 방지를 위한 금연 정책에 대해, 소규모 점포는 예외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미나마타병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 외교 및 안보 정책:
*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며, 특히 한국과의 진정한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거사 청산을 통한 역사 인식에 기초한 교류를 지향한다.
*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이 지역의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 2009년 아이치현에서 열린 강제 연행된 조선인 추도 집회에서 과거 청산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 2011년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출 사전 통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한국 국민에게 사과했다.
* 2021년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중국 공산당의 지도력과 일대일로 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과거사 문제:
* 1999년 "항구 평화 조사국 설치를 요구하는 원내 집회"에 참가하여 과거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 2002년 조선인 강제 연행·강제 노동에 대한 질문 주지서를 중의원에 제출하여 일본 정부에 사죄와 금전 보상을 요구했다.
* 2006년 항구 평화 조사국 설치 법안을 제출하고, "일본의 역사 리스크를 극복하는 연구회" 발기인을 맡았다.
* BC급 전범 및 그 유족들에게 특별 급여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요구하는 긴급 집회에 참가했다.
* 2012년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는 모임에 참가하여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2014년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는 모임의 원내 집회에 참가하여 청원 서명 제출 및 로비 활동에 협력했다.
3.1. 국내 정책
*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한다. 곤도는 평화헌법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 2030년까지 원전 제로를 해야 한다.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 변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찬성한다. 곤도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 차원에서 찬성한다.
*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선거권 부여에 어느 쪽이냐고 하면 찬성한다.
*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안 본회의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 수동 흡연 방지를 목적으로 음식점 등의 건물 내를 원칙적으로 금연으로 하는 개정 건강 증진법에 대해, "기본적으로 완전 금연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개수가 불가능할 정도의 소규모 점포는 예외로 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고 있다.
* 중의원 환경위원장에 취임했을 때 미나마타병 문제 해결에 의욕을 보였다.
3.2. 외교 및 안보 정책
곤도 쇼이치는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며, 1992년 일중 수교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눈앞의 이익만 쫓고 진정한 정치를 하지 않는 일본 정치인으로, 이 중국과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고서는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결의하며 정치인이 되기를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이 지역의 발전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 2003년 2월, 젊은 국회의원들의 메일 매거진 '미래 총리'의 '올해의 공약'에 "한국과의 진정한 교류를 추진하고 싶습니다. 진정한 교류란 제대로 과거를 청산한 역사 인식에 기초한 교류입니다"라고 기고했다.
* 2008년
2월 25일, 한국에서 이명박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3월 26일 중의원외무위원회에서, 2008년 1월 22일 메구로구의 유텐지에서 열린 유골 반환 추도식에 키무라 히토시외무 부대신의 참석에 대해, 고무라 마사히코외무 대신이나 후쿠다 야스오총리의 참석을 요구했다.
11월 20일, 한국 출신 전몰자의 유골 반환 추도식에 참례 (시미즈 스미코 전 참의원 의원 (사회민주당)도 참례). 11월 28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이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은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무대신에게 다음에는 참석하여 추도사를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한국 출신 민간 징용자의 유골 반환 추도식을 별도로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 2009년
9월 1일, 아이치현에서 강제 연행된 조선인을 추도하는 집회에서 인사하며, "정권 교체의 이 기회에 이번에야말로 과거 청산을 이루고 싶다"라고 말했다.
10월 4일, 한통련의 반 MB 이명박 투쟁 집회에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 2011년
4월 4일, 한국 대사관이 일본 정부가 개최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의 저농도 오염수 방출을 사전 통고하기 위한 재경 대사관 설명회를 결석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오염수 방출을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2011년 4월 29일 일본 정부가 사전 통지를 게을리했다며 "한국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주었다"라고 사과했다.
** 4월 28일, 한국의 부산에서 개최된 제13회 한중일 3개국 환경부 장관 회담에 참석.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한국의 이만의 장관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 "한국의 성의에 감사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중국의 저우성셴 환경보호부 부장과 회담하여 이산화탄소 25% 감축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 2021년 6월 10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 신화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발전은 중국 공산당의 지도 하에 실현되었다"고 평가하며, "중국 공산당이 빈곤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소한 것은 정말 훌륭하다", "각국의 교류와 상호 학습의 촉진, 다자주의 옹호 등 중국 지도자의 주장에 경의를 표한다", "중국이 내세운 일대일로 공동 건설은 타국과의 협력 강화, 각국과의 공동 발전을 실현하려는 위대한 구상이다" 등이라고 칭송했다.
3.3. 과거사 문제 관련 활동
* 1999년, 일본 전쟁 책임 자료 센터의 아라이 신이치 대표가 주최한 "항구 평화 조사국 설치를 요구하는 원내 집회"에 참가하여 "젊은이들로부터 과거의 전쟁에 대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거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2002년, 조선인 강제 연행·강제 노동에 관한 질문 주지서를 중의원에 제출하여, 일본 정부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에 대한 사죄와 금전 보상의 실시를 요구했다.
* 2006년
* 5월 23일, 국립 국회 도서관법의 일부를 개정하는 법률안 (통칭: 항구 평화 조사국 설치 법안)을 제출했다.
* 일본의 전쟁 책임 검증을 목표로 하는 정책 스터디 그룹 "일본의 역사 리스크를 극복하는 연구회" 발족에 즈음하여 발기인을 맡았다.
* 후지타 사치히사 등과 함께 한반도 출신 전 BC급 전범 및 그 유족들을 포함하여 특별 급여금을 지급하는 법안을 요구하는 긴급 집회에 참가하여, 의원 입법 성립을 호소했다.
* 2012년 7월 24일,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는 모임 제2회 원내 집회"에 참가하여, "사실은 명백히 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왜 밝히지 않는지. 일본 안에는 과제가 계속 있는 것 같다. 나는 국회에서 여러 가지 일에 임해 왔지만, 항상 부딪히는 벽이 있다. 앞으로도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인사했다.
* 2014년 5월 21일,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국가 책임을 묻는 모임의 원내 집회에 참가하여, 청원 서명 제출 협력 및 내각부 위원에 대한 로비 활동 등의 협력을 했다.
4. 소속 정당 및 단체
wikitext
| 소속 정당 | |
|---|---|
| 소속 의원 연맹 및 기타 단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