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성씨)
1. 개요
공(孔)씨, 공(公)씨, 공(貢)씨는 한국의 성씨이다.
공(孔)씨는 2015년 대한민국 인구조사에서 91,869명으로 55위를 차지했으며, 시조는 공자의 53세손인 공소이다. 고려 시대에 창원 공씨로 불리다가 정조의 명으로 곡부 공씨로 개관되었다.
공(公)씨는 전국시대 노나라 노소공의 아들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2000년 인구조사에서 2,442명으로 150위를 기록했다. 김포 공씨가 대표적이다.
공(貢)씨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존재했으며, 수원 공씨와 인천 공씨가 있다. 수원 공씨의 시조는 공천원이며, 인천 공씨는 조선 시대에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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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 -
공의식
공의식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출신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역임했다.
2. 구멍 공 孔
구멍 공(孔)씨는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91,869명으로 조사되어,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55위이다.
2.1. 연원
본관은 창원(昌原), 파평(坡平), 수원(水原), 부평(富平), 남양(南陽) 등 45본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지나, 1794년(정조 18년) 국왕 정조의 명으로 곡부 공씨(曲阜 孔氏) 단본으로 되었다.
공자의 53세손인 공완(孔浣)의 둘째 아들 공소(孔紹)가 원(元)나라 순제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냈는데, 1351년(공민왕 즉위) 노국대장공주를 배종(陪從)하여 고려에 들어와 귀화하였다고 한다. 공소는 문하시랑평장사로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지고 관향을 창원(昌原)으로 사적(賜籍) 받음으로써 창원 공씨(昌原 孔氏)의 시조가 되었다. 시조 공소(孔紹)의 초명은 소(昭)였는데, 고려 광종의 이름과 같아 피휘(避諱)하여 소(紹)로 고쳤다고 한다.
2.2. 고려, 조선의 창원 공씨
공소의 아들 공여(孔帤)는 고려 말에 집현전태학사, 평장사와 지응양군천우위대장 등을 지냈다. 공여의 큰아들 공부(孔俯)는 고려 때 집현전태학사, 평장사 등을 지내고, 조선이 개국한 뒤 한성판윤, 보문각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공여의 둘째 아들 공은(孔㒚)은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고려와 조선시대 창원 공씨로 세계를 이어오다가, 1794년(정조 18년) 국왕 정조의 명으로 공자의 고향인 곡부로 개관(改貫)하게 되었다. 창원 공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 무과 급제자 25명을 배출하였다.
3. 공평할 공 公
공(公)씨는 전국시대 노나라 노소공의 아들 5명의 이름이었던 공(公)을 성씨로 삼은 것에서 유래하며, 공양(公羊), 공석(公石) 등 노나라 복성이었던 많은 가문이 공씨로 줄였다고 한다.
3.1. 한국의 공(公)씨
공(公)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741가구, 2,44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50위이다.
김포 공씨(金浦 公氏)의 시조 공윤보(公尹輔)는 당 현종 때 안녹산의 난을 피해 755년(신라 경덕왕 14년)에 신라에 들어와 김포에 터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1478년(조선 성종 9년) 계공랑(啓功郞)으로 김포 천능사건으로 인하여 왕에게 직간을 하다가 미움을 받아 평안도 벽동(碧潼)으로 강제 이거 당한 공명례(公明禮)가 벽동파(碧潼派)의 파조가 되고, 세조 때 불복신(不服臣)으로 몰려 함경도 문천(文川)으로 유배된 공보언(公普彦)이 문천파(文川派)의 파조가 되었다.